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일 / 비,구름 ・ 12도
홍지앙현-중팡현-화이화시-마양 먀오족 자치현
번개와 천둥 그리고 험악한 폭우가 밤새 지속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잠잠하다.


이동거리
99Km
누적거리
5,111Km
이동시간
7시간 22분
누적시간
354시간

 
도로
 
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홍지앙현
 
장소
 
마양
 
 
2,326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하늘에 구멍이 난 듯 그렇게 쏟아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아침이 조용하다.

이틀을 고민했던 장가계로의 이동경로를 변경한다. 장가계로 가는 아무것도 없는 150km 정도의 부담스러운 산길 그리고 미친 듯 구부러진 길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이건 굳이 안 찍어 먹어봐도 된장이야!"

30km 정도를 우회하는 경로를 결정하고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출발을 한다. 오늘 도착해야 할 곳은 100km의 거리에 있는 마양 먀오족 자치현이다.

체크아웃을 하려니 아주머니가 안 계시고 그의 아들이 프런트 뒤편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잠을 자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를 깨워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창고에서 꺼내어 출발한다.

중국 오토바이의 앞 번호판은 대부분 쇼바의 측면이나 흙받기의 위에 부착되어 있다.

비구름이 내려앉아 있어 우의와 레인팬츠를 꺼내어 입는다.

홍지앙현은 도시 자체가 조금 휑한 느낌이고 지나치는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많지 않아 쉽게 시내를 벗어난다.

"일단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화이화시에 들어서기 직전에 위치한 중팡현에서 이른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넓은 6차선 도로를 따라 순탄한 라이딩을 이어간다.

마음을 내려놓고 시작하는 산길과 달리 편한 라이딩을 기대하는 큰 도로의 라이딩은 작은 업다운의 반복에도 쉽게 지치는 어려움이 있다.

아무래도 얄팍한 마음가짐이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도로변에 자주 보이는 가정수(加井水)라는 것이 화물트럭에 물을 보충하거나 세차를 할 때 쓰는 물인 것 같다.

트럭의 물탱크에 호수를 꽂아 물을 채워 넣는다. 도로에 먼지들이 많이 날리고 공사 구간이 많아 때로는 물호수로 세차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중국의 도시나 마을의 초입에는 손세차를 하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가장 바쁘다.

가정수를 파는 슈퍼에서 우의와 레인팬츠를 벗어 버린다. 땀이 배출되지 않아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답답하여 페달링을 하는 것이 두 배는 힘든 것 같다.

이미 땀이 차 레인팬츠의 안쪽이 반질반질하다. 레인팬츠를 벗으니 시원함과 함께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다.

슈퍼를 출발하고 3분 정도 길을 따라가니 앞서가던 차들이 거대한 물보라를 날리며 지나간다.

밤새 내렸던 폭우로 도로면 가득 발목까지 차오는는 흙탕물이 흘러넘치고 있다.

그 깊이를 알지 못하고 천천히 지나가면 되겠지 싶었는데 들어서자마자 발목 위까지 푹 담기고, 도로면을 타고 흐르는 흙탕물의 유속 저항에 첨벙대며 페달링을 계속 이어간다.

"아, 발이 마를 날이 없다. 80km나 남았는데."

연이은 빗속 라이딩으로 발가락 사이에 습진이 생겼는지 간질간질 거린다. 요 며칠 신발까지는 젖지 않아 뽀송하게 마르던 참이었는데.

"식당에 가서 신발의 물기를 털어내고 양말이라도 갈아 신어야겠다."

첨벙거리는 신발로 페달을 밟으며 10시가 조금 넘어 중팡현에 들어선다.

중팡현 초입 오르막에 위치한 중팡현 제일중학. 대학 컴퍼스처럼 잘 정돈된 학교의 정문에 공자의 석상이 세워져 있고, 학교의 담벼락에는 학교의 역사들이 순서대로 프린트된 벽화와 연대기가 설명되어 있다.

"자부심이 대단하네. 명문학교인가?"

식당을 찾기 위해 자전거 도로와 차도를 번갈아 가며 이동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길의 신호등 앞에 서있는 사람들. 대도시의 복잡하고 넓은 신호 건널목이 아니라면 중국 사람들은 결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있지는 않고 대부분 신호등도 없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정류장이 별도로 없는 곳에서는 버스 기사가 크락션을 울리는 곳이 정류장이고, 승객이 손을 드는 곳이 버스 정류장이다.

특히 아침에 보면 도로변에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있거나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서있는 사람들이 많다.

10km 정도 중팡현을 관통하는데 식당이 없고 오른편으로 길을 따라 아파트 공사장이 계속 이어진다. G209 국도는 중팡현의 외곽을 지나쳐 가나 보다.

"오늘 밥도 밥 복이 없는 거야? 마양현까지 길이 먼데."

중팡현을 그냥 지나치고 멀지 않게 있는 화이화시에서 든든한 점심을 기대한다. 머릿속이 온통 밥 생각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이화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높은 건물들을 지나치는데도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전기 버스 충전소, 버스 정류장 옆에 충전소가 있어 배터리를 충전한다.

중국의 도로에서 오토바이와 마찬가리로 전기 버스도 소음이 없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전기차, 전기 오토바이, 전기 자전거, 전기 버스. 이런 면은 우리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식당을 찾아 다음 블록에는 있겠지 하며 길을 이어가다 보니 복잡한 대도시의 모습은 나타나지도 않고 휑한 비포장길이 갑자기 펼쳐진다.

"뭥미? 망했다!"

화이와시의 외곽으로 도로가 이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칼로 잘라놓은 듯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작은 전()이라도 빨리 나와라."

달그락 거리며 힘들게 길을 따라가며 파헤쳐 진 도로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공안도, 삼합회도 아닌 개와 파헤쳐진 도로다.

그렇게 12시가 지나버리고, 오전의 넓고 쾌적했던 길과는 전혀 다른 좁고 불편한 길이 무심하게도 산으로 향하고 있다.

"왜 저 멀리 산 위로 길이 보이는 걸까."

구불거리며 산의 정상으로 이어진 길을 확인하고 조용히 주유소로 들어간다.

"무엇이든 먹어야 해!"

작은 편의점에는 빵도 없고 요기가 될만한 것은 컵라면밖에 없다.

"이거 갈수록 태산이네."

4.5위안 빅우육면을 들고 5위안을 주니 어린 여직원이 잔돈 대신 사탕을 하나 준다.

"뭐야? 서비스야?"

한국말을 중얼거리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의 여자 직원이 계산대에 찍힌 0.5을 가리킨다.

"하하하, 애가 일 할 줄 아네. 센스 있는 아이네."

젓가락이 없냐고 제스처를 하니 라면 안에 들어 있다고 한다. 컵라면 안에 3개의 스프와 일회용 포크가 들어있다.

편의점 안에 서서 어제 먹다 남은 설탈빵과 함께 국물만 맛있는 우육면을 먹는다.

"농심이 중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신라면을 볼 수가 없네. 초코파이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산길을 힘들게 오르니 정상에 정말 생뚱맞게 작은 놀이공원이 있다.

놀이공원을 지나 시작된 길은 내리막을 즐기기도 전에 비포장의 파헤쳐진 도로로 변해버리고, 고덕지도는 이상한 시멘트 길로 좌회전하라고 떠들어댄다.

파헤쳐진 G209 국도와 가끔 이상한 길로 안내하여 애를 먹이던 고덕지도,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에 빠진다.

"고덕양, 너 한 번 더 믿어볼게. 도저히 끔찍한 웅덩이 길은 못 가겠어."

짧은 오르막 이후 넓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의 변두리 길을 따라가는 것이 그럭저럭 웅덩이 길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저수지 주변 마을을 지나치던 시멘트길이 갑자기 진흙밭의 웅덩이길로 바뀐다.

"고덕양, 네가 그럼 그렇지. 아우!"

진흙밭의 웅덩이 길에 바퀴들이 미끄러지며 조향과 페달링을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내릴 수조차 없는 진흙밭이다.

"이곳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 그건 지옥이다."

온몸을 써가며 겨우겨우 길을 이겨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얼핏 보니 지나가야 할 길 옆의 집에서 세 마리 개가 나를 주시하며 맹렬히 짖어대고 있다.

진퇴양난, 불가항력 그리고.

"아놔, 이런 *********!"

개들 앞에서 항복하듯 자전거에서 내려 진흙밭을 끌며 다소곳이 개님들의 곁을 지나간다.

