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8일 / 맑음 ・ 11도
도르고비
어제의 서풍에 이어 오늘은 거센 북서풍의 맞바람이 불어온다. 가는길을 마저 멈추고 바트보르드의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22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80시간

개와의대화
일만해?
0Km / 00분
0Km / 00분
도르고비
도르고비
도르고비
 
 
4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기차의 기적 소리와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새벽에 잠시 깨었다 이내 잠들었다.

"오늘도 틀렸네. 잠이나 푹 자자."

딱히 불편할 것 없는 잠자리다. 다시 잠이 깨어 바람을 확인하러 밖에 나가니 예보대로 강한 북서풍이 거칠게 불어온다.

"바트, 응가는 어디서 해?"

기찻길 옆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담들이 쌓여있는 곳을 가리킨다.

북쪽으로 쌓여있는 돌담을 골라 자리를 잡고 광활한 초원에 수줍은 엉덩이를 까 보인다.

"거름을 뿌렸으니 풀들이 잘 자라겠어."

방에 누워 핸드폰으로 자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바트는 바쁘게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바트, 빼곡하게 점검 일지 같은 것을 채워 넣는다.

"바트, 커피 한 잔 마실까? 한국 커피."

물을 끓이고 대접에 커피를 따라 놓으니 바트는 다시 나가봐야 한다며 집을 나간다.

햇볕이 따듯한 문 앞에 앉아 늙은 개와 대화를 시도한다.

"너, 그러면 안 돼. 성격 나빠진다."

간간이 느린 기차만이 더 느린 초원의 시간 속을 지나가고.

12시가 넘어 돌아와 그릇에 가득 물을 부어 커피를 마시는 바트에게 점심을 먹자며 빵과 잼을 내놓는다.

하나씩의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니 뭔가가 허전하다.

"역시, 난 고기를 먹어야 해."

바트에게 저녁을 사줄 겸 자민우드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일을 해야 해서 나는 못 간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더 확인하기 위해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자고 의사를 전달했지만 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루 종일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네."

택시를 부르면 온다고 해서 자민우드로 나가 고기를 사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내일은 남풍이 불어온대, 그러면 나는 가야 해."

"내일은 남풍, 다음날은 남동풍이 분다. 이틀 동안 사인샨드로 가기가 수월할 거야."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하나씩 준비하던 바트가 저녁을 먹으라며 부른다.

밀가루 면에 감자와 고기를 넣고 볶은 요리다.

"цуйван, 초이완"

맛있다고 하니 웃으며 이름을 알려준다.

"여행이 끝나면 책을 쓰고 싶다."

"너는 여행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라."

여행 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공허한 일상의 헛된 푸념이 아닌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고,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너의 이야기도 쓸 거야."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긴 장문의 글을 여전히 제멋대로 그린다.

"나는 결혼을 해서 부인과 아들을 위해 기찻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 큰 소년은 몸이 부러진 나쁜 사람이다."

"아들이 아프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몸을 가리킨다.

"아, 네가 여기저기 다치면서도 열심히 일했다고."

리즈후이와 장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스무 살의 옛 기억이 조용한 어둠 사이로 찾아들었는데.

이 드넓은 황무지의 외딴 집에 바트보르드와 앉아 있으니 무거운 삶은 무게가 침묵처럼 가라앉는다.

"바트, 세 번째 바람은 그저 그런 푸념일지도 몰라. 아직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방법을 모르겠다."

"더는 서툴고 어설프게 살고 싶지 않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고 싶어지면... If.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7일 / 맑음 ・ 12도
자민우드-도르고비
몽골의 국경을 넘어 자민우드에서의 이틀간 휴식을 마치고 몽골의 여행을 시작한다. "자, 떠나 볼까!"


이동거리
30Km
누적거리
8,227Km
이동시간
4시간 06분
누적시간
580시간

AH3
AH3
14Km / 1시간 46분
16Km / 2시간 20분
자민우드
시계
고르도비
 
 
4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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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9911-4119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이 좋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불어온다.

"오늘 바람 꽤나 불겠네."

정리된 패니어들을 하나씩 프런트로 내려놓고 체크아웃을 준비한다.

"나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자!"

아침 영업을 준비하는 식당에 들어가 파인애플 치킨을 주문하니 시간이 조금 걸려 메뉴가 나온다.

"언제 이런 아침을 또 먹겠니."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자민우드의 기차역으로 간다.

흙먼지 바람이 일어나는 기차역 광장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며 구글지도와 맵스미를 켜서 경로를 확인한다.

"의미가 있나? 길이 하나뿐인데."

수입 담배와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필라멘트 한 개피를 300투그릭을 주고 사서 피운다.

"여기 봐. 사진 찍게요."

11시 15분, 광장의 아주머니와 사진을 찍고 자민우드를 떠난다.

자민우드의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AH3번 도로를 타고 사인샨드 방향으로 향한다.

자민우드의 초입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자전거를 밀어낸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기차의 기지창 같은 곳에서 길이 막히고 흙길을 향해 좌회전을 알리는 구글맵.

"구글양은 한국어를 존댓말로 배웠나 보다."

양 갈래의 길에서 차들은 양쪽으로 모두 진입하여 들어간다.

"모르면 오른쪽!"

짧은 흙길이 끝나고 회전 교차로를 지나자 사인샨드와 차이르 그리고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거친 사막의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모래바람이 도로와 주변의 풍경을 휩쓸며 흙먼지 가득한 황량함을 만들어낸다.

모래 폭풍 속으로 달려들어 간다. 좁은 갓길마저 사라진 도로에서 바람에 휩쓸리며 휘청거리는 핸들을 조향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초속 16미터의 바람은 이런 느낌이군."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핸들바를 잡고 있는 손등에 부딪히며 따갑게 피부를 파고든다. 돌풍과 함께 순간순간 도로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무거운 페달링과 멈춰 섬 그리고 바람 속 끌바를 반복하며 자민우드의 톨게이트에 도착한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마치 100km 이상을 달려온 듯 피곤함이 밀려든다.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구나."

톨게이트 사무실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1시간 반 동안 겨우 10km 밖에 못 왔는데."

자전거에 올라타기조차 힘든 강풍 속에 톨게이트를 지난 도로의 갓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다.

바람에 의해 흙길로 밀려났다 도로로 진입하기를 반복한다.

차량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 다행이지만 가끔씩 지나치는 차량들로 인해 바람의 흐름이 요동치며 차량 쪽으로 자전거가 빨려 들어간다.

몇 차례 휘청거리며 넘어질듯한 자전거를 갖갖으로 조향하며 큰 숨을 쉬어본다.

"끌고 가야 하나?"

자전거에서 내려 10여 분을 갓길을 따라 끌어보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다.

약간의 오르막길의 끝에 자민우드의 시계로 보이는 조형물을 향해 페달을 밟아보지만 마주 오는 화물차량이 일으키는 돌풍에 다시 한 번 크게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세우고 만다.

톨게이트에서 3km 남짓 이동하는데 30분이 넘게 소요됐다.

"아, 정말 대단한 바람이다."

낙타 모양을 한 조형물 밑에서 바람을 피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14km 왔네. 자민우드로 돌아갈까?"

날씨 정보를 확인하며 진행 일정을 고민해 본다.

오늘은 서풍, 내일 북서풍. 울란바토르까지 북서 방향으로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는 이동경로에 오늘은 측면 쪽, 그리고 내일은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내일은 더 심하잖아. 달라질 게 없네!"

"여기에 텐트를 치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까?"

상황이 나빠지면 자민우드까지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곳에 야영을 할까 생각했지만 100km가 넘게 남아있는 첫 번째 도시까지 거리가 부담스럽다.

"오늘 50km 정도만 이동을 해보자."

1시 40분, 30분이 넘도록 고민을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더욱 거세지는 바람을 이기며 페달을 밟는다. 차량이 지나치면 갓길로 들어가 자전거를 세우고, 마주 오는 화물 차량을 확인하면 미리 자전거에서 내려 고개를 숙이고 돌풍을 견뎌내며 가다 서기를 무한 반복한다.

정면과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바람막이의 옷자락과 태극기가 찢어질 듯이 펄럭거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서있기조차 힘든 강풍과 모래바람.

3시, 8km 남짓 이동을 하고 자동차 휴식 공간이 마련된 사거리의 측면으로 몇 채의 벽돌집들과 게르가 지어진 첫 번째 마을이 보인다.

무작정 도로를 벗어나 게르가 있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햇볕이 드는 곳에 주저앉는다.

바람에 휩쓸리며 세워둔 자전거가 한차례 슬로 모션처럼 넘어지고, 심한 바람이 불지만 기온은 따듯하여 패니어에 넣어둔 콜라 맛은 미지근하다.

"게르가 있는 안쪽에 텐트를 치면 좋겠는데."

잠시 쉬는 동안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다.

"5시까지만 가보자."

끝이 보이질 않는 도로 위로 오로지 거친 바람 소리와 돌풍의 흙먼지만이 자욱하다.

바람을 맞는 왼쪽 눈이 아파오고 핸들을 지탱하느라 오른쪽 어깨가 다시 쑤셔온다.

길은 난데없이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며 휘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 왜 곡선으로 도로를 만들어."

오르막의 끝에서 쉴 생각으로 오기 있게 페달링을 해보지만 건너편 도로로 화물차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고개를 숙이고 차량들이 만들고 지나가는 돌풍을 온몸으로 버텨낸다.

오르막의 끝에 예쁜 이정표가 보이고 언덕 너머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무작정 집이 있는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갑자기 늙은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사납게 짖으며 천천히 다가온다.

"아, 젠장. 여기서도 개야!"

잠시 개를 보며 서있자 집에서 사람이 나와 나를 보며 괜찮다고 손짓을 한다.

개의 주인이 다가와 개를 쫓아내고 집으로 가자며 안내를 해준다.

기찻길의 주변, 초원 한가운데 지어진 집 한 채.

자전거를 세워놓고 앉아있으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화로가 놓인 주방과 침대와 TV가 전부인 집에 들어서자 남자는 서둘러 차를 준비해 내어준다.

"충꾹? 한꾹?"

"한국에서 왔어."

"꼬레아, 으응!"

남자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다는 제스처를 하고, 번역기로도 의사 전달이 힘든 몽골어를 여러 차례 검색을 하며 반복한다.

"Би энд унтаж болох уу?"

하룻밤 머무를 수 있는지 물으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쉬어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마을 이름?"

"Дорноговь."

도르노고비, 동쪽 언덕이라는 뜻 같은데 사인샨드에서 197km 떨어진 곳이라며 알려준다.

"이름?"

"Батболд."

바트보르드, 48살이라며 여러 차례 발음을 따라 해도 몽골어는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다.

자신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다며 소개를 하는데 스마트폰에 익숙치 않은 바트가 번역기에 몽골어로 그림을 그리듯 무작정 필기를 하니 번역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결혼, 27, 큰 여자 27, 23, 14.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번역기에 나열된다.

"27살 아내가 있다는 건가? 27명의 아내가 있다는 건가?"

짧고 굵게 염장을 지르더니 나에게 소개를 해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46, 결혼 안 했어."

나이를 숫자로 적어주니 자기가 2살이 많다며 손가락으로 2를 표시한다.

"응 맞아! 왜, 형이라고 불러줘?"

빵 같은 것을 테이블 밑에서 꺼내는데 벽돌처럼 딱딱하다.

"이거 먹으라고 너무 딱딱해서 못 먹어. 이걸 어떻게 먹어?"

잠시 후 바트는 딱딱한 빵을 한 조각 부신 후 '왈왈'거리며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고 나간다.

아마도 개에게 주는 먹이인가 싶기도 하고.

자신이 말아서 태우던 종이 담배를 피워 보라며 주었는데 종이 타는 맛 이외에 별 맛은 없다.

패니어들을 떼어내 집안으로 집어넣고 자전거를 가리키니 그냥 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래, 여기 아무도 없네. 아무것도 없어! 하하하."

나를 향해 사납게 짖어대던 늙은 개는 꼬리를 내리고 얌전해졌다.

"아, 얄미워. 저걸 확!"

몽골의 달력에도 12간지의 그림들이 날짜마다 그려져 있고.

바트는 삼성의 2G 핸드폰을 사용한다.

침대에서 쉬는 바트와 대화를 하려 해도 그냥 난감 그 자체이다.

"툴가에게 전화를 해볼까?"

툴가에게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전후 사정을 짧게 알려주고 바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봐달라 부탁한다.

바트가 많은 말을 하며 한참 동안 통화를 한다.

"기차역에서 일을 하는데, 한국에 가면 일자리 같은 것을 소개해 달래요."

기찻길 부근에서 철로 관리 같은 것을 하는가 보다.

툴가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 부탁을 하고 툴가와 통화를 마친다.

바트와 몽골, 중국 담배를 나눠피며 번역기로 어렵게 소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을 먹자며 당근과 말린 고기를 넣은 볶음면을 한 그릇 내어주었다. 중국에서 먹었던 맛과 별 차이가 없는 맛이다.

"툴가, 몽골이 혹시 일부다처제야?"

궁금했던 것을 툴가의 카톡으로 물어본다.

"여기 춥지?"

"이제 따듯해지는 계절이라 지금은 괜찮다."

패니어의 무게를 차지하던 방풍자켓과 여름 옷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바트에게 건네준다.

"일할 때 입어."

무례한 행동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트가 기분 좋게 받아주어 마음이 놓인다.

겨울 비니와 양말을 하나씩 꺼내어 주고, 핫팩들을 꺼내어 사용법을 설명해 준다.

붙이는 핫팩을 뜯어 비비고 흔들어도 바로 열기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고.

"너무 오래돼서 안 되나? 하여튼 이렇게 쓰면 돼."

TV를 가리키자 DVD 씨디를 보여주며 '마르코'라고 알려준다.

"보여줘 봐."

DVD를 틀더니 류시원이 표지 모델로 그려진 씨디를 보이며 '한꾹'이라고 한다.

"류시원, 모르는 영화인데."

TV에서는 장 끌로드 반담의 오래된 영화가 나온다.

