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잠이 깨어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온다. 프런트에는 어제의 여직원이 아닌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다.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는지 햇살이 좋은 아침이다.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하루 더 머무를 것이라 말하니 바로 이해하고 알아듣는다. 어제의 눈치 없던 직원과 달리 업무에 능숙하고 친절하다.
"와이파이가 잘 되는 방으로 주세요."
여러 번 번역기를 돌려도 제대로 된 몽골어가 검색되지 않는다. 어렵게 비슷한 뉘앙스의 번역을 보여주니 뜻을 이해했는지 번역기에 알았다는 몽골어를 써준다.
"휘발유는 주유소에서 파나요?"
한 번 더 가솔린을 번역해서 보여주고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국경 근처의 주유소를 가리키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몽골어가 문제가 아니었어. 이건 눈치와 센스의 문제야!"
어제 숙소에 와 의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여직원과 대화하느라 힘들었는데 이 직원이 있었으면 훨씬 편했겠다 생각이 든다.
전산이 없이 꼼꼼하게 노트 필기를 하는 자민우드의 숙소, 마치 몽골어가 복잡한 수학 공식처럼 보인다.
방으로 올가와 버너의 연료통을 들고 바로 내려온다. 숙소 입구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나와 페달을 밟으니 핸들이 요란하게 흔들거린다.
이내 가벼운 핸들에 적응을 하고 천천히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국경이 있는 주유소로 도로를 따라간다.
몽골도 중국처럼 80, 92, 95의 숫자를 붙여 휘발유를 판매한다. 80번은 디젤이고 92와 95는 가솔린인데 차이는 아직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무실에 있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연료통과 함께 번역기로 가솔린을 보여준다. 약간 의아해하며 안된다는 X 표시를 두 팔로 표시를 하는 남자 직원에게 자전거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버너로 음식을 하는 사진을 보여준다.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계속 안된다는 의사 표현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솔린을 팔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작은 버너 연료통만큼은 팔 수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10리터의 커다란 연료통을 가져오더니 그곳에 가솔린을 받아 버너의 연료통에 넣으라고 제스처를 한다.
"얼마에요? 1리터만 주세요."
핸드폰을 주니 2,000의 숫자를 적어준다. 1리터에 900원 정도의 가격이니 중국과 휘발유 가격은 비슷한 것 같다.
주유소의 직원에게 2,000투그릭를 주니 주유기 측면에 붙어있는 곳에 숫자를 누르고 큰 휘발유통에 휘발유를 넣어준다.
버너의 연료통에 부으라는 제스처를 하며 주유소 건물의 측면 모래밭으로 안내해주며 양동이을 건네준다.
"브로, 남자는 함부로 흘리지 않아. 걱정 마!"
필요한 만큼만 연료통에 휘발유를 담은 후 남은 휘발유는 직원에게 돌려준다. 무려 75일 동안 사지 못했던 가솔린을 몽골에 넘어와 쉽게 산다.
"됐다. 버너의 연료도 샀고."
돌아오는 길 자민우드 초입에 있는 작은 공원의 탑도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여직원에게 빨간 연료통을 들어 보이니 빙긋 웃는다.
"이제 남은 위안화를 환전해 볼까."
중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위안화는 505.5위안이 남아있다. 8만원 정도의 금액이니 어제 ATM에서 찾아 쓴 투그릭과 합치면 울란바토르까지 사용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숙소 앞에 있는 은행에 들어가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며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가장 측면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며 환전하는 곳을 물어보니 다행히 한 사람만이 창구에 서서 업무를 보고 있는 한가한 창구이다.
"번호표 같은 게 설마 있나?"
주위를 둘러봐도 번호표 같은 것은 보이질 않고 은행 창구에도 딱히 순번을 알리는 숫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환전 창구로 가 바닥에 그려진 안내선에 서서 차례 기다린다.
"뭐라고 쓰여있는 걸까? 여기서 대기? 가까이 오지 마시오? 줄을 서시오?"
어느새 익숙해진 위안화. 남은 0.5위안은 기념으로 넣어두고 505위안을 환전할 것이다.
한 사람밖에 없어 빨리 환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은행 직원은 계속해서 지폐를 세는 카운터기를 돌리며 오른쪽과 왼쪽의 카운터기를 모두 사용해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아무래도 지폐의 종류가 많고 금액에 따른 지폐의 숫자가 많아 반복적으로 카운터기를 돌려야 하는 것 같다.
"야, 이 동네는 돈 세느라 하루가 다 가겠네."
20분 넘게 돌아가는 카운터기의 숫자들만을 구경하는 사이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지폐 확인이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온다.
위안화를 보여주며 환전을 하고 싶다고 하니 환전 신청서 같은 것을 건네준다. 환전할 금액과 이름을 적으라 알려주고 뒤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서명을 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고참으로 보이는 여직원을 부르더니 무언가를 상의하고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적으라고 한다.
"핸드폰 번호를 적으라고?"
몽골 유심을 사며 핸드폰 번호가 생겼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확인하고 당당하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더니 재미있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
한 다발의 투그릭을 건네줄 거라 생각했는데 환전 영수증을 주고.
처음보는 돈들을 조금 건네준다.
"금액이 맞나? 왜 이렇게 조금 주지. 만수르가 되고 싶었는데, 실망스럽게."
20,000투그릭, 10,000투그릭, 5,000투그릭, 1,000투그릭 그리고 잔돈들까지 해서 1위안당 391투그릭으로 환전을 해준다.
"무슨 지폐가 이렇게 많아. 주체할 수가 없네."
숙소로 돌아오니 여직원이 다른 방 키를 흔들며 나를 부른다. 와이파이를 확인하라며 함께 올라가자는 제스처를 해서 그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간다.
공유기가 붙어있는 복도의 첫 번째 방을 내어주며 와이파이를 확인하라고 안내를 한다. 활기차게 모든 안테나를 채우고 있는 와이파이를 확인하고 OK 표시를 해준다.
4층으로 올라와 짐들을 나눠 들어주고 3층으로 방을 옮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글을 벗고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보이질 않는다. 방을 옮기며 꼼꼼하게 남겨둔 물건이 없나 확인을 했는데 안경을 빠뜨리고 온 모양이다.