이틀간 자전거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자갈들과 진흙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찌그덕 달그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흙 흙탕물을 튀기며 굴러가는 자전거.

때마침 하수도관이 터져 빗물들이 쏟아지는 곳이 있지만 어떻게 씻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냥 가려는 순간 시멘트를 푸던 낡은 바가지가 보인다.

"오홍, 이러면 스토리가 달라지지!"

자전거를 벽에 세우고 물을 퍼담아 뿌려대니 그런대로 깨끗해진 자전거.

"뭐, 곧 더러워지겠지만 일단은 속이 다 시원하네."

잠시 쓸데없는 만족감에 흐뭇해하고 있을 때 카톡이 울린다.

"별문제 없이 잘 달려?"

어찌 설명하기가 굉장히 난해하다.

"엉망진창이지!"

1시 40분, 아직 45km나 남아있다.

"이제부터 산길이 이어지는데 언제 도착하나."

마을에서 조금 내려가 다시 G209 국도를 만나 산길을 향해 들어간다.

짧은 오르막 이후 쭉 뻗은 일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지도를 보면 이 직선로를 끝으로 구불구불 산길처럼 보이는 도로가 마양현까지 이어진다.

직선 도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며 큰 숨을 한번 쉬고.

"가 보자!"

그런데 생각과 달리 높은 경사면이 잠시 이어지더니 평지와 같은 내리막이 이어진다.

"뭐지? 그동안 얼마나 올라와 있었던 거야?"

작은 도랑물이 개천이 되고 하천으로 그 폭을 넓히는 동안 가벼운 페달을 밟으며 달려간다.

하늘은 천천히 밝아지며 구름 사이로 가끔씩 수줍은 햇살이 방긋거린다.

빠르게 지워지는 남은 거리 그리고 페달링에 흥이 난다.

조금씩 지쳐갈 때쯤 나타난 뜻밖의 안내판.

"국도에도 휴게소가 있어? 식당이 있다는 말이지."

잠시 후 작은 주유소가 보이지만 식당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한꺼번에 맥이 쭉 빠지는 것 같다.

"대륙, 너희들이 그렇지 뭐."

작은 오르막이 간간이 섞여있지만 편안했던 길이였음에도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콜라 한 모금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본다.

매일 엉망으로 변해버리는 신발과 옷 그리고 자전거.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더 가 보자."

생각지 못한 라이딩 속도와 밝아진 날씨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충분히 앉아 쉬고, 자우림의 음악을 재생시킨 후 씩씩하게 출발한다.

강을 가로지르는 도르래 짐바구니가 보인다.

하천이 유속이 빨라지며 제법 강의 형태로 그 모양을 넓힌다. 작은 마을과 강을 건너는 다리를 넘고 자전거는 갈수록 무거워진다.

"이상하네. 배가 많이 고플 뿐 그렇게 많이 지친 것은 아닌데."

자전거를 세우고 뒷바퀴를 만져보니 괜찮은데 앞바퀴가 빠르게 주저앉고 있다.

공기 밸브 사이로 바람이 새며 타이어 안으로 들어간 물들이 보글보글 거린다.

"무난하게 가면 심심하지? 이젠 앞이니?"

산골의 허름한 슈퍼 앞에 자전거를 눕혀놓고 타이어를 확인하니 작은 철심 하나가 박혀있다.

잘 빠지지 않는 녀석을 손톱으로 살살 긁어 어렵게 제거하고 튜브의 구멍 난 부분을 찾는다.

얼굴에 튜브를 대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실바람의 느낌을 찾고 있는데 나를 지켜보던 슈퍼 할아버지가 세숫대야를 가져와 건네준다.

"헤헤, 시에 시에!"

튜브를 정비하고 앞바퀴 그리고 뒷바퀴에도 바람을 넣어주고 슈퍼 앞 조그마한 대나무 의자에 앉아서 쉰다.

고마운 할아버지에게 콜라 한 병을 사서 먹으며 나란히 앉아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간의 흐름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틀어놓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옛 노랫소리가 너무나 좋다. 패니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자우림의 노래와 연주 소리가 소음처럼 시끄럽게 느껴진다.

"할배, 갈게요. 시에 시에!"

한참을 그렇게 나란히 앉아 산을 바라보다 출발하니 어서 가라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할아버지 슈퍼에서 조금 내려와 평지를 달리다 보니 계곡의 물들이 내 방향으로 졸졸거리며 내려온다.

"일관성 없게 뭐냐? 나 지금 올라가는 것 맞지?"

한 코너를 돌며 급격하게 경사가 바뀌더니 코너를 돌고 다시 돌고, 급기야 S자로 휘어지며 올라간다.

허연 입김을 토해내며 첫 번째 고개 정산에 위치한 소수민족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마을 문화무대(美丽乡村文化戏台)의 중앙에 그려진 소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고개를 넘으며 앞으로 몇 개를 더 넘을까 궁금해진다.

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층층이 귤나무를 심어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이어진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시작했을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손녀는 그 고단했을 삶이 더는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 고개를 넘고 귤나무가 심어진 산들을 내려오는 동안 노란 스쿨버스가 분주하게 지나다니더니 작은 소학교가 나온다.

하교를 하기 위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니 학교 관계자들이 말을 건다.

한국사람을 처음 보는 듯 반갑게 인사하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고, 장가계를 간다고 하니 멀다고 하면서 엄지를 세워서 응원을 한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구경해도 되는지 묻고 허락을 받아 중국 소학교 내부를 잠시 구경한다.

공자상이 멋지게 세워져 있고.

1학년으로 보이는 꼬마들이 얌전히 하교를 위해 줄을 서있다. 자꾸 쳐다는 보는데 인사를 해도 반응들이 없다.

소학교를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양현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고.

집을 지을 때 쓰는 바구니형 골재 믹스기. 대략 네 종류 정도 있는 것 같다.

미양현의 초입, 집을 짓기 위해 도르래를 모터로 돌려 벽돌이 담긴 손수레를 끌어올린다.

미양현 시내에 도착해서 검색해둔 숙소를 찾아간다. 거리에는 하교를 하는 학생들로 복잡하다.

검색해둔 빈관을 찾지 못하고 도로에 있는 1층 공간이 넓어 자전거를 보관하기에 좋을 것 같은 빈관에 들어가 가격을 문의한다.

"빠스콰이."

자전거를 넣어두고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밥을 먹으러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메뉴판은 패쓰하고 다른 손님이 주문한 듯한 메뉴를 가리키며 얼만지를 물은 뒤 그것을 달라고 했다. 12위안.

이 식당은 밥을 독특하게 한다. 일 인분씩 나누어진 압력솥 같은 곳에 밥을 한다.

중국 식당 정수기는 문을 열어야 한다. 문짝을 왜 달아 놓았는지 모르겠다.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밥을 주문 배달을 하는 집인지 일회용 용기에 밥을 담는다. 배달 음식을 나에게 먼저 주는지 주문하고 바로 음식이 나온다.

고기와 고추 볶음, 배추데침 그리고 오리알 같은 것이 올려져 있다. 오리알을 한입 깨물으니 껍질이 그대로 붙어있다.

"통째로 먹나 보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며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니 주방장 남자가 배달을 간 사이 들어온 젊은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12를 적어 보여준다.

"알아. 그거 말고 한 개 더 달라고."

대충 건성으로 알아들었는지 알았다고 하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밥을 다 먹었는데 더 주문한 밥이 안 나온다. 잠시 기다리다 여자를 불러 밥을 안 주는지 물어본다.

이번에도 건성으로 듣는지 핸드폰을 꺼내 핸드폰 결제를 하라고 한다. 밥이 끊겨 약간 민감해져 웃으며 한국말로 떠뜬다.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지? 말을 끝까지 잘 들어야지!"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그 관경이 재미났는지 웃어댄다. 네이버 중국어 회화 문장 '하나 더 주세요'를 여자에게 보여준다.


"워 요우 이거!"

잠시 멈칫하더니 그제서야 알아들었는지 웃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어렵게 다시 나온 두 번째 밥.

밥을 다 먹으니 여자가 말을 건다. 여행에 대해서 묻고, 고향을 묻고 등등 관심이 생겼는지 질문이 많다.

건성건성 대답했던 첫인상이 얄미워서 한국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제주도 해안 풍경 동영상을 보여준다.

"너 바다 못 가봤지?"

영상을 보더니 '피아오량' 한다.