"완담!"

바트가 반담을 가리키며 액션 장면을 흉내 낸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바트의 침대 옆에 돗자리와 쿠션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77일 동안 여행하며 두 번째 써보는 것이다.

몽골은 외화들을 모두 성우들이 더빙을 한다. 숙소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더빙되어 방송이 되었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장 끌로드 반담의 영화가 끝나고 다른 DVD를 틀려는 바트에게 한국을 말하니 류시원의 씨디를 넣어 주었다. DVD 플레이어에 씨디를 넣으며 왼손목에 붙여 놓았던 핫팩이 따듯하고 좋다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

오토바이을 타다 넘어져서 골절이 되었던 팔목을 보여주는 바트에게 날씨가 추울 때 핫팩을 붙이라고 제스처로 알려준다.

등장인물 소개를 하는 멘트에 출연 배우들의 이름을 따라 하는 바트.

"류시원, 박지윤, 김민수."

혼자 이곳에서 일하며 수없이 반복해서 DVD를 보았나 보다.

류시원이 이종 격투기 선수로 나오는 드라마 같은 것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2012년 채널A에서 방송되던 로맨틱 코미디 '굿바이 마눌'이라는 드라마다.

종편이 개국하던 초기에 많은 돈을 써가며 만들었던 드라마들 가운데 하나인가 보다.

드라마도, 류시원도 관심이 없고 더욱이 종편의 채널들은 모두 리모컨에서 삭제해 버리니 알 리가 없다.

"빌어먹을 명박이 작품이네."

순찰을 나가는지 복장들을 갖춰 입던 바트는 입담배를 말아 태우고.

많이 보았을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한다.

"너, 이 자식!"

천천히 해가 져물어 가는데 바람은 여전하다.

"몽골은 한국과 문화가 비슷해요."

툴가에게서 카톡의 메세지가 왔다. 아마도 결혼을 해서 가족들이 있다는 말을 한 것 같다.

핸드폰으로 사진들을 정리하는 내 옆으로 순찰에서 돌아온 바트가 나란히 눕는다.

"이것 봐. 중국이야."

여행 중 촬영한 중국의 동영상들을 보여주며 하나씩 소개를 해준다.

"여기가 황산, 계림, 용척제전, 장가계, 천안문, 자금성."

관심있게 영상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엄지를 세우기도 하고, 천안문을 보며 모택동이라며 손가락을 가리키기도 하더니 침대 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여준다.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가 바트의 아내 아츠제르깔, 파란색 몽골 복장의 아이가 14살 아들 오끔마타르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명이 누구인지 알려주는데 알 수가 없다.

"나는 없어."

"여자를 취해라!"

저녁을 먹자는 바트에게 라면이 있다며 끓여 먹자고 한다. 물을 끓여 매운 라면을 준비하고.

바트가 종이를 꺼내더니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제법 솜씨 좋게 말과 산양, 양들의 그림을 그리며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이름들을 적어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의 사인과 핸드폰 번호를 적더니.

나에게 선물을 하며 악수를 청한다.

"나 주는 거야? 와, 감사합니다. 땡큐!"

그 사이 라면이 끓어 나는 라면을 그릇에 담고, 바트는 몸에 좋다며 우유를 그릇에 따른다.

라면을 먹던 바트가 너무 매워하며 오만 인상을 쓴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게 신라면은 엄청나게 매운 음식이다.

패니어에서 작은 소세지를 꺼내어 바트에게 주고, 빵과 잼을 꺼내어 먹으라고 한다.

먹다 남은 보드카를 바트에게 주고 건배를 하며 저녁을 먹는다.

번역기를 달라는 바트에게 핸드폰을 주니 여전히 투박한 손으로 마구 적는다.

"тийм байна хангалуун байна надад гоё дурсамжуудаа биан дедор Солонгос найзтай ..лан. чинадад сСолонгос мана би чамайг дурсах болно Сайхан дурсамжулах болно.н надад он этуэт мангасилгонконг доллар байтал - Би Манга,хдавсгарт цуглу’ллаг юм."

번역기된 문장안에 한국 친구, 좋은 추억, 너무 기뻐, 기억할게 등의 글들로 보아 나와 함께해서 즐겁고 기억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지갑에서 1달러와 1자오를 꺼내어 기념으로 선물을 해준다.


"후원해 주는 거야? 땡큐, 바트!"


바트와 즐겁게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초원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이 밝아 별들이 반짝이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밤하늘이다.

머리위의 북두칠성을 보고 있으니 바트가 자신의 팔뚝을 가리킨다.

바트의 팔에는 여러 개의 작은 타투가 그려져있다. 북두칠성이 팔뚝에 그려져있고, 말도 있고, 작은 글씨들도 새겨져 있다.

바트가 이불 하나를 내어주었고, 바트는 상의를 벗고 잠을 잔다.

"오, 나랑 비슷한 취향이네."

불빛이 꺼진 캄캄한 방, 불어오는 초원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모든 조명을 켜두고 홀로 잠드는 호텔보다 좋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6일 / 맑음 ・ 20도
자민우드
하루를 더 자민우드에서 쉬며 캠핑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로 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19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76시간

주유소
슈퍼마켓
00Km / 00분
00Km / 00분
숙소
자민우드
숙소
 
 
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아침에 일찍 잠이 깨어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온다. 프런트에는 어제의 여직원이 아닌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다.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는지 햇살이 좋은 아침이다.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하루 더 머무를 것이라 말하니 바로 이해하고 알아듣는다. 어제의 눈치 없던 직원과 달리 업무에 능숙하고 친절하다.

"와이파이가 잘 되는 방으로 주세요."

여러 번 번역기를 돌려도 제대로 된 몽골어가 검색되지 않는다. 어렵게 비슷한 뉘앙스의 번역을 보여주니 뜻을 이해했는지 번역기에 알았다는 몽골어를 써준다.

"휘발유는 주유소에서 파나요?"

한 번 더 가솔린을 번역해서 보여주고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국경 근처의 주유소를 가리키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몽골어가 문제가 아니었어. 이건 눈치와 센스의 문제야!" 

어제 숙소에 와 의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여직원과 대화하느라 힘들었는데 이 직원이 있었으면 훨씬 편했겠다 생각이 든다.

전산이 없이 꼼꼼하게 노트 필기를 하는 자민우드의 숙소, 마치 몽골어가 복잡한 수학 공식처럼 보인다.

방으로 올가와 버너의 연료통을 들고 바로 내려온다. 숙소 입구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나와 페달을 밟으니 핸들이 요란하게 흔들거린다.

이내 가벼운 핸들에 적응을 하고 천천히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국경이 있는 주유소로 도로를 따라간다. 

몽골도 중국처럼 80, 92, 95의 숫자를 붙여 휘발유를 판매한다. 80번은 디젤이고 92와 95는 가솔린인데 차이는 아직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무실에 있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연료통과 함께 번역기로 가솔린을 보여준다. 약간 의아해하며 안된다는 X 표시를 두 팔로 표시를 하는 남자 직원에게 자전거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버너로 음식을 하는 사진을 보여준다.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계속 안된다는 의사 표현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솔린을 팔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작은 버너 연료통만큼은 팔 수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10리터의 커다란 연료통을 가져오더니 그곳에 가솔린을 받아 버너의 연료통에 넣으라고 제스처를 한다. 

"얼마에요? 1리터만 주세요."

핸드폰을 주니 2,000의 숫자를 적어준다. 1리터에 900원 정도의 가격이니 중국과 휘발유 가격은 비슷한 것 같다.

주유소의 직원에게 2,000투그릭를 주니 주유기 측면에 붙어있는 곳에 숫자를 누르고 큰 휘발유통에 휘발유를 넣어준다.

버너의 연료통에 부으라는 제스처를 하며 주유소 건물의 측면 모래밭으로 안내해주며 양동이을 건네준다.

"브로, 남자는 함부로 흘리지 않아. 걱정 마!"

필요한 만큼만 연료통에 휘발유를 담은 후 남은 휘발유는 직원에게 돌려준다. 무려 75일 동안 사지 못했던 가솔린을 몽골에 넘어와 쉽게 산다.

"됐다. 버너의 연료도 샀고." 

돌아오는 길 자민우드 초입에 있는 작은 공원의 탑도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여직원에게 빨간 연료통을 들어 보이니 빙긋 웃는다.

"이제 남은 위안화를 환전해 볼까."

중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위안화는 505.5위안이 남아있다. 8만원 정도의 금액이니 어제 ATM에서 찾아 쓴 투그릭과 합치면 울란바토르까지 사용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숙소 앞에 있는 은행에 들어가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며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가장 측면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며 환전하는 곳을 물어보니 다행히 한 사람만이 창구에 서서 업무를 보고 있는 한가한 창구이다.

"번호표 같은 게 설마 있나?"

주위를 둘러봐도 번호표 같은 것은 보이질 않고 은행 창구에도 딱히 순번을 알리는 숫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환전 창구로 가 바닥에 그려진 안내선에 서서 차례 기다린다.

"뭐라고 쓰여있는 걸까? 여기서 대기? 가까이 오지 마시오? 줄을 서시오?"

어느새 익숙해진 위안화. 남은 0.5위안은 기념으로 넣어두고 505위안을 환전할 것이다.

한 사람밖에 없어 빨리 환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은행 직원은 계속해서 지폐를 세는 카운터기를 돌리며 오른쪽과 왼쪽의 카운터기를 모두 사용해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아무래도 지폐의 종류가 많고 금액에 따른 지폐의 숫자가 많아 반복적으로 카운터기를 돌려야 하는 것 같다.

"야, 이 동네는 돈 세느라 하루가 다 가겠네."  

20분 넘게 돌아가는 카운터기의 숫자들만을 구경하는 사이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지폐 확인이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온다.

위안화를 보여주며 환전을 하고 싶다고 하니 환전 신청서 같은 것을 건네준다. 환전할 금액과 이름을 적으라 알려주고 뒤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서명을 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고참으로 보이는 여직원을 부르더니 무언가를 상의하고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적으라고 한다.

"핸드폰 번호를 적으라고?"

몽골 유심을 사며 핸드폰 번호가 생겼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확인하고 당당하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더니 재미있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

한 다발의 투그릭을 건네줄 거라 생각했는데 환전 영수증을 주고.

처음보는 돈들을 조금 건네준다.

"금액이 맞나? 왜 이렇게 조금 주지. 만수르가 되고 싶었는데, 실망스럽게."

20,000투그릭, 10,000투그릭, 5,000투그릭, 1,000투그릭 그리고 잔돈들까지 해서 1위안당 391투그릭으로 환전을 해준다.

"무슨 지폐가 이렇게 많아. 주체할 수가 없네."

숙소로 돌아오니 여직원이 다른 방 키를 흔들며 나를 부른다. 와이파이를 확인하라며 함께 올라가자는 제스처를 해서 그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간다.

공유기가 붙어있는 복도의 첫 번째 방을 내어주며 와이파이를 확인하라고 안내를 한다. 활기차게 모든 안테나를 채우고 있는 와이파이를 확인하고 OK 표시를 해준다.

4층으로 올라와 짐들을 나눠 들어주고 3층으로 방을 옮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글을 벗고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보이질 않는다. 방을 옮기며 꼼꼼하게 남겨둔 물건이 없나 확인을 했는데 안경을 빠뜨리고 온 모양이다. 

다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안경을 놓고 왔다는 제스처를 하며 '안경'이라고 한국말을 하니 한국말로 대답을 한다.

"한국말을 하시네요?"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405호에 안경을 놓고 왔나 봐요."

"알았어요."

작은 도시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자민우드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어제의 여직원은 보이지 않고 그녀가 추천해 주었던 세 번째 메뉴 스팀 비프를 주문한다. 감자와 함께 모양 좋게 나온 음식은 제법 괜찮았지만 어제의 파인애플 치킨보다는 조금 맛이 덜하다.

몽골 숙소에서는 물은 큰 물통을 통째로 준다.

캠핑을 대비해 무거운 무게를 감내하며 들고 다녔던 고용량 보조 배터리도 충전을 시켜 놓고 음식들을 사기 위해 기차역 앞의 마트로 간다.

2중으로 되어있는 나무 문이 항상 닫혀있는 자민우드의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무엇이 있나 천천히 매장을 둘러본다.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뾰족구두 신사화처럼 생긴 동물의 특수 부위도 통째로 있다.

"이게 대체 어느 부위인 거야? 혓바닥인가, 턱인가?"

매장 곳곳에서 한국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박카스와 레츠비 그리고 뽀로로 음료수까지 있다.

일단 두툼한 햄과 빵 그리고 잼을 사들고.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몽골의 즉석 식품도 무게가 가벼워 하나 사둔다.

과자와 쵸콜릿 등을 조금 골라 담고 계산대로 가 어떻게 계산을 하나 궁금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바코드를 찍으며 쉽게 계산을 한다. 단지 카운터의 책상 서랍에 엄청난 양의 지폐들이 꽂혀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계산을 끝내고 마트 내에 있는 문구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사 먹었는데 엄청나게 달아서 먹느라 힘들다. 

마트 2층에는 미용실과 화장품 가게 그리고 옷 가게 같은 것이 있고 분위기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으로 먹으려던 파인애플 치킨을 포기하고 매운 컵라면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몽골에서 파는 매운 컵라면에는 중국처럼 플라스틱 포크가 들어있다.

조금 나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잘까 생각하다 내일부터 시작될 몽골 라이딩을 위해 짐들을 재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양치와 세수를 하려고 칫솔세트를 열어보니 세트 상자에 세면도구가 모두 들어있다.

숙소에 들어와 비누와 샴푸를 찾아도 없어 가지고 다니던 세면도구를 사용했는데 이곳에 한꺼번에 들어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빗은 중국이나 여기나 필수품이구나."

패니어의 짐들을 풀어 헤치며 중국 남부의 빗속을 달리게 도와주었던 6위안짜리 고무장갑을 버린다.

"잘 썼다. 당분간 비 맞을 일이 없으니 여기까지."

