D+165일 / 맑음 ・ 22도
인야-옹구데이
아름다운 카툰강을 따라 옹구데이로 향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알타이 공화국의 자연이다.


이동거리
74Km
누적거리
11,269Km
이동시간
6시간 47분
누적시간
815시간

P256
P256
32Km / 2시간 37분
42Km / 4시간 10분
인야
쿠푸쳉겐
옹구데이
 
 
363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일찍 잠에서 깨었다. 게무진의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오토바이의 체인으로 만들고 있던 용의 날개를 붙이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패니어를 장착하고 게무진의 집을 나선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제의 음식점에 들렀지만 영업 전이고, 비상식을 사기 위해 슈퍼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다.

"난감하네. 좀 기다렸다 갈까?"

9시가 넘으면 가게들의 문이 열릴 수도 있겠지만 뭔가 귀찮다. 구글을 검색하니 30km 거리에 마을이 검색된다.

"30km, 가자! 식당 하나쯤 있겠지."

인야를 벗어나 거북손 모양의 산을 바라보며 패니어에 들어있던 바나나와 웨하스로 아침을 대신한다.

"웨하스는 러시아지."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출출함을 달래고 길을 떠난다.

아무것도 없었던 강변의 작은 마을을 지나.

절대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소들을 지나니.

카툰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하천 주변으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좋은 곳이 여기에 있었네. 아쉽다."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은 여전히 계속되고, 날씨는 더워져 간다.

폭이 좁은 러시아의 도로는 몽골의 도로와 비슷한 느낌이다. 도로의 폭과 상태, 이정표까지 몽골의 도로들이 러시아의 형태를 따라 했거나 러시아에 의해 건설되었을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몽골 도로의 갓길에 세워진 동물의 통로를 알려주는 볼링핀 모양의 안내석이 없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정차하고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바닥에 앉아 쉬어간다.

나의 주변을 살피던 젊은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통신이 끊겨 번역기를 사용할 수은 없었지만 명함과 여행 경로를 보여주며 짧게 인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여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헤어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러시아의 휴가철인지 카툰강을 따라 캠핑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야영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중국과 몽골을 지나며 잠자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먹거리만 해결된다면 편안한 곳에 텐트를 쳐도 문제가 없겠네."

11:30분, 아침에 검색되었던 마을에 도착한다.

"아휴, 배고파."

어제부터 달려온 도로는 9~10%의 경사도의 짧은 오르막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안내판들에 위너님의 말처럼 총알구멍 같은 것이 뚫려있다.

"총알 구멍일 리는 없고 뭐지?"

힘들게 업힐을 하고 나타난 마을에는 슈퍼나 음식점이 보이질 않는다.

"식당이 어디에 있는 거야?"

러시아의 마을마다 1940, 1945년이 적혀있는 작은 추모공원 같은 것이 하나씩 있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공원인 것 같다.

버스 정류장 근처의 작은 슈퍼에서 시원한 콜라를 사 마시고, 앞쪽으로 보이는 도로변에 음식점으로 보이는 현수막 간판의 그림들이 보인다.

음식점으로 보이던 곳은 슈퍼다. 슈퍼에 들어가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망했다."

슈퍼를 둘러봐도 딱히 요기를 할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담배를 사던 중 코쉬아가츠에서 사 먹었던 크림빵 한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산골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조용하고 너무 조용한 곳의 생활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욕심 없는 자연의 삶일까, 무료한 일상의 반복일까.

달콤한 크림빵을 하나씩 비워가는 동안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다가와 뭔가를 말하며 박력 있게 악수를 청한다.

돈이나 물건 같은 것을 요구하던 몽골 사람들의 대면이 불편했다면 러시아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은 인사처럼 편안하다.

도로변의 수돗가에서 물을 채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 저렇게도 식수를 수급하는구나."

빵을 먹는 동안 태극기를 붙인 오토바이를 보고 손을 들었지만 손인사의 답례를 하며 그냥 지나쳐 간다. 자전거에 달린 태극기를 보고 바이커 역시도 놀란 몸짓이다.

"오토바이인데, 잠시 쉬었다 가지."

마을을 지나 길은 조금씩 오르막이 계속되고, 계곡은 반대편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다시 올라가는 건가?"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질 때쯤 반대편 방향에서 자전거를 탄 세 명의 여행자가 내려온다.

"하이"

자전거를 멈추고 세우는 동안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스페인의 알바와 프랑스의 토마스는 연인 사이처럼 보이고, 러시아 친구는 어제 라이딩을 하면서 만났다고 한다.

알바와 토마스는 유럽에서부터 11개월 동안 여행을 하고 있고, 러시아의 친구는 러시아를 종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쾌활한 성격의 알바는 내게 러시아 비자 기간을 묻더니 자신들은 10일 동안의 비자라 하루에 100km가 넘게 라이딩을 하며 몽골로 가고 있다고 한다.

"이쪽으로 가면 업힐 후에 내리막이야."

"그래? 너희들은 국경까지 계속 업힐이야. 2,000미터까지 올라가야 해."

"500km 정도 거리에 한국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어. 카자흐스탄을 지나 러시아로 갈 거래."

"500km 앞에?"

각자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고 바쁜 알바 일행과 헤어진다.

지금까지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모두 중국이다. 이럴 땐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육로를 통해 한국에 갈 수 있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분명 중국이 아닌 한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유럽의 여행 경로에서 섬나라인 영국을 경유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궁금하지만 건너가기 귀찮은 섬나라, 비싼 물가 그리고 좁은 땅.

"한국 좋은데."

씩씩한 알바가 앞장을 서며 길을 떠나고.

나의 길은 알바의 말처럼 산을 향해 오르막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너를 넘어가야 하나보다. 딱, 미시령 사이즈 같은데."

"이 정도면 논스톱 원킬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이다."

S자를 그리며 휘어지는 오르막을 소처럼 페달을 밟고.

40분 만에 산의 정상에 도착한다.

"뭐야, 전망이 뭐 이래. 아무것도 없잖아."

맥주 한 캔을 마시기 위해 고개의 건너편으로 넘어가자 차량들이 정차되어 있다.

산의 정상으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이 나오고.

주차장 한편에서 숯불구이의 고기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혼미한 정신으로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치집으로 다가가 자전거를 던졌버린다.

"얼마야?"

"250루블"

"빨리 줘! 어서!"

두툼한 고기를 접시에 담고 오이와 양파를 얻어주는 동안 패니어에 들어있던 캔맥주를 부들부들 거리며 꺼낸다.

"와우!"

캔 맥주를 따자 꼬치를 굽던 젊은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와우! 죽인다!"

비록 미지근한 맥주지만 그 맛이 끝내주고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이다.

"상의는 온통 땀에 전 소금밭이지만 무슨 상관이냐. 지금이 천국이지."

순식간에 맥주와 고기를 비우고, 부족한 고기의 양에 입맛이 다셔지지만 250루블이 비싸게 느껴진다.

과거 탄광촌이거나 도로를 건설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인 듯싶다.

산을 넘어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다시 강을 따라 길은 이어지고 태양빛은 뜨겁기만 하다.

산길을 오르며 탱탱해진 허벅지의 뻐근함을 느끼며.

작은 갈림길을 지나 오늘의 도착지 옹구데이에 도착한다.

강을 따라 길게 들어서 있는 옹구데이.

말들과 양들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들어가고.

도로 건너편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옹구데이의 모습이 소박하다.

"일단 슈퍼를 찾아야 하는데."

도로변에는 식료품 가게가 검색이 되질 않고 강 건너의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 밑의 마을을 향해 들어갔다.

보드카가 엄청나게 진열된 슈퍼에서 탄산수를 사 목을 축이고.

그늘에 기대어 앉아 더위를 가라앉힌다.

한참 동안 땀을 식힌 후, 슈퍼에 들어가 빵과 맥주, 물과 음료 그리고 닭고기 그림이 그려진 통조림 캔을 사든다.

마을 앞의 강물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즐기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차도를 점령한 소들을 피해서 야영을 할 장소를 찾으며 길을 따라간다.

잠시 후 강변을 향해 차량들이 들어가는 흙길을 따라 들어간다.

강변의 근처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캠핑장처럼 보이는 곳이 나오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작은 나무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숲에서 산책을 하며 거닐고 있다.

캠핑장 입구의 관리 사무실의 할머니에게 텐트를 칠 수 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본다.

"300루블."

밖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캠핑장으로 끌고 들어오자 젊은 러시아 부부가 다가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여기에 텐트를 치고 자고 싶어."

영어를 하는 금발의 여자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300루블이라며 알려준다.

"응. 알아."

"어디서 왔어?"

"한국, 자전거 여행 중이야."

명함을 꺼내어 건네주니 놀란 표정을 하며 무언가를 할머니에게 말하며 대화를 한다. 할머니에게 주머니의 돈을 꺼내어 보여주니 젊은 여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잠시 주저하더니 300루블을 가져간다.

"그녀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네가 돈을 꺼내니 요금을 받아버렸어. 편한 곳에 텐트를 치면 된다고 해."

"괜찮아. 고마워."

아마도 그녀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 요금을 받지 말라고 할머니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있으니 예쁜 꼬마와 함께 샌드위치와 차를 들고 그녀가 찾아온다.

"오, 땡큐."

빠르게 텐트를 치고.

강으로 내려간다.

시원한 강물로 땀을 씻어낸 후 발을 담그고 자리에 앉아 쉰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가 풀어지는 것 같다.

"할매, 웃어봐!"

캠핑장 곳곳에 간이 세면대가 나무에 꼽혀있다.

저녁으로 젊은 여자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먹는다. 빵에 치즈 같은 것을 바르고 햄을 올려놓았을 뿐인데 썩 괜찮다.

"오호, 이렇게 먹으면 되는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텐트에 누워 쉰다.

알바가 준 명함의 블로그를 구경하고 있으니 젊은 여자의 남편이 다가와 '똑똑' 소리를 낸다.

그는 큼지막하게 썰어낸 수박을 들고 와 건네주고 돌아간다.

노을이 지는 동안 잠시 캠핑장과 강가를 산책하고.

라디오를 켜고 다시 자리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10시 30분쯤, 두 젊은 부부가 텐트로 찾아와 샐러드와 고기 그리고 여러 가지 과자를 건네준다.

"어, 잠깐만."

몽골에서 사두었던 게르 모양의 냉장고 자석을 꺼내어 부부에게 선물을 한다.

"몽골 여행 중에 산 거야."

아이와 놀고 있던 부부 가족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고, 그것을 지켜보며 시간의 흐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러시아의 여행이 시작되는가 보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64일 / 맑음 ・ 23도
아크타쉬-인야
아름다운 알타이 산맥을 따라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가고 있다. 알타이 공화국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매료된다.