다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안경을 놓고 왔다는 제스처를 하며 '안경'이라고 한국말을 하니 한국말로 대답을 한다.
"한국말을 하시네요?"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405호에 안경을 놓고 왔나 봐요."
"알았어요."
작은 도시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자민우드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어제의 여직원은 보이지 않고 그녀가 추천해 주었던 세 번째 메뉴 스팀 비프를 주문한다. 감자와 함께 모양 좋게 나온 음식은 제법 괜찮았지만 어제의 파인애플 치킨보다는 조금 맛이 덜하다.
몽골 숙소에서는 물은 큰 물통을 통째로 준다.
캠핑을 대비해 무거운 무게를 감내하며 들고 다녔던 고용량 보조 배터리도 충전을 시켜 놓고 음식들을 사기 위해 기차역 앞의 마트로 간다.
2중으로 되어있는 나무 문이 항상 닫혀있는 자민우드의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무엇이 있나 천천히 매장을 둘러본다.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뾰족구두 신사화처럼 생긴 동물의 특수 부위도 통째로 있다.
"이게 대체 어느 부위인 거야? 혓바닥인가, 턱인가?"
매장 곳곳에서 한국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박카스와 레츠비 그리고 뽀로로 음료수까지 있다.
일단 두툼한 햄과 빵 그리고 잼을 사들고.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몽골의 즉석 식품도 무게가 가벼워 하나 사둔다.
과자와 쵸콜릿 등을 조금 골라 담고 계산대로 가 어떻게 계산을 하나 궁금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바코드를 찍으며 쉽게 계산을 한다. 단지 카운터의 책상 서랍에 엄청난 양의 지폐들이 꽂혀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계산을 끝내고 마트 내에 있는 문구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사 먹었는데 엄청나게 달아서 먹느라 힘들다.
마트 2층에는 미용실과 화장품 가게 그리고 옷 가게 같은 것이 있고 분위기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으로 먹으려던 파인애플 치킨을 포기하고 매운 컵라면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몽골에서 파는 매운 컵라면에는 중국처럼 플라스틱 포크가 들어있다.
조금 나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잘까 생각하다 내일부터 시작될 몽골 라이딩을 위해 짐들을 재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양치와 세수를 하려고 칫솔세트를 열어보니 세트 상자에 세면도구가 모두 들어있다.
숙소에 들어와 비누와 샴푸를 찾아도 없어 가지고 다니던 세면도구를 사용했는데 이곳에 한꺼번에 들어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빗은 중국이나 여기나 필수품이구나."
패니어의 짐들을 풀어 헤치며 중국 남부의 빗속을 달리게 도와주었던 6위안짜리 고무장갑을 버린다.
"잘 썼다. 당분간 비 맞을 일이 없으니 여기까지."
패니어의 짐들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중국의 우중 라이딩에 맞춰져 있던 짐들을 캠핑에 적합하게 재분배한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어제 먹었던 볶음밥이 없어 간단한 빵들과 볶음면으로 식사를 한다.
패니어와 짐들을 하나씩 체크해가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왕칭옌은 출근 전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고 이틀간 여러 가지 신경을 써준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서 다니는 거야? 애인이나 부인이 없어?"
"메이요! 한국에 여자가 없는데 중국에도 여자가 없네. 중국에 여자가 없어서 이제 몽골로 가는 거야."
직원들과 농담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중국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마워 중국!"
숙소를 나와 공룡공원의 건너편 얼롄하오터 이우샹마오청(二连浩特义乌商贸城)으로 간다.
자전거를 끌고 승합차와 짚차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니 '멍구'를 외치며 사람들이 다가온다.
"취 멍구, 뚸 샤오 첸?"
국경을 넘는 차량의 비용을 묻는데 대답은 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차로 가자고만 한다. 아저씨의 차는 짚차가 아닌 승합차다.
"알았어. 얼마야?"
자전거를 바닥에 눕혀버리고 가격을 확인하니 자전거를 살피더니 100위안을 달라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비싸다고 말하니 사람만 가면 60위안인데 자전거를 실어야 하니 100위안을 줘야 한다고 한다.
"빠스! 나 돈 없어. 빠스!"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탈탈 털어 보여주며 80위안에 가자고 하니 못 간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자전거를 실으라 차로 안내한다. 숙소를 나오며 잔돈들을 모아 주머니에 80위안만을 담고 나머지는 자민우드에서 환전을 하기 위해 패니어에 넣어두었었다.
다른 여행자들을 보면 50~150위안을 내고 국경을 넘는 것 같지만 그들과 가격을 두고 흥정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80위안도 비싸게 느껴지지만 66위안의 기차 비용을 생각하면 적당하다 생각한다.
다음의 여행자들을 위해 바가지를 써가며 비용을 지불할 생각도 없고, 야박하게 몇 천 원의 가격을 흥정하느라 실랑이를 하고 싶지도 않다. 안전하게 국경을 넘는 것이 최우선이고 나에게 80위안은 그 정도의 댓가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70위안으로 양고기를 사 먹었기 때문에 더 낼 돈도 없다.
패니어들을 떼어내 차곡차곡 차량의 안쪽에 집어넣고 자전거를 싣고.
"아저씨 사진이나 같이 찍어요!"
뭔가 서두르는 아저씨를 잡아 사진을 찍는데 자꾸 고개를 돌린다.
"50위안까지 깎으려다 만 거예요. 80위안이면 적당히 좋구만."
서둘러 탑승하라는 아저씨의 재촉에 못 이겨 승합차에 오르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저씨는 마땅한 손님들이 보이질 않는지 광장 앞을 출발한다. 손님은 동행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아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
공룡공원을 지나 지내길을 돌던 차량은 다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차량을 세운다. 가족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짐들을 싣고 차량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내 북적북적해진 승합차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한국 사람! 같이 사진 찍어요."
흔들거리는 차량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 하니 모두들 거부감 없이 흔쾌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다.
각자가 붉은색의 몽골 여권을 손에 들고 있어 몽골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중국, 한국, 미국 등의 출입국 스탬프가 빼곡하게 찍혀있는 여권을 보여주며 각 나라들의 스탬프들을 설명해 준다.