패니어의 짐들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중국의 우중 라이딩에 맞춰져 있던 짐들을 캠핑에 적합하게 재분배한다.

렉 패니어에 들어있던 옷들과 잡동사니들을 빼내고 침구류와 취사도구들을 넣고 캠핑용 식량으로 채워 넣고.

취사도구들이 빠져나간 프런트 패니어에 노트북을 옮겨 담고.

노트북이 빠져나간 리어 패니어에는 겨울옷들을 넣어 둔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리어 패니어를 뒤적이며 물건들을 꺼내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많은 짐들이 어떻게 패니어에 다 들어가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짐들을 풀어헤치고 나니 마음은 개운한데 몸이 피곤해진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몽골의 초원과 사막, 높은 고산지대와 드넓은 호수를 향해 달려보자. 밤하늘을 보며 캠핑도 해보고..  

"몽골, 너를 보여줘!"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5일 / 맑음 ・ 16도
중국 얼롄하오터-몽골 자민우드
중국과 몽골의 국경을 넘어 몽골 자민우드로 향한다.

이동거리
15Km
누적거리
8,197Km
이동시간
1시간 24분
누적시간
576시간

전개로
AH3
8Km / 35분
7Km / 49분
얼롄하오터
중몽국경
자민우드
 
 
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일찍 잠에서 깨었다. 위챗을 교환했던 몽골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다.

"오늘 몽골로 넘어가자!"

식당으로 내려가니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어제 먹었던 볶음밥이 없어 간단한 빵들과 볶음면으로 식사를 한다.

패니어와 짐들을 하나씩 체크해가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왕칭옌은 출근 전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고 이틀간 여러 가지 신경을 써준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서 다니는 거야? 애인이나 부인이 없어?"

"메이요! 한국에 여자가 없는데 중국에도 여자가 없네. 중국에 여자가 없어서 이제 몽골로 가는 거야."

직원들과 농담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중국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마워 중국!"

숙소를 나와 공룡공원의 건너편 얼롄하오터 이우샹마오청(二连浩特义乌商贸城)으로 간다.

자전거를 끌고 승합차와 짚차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니 '멍구'를 외치며 사람들이 다가온다.

"취 멍구, 뚸 샤오 첸?"

국경을 넘는 차량의 비용을 묻는데 대답은 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차로 가자고만 한다. 아저씨의 차는 짚차가 아닌 승합차다.

"알았어. 얼마야?"

자전거를 바닥에 눕혀버리고 가격을 확인하니 자전거를 살피더니 100위안을 달라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비싸다고 말하니 사람만 가면 60위안인데 자전거를 실어야 하니 100위안을 줘야 한다고 한다.

"빠스! 나 돈 없어. 빠스!"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탈탈 털어 보여주며 80위안에 가자고 하니 못 간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자전거를 실으라 차로 안내한다. 숙소를 나오며 잔돈들을 모아 주머니에 80위안만을 담고 나머지는 자민우드에서 환전을 하기 위해 패니어에 넣어두었었다.

다른 여행자들을 보면 50~150위안을 내고 국경을 넘는 것 같지만 그들과 가격을 두고 흥정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80위안도 비싸게 느껴지지만 66위안의 기차 비용을 생각하면 적당하다 생각한다.

다음의 여행자들을 위해 바가지를 써가며 비용을 지불할 생각도 없고, 야박하게 몇 천 원의 가격을 흥정하느라 실랑이를 하고 싶지도 않다. 안전하게 국경을 넘는 것이 최우선이고 나에게 80위안은 그 정도의 댓가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70위안으로 양고기를 사 먹었기 때문에 더 낼 돈도 없다.

패니어들을 떼어내 차곡차곡 차량의 안쪽에 집어넣고 자전거를 싣고.

"아저씨 사진이나 같이 찍어요!"

뭔가 서두르는 아저씨를 잡아 사진을 찍는데 자꾸 고개를 돌린다.

"50위안까지 깎으려다 만 거예요. 80위안이면 적당히 좋구만."

서둘러 탑승하라는 아저씨의 재촉에 못 이겨 승합차에 오르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저씨는 마땅한 손님들이 보이질 않는지 광장 앞을 출발한다. 손님은 동행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아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

공룡공원을 지나 지내길을 돌던 차량은 다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차량을 세운다. 가족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짐들을 싣고 차량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내 북적북적해진 승합차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한국 사람! 같이 사진 찍어요."

흔들거리는 차량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 하니 모두들 거부감 없이 흔쾌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다.

각자가 붉은색의 몽골 여권을 손에 들고 있어 몽골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중국, 한국, 미국 등의 출입국 스탬프가 빼곡하게 찍혀있는 여권을 보여주며 각 나라들의 스탬프들을 설명해 준다.

"우와, 많이도 다녔네! 뭐 하러 간 거예요?"

번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구글 번역기를 여러 번 검색하여 보여준다.

"여행요."

앞자리에 앉아 무릎을 맞대고 있던 젊은 남자아이가 한국말로 짧게 대답을 한다. 스치듯 들려온 한국말이 낯설게 느껴지고 방금 전 한국말로 답변을 한 남자아이를 쳐다본다.

"한국말인데. 한국말 할 줄 알아?"

툴가, 한국 이름이 대원이라는 젊은 아이는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몽골의 학생이다. 5년 정도 어학원과 대학을 다니며 수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은 휴학 중이라서 몽골에 와 있다고 한다.

몽골의 여행의 막연한 시작과 함께 행운처럼 찾아든 회색 후드티를 둘러쓴 이쁘게 잘 생긴 툴가와의 만남이다.

"툴가, 잘 생겨서 한국에서 인기가 많겠다."

"한국에 친구가 많지는 않아요."

이삿짐센터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느라 충분히 즐겨야 할 청춘의 시간이 여유롭지만은 않은 듯싶다. 나 또한 그러한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의 젊은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20대의 시간을 현실의 삶에 묶여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고 안쓰럽다.

"툴가한테 잘 보여야겠다. 툴가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테니까."

네트워크가 끊기기 전에 툴가의 전화번호와 페이스북 등 연락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받아 놓고.

툴가와 대화를 하는 사이 승합차는 무지개 아치가 있는 중국의 국경에 이르렀다.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출입구에서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통과한 후 승합차에서 내린다.

승합차는 손님들을 내리고 오른 편에 있는 차량 출입구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정면에 보이는 중국 출입국 사무소로 걸어간다.

무지개 아치를 지나서.

얼롄하오터의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간다.

출국 심사대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고 특별히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는 것 같은 검문대를 통과한다.

"아, 나는 출국카드 작성해야지."

툴가의 가족들은 바로 출국 심사대로 가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그들을 따라가던 중 출국카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다.

"어디 보자. 이름, 여권번호, 생년월일, 성명, 국가명, 서명 그리고 차량번호?"

차량번호를 공란으로 비워두고 사람들의 뒤편에 서서 출국심사 사진을 찍으니 보안요원이 다가오며 핸드폰을 가리킨다.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눈치 빠르게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지운 후 보안요원에게 보여준다.

"Ok? 땡큐!"

다른 요원들과 달리 싱글싱글 웃으며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라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된다.

출국카드를 작성하는 사이 사람들이 줄을 서 툴가네 식구들과 떨어져 서있으니 툴가의 식구들이 자기네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한다.

"툴가, 차량 번호는 어떻게 적었어?"

툴가도 잘 모른다하여 툴가의 출입국 카드에 적힌 차량번호를 적었다. 특별히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별문제 없이 출국 스탬프가 찍히고 심사대의 중앙에 놓인 단추들에서 서비스를 평가해달라는 한국어 안내 멘트가 나온다.

"생각 같아선 울상을 짓고 있는 스마일 맨을 눌러주고 싶은데 참는다."

툴가네 식구 중 한 명이 두리번거리다 출국 심사의 순서를 잠시 놓친 사이 큰소리의 호통을 치며 부르던 출국 심사원이다.

"좀 웃으면서 친절하게 해라. 촤식아!"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고,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E자를 보이며 끊겨있다.

"헤이, 코리안!"

퉁명스럽게 나를 부르며 요금을 달라고 한다.

"아직도 삐쳐있는 거야? 80위안 많이 받은 거잖아. 웃어 아저씨!"

출입국 사무소의 반대편으로 나와 기다리던 승합차에 올라타고 여권에는 중국 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출국 스탬프가 찍혀있다.

"비와 산길, 황사와 주숙등록, 고산의 초원과 바람.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럼 됐다!"

국경을 넘기 전 출국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승합차는 몽골의 국경으로 넘어간다.

몽골의 지역에 이르러 이번에는 군복을 입은 몽골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작은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여 다시 차량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입국심사!"

2개의 입국 심사대가 있는 몽골의 입국 심사대에 사람들이 서 있고 툴가네 식구들을 따라가던 중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보인다.

"툴가, 난 입국 카드를 써야 하는데. 입국 신고서가 어디에 있지?"

입국 신고서의 서류함에는 종이 쓰레기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입국 심사원에게 건네받은 입국 신고서를 툴가에게 건네받고 입국 신고서를 작성한다.

"이름, 생년월일, 성명, 국가, 여권번호, 비자유형, 비자번호, 입국일, 서명 그리고 주소? 핸드폰?"

툴가가 자기의 집 주소를 적어 넣고 나머지 모르는 항목들을 공란을 비워둔다. 문제없이 입국 심사가 끝나고 몽골의 입국 스탬프가 찍힌다.

입국 심사대를 나오면 사무실과 은행 ATM 기기들이 놓여있다. 건물이 작다 보니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알려준다. 무서운 모래바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불어온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작은 건물로 들어가 보니 조그마한 매점이 있다.

잠시 후 바쁘게 서두르는 아저씨의 재촉으로 승합차에 오르고 툴가의 친척은 여권을 잘 넣어두라며 바람막이의 포켓을 가리킨다.

몽골 출입국 사무소의 출입문을 통과하며 입국 스템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보여준다.

"이거 언제까지 보여줘야 하는 거야?"

"이제 다 끝났어요!"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와 툴가네 식구들은 자신들의 차량이 주차된 곳에서 짐들을 내리고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천천히 해도 될법한데 매서운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뭐가 그리 급한지 재촉을 하는 승합차의 아저씨 때문에 더 정신이 없다.

"툴가네 식구들하고 사진을 한 장 찍어야 하는데."

짐을 옮기느라 바쁜 툴가를 불러 사진을 찍고 연락을 하겠다 인사를 나눈다.

"헤이! 코리안!"

"아저씨 알았어. 사진 찍고 갈게! 왜 소리를 치고 그래."

툴가네 식구들과 헤어지고 승합차는 자민우드로 향한다.

몇 분 후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자민우드에 도착하고 도로변에 자전거와 짐을 내려준다.

"아저씨! 땡큐!"

듣는 둥 마는 둥 퉁명스레 인사를 하며 떠나는 승합차 아저씨.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난 후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소한 자민우드의 풍경을 보며 어색한 낯설음을 가라앉힌다.

"아이고 또 막막하다!"

습관적으로 고덕지도를 실행시키고 닫은 후 구글 지도를 실행시킨다. 위치를 정확히 잡지 못하지만 지도상 자민우드의 기차역 부근인가 싶다. 10미터 정도 자전거를 끌고 가니 넓은 주차장에 승객을 태우려는 승용차들로 가득하고 주차장 넘어 오래된 자민우드의 역사가 나온다.

자민우드의 기차역 광장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휑하니 비어있다.

"일단 여기가 기차역이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오른 편에 있는 경찰서의 건물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숙소를 검색한다.

"일단 숙소를 잡고, 유심을 교체하고, 환전을 하면 되는 거지."

트립닷컴과 부킹닷컴에는 호텔이 검색되지 않고, 구글지도를 검색하여 호텔의 아이콘을 찾는다.

"현금과 온라인이 끊겨있으니 비싸더라도 알려진 호텔로 가보자!"

현재 위치가 부정확하게 나오는 구글 지도를 보며 자민우드의 역사를 기준으로 건물들을 파악한 후 내 위치를 확인한다.

"저쯤에 호텔이 하나 있겠네."

경찰서 밖에 나와 대화를 하는 경찰관에게 호텔의 위치를 한 번 더 정확하게 확인하고 호텔을 찾아 이동한다. 단순한 자민우드의 길을 따라가는데 호텔의 모습과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모래가 잔뜩 쌓여있는 흙길의 골목을 갸우뚱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내가 찾던 호텔이 나온다.

모래가 쌓여있는 골목길과 허름한 집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 호텔의 정문은 두꺼워 보이는 철문이 닫혀있다.

"열려 있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관과는 달리 깨끗한 실내에 프런트가 보인다. 투숙이 가능한지를 묻고 와이파이가 되는지를 물으니 방들의 가격표가 적힌 종이 노트를 보여준다. 120,000투그릭, 100,000투그릭, 60,000투그릭.

"알았어. 환전은 어디서 해?"

중국 돈을 보여주며 환전을 하는 제스처를 해도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 이거 몽골 큰일 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고 60,000투그릭이 적힌 노트만을 자꾸 보여준다.

"중국 돈밖에 없어. 중국 돈 받아?"

곁에서 이 관경을 지켜보던 젊은 여자가 노트에 '1위안=370투그릭'이라고 적어 보여준다. 핸드폰 환율기를 확인하니 1위안이 390투그릭 정도 하는 것 같다.

"이 누나, 여기서 달러 장사를 하려고 하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속아주는 게 편하다. 200위안을 주고 숙소비를 결제하고 잔돈을 받아든다.

자전거를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 하여 호텔 정문의 난간에 묶어두고 프런트 직원과 짐을 나눠들고 4층으로 올라간다.

"정말 자전거 1층에 넣어두면 안 돼? 밖이 안전해?"

안전하다며 손가락으로 OK 모양을 만들며 싱겁게 웃는다.

숙소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회화 어플을 뒤적거려 '환전은 어디서 해요?'를 찾아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잘 알아들었지만 몽골어로 설명을 해준다.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도 지도앱으로 잘 찾지를 못하고 은행 표시가 되어있는 아이콘을 가리키니 그제서야 맞다고 한다. 은행은 숙소의 골목을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있다.