이동거리
106Km
누적거리
11,4195Km
이동시간
7시간 13분
누적시간
808시간

P256
P256
70Km / 4시간 25분
36Km / 2시간 48분
아크타쉬
카툰강
인야
 
 
289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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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연락처
+7(495)783-2727

 

푹 잠들었다. 알람이 없이도 자연스레 7시가 되면 잠이 깬다.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곧 그칠 것도 같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어제의 일기를 조금 적어보고 짐들을 정리하여 출발을 준비한다.

오늘 갈 곳은 Inya, 아크타쉬에서 90km 정도 떨어진 거리의 마을이다.

"내리막길일 테니 쉽게 가겠지."

비안개가 산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이 산골 마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마트에 들러 바나나와 음료만을 사 들고.

"밥을 먹고 가자."

어제의 식당에 들러 고기 한 접시를 비운다. 다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출발을 준비하는데 엷게 미소만 보이던 가게의 어린 남자가 숙소가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아니, 오늘 인야까지 가야 해."

함께 사진을 찍고 보니 머리통이 반밖에 안된다.

"몽골까지는 괜찮았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10:40, 비와 아침 식사로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침엽수가 자란 길들은 여전히 싱그럽고.

파스텔톤의 나무집들은 너무나 예쁘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길들을 달리겠지만, 이런 길들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은 오늘이 복날인가 보다. 삼계탕 한 그릇이 심하게 당기는 날이다.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345km.

높은 산과 강의 곡선을 따라 좌우로 휘어지고,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도로의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좋다.

모든 짐을 떼고 다운과 댄싱을 반복하며 신나게 질주하고 싶어지는 길이다.

한 시간을 달리고 도로를 가로막는 말들 때문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좀처럼 쉽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오늘은 널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뒷바퀴에 바람을 충분히 넣고 산과 계곡 그리고 카툰강을 따라 달려간다.

오르 내리막이 반복되는 사이 잘생긴 바위산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세우고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다.

"뭐지? 폭포!"

잘 생긴 바위산의 측면으로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아직 수량이 많지 않아 멋진 장관은 연출되지 않지만 꽤나 운치가 있는 풍경이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사람들이 폭포 쪽으로 들어가고, 작은 간의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풍경이 좋네."

다시 길을 달려 작은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눈길을 사로잡던 이름 모를 들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도로변에 간단히 세워져 있는 작은 묘비들, 군인인지 아니면 일반인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사진과 함께 조화들이 놓여있다.

"배고프다. 빵이나 먹자."

다행히 러시아의 빵들은 제법 맛이 좋다.

전체적으로 산을 내려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라이딩이 쉽지만은 않다.

다시 도로변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정차하고 무언가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군용 짚차와 트럭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조형물의 건너편으로 무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전거를 놓고 구경을 가고 싶을 만큼의 호기심은 없다.

길을 안내하는 강물은 조금씩 협곡의 형태로 깊어져만 간다.

작은 마을을 지나며 나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 커플을 지나쳤지만 짧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으로 지나친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지쳐갈 때쯤이면 그냥 손인사를 하며 지나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알타이를 지나며 오토바이를 탄 바이커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러시아를 지나 몽골까지 이어지는 고산지대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오토바이가 좋을 것 같다.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치켜세우며 지나치는 바이커들이 혼자 여행을 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도로변으로 관광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있고 작은 바위산 밑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쉴까."

별 기대 없이 잠시 쉬기 위해 들어간 곳의 안내판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명 사진이 걸려있다.

"사람 문양 돌? 상형문자?"

바위산을 배경으로 넓은 초원 위에 사람 얼굴의 돌상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세워져 있다.

단순한 조각인데 왠지 모르게 강렬한 느낌이다.

상형 문자를 보기 위해 바위산으로 걸어간다.

"어디?"

"어디에?"

"어디에 그려진 거야?"

병풍처럼 솟아있는 바위산에는 사람들이 적어놓은 낙서를 지운 흔적 같은 것이 있을 뿐, 안내판에 찍혀있던 상형문자는 보이질 않는다.

"이건가? 어, 대충 느낌 나네."

바위산의 하단 부분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림문자들이 보인다.

"말, 소, 사슴? 토끼? 얘도 무진장 심심했나 보네. 돌에다 낙서를 하고."

도로를 달리는 동안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낙서와 별반 다른 느낌은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락카로 낙서를 하고, 저 시절의 사람들은 돌로 낙서를 했다는 차이일 뿐.

"그래도, '나 왔다 감'보다는 생산적인 낙서네."

도로변에 세워진 작은 묘비, 자동차 핸들 모양의 묘비들인데 의미를 잘 모르겠다.

"묘비가 아닌가? 묘비 느낌인데."

어제 먹고 남은 빵을 한 개, 두 개 먹다 보니 모두 해치워버린다. 자꾸만 손이 가는 달콤한 맛이다.

인야가 가까워지며 도로는 매끈한 아스팔트로 새 포장되어 있다.

작은 마을을 지나치고.

협곡의 깊이는 더해진다.

그리고 많은 자동차가 정차되어 있는 오르막의 커브길, 카툰강의 협곡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협곡 쪽으로 걸어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밑으로 굽이지며 휘돌아가는 카툰강의 강줄기가 멋진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원하다."

어떤 편의 시설이나 유치한 전망대조차 없는 자연의 언덕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잠시 언덕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인야로 향한다.

묘하게 구부러지고 휘어진 도로를 오르고.

인야의 초입에 들어선다.

자전거 투어 관련 스티커들도 보인다.

"스티커 생각은 못 했네. 하나 만들어서 올 것을."

독일 커플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인야의 오래된 나무다리를 찾으며 마을을 지나친다. 조용하고 오래된 마을처럼 느껴진다.

마을을 관통하고 강을 건너는 다리 부근에 작은 동상 하나가 세워져 페달링을 멈추게 만든다.

"오, 레닌!"

구소련이 붕괴되며 레닌의 동상들이 모두 허물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이곳의 동상은 큰 훼손 없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나의 사고와 가치관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대학시절 자본론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스쳐간다.

"모스크바 정도에서 볼 줄 알았더니, 일찍 보게 되니 반갑네."

조촐한 레닌의 동상을 구경하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인야를 벗어나 8km 거리에 떨어진 작은 강변 마을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출발한다.

협곡을 건너는 다리를 건널 때 다리의 왼편으로 찾고 있던 인야의 오래된 다리가 나타난다.

"저기에 있었구나."

바람과 함께 온종일 업다운을 반복했던 페달링의 속도도 느려져만 가고.

거북손처럼 생긴 기묘한 산이 정면에 나타난다.

"묘하게 생겼다."

잠시 후 짧은 내리막길의 끝에 야영지로 생각했던 작은 강변의 마을에 도착한다.

작은 수로를 따라 시냇물의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흙길을 따라 카툰강 쪽으로 내려갔다.

"강변에 괜찮은 야영지가 있을까?"

낮은 지형의 강변은 작은 모래들이 퇴적되어 캠핑을 하기에 괜찮았지만 양과 염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공간이라 텐트를 칠 수가 없다.

"일단, 슈퍼가 없나?"

캠핑을 하기 위해 슈퍼를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다. 나무 울타리로 되어있는 집들의 텃밭에는 감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심어져있고, 골목에는 사람들의 인기척도 보이질 않는다.

오는 도중 빵과 음료를 모두 먹은 후라 패니어 안에는 변변찮은 간식만이 몇 가지 남아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내일 80km 정도의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비상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네트워크도 끊기고 슈퍼도, 식당도 없네."

마을 앞의 도로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잠시 고민을 하다 인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음식이든 통신이든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지."

내려왔던 내리막길을 다시 올라가야 했지만 뒷바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인야로 되돌아온다.

"젠장, 한 시간 반을 날려버렸어."

인야로 돌아와 식당을 찾고, 슈퍼도 확인한다.

작은 도로변의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말하는 수프를 주문하고 환타 한 병을 사 마신다.

주방으로 들어간 아주머니는 접시에 무언가를 담아와 보여주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만두? 오케이! 다해서 얼마예요?"

아주머니는 메모지에 203을 적어서 보여주고,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식당 옆의 공간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안 된다는 제스처를 한다.

인야의 다리를 건너기 전 텐트를 칠만한 곳을 두어 군데 생각해 두었지만, 식당의 주변에 야영을 하면 내일 아침 식사까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다.

"뭐 어쩔 수 없고."

금방 조리가 되어 나온 수프는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 난다. 면과 고기, 육수와 채수의 조화가 나름 괜찮은 맛이다.

"오호, 러시아의 수프는 이런 맛이군. 괜찮네."

고기만두와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슈퍼로 들어갔지만 딱히 살만한 것이 없다.

"저녁은 해결했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

다리를 건너가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주변에서 야영지를 찾고 싶다.

"마당에 텐트를 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갈 수도 없고."

마을을 둘러보며 이왕이면 협곡 쪽의 집들이 좋겠다 싶어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들어간다.

협곡의 언덕 위, 전망이 좋은 곳에 작은 의자와 테이블이 만들어져 있다.

"와우, 죽이는데."

나무 전망대에 앉아 카툰강을 바라보다 마당이 있는 건너편 집의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다.

"하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젊은 남자에게 나를 가리키고, 남자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도 될까요?"

번역기를 보여주니 남자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땡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망대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남자는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창고처럼 생긴 곳의 주변에 텐트를 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니 남자가 다가와 다른 곳에 텐트를 치라며 마당의 안쪽으로 안내한다.

마당의 안쪽, 나무로 만든 게르처럼 생긴 공간(바베큐를 구워 먹은 장소)의 뒤편을 가리키며 원하는 곳에 텐트를 치라는 안내를 하고 남자는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텐트를 치려고 준비를 하는데 남자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핸드폰을 보여준다.

루블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200루블을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다. 조금 당황했지만 차라리 그것이 속 편하겠다 생각이 든다.

"응. 알았어. 근데 너 이름이 뭐야?"

"게무진."

텐트를 치고 집 안을 둘러본다. 아이들의 놀이터, 그네, 바베큐장, 화단 등 아기자기한 손길이 느껴진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집들도 몇 채가 들어서 있고, 감자를 기르는 텃밭과 염소들의 헛간도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집들이 울타리 안쪽으로 감자를 기르는 텃밭이 있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는 쇠붙이로 공예품 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취미 생활인지 솜씨가 그럴듯하다.

게무진에게 500루블을 줬더니 잔돈이 없는지 차를 몰고 어딘가로 나간 후 300루블을 내어준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아버지가 만든 거야. 기념품."

게무진의 아내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창고 옆 칸의 공간에서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부엌이 외부에 따로 있는가?"

그녀에게 안쪽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어보니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반야."

