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2일 / 맑음 ・ 14도
울리아스타이
비포장도로의 산길을 따라 해발 2,400미터를 오르고 울리아스타이로 향한다.
온몸이 쑤신다. 따듯하게 온도가 올라가는 텐트 안에서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소의 젖을 짜는 디미르의 가족들이 인사를 한다. 따듯한 햇볕을 쬐며 앉아 있으니 디미르의 아버지가 다가와 손 세정제와 물을 가져다준다.
"울리아스타이 22km!"
울리아스타이가 22km이고, 알타이가 200km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 남자는 식사를 하자며 제스처를 한다.
그리고 직접 만든 요거트와 백설탕을 주며 비벼서 먹으라 알려준다.
부드러운 요거트는 너무나 신선하고 맛이 좋다.
"몇 살이야?"
"나스? 내 나이?"
나이를 묻는 몇 번의 질문을 받고 핸드폰에 나이를 적어 보여주니 모두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맞아! 1974."
생년을 적어주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드폰을 가져가 1970을 적으며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다.
"50? 형이네!"
남자는 자기는 못한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무것도 아닌 서로의 나이를 알려주며 그의 가족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몽골에서는 열 살 정도 줄여야겠어!"
"새끼들에게 표시를 하려고 하나? 아직 뿔이 없는데."
남자는 새끼 한 마리를 안고 와서 게르 옆에 묶어 둔다.
"네가 오늘의 볼모구나!"
"노, 노!"
몽골의 말은 서양의 말에 비해 조금 작지만 안장에 올라간 높이는 제법 높게 느껴지고, 살아있는 동물의 등에 올라가 있으니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디미르는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찍어주고, 고삐를 끌어 게르 한 바퀴를 돌게 도와준다.
텐트에 들어가 잠시 누워 잠을 더 잘까 고민하다 침낭과 텐트를 정리한다.
"어차피 갈 길, 울리아스타이에 가서 쉬자."
네트워크가 끊겨있어 울리아스타이의 숙소나 식당들이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도상에 펼쳐진 마을의 규모가 체체를렉보다 큰 마을인 것 같다.
그녀도 유쾌하게 인사를 전하며 손을 흔든다. 성격이 정말 유쾌한 가족들이다.
"형! 사진 찍자."
고맙다는 인사와 악수를 나누니 핸드폰을 장 챙기라는 제스처를 하며 웃는다.
"바에르사! 바이시떼!"
덜컹거리는 도로를 천천히 따라가지만 흔들거리는 머리와 엉덩이가 아프다.
오토바이 한 대가 천천히 나의 속도에 맞추더니 젊은 남자가 함께 가자며 웃는다.
"암 슬로!"
비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초원의 흙길로 빠져나와 따라가 본다.
"사람들이 멀쩡한 도로를 두고 흙길을 왜 달리는지 알겠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와 달리 이리저리 기울어진 길이지만 덜컹거리지 않고 좋다.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체체를렉만큼 소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아스팔트네!"
마을에 들어서며 이어진 포장도로, 마치 고급 리무진을 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조용하다.
구글맵을 보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었다. 지나왔던 다른 마을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마을이 제법 큰데, 있겠지?"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진 울리아스타이의 중심지는 회전 교차로가 있는 부근인 것 같다.
슈퍼와 시장, 호텔과 레스토랑이 교차로의 우측으로 들어서 있다.
8,900투그릭 하는 소고기 메뉴를 주문하고.
"밥보다 소고기가 더 싸냐."
2층에 호텔을 같이 하는 식당에서 계산을 하며 숙박비를 물어본다.
"60,000투그릭."
몽골은 이상하게 호텔의 숙박료가 비싸다. 화장실이 있는지 물어보고 방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니 여권을 달라고 한다.
"방을 보여줘!"
계속해서 여권을 달라는 눈치 없는 여직원과 답답해하고 있으니 짧은 영어를 하는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안내를 해준다.
두 개의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방을 확인하고, 근처에 새로 생긴 호텔을 보고 오겠다 말하고 식당을 나온다.
구글맵을 따라 허름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 곳에는 새로 지어진 호텔 모양의 건물이 보이질 않고, 주위를 빙빙 돌다 길가에 서있던 남자에게 길을 물어본다.
"자브칸 호텔?"
남자는 잠시 구글맵을 확인하더니 라마교 사원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두어 차례 자브칸 호텔이 맞는지 물어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길을 가는 여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물어보니 남자를 만났던 곳을 가리킨다.
"아, 정말!"
몽골 사람들은 이상하게 길을 물어보면 모두 맞다고 알려주는 것이 문제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면 편할 것 같은데.
지나가는 남학생을 붙잡고 간판을 가리키며 자브칸인지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아, 이건 설마 예상 못 했다."
60,000투그릭의 숙박비가 너무 부담스럽지만 일단 지친 몸을 추스르고 싶다.
그리고 세 명의 여직원들과 짐을 나눠들고 방으로 올라간다. 세 명의 직원은 이 호텔의 전 직원이다. 카운터, 식당 그리고 세탁 담당자.
샤워도 미루고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를 찾아 아파트 슈퍼로 간다.
"슈퍼마켓?"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에게 슈퍼마켓을 물어봐도 생뚱맞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한국인이세요?"
한국말로 물어보는 남자와 아파트를 나와 1층 벽에 붙은 슈퍼마켓의 간판을 가리키니 아파트 지하의 계단을 가리킨다.
"아. 할 말 없다."
싱겁다는 듯 웃으며 가는 남자.
"슈퍼마켓 정도의 영어는 알아 들어야지!"
"알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으니 산 위에 있던 라마교 사원이 궁금해진다.
"아무것도 안 할 건데. 궁금하다!"
울리아스타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라마교 사원에 올른다.
게르나 몽골인들의 집에는 기도를 올리는 작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중국의 도교사상이 중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몽골의 라마교 역시 몽골인들 삶의 밑바탕인 듯싶다.
"이런 자연과 함께 살던 사람들이 자본의 허기짐에 매일 술만 먹고 있으니."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고, 나는 소년을 바라본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 바라보았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이었다. 하나둘 그 산들을 오르며 어른이 되었음을 자랑삼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산들을 오르거나 넘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실 인식에 대한 실망 또는 확인된 사실의 부재에 대한 허무함 같은 것들이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산들을 오르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유지되는 막연한 상상들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산들을 넘을 것이다 바라였다."
나는 지금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길 위에 서있다.
오초르와 함께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어느새 떠나버리고, 중년의 검은 남자가 바위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낸다.
"아직 그 산들을 넘어가질 못했나? 아니면 산 너머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가?"
"고기면 돼!"
중국의 숙소라면 조식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있을 텐데 식문화가 빈약한 몽골에서는 별 기대가 없다.
"9시!"
프런트 직원과 식당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조르노크와 처이르에서 듣고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려다 날 쳐다보고 있는 두 명의 눈빛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툴가야, 잘 설명해줘!"
툴가에게 부탁을 하고, 전화번호를 받은 여직원은 오드바야르처럼 흥분하며 좋아한다.
"툴가가 좋은 얘기 안 해줄 것 같은데."
9시가 넘어도 해가 떨어지지 않고.
쑤니터우이치의 우장징, 대구 아저씨와 위챗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대구 아저씨는 얼마 전 얼롄하오터까지 자전거로 라이딩을 했는지 GPS 기록을 보여줬고, 우장징은 전에 말했던 일본 여행을 갔고, 지아오강강은 사람들과 초원에 잔디를 심는 행사에 다녀왔다 한다.
"쉬었다 가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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