중국의 남은 위안화를 투그릭으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지만 ATM 기기가 있는 창구만이 열려있고 은행의 사무실은 닫혀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환전하는 곳을 물으니 위쪽으로 돌아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작은 은행 건물을 한 바퀴 돌았지만 출입구는 없고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른 은행들이 있던 자민우드 기차역으로 나간다.

넓은 광장에 작은 간이역처럼 오래된 자민우드의 기차역.

기차역 앞에 ATM 기기에도 사람들이 붐비고 한가한 역전의 광장을 보며 그제서야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요일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다.

어쨌든 숙소의 결제를 위안화로 해두어 특별하게 큰돈이 필요하지 않아 급할 것은 없다. 자민우드의 역사를 돌아 기차는 타는 곳을 구경한다.

겨우 10km 정도를 넘어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건물들과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트인가?"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가게의 두꺼운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슈퍼네!"

웬만해서는 문을 닫지 않는, 문이 없다는 표현이 맞는 중국과 달리 이곳의 모든 상점은 두꺼운 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한자로 된 중국 상점들의 간판을 읽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 집인지 바로 알 수 있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는 이곳은 도무지 어떤 가게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양의 슈퍼마켓이다. 중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냉장 시설을 갖춘 슈퍼마켓이 여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제품이 엄청 많구나. 내일 캠핑을 할 장을 봐야겠다."

슈퍼를 잠시 둘러보고 몽골의 통신회사인 유니텔, G모바일, 스카이텔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편의점 같은 작은 가게인데 핸드폰의 소모품들도 함께 팔고 있다.

핸드폰을 가리키며 유심카드를 말하자 바로 알아듣고 모빌콤과 유니텔의 유심을 보여준다.

"모빌콤 20,000투그릭 5G, 유니텔 10,000투그릭 데이터 메이요!"

"데이터가 없어?"

툴가의 가족에서 몽골에서 네트워크가 좋은 통신회사를 물었을 때 유니텔이 시골에서도 잘 터진다고 알려주어 유니텔의 유심을 사서 쓸려고 했었는데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

"데이터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아 몰라. 망해도 5,000원이야. 유니텔로 줘."

숙소비를 결제하고 남은 잔돈으로 10,000투그릭을 주며 핸드폰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 유니텔 유심을 구매한다.

중국 여행 기간 동안 수고한 차이나유니콤의 유심을 제거하고.

몽골의 유니텔 유심으로 교체한 후.

핸드폰을 재부팅하고 PIN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 창에 유심카드에 적힌 핀 번호를 입력한다.

"이건 뭐라지?"

핸드폰에 데이터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는다.

"APN 설정 같은 것이 또 있는가? 일단 툴가에게 전화를 해서 번호도 알려주고 물어보자."

75일 만에 생긴 핸드폰 번호로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데이터 없이 통화만 되는 유심카드가 있는지 물오본다. 유심 연결과 함께 날아든 통신회사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해도 데이터 연결은 되지 않는다.

문자로 툴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데이터가 안되다 보니 그림 파일 전송이 되질 않는다.

"형, 따로 4G 사요."

툴가에게 위챗을 쓰는지 물었지만 위챗은 쓰지 않고 카톡이 있다고 한다. 툴가의 카톡을 등록하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숙소로 돌아와 툴가에게 유심칩 카드를 보내준다.

"이건 통화만 되는 건가?"

"네 이것은 안돼요!"

"힝!"

"가게에 가서 데이터를 따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근처의 유니텔 통신사의 매장이 있는지 숙소의 여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눈치가 전혀 없는 여직원은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느라 바쁘다.

"일단 다시 가게로 가보자."

갖고 있는 현금이 없어 은행의 ATM 서비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붐빈다. 3개의 기기 중 양쪽의 기기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기가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가끔 카드를 잡아먹는 ATM 기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중국에서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기다렸다 사용했었다. 영어 서비스가 되는 ATM 기기에서 50,000투그릭을 찾아서 기차역의 편의점으로 다시 찾아간다.

기차역의 주차장은 오전에 비해 차량들이 많이 빠져나가 있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갑자기 붐빈다.

일단 펩시 콜라 하나를 사들고 결제하려니 가격을 말하려던 여주인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계산기에 1,500을 눌러 보여준다.

몽골의 물가는 환율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우리 물가의 0.45 정도의 수준이니 쉽게 절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툴가에게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을 몽골어로 적어달라고 하니 영자로 몽골어를 적어 보내준다.

"몽골도 영자로 글자를 치니?"

"영자로도 쓸 수 있어요."

중국처럼 몽골도 발음들을 영자로 쳐서 메시지를 보내고 읽을 수 있는가 보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툴가가 적어준 메시지를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니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핸드폰을 주니 문자창을 열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툴가에게 답장을 하려나 보다 생각하며 툴가의 전화번호를 눌러주니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자를 보낸 후 나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내가 숙소에서 해봤던 것인데!"

몽골 유니텔의 유심의 사용 현황을 알아보는 방법인데 숙소에서 네이버를 검색해 설명대로 해서 데이터가 없는 유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423번에 문자 메시지 Help를 보내면 유니텔의 데이터 사용에 따른 가격표들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해당 상품을 적어 보내고 세 번째로 On 메시지를 보내면 현재 가입되어 있는 통신 상품의 현황이 보여준다.

"아, 이게 가격표였구나."

캠핑을 하며 데이터 테더링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용량이 많으면 좋을 것 같아 30일 50G의 상품을 가리키며 50,000투그릭을 아주머니에게 준다.



핸드폰 번호를 물어 유심카드에 적힌 번호를 보여주니 작은 단말기에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고, 핸드폰으로 1432로 문자들을 보내자 데이터가 연결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든다.

"몽골은 이렇게 유심을 충전해서 사용하는구나."

그냥 우리의 교통카드 충전하듯이 통신사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가게에 들어가 요금만 지불하면 충전이 된다.

"됐다. 숙소도 잡았고, 돈도 찾아봤고, 핸드폰도 연결을 해놨으니 이제 밥이나 먹자."

숙소 앞 ATM 서비스로 다시 돌아가서 당분간 사용할 현금을 다시 찾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ATM 서비스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영어 서비스로 차분하게 기기의 안내를 살펴 가며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찾는다.

우리처럼 카드가 먼저 나오고.

5,000투그릭 지폐의 돈이 나오는데 돈다발이 나온다. 마치 10만원을 5천원권으로 찾는 기분이다.

"왠지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 단층의 흙집들과 모래 바닥 그리고 매운 컵라면 쓰레기까지.

호텔의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다.

깨끗한 실내가 마음에 들고 짧은 영어가 되는 발랄하고 귀여운 몽골 여자아이가 주문을 받는다.

"What do you recommend here?"

영어를 받아 몽골어로 번역하던 여자는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 그리고 스팀 비프를 생글생글 웃으며 추천해 주었다. 생기가 있고 좋은 기운을 갖은 사람이다.

양이 얼마만큼인지를 몰라 세 가지를 모두 달라고 한다.

"Three meals?"

"Is it a lot of food to eat alone?"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을 추천한다.

"그래, 그렇게 줘!"

커피를 마실 건지를 묻더니 밀크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잠시 후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에피타이저의 수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커다란 닭고기 국이 나왔다. 제법 맛이 나는 국물인데 찰진 흰밥이 먹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국물 요리네."

곧이어 잘 구워진 파인애플과 치킨이 올려진 메인 메뉴가 나오고 입맛이 군침으로 요동을 친다. 샐러드와 감자, 잘 구어진 치킨과 맛있는 소스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고 있으니 마치 중국을 떠나온 지 몇십 년이 지난듯한 느낌이다.

닭고기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주고 식사를 마친다.

계산을 하려니 여자아이가 잘 안되는 영어 발음으로 가격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냥 숫자를 적어줘."

워낙 금액들의 숫자가 크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쉽게 나누기 2를 해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고마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고마워'의 발음을 알려주고 웃으면서 식당을 나온다. 언어에 대한 감각과 재미를 알고 있는 여자 아이다.

몽골의 콘센트는 중국과 다르지 않다. 220V 전압을 사용하고 둥근 모양과 일자 모양 그리고 삼지창 모양의 콘센트를 사용한다.

나무로 된 방문은 열쇠를 사용해서 잠그고.

중국의 비와 흙먼지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고생을 하고 패니어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U락을 꺼내어 자전거를 한 번 더 묶어둔다.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중국에서는 자전거 분실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몽골의 분위기는 잘 모르니 일단 안전하게 잠가둔다.

숙소에 쉬면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와이파이가 너무 약해 사진을 업로드 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복도의 마지막 방이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질 않는다.

"이것까지는 올리고 자야 해. 내일부터 초원에서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고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는 자민우드의 석양을 보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 여유롭다 느껴진다.

4, 5분이면 될 사진의 업로드 시간이 6시간이 넘게 걸렸다. 12시가 넘어서야 업로드가 끝나고 하루를 정리한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뜻하지 않은 좋은 친구를 만나 편안하게 국경을 넘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낯선 여행길에서 크던 작던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땡큐, 툴가!"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4일 / 맑음 ・ 12도
얼롄하오터시
중국에서의 마지막 하루, 여행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182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75시간

숙소
숙소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얼롄하터
바수이전
얼롄하터
 
 
5,433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의 휴식으로 무거웠던 피로들은 사라졌다.

어제 방으로 들어왔던 아주머니는 조식권을 테이블에 놓고 갔나 보다.

7시 30분, 식당으로 일찍 내려가니 어제 보지 못했던 볶음밥이 메뉴에 있다. 중국의 북서부 지역은 특히나 만두로 아침을 즐겨 하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소량의 볶음밥을 모두 담는다.

중국 여행의 밀린 일기들을 정리하며 오전과 오후의 시간을 보낸다.

위챗의 아이디를 확인했던 남자에게 짧은 메시지가 왔지만 내일의 출발 가능 시간에 대한 답변이 없다. 그가 아니더라도 공룡 광장의 건너편에는 몽골로 넘어가는 차량들이 많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정리한다고 했는데, 노트북이 고장 나며 밀려있던 일기들이 제법 많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정리를 해 둬야 할 텐데."

하루하루의 일기를 쓰는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그때의 시간들과 느낌들을 남겨두고 싶은 것뿐.

혹여 나처럼 불량하고 무모한 여행자가 있다면 그의 여행에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쑤니터우이치에서 보낸 시간들을 정리하다 보니 해가 저물며 어둠이 내려앉는다.

"배가 출출한데, 어제 먹은 양고기가 생각나네."

몸이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는 무조건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

어제 늦은 점심을 먹었던 가게로 들어가니 저녁인데도 별로 손님이 없다.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니 알아보며 손 인사를 한다.

생각할 것 없이 어제의 메뉴 그대도 주문하고, 잔 술이 백주도 달라고 말한다.

"두 번째 오니까 고기양이 조금 더 늘었나."

"밍티엔, 워 취 멍구!"

짧은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고 가게를 나온다.

내일이면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한국을 떠날 때보다는 가볍지만 비슷한 느낌이 든다.

설레고, 무겁고, 두렵고, 흥분되고, 머물고 싶고, 떠나고 싶고 등등의.

"이제는 중국이 제법 편해졌는데, 하루 정도 더 머무를까? 아니지. 쉬더라도 내일 몽골 자민우드로 넘어가서 쉬자."

"가자!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몽골로."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3일 / 맑음 ・ 10도
얼롄하오터시
강한 맞바람을 맞으며 120km 넘게 라이딩을 한 탓에 몸이 쇠덩이처럼 묵직하다. 겨우 조식 시간에 맞춰 몸을 일으키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동거리
15Km
누적거리
8,182Km
이동시간
2시간 56분
누적시간
575시간

시내길
공룡공원
5Km / 21분
10Km / 1시간 35분
얼렌하터
중국국경
얼렌하터
 
 
5,432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오른쪽 어깨가 쑤셔온다. 다섯 개의 알람을 모두 패쓰하고 9시 30분 조식을 먹기 위해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조식 타임이 아니었다면 오전 시간 내내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쑤니터우이치의 사람들에게 위챗의 메시지와 함께 피드의 댓글로 응원의 문구들이 올라와 있다. 어제 인사를 못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식당으로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 내려가 남아있는 음식으로 접시를 채우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판, 미판 메이요?"

여러 가지 종류의 만두와 빵들이 메뉴들이라 볶음밥이 보이질 않아 아쉽다.

양고기 내장탕 같은 것에 고수를 가득 올려 한 그릇 담아 놓고 보니 이건 밥과 함께 반주를 곁들여야 제격일 듯싶다.

"저쓰 썬머?"

조죽과 빵, 계란으로 배를 채우고 과일을 먹으며 식당 정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과일의 이름을 물어본다. 주점들의 조식을 먹으며 자주 먹던 과일인데 섬유질이 풍부하고 달지 않아 제법 맛이 있었다.

"화룡과!"

"엉? 이게 화룡과었어!"

원피스의 능력자 열매처럼 생긴 화룡과의 맛이 궁금했었는데, 지금까지 계속 먹었던 디저트 과일이 화룡과다.

"..."

식사를 하고 프런트로 내려가 여직원에게 몽골로 넘어가는 방법들을 물어보았지만 잘 알지 못한다.

"너네 동네인데 왜 몰라?"

고덕지도의 얼롄하오터에서 몽골의 자민우드 방향으로 끊겨있는 도로에 국경 검문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 어제 저녁에 계시던 관리 아저씨마저 보이질 않고.

"국경 검문소가 어디에 있어?"

한참을 이것저것 뒤적이고 주변에 전화를 하던 호텔 여직원이 그 길이 맞다며 알려준다.

"前进路!"

얼롄하오터의 치엔진루(前进路, 전진로)의 끝에 국경 검문소가 있는 것 같다. 숙소에서 자민우드 방향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거리.

"일단 가서 확인해 보자!"

따스한 햇살 아래 거세게 불어오는 강풍, 일기 예보대로 강한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온다.

