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5일 / 맑음 ・ 22도
인야-옹구데이
아름다운 카툰강을 따라 옹구데이로 향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알타이 공화국의 자연이다.
일찍 잠에서 깨었다. 게무진의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오토바이의 체인으로 만들고 있던 용의 날개를 붙이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패니어를 장착하고 게무진의 집을 나선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제의 음식점에 들렀지만 영업 전이고, 비상식을 사기 위해 슈퍼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다.
"난감하네. 좀 기다렸다 갈까?"
9시가 넘으면 가게들의 문이 열릴 수도 있겠지만 뭔가 귀찮다. 구글을 검색하니 30km 거리에 마을이 검색된다.
"30km, 가자! 식당 하나쯤 있겠지."
인야를 벗어나 거북손 모양의 산을 바라보며 패니어에 들어있던 바나나와 웨하스로 아침을 대신한다.
"웨하스는 러시아지."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출출함을 달래고 길을 떠난다.
아무것도 없었던 강변의 작은 마을을 지나.
절대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소들을 지나니.
카툰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하천 주변으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좋은 곳이 여기에 있었네. 아쉽다."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은 여전히 계속되고, 날씨는 더워져 간다.
폭이 좁은 러시아의 도로는 몽골의 도로와 비슷한 느낌이다. 도로의 폭과 상태, 이정표까지 몽골의 도로들이 러시아의 형태를 따라 했거나 러시아에 의해 건설되었을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몽골 도로의 갓길에 세워진 동물의 통로를 알려주는 볼링핀 모양의 안내석이 없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정차하고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바닥에 앉아 쉬어간다.
나의 주변을 살피던 젊은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통신이 끊겨 번역기를 사용할 수은 없었지만 명함과 여행 경로를 보여주며 짧게 인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여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헤어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러시아의 휴가철인지 카툰강을 따라 캠핑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야영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중국과 몽골을 지나며 잠자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먹거리만 해결된다면 편안한 곳에 텐트를 쳐도 문제가 없겠네."
11:30분, 아침에 검색되었던 마을에 도착한다.
"아휴, 배고파."
어제부터 달려온 도로는 9~10%의 경사도의 짧은 오르막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안내판들에 위너님의 말처럼 총알구멍 같은 것이 뚫려있다.
"총알 구멍일 리는 없고 뭐지?"
힘들게 업힐을 하고 나타난 마을에는 슈퍼나 음식점이 보이질 않는다.
"식당이 어디에 있는 거야?"
러시아의 마을마다 1940, 1945년이 적혀있는 작은 추모공원 같은 것이 하나씩 있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공원인 것 같다.
버스 정류장 근처의 작은 슈퍼에서 시원한 콜라를 사 마시고, 앞쪽으로 보이는 도로변에 음식점으로 보이는 현수막 간판의 그림들이 보인다.
음식점으로 보이던 곳은 슈퍼다. 슈퍼에 들어가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망했다."
슈퍼를 둘러봐도 딱히 요기를 할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담배를 사던 중 코쉬아가츠에서 사 먹었던 크림빵 한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산골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조용하고 너무 조용한 곳의 생활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욕심 없는 자연의 삶일까, 무료한 일상의 반복일까.
달콤한 크림빵을 하나씩 비워가는 동안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다가와 뭔가를 말하며 박력 있게 악수를 청한다.
돈이나 물건 같은 것을 요구하던 몽골 사람들의 대면이 불편했다면 러시아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은 인사처럼 편안하다.
도로변의 수돗가에서 물을 채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 저렇게도 식수를 수급하는구나."
빵을 먹는 동안 태극기를 붙인 오토바이를 보고 손을 들었지만 손인사의 답례를 하며 그냥 지나쳐 간다. 자전거에 달린 태극기를 보고 바이커 역시도 놀란 몸짓이다.
"오토바이인데, 잠시 쉬었다 가지."
마을을 지나 길은 조금씩 오르막이 계속되고, 계곡은 반대편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다시 올라가는 건가?"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질 때쯤 반대편 방향에서 자전거를 탄 세 명의 여행자가 내려온다.
"하이"
자전거를 멈추고 세우는 동안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스페인의 알바와 프랑스의 토마스는 연인 사이처럼 보이고, 러시아 친구는 어제 라이딩을 하면서 만났다고 한다.
알바와 토마스는 유럽에서부터 11개월 동안 여행을 하고 있고, 러시아의 친구는 러시아를 종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쾌활한 성격의 알바는 내게 러시아 비자 기간을 묻더니 자신들은 10일 동안의 비자라 하루에 100km가 넘게 라이딩을 하며 몽골로 가고 있다고 한다.
"이쪽으로 가면 업힐 후에 내리막이야."
"그래? 너희들은 국경까지 계속 업힐이야. 2,000미터까지 올라가야 해."
"500km 정도 거리에 한국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어. 카자흐스탄을 지나 러시아로 갈 거래."
"500km 앞에?"
각자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고 바쁜 알바 일행과 헤어진다.
지금까지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모두 중국이다. 이럴 땐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육로를 통해 한국에 갈 수 있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분명 중국이 아닌 한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유럽의 여행 경로에서 섬나라인 영국을 경유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궁금하지만 건너가기 귀찮은 섬나라, 비싼 물가 그리고 좁은 땅.