창고의 한편은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반야로 사용하고 있다. 한 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나무 의자 같은 것이 놓여있고 불을 지펴놓은 후라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아이들의 나무 그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게무진의 아버지가 무언가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집을 가리켰지만 정중하게 사양을 한다.

"200루블 받아서 삐진 거 아냐. 오늘 조금 피곤해서 그래."

아직은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몽골의 사람들에 비해 편안하기는 하지만 상냥한 느낌은 없다.

아마도 외지인, 동양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산중의 마을이라 낯설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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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63일 / 흐림
코쉬아가츠-아크타쉬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코쉬아가츠를 떠나 러시아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이동거리
103Km
누적거리
11,089Km
이동시간
6시간 56분
누적시간
801시간

P256
P256
65Km / 4시간 21분
38Km / 2시간 35분
코쉬아가
쿠라이
아크타쉬
 
 
183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다. 숙소의 창밖에 설치된 온도계의 눈금은 10도를 가리키고 있다.

몽골의 국경에서 70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오늘은 가야 해."

짐들을 정리하고 아쿠아 슈즈와 레인 팬츠를 꺼내고.

중국에서 차려입었던 우중 라이딩 복장을 갖춘다.

"오랜만이네. 고무장갑이 빠졌군."

필립과 마리사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는 두 명의 자전거 여행자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온다. 러시아 구경을 넘어 코쉬아가츠 근처에서 도착한 것 같지만 그들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인연이 있으면 길 위에서 만나겠지."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강한 비바람은 없지만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다.

오늘 가야 할 목적지는 100km 거리의 Aktash.

국경과 가깝다 보니 짐을 싣고 가는 바쁘게 달리는 차량들이 많다. 좁은 이차선 도로에 조심스럽게 진입을 하고, 다행히 차량들의 매너가 좋은 편이다.

작은 다리를 건네 크게 좌회전을 하고.

서쪽 방향을 향해 조금 달려가니 코쉬아가츠의 경계가 바로 나온다. 알타이 공화국의 수도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454km, 도착까지 5일~6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작은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지만 대체적으로 라이딩하기에 편안한 길이 이어지고, 핸드폰으로 실행해둔 라디오는 연결이 불안정하더니 완전히 끊겨버린다.

위너님의 여행기에 러시아의 산길에서 데이터가 안된다는 내용이 생각난다. 이제 통신이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한 시간의 라이딩을 하고, 첫 번째 나타난 마을의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려고 하니 뒷바퀴의 느낌이 이상하다.

"빵구! 오랜만이네."

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어 도로에 이물질조차 없을 것 같은 몽골에서는 펑크에 대한 걱정이 없었는데, 러시아에서의 신고식을 일찍도 한다.

작은 철심을 제거하고, 전부터 조금씩 바람이 새던 튜브를 정비해둔 예비 튜브로 교체한다.

맥주 안주로 사두었던 작은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하며 타이어의 바람이 새는지 기다린다.

튜브는 잘 교체된 것 같다.

도로를 건너 자전거에 오르려는 순간 차량 한 대가 정차하더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몽골의 국경에서 만났던 삐꾸가 창문을 열고 밝게 웃고 있다.

"삐꾸!"

서둘러 자전거를 가로등에 기대어 놓고, 이스카, 아카, 삐꾸와 반가움의 포옹을 한다.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는 그들은 도로변에 서있던 나를 보고 차량을 유턴해서 돌아온 모양이다.

우연히도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 세 사람이다. 승용차 안에는 처음 보는 여자들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스카, 러시아 가서 여자친구들 만들고 왔어?"

반가움의 인사들을 하는 사이 세워두었던 자전거가 기우뚱 움직이더니 푸시식 소리를 내며 뒷바퀴가 주저앉는다.

"오 마이 갓!"

이스카와 삐꾸는 무슨 일인가 신기하게 뒷바퀴를 만져보며 대화를 하고, 아카는 자전거를 버스 정류장까지 옮겨준다.

국경을 넘기 위해 서둘러야 하는 세 사람과 아쉬움의 인사를 차례대로 하고 헤어진다. 정말 아쉽다.

"그런데 넌 뭐냐?"

튜브를 꺼내보니 튜브를 장착할 때 림과 타이어 사이에 튜브의 일부가 씹혔나 보다. 다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찢어져 있다.

중국 쉬안화에서 사두었던 새 튜브를 꺼내어 교체한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가 보자. 부탁해!"

길은 작은 강을 따라 이어지고 수변의 나무들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작은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차가운 바람이 손등을 시리게 만든다. 중국의 고무장갑이 아쉽다.

계속되는 비바람으로 조금씩 한기가 밀려들고 배고픔도 함께 찾아든다.

바람을 등지고 작은 카스테라 빵을 꺼내어 허기를 달랜다. 낱개로 포장이 되어 먹기가 편하고 달콤한 잼이 들어있어 꽤 맛이 좋다.

다시 빗속을 달려 작은 오르막이 끝나고 언덕 위에 몽골의 어붜처럼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빗줄기는 다시 강해지고 평탄해진 도로를 한참 동안 달린다.

잠시 비가 멈추고 바람도 사그라든다.

60km의 거리를 달려 작은 마을이 나오고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오늘 여기까지만 탈까."

가야 할 길의 오르막길을 보니 게으름이 생긴다. 아크타쉬까지 35km의 거리가 남았고 시간은 3:40분을 가리키고 있다.

"갈까 말까?"

긴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경사가 높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타난 내리막길.

"그래, 이제 달려 볼까?"

비와 바람, 천천히 스며든 한기 속에서 지속되던 오르막을 끝내고 내리막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순간 뒷바퀴가 물컹거린다.

"뭐지?"

순식간에 빠져버린 바람, 마땅히 자전거를 눕힐 곳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작은 못 하나가 야무지게 타이어에 박혀있다.

오전의 펑크로 예비 튜브를 버리고 장착한 새 튜브, 여분의 튜브도 없고 비가 내리는 도로변에서 너무나 난감하다.

"중국의 펑크 귀신이 러시아에서 다시 붙었나."

"펑크 패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빗속에서 어렵게 물기들을 제거하고 펑크가 난 곳을 정비했지만 이내 바람이 빠지고 만다.

"아앙. 제발!"

튜브를 다시 제거하니 못이 튜브를 관통했는지 펑크패치를 붙인 반대편에도 구멍이 나있다.

다시 펑크패치를 덧붙여 마무리를 했지만 다시 바람이 빠진다.

"새 튜브인데, 이건 안되겠네."

오전에 펑크가 난 튜브를 꺼내어 펑크가 난 곳을 찾는다. 비와 바람이 불어오는 도로변에서 작은 바람 구멍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고, 한참 동안 튜브에 귀를 가까이하고 앉아있으니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하더니 괜찮은지를 묻는다.

다시 어렵게 펑크패치를 붙이고 세 번째 펌프질을 한다.

"30km만 가자. 그나저나 튜브도 없고, 펑크패치도 떨어져가고 문제네."

길은 내리막으로 길게 이어지고 아크타쉬의 경계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도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주변의 자연환경은 몽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짙푸른 녹음의 산속, 나무와 풀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싱그럽다.

나무로 지어진 펜션과 가옥들의 모양들이 침엽수의 숲과 어우러져 너무나 예쁘다.

아크타쉬에 도착한다. 높은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아늑한 느낌의 산골마을이다.

마을 초입의 식당에서 숙소를 검색하고, 바이커들이 많이 이용하는 숙소를 선택한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마트와 학교를 지나.

검색했던 숙소에 도착하고.

나무로 지어진 이층 구조의 건물의 내부는 좁고 허름하다.

뚱뚱한 아주머니가 거친 쉼호흡을 하며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고, 핸드폰으로 영어 번역을 하여 몇 명인지를 묻는다.

"져스 원! 하우 머치?"

"400루블."

아주머니는 자전거를 창고로 사용하는 방 안으로 넣어두라고 말한다. 바이커들과 가난한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응대가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아주머니는 누군가를 부르자 어린 여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2층의 방을 안내한다.

열쇠를 건네주고 내려간 그녀는 타올과 슬리퍼를 들고 다시 올라와 잠시 후 여권을 가지고 내려와 달라고 한다.

1층으로 내려가니 아주머니는 숙박계 같은 것을 낡은 노트에 빼곡하게 적는다.

아주머니의 딸이나 손녀로 보이는 어린 여자는 자신을 안나라고 소개하고 1층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주방을 안내해 주고, 나가고 들어올 때 현관문을 잠그라며 열쇠로 문을 잠그는 것을 알려준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마트가 있는 곳으로 나간다. 제법 큰 규모의 마트를 중심으로 작은 노점 카페들이 있었지만 모두 문이 닫혀있다.

마트 건너편의 건물에 음식 메뉴 현수막이 걸려있어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식당에는 눈웃음이 예쁜 어린 남자와 아주머니가 동양인의 등장에 잠시 의아해하더니 친절한 웃음을 보여준다.

주방 앞 테이블에 놓여있는 갈비찜 같은 고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거, 이거 줘!"

가격을 물어보니 200루블, 커피와 고기를 주문하니 이미 조리가 된 고기를 접시에 담아 전자렌지에 데워준다.

"오. 빨라서 좋다!"

큰 소갈비 3대와 감자 그리고 상추와 풋풋한 향이 나는 채소를 접시에 담아준다.

"그냥 먹어?"

어떻게 먹는지 제스처를 하니 손으로 들고 뜯으라고 알려준다.

갈비는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좋다. 15cm 정도의 두툼한 갈비살과 함께 준 채소들을 곁들인다.

식사를 하며 아주머니에게 맛이 좋다는 표현을 하니 아주머니는 빵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아니, 그 옆에 생선을 줘."

"피쉬?"

"응."

생선을 먹은지가 너무 오래됐다. 두툼한 생선찜, 명태처럼 느껴진다.

갈비찜을 한 접시 더 달라고 주문하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매콤한 토마토 소스 같은 것을 조금 덜어 접시에 담아준다.

"냅킨도 이쁘네."

정신없이 고기를 먹는 동안 작은 식당에는 러시아 사람들로 가득 찬다.

"아고, 잘 먹었다. 내일 또 먹어야지."

숙소로 돌아와 소파를 개조해서 만든 넓은 간의 침대에 쓰러진다.

낡고 허름한 숙소지만 세상 편안하고 좋다.

빗속에 100km 정도의 산길을 달려오니 졸음이 밀려온다.

아직은 러시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61, 162일 / 맑음, 비 ・ 23도
코쉬아가츠
하루를 쉬고 러시아의 여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린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10,986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794시간

휴식
비내림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숙소
숙소
숙소
 
 
80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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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무제한,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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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어제 가지 못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 난감모드."

무언지 모르지만 고기를 외치며 메뉴를 선택했다.

"이건 뭘까?"

