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승쳉겔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먹는 것이 부실한 탓인지, 그동안 바람을 이기며 온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식당의 주인 남자는 손재주가 제법 있는 모양이다.
어제 먹었던 음식을 다시 주문하고, 러시아와의 국경이 있는 울기까지의 경로를 확인한다.
처음의 경로였던 울란곰을 거쳐 울기로 가는 길은 850km 정도이지만 비포장도로라고 한다.
울란곰에서 헙드로 내려가 울기로 가는 길은 1,000km의 거리, 울리아스타이와 알타이를 거쳐 헙드와 울기로 이어지는 길도 대략 1,000km의 거리이다.
"일단 울란곰으로 가서 울기로 향하는 도로의 상태를 다시 알아보고 결정하자."
어느 쪽을 선택하든 국경까지 15일 정도는 소요될 것 같다.
"알타이 쪽으로 가 볼까?"
크고 작은 마을들이 일정하게 들어선 알타이를 지나는 몽골 동남부의 도로도 괜찮을 것 같다. 먹는 것에 대한 부족함이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잠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식당 아주머니의 음식이 입맛에 맞는 이유가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맛이 나고, 고기를 기름에 볶아서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부산에서 살고 있는 시누이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 위해 슈퍼에 넣어둔 자전거를 꺼내며 기분이 약간 상한다. 열쇠로 감긴 슈퍼에 넣어둔 자전거의 가방들이 뒤적거려진 흔적이 느껴진다.
아마도 호기심이 많았던 주인 남자가 핸드폰 가방 등을 조금 뒤적거려 본 것 같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퍼를 잠그고 패니어에 들어있던 노트북을 확인하고 자전거를 꺼낸다.
중국과 몽골의 차이점 중에 하나는 몽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자전거나 여행 물품에 대한 분실을 걱정했던 중국은 길거리에 자전거를 놓아두어도 전혀 만지질 않는다. 그리고 패니어를 단 자전거에 대한 호기심이 많지만 주변에 서서 구경만 할 뿐, 들어 보라 하여도 좀처럼 만지거나 하질 않는다.
그에 비해 몽골은 자전거에 넣어둔 먹다 남은 물병 같은 것도 빼서 가져가 버린다. 자민우드의 첫날, 밖에 세워둔 자전거에서 아무 필요도 없는 액션 카메라의 브라켓이 사라졌고, 토승쳉겔에서는 숙소 안에 넣어두었던 자전거의 물병이 사라졌다. 몽골을 여행하며 카메라는 패니어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다.
선교사님은 몽골 유목민족의 독특한 공유 문화 때문에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그저 현대 사회에 맞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적 장치 같은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몽골을 여행하며 가장 좋은 날씨인 것 같다. 바람이 조금 불어오지만 따듯해진 날씨에 땀을 식혀주는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다. 토승쳉겔을 떠나 2,000미터의 산을 넘을 뒤로 계속 이어지는 평지의 길이지만 페달링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네."
라이딩 중 울렸던 핸드폰은 오초르의 전화다. 한 시간을 달리고 쉬는 동안 오초르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오초르와 싸비, 울란바토르, 울란곰 등의 말뿐이지만 웃으며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다.
"오초르, 이제 끊어! 페이스북 메신저! 알지?"
오초르의 와이프에게 메신저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 속에 평탄한 초원의 길은 눈이 덮인 산들을 향해 이어진다.
"아무래도 저 산들을 넘기 전에 넘루그로 회전을 하나 보다."
전혀 풍경의 변화가 없는 길을 달리고 패니어에 넣어둔 카스테라 빵을 꺼내어 먹는다. 아침밥을 먹은 지 두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입이 심심하게 느껴졌다. 몽골의 빵은 정말 달다.
"중국의 3위안짜리 골라 먹는 빵이 먹고 싶다."
넘루그로 향하는 오른쪽의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속도를 낮추며 길을 확인을 하지만 나타나야 할 우측 교차로의 길이 보이질 않는다. 앞쪽으로 보이는 우회전의 길이 넓게 회전을 하는 도로인가 생각하며 길을 따라간다.
2km를 이동하고 구글맵을 확인하니 넘루그로 가는 교차로를 이미 지나쳐 있다.
"대체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뭐야?"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 더 앞으로 나가니 삼거리처럼 보이는 곳에 식당으로 보이는 작은 집이 있다.
"저기가 삼거리 교차로인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언덕에는 새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바닥 공사를 하고 있고, 넘루그로 가는 도로 같은 것은 보이질 않는다. 자전거를 눕히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핸드폰을 보여주며 넘루그로 가는 길을 물어본다.
"3km, 78km!"
남자는 내가 지나온 방향의 흙길을 가리키며 3km를 가서 작은 집이 나오면 우측 길을 따라서 70km를 가라고 알려준다.
"포장된 도로야? 아스팔트?"
일을 하던 세 사람이 동시에 아니라며 흙바닥을 가리킨다.
"망했네!"
어제 지나쳤던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의 흙길, 그리고 이곳의 교차로에서 이어지는 길도 흙길이다. 결론은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 가는 모든 길은 초원의 흙길인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며 만들어진 초원의 흙길은 딱딱하게 좋은 길들도 있지만 흙모래가 덮여 자전거로 지나다니기 힘들 길도 있어 피하고 싶다.
"이정표도 없는 흙길을 따라서 어떻게 따라가라는 말이야!"
허탈하게 웃고 있으니 남자는 내가 따라왔던 포장도로를 가리키며 '아스팔트'라고 알려준다.
"울리아스타이, 알타이 아스팔트?"
남자는 알타이를 말하며 다시 바닥에 280km를 적고, 울리아스타이를 말하며 80km를 적는다. 구글맵에는 울리아스타이까지 작은 길로 이어지지만 도로의 표시는 아니다.
"울리아스타이, 아스팔트?"
울라이스타이까지 포장도로인지 재차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넘루그로 가는 흙길을 가리키며 손으로 X자 표시를 한다. 넘루그까지 흙길 그리고 울란곰까지의 도로도 확인이 안되니, 차라리 200km를 돌아가더라도 알타이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 울란곰의 큰 호수를 못 보는 것은 아쉽지만 몽골의 서남부 쪽을 여행하는 것도 괜찮잖아!"