"우와, 많이도 다녔네! 뭐 하러 간 거예요?"
번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구글 번역기를 여러 번 검색하여 보여준다.
"여행요."
앞자리에 앉아 무릎을 맞대고 있던 젊은 남자아이가 한국말로 짧게 대답을 한다. 스치듯 들려온 한국말이 낯설게 느껴지고 방금 전 한국말로 답변을 한 남자아이를 쳐다본다.
"한국말인데. 한국말 할 줄 알아?"
툴가, 한국 이름이 대원이라는 젊은 아이는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몽골의 학생이다. 5년 정도 어학원과 대학을 다니며 수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은 휴학 중이라서 몽골에 와 있다고 한다.
몽골의 여행의 막연한 시작과 함께 행운처럼 찾아든 회색 후드티를 둘러쓴 이쁘게 잘 생긴 툴가와의 만남이다.
"툴가, 잘 생겨서 한국에서 인기가 많겠다."
"한국에 친구가 많지는 않아요."
이삿짐센터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느라 충분히 즐겨야 할 청춘의 시간이 여유롭지만은 않은 듯싶다. 나 또한 그러한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의 젊은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20대의 시간을 현실의 삶에 묶여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고 안쓰럽다.
"툴가한테 잘 보여야겠다. 툴가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테니까."
네트워크가 끊기기 전에 툴가의 전화번호와 페이스북 등 연락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받아 놓고.
툴가와 대화를 하는 사이 승합차는 무지개 아치가 있는 중국의 국경에 이르렀다.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출입구에서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통과한 후 승합차에서 내린다.
승합차는 손님들을 내리고 오른 편에 있는 차량 출입구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정면에 보이는 중국 출입국 사무소로 걸어간다.
무지개 아치를 지나서.
얼롄하오터의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간다.
출국 심사대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고 특별히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는 것 같은 검문대를 통과한다.
"아, 나는 출국카드 작성해야지."
툴가의 가족들은 바로 출국 심사대로 가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그들을 따라가던 중 출국카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다.
"어디 보자. 이름, 여권번호, 생년월일, 성명, 국가명, 서명 그리고 차량번호?"
차량번호를 공란으로 비워두고 사람들의 뒤편에 서서 출국심사 사진을 찍으니 보안요원이 다가오며 핸드폰을 가리킨다.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눈치 빠르게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지운 후 보안요원에게 보여준다.
"Ok? 땡큐!"
다른 요원들과 달리 싱글싱글 웃으며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라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된다.
출국카드를 작성하는 사이 사람들이 줄을 서 툴가네 식구들과 떨어져 서있으니 툴가의 식구들이 자기네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한다.
"툴가, 차량 번호는 어떻게 적었어?"
툴가도 잘 모른다하여 툴가의 출입국 카드에 적힌 차량번호를 적었다. 특별히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별문제 없이 출국 스탬프가 찍히고 심사대의 중앙에 놓인 단추들에서 서비스를 평가해달라는 한국어 안내 멘트가 나온다.
"생각 같아선 울상을 짓고 있는 스마일 맨을 눌러주고 싶은데 참는다."
툴가네 식구 중 한 명이 두리번거리다 출국 심사의 순서를 잠시 놓친 사이 큰소리의 호통을 치며 부르던 출국 심사원이다.
"좀 웃으면서 친절하게 해라. 촤식아!"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고,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E자를 보이며 끊겨있다.
"헤이, 코리안!"
퉁명스럽게 나를 부르며 요금을 달라고 한다.
"아직도 삐쳐있는 거야? 80위안 많이 받은 거잖아. 웃어 아저씨!"
출입국 사무소의 반대편으로 나와 기다리던 승합차에 올라타고 여권에는 중국 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출국 스탬프가 찍혀있다.
"비와 산길, 황사와 주숙등록, 고산의 초원과 바람.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럼 됐다!"
국경을 넘기 전 출국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승합차는 몽골의 국경으로 넘어간다.
몽골의 지역에 이르러 이번에는 군복을 입은 몽골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작은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여 다시 차량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입국심사!"
2개의 입국 심사대가 있는 몽골의 입국 심사대에 사람들이 서 있고 툴가네 식구들을 따라가던 중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보인다.
"툴가, 난 입국 카드를 써야 하는데. 입국 신고서가 어디에 있지?"
입국 신고서의 서류함에는 종이 쓰레기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입국 심사원에게 건네받은 입국 신고서를 툴가에게 건네받고 입국 신고서를 작성한다.
툴가가 자기의 집 주소를 적어 넣고 나머지 모르는 항목들을 공란을 비워둔다. 문제없이 입국 심사가 끝나고 몽골의 입국 스탬프가 찍힌다.
입국 심사대를 나오면 사무실과 은행 ATM 기기들이 놓여있다. 건물이 작다 보니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알려준다. 무서운 모래바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불어온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작은 건물로 들어가 보니 조그마한 매점이 있다.
잠시 후 바쁘게 서두르는 아저씨의 재촉으로 승합차에 오르고 툴가의 친척은 여권을 잘 넣어두라며 바람막이의 포켓을 가리킨다.
몽골 출입국 사무소의 출입문을 통과하며 입국 스템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보여준다.
"이거 언제까지 보여줘야 하는 거야?"
"이제 다 끝났어요!"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와 툴가네 식구들은 자신들의 차량이 주차된 곳에서 짐들을 내리고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천천히 해도 될법한데 매서운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뭐가 그리 급한지 재촉을 하는 승합차의 아저씨 때문에 더 정신이 없다.
"툴가네 식구들하고 사진을 한 장 찍어야 하는데."
짐을 옮기느라 바쁜 툴가를 불러 사진을 찍고 연락을 하겠다 인사를 나눈다.
"헤이! 코리안!"
"아저씨 알았어. 사진 찍고 갈게! 왜 소리를 치고 그래."
툴가네 식구들과 헤어지고 승합차는 자민우드로 향한다.
몇 분 후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자민우드에 도착하고 도로변에 자전거와 짐을 내려준다.
"아저씨! 땡큐!"
듣는 둥 마는 둥 퉁명스레 인사를 하며 떠나는 승합차 아저씨.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난 후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소한 자민우드의 풍경을 보며 어색한 낯설음을 가라앉힌다.