식사와 함께 먹었던 커피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것이 문제의 러시아 동전이군."

러시아는 동전이 많아 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1, 2, 5, 10루블.

자료들을 정리하다 코쉬아가츠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몽골의 도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분위기지만 조금은 정리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어제부터 모기에 물린 것인지 몸이 너무나 가려워 연고를 사기 위해 약국으로 갔다.

"저기 모스키토."

모기에 물린 곳을 보여주며 연고를 달라고 하자 여자 약사가 방긋이 웃는다.

그리고 무언가 연고를 주는데 모기의 그림이 없다.

"모스키토 맞아?"

약사는 다시 한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와 함께 내일의 비상식량을 구매했다.

몽골의 슈퍼 냉장고에는 이상한 버튼이 있고 문이 잠겨있다. 버튼을 눌러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비상식으로 빵들을 사고, 저녁으로 닭다리를 두 팩 사서 돌아왔다.

"저쪽만 비가 내리는 것인가?"

이틀째 묘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자료를 정리하다 잠들었다.



약을 발라도 빨갛게 부푼 곳은 계속 간지럽다. 모기에 물린 것인지 숙소의 찐득이 같은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출발을 위해 패니어들를 정리하고.

삼일 전부터 뜯겨진 핸들바.

전기 테이프로 잘 묶어 정비를 하고.

어제 슈퍼에서 10분 동안 물병을 들고 '노까스'를 외치며 사온 물은 결국 탄산수인가 보다.

"에쒸, 망했네. 이것으로 물을 끓일 수 있나?"

출발 전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기로 한다.

튀김 만두를 하나 고르고, 만두를 주문했다.

아침을 먹고 늦은 출발을 하려고 하니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뭐지?"

일단 숙소 앞의 슈퍼에서 물을 추가로 구매하고.

우의를 꺼내어 준비를 했지만 비와 바람이 더 강해진다.

비를 피해 다시 숙소로 돌아가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비는 멈출 생각이 없고.

"안 되겠다. 하루 더 머물러야지."

체크인을 다시 하고 짐들을 방으로 옮겼다.

"내일도 비가 올까요?"

숙소의 여직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비는 멈추었다.

그리고 하늘이 맑아진다.

슈퍼에 들러 저녁을 찾아봐도 딱히 먹을 것이 없다.

요거트를 사 와서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내일도 비 예보가 되어있다.

"태풍이 와도 내일은 떠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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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0일 / 맑음, 비 ・ 23도
울란바이신트-러시아 타샨타-코쉬아가츠
3달 동안의 몽골 여행을 마치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넘어간다. 여행의 세 번째 나라 러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이동거리
80Km
누적거리
10,986Km
이동시간
5시간 56분
누적시간
794시간

몽골/러시아국경
P256
26Km / 2시간 18분
54Km / 3시간 38분
몽골
타샨타
코쉬아가
 
 
80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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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러시아 간의 국경이 열리는 날이다. 어젯밤 몽골의 친구들과 먹은 보드카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무거운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지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으면 좋겠네."

간단하게 세안과 양치를 하고 몽골에서의 마지막 굿모닝을 알린다.

몽골 화장실에 갈 때는 먼저 옷들의 지퍼들을 모두 잠그고, 핸드폰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조심조심, 빠지면 대책 없다."

국경이 열리는 9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잔다.

8시가 되자 비꾸가 나가자며 서두른다.

"아직 멀었는데?"

자전거와 짐들을 챙기는 동안 아스카가 기다려 주고, 담배를 사기 위해 슈퍼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다.

"아직 몇 개 남았어. 그냥 가자."

"자전거는 첫 번째로."

밤새 길게 늘어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을 지나 검문소의 가장 앞자리까지 가라고 한다.

검문소의 입구에 자전거를 세우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비꾸, 아스카, 아카와 사진을 찍고, 군복을 입은 국경 검문소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한다.

"어, 어제 몽골 긴또깡의 와이프인데?"

어제 비꾸 일행과 잠시 놀러 갔던 집의 젊은 여자도 군복을 갖춰 입고 출근을 한다. 몽골 긴또깡은 직장 커플인가 보다.

군복을 입고 머리를 가지런히 올려 모자를 쓰고 있으니 세 명의 남자아이에게 시달리던 엄마의 모습과는 달라 보인다.

"멋진데."

8시 30분, 검문소 입구의 작은 초소에서 비꾸 일행은 여권을 보여주며 무언가를 체크 받고 작은 확인표를 받는다.

"사비, 이리 와."

초소의 군인에게 여권을 건네주니 쓸데없이 여권의 빈 면들을 뒤적거리고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확인표를 적어준다.

"아스카,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자전거."

잠시 후 아스카는 아카의 담배를 몇 개비 뺏어와 담뱃갑에 담아준다.

"러시아 담배야."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있으니 초소에서 여권을 체크했던 군인이 나와 담배를 피우며 나를 부른다.

"왜?"

초소의 군인은 국경 검문소의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는 제스처를 하며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다. 조금 전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을 삭제하며 핸드폰을 보여주니 이전에 찍었던 인물 사진까지 지우라고 한다.

"융통성 없는 자식."

비꾸 일행과 찍었던 사진까지 검문소의 글자가 나왔다며 모두 삭제된다.

9시가 되어 문이 열리고 첫 번째로 검문소에 입장을 했다. 검문소의 오른 편, 승용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검사를 받는 2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사무실 내부에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심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입구에 있는 출국 카드를 작성하는 동안 비꾸 일행도 사무실에 들어와 심사대 앞에 줄을 서고 나를 부른다.

심사대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한 직원이 뭔가를 말하고 사람들이 엑스레이 검사대로 돌아가서 가방들을 올려놓는다. 아스카와 함께 엑스레이 검사대에 핸들 가방을 통과시킨다.

"뭔가, 어설픈 시스템이다."

잠시 후 몽골 긴또깡의 아내가 다가와 심사대 옆에 있는 창구 쪽으로 가라며 안내를 한다.

창구로 가서 확인표를 주니 도장 하나를 찍어주고, 이번에는 비꾸가 머리를 처박고 뭔가 대화를 하고 있는 입구 쪽의 창구로 가라고 한다. 다시 도장(서명) 하나를 더 받고 심사대 앞에서 대기한다.

초소에서 준 확인표에 3단계의 스텝을 알리는 몽골어가 적혀있는데, 정확히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짐들을 확인받는 절차인 것 같다. 하여튼 조금 어설프고, 어쨌든 3개의 도장을 받으면 되는가 싶다.

마지막 심사대에 여직원이 들어서고 여권과 출국카드 그리고 확인표를 건네주고 멀뚱하게 서 있다.

"출국카드는 쓸 필요가 없는 거군."

아무런 질문도 없고,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여권에 출국 스탬프를 예쁘게 찍어준다.

"바엘샤!"

국경 검문소를 나가는 초소에서 멋진 군인이 거수경례를 하고 확인증을 받아 가며 다시 거수경례를 해주며 차단기를 올려준다.

"멋진 군인이네."

초소 입구의 거들먹거리던 녀석에게 살짝 삐쳐있던 기분이 상쾌하게 달아난다. 어쩌면 몽골을 벗어나는 것이 이런 기분일는지 모르겠다.

불안하고, 불쾌하고, 힘들고, 지치고, 배고팠지만 너무나 경이롭던 하늘과 풍경들 그리고 그 자연과 너무나 어울리는 사람들. 몽골을 벗어나니 뭔가 아쉽지만 알 수 없는 상쾌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다시 오게 될까? 글쎄, 오토바이나 캠핑카라면 모를까."

초소의 출구를 벗어나 있으니 비꾸의 일행이 자동차를 세운다.

"사진을 다 삭제당했어. 다시 찍자!"

아스카, 아카와 사진을 찍고 러시아 국경 검문소로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그들과 헤어진다.

검문소를 벗어나 지겨운 몽골의 비포장 산길을 다시 오른다. 몽골-러시아 국경까지 약 5~6km 정도의 산길을 따라가야 한다.

"잘 있어라. 몽골!"

자민우드, 사인샨드에서의 황망스러웠던 첫 느낌들이 생각나고, 어느새 익숙하고 친숙해져버린 몽골의 풍경들이 사라져 간다.

러시아 국경으로 바쁘게 달려가는 차량들이 뿌연 흙먼지를 날리고, 날벌레들이 쉼 없이 달려든다.

"아직은 몽골이네."

"빨리 벗어나자!"

몽골의 마지막 하늘과 양떼들의 한가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러시아로 향한다.

저 멀리 앞서가던 차량들이 정차를 하고 대기하고 있는 초소 같은 것이 보이고.

몽골의 국기와 러시아의 국기가 보인다.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 비꾸의 말처럼 러시아의 국경부터 아스팔트가 깔려있다.

"뭐랄까, 참 할 말이 없다."

초소를 지키는 군인이 나오지를 않고, 몇 대의 차량이 대기를 하며 정차를 한다.

한참 후에야 마르고 나이가 있어 보이는 군인이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 나와 국경의 문을 열어준다.

간단하게 여권을 확인하고 어딘가 무전을 하더니 패쓰. 대략 자전거를 탄 한국 사람 한 명이 국경을 넘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스팔트를 달리기 전 감격의 휴식.

"러시아에 왔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자리에 앉아 몽골의 데이터로 마지막 인사들을 전송하고 있으니, 늙은 군인이 다가와 뭔가를 말하려다 돌아간다.

아마도 빨리 러시아 검문소로 가서 입국을 하라는 말을 하려고 한 모양이다.

국경에서 타샨타에 있는 검문소까지 20km 정도를 가야 하니, 현재의 나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와 같다.

"러시아를 달려 볼까!"

바람과 함께 황홀한 구름과.

고산지대의 풍경은 몽골과 다를 것이 없지만.

아스팔트가 있고, 왠지 날벌레도 날아들지 않는 느낌이다.

썩 좋은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비단길이 따로 있을까. 꿀렁꿀렁 넘어가는 언덕을 조금 지나고, 도로는 시원하게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멀리서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커플의 모습이 보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독일에서 온 필립과 마리사. 러시아를 지나 몽골과 중국으로 여행을 가고 있다.

웃는 얼굴이 너무나 편하고 예쁜 커플, 괜히 부러우니까 짧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사진과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헤어진다.

"시간 있으면 한국에도 가 봐."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달려간다.

하늘도 멋지고.

날씨도 좋고.

"앗, 기념주가 빠졌군."

타싼타의 경계를 알리는 곳에서 몽골에 대한 감사의 레츠비를.

"바람과 추위, 배고픔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길을 달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몽골의 자연은 그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굿바이 몽골리아!

툴가, 바트보르드, 오초르와 조르노크 사람들, 감바, 간져, 김병남 선교사, 뱀바, 서동고의 가족, 루시아노, 간수크, 야기, 유나박시, 비꾸, 이스카와 아카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모든 몽골의 사람들에게 감사!"