숙소에 들어와 패니어에서 짐들을 털어내고 패니어까지 깨끗하게 씻어냈다.

매일처럼 이러는 것도 지친다.

잠들기 전, 패니어들에 짐들을 다시 재정리 하고 잠이 든다.


"요상하게 힘든 날이다. 내일은 꼭 밥을 먹고 달려야지."




경비내역
식비:24위안 / 식료품:8위안 / 숙박:80위안 / 합계:112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4일 / 비 ・ 12도
징저우 먀오족 둥족 자치현-홍지앙현
겨우 하루뿐인 맑은 하늘, 다시 하늘이 우중충하다.


이동거리
98Km
누적거리
5,012Km
이동시간
7시간 05분
누적시간
347시간

 
G209도로
 
G209도로
 
 
 
 
 
 
 
47Km / 3시간 15분
 
51Km / 3시간 50분
 
징저우
 
핑춘전
 
홍지앙현
 
 
2,22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십 분만 더 잠을 청하다 몸을 일으켜 세운다. 추운 숙소에서의 불편한 잠이 썩 개운치가 않다.

패니어를 떼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니 다시 장착하는 시간이 들지 않아 좋다. 9시가 조금 지나 홍지앙시를 향해 출발한다.

홍지앙시까지는 95km의 거리, 흐린 하늘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으니 이젠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도시를 빠져나와 첫 번째 지나친 마을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갈 길이 머니 틈틈이 챙겨 먹자."

다른 사람들이 먹은 걸 보니 면 요리다. 밥이 좋지만 시간 절약도 좋을 것 같다.

두어 번 먹어본 것이라 가격도 묻지 않고 주문을 하고, 주문과 함께 바로 나온 음식에 입맛이 돋는다.

고추기름 소스도 알맞게 넣고 맛있게 먹고 있으니 아저씨가 한국 사람이 맞는지 묻는다.

"그나저나 이것으로 해장을 해도 최고겠어!"

순식간에 국물까지 싹 비우고 얼마인지 물으니 6위안이라고 한다.

가성비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건가 싶다.

"만두도 하나 먹을 걸 아쉽네."

밥을 먹는 동안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해가 얼굴을 내비친다.

겨울용 방풍자켓를 벗어 랙 패니어 위에 얻어 고무밧줄로 고정시키고 바람막이도 필요 없을 것 같아 입지 않고 출발한다.

"오랜만에 아침도 챙겨 먹었으니 달려 볼까!"

다시 만난 빈강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강변도로를 달린다.

봄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밭에 나와 무언가를 하고 있다. 강의 건너편이라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 아쉽다.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차량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혼잡스럽다. 이런 곳은 100% 시장의 입구다.

비상식으로 빵을 사둘까 하다 복잡한 동네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차들과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빠져나간다.

어수선한 마을을 벗어나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는지 길가에 나와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흔하게 보는 풍경이지만 밥그릇 하나만을 들고 집 밖에 쭈그려 앉아 먹거나 길가에 서서 밥을 먹는 모습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어두운 거실보다 밖이 환해서 저러는 걸까?"

후이통현(会同县)의 초입에 도착한다. 빵을 사기 위해 슈퍼를 찾다가 수유공원(粟裕公园) 앞에서 사람들이 앉아 노점에서 파는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자전거를 세운다.

사람들은 밥이 가득 담긴 간의 용기를 들고 중국인 특유의 식사 모습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역시나 가격 같은 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중국의 노점이나 시장 길가의 가격들은 5~10위안이다.

밥이 가득 담긴 용기에 중국의 밑반찬들만이 올려져 나온다.

"풀밭이네! 고기는 일절 없는 거야?"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가정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 계란 후라이나 두부 같은 것을 추가로 얹어먹지 않을까 싶다.

서서 먹을 수는 없고 노점 앞 명당자리인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고 밥과 풀들을 섞어 먹으니 밑반찬들의 맛이 아주 좋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자연스럽게 밑반찬 통을 열어 더 담기도 하고, 밥을 더 달라고 청하기도 하고, 누룽지를 담아 먹기도 한다.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5위안을 내길래 식사를 하고 막걸리통 같은 것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5위안을 꺼내 준다.

"우콰이?"

능숙함이, 누가 보면 중국 사람인 줄 알겠다.

노점에서 밥을 먹는 동안 땀이 식어 바람막이를 챙겨 입는다.

"겨우 감기에서 벗어났는데, 이럴 때 조심해야지."

G209 국도는 후이통현의 중심부를 지나지 않아 쉽게 벗어난다.

당나귀인지 말인지 모르겠지만 흙을 짐낭에 퍼담는다.

"세상에 바퀴 달린 것들이 모두 나와 굴러다니는 중국인데, 아직도 이런 방법을 쓰는구나."

중국 어느 도시에나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는 아파트들이 있다. 저기에 누가 다 들어가 사나 싶기도 하고 때론 저것으로 수많은 중국인에게 감당이 다 될까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빈강을 따라 이어지던 강변길이 끝나고 길은 산을 향해 이어진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급기야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하루를 못 가는구나! 갈 길이 아직 먼데."

서둘러 우의만을 꺼내어 입고 출발하니 금세 쏟아질 것 같던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오락가락한다.

비닐 우의 안쪽으로 땀들이 차오른다. 한 단, 한 단씩 단추를 풀다 보니 땡땡이 우의가 바람에 날리며 요란한 춤을 춘다.

순식간에 날씨가 변하니 어떻게 옷을 맞춰 입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을 지나며 빵을 사기 위해 슈퍼에 들어간다. 카드게임을 하느라 아무 관심도 없다.

슈퍼에는 물건들이 별로 없다. 전에 먹었던 설탕 맛만 나는 빵밖에 없어 할 수 없이 그 빵과 콜라를 집어든다.

카드게임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 옆에 앉아 빵을 먹으며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옆집 쌀가게 할아버지는 세상모르고 주무시고.

중국의 어두운 거실이나 가게 안에서 사람들이 자주 하던 게임인데 그것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사진조차 찍지를 못하고 있었다.

함부로 사진을 찍다가 돈을 잃은 사람한테 혼날까 봐.

여자는 게임이 끝나면 옆에 둔 메모지에 돈을 표시하는 숫자들을 적는다.

한 게임은 비교적 빨리 끝나는 편인데 바로 패를 섞고 다시 게임이 시작되어 어떤 게임인지 물어볼 기회가 없다.

틈이 나기를 기다릴 때 가게에 물건을 갖다주는 사람이 들어와서 여자가 잠시 자리를 뜬다.

그 사이 남자에게 게임의 이름을 묻고 번역기에 써달라 부탁을 한다.

"字牌, 즈파이"

남자는 시큰둥하게 게임명을 적어주고 바로 게임에 몰두한다.

다시 산길을 오른다. 저 멀리 회색 비구름이 내려앉은 모습이 보이고, 그 빗속을 향해 내리막을 달려간다.

지나던 길에 이번에는 100% 확실한 말이다. 곱슬거리는 갈기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잘 생긴 말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가 한국 사람이라 하니 잘 못 알아듣는 아저씨. 태극기를 가리키며 한국 사람이라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시내까지 20km를 남기고 홍지앙시의 경계에 들어선다.

시내를 4km 정도를 남기고 첫 번째 홍강을 넘는 다리를 건너고.

멀리 홍지앙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두 번째 홍강을 넘고 홍지앙시의 시내로 들어선다.

큼지막하고 육중한 건물들이 연이어 들어서 있는 홍지앙시.

그 무섭다는 공안, 홍지앙시 공안 본청의 사진도 찍어보고. 공안이 뭐가 무서운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냥 내 눈엔 제복 입은 동네 아저씨들 같다.

흔한 오토바이조차 지나가질 않고 도로는 한적할 정도로 한가하다.

숙소를 검색하고 내일 다시 이어가야 할 G209 국도변의 빈관으로 결정한다.

빈관에는 5~6살 정도 남자아이 손주를 보고 있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앉아있다.

80위안 빈관, 자전거를 프런트 뒤편 공간에 넣을 수 있는지 물으니 빈관 옆의 창고에 넣으라 하며 셔터를 내리는 제스처를 한다.

"응, 이따가 셔터를 내릴 거라는 거지? 알았어. 하오! 하오!"

자전거를 씻을 수 없는지 '쑤이, 쑤이'하며 호수로 물 뿌리는 흉내를 내니 '메이요' 한다.

"내일 또 엉망이 될 텐데, 그냥 놔두자. 모르겠다."