"아이고 또 막막하다!"
습관적으로 고덕지도를 실행시키고 닫은 후 구글 지도를 실행시킨다. 위치를 정확히 잡지 못하지만 지도상 자민우드의 기차역 부근인가 싶다. 10미터 정도 자전거를 끌고 가니 넓은 주차장에 승객을 태우려는 승용차들로 가득하고 주차장 넘어 오래된 자민우드의 역사가 나온다.
자민우드의 기차역 광장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휑하니 비어있다.
"일단 여기가 기차역이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오른 편에 있는 경찰서의 건물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숙소를 검색한다.
"일단 숙소를 잡고, 유심을 교체하고, 환전을 하면 되는 거지."
트립닷컴과 부킹닷컴에는 호텔이 검색되지 않고, 구글지도를 검색하여 호텔의 아이콘을 찾는다.
"현금과 온라인이 끊겨있으니 비싸더라도 알려진 호텔로 가보자!"
현재 위치가 부정확하게 나오는 구글 지도를 보며 자민우드의 역사를 기준으로 건물들을 파악한 후 내 위치를 확인한다.
"저쯤에 호텔이 하나 있겠네."
경찰서 밖에 나와 대화를 하는 경찰관에게 호텔의 위치를 한 번 더 정확하게 확인하고 호텔을 찾아 이동한다. 단순한 자민우드의 길을 따라가는데 호텔의 모습과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모래가 잔뜩 쌓여있는 흙길의 골목을 갸우뚱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내가 찾던 호텔이 나온다.
모래가 쌓여있는 골목길과 허름한 집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 호텔의 정문은 두꺼워 보이는 철문이 닫혀있다.
"열려 있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관과는 달리 깨끗한 실내에 프런트가 보인다. 투숙이 가능한지를 묻고 와이파이가 되는지를 물으니 방들의 가격표가 적힌 종이 노트를 보여준다. 120,000투그릭, 100,000투그릭, 60,000투그릭.
"알았어. 환전은 어디서 해?"
중국 돈을 보여주며 환전을 하는 제스처를 해도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 이거 몽골 큰일 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고 60,000투그릭이 적힌 노트만을 자꾸 보여준다.
"중국 돈밖에 없어. 중국 돈 받아?"
곁에서 이 관경을 지켜보던 젊은 여자가 노트에 '1위안=370투그릭'이라고 적어 보여준다. 핸드폰 환율기를 확인하니 1위안이 390투그릭 정도 하는 것 같다.
"이 누나, 여기서 달러 장사를 하려고 하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속아주는 게 편하다. 200위안을 주고 숙소비를 결제하고 잔돈을 받아든다.
자전거를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 하여 호텔 정문의 난간에 묶어두고 프런트 직원과 짐을 나눠들고 4층으로 올라간다.
"정말 자전거 1층에 넣어두면 안 돼? 밖이 안전해?"
안전하다며 손가락으로 OK 모양을 만들며 싱겁게 웃는다.
숙소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회화 어플을 뒤적거려 '환전은 어디서 해요?'를 찾아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잘 알아들었지만 몽골어로 설명을 해준다.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도 지도앱으로 잘 찾지를 못하고 은행 표시가 되어있는 아이콘을 가리키니 그제서야 맞다고 한다. 은행은 숙소의 골목을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있다.
중국의 남은 위안화를 투그릭으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지만 ATM 기기가 있는 창구만이 열려있고 은행의 사무실은 닫혀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환전하는 곳을 물으니 위쪽으로 돌아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작은 은행 건물을 한 바퀴 돌았지만 출입구는 없고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른 은행들이 있던 자민우드 기차역으로 나간다.
넓은 광장에 작은 간이역처럼 오래된 자민우드의 기차역.
기차역 앞에 ATM 기기에도 사람들이 붐비고 한가한 역전의 광장을 보며 그제서야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요일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다.
어쨌든 숙소의 결제를 위안화로 해두어 특별하게 큰돈이 필요하지 않아 급할 것은 없다. 자민우드의 역사를 돌아 기차는 타는 곳을 구경한다.
겨우 10km 정도를 넘어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건물들과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트인가?"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가게의 두꺼운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슈퍼네!"
웬만해서는 문을 닫지 않는, 문이 없다는 표현이 맞는 중국과 달리 이곳의 모든 상점은 두꺼운 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한자로 된 중국 상점들의 간판을 읽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 집인지 바로 알 수 있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는 이곳은 도무지 어떤 가게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양의 슈퍼마켓이다. 중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냉장 시설을 갖춘 슈퍼마켓이 여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제품이 엄청 많구나. 내일 캠핑을 할 장을 봐야겠다."
슈퍼를 잠시 둘러보고 몽골의 통신회사인 유니텔, G모바일, 스카이텔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편의점 같은 작은 가게인데 핸드폰의 소모품들도 함께 팔고 있다.
핸드폰을 가리키며 유심카드를 말하자 바로 알아듣고 모빌콤과 유니텔의 유심을 보여준다.
"모빌콤 20,000투그릭 5G, 유니텔 10,000투그릭 데이터 메이요!"
"데이터가 없어?"
툴가의 가족에서 몽골에서 네트워크가 좋은 통신회사를 물었을 때 유니텔이 시골에서도 잘 터진다고 알려주어 유니텔의 유심을 사서 쓸려고 했었는데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
"데이터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아 몰라. 망해도 5,000원이야. 유니텔로 줘."
숙소비를 결제하고 남은 잔돈으로 10,000투그릭을 주며 핸드폰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 유니텔 유심을 구매한다.
중국 여행 기간 동안 수고한 차이나유니콤의 유심을 제거하고.
몽골의 유니텔 유심으로 교체한 후.
핸드폰을 재부팅하고 PIN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 창에 유심카드에 적힌 핀 번호를 입력한다.
"이건 뭐라지?"
핸드폰에 데이터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는다.
"APN 설정 같은 것이 또 있는가? 일단 툴가에게 전화를 해서 번호도 알려주고 물어보자."
75일 만에 생긴 핸드폰 번호로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데이터 없이 통화만 되는 유심카드가 있는지 물오본다. 유심 연결과 함께 날아든 통신회사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해도 데이터 연결은 되지 않는다.