몽골에서 무용지물이 된 구글맵이 지금처럼 계속 틀렸기를 바라며 포장된 도로의 거리 이정표를 확인하며 울리아스타이로 길을 향한다. 78km 정도의 거리이니 5시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5km를 조금 지나 약간의 언덕길을 오르던 길은 정면으로 높은 산들을 앞에 두고, 멀리 보이는 아스팔트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왜 멀쩡한 길을 놔두고 차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거지?"
산이 시작되는 곳에서 포장도로는 공사 중으로 끊겨있고, 도로의 옆으로 차들이 다니며 만들어 놓은 초원의 흙길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설마? 아니겠지!"
도로 공사로 인해 잠시 길이 끊겨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방향만 같을 뿐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그려진 초원의 흙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난감하기 그지없는 작은 개울을 만난다.
작은 돌들을 밟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자전거를 억지스레 끌고 개울을 넘는다.
"괜찮아, 곧 좋은 길이 나올 거야!"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을 낑낑거리며 지나치고.
멀리 도로를 향해 빠져나가는 승용차의 뒷모습이 모습이 보이고, 어지럽게 그려진 초원의 길들이 도로를 향해 모아진다.
"살았다. 끝났나 보다!"
초원의 흙길을 벗어난 곳에는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고, 울리아스타이로 가는 길은 언덕을 향해 비포장길이 길게 이어진다.
"아, 이런 아쓰발...트!"
초원을 향해 말과 오토바이를 타고 아무렇게나 달리는 몽골 사람들에게 비포장도로는 좋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몽골 사람들을 만나 가는 곳의 목적지를 말하면 그들은 먼저 그곳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준다. 예전의 시골 어르신들이 옆 마을까지의 거리와 길을 꿰뚫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 길로 얼마를 가라고 알려주지만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길인지는 고려하지 않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길로 70km를 가야 한다는 말이지!"
울퉁불퉁 상태가 좋지 않은 비포장길은 오전내 바라보며 달려왔던 눈이 덮인 산을 향해 올라간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차량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며 차량을 세운다.
건장한 세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내리면서 인사를 하고,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술이 취하지 않는 몽골인들은 그냥 사람에게 호감이 많은 사람들로 보인다.
"Do you drink?"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묻던 남자가 마실 것을 주려는지 묻길래 맥주가 있느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자기는 술을 안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커다란 생수병을 건네주고 인사를 하며 가버린다.
"고맙긴 한데. 이건 짐이야!"
2~30분에 한 대 정도 지나치는 차량들은 나를 향해 인사를 하거나 속도를 줄이고 구경을 하며 지나간다. 자전거로 몽골을 달리는 사람도 보기 힘들겠지만 비포장의 산길을 패니어를 잔뜩 달고 오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날 죽여라. 몽골아!"
"아무래도 저 눈 덮인 산을 기어이 오르고야 끝이 나겠어! 오늘의 2,000미터는 너란 말이지!"
조금씩 허기가 지고 힘이 떨어지는데 패니어에 든 카스테라 빵을 먹고 싶지 않다.
"맥주 한 캔만 시원하게 먹었으면 좋겠다."
끝없이 이어지며 겹겹으로 싸여있던 산들이 사라지고 눈 덮인 하나의 산만이 남아있다. 큰 고갯길을 넘는 곳에 정차하고 서있던 화물차량의 운전기사가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
"울리아스타이!"
"몽골에 언제 왔어?"
"1월에, 중국에서 몽골로 왔어!"
남자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웃더니 화물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자는 제스처를 하며 웃는다.
"울리아스타이 멀어! 여기서 60km는 가야 돼!"
"60km? 길은?"
"똑같아! 알타이까지 똑같아!"
"뭐? 알타이까지?"
구글맵을 보면 울리아스타이는 제법 큰 마을처럼 지도가 넓게 나타난다. 산을 넘으면 큰 마을의 울리아스타이 그리고 알타이까지 포장도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다.
"완전 망했어! 하하하하"
산의 계곡을 따라 크게 회전을 하며 돌던 길은 하늘을 열어놓고.
S자로 휘어지며 올라간다.
"야! 그만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자전거를 끌며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산의 꼭대기에서 느리게 내려오는 차량들이 하나둘 곁을 지나치고.
비포장길이 시작된 지 3시간 30분 만에 20km를 낑낑거리며 2,400미터가 넘는 산의 정상에 오른다.
산의 정상에 쌓여있는 커다란 어붜를 돌며 차들은 크락션을 울리며 지나간다.
저녁 6시, 해가 지려면 3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만 한다.
"정말 힘든데, 이 이유 모를 성취감과 만족감은 도대체 뭐야!"
울리아스타이까지 이어질 산길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오줌을 싸주고.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는 내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계곡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산길은 끝없이 내려가고.
족히 1미터가 넘어 보이는 두께의 얼음들이 무너지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계곡길을 따라간다.
휘어지고 휘어지는 산길은 내려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산을 오르며 힘이 빠진 다리로 페달을 지탱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덜컹거리는 자전거에 흔들거리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야! 내장까지 흔들거려서 아프다. 고만해라!"
8시가 넘어가며 구글맵상에 도로로 표시된 곳까지 내려왔지만 화물 기사의 말처럼 계속되는 비포장도로의 흙자갈길이다.
"구글맵, 넌 이 길이 도로로 보이니?"
여전히 울리아스타이까지의 거리는 많이 남아있어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해야만 한다. 오른쪽은 높은 산들로 막혀있고 왼쪽은 계곡이 흘러가는 곳이라 눈에 보이는 게르들은 도로와 너무나 많이 떨어진 곳에 있다.
작은 언덕조차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못할 만큼 다리에 힘이 떨어진다.
"더는 못 가! 안 가!"
해가 지는 산의 언덕 위로 물끄러미 쳐다보는 말들에게 괜스레 시비를 걸어보고.
"뭘 봐! 자전거 타는 사람 처음 봐?"
주위를 둘러보던 중 멀리 산의 중턱에 게르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끌고 게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밤이 되어 양과 염소들이 집으로 모여들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람을 불러봐도 인기척이 없다. 살짝 게르의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게르 안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껏 봐왔던 마을의 게르들과 달리 어수선하고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모양새다.
게르의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텐트를 칠 수도 없어 자전거에 기대어 쉰다. 9시가 되며 천천히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딜 간 거야? 설마 울리아스타이에 술 먹으러 나간 것은 아니겠지?"