패니어에서 안경과 만코 어댑터만 빼내고 패니어를 달아 놓은 채 자물쇠만 잠가놓는다.

아이와 함께 그릇을 들고 밥을 먹던 아주머니는 밥을 먹어야 하는지 묻더니 근처에 있는 식당을 밥풀을 튀겨가며 설명을 한다.

정말 중국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체면 같은 것에 무신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귀엽게 보일 때가 있다.

옷을 빨아야 해서 씻지도 않고 먼저 밥을 먹기 위해 아주머니가 알려준 식당으로 간다.

불이 피워진 타이어 화로에 젖은 바지와 신발을 말리고.

메뉴에 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게, 어제 퉁다오에서 만난 남자들이 알려준 코우로우얀차이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없다고 한다.

언제나 난감한 재료가 든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가리키니 여주인이 두부를 가리킨다.

"돼지고기에 두부를 넣는다고, 좋아. 하오!"

얼마인지 물으니 25위안이라며 손가락 숫자까지 하며 알려준다.

뚸샤오첸을 하도 많이 했더니 가격 숫자들이 귀에 들어온다.

돼지고기, 두부, 고추, 마늘줄기 등으로 볶은 요리가 고봉으로 담은 밥과 함께 나온다.

맛있고 하자 여기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왜 중국어가 귀에 들리는 걸까?"

고개도 들지 않고 밥을 먹으며 한국 사람이라 대답한다. 한 달 넘게 중국에 있다 보니 반복되는 말들과 질문들이 귀에 쏙쏙 박힌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옷을 씻어 말린다.

"네가 제일 고생이구나."

8시부터 천둥이 치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린다. 겨울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보다.

"그래, 차라리 밤새 왕창 내려버리고 아침에는 제발 그쳐다오."



경비내역
식비:36위안 / 식료품:21위안 / 숙소:80위안 / 합계:137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3일 / 맑음 ・ 14도
퉁다오 둥족 자치현-징저우 먀오족 둥족 자치현
비가 오며 번개가 치던 요란한 밤이 지나고 비가 오지 않는 아침이다.


이동거리
79Km
누적거리
4,914Km
이동시간
5시간 10분
누적시간
340시간

 
G209도로
 
G209도로
 
 
 
 
 
 
 
40Km / 2시간 40분
 
0Km / 0시간 00분
 
퉁다오
 
시안시전
 
징저우
 
 
2,129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하늘은 그리 밝아 보지 않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도통 어울리지 않는 햇살의 아이콘이 떠있다.

조금은 피곤함이 남아있는 아침, 풀어 헤쳐진 짐들을 정리하고 길을 떠난다.

공원에서 조용한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무척 부드럽고 유연하다.

계화수에 붉은 홍등이나 리본을 달아 놓으면 그 모양새가 너무 예쁘다.

우선 시내를 빠져나가기 전에 비상식으로 두꺼운 빵과 콜라를 사놓는다.

작은 퉁다오현을 쉽게 벗어났지만 하늘이 조금은 어둡다. 오늘 이동할 징저우현까지는 대략 80km, 역시나 지도상의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퉁다오현에서 다시 만난 빈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변길과 산길을 따라간다.

약한 안개비가 내려앉더니 이내 사라진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누런개가 짖으며 달려들어 전속력을 내어 달아난다. 어제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아니 이놈들이 왜 이렇게 달려들지? 펄럭거리는 태극기 때문인가?"

어제의 라이딩이 반복되 듯 고즈넉한 빈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며 길을 이어가다 출출한 느낌에 잠시 쉬어간다.

소수민족의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가 보이고 며칠째 계속되는 모양의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진다.

마을의 초입 또는 집 주변에 하나씩 있는 촛불을 켜놓는 공간은 다리 입구에도 마련되어 있다.

처마마다 각기 다른 그림들과 글자들이 그려져있다.

첫 번째 처마에 올려진 조각상. 사자석상을 나무로 조각한 것인지 다른 형상의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다리의 처마를 구경하는 사이 누런개가 다가와 먹을 것을 찾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만다. 이젠 개만 봐도 움찔움찔거린다.

순한 개들도 있다. 빵을 먹으면 그 냄새에 돌변할까 싶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린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 같은 빵을 맛나게 먹으며 처마들을 마저 올려다본다.

"校车站点?"

학교의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곳인가 보다.

5층으로 만들어진 처마는 각층마다 각기 다른 그림들과 문자들이 그려져있다. 3층에 그려진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과 문양이 눈길을 끈다.

양쪽의 돌사자상 입속에는 사탕이 하나씩 들어있고.

"위는 사람인데, 아래는 물고기를 형상화 한 건가 아니면 여자를 뜻하는 것인가?"

두 명의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가는데 중국어가 아닌 말로 대화하는 것 같다.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점심은 12시쯤 도착할 것 같은 시안시전(县溪镇)에서 먹을 생각이다.

"오늘은 제때에 밥을 먹고 산을 오르자."

작은 마을을 스치듯 지나치려니 조그맣고 털이 정리가 안되어 더러운 개 두 마리가 달려든다.

"아놔, 이 동네 개들한테 나 호구 잡힌 거야? 뭐야!"

나지막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한마을을 지나쳐갈 때 마당에서 돼지와 염소를 통으로 잡고있는 집을 발견하고 대문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니 하오 마."

들어선 집에서는 염소의 털들을 뜯어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옆에서 구경하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질 않는다.

염소를 잡는 옆집으로 나무 의자가 잔뜩 들어오고.

그곳에는 돼지를 잡고 있다.

"뭘 하는 거지? 잔치 같은데."

주변의 남자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어본다.

"이 집의 딸이 시집을 간다."

결혼식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남자와 나는 서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산속 마을이라 그런지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 번역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질 않는다.

한참을 답답해하자 남자가 자신의 핸드폰에 번역기를 설치해서 대화를 이어간다.

"센스쟁이!"

남자의 이름은 우바이주(吴宝炬). 담배를 한 개비 건네주며 사진을 찍고 우바이주는 함께 음식과 술을 마시자 한다.

"너는 귀한 손님이다. 오늘 우리와 음식과 술을 함께 먹고 가라."

베이징으로 향하는 여정의 바쁜 걸음이 선택의 망설임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하지. 중국 소수민족의 결혼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하루를 여기서 머무를까?"

그리고 우바이주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자리를 비운다.

조금 전 털을 뽑아내던 염소를 짚불에 그을려 잔털들을 제거한다. 우리의 시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안경을 쓴 남자는 호기심이 많고 친절하게 지역의 명소들을 알려준다.

빠르게 해체되어가는 돼지고기. 그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돼지의 부속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버섯이다.

옆집에서는 여자들이 채소를 다듬고 있고.

너무나 예쁘고 앙증맞은 아이들. 약간 이국적인 생김새가 너무 귀엽다.

우바이주가 보이질 않아 안경을 남자에게 결혼식이 언제인지 묻자 내일이라고 한다. 오늘은 식사를 하고 내일 결혼식을 한다고 한다.

"힝, 이틀을 머무를 수는 없는데. 너무나 아쉽지만 가야겠다."

오골계처럼 속에 검은 닭.

돼지머리를 전기인두 같은 것으로 지진다. 모양을 잡으려 그러는 듯싶다.

한집에선 남자들이, 한집에선 여자들이 분주하다.

낫 같은 것으로 무언가를 다듬고 있어 가보니 고구마 같은데 속살이 조금 다르다.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조금 잘라서 달라고 부탁하니 처음에는 의아해하더니 이내 조금 잘라 준다.

한 입 깨물어 보니 고구마가 맞고, 단맛이 진하고 아삭하니 맛이 좋다.

"네가 이러면 아저씨가 심쿵 하잖아!"

우바이주는 어딜 갔는지 계속 보이질 않고 안경을 쓴 남자에게 가봐야 한다며 인사를 전한다.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음식을 먹고 가라며 모두들 아쉬워한다.

여자들이 모여있는 집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고.

1시가 훌쩍 넘어버리고 남은 거리는 65km나 남아있다.

"부지런히 가면 산길이라도 해지기 전에는 도착하겠지."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즐거웠으니 시간이 늦어진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오고, 등 뒤편으로 따듯한 기운과 함께 어색하기 그지없는 밝은 햇살이 느껴진다.

"어, 꿈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에 하얗게 뭉실거리는 구름과 푸른 하늘이 열려있다. 무려 33일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다.

"나 지금, 감동 한 바가지 먹어도 될까?"