문자로 툴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데이터가 안되다 보니 그림 파일 전송이 되질 않는다.
"형, 따로 4G 사요."
툴가에게 위챗을 쓰는지 물었지만 위챗은 쓰지 않고 카톡이 있다고 한다. 툴가의 카톡을 등록하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숙소로 돌아와 툴가에게 유심칩 카드를 보내준다.
"이건 통화만 되는 건가?"
"네 이것은 안돼요!"
"힝!"
"가게에 가서 데이터를 따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근처의 유니텔 통신사의 매장이 있는지 숙소의 여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눈치가 전혀 없는 여직원은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느라 바쁘다.
"일단 다시 가게로 가보자."
갖고 있는 현금이 없어 은행의 ATM 서비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붐빈다. 3개의 기기 중 양쪽의 기기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기가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가끔 카드를 잡아먹는 ATM 기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중국에서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기다렸다 사용했었다. 영어 서비스가 되는 ATM 기기에서 50,000투그릭을 찾아서 기차역의 편의점으로 다시 찾아간다.
기차역의 주차장은 오전에 비해 차량들이 많이 빠져나가 있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갑자기 붐빈다.
일단 펩시 콜라 하나를 사들고 결제하려니 가격을 말하려던 여주인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계산기에 1,500을 눌러 보여준다.
몽골의 물가는 환율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우리 물가의 0.45 정도의 수준이니 쉽게 절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툴가에게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을 몽골어로 적어달라고 하니 영자로 몽골어를 적어 보내준다.
"몽골도 영자로 글자를 치니?"
"영자로도 쓸 수 있어요."
중국처럼 몽골도 발음들을 영자로 쳐서 메시지를 보내고 읽을 수 있는가 보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툴가가 적어준 메시지를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니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핸드폰을 주니 문자창을 열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툴가에게 답장을 하려나 보다 생각하며 툴가의 전화번호를 눌러주니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자를 보낸 후 나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내가 숙소에서 해봤던 것인데!"
몽골 유니텔의 유심의 사용 현황을 알아보는 방법인데 숙소에서 네이버를 검색해 설명대로 해서 데이터가 없는 유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423번에 문자 메시지 Help를 보내면 유니텔의 데이터 사용에 따른 가격표들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해당 상품을 적어 보내고 세 번째로 On 메시지를 보내면 현재 가입되어 있는 통신 상품의 현황이 보여준다.
"아, 이게 가격표였구나."
캠핑을 하며 데이터 테더링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용량이 많으면 좋을 것 같아 30일 50G의 상품을 가리키며 50,000투그릭을 아주머니에게 준다.
핸드폰 번호를 물어 유심카드에 적힌 번호를 보여주니 작은 단말기에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고, 핸드폰으로 1432로 문자들을 보내자 데이터가 연결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든다.
"몽골은 이렇게 유심을 충전해서 사용하는구나."
그냥 우리의 교통카드 충전하듯이 통신사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가게에 들어가 요금만 지불하면 충전이 된다.
"됐다. 숙소도 잡았고, 돈도 찾아봤고, 핸드폰도 연결을 해놨으니 이제 밥이나 먹자."
숙소 앞 ATM 서비스로 다시 돌아가서 당분간 사용할 현금을 다시 찾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ATM 서비스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영어 서비스로 차분하게 기기의 안내를 살펴 가며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찾는다.
우리처럼 카드가 먼저 나오고.
5,000투그릭 지폐의 돈이 나오는데 돈다발이 나온다. 마치 10만원을 5천원권으로 찾는 기분이다.
"왠지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 단층의 흙집들과 모래 바닥 그리고 매운 컵라면 쓰레기까지.
호텔의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다.
깨끗한 실내가 마음에 들고 짧은 영어가 되는 발랄하고 귀여운 몽골 여자아이가 주문을 받는다.
"What do you recommend here?"
영어를 받아 몽골어로 번역하던 여자는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 그리고 스팀 비프를 생글생글 웃으며 추천해 주었다. 생기가 있고 좋은 기운을 갖은 사람이다.
양이 얼마만큼인지를 몰라 세 가지를 모두 달라고 한다.
"Three meals?"
"Is it a lot of food to eat alone?"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을 추천한다.
"그래, 그렇게 줘!"
커피를 마실 건지를 묻더니 밀크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잠시 후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에피타이저의 수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커다란 닭고기 국이 나왔다. 제법 맛이 나는 국물인데 찰진 흰밥이 먹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국물 요리네."
곧이어 잘 구워진 파인애플과 치킨이 올려진 메인 메뉴가 나오고 입맛이 군침으로 요동을 친다. 샐러드와 감자, 잘 구어진 치킨과 맛있는 소스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고 있으니 마치 중국을 떠나온 지 몇십 년이 지난듯한 느낌이다.
닭고기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주고 식사를 마친다.
계산을 하려니 여자아이가 잘 안되는 영어 발음으로 가격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냥 숫자를 적어줘."
워낙 금액들의 숫자가 크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쉽게 나누기 2를 해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고마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고마워'의 발음을 알려주고 웃으면서 식당을 나온다. 언어에 대한 감각과 재미를 알고 있는 여자 아이다.
몽골의 콘센트는 중국과 다르지 않다. 220V 전압을 사용하고 둥근 모양과 일자 모양 그리고 삼지창 모양의 콘센트를 사용한다.
나무로 된 방문은 열쇠를 사용해서 잠그고.
중국의 비와 흙먼지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고생을 하고 패니어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U락을 꺼내어 자전거를 한 번 더 묶어둔다.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중국에서는 자전거 분실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몽골의 분위기는 잘 모르니 일단 안전하게 잠가둔다.
숙소에 쉬면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와이파이가 너무 약해 사진을 업로드 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복도의 마지막 방이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질 않는다.
"이것까지는 올리고 자야 해. 내일부터 초원에서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고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는 자민우드의 석양을 보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 여유롭다 느껴진다.
4, 5분이면 될 사진의 업로드 시간이 6시간이 넘게 걸렸다. 12시가 넘어서야 업로드가 끝나고 하루를 정리한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뜻하지 않은 좋은 친구를 만나 편안하게 국경을 넘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낯선 여행길에서 크던 작던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9시가 넘어 잠에서 깬다. 12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피곤함과 여전히 남아있는 감기 기운으로 몸이 무겁다.