20km를 달려 러시아의 검문소에 도착했다. 나를 지나쳤던 차량들이 검문소 앞에서 길게 정차를 하고 대기를 하고 있다.

"나도 줄을 서야 하는 거야?"

일단, 가장 마지막 차량의 주변에 자전거를 세우고.

주변을 살피는 동안 카자흐스탄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어, 어디로 가, 얼마나 됐어 등등의 여행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고 러시아를 지나 카자흐스탄으로 간다고 하니 되게 좋아한다.

짧은 영어를 하는 남자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검문소로 들어가기 위해 지루하게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낯선 여행자를 보며 즐거운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아롯과 카자흐스탄의 빵, 말린 육포 같은 것을 주며 먹어 보라고 하고, 어떤 이는 50루블을 주며 커피를 사 먹으라고 웃어 보인다.

"감사합니다. 아직 카자흐스탄에 안 갔는데, 마구마구 좋아지려고 하네. 여자들도 이쁘다던데."

울란바토르에서 툴가는 카자흐스탄의 여자가 가장 이쁜 것 같다고 말했었고, 울기에서부터 보았던 카자크들은 동양과 서양의 외모가 섞여있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물론 나는 카자흐스탄의 여자보다 G.G.G 겐나디 골롭킨을 좋아한다.

"카자흐스탄에 가며 G.G.G만을 외치고 다닐 거야."

영어를 하던 남자는 앞쪽으로 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자전거를 끌고 검문소의 입구로 이동, 잠시 후 문을 여는 군인에게 들어가도 되는지 묻자 초소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한다.

검문소 출입문의 옆에는 몽골 검문소처럼 작은 초소가 있었고, 여권을 보여주자 확인증과 함께 출입국 카드를 준다.

육로로 구경을 넘는 프로세스는 아마도 '1. 초소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확인증과 출입국 카드를 작성한다. 2. 검문소로 들어가 짐들을 검사받는다. 3. 입출국 심사 후 스탬프를 찍는다.' 이런 스텝인가 보다.

"여기는 센스 있게 코팅을 해서 사용하네."

입국카드를 작성하고, 다음번 문이 열리는 타임에 검문소로 들어갔다. 여직원이 여권을 확인하고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 준다.

승용차에서 사람들이 짐들을 모두 꺼내어 넓은 테이블에 펼쳐 놓고 있다. 그리고 엑스레이 검사대에 가방들을 열심히 올려놓느라 바쁘다.

남자 군인이 나를 보며 손짓을 하고 출입국 카드를 확인한다. 그리고 무언가 열심히 말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왜? 가만 너 지금 영어를 하는 거야?"

자세히 들어보니 군인은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를 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다, 러시아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영어가 러시아어로 들린다.

"출국 카드에도 내용을 적으세요."

한 장으로 되어있는 입출카드의 내용을 똑같이 적은 후에 입국 심사대에서 기다렸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어수선한 창구 쪽을 보니 비꾸와 아카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아카, 여기서 뭐해?"

실외의 검사대이지만 떠들면 혼날까 봐 조용히 웃으며 아카와 수신호를 보내고, 입국 심사대에 섰다. 하늘에서는 굵은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진다.

여권과 확인증, 출입국 카드를 제시하고 서 있으니 언제 출국할 것인지를 묻는다.

"한 달 후에 카자흐스탄으로 갈 거야."

뭔가를 다시 물어보는 무표정한 여자 심사원.

"아 왜? 내 발음 구린 거 나도 알아!"

여자는 출국카드에 체류기간 항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 안 적었구나. 미안!"

무표정하게 무언가를 말하며 숫자 8을 적어서 보여준다.

러시아의 무사증 체류기간은 60일이고, 6개월 이내 재입국이 필요할 때 추가 30일의 체류기간을 준다.

출국일을 넉넉하게 60일로 하는 것이 안전하겠다 싶어 여자에게 '나인', '셉템버'를 번갈아 외친다.

살짝 짜증이 난 듯한 여자는 종이에 숫자 9를 크고 예쁘게 적어 보여준다. 아마도 지금까지 본 9의 글씨 중 가장 예쁜 글씨다.

"땡큐!"

입국 스탬프가 찍히고 자전거를 세워둔 진열대로 가자 남자 군인이 다가와 패니어들을 모두 열라고 한다.

주섬주섬 패니어를 열고 있으니 영어로 질문을 한다.

"총기나 위험한 무기가 있어?"

"없어."

"코카인이나 마약 같은 것이 있어?"

"없어."

곁에 서있던 여자 군인이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묻는다.

"듣기 평가를 하나. 없어!"

남자와 여자는 패니어 안을 조금 살피더니 검사가 끝났다며 가라고 한다.

"엑스레이 안 찍어? 정말?"

"끝났어. 그냥 가."

자동차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짐들이 많아서인지, 내 짐들은 육안으로 검사하고 끝을 냈다. 패니어들을 떼어내고 다시 장착할 노고가 사라져서 다행이다.

잠시 검문소 내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꾸 일행과 다시 재회를 하고 검문소 출구로 나간다.

확인증을 반납하며 출국카드를 본 순간.

"어, 왜 8이야? 9라고 했는데."

출구를 지키던 군인이 빨리 나가라며 재촉을 하고.

"08.09.19! 아, 어색한 표기법이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끝내고 타샨타의 거리로 나왔다. 출국을 하려는 차량들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서 있고, 입국을 끝낸 사람들을 태우려는 버스들도 반대편에 길게 정차되어 있다.

"꼭 환영 인파 같네."

사람들과 차량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쉬고 있으니 비꾸 일행이 자동차를 몰고 도착한다.

"사비, 어디까지 갈 거야? 코쉬아가츠는 40km 정도야!"

"잉? 40km?"

시계를 보니 2시가 안 된 시간이고, 코쉬아가츠까지 50km 정도의 거리다.

"오늘 코쉬아가츠까지 갈 수 있겠다."

"그래, 조심해!"

비꾸, 아스카, 아카는 손을 흔들며 출발한다.

타샨타를 시작으로 도로는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이 계속되고 검은 비구름과 함께 우렁찬 천둥소리가 계속된다.

검은 구름 지대를 빠르게 벗어나려 힘껏 페달을 밟지만 거센 바람이 시작되고.

반대편의 맑은 하늘과 달리.

국경 지역은 검은 비구름과 함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정말 묘하고 신기한 하늘이다."

길을 달려 러시아의 작은 마을이 도로변으로 이어지고.

2층으로 지어진 목조 건물과 흙길의 골목은 몽골과 다르지 않지만 뭔가 정리가 된 느낌이다.

마을 앞의 구조물을 보면 마치 몽골처럼 느껴진다.

도로를 새로 포장하는 긴 도로를 달리고, 몽골과는 달리 도로 한편을 임시 도로로 사용하여 크게 불편하지 않다.

오늘 날씨와 하늘의 컨셉은 변화무쌍인가 보다.

멀리 보이는 코쉬아가츠의 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저 동네는 무슨 죄를 졌길래?"

묵직한 구름 아래로 만화에서 볼 수 있을법한 비가 내리고 있다.

실루엣에 가깝던 코쉬아가츠의 모습이 서서히 눈앞에 펼쳐진다.

"궁금하다. 러시아의 첫 도시의 풍경."

돔 모양의 이상한 공처럼 생긴 구조물이 보이고.

마을의 모습은 몽골의 도시와 비슷하다.

소들이 자유롭게 이동을 하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고.

마을 중심부의 모습도 큰 변화는 없지만 사람들의 생김새가 달라진다.

큰 슈퍼마켓을 확인하고 벤치에 앉아 주변을 검색한다.

"일단, 통신을 해결하자."

러시아의 이동통신 중 핫스팟이 연결되는 MTC를 선택하고 슈퍼마켓 주변에 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간다.

무표정한 얼굴의 여직원에게 유심칩을 문의하고, '노리미트'를 외치는 유심의 가격을 물으니 400의 숫자를 적는다.

"언리밋 데이타?"

여전히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직원은 현금으로만 계산이 된다고 한다.

"오케이, 은행이 어디에 있어?"

여자가 알려준 방향에는 은행이 없었고, 길을 오며 봐두었던 슈퍼마켓 옆의 ATM으로 돌아간다.

당분간 사용할 현금을 찾고 다시 핸드폰 가게로 찾아간다.

"유심 줘 봐."

간단하게 상품을 소개하는 숫자나 영어가 있을까 싶어 봤지만 온통 러시아 글자뿐이다.

"정말 데이터 무제한이야?"

쓸데없는 것을 자꾸 물어본다는 듯 쳐다보더니 돈을 받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버린다.

옆에 있던 어린 여자의 도움을 받아 유심을 교체하고.

"이거 30일 동안 쓰는 거야? 30?"

손가락까지 동원하여 한 달의 사용기간을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는다.

"이상하게 싸네!"

개통이 된 핸드폰으로 주변의 호스텔을 검색하고 이동한다. 러시아의 일반 호텔들도 몽골처럼 숙박비가 비싼 편이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데 30,000원 정도의 가격이다.

도로변의 호스텔의 가격은 700루블, 공용 욕실과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방에 패니어들을 옮겨두고, 샤워를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주변에 식당이 어디에 있어?"

식당을 물어보니 숙소 앞에있는 카페를 알려 주었지만.

문이 닫혀있다.

도로를 걸어가.

큰 슈퍼로 들어간다.

"일단 슈퍼마켓 구경을 하고."

넓고 쾌적한 슈퍼마켓은 우리의 마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슈퍼마켓을 한 바퀴 돌아볼 때쯤 탐스러운 각종 소시지들과 함께 치킨이 눈에 들어온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얼마야? 100루블이면 2,000원 정도?"

작은 닭다리를 모아놓은 팩과 큰 넓적다리 팩을 하나씩, 맥주 두 캔과 물을 사들고 바쁜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소는 이미 몽골에서 흔하게 본 터라 관심도 없고.

이상한 구름의 변화와 날씨 따위도 안중에 없다.

숙소의 부엌에서 살짝 렌즈에 돌리고.

"잘 먹겠습니다."

매콤한 맛의 닭다리와 큰 넓적다리를 시원한 맥주와 함께 흡입한다.

몽골에서 닭고기는 비싸기도 하지만 찾아보기도 힘들어, 가끔 쇠고기보다 비싼 파인애플 치킨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좋아!"

함께 사온 오이 피클 한 병을 다 비우며 치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울기를 떠나 굶주렸던 삼 일간의 허기가 사라지는 것 같다.