10여 분 정도가 흐르고 말과 소들이 게르로 돌아오고, 멀리에서 소를 모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게르 가까이 소를 몰고 오던 남자는 오토바이를 몰고 게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검붉게 탄 얼굴이지만 20대 초중반의 앳돼 보이는 얼굴의 남자이다.
"샌 베노. 비 서롱고스!"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게르 옆에 텐트를 쳤던 사진을 보여주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게르로 들어가자며 안내를 하고 우유차와 함께 몽골의 작은 빵은 내어준다.
양과 소를 치는 게르에는 마을의 게르들과 달리 가구들이나 침대가 없이 여기저기 물건들이 놓여있다.
무언가를 해겠다며 말하고 나간 남자는 소들의 무리에서 새끼들을 잡아 울타리 안의 줄에 묶어두느라 소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새끼들을 묶어두어 어미들이 멀리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통신이 되지 않으니 물어볼 방법이 없다.
해가 져서 어둠이 찾아오는 동안에도 남자는 소와 양들을 관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남자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싶지만 산길을 넘어오느라 피곤하여 텐트를 치고 안으로 들어가 눕는다.
울란곰까지 60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작은 식당의 넓은 간의 침대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 어제의 피로가 많이 사라진듯하다.
정말 얄궂은 몽골의 날씨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지독했던 어제의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밝다.
"이곳에서 하루 정도 머무를까?"
술을 팔지 않는 작은 식당은 깔끔하고 음식 맛도 괜찮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구글맵을 확인하니 토승쳉겔(Tosontsengel,Тосонцэнгэл)을 거쳐 넘루그(Numrug, Нөмрөг)까지 150km 정도의 거리다.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 100km 정도의 거리에 작은 마을조차 지도상에 보이질 않는다. 날씨와 바람을 생각하면 하루에 가기에는 어려운 거리다.
"토승쳉겔까지 가서 거리를 줄여놔야겠네."
침낭과 패니어를 정리하고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던 앞브레이크를 정비하며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만둣국을 주문한다. 몽골의 작은 식당들은 화로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20분이 조금 넘어 만둣국이 나오고 따듯한 우유차와 함께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만둣국을 먹고 있으니 여자 주인은 육수를 한 그릇 가득 담아내어준다. 제법 음식 솜씨가 좋은 가게이다.
몽골 여행의 어려운 일들 중 하나는 음식인 것 같다. 식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몽골에서 변변하게 먹을 음식을 찾기가 힘들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니 10시 30분이 되어 출발을 한다.
작은 바람만이 느껴지는 화창한 날씨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가볍게 달려간다. 등쪽으로 떨어지는 따듯한 햇볕이 이내 몸을 덥히고, 라이딩의 가벼움은 140km 거리의 넘루그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을 만들어 낸다.
"무리겠지? 날씨가 너무 아까운데, 이런 날 많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제 타르바가태(Tarvagatai, Тарвагатай)를 넘은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초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악지대의 모습에 가깝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들과 바위, 돌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이흐울을 6~7km 정도 벗어나니 다시 통신은 완전히 끊겨버리고 화창했던 하늘을 두꺼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다시 조금씩 바람이 일며 이흐울의 따듯함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풍부한 강줄기는 멋들어진 곡선을 그리며 계속 이어지고,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토승쳉겔 방향의 하늘이 어둡게 변해있고 눈을 흩뿌리는 듯한 풍경이다.
강물을 따라 휘어지고 작은 언덕들이 연이어지는 길에서 쉽게 지쳐간다. 아무래도 어제의 피로가 쌓여있는 것 같다. 멋들어진 바위들이 솟아오른 산 밑에서 잠시 쉬어간다.
"40km 정도조차 쉽게 보내주질 않는구나."
좌우로 불어오며 진눈깨비를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느릿느릿 도로를 따라가다 내 앞에서 멈춰 선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를 만난다. 울란바토르에 간다는 남자와 인사를 하고 뭔가 대화를 이어가려 해도 네트워크가 끊겨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헬멧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헬멧을 벗으니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여 멋은 낸 청년이다.
멋쟁이 남자와 짧은 만남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연이어지는 오르막과 거세지는 바람이 자전거를 다시 멈춰 세운다.
"얼마큼 온 거지? 15km, 20km 정도 남았나?"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에도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있어 산들이 표범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한기가 밀려든다.
"가자. 3시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지 뭐."
해발 2,500미터의 타르바가태 산을 넘고 1,500미터의 이흐울까지 갑작스레 고도가 떨어지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듯 페달링을 힘들게 한다.
언덕과 언덕으로 이러지던 길의 큰 고개를 오르니 바람이 잦아들며 하늘빛이 밝게 변하고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15km 이상은 더 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토승쳉겔의 모습이 직전 도로의 끝에 보이기 시작한다.
"오호, 다 왔다!"
고갯길의 내리막을 달려 길은 눈앞에 보이는 토승쳉겔의 방향으로 이어지질 않고 우회전을 하며 높은 언덕길 위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왜?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빙 돌아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야?"
"정말 올라가기가 싫어진다."
2시가 조금 넘어 토승쳉겔에 도착한다. 언덕 밑으로 제법 많은 집들이 넓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호텔! 씻을 수 있을까?"
체체를렉의 페어필드에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10일 가까이 양치만을 하며 살았다. 두건을 쓰고 다니는 머리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참이다.
마을 초입의 언덕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사이 토승쳉겔의 하늘이 변하며 눈을 휘날리고 있다.
마을 초입에 여러 개의 주유소들이 연이어지고, 주유소의 마당에서부터 짖어대며 쫓아오던 개를 향해 계란만한 돌멩이를 주워 던진다.
"가! 이 개******!"
추워진 날씨, 구글 지도를 확인하며 마을 초입에 보았던 스카이라인 호텔을 찾아 마을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여러 개의 슈퍼마켓이 보이고 몇몇의 식당들도 보이는 도로변에 옷과 신발들을 파는 노점상들의 모습도 보인다.
흙바닥의 골목길을 빙빙 돌아 스카이라인 호텔에 도착하자 때마침 승용차에서 내리던 중년의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호텔의 문을 열어준다.
"호텔 맞지?"
호텔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짧은 영어를 할 수 있어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다. 하루나 이틀쯤 머무를 것이라 대답하고 25,000투그릭의 숙박료를 확인한다.