"하루를 쉴까? 작은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얼롄하오터까지 가서 쉬는 게 낫겠어."
패니어와 짐들을 챙겨들고 자전거가 놓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패니어들을 하나씩 장착한다.
"한국인이냐?"
자전거 복장을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으나 너무나 피곤한 탓에 짧은 대답만을 하고 짐들을 정리한다.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남자의 얼굴을 보며 자전거 여행과 일정들에 대해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들과 자전거를 탄다. 어디로 가느냐?"
"나는 오늘 얼롄하오터에 가야 한다."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진을 보여주는 남자에게 멋있다며 말을 건네니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 자전거 가게에 잠시 들렀다 가라고 한다.
"쯔싱쳐 띠엔? 여기에 자전거샵이 있어?"
"요!"
늦은 출발 시간과 피곤함이 트러블을 일으키던 스프라켓을 교환하고 하루를 쉬라며 유혹의 손길을 던진다.
"하오 취!"
10여 분 정도 남자를 따라 시내를 이동하여 자전거 가게로 이동한다. 후지 브랜드를 단 작은 자전거샵이다.
몇몇의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며 소개를 하고,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
우선 패니어들을 모두 떼어내고 자전거 가게의 주인에게 스프라켓이 마모되어 교환을 해달라고 요청한 후 사람들이 건네주는 차와 담배를 하며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답을 한다.
"나의 큰 딸이 시집을 가 대구에 산다. 10년이 됐다."
큰 딸이 대구에 산다며 사진들을 보여주는 아저씨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니 동호회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씩 가게로 모여든다.
모두들 자전거를 살펴보고 나를 보며 담배를 건네고 차를 따라주고 질문들을 한다. 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재미있는 표정을 하며 반갑게 대해주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얼롄하오터에 언제 갈 거냐?"
"오늘은 못 갈 것 같다. 얼롄하오터로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를 자전거샵으로 안내한 남자에게 하루를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오후에 함께 식사를 하자며 초대를 한다.
"너의 오늘 호텔비는 무료다."
"응?"
"호텔비는 무료!"
호텔비가 무료라는 말에 뜻을 알지 못해 의아해하며 '왜'라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모두들 크게 웃는다.
"너 주점을 하는 거야?"
한 번 더 사람들이 크게 웃어댄다. 젊은 남자는 내가 묵었던 루저우쌍우주띠엔(绿洲商务酒店, 녹주상무주점)의 사장이다.
자전거의 스프라켓을 교환하고 자전거샵의 남자는 교환상태를 체크하라고 말한다. 밖으로 나가 변속을 하며 주행을 하니 트러블 없이 잘 변속이 이루어진다.
크랭크 2단을 가리키며 마저 교환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자전거 가게를 구경한다.
스프라켓을 교환하는 남자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손이 꼼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지런히 놓여있는 정비 공구들에서 그의 성격을 알 것도 같다.
32T 체인링를 들고 34T가 없다고 하여 2단 크랭크는 교체하지 않고 그냥 놔둔다. 32T 체인링을 교체해도 상관없지만 32T는 나에게 가벼운 체인비라 2단이 마모되기 전에 교환하면 될 것 같고, 크랭크를 분해하느라 소요될 시간이 부담스럽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와 자전거를 세차해 주겠다는 자전거샵의 남자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물걸레를 들고 열심히 닦아낸다.
아저씨들과 담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중국을 여행하며 엉망진창 흙먼지가 묻었던 자전거는 중국의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 깨끗해졌다.
생글생글 웃으며 조용하게 말하는 자전거샵 남자의 성격은 내 성격의 대척점 정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친절하고 부지런하다.
12시 되어 식사를 하자며 대구에 사는 큰 딸을 둔 아저씨가 식당으로 안내한다. 가게 주인에게 스프라켓의 가격을 물으니 식당으로 가자며 옷을 챙겨 입는다.
흙벽돌의 담길들을 돌아 빈관의 식당으로 들어가고.
동그란 식탁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는 잡고 있으니 자전거샵에서 보았던 아저씨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모여든다.
"중국에서 가장 좋은 것은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뿐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주점의 젊은 남자가 농담을 하며 유쾌하게 웃는다.
"하하하, 맞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담배를 못 피운다."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이 65세인 쑤니터우이치의 자전거 회원들, 주점의 남자와 자전거샵의 남자가 막내들이라고 소개를 한다.
차가 나오더니 두 병의 중국 술이 먼저 나온다.
테이블을 빙빙 돌려 나에게 한 잔을 집으라 알려주고.
두유를 먹는 자전거샵 남자의 아들에게 젓가락으로 술을 찍어 먹이며 장난을 치는 아저씨와 몇 입 받아먹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아이, 모두가 즐겁고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한다.
하나둘 음식들이 나오고.
말린 쇠고기와 국수.
고기와 야채를 넣은 볶음면.
냉채처럼 시원한 맛이 나고 고수와 파, 오이와 양파들을 넣어 먹는 요리.
고소한 맛이 일품인 콩요리.
아이가 마시는 것은 요쿠르트 같은 것이다.
하나하나 음식들을 먹어가는 동안 담배들도 하나씩 테이블에 쌓여만 가고.
자전거샵의 남자는 지아오강강(叫刚刚, 규강강) 35세, 차분한 성격으로 항상 웃으면서 나긋나긋하게 말을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일을 했었다는 지아오강강은 몽골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준다. 몽골의 치안이 좋지 않아 여행 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과 몽골의 서북부를 여행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여행의 루트를 변경할 것이 좋겠다고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다르항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몽골을 여행할 때는 귀중품을 잘 챙겨야 합니다."
쇠고기 완자가 들어간 탕과 함께 양의 내장 무침 요리도 나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나온다.
"이게 뭐야?"
"양의 지지!"
"지지? 설마 그거야?"
오번역이 된 핸드폰을 보며 손사래를 치며 지아오강강이 다시 천천히 핸드폰에 발음을 한다.
"양의 꼬리!"
"하하하하. 그렇지!"