20여 분 얼롄하오터의 한적한 시내길을 달려 전진로의 끝부분에 도착한다. 무지개 아치가 세워진 검문소와 뒤편으로 출입국 관리소 같은 건물이 보이고, 몽골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짐들을 들고 도로변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검문소까지 다가가 자전거를 세우자 검은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이 다가온다.

"워쓰 한궈렌. 밍티엔, 취 몽구! 쯔싱처, 커이취마?"

자전거를 가리키며 여기로 갈 수 있는지 물으니 보안요원이 무언가 안내한다. 번역기로 번역을 하려니 구글 번역기가 먹통이다.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것인지 며칠 동안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 파파고를 돌려보지만 역시나 반응속도가 느리다. 보안요원의 말을 복사하여 파파고에 붙여넣기를 하고 있으니 다른 요원이 다가와 제재를 하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노노! 번역기!"

"번역기?"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알고 제재하려던 요원에게 눈치 빠르게 손사래를 치며 번역기라고 한국말을 하니 어리둥절하니 나를 쳐다만 본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를 지나갈 수 없고 차를 타고 지나가야 한다."

파파고에 번역된 내용을 확인하고 있으니 두 번째로 다가온 요원이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묻더니 짧은 영어로 버스를 타고 지나가야 한다고 덧붙여 설명해 준다.

"언더스탠?"

"오케이, 땡큐!"

짤게 설명을 한 남자는 첫 번째 요원에게 우쭐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시크하게 돌아간다.

보안 요원이 가리키던 곳, 사람들이 길가에 서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1번 버스가 정류장에 서더니 이내 유턴을 하여 반대 방향으로 넘어간다.

"아, 이건 여기까지만 운행하는 중국 버스인가 보다."

"몽골로 어떻게 넘어가는 거야? 지아오강강도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는데."

짐들을 들고 도로변에 서있는 사람들의 곁에 앉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몽골어를 하는 사람들의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번역기도 불통이다.

사람들은 낡은 짚차들이 도로변을 지나치면 손을 들어 차를 잡으려 하고, 낡은 짚차 안에는 보통 4, 5명의 사람들이 오밀조밀 뒤자석에 앉아있고 차의 뒤쪽에 짐들이 가득 실려있다.

"아, 국경을 넘어가는 짚차를 얻어 타는구나!"

나와 함께 한참 동안 길가에 서있던 부녀가 짐들을 들고 짚차에 올라타고.

짚차를 잡아주었던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몽골에 가냐며 말을 건다.

"차를 타는데 얼마예요?"

"150위안."

"자전거도 실어줘요?"

중국어를 하는 아저씨에게 짧은 질문들을 하고 패니어와 짐들이 많다는 내용을 번역하려니 번역기가 다시 먹통이 된다.

"젠장, 꼭 중요할 때 이래."

쑤니터우이치에서 지아오강강은 몽골 사람들이 요금을 높게 요구할 것이라며 최대한 깎으라고 알려주었다. 지아오강강에게 위챗을 하여 150위안을 달라고 한다는 내용을 보내니 자신들도 그 정도 요금을 냈다고 답장을 한다.

"2, 3km 정도 가는데 150위안이면 되게 비싸네!"

"일단 알았으니 돌아가자."

비싼 요금을 차치하고 아무리 중국과 몽골의 국경이라고 하지만 대책 없이 길가에 서서 국경을 넘는 차량들을 잡아탄다는 것이 너무 고전적이고 투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짚차들이 출발하는 데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국경을 넘는 비용과 2, 3일 얼롄하오터에 머무를 경비를 찾는다.

"이틀치 숙박비 300위안, 국경 차량비 150위안, 밥값으로 조금 사용하고 나머지는 몽골에서 환전을 하면 되겠다."

숙소 근처에 있는 얼롄하오터역으로 가본다.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나? 150위안은 너무 비싸잖아. 그리고 대책 없이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것도 난감하고."

예전의 역사처럼 보이는 곳을 중심으로 왼편에 국제선, 오른 편에 국내선의 기차역이 새로 들어서 있다.

자민우드까지 기차표와 수수료를 포함하여 66위안이지만 자전거를 실을 수는 없다.

"쯔싱처, 취부러!"

빵과 과자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프런트 여직원에게 자전거로 자민우드를 갈 수 없다고 알려주고 몽골에 가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본다.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정신을 팔고 있던 여직원은 정말 자전거로 갈 수 없냐며 나에게 되물어 본다.

"그래, 못 가. 차를 타고 가야 해! 이런 건 남자들이 잘 아는데, 아저씨는 어디 간 거지."

여직원과 몽골에 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1층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내가 몽골에 가는 법을 안다! 그들은 서쪽 광장에 모여있다."

중년의 남자가 몽골로 가는 차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며 다가온다. 고덕지도를 보여주며 그곳을 알려달라 부탁하니 숙소 근처 공원의 건너편 주점을 가리킨다.

"여기에 몽골로 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 씨에씨에! 뚸 샤오 치엔?"

"빠스!"

중년의 남자는 가위 모양의 손가락 숫자를 보여주며 80위안이라고 말한다.

"너는 나보다 더 모르니?"

"맞아! 여기에 있어!"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타박을 하는 제스처를 하니 그제서야 공원의 건너편에 몽골 사람들이 있다며 맞장구를 친다.

"여기 맞아? 공원 쪽이야 아니면 공원 건너편이야?"

여직원은 공원의 건너편을 가리키며 호들갑스럽게 웃는다.

"뚜이, 뚜이!"

"하하하. 근데 너 이름이 뭐니?"

"왕칭옌(王青燕, 왕청연)."

드라마와 오락프로를 보며 웃느라 바쁜 통통한 몸매의 왕칭옌은 성격이 밝고 유쾌한 여자 아이다.

어제 저녁 숙소를 잡고 지나쳐 왔던 곳, 단체로 춤을 추던 공원의 길 건너편 공룡 모형이 사거리에 놓여있는 공롱광창(恐龙广场, 공룡광장)이다.

몽골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곳으로 가는 중 도로변의 상가 앞에서 물건들을 싣거나 내리는 몽골 번호판의 짚차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중국과 몽골을 오가며 물건들을 나르는구나."

거리의 간판들에는 중국어와 중국 몽골어 그리고 몽골어까지 함께 표기되어 있다.

공룡광장 건너편 얼롄하오터이우샹마오청(二连浩特义乌商贸城) 앞에 도착한다. 도로변에 물건을 싣는 짚차들과 몽골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몽골의 이동통신을 취급하는 노점도 보이고.

상가의 앞은 몽골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있으니 젊은 남자가 다가와 몽골에 가는지 묻는다.

"밍티엔, 취 몽골."

자전거를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으니 옆을 지나가던 마른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90위안이라고 한다.

"지우쓰, 나인티!"

"아저씨, 80위안인 거 알고 있어요!"

자전거와 함께 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핸드폰에 들어있는 자전거의 사진을 찾는 동안 젊은 남자가 갑자기 영어를 한다.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는 젊은 남자.

"I have a bike and baggage."

"Ok. Are you going to Mongo?"

"Zamyn-Uud. I'll go to Zamyn-Uud. tomorrow!"

젊은 남자와 내일 자밍우드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90위안을 말했던 중년의 남자가 이번에는 80위안이라며 '빠스'를 외치고 있다.

"아저씨, 50위안에도 갈 수 있다는 거 다 알아요!"

젊은 남자는 중국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핸드폰이 없다고 말하고 위챗으로 연락을 하겠다고 하니 젊은 남자에게 친구등록을 해달고 한다.

젊은 남자는 위챗등록을 한 후 내일 연락을 하라며 바쁘게 돌아가려고 한다. 젊은 남자를 불러 악수를 청하고 내일 연락을 주겠다 말한다.

"땡큐!"

시크하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젊은 남자.

"브로, 남자는 시크해야 해. 뭘 좀 아는 녀석이군!"

"일단 몽골로 가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사거리에 공룡의 모형이 있는 광장이 왜 공룡광장인지는 모르겠다. 넓은 광장에는 놀이기구를 타는 몇몇 사람들만이 있을 뿐 한가롭기 그지없다.

"멍구렌!"

숙소로 돌아와 왕칭옌에게 위챗을 보여주며 몽골인을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니 따라서 웃는다.

밥 먹을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무엇이 먹고 싶냐며 되묻는다.

"로우, 양로우! 肉, 羊肉!"

근처에 맛집이 없는지 한참을 고민하더니 사람들과 이것저것 대화를 한 후 숙소에서 한 블록쯤 떨어져 있는 곳을 알려준다.

"쩌리, 하오츠마?"

"뚜이!"

10분 정도 왕칭옌이 알려 준 식당으로 걸어갔지만 폐업을 했는지 아무것도 없이 가게가 휑하다.

"에헤, 중국에도 둥이짓을 하는 애가 있네!"

잠시 근처의 식당들을 둘러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중국의 식당들은 낮에는 불을 꺼놓아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들어선 식당 역시 불이 꺼진 채 조리복을 입은 아저씨가 소파에 누워있다.

가게로 들어선 나를 보며 놀라 일어나는 주인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물으니 한 명이냐며 묻는다.

"이거. 커이 츠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식사를 할 수 있다며 메뉴를 보여준다.

"너는 닭고기와 양고기를 먹을 수 있다."

메뉴판에 있는 돼지고기 고추볶음은 중국여행을 하며 너무 많이 먹었던 메뉴라 고수와 양고기가 있는 메뉴를 주문하고 밥을 달라고 말한다.

"몽골로 가는 차비 70위안을 아꼈으니 그것으로 양고기를 먹을 테야!"

주인이 조리를 하는 사이 식당을 둘러본다.

오랜만에 보는 원재료들이 들어있는 냉장고.

엄청나게 큰 고추.

"피망인가? 어쨌든 부럽네!"

둥글둥글한 가지.

요상하게 생긴 버섯.

그리고 술.

큰 술병에 밸브를 달아 잔으로 파는지 500ml에 20위안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카운터 뒤편으로 모시는 신의 제단이 있고.

잠시 후 향긋한 양고기 볶음이 나온다.

고수가 조금 들어가 있어서 아쉽지만 적당히 매콤한 양고기가 한 접시 가득 담겨 나온다.

"아, 뭔가가 빠졌어!"

아저씨에게 술병을 가리키니 술병 위에 놓인 비이커를 꺼내어 보여주며 150ml의 눈금을 가리키고 6위안이라고 말한다.

"위에 놓은 술병은 42%, 아래 놓인 술병은 40%."

풍미가 좋은 양고기와 향긋한 중국 백주로 맛있는 점심을 하고.

"중국의 술과 고기 맛을 이제서야 알겠네."

이국적인 건물들과 맑은 하늘의 얼롄하오터, 거리를 거닐며 숙소로 돌아간다.

오래된 골목도 구경해 보고.

숙소 앞에 놓인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강풍을 못 이기고 넘어져 있다.

"왕칭옌, 이 집은 망했어!"

숙소에 돌아와 왕칭옌이 알려준 식당이 폐업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프런트 위에 있는 컵들이 무언지 물어보니 그냥 물을 먹는 컵이라고 한다. 홍보용 컵으로 보이는 것을 하나 가져가라며 손짓을 하는 왕칭옌.

방으로 돌아와 여행 자료들을 정리하려니 졸음이 밀려든다. 오후 4시가 넘으며 밝고 환한 햇볕이 넓은 창문을 통해 방안을 따듯하게 비추고, 두꺼운 커튼을 치고 신통치 않은 어깨를 주무르며 이내 잠이 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각,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깬다.

잠을 잘 때 모든 옷을 다 벗고 자는 버릇 때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잠결에 침대 시트를 당기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주머니와 잠시 눈이 마주친 후 다시 잠들어 버린다.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으며 무언가를 말하고 아주머니는 방을 나간다.

"몰라. 잘 거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2일 / 맑음 ・ 10도
쑤니터우이치-얼롄하오터
3일동안 강한 서풍의 바람예보, 초속 7, 10, 8 미터의 강풍. 즐겁게 보낸 쑤니터우이치의 시간을 뒤로하고 중국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얼롄하오터로 향한다.

이동거리
120Km
누적거리
8,167Km
이동시간
8시간 51분
누적시간
572시간

G208
G208
50Km / 4시간 00분
70Km / 4시간 51분
쑤니터우
얼롄시계
얼례하터
 
 
5,41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8시,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깬다.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가니 아침을 먹자며 우창정이 웃고 있다.

세수와 양치만을 하고 프런트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은 하늘에 바람에 불어온다.

아무리 봐도 중국 몽골어는 비슷하니 구분이 잘 안된다.

따뜻하게 몸을 덥혀주는 우유차와 양고기만두 그리고 계란으로 아침을 먹는다.

"오늘 몇 시에 얼롄하우터로 갈 거야?"

식사를 마칠 때쯤 얼롄하우터로 몇 시에 떠날 것인지를 물어 10시에 떠나겠다고 알려준다.

"우리가 너와 함께 조금은 같이 가줄게."

대구에 사는 딸의 전화번호를 물어 카카오톡 친구 등록을 해둔다. 간간이 소식들을 전하고, 몽골어를 하면 몽골 여행 중 도움을 받을까 싶었는데 몽골어는 못한다고 한다.

지아오강강은 오늘 갈 길이 멀고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힘들다는 제스처를 한다.

"오르락내리락은 메이콴시. 펑 헌 난!"

"진티엔 시펑!"

"뚜이! 오늘 난 죽었다."

8시 30분, 식사 후 10시에 주점에서 다시 만나자며 모두들 돌아가고, 방으로 돌아와 펑크가 난 튜브를 정비하고 짐들을 정리하고 나니 10시가 되어간다.

"아, 떠나기가 아쉽네."

준비를 마치고 프런트에 앉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보이질 않고, 처음 보는 동호회분과 함께 출발을 하자고 한다. 10시에 오겠다며 돌아간 지아오강강도 보이질 않고 주점의 사장도 보이질 않는다.

"아직 인사를 못 드렸어요!"