1층에 있는 샤워실, 자전거를 놓아둘 장소 등을 안내해 주고 2층으로 올라가 방을 정해준다.
"이건 40,000투그릭!"
여러 개의 낡은 방문을 열어보며 빈 방을 찾더니 침대가 2개 놓인 방은 40,000투그릭이라고 중얼거린다.
낡은 침대가 놓인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2층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여주인은 그냥 내려간다.
복도의 끝에 있는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놓여있고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이 정도면 특급호텔이야!"
1층에 있는 샤워장에도 낡은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따듯한 온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찬물이면 어때.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복도 옆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넓은 주방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 굽고 있는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오늘은 레스토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을 나와 음식점과 슈퍼가 있던 거리로 나간다. 몽골의 마을에는 가라오케나 디스코텍 같은 것이 음식점보다 많은 것 같다.
"참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네."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먹을 빵과 음료수, 과자 같은 것을 조금 사 들고 나와 길 건너편의 음식점으로 걸어간다.
음식들의 메뉴 사진이 걸려있는 건물 앞에는 옷을 파는 노점상들이 내리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가만. 느낌상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 같은데!"
서롱고스라고 쓰인 익숙한 글자가 보이고 자세히 보니 한국의 음식들의 사진이다. 제육볶음의 사진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이런 운은 없는 것일까? 내일 다시 와봐야지."
진눈깨비의 눈바람이 더 거세지고, 대형 버스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운터에서 사람들의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나도 이것으로 먹어야지."
음식의 사진을 찍고 카운터로 가서 핸드폰을 보여주니 종이에 글씨를 쓴 오더지를 주방으로 건네준다.
양고기의 잡내가 조금 있었지만 아주 맛있게 허기를 달랜다.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해."
진눈깨비는 어느새 우박으로 변하여 정신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슈퍼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데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이 궁금하여 들어가 본다.
핸드폰 가게들과 주류가게, 꽃집 그리고 2층에는 옷가게들이 들어선 일명 몽골의 쇼핑몰 건물이다.
가게들을 둘러보면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꽃집의 여자가 나를 부른다.
"서롱고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본다. 몽골에서 꽃집을, 그리고 붉은 장미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콩알만한 우박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은행에 들러 약간의 현금을 찾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직원들은 여전히 빵을 굽느라 바쁘다.
넓게 밀가루 반죽을 펴서, 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뿌린 후 돌돌 말아 자르고 오븐에 넣으면 끝이다.
따듯한 물과 컵을 구하러 내려갔는데 구워낸 빵을 2개 건네준다. 그냥 밀가루 빵 맛이다.
슈퍼에서 사온 박카스를 마시고 누워있으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전구가 없던 방에 전구를 끼워 넣기 위해 남자 직원이 서있다.
전구를 끼워 넣고.
불을 켜는데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스위치가 있는 벽을 확인하니 스위치가 없고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니, 딱히 불은 없어도 되는데 저걸 어떻게 끄지?"
"간만에 씻어 볼까?"
감바의 집 현관을 여느라 20분 정도를 낑낑댔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문들은 자물쇠가 딸깍딸깍 두 번이 걸린다.
1층에 있는 샤워실에는 보기와 달리 따듯한 물이 잘 나온다. 오랜만에 머리를 감느라 중국 호텔에서 가져온 작은 샴푸통을 다 비운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울란바토르의 테를지의 리조트에 취직을 했다는 김병남 선교사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 한국 사업가가 운영하는 리조트에 관리인으로 취직을 했는데 새롭게 일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피곤한 모양이다.
리즈후이에게 위챗 메시지가 와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오랫동안 메시지를 주고받고, 휴가를 받아 아내에게 갔다는 오초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잠을 자는지 답장이 없다.
"이 침대 시트는 어디에 있는 첼시 호텔이냐?"
데이터 만수르가 되어 CBS 라디오를 들으며 별 기대 없이 카톡으로 사연을 쓰고 신청곡을 보내본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0분이 넘어간다.
"끝날 때가 됐네. 괜히 보냈네!"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방송이 끝나는 마지막 광고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를 하던 김현주가 나의 사연을 읽어준다.
"멀리 몽골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변차섭씨가... "
"헐!"
아쉽게 마지막으로 급하게 신청된 노래라 이상은의 노래는 중간에 끊겨버렸지만 뜻밖의 즐거움이다. 12시가 가까워지며 창밖으로 거칠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내일 길을 떠나긴 틀린 것 같다. CBS 음악 FM은 저작권의 문제 때문에 다시 듣기가 제공되지 않는 모양이다. 온갖 곳을 검색하고 유튜브, 팟캐스트 등등을 뒤적여봐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전거 세계 일주 106일째, 중국을 거쳐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몽골의 넓은 초원을 홀로 달리는 것이 가끔 외롭지만... 저의 눈을 통해 함께 세상을 보고 있을 그녀와 듣고 싶네요. 항상 그녀의 삶이 행복하기를.."
일찍 잠든 탓에 아침 일찍 깨어났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이고 바람이 불어오지만 오늘은 호르고를 떠나고 싶다.
뒷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혹시나 핸드폰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꼭 쥔 두 손에 힘을 주고, 1층에 있는 간이 세면대에서 양치만을 한다. 체체를렉을 떠나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다. 양말 속 두 발바닥이 화석처럼 굳어가는 느낌이다.
"어디서 쉰 냄새가 나는 거지?"
자민우드에서 충전했던 데이터의 사용 기한 오늘 밤 자정으로 끝나기 때문에 데이터를 충전하고 비상식을 조금 사서 서동고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8시에 문을 연다는 슈퍼는 30분이 지나도 열리지 않고, 9시가 다 되어서야 문이 열린다.
"특별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 데이터 충전해야 하는데."
몽골에서는 데이터를 '다타'라고 인간적인 발음으로 읽는 것 같다. 핸드폰을 보여주며 '다타'를 연신 외쳐대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G모바일의 충전기를 보여준다.
"유니텔. 유니텔이야!"
슈퍼 아주머니는 무뚝뚝한 슈퍼 아저씨를 불러오고 유니텔 통신의 태블릿을 꺼내어 보여준다.
"여기 봐. 15기가 30일 32,000투그릭!"
자민우드에서 50기가를 충전하고 사진 업로드 등은 체체를렉의 페어필드 와이파이를 이용한 터라 데이터가 37기가나 남아있다. 한 달 정도의 몽골 일정 동안 15기가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32,000투그릭의 상품을 충전해 달라고 요청한다.