달리며 장갑을 벗고 자켓의 앞섬을 모두 내리고 신이 나서 흥얼거린다.

하늘이 열리니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 같다.

바로 보이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서서 검은 겨울용 방풍 자켓을 벗고, 하늘하늘거리는 방풍자켓으로 갈아입는다.

"바람을 느껴야 해. 앞 지퍼 따윈 올리지 않아!"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짚불을 태운 흔적이 있다. 아마도 추위를 피하려 군불을 피운 흔적인 것 같다.


조금 출출한 기분이 들어 휘파람 라이딩의 동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지만 멀지 않은 곳에 시안시전이 있으니 거기에서 제대로 밥을 먹을 생각이다.

비가 올 것이라 생각하여 오는 동안 삐걱거리던 체인에도 윤활을 하고, 콜라 한 모금을 마신 후 출발한다.

"준비됐어? 나 지금 완전 신났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전까지 조금은 원망스럽던 쌀쌀맞은 맞바람이 산들산들 땀을 식혀주며 시원하게 느껴진다.

앞섬을 열어놓은 방풍 자켓이 바람결에 휘날리며 흥을 더해준다.

맑은 하늘과 구름, 빈강의 수려한 풍경 속을 즐겁게 달리다 보니 문득 투덜거리며 힘겨워 하더라도 이 좋은 것들을, 좋은 느낌을 함께 했으면 더없이 좋았겠다 싶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일까?"

가벼워진 페달링에 남은 거리들이 빠르게 지워져 간다.

너무나 밝고 찬란한 햇살 속에서는 벌써 2시였던 시각은 겨우 2시로 느껴지고, 기온을 확인하려 날씨를 확인하니 정말 어색하고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화창!"

상점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의 변두리 길을 빠르게 지나치고 경사와 상관없이 가벼운 페달링을 이어간다.

오르막길 도로 한가운데 놓인 오토바이 헬멧, 중국 사람들은 뭔가를 참 잘 떨어뜨리며 다닌다.

돌, 흙, 나무, 채소, 쓰레기 봉지, 신발, 짐보따리 그리고 이번엔 헬멧.

"그런데 왜 시안시전이 안 나오지? 배고파지는데."

계속 달리다 보니 빈강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는 곳까지 와버렸다. 중간에 있어야 할 시안시전을 보지 못해 혹시 지나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지도를 확인하니 시원하게 내달렸던 상점들이 모여있던 변두리 길이 시안시전다. 빈강을 사이에 두고 왔던 길의 건너편이 중심가인 모양이다.

"빨리 와서 좋기는 한데, 밥을 못 먹어서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아쉬운 대로 남은 빵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오늘은 밥 복이 없네."

크기로 승부했던 빵을 한입 베어 물자 빵속의 내용물이 황당하다.

"뭐야, 공갈빵이야! 정체가 무엇이냐?"

속이 비어있고 팥앙금 같은 내용물이 흔적처럼 붙어있다.

"3위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나."

그래도 중국 빵들은 맛있다. 우리의 보름달이나 단팥빵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산길은 조금씩 오르막의 경사가 더해지면 이어진다.

그리고 안경 쓴 남자가 알려주었던 풍경이 좋다는 만불산의 초입이 나오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중국에는 이런 하늘 높이 올라간 굴뚝들이 하나 또는 두 개씩 가끔 보인다. 어떤 용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꽤 높다.

이상하게 논밭에서 일하는 여자들, 집을 짓는 여자들을 더 많이 본다. 남자들은 죄다 담배를 물고 마작, 카드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나 보다.

만불산 길의 정상 봉우리들이 흥미롭다. 나무들이 없이 나선형 방향으로 돌아가며 깎여있다. 그동안 힘든 산길을 타고 다녀서 그런지 만불산의 정상을 너무 쉽게 오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코 쉽게 떨어지지 않던 다른 산길과는 달리 만불산의 내리막은 시원하게 논스톱으로 떨어진다.

"이럴 때 쓰는 거지. 웬열!"

산골이라 집집마다 낡고 거대한 원반형 수신기가 집 앞에 놓여있다.

이곳의 집들에는 작은 삼각형 깃발들이 집 주변에 걸려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집에서 보낸 시간으로 6시나 7시쯤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좋은 날씨 덕에 5시 전 징저우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4시, 징저우현까지 15km가 남아있다.

우리의 시골 풍경과 흡사한 길을 달리고, 길은 평지로 길게 이어진다.

5km를 남기고서도 도시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포도 같은 넝쿨 과일과 딸기를 재배하는 동네인가 보다.

궁금했던 딸기 하우스의 내부가 보고 싶어 고개를 내밀고 빼꼼히 들여다본다.

형태는 비슷한데 재배 환경이 열악하고, 엉성해 보이는 비닐하우스는 태풍이라도 불면 금세 날아가 버릴 듯하다.

작은 오르막을 넘자 늘 그렇듯 갑자기 나타나는 중국의 소도시.

가끔 오토바이에 작은 묘목들을 싣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징저우현의 초입에 묘목을 파는 노점이 열려있다.

묘목들에 조그맣게 열매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데 베리 종류의 열매들이다.

징저우현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G209 도로변의 초입에서 숙소를 잡는다.

60위안의 낡은 빈관인데 사람들이 밝고 친절하다. 중국여행을 하며 좋은 시설보다는 밝게 웃고 농담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역시나 주숙등록을 처음 하는지 나에게 되려 물어본다.

"아줌마, 할 줄 모르지? 빨리해봐!"

여권의 개인 정보 면과 비자 면을 찍어 놓으라 알려주고 자전거는 패니어도 떼지 않고 프런트 옆에 묶어놓는다.

"이제 계단을 들고 나르는 것도 힘들다."

2층 방을 직접 안내해 주더니 난방기 켜는 방법을 알려준다.

"알아! 난방기는 됐고 키 줘!"

웃으면서 키가 없다며 필요 없다고 한다.

"하하하하하하. 알았어."

비좁은 욕실인데 뜨거운 물은 시원하게 잘 나온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밝고 따듯한 햇살이 여전하다.

길 건너 식당에 들어가니 메뉴판도 없고 재료들도 안 보인다. 할 수 없어 어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시래기 돼지고기볶음 사진을 보여주니 주방장 남자가 나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테이블 밑에 불를 지피는 곳을 폐타이어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음식이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고기 양이 조금 적다는 것뿐.

선지 배춧국도 뒤이어 나오고.

크게 두 그릇을 비우며 메뉴의 이름을 물어보며 번역기에 써달라 부탁한다.

여자 주인은 메뉴의 글자를 쓰더니 마지막 글자를 모르겠다 웃으며 조금 전 가게에 들어온 남자 손님들에게 뭐라 말을 한다.

그리고 남자 손님들이 핸드폰에 메뉴의 이름을 적어주며 발음까지 알려준다.

"코우로우얀차이(扣肉腌菜)"

밥을 먹는 동안 몇몇 가지를 묻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밥을 다 먹을 때쯤 술 마시는 제스처를 하며 같이 먹자고 제안을 한다.

잠시 후 슈퍼에서 예쁜 병의 술을 한 병 사 오더니 같이 먹자며 손을 이끈다.

검지를 펴서 한 잔만 하겠다 제스처를 하고 남자가 내어준 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시켜놓은 안주는 엄청나게 푸짐한 돼지고기 같다.

"오, 돼지고기!"

"喝酒不开车了啊"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고 하며 56도짜리 맑은 술 한 잔을 따라준다.

소스와 계란볶음 요리도 나오고.

소스 먹는 법을 배우고 고기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돼지 머리고기다.

"건배!"

향긋하지만 독한 술에 쓰다는 소리를 크게 내니 다들 깔깔거리며 조금씩 먹으라고 한다.

왼쪽 수줍음이 많은 남자, 오른쪽 활달하고 유쾌한 남자 그리고 자리를 초대해 준 옆자리의 차분하고 성격 좋은 남자.

이렇게 넷이서 여행에 대해, 한국에 대해 그리고 징저우현에 대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가서 자야 한다며 사진을 찍자 하니 즐겁게 건배샷까지 연출해 주고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초대해 준 남자가 따듯하게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중국어로 뭐라 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니 꺼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건강하라는 당부거나 여행 잘 해라 하는 격려겠지 싶다.

식당을 나오니 천천히 예쁜 노을이 지고 있다.

숙소에 돌아와 우바이주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니 자기가 일하는 사이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안주어서 내가 가버리고 없었다며 아쉬워한다.