대구 아저씨는 괜찮다고 하며 어서 떠나자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늦은 출발 시간으로 120km가 넘는 얼롄하오터까지 일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아저씨의 안내를 받으며 쑤니터우이치의 시내를 벗어나고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간다. 아저씨들의 뒷모습이 천천히 사라져간다.

1시간을 겨우 달려 10km에 있는 톨게이트에 도착한다.

작별 인사를 못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우창정은 차량으로 이동해 톨게이트 앞에서 박수를 치며 맞아준다.

"다행이네. 보고 갈 수 있어서."

톨게이트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서로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쉬운 마음들을 달랜다.

"바빠서 돌아다니느라 대접을 제대로 못하고 미안하다."

젠틀하고 친절한 우창정은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떠나려는 나에게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코코넛 사탕들을 모두 꺼내어 전해주는 대구 아저씨와 아무것도 없다며 농담을 하는 우창정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얼롄하오터로 향한다.

"위챗으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쑤니터우이치의 사람들과 헤어지고 톨게이트를 바로 지나치자 길은 G208 국도로 접어든다. 무섭게 불어오는 서풍의 바람 소리와는 달리 어린이 동화책에서나 그려져 있을법한 뭉게구름들이 하늘 가득 퍼져있다.

"하늘은 이렇게 좋은데."

자전거를 세우고 하늘을 바라보며 쑤니터우이치에서 보낸 3일간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하우촌 사람들, 청여요의 식구, 우바이주, 리즈훼이, 제임스 커피텔의 직원들 그리고 쑤니터우이치의 사람들까지. 중국 여행 중 만났던 그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작별의 아쉬움이 크지만 그 감정의 깊이만큼 내 안에 무언가가 채워져있을 것이다.

"가자. 중국 여행의 마지막 얼롄하오터로!"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의 길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오는 바람, 시속 10km의 속도조차 나질 않고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리며 길을 기어간다.

간간이 지나쳐가는 화물트럭의 소용돌이에 자전거가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향을 하느라 더욱더 힘이 든다.

"10시, 이 속도라면 10시가 돼야 얼롄하오터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30분에 채 5km의 전진도 힘들어지며 야영을 할 것인지, 얼롄하오터까지 야간 라이딩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야영을 하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지만 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어 그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도로는 좋으니 얼롄하오터까지 최대한 가보자."

초원지대를 지나고 사막 지대에 가까워지며 바람과 함께 사막의 모래까지 휩쓸려 날아든다.

"아 정말 대단한 바람이다.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불어올 수 있을까?"

땅바닥만 쳐다보며 페달링을 하는 사이 나를 지나치던 오토바이 한 대가 도로변에 정차를 한다.

"저 멋진 머신은 무엇이지?"

인사를 하며 선뜻 물 한 병을 건네주며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바이크 라이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전거와 패니어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댄다.

"통화를 하는 거야? 실시간 방송을 하는 거야?"

몸을 휘청이게 하는 바람 속에서 핸드폰을 갖다 대며 인사를 하라는 바이크 라이더.

"니 하오!"

창시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중국을 한 바퀴 돌겠다는 라이더의 여행루트가 보인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막혀있지 않은 대륙이라 너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의 폭이 부럽긴 하다."

남북이 나누어져 단절되고 막혀있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우리도 지도를 보며 마음껏 상상하고 도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취 나리?"

촬영을 끝낸 라이더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자 얼롄하오터로 간다고 한다. 얼롄하오터에서 얼마 정도 머무를 것인지 물으니 하루를 보낼 계획이라 말한다. 이틀 정도 머물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잠은 어떻게 자니?"

"호텔과 캠핑을 한다."

"캠핑? 좋겠다! 한궈렌, 자이 중궈 부커능 캠핑."

중국에서 여행한 경로를 보여주니 자신에게 여행 루트를 보내달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중국의 여행 루트와 네임카드를 건네준다.

"형은 요렇게 갈 거다!"

위챗으로 친구등록을 하고 사진을 찍을 후 바이크 라이더와 헤어진다.

"오늘만큼은 네가 부럽다. 엄청 빨리 가네!"

멋진 바이크 라이더와 얘기를 하느라 30분을 잡아먹고 겨우 엘롄하오터의 시계에 도착한다.

"이제 겨우 1/3 온 거야?"

패니어에 들어있는 유일한 비상식 '나의 친구' 초코파이를 꺼내어 먹는다.

"어떻게 120km가 넘는 도로 구간에 주유소 한곳이 없냐고!"

씽씽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소리 대신 음악을 듣기 위해 GPS용 핸드폰을 꺼내보니 배터리가 모두 떨어져 꺼져있다.

"뭥미? 언제부터 꺼져있었던 거야?"

세찬 바람과 함께 40여 분의 GPS 기록도 날아가 버리고 오른쪽 어깨가 조금씩 아파온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바람을 맞으며 길을 이어가는 중 바이크 라이더에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리는 위챗 메시지가 날아온다.

"현재 나의 위치. 얼롄하오터 숙소!"

"..."

바이크 라이더에게 답장을 하려니 네트워크가 불안정하여 인터넷 연결조차 되질 않는다.

오후 4, 6시간 동안 55Km를 겨우 이동하여 첫 번째 마을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4~5채의 집만이 들어서 있고 아무것도 없다.

오후 5시 65km 이동. 일몰까지 2시간 30분 정도 남아있는데 남은 거리는 50km.

"1시간에 10km 정도면 10시에 도착하겠네. 뭐 나쁘진 않다. 초원의 일몰을 보며 달려보는 거야."

6시 30분, 천천히 일몰이 시작되며 끊임없이 불어오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한다. 속도를 내어 보지만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나있고 오늘은 콜라 파워조차 낼 수 없다.

6시 40분, 얼롄하오터까지 30km를 남겨두고 톨게이트가 나온다.

"일몰시간 7시 30분이면 대략 8시까지는 석양이 남아있을 텐데. 1시간 반 동안 20km는 달려야겠네. 아이구!"

마지막 체력으로 속도를 내어 달려야 하는데 초원의 붉은 노을이 바쁜 여행자의 발목을 잡고.

오후부터 침침하고 어두워지던 시야, 흙먼지로 인해 고글이 더럽혀졌나 생각했는데 고글을 벗고 일몰을 쳐다봐도 그리 선명하지가 않다.

하루 종일 정면으로 맞아온 바람으로 눈이 충혈되어 백내장이 온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해버린 것이다.

"곧 어두워질 텐데. 라이트를 꺼내야 하나?"

이내 태양은 사라지고 붉은 석양만이 남아있다. 라이트를 꺼내어 장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워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길을 따라 달리기로 한다.

석양의 남은 불빛과 간간이 지나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아간다. 저 멀리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모습과 함께 도시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7시 50분. 거대한 공룡 조각상이 세워진 얼롄하오터시에 도착한다.

"드디어 도착했네. 정말 징하다. 바람!"

가로등이 켜져 있는 얼롄하오터의 외곽에 도착했지만 도심까지는 10km가 더 남아있다. 눈이 충혈되어 뿌옇게 보이는 시야는 더욱 흐려져 속도조차 낼 수가 없다.

8시 30분, 얼롄하오터의 시내에 들어서 내비게이션을 끄고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한다. 생각보다 많은 숙소들이 검색되고 여러 가지 따질 것 없이 저렴한 4성급 호텔을 선택한다.

천천히 한기가 밀려오고 충혈된 눈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외곽의 풍경과 달리 얼롄하오터의 시내는 화려하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단체로 춤을 추며 운동을 하고.

9시, 숙소에 도착하여 무리 없이 체크인을 마치자 얼롄하오터까지 무사히 도착했는지를 묻는 쑤니터우이치의 사람들에게 도착 메시지를 보낸다. 하루 종일 도착 소식이 궁금하여 걱정들을 하고 있었나 보다.

숙소의 관리 아저씨가 방까지 짐을 올려다 주고 자전거는 프런트의 옆에 놓아두었다.

"나 2~3일 여기에 더 머무를지도 몰라."

영업 종료를 하려는 식당에서 양고기와 덮밥을 시켜 먹으니 테이블과 식당의 청소를 하느라 바쁘다. 남은 양고기를 포장하여 숙소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며 따듯한 물에 하루의 피로를 풀어도 하얀 이물질이 낀 것처럼 눈은 잘 보이지 않고 어른쪽 어깨까지 잘 들리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바람이었다. 어쨌든 도착했으니 됐고!"

위챗과 인스타에 얼롄하오터에 도착했다는 피드를 남기고.

12시, 남은 양고기와 슈퍼에서 사온 작은 백주 한 병을 마시고 기절한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1일 / 맑음 ・ 10도
쑤니터우이치-홍산다카르
바람이 불지 않는 쑤니터우이치의 아침, 쑤니터우이치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막으로 간다.

이동거리
181Km
누적거리
8,047Km
이동시간
4시간 21분
누적시간
563시간

S101
S101
93Km / 1시간 21분
88Km / 3시간 00분
쑤니터우
홍산
쑤니터우
 
 
5,29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이다. 8시가 되기 전 잠에서 깨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바람이 불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다.

8시,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주점의 사장과 쑤니터우이치의 사람들이 방문을 두드린다.

"밥 먹으러 가자!"

4명의 사람들과 주점의 식당에서 아침을 함께 한다. 이른 아침 주점의 식당은 제법 사람들로 붐빈다.

테이블에 앉아 따듯한 우유차로 속을 달래고, 평상시에 우유를 전혀 먹지 않는데 거부감 없이 고소하고 맛이 좋다.

삶은 계란과 함께 작은 밀가루 과자 같은 것도 나오고.

딱딱한 밀가루 과자를 우유차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

일단 삶은 계란을 하나씩 나눠먹고.

예쁘게 빚은 커다란 양고기 만두도 나오고.

얇은 밀가루 피에 양고기를 넣은 물만두 같은 만두도 나오고.

이것은 간장에 살짝 찍어서 먹으라고 한다.

동그란 만두는 다진 양고기가 들어있는 찐만두 스타일이라면, 꽃처럼 빚어놓은 만두는 조금 더 굵은 양고기가 들어가 있어 육즙이 풍부하고 물만두처럼 느껴진다.

붉은 젓갈처럼 생긴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두부라고 한다.

요우티아오에 살짝 발라며 먹으니 짭조름한 맛이 요우티아오의 기름맛을 잡아주어 썩 괜찮다.

마지막으로 하얀 두유를 따듯하게 마시고 식사를 마친다.

"나는 오늘 바빠서 일을 봐야 해. 세 사람과 사막을 구경하고 우리는 내일 만나자."

언제나 유쾌한 웃음을 보이는 우창정은 바쁘게 자리를 일어나며 사막 구경을 잘하고 오라고 말한다.

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를 챙겨 숙소 밖으로 나오니 흰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막에서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던 남자가 오늘의 가이드인 모양이다.

앙증맞은 바이크의 미니어처가 놓여있는 차를 타고 사막으로 향한다.

얼롄하오터의 동쪽 방향으로 끝없이 뻗어있는 초원의 도로를 따라 1시간을 달려간다.

"이 땅들에 주인이 있나요?"

"있다!"

"이렇게 넓은데요?"

"이 넓은 땅들은 모두 개인들의 것이고, 수천만 평이다."

"와, 땅부자네. 땅부자!"

한 시간 넘게 달리던 차는 작은 마을로 들어가 정차를 한다.

작은 시골집의 창고가 열리고 4륜 구동의 짚차와 오토바이가 놓여있다.

"아, 이걸 타는구나! 멋지다!"

오토바이에 별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그 모양이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고 처음 보는 바이크의 형태이다.

그리고 제법 포스가 느껴지는 사막용 짚차.

짚차로 갈아타고 앞자리의 조수석을 나에게 내어준다.

"오, 상남자 스타일!"

짚차를 타고 포장된 도로를 조금 달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흙길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와일드하게 들어간다.

좌우상하로 요동을 치며 달리던 차의 정면으로 사막의 모래 산들이 나타나고 모래 언덕을 향해 차량이 달려간다.

"부릉부릉. "

한차례 모래 언덕을 오르던 차량이 멈춰서더니 후진을 한 후 더 강한 엔진음을 배출하며 가볍게 산을 올라간다. 한 바퀴 크게 언덕의 둘레는 돌더니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언덕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짧은 내리막을 타며 속도를 붙이더니 높은 오르막을 올라탄다.

"와우! 와!"

잠시 하늘에 붕 뜬듯한 느낌이 들더니 시야가 확 트인 높은 언덕에 올라와 있다.

"황산 다카르!"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제스처를 하며 넓은 사막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멋지다!"

잠시 부드러운 모래의 사막을 구경하고.

괜한 사진도 찍어보고.

발자국도 찍어보고.

"해변의 모래사장과는 조금 다르네."

"저 녀석, 모래사막을 처음 보는 거야?"

이리저리 차량으로 돌아다니고.

글자 놀이도 해보고.

"땡큐! 멋진 남자!"

짧은 시간, 광활한 아프리카의 사막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사막의 풍경이고 사막을 달려보는 경험이었다.

"사막이 초원과 섞여있으니 너무 아름답잖아!"

다시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쑤니터우이치로 돌아간다.

12시 30분, 쑤니터우이치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 위해 양고기 훠궈 식당으로 들어간다. 세련된 분위기의 깨끗하고 커다란 식당에서 뭔가를 주문하더니.

달달하고 시원한 차가 나오고.

"이 차 너무 맛있다. 시원해서 정말 좋다!"

조그마한 백주가 두 병이 나오고.

"빠질 수 없지!"

각각의 작은 냄비에 훠궈 육수가 담겨 나온다.

내 육수는 빨간색 매운 국물을 시켜주고.

고수와 함께 여러 가지 양념들을 담아 건네준다.

"이것을 섞어라!"

보글보글 육수가 끓어오르고.

커다란 양꼬치가 에피타이저로 나온다.

"이건 한국에서 먹던 것과 사이즈와 맛이 완전히 틀려요."

그리고 얇게 손질이 된 빛깔조차 고운 양고기가 나오고.

야채와 버섯들을 함께 곁들여 냄비에 넣고.