"한국 좋은데."
씩씩한 알바가 앞장을 서며 길을 떠나고.
나의 길은 알바의 말처럼 산을 향해 오르막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너를 넘어가야 하나보다. 딱, 미시령 사이즈 같은데."
"이 정도면 논스톱 원킬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이다."
S자를 그리며 휘어지는 오르막을 소처럼 페달을 밟고.
40분 만에 산의 정상에 도착한다.
"뭐야, 전망이 뭐 이래. 아무것도 없잖아."
맥주 한 캔을 마시기 위해 고개의 건너편으로 넘어가자 차량들이 정차되어 있다.
산의 정상으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이 나오고.
주차장 한편에서 숯불구이의 고기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혼미한 정신으로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치집으로 다가가 자전거를 던졌버린다.
"얼마야?"
"250루블"
"빨리 줘! 어서!"
두툼한 고기를 접시에 담고 오이와 양파를 얻어주는 동안 패니어에 들어있던 캔맥주를 부들부들 거리며 꺼낸다.
"와우!"
캔 맥주를 따자 꼬치를 굽던 젊은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와우! 죽인다!"
비록 미지근한 맥주지만 그 맛이 끝내주고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이다.
"상의는 온통 땀에 전 소금밭이지만 무슨 상관이냐. 지금이 천국이지."
순식간에 맥주와 고기를 비우고, 부족한 고기의 양에 입맛이 다셔지지만 250루블이 비싸게 느껴진다.
과거 탄광촌이거나 도로를 건설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인 듯싶다.
산을 넘어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다시 강을 따라 길은 이어지고 태양빛은 뜨겁기만 하다.
산길을 오르며 탱탱해진 허벅지의 뻐근함을 느끼며.
작은 갈림길을 지나 오늘의 도착지 옹구데이에 도착한다.
강을 따라 길게 들어서 있는 옹구데이.
말들과 양들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들어가고.
도로 건너편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옹구데이의 모습이 소박하다.
"일단 슈퍼를 찾아야 하는데."
도로변에는 식료품 가게가 검색이 되질 않고 강 건너의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 밑의 마을을 향해 들어갔다.
보드카가 엄청나게 진열된 슈퍼에서 탄산수를 사 목을 축이고.
그늘에 기대어 앉아 더위를 가라앉힌다.
한참 동안 땀을 식힌 후, 슈퍼에 들어가 빵과 맥주, 물과 음료 그리고 닭고기 그림이 그려진 통조림 캔을 사든다.
마을 앞의 강물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즐기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차도를 점령한 소들을 피해서 야영을 할 장소를 찾으며 길을 따라간다.
잠시 후 강변을 향해 차량들이 들어가는 흙길을 따라 들어간다.
강변의 근처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캠핑장처럼 보이는 곳이 나오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작은 나무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숲에서 산책을 하며 거닐고 있다.
캠핑장 입구의 관리 사무실의 할머니에게 텐트를 칠 수 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본다.
"300루블."
밖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캠핑장으로 끌고 들어오자 젊은 러시아 부부가 다가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여기에 텐트를 치고 자고 싶어."
영어를 하는 금발의 여자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300루블이라며 알려준다.
"응. 알아."
"어디서 왔어?"
"한국, 자전거 여행 중이야."
명함을 꺼내어 건네주니 놀란 표정을 하며 무언가를 할머니에게 말하며 대화를 한다. 할머니에게 주머니의 돈을 꺼내어 보여주니 젊은 여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잠시 주저하더니 300루블을 가져간다.
"그녀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네가 돈을 꺼내니 요금을 받아버렸어. 편한 곳에 텐트를 치면 된다고 해."
"괜찮아. 고마워."
아마도 그녀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 요금을 받지 말라고 할머니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있으니 예쁜 꼬마와 함께 샌드위치와 차를 들고 그녀가 찾아온다.
"오, 땡큐."
빠르게 텐트를 치고.
강으로 내려간다.
시원한 강물로 땀을 씻어낸 후 발을 담그고 자리에 앉아 쉰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가 풀어지는 것 같다.
"할매, 웃어봐!"
캠핑장 곳곳에 간이 세면대가 나무에 꼽혀있다.
저녁으로 젊은 여자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먹는다. 빵에 치즈 같은 것을 바르고 햄을 올려놓았을 뿐인데 썩 괜찮다.
"오호, 이렇게 먹으면 되는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텐트에 누워 쉰다.
알바가 준 명함의 블로그를 구경하고 있으니 젊은 여자의 남편이 다가와 '똑똑' 소리를 낸다.
그는 큼지막하게 썰어낸 수박을 들고 와 건네주고 돌아간다.
노을이 지는 동안 잠시 캠핑장과 강가를 산책하고.
라디오를 켜고 다시 자리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10시 30분쯤, 두 젊은 부부가 텐트로 찾아와 샐러드와 고기 그리고 여러 가지 과자를 건네준다.
"어, 잠깐만."
몽골에서 사두었던 게르 모양의 냉장고 자석을 꺼내어 부부에게 선물을 한다.
"몽골 여행 중에 산 거야."
아이와 놀고 있던 부부 가족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고, 그것을 지켜보며 시간의 흐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러시아의 여행이 시작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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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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