테블릿을 아무리 눌러봐도 32,000투그릭의 요금제가 없다. 2G 폰을 주로 사용하는 몽골의 시골에서 데이터를 사용하는 요금제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 슈퍼 아저씨도 모르는 듯 은근슬쩍 아주머니에게 태블릿을 넘겨버리고.
이리저리 메뉴들을 눌러보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태블릿을 넘겨버린다.
"뭐야? 몰라? 모르는 거야?"
10,000투그릭의 상품이 맞다며 안내를 해주지만 그것이 데이터를 포함한 요금인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게르에서 이용하는 데이터 요금제를 자꾸만 눌러대는 아주머니를 보며 이러다 생돈을 날려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태블릿을 눌러보며 고민을 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그래, 유니텔에 물어보면 되지."
뭔가 통화를 하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전화기를 나에게 건네주며 받아보라고 한다.
"몽골 유니텔에 한국어 상담 서비스가 있는 거야?"
전화의 상대는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슈퍼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부모라고 소개하는 슈퍼집의 딸이다. 감바보다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천천히 설명을 하면 그런대로 이해하는 한국어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어를 하는 슈퍼집 딸도 데이터를 충전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참을 통화를 하며 데이터 요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설명만을 전달하고, 무언가 결정을 한듯한 아주머니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50,000투그릭의 상품을 데이터 상품이라고 한다.
"뭐지? 근거 없는 자신감은!"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50기가 데이터를 충전한다. 그리고 1423번에 'See'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데이터 충전 내역이 갱신되지 않는다.
"거 봐! 안 됐잖아."
잠시 멘붕이 오려던 찰나 몽골 사람들이 슈퍼에서 데이터를 충전하고 핸드폰으로 세팅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잠시만!"
1423번에 메시지를 Help, 50, On의 순서대로 보내어 데이터 충전 세팅을 해본다. 그리고 다시 'See' 메시지를 보내니 데이터가 충전된 것이 확인된다.
"됐네. 됐어! 이것 봐. 이렇게 하는 거야!"
중국에서는 주숙등록을 하는 것을 가르치며 다녔는데, 몽골에서는 데이터 충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근데. 데이터 용량이 그대로 남아있네? 설마 미사용 데이터가 이월되는 거야?"
자정이 되어서 미사용 데이터가 사라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미사용 데이터와 신규로 신청한 데이터가 합산해서 표시되어 있다.
"졸지에 데이터 만수르가 된 거야? 초원에서 터지지도 않는 데이터로 뭘 할 수 있을까?"
1,500투그릭의 데이터만 충전했어도 되는 데이터를 50기가나 더 쓰게 생겼다.
무려 한 시간 동안 핸드폰 데이터를 충전하기 위해 아주머니와 난리 법석을 피운 탓에 아침을 먹을 시간을 뺏겨버렸다. 서동고에게 줄 과자와 마뜨가가 피우는 담배를 두 갑 사서 사동고의 집으로 돌아간다.
서동고의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뜨가의 아내인지 아니면 뱀바의 가족인지 모를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동고 게르'만을 외치고 끊어버린다.
어제 술이 취한 마뜨가 부부와 함께 오지 않았던 서동고가 강아지처럼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마뜨가는 술병이 났는지 힘이 없이 침대에 파묻혀 있다.
"서동고, 이리 와. 이제 아저씨 가야 해!"
마침 자주색 니트를 들고 있던 서동고의 옷을 입혀주고, 어제 식당에서 산 모자를 씌어주니 완벽한 깔맞춤이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마뜨가에게 담배를 건네주며 건강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술을 조금만 마시라 제스처를 하고, 과일주스를 한 컵 따라서 건네준다.
마뜨가는 핸드폰의 번역기를 달라고 하더니 '행운을 빈다'다는 메시지와 '다음에 오면 언제든지 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악수와 함께 짧은 포옹을 하고 서동고의 집을 나온다.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서동고와 마뜨가의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바이시떼! 서동고!"
핸드폰 데이터를 충전하느라 빵과 음료수를 사두는 것을 깜박하여 호르고에 도착하여 처음 들렀던 슈퍼로 들어간다.
들어선 가게에는 초도트쏨에서 '소주'를 외치며 장난을 치던 남자가 돈을 세며 나를 보며 웃는다.
"엉? 네가 여기에 왜 있어?"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가게가 자신의 집이라는 제스처를 하는 남자 지그다.
"지그, 이리 와. 이번에는 사진을 찍자!"
사진 찍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던 지그가 이번에는 순순히 사진을 찍는다.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피우라고 제스처를 하는 지그와 인사를 하고 호르고를 들어왔던 흙길을 따라 도로로 빠져나온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날들이었다. 호르고 안녕!"
사간느 호수와 이어지는 하천을 지나 넓은 용암지대의 숲이 보이고 사간느 호수가 오른 편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눈이 내리며 더욱 차가워진 맞바람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던 체력을 금세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세기와 함께 왔던 호수의 반대편을 달리는 동안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는 더욱 거세져만 가고.
호수의 풍경을 구경하기는커녕 도로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소처럼 페달만을 밟는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강풍의 속도에 구름의 모양은 빠르게 빠르게 변화하며 마음을 사로잡고, 사간느 호수가 끝나는 지점까지 20km를 달려 잠시 자리에 앉아 쉬어간다.
엄청 달달한 맛의 몽골의 카스테라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지겨운 바람을 맞는 동안 타리안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작은 음식점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타리안트를 지나는 동안 음식점처럼 보이는 곳은 없고, 도로변에서 휘청거리며 취해있는 몽골인들만이 나를 향해 소리를 치며 불러 세운다. 호르고에서 너무나 많이 바라본 모습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제는 징그럽기까지 한 초원의 도로는 자꾸만 산을 향해서 올라가고, 하늘의 구름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브갈대를 20km 정도 남겨두고 도로변의 몇 채의 집과 게르가 들어선 마을이 나타난다. 끊겨있던 통신도 불안정하지만 간간이 연결이 되고.
슈퍼로 보이는 집으로 무작정 들어간다. 슈퍼의 아주머니에게 맥주를 한 캔 사들고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분이세요?"