"러시아, 러시아까지 와버렸다."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는 경험은 생소하고, 재미있고, 부러웠다. 가상의 선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 인종과 언어는 물론 소소한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국가를 나누는 경계에 불과한 선을 두고 삶이 결정되는 선택의 폭과 조건들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 한편으로 부당하고 가혹해 보이지만 필요에 의해 선을 그은 것도 그들이며, 변화 발전의 몫도 그들의 것이다.

"국가라는 것이 다른 의미의 폭력이구나. 난 아나키스트는 아닌데."

그리고 또 한 번, 육로를 통해 자유롭게 대륙을 넘나들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몽골과 비슷한 환경이라 크게 실감이 나질 않지만 분명 이곳은 불곰의 나라 러시아다.

"자, 내일부터 밭을 매는 김태희를 찾아보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59일 / 맑음 ・ 24도
차간누르-울란바이신트
몽골여행의 마지막 라이딩, 국경까지 30km의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막연하고 막연했던 몽골의 여행이 끝나간다. 

이동거리
29Km
누적거리
10,906Km
이동시간
2시간 48분
누적시간
788시간

AH3
AH3
8Km / 35분
21Km / 2시간 15분
차간누르
비포장길
국경
 
 
2,724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아침에 일어나 출발을 서둘렀다. 차간누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작은 마을로, 국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없는 곳이다.

출발을 준비하는 나에게 자르갈이글은 환전을 해준다며 자신의 친구에게 가자고 한다.

"돈 없어. 은행 가야 해. 은행은 있어?"

"차를 타고 가면 돼."

"근데, 어떻게 환전해 줄 건데?"

200,000투그릭이 러시아 루블로 얼마인지를 묻자 핸드폰에 숫자를 보여준다.

환율기로 확인해 보니 15,0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얘가, 미쳤나."

너무 비싸다며 거절을 하고, 출발을 하려고 하니 어딘가 전화를 걸고는 어느 정도를 원하냐며 묻는다.

"1루블:40투그릭."

환율기에 루블과 투그릭의 환율은 1:41 정도다. 러시아에 도착해서 유심카드를 살 현금과 비상금이 있으면 좋겠다 싶고, 어린아이들이 많은 형편이라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는데.

자르갈이글은 현명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 것이다. 계속 비싸다고 하니 조금씩 가격을 높여 부른다.

"이미 늦었다."

자르갈이글이 여행자들을 상대할 생각이라면 욕심을 부려 한 번에 좀 더 큰 이득을 취하기 보다 여행자들의 마음을 얻어 작지만 안정적인 소득을 얻으려 해야만 한다.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오랫동안 여행을 하며 온갖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흥정을 하려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몽골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것 같다. '몽골인들은 사람을 속인다'는 지아오강강의 말처럼 악의적인 속임수는 없을지 몰라도 작은 것에 욕심을 내느라 큰 것을 손해 보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자르갈이글과의 만남은 안타깝다고 찝찝한 유쾌하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동안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사내 녀석이 영어로 인사를 하며 호객 행위를 한다.

"삼촌, 기분이 별로다. 가!"

복장과 짐들을 재정리 하는 동안 도로변의 슈퍼 같은 곳을 가리키며 가자고 한다. 어찌 됐든 아이들은 어른들을 닮아간다. 사내아이를 보면서 차간누르 사람들에 일상의 단면을 그려볼 수 있었다.

몇 km 정도 도로를 따라가고 아스팔트 도로는 끝이 난다. 25km 정도는 흙길을 따라 국경까지 가야 한다.

울기에서 사온 요거트로 아침을 대신하고.

흙길을 따라 울란바이신트로 향한다. 도로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달려와 초콜릿을 달라고 한다.

"뭐, 줄 것은 없고."

아이들의 외모, 특히 눈매 같은 것이 많이 다르다.

작은 하천이 나와.

자전거를 세우고.

세수와 양치를 한다.

울퉁불퉁한 흙길은 자꾸만 올라가는 분위기고.

잠시 도로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저 멀리 게르에서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오지 마! 사색 좀 하자."

두 남자아이가 와서 게르를 가리키며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한다. 거절을 하니 빤히 얼굴을 쳐다보고는 도로의 건너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 편에서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마치 고속도로 사고 현장에 달려드는 렉카들의 레이싱 같다.

두 아이들도 게르를 가리키며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한다.

남자아이들이 사라지고 말을 끌고 도착한 여자아이도 수줍게 같은 제스처를 한다.

"너 참 이쁘게 생겼다."

사진을 찍으니 여전히 수줍게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고, 사진을 보며 웃는 사이 말의 고삐를 놓쳤는지 말이 멀리 달아나 버린다.

말을 쫓아가는 여자아이 그리고 여자아이의 실루엣 너머로 또 다른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에잇. 뭐 하는 동네야. 애들한테까지."

좋은 풍경을 두고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작은 언덕을 지나 약간의 허기가 찾아들 때쯤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무슨 잠인데. 저 산 너머에 울란바이신트가 있나?

마을 초입에서 만난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까 조용히 지나간다.

슈퍼처럼 보이는 곳에 나무 의자가 있어 자전거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봐도 딱히 뭐가 없다.

"은행도, 식당도.. 아무것도 없냐?"

주머니를 털어 1,200투그릭의 주스를 사고 나니 400투그릭이 남는다.

나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니 얼굴이 검은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어디가?"

"카자흐스탄."

"잠 잘 때는 있어?"

"국경까지 갈 거야."

"여기가 국경인데. 저기!"

"뭐?"

구글맵을 확인하니 국경 검문소가 200미터 앞에 있다.

"여기가 울란바이신트야?"

"어, 므앙가니잠. 울란바이신트."

울란바이신트는 므앙가이잠으로 불리는가 보다. 5km 정도 더 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떨결에 울란바이신트에 도착했다.

"그나저나 여기가 끝이면 난감하네. 돈도 없는데."

"근데 여기 호텔이 있어?"

"어, 옆에 게르."

"얼만데? 돈이 없어."

"7,000투그릭."

"카드 돼?"

"아니."

주머니 속에 400투그릭을 보여주자 남자는 피식 웃는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오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슈퍼 옆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 허름한 식당의 후문으로 들어간다.

"오호, 여기에 식당이 있네."

남자는 식당의 여자에게 뭔가를 말하더니 여자와 함께 슈퍼로 가서 카드로 결제를 하라고 한다.

슈퍼의 주인과 뭔가를 말하고, 밥값까지 해서 20,000투그릭을 결제한다.

남자가 말하는 호텔은 넓은 게르다.

게르에는 남자와 함께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더 머물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남자들.

처음 말을 건넨 친구는 40살의 비꾸, 그리고 젊은 남자들은 26살 동갑내기 아스카와 아까.

약간의 보드카를 마시며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로 나온 만두를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아스카는 맥주만 마시는데도 힘들어하고, 아스카의 페이스북을 보며 머리가 길었던 아스카의 학생 때 모습에 깔깔거리며 웃는다.

핸드폰의 네트워크을 잡기 위해 도로변을 서성거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고, 비꾸 일행이 밖으로 나가자고 하여 따라 나간다. 차를 몰고 검문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차를 정차시켜 놓는다.

검문소의 앞에는 몇 대의 화물차가 정차를 하고 대기 중이다.

"어, 국경이 이렇게 생겼구나."

차를 세워두고 비꾸 일행은 길 건너편의 나무로 만든 집으로 걸어간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나무집의 한편에는 양들의 축사가 흙벽돌로 지어져 있고.

"비꾸, 여기 봐."

비꾸 일행은 난데없이 나무집으로 들어간다. 무전기를 찬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사내아이들이 집에 있다.

"무전기는 뭐야?"

"어, 나는 저기 국경에서 근무하는 군인이야."

비꾸 일행과 놀러 간 집은 국경 검문소에서 일하는 군인의 집이다. 수박을 내어주며 잠시 대화를 하고.

차를 정차한 곳을 둘러본 후 .

게르로 돌아온다.

저녁이 다가오며 국경을 넘기 위해 줄을 서는 차들이 제법 길게 늘어선다.

"비꾸, 왜 오늘은 국경이 닫혀있는 거야?"

일요일에는 국경이 쉰다고 한다. 그리고 나담이 시작되는 날에도 국경이 닫혀있을 것이라고 한다.

"국경도 쉬는 날이 있어? 날짜 맞춰서 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해가 지고, 국경에서 근무하는 군인이 보드카를 들고 게르로 놀러 온다.

자신을 몽골의 긴또깡이라 소개하는 남자 그리고 비꾸 일행과 함께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비꾸와 함께 주변에 있는 식당과 슈퍼들을 돌아다녔지만 살 수 있는 것은 우유차가 전부다. 빵과 함께 우유차로 늦은 야식을 먹고 골아 떨어진다.

몽골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굿나잇, 몽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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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58일 / 맑음 ・ 24도
울기-차간누르
몽골 여행의 끝이 다가온다. 울기에서의 짧았지만 달콤했던 휴식을 뒤로하고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이동거리
68Km
누적거리
10,877Km
이동시간
5시간 53분
누적시간
785시간

AH3
AH3
43Km / 4시간 42분
25Km / 1시간 11분
울기
정상
차간누르
 
 
2,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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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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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50G,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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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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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연락처
+976-9911-4119

 

날씨가 좋다. 하루를 더 머물까 생각했지만 몽골의 체류 기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질 않았다.

"아쉽지만 떠나야 한다."

패니어들를 정리하고 1층의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한다. 밖에 세워둔 자전거를 보고 바이크를 타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넘어온 스위스 남자가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여행을 했다는 남자와 짧은 대화를 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메뉴판의 그림보다 훨씬 그럴싸한 음식이 나온다.

"아니, 이런 게 왜 이제서야."

숯불에 구워 잡냄새도 완전히 사라진 고기는 푸짐하고 맛이 좋다. 몽골에서 먹는 제대로 된 마지막 식사일 것 같은데, 행운이다.

자전거를 끌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내 중심을 벗어나 조금 한산한 곳에서 잠시 쉰다.

후덥지근한 날씨의 답답함이 밀려온다.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출발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늦어졌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하루만 더 쉴까? 하루만 더 쉬었으면 좋겠다."

오후 3시, 울기를 떠난다.

작은 강을 건너 울기를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적해진 주변에는 작은 교회나 모스크 같은 것이 있고.

국경까지 99km를 알리는 이정표, 이 길을 끝으로 몽골의 여행이 끝난다.

울기를 벗어나며 긴 오르막이 이어지고, 그늘 하나 없는 직선의 도로가 이어진다.

멀리 울기의 모습이 보이고.

"잘 있어! 굿바이."

"덥다."

도로변을 따라 작은 아카시아꽃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고.

이름 모를 들꽃들만이 활짝 피어있다.

레츠비 하나를 꺼내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토바이 한 대가 서며 말을 건넨다.