소식을 자주 전하겠다 하니 나중에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선물하겠다고 한다.

오랫동안 우바이주와 위챗을 한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맑은 하늘보다 더 찬란하고 따듯했던 하루다.

"어서 베이징으로 가자!"





경비내역
식비:12위안 / 식료품:24위안 / 숙소:60위안 / 합계:96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2일 / 비 ・ 13도
룽성 각족 자치현-퉁다오 둥족 자치현
퉁다오현까지 80km, 하지만 지도에 나오는 길들이 구불구불 수상하다. 험난한 하루가 예상되는 하루다.


이동거리
85Km
누적거리
4,835Km
이동시간
7시간 40분
누적시간
335시간

 
G321도로
 
G321도로
 
 
 
 
 
 
 
44Km / 3시간 35분
 
0Km / 0시간 00분
 
각족자치현
 
간시시앙
 
둥족자치현
 
 
2,050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창문 밖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지 길가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휘청인다.

"하필이면 가야 할 방향의 역풍이야."

심상치 않은 바람에 일기예보를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번개 아이콘이 가득이다.

"하다 하다 이제 번개 세트냐."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보니 설마 했던 펑크가 나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펑크가 나니 여행 전 여행용 슈발베 타이어로 교체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타이어 내부를 여러 차례 훑어보아도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은 없는데 어찌도 이리 부지런히 펑크가 나는지 모르겠다.

펑크패치를 붙이고 정비를 한 후 잠시 기다려 패니어를 올리니 그때서야 다시 바람이 빠져버린다.

"아, 정말!"

계림에서 정비해 놓은 예비 튜브를 꺼내어 교체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람을 넣고 기다린다.

"중국의 빵구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어."

다행히 바람이 빠지지 않는 타이어. 한 시간을 알뜰하게 날려버리고 10시가 가까워서야 출발을 한다.

어두운 하늘, 강한 바람과 함께 멀리 산으로부터 비구름이 내려앉는다.

오늘따라 가벼운 느낌의 페달링 하지만 불어오는 맞바람은 자전거를 그대로 멈춰 세워버린다.

앞서가는 우산을 단 오토바이는 날개가 달린 듯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다.

"비, 바람 그리고 산길. 번개까지 치면 완벽하겠네."

빈강(滨江)을 따라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길을 향한다.

고덕지도가 안내하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나 문제의 구불구불한 산길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아무리 봐도 시멘트 포장의 고된 산길이 될 것 같다. 잠시 망설임의 시간이 가고 페달을 밟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국도와 고됨이 예상되는 산길, 이런 불운한 선택의 딜레마가 다 있나. 못 먹어도 고다!"

하지만 산길의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고 채 5분을 가지 못하고 포기한다.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이 길만은 안되겠어. 좀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타고 가자."

초입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며 벽돌들을 쏟아낸 트럭이 아직도 뒤처리를 하고 있다.

중국의 작은 트럭들은 종종 화물들을 떨어뜨리고 다녀서 절대 뒤를 따라가면 안되는 것 같다.

청록빛의 빈강을 따라 이어지는 G321번 국도 역시 구불구불하지만 큰 오르막 없이 이어진다.

차가운 바람에 이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순간순간 변하는 날씨라서 우의를 챙겨 입지 않고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펑크로 인해 아침 식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뱃속에서 허기짐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식당은커녕 작은 슈퍼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저녁밥은 세 공기쯤은 먹어야 아침에도 든든한 건데."

새 집을 많이 지어 올리는 중국의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골재를 혼합하는 믹서기다.

마을조차 없는 길을 달리다 길가의 작은 슈퍼를 만난다.

간단하게 빵과 콜라를 6위안에 사서 출출함을 달래고.

재미있는 슈퍼의 추 저울. 간단한 것들은 가격 정찰제를 하면 편할 텐데 중국은 무엇이든 저울에 올려서 판다.

롱지에서부터 사람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어깨에 메고 짐바구니를 달고 다니는 방법이 아닌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다닌다.

중국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템들 중 하나인 의자들은 크기도, 만든 소재도, 모양도 다양하다. 조그마한 의자에 앉으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곳의 집들은 독특하게 옛 목조 건물들을 이층과 삼층에 올려 지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상한 창고처럼 보이는 최근의 벽돌집보다 멋있고 보기가 좋다.

빵을 먹고 얼마 안 가서 작은 시골 마을이 나온다. 어제 2시간 정도 라이딩 시간이 남았던 오후에 도착하려고 했던 피아오리전(瓢里镇)이다.

도로를 따라 돼지고기나 채소 등을 파는 노점들이 이어진다. 길가의 식당들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 조금 전 먹어둔 빵의 열량으로 충분하여 쉼 없이 지나친다.

"꼭 뭘 하고 나면 그 뒤에 필요했던 것이 나오더라. 뒤에 있을까 싶어 지나치면 아무것도 없고."

중국의 강들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찾아보기 꽤 어렵다. 생각보다 강을 건너는 다리들이 그렇게 많이 놓여있지 않아서 시골에는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운치는 있는데 말이지."

가끔씩 기와지붕이 올려진 중국의 독특한 다리들. 중국의 옛 건축물들, 다리나 집, 수로들을 보면 나름의 특색이 있고 자연과의 어울림이 좋아 감탄스럽다. 하지만 요즘 건축물은 그냥 우스꽝스럽다.

산골이라 그런지 옛 목조 가옥들이 많다. 이층 또는 삼층으로 지어진 목조 가옥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독특한 멋이 느껴진다.

"이게 유채꽃이지!"

석물(石物)이라는 비석이나 기념석으로 사용하는 멋들어진 돌들이 많이 놓여있고, 수석 같은 공예점이 많다. 돌이 유명한 동네인가 보다.

중국은 마을마다 대나무 마을, 돌 마을, 나무공예 마을 등등 컨셉이 확실하다. 

돌 마을을 지나 계림 여행을 안내했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난다.

"고맙다. 멋진 광시성, 매력적인 계림이었다."

"중국의 집들은 한 일이 년에 걸쳐 짓는 것일까?" 

온돌을 까는 것도 아니고 난방 시설도 없고, 상하수도나 전기배선이 복잡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짓다 만 집들이 많이 보인다. 주로 대나무와 향나무 같은 것을 짓는 집의 받침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좋은 풍경으로 길을 이어준 빈강도 한 컷.

할머니가 그녀보다 더 늙은 할머니와 길을 걷는다. 

"부녀지간 아니면 고부지간일까."

G321번 국도를 벗어나 장가계까지 길을 이어줄 G209 국도의 산길이 시작된다.

조금씩 경사를 더하며 오르고 광시성을 벗어나 다시 후난성의 경계에 들어선다.

마을의 멋진 초입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고 반대편의 코너를 돌아 사이클을 탄 남자가 내려온다.

"짜요!"

잠깐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응원의 말을 던지고 지나간다. 넓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만난 라이더다.

남자가 내려온 코너를 돌자 검은 개가 자전거의 길을 막고 사납게 짖어댄다.

길을 막고 따라 올라오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대더니 서둘러 속도를 내는 더욱 거세게 따라붙으며 리어 패니어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저리 안 가. 광견병 접종은 안 했단 말야!"

개의 눈을 계속 바라보며 오르막에서 속도를 내어 있는 힘껏 페달을 밟으니 20미터쯤 쫓아오다 돌아간다.

"빌어먹을 개새끼!"

오르막에서 힘을 쓰다 보니 순식간에 기진맥진이다.

중국의 개들은 못 먹어인지 삐쩍 마른 것들이 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다. 도로를 가로막고 차들이 크락션을 울려도 쉬 피하지도 않고 중국 사람들처럼 제멋대로다.

별일 없었음을 안도하며 길을 오르는데 이번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길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집에서 누런개가 무서운 기세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썅! 오지 마!"

측면에서 달려드는 개의 기세가 대단하고 위험하다. 다시 개의 눈을 보며 속도를 내며 겨우 뿌리친다.

무섭게 달려드는 사나운 개들을 피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아, 된장을 발라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들!"

개들을 피해 산길을 오르고, 달려드는 개보다 더 살벌한 중국의 안내판이 보인다.

가끔 산을 통째로 깎아내는 중국의 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많은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자원의 소모가 필요할지 가늠도 안된다.

오르막 안내판 4종 세트가 길을 안내한다. 

"급회전, 급경사, 위험, 지그재그."