갑자기 어눌한 발음으로 존댓말을 하는 아주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뒤편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밥 먹는 제스처를 한다. 몽골에는 뜬금없이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손주를 보고 있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달라고 요청하니 냉장고에서 고기 한 덩이와 당근 그리고 감자를 꺼내어서 보여준다.
"초이완?"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에게 '음메에', '음머', '히히잉' 세 가지 소리를 내어 무슨 고기인지 물어보니 소고기라고 한다.
"아니 이런 레어 아이템은 어디에서 난 거예요?"
할머니의 다용도 충전 케이블에 핸드폰을 충전하며 앉아있으니 사발과 함께 커피를 내어준다.
"할머니 센스쟁이!"
스탠레스 접시에 모양 좋게 내어준 6,000투그릭의 초이완은 양도 많고 정결하고 맛도 좋다. 슈퍼에서 사 온 맥주와 함께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한다.
"숨은 맛집이네. 할매 음식 솜씨 짱!"
아브갈대를 지나 이흐울까지의 거리를 줄여놓을 생각이지만 바람으로 인해 속도가 떨어지며 목적지를 아브갈대로 정한다.
계속되는 산길의 오르막길에 변화무쌍한 구름의 움직임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순간순간 변화는 하늘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바람과 사람들로 인해 피곤해진 몽골 여행의 모든 것들이 눈이 녹듯 사라져버린다.
지면을 타고 하늘로 모아지는 구름들의 모습은 경이롭고.
몽골의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시간을 멈추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보여주고 싶어! 무언가 욕심을 내야 한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가슴 뛰게 만드는 풍경들을 뒤로하고 작은 산의 언덕을 오르니 고개 너머로 아브갈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긴 왔는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볼까?"
도로의 왼편으로 아브갈대의 마을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고, 도로변으로 주유소와 작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천천히 도로를 따라가며 적당한 음식점을 찾던 중 초입의 작은 식당에서 창문을 열고 한 남자가 나를 부르며 손짓을 한다.
"부르는데 가 봐야지!"
남자의 식당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니 마당 안쪽으로 자전거를 놓아두라며 안내를 한다.
"미니 싸비, 타니 네르?"
"다코라."
인상이 썩 좋지 않은 남자 다코라와 악수를 하고 허름한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의 딸이 어린 젖먹이 동생을 돌보며 나를 쳐다본다.
"샌 베노!"
스마트폰에 익숙할 큰 딸에게 가족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어딘가로 떠나는지 큰 캐리어 가방을 들고 창밖을 응시하며 바쁘다. 아마도 도시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
무난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큰 딸이 떠나버리고 다코라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한다. 저녁을 먹으라는 다코라에게 메뉴와 가격을 물으니 초이완을 설명하며 6,000투그릭이라고 알려준다.
강한 인상을 갖은 다코라는 얼굴에 주먹다짐의 상흔으로 보이는 상처가 나있어 더 불량하게 느껴진다. 오늘 도중 할머니의 식당에서 맛있는 초이완을 먹고 온 터라 초이완 대신 밥을 달라고 요청하고 8시 30분쯤에 밥을 먹겠다고 시계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주고 번역기의 자판을 몽골자판으로 바꿔주어도 도무지 글자를 쓸 생각을 하지 않는 다코라. 그에 비해 그녀의 아내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은 마음씨 좋은 웃음을 가졌다.
다코라와 그의 아내는 테이블에 앉아 자꾸만 몽골어로 무언가를 말하며 떠든다. 다시 한번 시계를 보여주며 조금 후에 저녁을 먹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낡은 간이침대를 가리키며 잠을 자고 가겠다고 알려준다.
"밥 먹고 잠자는데 얼마야?"
다코라는 그제서야 11,000을 적더니 밥 먹는 제스처를 하며 6,000 그리고 잠자는 제스처를 하며 5,000을 적어 보여준다. 식사와 숙박비에 대해 알았다는 제스처를 했지만 다코라와 그의 아내는 무언가를 계속 물어보는 듯한 말들을 이어간다.
도저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 툴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수업 중이라 통화가 어렵고, 선교사님은 통화가 되질 않는다. 마지못해 감바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내용인지를 알려달라 부탁을 한다.
한참 동안 감바와 통화를 하던 여자는 통화가 끝나지 않는 전화기를 나에게 건네준다. 아마도 감바가 또 잔소리와 같은 연설을 여자에게 한 모양이다. 생각대로 감바는 여자를 붙잡고 '여행하는 한국 사람이니까 잘 도와줘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 연설을 한 것이다.
"우리 감바형은 정말 캐릭터가 확실해!"
식사와 숙박료에 대한 합의가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낡은 침대가 놓인 어두운 방에 누워 잠시 쉰다. 그동안 술에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시끄러운 소리로 대화를 이어가고 그중에 술에 취한듯한 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써 그들을 외면하고, 다코라의 어린 아들에게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며 시간을 보낸다.
"야! 너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발음이 안 된다."
대형 화물 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들이 식당으로 들어와 반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울란곰으로 간다는 화물차 운전사는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나에게 자전거를 싣고 가자며 두어 차례 말을 걸어온다.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정말 술에 취한 몽골인들을 대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몽골을 여행하며 좋지 않은 도로의 환경과 100km 단위로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고산지대의 산길과 계속되어 이어지는 거센 바람들, 의사소통이 안되는 언어 장벽 그리고 너무나 빈약한 몽골의 음식들보다 힘든 것이 밤낮으로 술에 취해있는 몽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얼굴에 주먹다짐의 상처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몽골의 남자들. 그것 또한 그들의 생활 방식이고 문화이겠지만 타국의 이방인의 눈에는 그런 모습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툴가야, 몽골 사람들을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거니? 전통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니?"
"아니요. 술을 많이 마시지만 술과 어울리지 않아요."
"몽골 남자들이 손가락에 끼고 다니는 반지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그것 때문에 싸울 때마다 사람들 얼굴에 상처가 나잖아!"
"아니요. 그냥 건강 반지 같은 거예요."
"..."
툴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다코라의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고, 화물트럭 기사들이 빠져나간 식당에는 점잖은 노부부가 들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찾던 중 '한국 커피'를 외치는 노신사에게도 한 대접을 타서 건네준다.
잠깐 동안 노부부와 여행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낡고 균형이 맞지 않은 간이침대에 눕는다.