소스를 찍어 한입 먹으면.

"와! 이런 맛은 한국에 없어. 나 여기에 살고 싶어!"

다시 양고기 한 접시가 크게 나오고.

맛있게, 더욱 맛있게 양고기 훠궈를 즐긴다.

"내가 사위라면 이곳에서 살 텐데!"

두 번째 접시가 반쯤 남았을 때, 마치 늘 먹는 김치찌개를 남기듯 이쑤시개를 들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더구나 이렇게 맛있는 양고기를!"

사람들은 남은 양고기를 몽땅 내 냄비에 집어넣는다.

"일어나 90도 각인사를 해야 하나, 예의 있게 젓가락을 물려야 하나."

고기를 거부할 용기나 체면 같은 것은 나에게 전혀 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먹는 것이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고기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이것 먹고 오늘은 푹 자! 원샷!"

철없는 여행자의 바람으로 200km 정도의 거리는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주고 맛있는 식사까지 대접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지막 술잔을 비워낸다.

숙소로 돌아와 창문으로 스며드는 따듯한 햇볕을 받으며 노곤한 낮잠 속으로 빠져든다.

너무나 편하게 침대를 뒹굴며 잠들다 7가 넘어 잠에서 깨어난다. 잠시 밖으로 나와 조용한 쑤니터우이치의 밤거리를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와 중국의 여행들을 정리한다.

"하루 정도 더 머무를까?"

충분하게 남은 시간과 쑤니터우이치의 시간이 너무나 편하고 좋다. 얼롄하오터까지의 경로들을 확인하고 며칠간의 날씨를 확인한다.

내일부터 시작되어 강한 바람의 날씨가 계속된다. 내일 7m/s 서풍, 금요일 10m/s 서풍, 토요일 8m/s 서풍, 일요일 맑음.

"초당 10미터 서풍이 분다고? 이 정도면 거의 태풍이잖아!"

10미터, 8미터의 바람보다는 7미터짜리 맞바람을 맞는 것이 낫겠다 싶다.

"내일 얼렌하오터로 출발하자."

너무 많은 친절과 환대를 받고 조용한 쑤니터우이치의 시간이 좋지만 더 오래 머무는 것도 민폐, 그리고 날씨 또한 좋지 않아 아쉽지만 내일 얼롄하오터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행 기록들을 정리하며 5시가 되어서야 잠이 든다.

내일이면 중국에서의 마지막 라이딩을 하게 된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0일 / 맑음 ・ 10도
쑤니터우이치
몽골의 국경 엘런하오터시까지 100km가 남았다. 하루면 닿을 거리, 중국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이동거리
39Km
누적거리
7,865Km
이동시간
2시간 00분
누적시간
559시간

X246
X246
21Km / 1시간 03분
18Km / 57분
쑤니터우
초원
쑤니터우
 
 
5,116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9시가 넘어 잠에서 깬다. 12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피곤함과 여전히 남아있는 감기 기운으로 몸이 무겁다.

"하루를 쉴까? 작은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얼롄하오터까지 가서 쉬는 게 낫겠어."

패니어와 짐들을 챙겨들고 자전거가 놓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패니어들을 하나씩 장착한다.

"한국인이냐?"

자전거 복장을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으나 너무나 피곤한 탓에 짧은 대답만을 하고 짐들을 정리한다.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남자의 얼굴을 보며 자전거 여행과 일정들에 대해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들과 자전거를 탄다. 어디로 가느냐?"

"나는 오늘 얼롄하오터에 가야 한다."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진을 보여주는 남자에게 멋있다며 말을 건네니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 자전거 가게에 잠시 들렀다 가라고 한다.

"쯔싱쳐 띠엔? 여기에 자전거샵이 있어?"

"요!"

늦은 출발 시간과 피곤함이 트러블을 일으키던 스프라켓을 교환하고 하루를 쉬라며 유혹의 손길을 던진다.

"하오 취!"

10여 분 정도 남자를 따라 시내를 이동하여 자전거 가게로 이동한다. 후지 브랜드를 단 작은 자전거샵이다.

몇몇의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며 소개를 하고,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

우선 패니어들을 모두 떼어내고 자전거 가게의 주인에게 스프라켓이 마모되어 교환을 해달라고 요청한 후 사람들이 건네주는 차와 담배를 하며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답을 한다.

"나의 큰 딸이 시집을 가 대구에 산다. 10년이 됐다."

큰 딸이 대구에 산다며 사진들을 보여주는 아저씨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니 동호회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씩 가게로 모여든다.

모두들 자전거를 살펴보고 나를 보며 담배를 건네고 차를 따라주고 질문들을 한다. 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재미있는 표정을 하며 반갑게 대해주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얼롄하오터에 언제 갈 거냐?"

"오늘은 못 갈 것 같다. 얼롄하오터로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를 자전거샵으로 안내한 남자에게 하루를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오후에 함께 식사를 하자며 초대를 한다.

"너의 오늘 호텔비는 무료다."

"응?"

"호텔비는 무료!"

호텔비가 무료라는 말에 뜻을 알지 못해 의아해하며 '왜'라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모두들 크게 웃는다.

"너 주점을 하는 거야?"

한 번 더 사람들이 크게 웃어댄다. 젊은 남자는 내가 묵었던 루저우쌍우주띠엔(绿洲商务酒店, 녹주상무주점)의 사장이다.

자전거의 스프라켓을 교환하고 자전거샵의 남자는 교환상태를 체크하라고 말한다. 밖으로 나가 변속을 하며 주행을 하니 트러블 없이 잘 변속이 이루어진다.

크랭크 2단을 가리키며 마저 교환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자전거 가게를 구경한다.

스프라켓을 교환하는 남자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손이 꼼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지런히 놓여있는 정비 공구들에서 그의 성격을 알 것도 같다.

32T 체인링를 들고 34T가 없다고 하여 2단 크랭크는 교체하지 않고 그냥 놔둔다. 32T 체인링을 교체해도 상관없지만 32T는 나에게 가벼운 체인비라 2단이 마모되기 전에 교환하면 될 것 같고, 크랭크를 분해하느라 소요될 시간이 부담스럽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와 자전거를 세차해 주겠다는 자전거샵의 남자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물걸레를 들고 열심히 닦아낸다.

아저씨들과 담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중국을 여행하며 엉망진창 흙먼지가 묻었던 자전거는 중국의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 깨끗해졌다.

생글생글 웃으며 조용하게 말하는 자전거샵 남자의 성격은 내 성격의 대척점 정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친절하고 부지런하다.

12시 되어 식사를 하자며 대구에 사는 큰 딸을 둔 아저씨가 식당으로 안내한다. 가게 주인에게 스프라켓의 가격을 물으니 식당으로 가자며 옷을 챙겨 입는다.

흙벽돌의 담길들을 돌아 빈관의 식당으로 들어가고.

동그란 식탁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는 잡고 있으니 자전거샵에서 보았던 아저씨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모여든다.

"중국에서 가장 좋은 것은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뿐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주점의 젊은 남자가 농담을 하며 유쾌하게 웃는다.

"하하하, 맞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담배를 못 피운다."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이 65세인 쑤니터우이치의 자전거 회원들, 주점의 남자와 자전거샵의 남자가 막내들이라고 소개를 한다.

차가 나오더니 두 병의 중국 술이 먼저 나온다.

테이블을 빙빙 돌려 나에게 한 잔을 집으라 알려주고.

두유를 먹는 자전거샵 남자의 아들에게 젓가락으로 술을 찍어 먹이며 장난을 치는 아저씨와 몇 입 받아먹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아이, 모두가 즐겁고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한다.

하나둘 음식들이 나오고.

말린 쇠고기와 국수.

고기와 야채를 넣은 볶음면.

냉채처럼 시원한 맛이 나고 고수와 파, 오이와 양파들을 넣어 먹는 요리.

고소한 맛이 일품인 콩요리.

아이가 마시는 것은 요쿠르트 같은 것이다.

하나하나 음식들을 먹어가는 동안 담배들도 하나씩 테이블에 쌓여만 가고.

자전거샵의 남자는 지아오강강(叫刚刚, 규강강) 35세, 차분한 성격으로 항상 웃으면서 나긋나긋하게 말을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일을 했었다는 지아오강강은 몽골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준다. 몽골의 치안이 좋지 않아 여행 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과 몽골의 서북부를 여행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여행의 루트를 변경할 것이 좋겠다고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다르항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몽골을 여행할 때는 귀중품을 잘 챙겨야 합니다."

쇠고기 완자가 들어간 탕과 함께 양의 내장 무침 요리도 나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나온다.

"이게 뭐야?"

"양의 지지!"

"지지? 설마 그거야?"

오번역이 된 핸드폰을 보며 손사래를 치며 지아오강강이 다시 천천히 핸드폰에 발음을 한다.

"양의 꼬리!"

"하하하하. 그렇지!"

모든 음식은 맛이 좋고 풍미가 넘치며, 특히 양꼬리의 맛은 그 맛이 정말 예술이다.

"넌 이름이 뭐야?"

"卞且燮"

번역기에 한자로 이름을 적어서 보여주니 섭(燮)자가 중국에서 흔하지 않은지, 아니면 정자로 써서 익숙하지 않은지 잘 읽지를 못한다.

"비엔치에씨에!"

중국어로 이름을 발음해 주니 따라서 내 이름을 부르며 크게 웃던 사람들은 돌아가며 내 이름을 부르고 건배를 권한다.

재미있는 것은 술을 마신 후 탁자를 두드리고 건배를 한 사람에게 빈 잔을 보여준다. 우리가 소주를 마시고 잔을 머리 위로 거꾸로 들어 올리는 것이 '나는 다 마셨다. 너도 다 마셔라.'하는 느낌이라면 이곳의 느낌은 '너를 위해 술잔을 비웠다.'라는 느낌 같은 것이다.

조금 후 지아오강강의 아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저씨들과 즐거운 대화와 함께 술잔을 주고받는다. 그녀의 성격은 지아오강강과 달리 호쾌하고 대범해 보인다.

술을 마시는 그녀를 보며 술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아오강강. 그의 말처럼 나에게도 잔을 들어 원샷을 보여주며 여행을 잘하라며 건배를 권한다.

즐거운 식사 자리가 끝나갈 때쯤 색깔이 예쁜 마늘 한 접을 건네주며 먹으라고 한다.

"이걸 먹으라고?"

모두들 웃으며 마늘이 피부에 좋다느니, 중국인들은 열정이 많다느니 농담들을 주고받는다.

옆에 있던 지아오강강이 마늘 하나를 떼어내어 먹으며 '그냥 먹으라'며 웃는다.

마늘 하나를 떼어내어 껍질을 벗기려고 하니 지아오강강이 그냥 먹으라고 한다.

"아니 생마늘을 왜 먹어?"

처음엔 단맛이 약간 나던 마늘은 그냥 맵다.

"매워!"

다시 한번 테이블이 웃음바다가 되고 점심 식사가 끝이 난다.

대구 아저씨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쉴 것이냐 아니면 우리와 함께 초원으로 자전거를 탈래?"

"자전거를 타러 가자!"

아저씨는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자고 한다.

"패니어를 떼고 자전거를 타야지요!"

어려운 말은 번역기가 전혀 번역을 하지 못한다. 아저씨와 자전거를 두고 설왕설래를 하고 있으니 주점의 남자가 나타난다.

주점의 남자는 자전거를 주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 1층에 있는 넓은 방에 자전거를 넣어두고 방 키를 건네준다. 그리고 도로변에 나가 지나가던 승합차를 잡아 나를 자전거샵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지만 뭐가 이리 친밀도가 높지? 서로 집집마다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는 거야?"

승합차는 자전거샵에 나를 내려주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진다.

"형님, 안 자는 거 다 알아요. 일어나세요. 초원에 가야지요!"

하루 종일 각양각색의 담배가 쏟아진다. 정말 중국의 담배 인심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지아오강강이 자신이 타는 자전거를 내놓고 자전거 회원들은 초원 라이딩을 위해 열심히 준비들을 한다.

70여 일 만에 타는 가벼운 핸들의 자전거, 좌우로 흔들리는 자전거에 이내 적응을 하고 후미에 쳐져 있는 아저씨들을 따라 달린다.

70kg이 넘는 자전거를 끌다가 15kg이 안 되는 MTB를 타니 자전거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난 여기서도 후미야?"

천천히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있으니 선두로 가는 대구 아저씨를 따라가라며 손짓을 한다.

멀리 앞서가던 대구 아저씨도 빠르게 따라잡고 뒤를 따라 천천히 라이딩을 즐긴다.

"300km 넘게 초원을 달려왔는데 쉬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다니."

15km 정도 초원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게르 같은 것이 놓여있고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공연장 같은 곳이다.

사람들과 있으니 개도 무섭지 않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참 좋다.

중간 지점에 조금 있으니 어느새 라이딩 복장을 갈아입은 주점의 남자가 사이클을 타고 나타난다.

"언제 또 나타난 거야!"

돌아가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초원길을 달려 돌아온다.

대구 아저씨의 인증샷도 찍어주고.

자전거샵에 도착하여 후미에 쳐진 아저씨들을 기다리며 잠시 쉰다.

"아직 건강하시네요!"

술을 많이 마셔서 걱정이라는 딸의 말과는 달리 아저씨는 건강하게 잘 달렸다.

아무래도 오늘 쑤니터우이치에서 중국의 모든 담배를 하나씩 건네받을 모양이다.

"저녁으로 백주를 마시고 싶어? 맥주를 마시고 싶어?"

"바이주!"

주점의 남자가 저녁 반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와 맥주는 한국에도 많다며 바이주를 먹고 싶다고 대답한다.

언제나 유쾌한 주점의 남자는 집에서 바이주를 가져오겠다며 자전거샵을 떠나고, 자전거샵에서 휴식을 취한 후 대구 아저씨, 지아오강강 그리고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남자와 함께 저녁을 먹을 음식점으로 이동한다.

양고기 요리를 하는 식당의 2층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주점의 남자는 다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정체가 뭐야?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우창정(吴长征, 오장정), 녹주상무주점을 운영하며 언제나 유쾌하고 위트가 있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남자다.