짧은 영어를 하는 남자와 이국적인 외모의 조카, 차간누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다며 내일 놀러 오라고 한다.

남자가 주는 맥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아마도 내일쯤 차간누르에 도착할 것 같아. 지나가면 놀러 갈게."

구글맵으로 확인했던 갈림길이 나온다. 헙드에서 새로 생긴 도로를 찾지 못해 고생을 하여 차간누르로 가는 경로를 구글맵과 맵스미로 여러 번 확인을 해둔다.

구글맵은 오른편의 산길을 안내하지만 위성 지도를 보면 왼편으로 새로운 도로 같은 것이 보인다.

"역시 새로운 도로가 생겼군."

어느 쪽이든 2,500미터가 넘는 산길을 넘어가야 한다.

한 시간 동안 낮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고 저 멀리 산위 능선을 뚫어 놓은 듯한 하늘길이 보인다.

산의 능선을 넘는 길은 역시나 비포장도로로.

도로를 내려오는 차량들이 희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 온다.

"어련하겠어."

8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각, 자전거를 끌며 흙길의 정상에 도착한다.

차간누르까지 25km 정도가 남아있고.

뜨겁던 하루의 태양볕도 차즘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갈 길은 먼데 내리막 길조차 여전히 비포장도로다.

"몰라, 그냥 달리자."

4~5km 정도 내려가던 비포장도로는 생각지 못하게 포장도로 바뀌고, 시원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언더바를 잡고 몽골의 석양 속을 내달린다. 20km 정도의 거리를 해가지는 풍경을 향해 달려가고, 차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차간누르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 나타난다.

9시 반, 한 시간 반 동안의 즐거운 라이딩이다.

10시가 가까워져 차간누르의 마을 초입에 도착한다.

"이 근처에 누르과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했는데."

핸드폰을 들여보며 숨을 돌리는 사이,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서툰 영어로 인사를 한다.

도로변의 게르를 가리키며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한다며 말한다.

"슬리핑 앤 밋."

"밋?"

고기 식사를 준다는 말에 넘어가고 만다.

"얼만데?"

"20,000."

완전히 해가 떨어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머니 속에 남아있는 20,000투그릭을 확인하고 그를 따라가기로 한다.

도로변의 게르는 자신의 엄마 집이라며 자기 집은 마을 안쪽에 있다고 한다.

"얘가 말이 조금씩 바뀌네."

승용차를 따라 마을 안쪽에 있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간다. 피곤하여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어쨌든 안전하게 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저녁으로 몽골의 게르에서 먹는 맛없는 빵과 우유차만을 마신다.

"밋은 어디로 사라졌냐?"

어린 여자아이가 두 명 그리고 그의 아내는 만삭의 몸이다. 자르갈이글, 30대 초반의 남자는 핸드폰을 줘도 글자를 잘 못치고 오타를 낸다. 글자를 치며 그의 아내에게 철자를 물어보는 듯한 행동을 한다.

차간누르는 국경의 지역이라 여행객을 상대로 잠자리를 제공하거나 환전 같은 것을 하는데 익숙한 모양이다.

도로에서 만난 누르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된다.

"러시아 돈을 환전해 줄게."

"돈이 없다. 내일 은행에 가야 해."

러시아로 넘어가기 위해 추가로 현금을 찾지 않고, 남은 현금으로 이틀을 버틸 생각이었는데 20,000투그릭을 주고 나니 수중에 2,000투그릭 정도만이 남아있다.

카자흐스탄의 이글축제가 울기에서 열리는지, 자르갈이글은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어, 소개할 친구도 없다만 너는 말이 달라져서 안 되겠어."

이글 축제에 대해 길게 말하는, 소통이 어려운 자르갈이글과의 대화를 어렵게 끝내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이제 20km 정도만 가면 몽골의 국경 울란바이신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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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7일 / 맑음 ・ 20도
울기
만년설을 넘으며 뭉쳐버린 근육을 풀기 위해 울기에서 하룰를 쉬어 간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10,809Km
이동시간
0시 00분
누적시간
779시간

고기먹자
오!내사랑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울기
시내구경
울기
 
 
2,627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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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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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비가 내리고 하늘이 맑아진다.

아침 겸 점심으로 고기세트를 먹는다. 소, 양, 닭 등이 모두 들어간 메뉴인데 맛있는 것도 있고, 냄새가 강해서 먹기 힘든 것도 있다.

"고기가 좋으면 뭘 해, 요리 솜씨가 그저 그런데."

바베큐처럼 숯불에 굽거나 맛있는 소스로 스테이크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몽골의 음식들은 조금 아쉽다.

울기의 시내를 둘러보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 근처의 조금 큰 슈퍼에서 내일의 비상식을 준비하며 레츠비를 발견한다.

"오, 대박! 너만 있으면 돼."

멀리 구름 사이로 예쁜 무지개가 떠있고.

레츠비와 맥주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 넣어둔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조금씩 풀어진다.

"나는 너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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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6일 / 맑음 ・ 24도
보라트-톨보-울기
어제의 피곤함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산을 내려가 울기로 향해 간다.

이동거리
93Km
누적거리
10,809Km
이동시간
6시간 41분
누적시간
779시간

AH3
AH3
16Km / 58분
77Km / 5시간 43분
보라트
톨보
울기
 
 
2,627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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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망치로 얻어맞은 듯 쑤셔온다. 한 달 정도 자전거를 타지 않고 쉰 탓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휴식 후 화끈한 신고식의 여파가 밀려온 것이다.

패니어에서 근육 진통제를 한 알 꺼내어 씹는다. 효과 같은 것을 기대하진 않지만 그냥 '이것이라도 해보면' 하는 작은 몸부림 같은 것이다.

아침까지 내어주어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디리우칸에게 썬크림 하나를 꺼내어 선물한다.

"디리우칸, 일할 때 이걸 얼굴에 바르고 버프를 써."

검붉게 그을린 디리우칸의 아빠를 가리키며 웃자, 아이마랄이 가방에서 튜브식 썬크림을 하나 가져온다.

"맞아. 같은 거야."

디리우칸의 아빠는 아이마랄이 가져온 썬크림을 얼굴에 바르며 방긋 웃는다.

짐들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은 후 울기를 향해 출발한다. 디리우칸이 하수로를 건너는 때 도와줘서 쉽게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새로 공사 중인 도로는 매끈했지만,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아 차량의 통행을 막고 있다.

"아침부터 흙길을 달리기는 싫다."

개통이 안된 아스팔트를 독차지하고 길을 달렸다. 헙드에서 울기로 향하는 2,600미터의 고도는 아이마랄 게르를 조금 지난 곳의 고도다.

잠시 도로 공사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오고, 도로는 흙길을 돌아간다.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는 흙길을 오르다 다시 공사 중인 도로로 들어간다. 아직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도로지만 평평하게 다져진 길이라 괜찮다.

"혼나지는 않겠지?"

중간중간 공사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쳤지만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다. 공사 구간을 지나고 봉우리 사이로 산을 내려가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아, 드디어 내려가는구나."

긴 내리막 길을 내려오고, 약간의 평지를 내달려 만년설이 쌓인 고산의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어제의 목적지였던 톨보로 들어가는 삼거리의 안내판이 나오고, 톨보는 메인도로에서 많이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어 멀리 마을의 실루엣만 작게 보일뿐이다.

"어제 왔어도, 톨보에 들어가기는 힘들었겠네."

울기로 향하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톨보를 지나며 네트워크가 약하게 잡힌다.

"조금 쉬자."

평탄한 길이지만 어제의 피로가 느껴진다. 도로의 좌측으로 큰 호수가 나오고 길은 붉은색의 산을 향해 사라진다.

"그만 오르고 싶어."

날씨가 더워지고 햇볕이 따갑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붉은 산의 언덕 길을 오르지만 3km 정도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호수 주변으로 리조트 같은 것들이 들어서 있고.

다시 자리에 퍼질러앉아 허기를 채운다.

붉은 산을 넘은 후 몇 차례 오르 내리막이 반복되던 길은 10km 정도의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10km 정도의 긴 오르막을 올라간다. 경사가 높은 도로는 아닌데, 피곤한 몸과 더운 날씨가 너무나 지친다.

10km의 오르막이 끝나고 멀리 울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의 건너편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손짓을 하며 불렀지만 무신경하게 지나친다.

"힘들어. 할 말 있으면 네가 와."

이유 없이, 인사 없이 손짓을 하고 자전거를 멈추는 사람들을 대부분 도움이나 인사를 주려는 것보다 무엇을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다.

울기를 향해 내려가는 도로, 얼핏 헙드보다 커 보이기도 하고.

"드디어 도착했다."

천천히 시내 중심을 향해 들어가고, 울기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지만 헙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내에 나무가 많은 헙드에 비해 조금 황량한 느낌이고, 차량 통행이 많고 혼잡하다.

시내 중심으로 보이는 사거리의 건널목에 놓인 벤치에서 햇볕을 피하며 주변의 숙소를 검색한다.

"어, 사람들 생김새가 틀리구나."

자세히 보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외모도 달라 보이고,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옷차림도 조금 차이가 있다.

숙소를 검색하고,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핑크색의 호텔 겸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영어 할 수 있어요?"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온 호텔의 여자는 영어를 하는지 묻더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을 불러온다.

제법 영어를 잘 구사하는 딸 덕분에 쉽게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는 호텔의 창고에 보관해 둔다.

샤워를 하고 바로 식당으로 내려가 몽골 레스토랑에서 자주 먹었던 메뉴를 주문한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 넓은 몽골에서 밥 위에 케찹을 찍어놓은 건 똑같단 말이지."

작은 슈퍼에서 물과 음료 같은 것을 사 오고, 바로 기절하듯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55일 / 맑음 ・ 24도
에르덴부릉-보라트
만년설이 쌓여있는 2,600미터의 산을 넘어 울기로 향한다. 수직고도 1,300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이동거리
77Km
누적거리
10,716Km
이동시간
8시간 55분
누적시간
772시간

AH3
AH3
59Km / 7시간 00분
18Km / 1시간 55분
에르보
정상
보라트
 
 
2,534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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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거센 바람은 계속되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짐들을 정리하고 9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사라진다.

식당에서 어제와 같은 식사를 하는 동안 옆 테이블 앉아있던 일본인 노신사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온 중국인은 내게 중국 사람인지를 물어본다.

"암 코리안. 서롱고스. 한궈렌"

동시에 세 국가의 말로 답변을 한다. 멀리 만년설이 쌓여있은 관광지가 있어 투어링을 하는 외국인들이 있나 보다.

만년설이 쌓여있는 2,600미터의 Tsast Ula을 넘어 120km 떨어진 톨보까지 가야 한다.

그동안 2,500미터가 넘는 많은 산들을 넘었지만 오늘은 1,200미터의 높이를 한꺼번에 넘어가야 한다.