승용차를 몰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인지 허름한 식당의 숙소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잠을 자는 점잖은 노부부를 보며 몽골인들의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술에 취해있지 않는 몽골인들은 너무나 사람을 좋아하고, 손님을 대하는 유목민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친족 또는 부족에 대한 강한 결속력은 때로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이면의 모습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겠지만 인구수가 많지 않은 넓은 초원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단지 몽골 사람들의 문화일까 아니면 상실감에 의한 욕구의 불만일까? 정말 알 수가 없다!"
경사가 진 낡은 침대에서 패니어들을 묶은 와이어를 팔에 감고 잠이 든다.
"가난한 나라의 알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가난한 여행자가 가난한 마음을 품고 불안해하며 잠이 든다. 이런 불편한 마음을 품은 내가 구역질 나게 싫지만 이 여행을 멈추고 싶지 않아. 미안해 몽골!"
12시에 돌아온다는 서동고의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국의 이방인에게 집을 맡기고 소식조차 없는 몽골인들의 정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열쇠를 맡기고 갔는데, 돌아올때까지 못 가잖아!"
화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고, 허리가 아파보이는 마뜨가를 위해 넉넉하게 장작을 마련해 놓는다. 가축의 똥들을 모아 연료로 사용하는 남부의 몽골과 달리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라 장작을 쓰는데, 산의 한 면에만 자라는 나무들로 집집마다의 연료 수요가 되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뭘 하지?"
이틀째 보이질 않는 뱀바에게 연락을 해달라 선교사님에게 부탁을 하였으나 뱀바는 출산을 한 아내에게 가 있어 화산에 데려가줄 수 없다고 한다.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고기가 먹고 싶어져, 호텔들과 마트가 있는 거리로 나간다.
슈퍼와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이 있는 건물의 슈퍼로 들어가니 제법 구색을 갖춘 슈퍼이다.
"믹스커피 빙고!"
슈퍼의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전에 먹었던 양고기볶음 요리가 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5,000투그릭이라 알려주는 직원에게 식사를 달라고 요청하고, 한참을 기다려 나온 음식은 그 비주얼이 사뭇 다르다.
"뭐야. 밥에 케찹 찍어놓은 것만 같잖아!"
어쨌든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한 접시를 더 주문하여 깨끗하게 비워낸다.
밥을 먹고 호텔 건물 옆에 있는 작은 가게가 무엇인지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니 가게 안에 있는 젊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손짓을 한다.
"얘네들은 눈만 마주치면 무조건 오라고 하네."
작은 가게는 의자나 액자 같은 생활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와 인사를 하고 번역기로 대화를 하려니 난감함이 밀려 든다. 구글 번역기에 몽골 자판을 설치하고 여자에게 건네준다.
"화산에 가고 싶다. 어떻게 가야 하니? 도와줘!"
이름을 물어보고 번역기로 화산에 가 보고 싶다 말하니 젊은 사람답게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잠시 기다리라고 제스처를 한 안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가이드가 올 거야!"
화산에 가겠다는 나를 데려다 줄 가이드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몰고 키가 큰 젊은 남자가 들어와 영어로 인사를 한다. 세기는 안냐의 남편이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사간느 호수에 자신의 리조트가 있다며 알려준다.
"그래! 사간느 호수에도 가 보고 싶은데. 내일 너의 리조트에 갈 수 있어?"
여름에 리조트를 운영하며 호숫가에서 생활한다는 세기와 함께 호르고 화산을 오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고글과 카메라를 가져가기 위해 서동고의 집에 잠시 들리고.
"사비, 오늘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가자! 30,000투그릭 어때?"
"좋아! 그렇게 하자!"
호르고 화산에서 5km 떨어져 있다는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안내하는데 가이드 비용으로 30,000투그릭을 주기로 한다. 선글라스를 가지고 가야한다며 세기의 집에 잠시 들리고, 세기와 안냐의 어린 아이를 만난다.
"너 정말 이쁘게 생겼구나!"
선글라스를 챙기고 집을 출발한 세기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자며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에 도착하여 아무리 크락션을 울려도 나오지 않던 직원은 도로 건너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타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몽골 사람들의 게으름이다.
10,000투그릭을 주유한 세기는 나에게 주유비를 내라고 말한다.
"야! 기름은 네가 넣어야지! 그래, 못 갈 것 같던 화산에 가는데 형이 넣어줄게."
울퉁불퉁한 흙길, 정확히 말하면 길이 아닌 산길과 초원의 길을 달려 호르고 화산을 지나친다. 호르고 마을에서 보이던 검고 둥글하게 생긴 산이 화산이다.
"사간느 호수에 먼저 가자!"
용암이 흐르며 만들어진 현무암 지대를 지나 큰 언덕을 오르니 얼음이 얼어있는 사간느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웰컴투 마이 게스트하우스!"
잔잔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사간느 호수에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검은 현무암의 돌탑들이 가득하고.
몽골에서 처음 보는 넓은 호수의 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기분이다.
"정말 오랜만에 물을 본다. 바다가 보고 싶다!"
여름 시즌에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사간느 호수에는 음식점과 슈퍼 그리고 작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여름에 이곳에서 선텐도 하고,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한다."
아주 작은 모래사장을 가리키며 세기는 유쾌하고 즐겁게 대화를 이어간다.
"물을 마셔도 돼! 아주 깨끗한 물이야."
세기의 게스트하우스는 나무집과 게르가 한 채씩 들어서 있고, 주변의 다른 펜션들은 게르 모양의 숙소들과 나무집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세기는 이제막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양호 정도의 호수지만 몽골의 내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큰 호수라 세기에게는 애착이 가는 장소인듯 싶다. 몽골 사람들이 홉스굴 호수를 보며 왜 바다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세기, 이리 와!"
세기의 오토바이를 타고 길이 아닌 초원의 산길을 따라 다시 호르고 화산이 있는 입구에 도착한다. 몇몇의 관광객들도 차를 가지고 화산의 입구까지 도착해 있다.
화산의 입구에는 여름에 운영된다는 음식점들의 간의 테이블들이 허름하게 설치되어 있고.
현무암의 자갈들이 펼쳐져있는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간다.
세기와 지나쳐 왔던 넓은 용암지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산을 오르는 자갈길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큰 숨을 몰아쉬던 세기가 잠시 쉬며 사진을 찍어주고.
조금 더 산을 오르니 뭔가 시야가 왜곡되어 착시현상처럼 느껴지는 화산의 분화구가 나타난다. 화산의 입구에서 채 10여 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분화구의 규모가 크거나 넓지는 않지만 쉽게 걸어서 올라올 수 있는 호르고의 휴화산.