모든 음식은 맛이 좋고 풍미가 넘치며, 특히 양꼬리의 맛은 그 맛이 정말 예술이다.
"넌 이름이 뭐야?"
"卞且燮"
번역기에 한자로 이름을 적어서 보여주니 섭(燮)자가 중국에서 흔하지 않은지, 아니면 정자로 써서 익숙하지 않은지 잘 읽지를 못한다.
"비엔치에씨에!"
중국어로 이름을 발음해 주니 따라서 내 이름을 부르며 크게 웃던 사람들은 돌아가며 내 이름을 부르고 건배를 권한다.
재미있는 것은 술을 마신 후 탁자를 두드리고 건배를 한 사람에게 빈 잔을 보여준다. 우리가 소주를 마시고 잔을 머리 위로 거꾸로 들어 올리는 것이 '나는 다 마셨다. 너도 다 마셔라.'하는 느낌이라면 이곳의 느낌은 '너를 위해 술잔을 비웠다.'라는 느낌 같은 것이다.
조금 후 지아오강강의 아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저씨들과 즐거운 대화와 함께 술잔을 주고받는다. 그녀의 성격은 지아오강강과 달리 호쾌하고 대범해 보인다.
술을 마시는 그녀를 보며 술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아오강강. 그의 말처럼 나에게도 잔을 들어 원샷을 보여주며 여행을 잘하라며 건배를 권한다.
즐거운 식사 자리가 끝나갈 때쯤 색깔이 예쁜 마늘 한 접을 건네주며 먹으라고 한다.
"이걸 먹으라고?"
모두들 웃으며 마늘이 피부에 좋다느니, 중국인들은 열정이 많다느니 농담들을 주고받는다.
옆에 있던 지아오강강이 마늘 하나를 떼어내어 먹으며 '그냥 먹으라'며 웃는다.
마늘 하나를 떼어내어 껍질을 벗기려고 하니 지아오강강이 그냥 먹으라고 한다.
"아니 생마늘을 왜 먹어?"
처음엔 단맛이 약간 나던 마늘은 그냥 맵다.
"매워!"
다시 한번 테이블이 웃음바다가 되고 점심 식사가 끝이 난다.
대구 아저씨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쉴 것이냐 아니면 우리와 함께 초원으로 자전거를 탈래?"
"자전거를 타러 가자!"
아저씨는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자고 한다.
"패니어를 떼고 자전거를 타야지요!"
어려운 말은 번역기가 전혀 번역을 하지 못한다. 아저씨와 자전거를 두고 설왕설래를 하고 있으니 주점의 남자가 나타난다.
주점의 남자는 자전거를 주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 1층에 있는 넓은 방에 자전거를 넣어두고 방 키를 건네준다. 그리고 도로변에 나가 지나가던 승합차를 잡아 나를 자전거샵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지만 뭐가 이리 친밀도가 높지? 서로 집집마다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는 거야?"
승합차는 자전거샵에 나를 내려주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진다.
"형님, 안 자는 거 다 알아요. 일어나세요. 초원에 가야지요!"
하루 종일 각양각색의 담배가 쏟아진다. 정말 중국의 담배 인심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지아오강강이 자신이 타는 자전거를 내놓고 자전거 회원들은 초원 라이딩을 위해 열심히 준비들을 한다.
70여 일 만에 타는 가벼운 핸들의 자전거, 좌우로 흔들리는 자전거에 이내 적응을 하고 후미에 쳐져 있는 아저씨들을 따라 달린다.
70kg이 넘는 자전거를 끌다가 15kg이 안 되는 MTB를 타니 자전거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난 여기서도 후미야?"
천천히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있으니 선두로 가는 대구 아저씨를 따라가라며 손짓을 한다.
멀리 앞서가던 대구 아저씨도 빠르게 따라잡고 뒤를 따라 천천히 라이딩을 즐긴다.
"300km 넘게 초원을 달려왔는데 쉬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다니."
15km 정도 초원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게르 같은 것이 놓여있고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공연장 같은 곳이다.
사람들과 있으니 개도 무섭지 않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참 좋다.
중간 지점에 조금 있으니 어느새 라이딩 복장을 갈아입은 주점의 남자가 사이클을 타고 나타난다.
"언제 또 나타난 거야!"
돌아가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초원길을 달려 돌아온다.
대구 아저씨의 인증샷도 찍어주고.
자전거샵에 도착하여 후미에 쳐진 아저씨들을 기다리며 잠시 쉰다.
"아직 건강하시네요!"
술을 많이 마셔서 걱정이라는 딸의 말과는 달리 아저씨는 건강하게 잘 달렸다.
아무래도 오늘 쑤니터우이치에서 중국의 모든 담배를 하나씩 건네받을 모양이다.
"저녁으로 백주를 마시고 싶어? 맥주를 마시고 싶어?"
"바이주!"
주점의 남자가 저녁 반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와 맥주는 한국에도 많다며 바이주를 먹고 싶다고 대답한다.
언제나 유쾌한 주점의 남자는 집에서 바이주를 가져오겠다며 자전거샵을 떠나고, 자전거샵에서 휴식을 취한 후 대구 아저씨, 지아오강강 그리고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남자와 함께 저녁을 먹을 음식점으로 이동한다.
양고기 요리를 하는 식당의 2층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주점의 남자는 다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정체가 뭐야?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우창정(吴长征, 오장정), 녹주상무주점을 운영하며 언제나 유쾌하고 위트가 있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남자다.
집에서 가져온 예쁜 포장의 바이주 2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차갑게 보관이 된 바이주는 병도 예쁘다.
"이건 김치인데?"
"파오차이, 泡菜"
"한국의 김치와 맛이 약간 다르다."
젓갈을 사용하지 않아 중국의 향신료 냄새가 조금 있지만 우리의 김치와 거의 비슷한 맛이 난다.
"이 동네에 한국 사람이 3명이 살고 있다."
"정말? 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 사람들은 오래전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아마도 이곳에 김치와 비슷한 것이 있는 이유가 한국 사람이 정착을 하며 이곳에 김치를 알려주고 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양고기를 하는 음식점이다. 한국의 불고기와 비슷하다."