집에서 가져온 예쁜 포장의 바이주 2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차갑게 보관이 된 바이주는 병도 예쁘다.

"이건 김치인데?"

"파오차이, 泡菜"

"한국의 김치와 맛이 약간 다르다."

젓갈을 사용하지 않아 중국의 향신료 냄새가 조금 있지만 우리의 김치와 거의 비슷한 맛이 난다.

"이 동네에 한국 사람이 3명이 살고 있다."

"정말? 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 사람들은 오래전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아마도 이곳에 김치와 비슷한 것이 있는 이유가 한국 사람이 정착을 하며 이곳에 김치를 알려주고 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양고기를 하는 음식점이다. 한국의 불고기와 비슷하다."

우창정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번역을 하여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들을 한다. 가벼운 농담을 섞으며 위트 있게 말하고 언제나 겸손하게 표현을 하는 젠틀한 남자다.

우창정이 가져온 바이주는 차가운 물에 넣어 냉기를 유지시키고.

양파를 넣고 볶는 양고기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질 때쯤, 시원한 바이주 한 잔을 건배와 함께 마셨다.

"중국 술은 강하지만 향과 풍미가 정말 좋다!"

술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중국 술은커녕 값비싼 양주까지도 향이 진한 술은 전혀 먹지를 않는다. 도수가 높아 숙취가 조금 덜하다는 정도 이외에 특별히 맛이 좋다거나 향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먹는 주량이 많다 보니 숙취가 덜하다는 장점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중국 여행을 하는 70일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여행이 끝나갈 때쯤 중국 술의 맛과 향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중국의 바이주, 참 괜찮은 술이다!"

그리고 노릇하게 구워진 양고기를 맛본다.

냄새 같은 것은 전혀 나질 않는 부드럽고 기름진 양고기의 맛이다.

달짝지근한 소스와 양파, 버섯, 상추 등과 함께 쌈을 하여도 그 맛이 제격이다.

"초원은 6월에 풀이 나서 아름답다."

우창정은 풀이 자란 초원의 언덕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 4륜 바이크 등을 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정말 멋지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노는구나!"

푸른 초원에서 마음껏 달리며 즐기는 모습들이 멋지고 부럽다.

"초원에서 캠핑을 하며 하룻밤 보내고 싶은데, 중국에서는 그것을 못 하게 하니 아쉽다."

푸른 초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곳을 지나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하는 위너님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사진과 여행 경로들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

"아마도 6월이나 7월에 이 녀석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이 녀석이 오면 아름다운 초원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알았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나면, 이곳에 다시 놀러 오겠다. 그때 푸른 초원에서 건배를 하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두 번째 메뉴로 소고기가 나온다. 야채들과 함께 구워진 소고기를 밀가루 전병 같은 곳에 넣은 후 먹으니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사위는 힘들겠다. 이곳 음식이 먹고 싶어서."

"하하하. 사위는 이곳에 두 번이나 다녀갔다."

"손녀들이 많이 보고 싶겠다?"

"그렇다."

대구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저씨는 딸과 손녀가 보고 싶어졌는지 대구에 사는 딸과 영상 통화를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구에 가서 딸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게요."

밀쌈을 하는데 이것저것 젓가락으로 집어넣어 주는 우창정. 그리고 하루 종일 조용하게 말을 하던 중년의 남자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타는 오토바이 사진들을 보여준다.

"와, 멋진데요. 그런데 여기에 사막이 있나요?"

"얼롄하오터로 가는 길의 중간에도 있고, 이곳에서 조금 가면 사막이 있다."

"사막도 보고 싶어요!"

"너를 데려가 줄 수 있어!"

사막에서 오토바이와 4륜 바이크를 타는 영상과 사진을 보며 사막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 얼롄하오터로 떠날 거니?"

"하루나 이틀쯤 더 머물고 싶네요. 몽골에 21일까지 가면 되거든요."

복잡한 이야기가 오가니 번역기는 쓸모가 없는 애물단지가 된다.

"딸의 번역!"

대구 아저씨에게 딸과 영상통화를 하여 내 의견을 전달해 달라 부탁하니 이해하고 전화 통화를 한다. 그사이 세 번째 메뉴로 양고기가 추가되고.

대구의 큰 딸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하루나 이틀쯤 쑤니터우이치에 머물며 사막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한다. 딸의 통역으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모두들 내일 사막으로 가자며 건배를 나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갈 때쯤 오이와 야채를 넣은 수제비처럼 생긴 죽이 나온다.

향긋하게 퍼지는 오이 향이 정말 일품이고 부드럽게 속을 감싸주는 듯 맛이 좋다.

"아, 나 정말 쑤니터우이치가 너무 좋아!"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타지의 이방인에게 관심을 놓지 않고 배려하는 우창정, 한국으로 시집간 딸을 생각하며 여행 온 한국인이 불편하지 않을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대구 아저씨,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나긋나긋하게 설명을 하는 지아오강강 그리고 말 수는 적지만 은근하게 관심을 써주는 남자까지.

"오늘 아침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고 환대를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한다.

"숙소에 가서 편하게 쉬고 내일 보자!"

우창정은 숙소의 방까지 안내를 해주고 화장실과 침대, 커튼 등을 한 번 더 점검한 후 편하게 쉬라며 인사를 하고 떠난다.

"내일 8시에 아침을 먹자. 8시에 올게!"

"아 쓸데없이 너무 넓고 좋은 방이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뜻하지 않은 환대와 고마운 배려들을 받는다. 너무나 즐겁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들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 거칠고 야박할 것 같았던 초원의 사람들은 중국의 어느 지역의 사람들보다 여유롭고 웃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곳은 위험해. 다른 곳을 가. 동남아 좋잖아!"

"그 사람들이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너야!"

여행을 하기 전 사람들은 중국의 내몽골을 경유하는 중국 북서부 지역의 여행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였다.

"네가 사는 집은 위험하지 않니?"

고개를 끄덕이며 싱거운 농담처럼 사람들의 말을 흘려보낸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도움도 되질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삶의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라 놓여있는 또 다른 선택들은 항상 두렵고 두렵다. 하지만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타인의 추측이나 판단 같은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렵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는 더 두렵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불안함. 그 이유 모를 감정의 불온함들로 언제나 삶은 투박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스스로 경험하고 싶은 두려움들은 강한 삶의 욕구로 나를 지탱한다.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삶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장기를 빼내갈지 모른다던 이곳의 사람들은 언제나 웃으며 대화를 하고 그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뚜이'.

"对! 对!"

방긋 웃으며 말을 하고, 상대의 말에 '맞아, 맞아'를 먼저 말하며 상대의 말을 끊는 법도 모른다.

언제나 부정적인 표정으로 온갖 세상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가식의 웃음으로 자신의 말만을 들어달라 악다구니를 쳐가며 살아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 우리들의 현재다.

"잘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잘 웃고 여유롭다. 양과 소의 장기는 좋아하는 것 같다만 나의 장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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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9일 / 맑음 ・ 12도
샹황기-쑤니터우기
일찍 잠들었지만 몸이 무겁다. 옌칭현에서 시작된 바람과 오르막 길의 피곤함이 누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동거리
123Km
누적거리
7,865Km
이동시간
6시간 30분
누적시간
559시간

S208
X508
57Km / 2시간 45분
66Km / 3시간 45분
샹황기
교차로
쑤니터우
 
 
5,07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듯싶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확인한다. 이곳은 평균적으로 풍속 5~10m/s 정도의 바람은 일상적인가 싶다. 창문으로 찬 공기의 쌀쌀함이 느껴진다.

"으, 추워."

오늘 가야 할 주리허진이나 쑤니터우기는 모두 100km가 훌쩍 넘는 거리이다. 20km 정도 차이가 나는 두 곳을 두고 고민하다 바람과 진행 속도를 보고 갈림길에서 목적지를 결정하기로 한다.

"바람만 없으면 내리막길이니 어렵지 않게 쑤니터우기까지 갈 수 있는데."

체크아웃을 하며 여직원에게 중국어와 몽골어를 모두 구사하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오, 대단해! 몽골어는 너무 어렵다."

"몽골어는 어렵지 않아!"

번역기로 몽골어를 번역하여 여직원에게 보여주니 글씨를 못 알아본다.

"이게 몽골어잖아?"

"이건 중국의 몽골어가 아니다."

"중국의 몽골어하고 몽골의 몽골어가 다른 거야?"

"뚜이!"

언어 자체가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하게 표기법은 다른 모양이다.

"뭐, 그렇다 치고. 이 글자를 구분하여 인식하는 게 더 신기하다."

동풍이 살살 불어오는 초원의 길을 따라 출발한다.

평형한 초원의 길은 하늘로 올라간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착시현상처럼 오르막의 경사도와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동풍의 뒷바람이 페달링을 가볍게 해주고, 맑은 하늘과 구름, 고산지대 초원의 아름다운 곡선들을 보면서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어제와 달리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다.

"이틀 동안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산을 내려가는 오늘만큼은 맘껏 즐겨보라 이거지?"

가벼운 몸풀기 라이딩으로 쌀쌀한 기운을 없애고.

"구름이 조금 많네. 하늘을 가렸어. 어쨌든 좋아!"

어제 사놓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목적지를 120km의 쑤니터우기로 결정한다.

"그럼 달려 볼까!"

뒤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을 받으며 길게 뻗어 이어지는 초원의 길을 달린다.

경쾌한 페달링으로 넓은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달린다.

어떠한 고민도 잡념도 없이.

삶의 시간이 풍경과 함께 스쳐가는 듯.

평온하다.

저 멀리 말들을 몰고 오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보이고.

자전거를 세우고 그에게 인사를 했다.

"멋진데!"

짧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핸드폰에 사진을 찍고, 멀리 달아난 말들을 쫓아 서둘러 남자는 웃으며 떠난다.

바람의 도움으로 힘들지 않게 60km 가까이 이동을 했다. 쑤니터우기로 가는 두 개의 갈림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고.

좌회전을 하며 살짝 방향이 바뀐 도로는 거센 바람이 완벽하게 뒷바람으로 자전거를 밀어준다.

"이런 바람이면 200km도 순식간에 갈 수 있겠는데."

주리허전(朱日和镇)과 쑤니터우기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을 한다. 70km의 거리는 남기고 완벽한 뒷바람을 맞으며 주리허전을 경유하여 쑤니터우기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약간의 측면 바람을 맞으며 쑤니터우기로 바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바람이 조금 아쉽지만 다이렉트로 가 보자. 설마 바람이 바뀌지는 않겠지."

S208 국도를 벗어나 작은 소도로를 타고 쑤니터우기로 향한다. 측면으로 바뀐 바람의 방향이 조금 불안하지만 잠시 바람을 이기며 가다 보면 도로의 방향이 바뀌어 뒷바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언덕이 이어지는 길이 이어지고.

화물차의 통행마저 완전히 사라진 조용한 도로를 독차지하고 길을 이어간다.

작은 언덕을 오르고 바람을 피해 자전거를 세운다.

맛있는 벌꿀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주변의 풍경은 어느 순간 붉은 토양의 초원으로 바뀌어 있다.

붉은빛의 땅, 마치 화성의 일부를 떼어 놓은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달린다.

신비롭지만 적막한 풍경 속 라이딩의 심심함을 사진찍기 놀이로 달래보고.

쓸데없는 사진도 찍어보고.

달린다. 몇 채의 붉은 흙벽돌 집들이 들어선 마을에 들어선다.

자전거를 세우고 화물트럭에 무언가를 싣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말똥, 소똥인가?"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도 함께 펼쳐져 있다.

"똥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이것으로 집을 짓는 것은 아니겠지?"

도로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너무 놀면서 왔나. 조금 빨리 달려야겠어."

잘 생긴 말의 무리들에게 인사도 하고.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놓인 언덕을 지나간다.

"마지막 언덕인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지나 쑤니터우기로 향하는 마지막 페달링을 힘차게 밟아본다.

평평한 초원의 지평선으로 쑤니터우기의 모습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하하하. 다 왔다!"

소도로에서 수직으로 만난 G208 국도로 접어들자 거센 맞바람이 자전거를 휘청이게 만든다. 주리허전을 경유하여 G208 국도를 타고 쑤니터우기로 왔다면 거센 맞바람을 맞으며 왔겠다 싶다.

국도를 벗어나 쑤니터우기로 들어선다. 내몽골 자치구의 작은 도시 쑤니터우기, 그 모습은 생각했던 대로 조금은 황량하게 느껴진다.

시내로 들어서 잠시 숙소를 확인하기 위해 사거리 교차로에 자전거를 세운다.

"KFG?"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주변에서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이내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패니어를 단 자전거를 호기심 있게 관찰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쑤니터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숙소들이 검색된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중 찾아가던 주점 대신 녹주상무주점으로 들어간다.

"자전거만 잘 보관할 수 있으면 아무 곳이나 괜찮지 뭐."

깔끔한 주점에 들어서 주숙등록이 가능한지를 묻고,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프런트의 여직원은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알려주며 방으로 자전거를 가져가도 된다고 말한다.

여권을 주고 주숙등록을 하는 동안 몇몇의 직원들이 모여 상의를 하고 체크인이 끝난다. 그리고 시니어급의 여직원이 다가와 자전거를 주점의 뒷마당에 놓아두라고 안내를 한다.

"자전거 잃어버리면 안 돼. 여기 안전한 거지?"

괜찮다는 여직원의 안내를 두어 차례 확인한 후 자전거를 잠가두고 패니어를 풀어 방으로 올라간다. 자전거를 놓아둘 공간이 부족한 작은방이라 자전거를 밖에 묶어두라고 안내한 모양이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주점의 식당으로 내려가 어제 먹었던 곱창볶음의 사진을 보여주며 음식을 주문을 한다.

"두 번 먹어도 맛있군."

"기름진 양곱창볶음에 이것이 제격이다."

든든하게 두 공기를 해치우고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피곤하고 약간은 지쳐있다.

"한 번의 라이딩이면 중국의 여행이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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