몇몇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즐겁게 기념촬영을 하고있고.
처음 보는 화산의 풍경은 생경하고 이색적이다.
"넓은 백두산의 천지나 활화산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슬란드나 솔로몬제도 부근에 활화산이 있다는데 가보고 싶네."
몽골의 관광지라는 곳을 가 보면 조금 실망스런 부분이 없지않다. 불현듯 펼쳐져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중국의 자연과는 달리 주변에 펼쳐져 있는 초원과 아름다운 산들의 곡선 그리고 하늘과 구름의 어우러짐 등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갖은 몽골이라 그런 것 같다.
초도트쏨의 협곡, 사간느 호수 그리고 호르고의 화산까지도 그저 초원의 일부분으로 느껴질 뿐, 감탄을 자아낼만큼의 절경은 아닌 것 같다.
"역시 몽골은 초원이네!"
화산을 내려가자고 하니 신이나서 휘파람을 부는 세기를 보며 그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몽골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갖고 있는지를 세기는 알까?"
선교사님의 말처럼 대자연을 품고 있고, 수많은 광물 자원을 갖은 인구수 300만명의 몽골이 이처럼 못 사는 것도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화산을 내려오는 초입에서 캠핑카를 세워두고 뭔가를 하는 외국인 부부를 만난다. 4개월 동안 터키와 이란,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몽골에 왔다는 프랑스의 노부부다.
작은 캠핑카를 타고 짧게 각 대륙들을 여행하는 프랑스 부부는 몽골에서 러시아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명함을 건네주고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는 지도를 꺼내들고 펼쳐보이며 우수아이아에서 멕시코로 이어지는 길들을 추천해준다.
"이 길은 정말 환상적이야! 너의 루트는 잊어버리고 이 길로 가라. 정말이야! 판타스틱!"
남미 대륙의 끝자락 우수아이아에서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과 파라과이로 이어지는 코스는 재미가 없다며 칠레의 고산지대를 따라 칠로에섬과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해 준다.
"나는 자전거라고!"
"너의 루트는 잊어버려!"
여러 번 칠레의 길을 따라 여행을 하라고 알려주는 프랑스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작은 캠핑카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세기! You can do it. With your wipe."
듣는지 마는지 세기는 자전거는 느리다며 오토바이를 사라고 웃으며 떠들어 댄다. 짧은 가이드를 하며 용돈을 번 하루가 무척이나 신이난 모양이다.
안냐의 가게로 돌아와 세기에게 맥주를, 안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신다.
"보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이를 데려온 세기는 자신의 아이를 가리키며 남자애라고 알려준다.
"여자 아니였어?"
자세히 보니 안냐와 많이 닮은 남자 아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는 안냐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니 세기가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조르노크에서도 그랬지만 몽골의 젊은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내밀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젊은 여자가 가슴을 까고 젖을 물리는 모습이 낯부끄러운지라 피해주려고 했던 것인데.
세기네 가족과 헤어지고 서동고의 집으로 걸어가는 중 승용차가 멈춰서며 차량 안에서 오도덕이 밝게 인사를 한다. 언제나 가슴팍에 술병을 숨기고 있는 오도덕은 술병을 꺼내들고 능글맞게 웃으며 서동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서동고의 집에 도착하니 대문이 약간 열려있어 사람들이 돌아왔나 보다.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니 처음보는 중년의 남자가 술에 취해 햇볕이 드는 현관에 기대어 앉아 있다.
"누구신지?"
잠시 그 사람의 곁에 앉아 햇볕을 쬐는 동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에 취한 마뜨가의 아내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온다. 열쇠가 잠겨있어 다른 집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마뜨가의 아내를 침대에 눕혀논 여자들은 아침에 잘라놓은 장작들을 가져와 능숙한 손길로 잘게 잘라낸 뒤 쉽게 불을 피운다.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술이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말로 계속해서 말을 걸어와 불편하게 만든다.
"정말 너희들 대책이 없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호텔에 가서 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나 호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돌아올게."
잠시 후 들어와 침대에 쓰러진 마뜨가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화로에 장작들을 더 넣어주고 한 무더기의 장작을 화로 옆에 놓아둔다. 그리고 도끼질을 하여 장작들을 충분하게 쌓아두고 서동고의 집을 빠져나온다.
아침을 먹었던 호텔을 지나 건물의 모양이 조금 괜찮은 곳을 들어갔지만 호텔의 직원을 찾을 수가 없다. 1층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호텔에 대해 물으니 슈퍼의 여자가 전화를 걸어 호텔의 직원과 통화를 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다시 짐들을 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중국에서 물건들을 가져와 팔고있는 보따리 장수 같다.
내일 떠나며 서동고에게 선물할 예쁜 모자를 5,000투그릭에 사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의 종업원에게 가장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니 무언가 번역기에 적는데 철자가 틀렸는지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래, 이것으로 줘!"
한참 후에 나온 음식은 아침에 먹었던 메뉴와 같은 양고기볶음이다.
"아놔! 정말 센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하하하."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 접시를 더 시켜 배를 채우고, 호텔을 가리키며 숙박비를 물어보니 25,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20,000투그릭이라고 하던데. 아냐?"
식당의 여자가 호텔을 왔다갔다하며 가격을 조정하는 사이 퇴근을 하던 안냐가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너무 술을 많이 마신다. 오늘은 호텔에서 잘려고 해."
안냐는 자신이 아는 곳이 있다며 15,000을 적어 보여주고 따라오라고 한다. 안냐가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식당 옆에 있는 슈퍼다.
오늘 아침부터 묵뚝뚝하게 말을 건네는 아저씨와 몸짓으로 농담을 하던 슈퍼에서 호텔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아저씨, 히뜨웨?"
"20,000투그릭!"
"아니 이 동네는 무슨 숙박비가 고무줄이야?"
안냐는 2층에 있는 방을 안내해 주고 인사를 하며 돌아간다. 나무로 짠 작은 침대와 나무 테이블이 전부인 호르고의 호텔.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 거야?"
호텔의 화장실은 뒷마당에 재래식 화장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슈퍼의 아저씨에게 내일 아침 오픈 시간을 물어보니 8시라고 알려준다.
출발 전 사용기간이 끝나는 핸드폰의 데이터를 충전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