돌고 오르고 돌고를 반복하다 내리막이 시작되고, 벗어놓은 장갑을 끼고 자켓의 지퍼를 올린 후 내리막의 보상을 받기 위해 출발했지만 그것이 무색하리만큼 짧은 내리막은 바로 끝나버린다.

"..."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을 투덜거리며 오랫동안 오르고.

다시 만난 내리막 810미터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야! 뭔가 계산이 틀리잖아. 올라온 거리가 얼만데 겨우 810이야."

고개의 정상에서 쓸데없이 내려가면 더 한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산골에도 목재 가옥이 사라지고 그 형태만을 그대로 본뜬듯한 모양 없는 벽돌 가옥들이 들어선다.

언젠가 사라져버릴 그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긴 오르막이 끝나고 꼴랑 1,200미터 정도를 내려간다. 내려간 거리에 알파를 더해 다시 오르라는 안내와 다를 바 없다.

소수민족 자치구에 들어선 롱지에서부터 이 모양의 건물이 자주 보인다. 확실히 롱지전을 지나면서 부터는 풍경도, 사람도, 건물들도 모두 이색적인 모습이다.

오르막에서 만난 중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경운기는 미니멀한 사이즈다. 척박한 산자락의 꼭대기에서도 삶의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보이는 고개의 끝을 마주한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인가? 분위기가 마지막 고개 같은데!"

2km쯤 내려가던 길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마을을 오르던 중 한 아저씨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할로우'하며 인사를 한다. 중국에서 쉽게 받을 수 없는 환대의 인사에 즐거운 인사로 답을 한다.

차가운 바람과 안개비가 시작되는 마지막 고개에 도착한다. 퉁다오현까지 45km를 남기고 들어선 G209 국도는 아직도 26km가 남아있다.

"겨우 내려가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오네."


몇 분이 안돼 5km가 삭제되고, 자켓은 순식간에 젖어버린다. 롱청전(陇城镇)에 들어선다.

제법 규모가 되는 마을의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마침 먼저 있던 손님들의 메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달라고 요청한다. 얼마인지 물으니 15위안이라 한다.

"쓰우콰이!"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아내는 국을 끓인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볶음과 배춧국. 우선 선지가 들어간 배춧국은 부드럽고 향긋한 배추향이 좋고 국물이 시원하다.

"완전 해장용인데."

메인 메뉴로 나온 돼지고기볶음은 시래기 같은 건조한 채소를 잘게 썰어 돼지고기와 말린 고추 등을 넣어 볶은 것으로 먹는 순간 짧은 감탄이 나온다.

"와우, 최곤데!"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고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따듯하고 편안한 배춧국이 언 몸을 녹이고 시래기 돼지고기와 머슴밥으로 허기짐을 채운다.

식당의 테이블 아래 전기난로가 놓여 정말 따듯하다. 식사가 끝났음에도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한없이 나약하고 가벼운 마음이다.

거실이나 가게 같은 곳에 내부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에서는 이렇게 테이블 밑에 난로를 두고 자기들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손님의 테이블마다 난로를 둔 곳은 처음 본다.

"페이창 하오 츠!"

'내가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이다'했더니 '그렇냐'며 좋아한다.

밥을 먹고 나니 4시가 되고, 앞으로 내리막길일 테니 21km 거리의 퉁다오까지 5시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와 함께 맞바람이 불어오지만 내리막의 가속도가 붙은 무거운 자전거를 방해하지는 못하고, 30분 만에 10km가 사라진다.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소수민족의 독특한 옷차림과 복장을 한 사람들을 자주 지나친다.

조금씩 도로의 상태가 나빠지더니 퉁다오를 10km 정도를 남기고 지옥문이 열린다. 도로포장을 다시 하는지 길들이 파여있고 곳곳이 시멘트 흙탕물로 엉망이다.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털털거리며 좌우로 미끄러지는 바퀴들 그리고 대형 트럭들의 통행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고 불규칙하게 파여있는 흙탕물 웅덩이를 지나며 매너 없는 운전자가 지나가면 큰일이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그때 그분이 지나간다.

블랙코드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감사하게도 시멘트 흙탕물로 회색빛 무늬들을 흩뿌려 밋밋했던 복장을 화려하게 수놓아 준다.

"고맙다. *&^*#*#&$&$^*#&$^!"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 중국인을 뭐라 할 수는 없고, 인구의 1%만 저러해도 매너없는 사람이 1,5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문제겠지 싶다.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돼버린 자전거와 옷들이다.

중심을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오고 그 와중에 길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대체 얼마나 파헤쳐 놓은 거야?"

무려 6km에 이르는 지옥을 경험하고 심신이 너덜너덜거리며 6시가 되어서야 퉁다오의 시내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오묘한 산들이 우뚝 솟은 퉁다오현.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시멘트 흙이 마르기 전에 자전거를 세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첫 번째 주유소를 들렀지만 세차를 하는 차량들이 있어 되돌아 나오고, 두 번째 주유소에 들렀지만 세차 시설이 없다.

주유소 세차를 포기하고 신호등을 건너 좌회전하려는데 주유소에서 검은 요크셔 같은 작은 개가 나와 길을 막고 따라오며 짖는 바람에 좌회전 신호를 놓쳐버린다.

"아, 오늘 개새끼들이 왜 이래!"

가장 가까운 곳의 주점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세차하고, 시멘트로 엉망이 된 옷들을 씻어낸다.

"오늘 저녁은 건너뛰자. 먹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

저녁이 되니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는 퉁다오현이다.

"야경이 알록달록 이쁘네."

아침나절 펑크로 시작하여 비와 바람, 오르락내리락 산길과 사나운 개들 그리고 시멘트 흙탕물까지 뒤집어쓴 이상한 날이다.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예쁜 야경도 봤으니 그럭저럭 퉁치자."

아침에 예보되었던 번개 세트가 빠졌다고 생각했더니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비가 내리고 요란한 번개가 번쩍번쩍 거린다.

"참나, 이상하고 요상한 날이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1일 / 비 ・ 14도
롱지전-용척제전-룽성 각족 자치현
늦어진 아침, 9km에 위치한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보러갈 것인지를 수없이 망설인다. 짙은 안개비가 자욱한 룽지전. "가자!"


이동거리
38Km
누적거리
4,750Km
이동시간
4시간 56분
누적시간
327시간

 
산길
 
G321도로
 
 
 
 
 
 
 
12Km / 2시간 40분
 
26Km / 2시간 16분
 
롱지전
 
롱지촌
 
룽성
 
 
1,96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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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늦잠으로 9시에 겨우 일어난다.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가 또 있을까 싶다.

비가 내리고 다음 목적지까지 90km의 거리, 지도에 보이는 경로가 구불구불 거린다.

"산길들인가?"

늦은 출발시간, 비와 안개, 숙소가 없는 산길 그리고 보고 싶은 용척제전의 풍경이 일정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안개 때문에 용척제전에 가더라도 그 풍경들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일정대로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갈 생각이다.

짐들을 정리하고 체크인을 한 후, 다시 한번 망설임이 이어진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잖아!"

고덕지도를 롱지에 위치한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龙脊古壮寨梯田观景区)로 목적지 설정을 하고 출발한다.

롱지전의 용척제전으로 가는 길은 2개가 있다. 9km 거리의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와 17km 거리의 평안장족제전관경구(平安壮族梯田观景区).

10시 40분, 숙소에서 가까운 용척고장채으로 가기 위해 땡땡이 우위와 고무장갑을 착용한다.

"9km 산길, 딱 속초에서 넘어가는 미시령 사이즈네."

초입을 지나자 나지막이 시작된 오르막은 구비져 이어지며 조금씩 경사도를 더해간다.

천천히 밀려 내려오던 안개비가 짙어지더니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비밀스럽게 감춰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거친 숨을 몰아쉴 때쯤 좁은 산길로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버스가 있었어!"

숙소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대중교통 노선이었는데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미니버스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 곁을 지나간다.

지나쳐간 버스는 안개가 감싸인 조용한 산길 어디선가 크락션을 울려댄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이라 그 소리가 어디서 울리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계속되는 산길 너머로 인가들이 조금씩 보이고 작은 산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안개가 걷힌다.

덥혀진 온몸의 열기에 우의의 단추들과 자켓의 지퍼가 내려지고 고무장갑은 벗어버린 채 핸들을 잡은 맨손은 전혀 춥지가 않다.

첫 번째 마주한 몇몇의 집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4km가 더 남아있다.