우창정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번역을 하여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들을 한다. 가벼운 농담을 섞으며 위트 있게 말하고 언제나 겸손하게 표현을 하는 젠틀한 남자다.
우창정이 가져온 바이주는 차가운 물에 넣어 냉기를 유지시키고.
양파를 넣고 볶는 양고기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질 때쯤, 시원한 바이주 한 잔을 건배와 함께 마셨다.
"중국 술은 강하지만 향과 풍미가 정말 좋다!"
술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중국 술은커녕 값비싼 양주까지도 향이 진한 술은 전혀 먹지를 않는다. 도수가 높아 숙취가 조금 덜하다는 정도 이외에 특별히 맛이 좋다거나 향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먹는 주량이 많다 보니 숙취가 덜하다는 장점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중국 여행을 하는 70일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여행이 끝나갈 때쯤 중국 술의 맛과 향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중국의 바이주, 참 괜찮은 술이다!"
그리고 노릇하게 구워진 양고기를 맛본다.
냄새 같은 것은 전혀 나질 않는 부드럽고 기름진 양고기의 맛이다.
달짝지근한 소스와 양파, 버섯, 상추 등과 함께 쌈을 하여도 그 맛이 제격이다.
"초원은 6월에 풀이 나서 아름답다."
우창정은 풀이 자란 초원의 언덕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 4륜 바이크 등을 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정말 멋지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노는구나!"
푸른 초원에서 마음껏 달리며 즐기는 모습들이 멋지고 부럽다.
"초원에서 캠핑을 하며 하룻밤 보내고 싶은데, 중국에서는 그것을 못 하게 하니 아쉽다."
푸른 초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곳을 지나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하는 위너님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사진과 여행 경로들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
"아마도 6월이나 7월에 이 녀석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이 녀석이 오면 아름다운 초원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알았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나면, 이곳에 다시 놀러 오겠다. 그때 푸른 초원에서 건배를 하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두 번째 메뉴로 소고기가 나온다. 야채들과 함께 구워진 소고기를 밀가루 전병 같은 곳에 넣은 후 먹으니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사위는 힘들겠다. 이곳 음식이 먹고 싶어서."
"하하하. 사위는 이곳에 두 번이나 다녀갔다."
"손녀들이 많이 보고 싶겠다?"
"그렇다."
대구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저씨는 딸과 손녀가 보고 싶어졌는지 대구에 사는 딸과 영상 통화를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구에 가서 딸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게요."
밀쌈을 하는데 이것저것 젓가락으로 집어넣어 주는 우창정. 그리고 하루 종일 조용하게 말을 하던 중년의 남자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타는 오토바이 사진들을 보여준다.
"와, 멋진데요. 그런데 여기에 사막이 있나요?"
"얼롄하오터로 가는 길의 중간에도 있고, 이곳에서 조금 가면 사막이 있다."
"사막도 보고 싶어요!"
"너를 데려가 줄 수 있어!"
사막에서 오토바이와 4륜 바이크를 타는 영상과 사진을 보며 사막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 얼롄하오터로 떠날 거니?"
"하루나 이틀쯤 더 머물고 싶네요. 몽골에 21일까지 가면 되거든요."
복잡한 이야기가 오가니 번역기는 쓸모가 없는 애물단지가 된다.
"딸의 번역!"
대구 아저씨에게 딸과 영상통화를 하여 내 의견을 전달해 달라 부탁하니 이해하고 전화 통화를 한다. 그사이 세 번째 메뉴로 양고기가 추가되고.
대구의 큰 딸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하루나 이틀쯤 쑤니터우이치에 머물며 사막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한다. 딸의 통역으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모두들 내일 사막으로 가자며 건배를 나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갈 때쯤 오이와 야채를 넣은 수제비처럼 생긴 죽이 나온다.
향긋하게 퍼지는 오이 향이 정말 일품이고 부드럽게 속을 감싸주는 듯 맛이 좋다.
"아, 나 정말 쑤니터우이치가 너무 좋아!"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타지의 이방인에게 관심을 놓지 않고 배려하는 우창정, 한국으로 시집간 딸을 생각하며 여행 온 한국인이 불편하지 않을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대구 아저씨,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나긋나긋하게 설명을 하는 지아오강강 그리고 말 수는 적지만 은근하게 관심을 써주는 남자까지.
"오늘 아침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고 환대를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한다.
"숙소에 가서 편하게 쉬고 내일 보자!"
우창정은 숙소의 방까지 안내를 해주고 화장실과 침대, 커튼 등을 한 번 더 점검한 후 편하게 쉬라며 인사를 하고 떠난다.
"내일 8시에 아침을 먹자. 8시에 올게!"
"아 쓸데없이 너무 넓고 좋은 방이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뜻하지 않은 환대와 고마운 배려들을 받는다. 너무나 즐겁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들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 거칠고 야박할 것 같았던 초원의 사람들은 중국의 어느 지역의 사람들보다 여유롭고 웃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곳은 위험해. 다른 곳을 가. 동남아 좋잖아!"
"그 사람들이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너야!"
여행을 하기 전 사람들은 중국의 내몽골을 경유하는 중국 북서부 지역의 여행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였다.
"네가 사는 집은 위험하지 않니?"
고개를 끄덕이며 싱거운 농담처럼 사람들의 말을 흘려보낸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도움도 되질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삶의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라 놓여있는 또 다른 선택들은 항상 두렵고 두렵다. 하지만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타인의 추측이나 판단 같은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렵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는 더 두렵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불안함. 그 이유 모를 감정의 불온함들로 언제나 삶은 투박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스스로 경험하고 싶은 두려움들은 강한 삶의 욕구로 나를 지탱한다.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삶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장기를 빼내갈지 모른다던 이곳의 사람들은 언제나 웃으며 대화를 하고 그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뚜이'.
"对! 对!"
방긋 웃으며 말을 하고, 상대의 말에 '맞아, 맞아'를 먼저 말하며 상대의 말을 끊는 법도 모른다.
언제나 부정적인 표정으로 온갖 세상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가식의 웃음으로 자신의 말만을 들어달라 악다구니를 쳐가며 살아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 우리들의 현재다.
"잘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잘 웃고 여유롭다. 양과 소의 장기는 좋아하는 것 같다만 나의 장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