"꽤 힘들 거야. 그래도 만년설의 산이 궁금하네. 출발!"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의 정상이 보이고 길은 산을 향해 이어진다. 적당히 좋은 날씨와 바람이다.

도로변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의 작업자가 코리아를 외치며 손인사를 해준다. 중국도, 몽골도 사막화에 대한 걱정들이 있고, 방지 노력들이 눈물겹다.

특히나 몽골은 주변국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몽골의 정치 시스템은 아직까지 많이 후져 보인다.

도로변에 잠시 쉬며 주변의 둘러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노란색의 오토바이가 정차를 하고 말을 건넨다.

혼다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본인은 일본 특유의 억양으로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말을 한다.

울기를 지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간다는 아저씨는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쓰고이, 간바떼, 아리가또 등의 감탄사와 응원의 말들을 연신 말하고는 구뜨럭을 외치며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아리가또, 오지산!"

조금씩 경사를 더해가며 산으로 들어간다.

산에서 흘러오는 계곡물에 세수와 양치를 하고.

빈 생수통에 씻는 용도로 사용할 물을 담는다.

서서히 오르막의 길들이 이어진다.

도로변에 허름한 음식점이 보였지만 패쓰하고 얼룩덜룩한 검은 무늬의 산들을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아간다.

조금씩 더워지는 기온은 건조한 숨막힘으로, 그리고 강한 햇볕은 옷을 뚫고 따갑게 파고든다.

조금씩 페달링이 느려져 갈 때쯤 지겹도록 휘어지는 도로의 끝에 짚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뙤약볕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내 쪽을 응시하고 있다.

"차가 고장 났나?"

부부로 보이는 남녀와 중고생 또래의 두 여자아이 그리고 4~5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의 조그만 손에는 작은 콜라와 생수를 들려있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라는 손짓을 하더니 남자아이가 생수와 콜라를 수줍게 건네준다.

"오, 바에르사!"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여자아이는 한국에 꼭 가고 싶다며 영어로 말을 하고, 몽골의 자연이 어떠냐며 물어본다.

"하늘, 산, 구름, 별. 몽골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리고 너도 꼭 한국에 가보기를 바란다."

사진을 찍고 출발하려던 남자는 차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건네주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떠나간다.

열심히 손을 흔들며 밝게 웃는 여자아이들, 여유가 있고 즐거운 가족의 분위기다.

일본인 아저씨와 몽골 가족의 연이은 만남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더 길을 달린 후 도로변에서 점심을 한다.

시원한 생수와 콜라 그리고 헙드를 떠날 때 유나 선생님이 챙겨준 주먹밥.

하루가 지났지만 꽤 맛있는 점심이다. 점심을 먹는 도중 오토바이가 멈춰 서더니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옆에 앉는다.

"얘들아, 밥 먹을 때는 좀 지나가주면 안 될까?"

몽골어로 무언가를 묻더니 모기퇴치제를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안 돼. 한 번은 뿌려줄 수 있어."

밥 먹는 것을 민망하게 지켜보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작은 식당이 있는 곳을 지나고 크게 우회전을 하던 도로는 본격적을 산을 향해 올라간다.

"근데, 저 앞에 보이는 불안한 느낌의 흙먼지는 뭐지?"

멀리 오르막의 끝에서 차량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제멋대로 산길을 내려오는 것이다. 현재의 고도는 1,900미터, 앞으로 700미터나 더 올라가야 한다.

"설마 잠깐 공사 중인 것이겠지? 설마!"

차량들이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내려오는 모습들을 주시하며 쉬는 동안 말을 타고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말 걸기 전에 빨리 가야지."

아니나 다를까 말을 탄 목동이 출발을 하려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리어 패니어에 꼽혀있던 콜라를 가리키며 달라고 한다.

"뭐?"

이번에는 콜라를 마시는 시늉과 함께 꼴깍 꼴깍 소리까지 내가며 달라고 한다.

"이 염치도 없는 놈. 편하게 말을 타고 다니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음료를 뺏어 먹고 싶냐."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니 굵은 목소리를 내며 한 번 더 나를 부른다.

"됐어. 눈치까지 없는 놈."

몽골어가 된다면 아마도 '그 말을 주면 콜라를 줄게'라고 했을 것 같다.

역시나 도로는 막혀있고 양옆으로 차들이 만들어 놓은 흙길이 어지럽게 나있다.

"제발 짧게 끝내자."

바람과는 달리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끝없이 공사 중이고, 어지럽게 그려진 흙길을 골라가며 힘들게 페달을 밟는다.

"몽골아, 너에는 왜 꼭 산의 꼭대기에서만 이런다니."

거센 흙먼지를 날리며 화물차와 버스들이 지나다니고, 흙먼지를 피해 차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가면 호기심이 많은 운전자들이 나를 따라 오가며 흙먼지를 날려댄다.

"아오, 길도 많은데 꼭 옆으로 와서 먼지를 날린다니. 자전거에 짐 싣고 쓸데없이 산에 올라가는 사람 처음 봐?"

산을 향해 경사가 더 해지는 길도 끝이 없다. 그리고 산을 오를수록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이런 길로 600미터 이상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지?"

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것인지 흙길의 바닥면이 반들반들 깨끗하다.

3km의 거리를 이동하고 쉬어가기를 반복하고, 자전거를 타고 끌기를 반복한다.

"야기, 울기까지 거의 아스팔트라며."

몽골 사람들의 '거의'는 대체 어느 정도를 표현하는 단어일까.

"교장 선생님이면 뭐해. 결국 야기도 몽골 사람이었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부질없는 핸드폰만 쳐다보며 자전거를 끌고, 끌며 기어간다.

산의 정상에 올라온 듯 평탄한 지형이 나오고 멀리 크림 토핑을 올려놓은 것 같은 산의 꼭대기 만이 살짝 시야에 들어온다.

"에씨, 멋진 장관도 없고. 근데 왜 아직 300미터가 남은 거야?"

짧은 내리막길 너머로 다른 봉우리를 향해 크게 좌회전을 하며 길이 사라진다.

"저기가 끝인 모양인데, 이제 골반까지 뒤틀린 듯 아프다."

"고작 이 정도야? 만년설의 장관은 어딨어?"

언제 패니어에 들어갔는지 모를 사탕을 꺼내 먹고.

"에씨, 발!"

산의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자전거를 끌러 보지만.

2미터, 3미터를 이동하기가 힘들다.

겨우 오르고 올라 도착한 정상에는 휑하니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어붜조차도 없다.

멀리 반대편에서 화물차들만이 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느리게 느리게 기어 올라온다.

"몇 미터야? 2,516미터? 100미터는 어디 갔어?"

"분명 여기가 정상인데!"

사라진 100미터로 인해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든다.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요란스러운 내리막을 내려가고, 땅이 평평해질 때쯤 자리에 서서 고도를 확인한다.

"족히 4시간을 기어올라 온 것 같은데 겨우 100미터 내려오고 끝난 거야?"

계속되던 흙길은 끝내 자갈밭으로 변하여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버리고.

헛된 바람에 대한 포기와 체념의 득도를 깨우칠 때쯤 몽골 사람의 '거의'라는 표현에 부합되는 '잠시'의 도로 공사 구간이 끝난다.

"도로에 흙이 쌓여있는 곳에서 잠깐만 돌아가면 거의 아스팔트야. 울기까지 길 좋아!"

울기까지의 도로 상황을 물었을 때 야기는 새로 생긴 도로에 대한 자부심을 표하듯 밝게 웃으며 말했었다.

"야기, 고마워. 오늘 거의 죽을뻔했어."

하지만 불안하다. 산을 내려온 150미터까지 해서, 사라진 250미터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GPS가 장난으로 농담을 할 일도 없고."

해는 저물어 가고 톨보까지는 너무나 길이 멀다.

야영을 할 게르를 찾으며 도로를 따라간다.

하루 종일 산길을 오르고, 끌었던 골반과 종아리가 뻣뻣하게 굳으며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고.

도로를 따라 멀리 만년설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체력은 떨어지고 페달링은 한없이 무겁다.

그리고 어둠과 함께 사라졌던 250미터의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거였어!"

더는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도로변 멀리 몇몇 채의 게르를 지나치고, 최대한 가까운 곳의 게르를 찾다가 핸드폰의 메시지 알람이 울리는 곳에서 자전거를 던지듯 눕혀버린다.

"못 가, 안 가!"

새로 생긴 도로는 초원과의 경계에 굵은 돌들을 깔아 하수로를 만들고 있다. 차들이나 오토바이가 들어갈 수 없게 흙을 파놓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완전히 분리를 시켜 차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변에 퍼질러 앉아 있으니 돌들을 깨서 모양을 잡고 하수로를 만들던 세 명의 남자가 작업이 끝난 듯 내 쪽으로 다가온다.

꼼작도 할 수 없고, 산에서 먹은 콜라와 단 사탕 때문인지 내장까지 저려온다.

"게르 옆에 텐트 좀 치고.."

번역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게르를 가리키며 가자고 한다.

깊은 높이의 돌로 만든 하수로는 아니지만 패니어들을 떼고 옮기는 것이 끔찍하다.

재차 게르를 가리키는 남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하며 뜻을 알아들었다는 '오케이'만을 반복한다.

노란 렉팩을 떼어내고 돗자리와 수면매트를 떼어내고 있으니, 안 되겠다는 듯 두 명의 남자가 하수로를 건너오더니 패니어를 단 자전거를 번쩍 들고 건너편으로 옮겨버린다.

"햐. 땡큐! 바에르사!"

게르 옆에 텐트를 치겠다고 말했지만 게르 안으로 들어와라고 한다. 게르에는 중년의 부부와 20대 초중반의 남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있다.

게르를 둘러보며 앉아있으니 여자아이가 '워시 페이스'라며 영어를 한다. 주전자로 따듯한 물을 부어주어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저녁으로 고릴테슐을 내어주어 허기를 채우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아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조금의 영어를 할 수 있어 소통은 할 수 있다.

만년설의 산들에 둘러싸인 보라트에서 도로의 하수로 작업을 하고 있는 디리우칸과 아이마랄 남매의 게르이다.

남매의 엄마는 머리에 두건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고, 아빠는 40대 중반처럼 보인다. 디리우칸은 착하게 잘 생겼고, 아이마랄은 상냥하고 잘 웃는다. 카자크 사람처럼 보이는 외모인데 아마도 방학이라 부모님의 게르에 와있는 모양이다.

잠시 게르 주변의 남자들이 큰 맥주를 들고 와 이야기를 하며 가끔씩 맥주를 따라주고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간다.

자전거를 게르 안쪽으로 집어넣고, 침낭을 꺼내어 게르에서 잠이 든다.

"야기,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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