어느새 안개구름들이 시선 아래 위치하고 산을 타고 넘는 안개구름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깝다. 사진으로 대신할게."

2km를 남기고 이전보다는 조금 편안한 길이 이어지나 싶더니 이내 급격한 오르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다시 짙어진 안개와 안개비가 축축하게 몸을 적시고 있다.

"그냥, 희뿌연 안갯속에서 사진으로 봤던 풍경을 마음속에 그리다 오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렇게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용척고장채 입구, 자전거로 오르는 나를 보더니 모두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다.

"빠쓰?"

100위안을 주니 잔돈과 입장권을 내주고 영어 팜플렛이라며 관광 안내서를 밝게 웃으며 건네준다.

"근데 얼마나 올라온 거야?"

산들샘을 켜고 고도를 확인하니 입구까지 670m 정도 높이다.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 잠시 쉬며 용척고장채의 관광 지도를 보고 있으니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밥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마침 허기가 밀려와 가게 이름을 번역기에 메모하고 지도를 가리키며 가게의 위치를 물어보니 입구 가까운 곳을 가리킨다.

"응 알았어. 구경하고 밥 먹으러 갈게."

잠시 쉬고 싶은데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 여자는 계속 무언가를 말한다.

"중국어 사투린가?"

말을 해도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고 할 수 없이 내가 쉬는 것을 포기한다.

"그래, 갑시다! 취! 취!"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숙소들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음식점이 나온다.

여기가 식당인지 묻자 여자는 안개에 감싸인 산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판티엔 나리? 멀어? 머냐고?"

알아들었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너는 누구냐?"

헛웃음을 크게 지으니 저기를 보라며 손가락으로 전망대 같은 곳을 알려준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계단식 논밭들이다.

"와우~!"

감탄을 자아내니 아주머니가 따라하며 예쁘냐고 물어본다.

"쩌리 쓰 피아오량! 피아오량!"

순식간에 나타난 풍경을 놓칠까 서둘러 핸드폰과 카메라를 꺼내어 바쁘게 셔터들을 눌러댄다.

경이로운 삶의 노력들이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 속에 어우러져 눈에 담기에도 아까울 지경이다.

사진을 찍는 사이 다 보았으면 가라는 듯 다시 안개가 빠르게 밀려든다.

다시 식당을 가기 위해 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여자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용척고장채의 관광로는 나무테크로 예쁘게 이어지고 곳곳에 전망대처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빠르게 안개에 둘러싸이고 안개비가 시작된다.

산책을 하던 남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타이완에서 왔다며 소개하고 한국인이지 묻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가며 무엇이 즐거운지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근데 니 더 밍즈?"

윈웬밍이라고 말하는데 사용하는 중국어가 사투리인지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그만이다.

가다 보니 논밭의 논두렁을 따라 가지런히 무언가가 세워져있다. 아마도 밤에 불을 밝히는 조명 같다.

용척제전의 야경을 보면 논두렁을 따라 조명을 켜둔 사진들이 있었다.

논밭 사이사이 흙계단이나 돌계단들이 정성스레 만들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했을까?"

시골의 볼품없는 가랑이 논자락들, 삐뚤한 논두렁에 반듯반듯하게 돌들을 쌓아올리려 무던히도 애를 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무엇이든 당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집스러웠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할 무렵, 반듯한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밤을 새는 고집스러움에서 그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고작 1픽셀짜리 그레이 선 하나 때문에 말야."

20여 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르고서 윈웬밍의 식당에 도착한다.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누구인지를 묻는 것 같다.

"다 왔어? 여기야? 쩌리 니더 판띠엔?"

질문에 맞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옆에 건물을 가리키며 잠자는데 42위안이라고 알려준다.

"알았어. 쭈띠엔 42카이. 일단 밥줘! 츠판, 워 헌어!"

식당은 예상외로 깔끔하고 우리의 일반 음식점처럼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괜찮다.

하지만 원재료를 보면서 주문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돼지고기를 골라 얼마냐고 물으니 아들처럼 보이는 주방장과 뭔가를 얘기하더니 50위안이라고 한다.

"뭐가 이렇게 비싸! 나 조금만 먹으면 돼."

소통불가, 밖에 나와 조리대에 붙어있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사진을 가리키며 얼마인지 물으니 30위안이라며 삶아 놓은 면을 보여주며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래, 면 줘! 쓰, 쓰, 미엔"

어렵게 주문을 마치고 윈웬밍이 낑깡 같은 것을 따듯한 물과 함께 내어준다.

그리고 젊은 주방장은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보여주며 넣을 건지 묻는다.

오는 동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든 옷들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퓨전 음식처럼 심플하고 맛과 향이 너무 좋다.

"와, 맛있는데 양이 부족하겠다."

순간 사라져 버린 맛있는 면요리. 맛있다 말하자 젊은 주방장이 좋아하고 잠시 후 들어온 윈웬밍도 맛이 어떤지 물어본다.

"하오, 하오 츠!"

점심을 먹고 윈웬밍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마을의 위쪽 가장 높은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출발한다.

조금 오르자 길은 급경사로 이어져 자전거를 끌 수밖에 없다.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있으니 조금 전 인사한 윈웬밍이 뒤에서 따라온다.

자전거를 끌며 헉헉거리면 따라서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핸들바를 끌어준다.

"근데 너 왜 나를 따라와?"

계속 길을 따라다니는 윈웬밍에게 물어본다.

"너는 길을 모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안내해 주려고 나를 따라온 것 같은데, 하나밖에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고 길은 한층 더 경사가 지고 노면은 나빠진다. 계속되는 안개비에 정상을 100미터쯤 남기고 포기한다.

"저기 가면 다시 이리로 내려와야 해?"

온갖 몸짓으로 물어보니 길이 없다고 한다.

"부쓰, 부쓰! 안되겠다. 아래로 가자. 취! 취!"

마을을 가리키며 내려가자고 하니 윈웬밍이 박장대소를 한다.

빗물에 젖은 급경사를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들다. 무거운 무게에 밀리는 브레이크를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온다.

조심스레 천천히 경사면들을 내려와 다시 윈웬밍의 가게 앞에서 캘리퍼의 유격을 조정하여 브레이크를 정비하고 마지막으로 윈웬밍과 인사를 한다.

함께 사진을 찍고 가볍게 포옹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짜이 지엔. 윈웬밍! 시에 시에."

출발을 하려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잠을 자라고 하는 윈웬밍을 뒤로하고 용척고장채를 떠나기 위해 출발한다.

잠시 안개가 걷히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용척제전의 풍경들이다.

용척고장채의 첫 번째 전망대로 돌아오니 그동안 계속해서 마을 내에 울려 퍼지던 폭죽과 악기 소리는 장례식을 하는 것인가 보다.

전망대 바로 밑, 논밭의 최상단에 다른 묘들이 있던 곳에 붉은 천의 관과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안개가 밀려들어 마을을 감싼다. 마지막 풍경이 못내 아쉬워 셀카와 동영상을 찍고 계속해서 변하는 용척제전의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가는 걸음이 잘 안 떨어지네."

내려오는 길, 이곳을 오르며 안개 속에 숨어있어 보지 못했던 반대편의 마을과 논밭들이 살포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든든해진 브레이크로 내리막을 내려오는 동안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들이 가는 길의 발목을 붙잡는다.

오전엔 보지 못하고 오르기만 했던 뾰족한 산봉우리들도 보이고, 구불구불한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숙소가 있는 롱지전으로 되돌아오니 3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오늘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있다.

"자, 이제 어디까지 가볼까."

우선 10km 거리의 룽성 각족 자치현으로 목적지를 잡고 바로 출발한다.

"어제 산길의 오르막으로 벌어 놓은 게 있으니 룽성현까지는 내리막길이겠지. 설마!"

룽성현까지는 생각대로 나지막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다른 현들에 비해 좁고 작게 느껴지는 룽성현에 도착하고,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으니 4시가 되어간다.

30km 정도는 라이딩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하여 근처 빈관을 선택한다.

"간만에 트립닷컴을 쓰네. 하지만 예약은 빈관에 가서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트립닷컴과 고덕지도를 써서 주점을 찾다 보니 요령이 붙었다. 어떤 곳은 온라인이 저렴하고, 어떤 곳은 직접 결제하는 것이 저렴하다.

그래서 일단 숙소를 검색해 찾아간 다음, 가격을 문의하고 1,700원 환율로 따져 저렴한 결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좁은 도로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소수족의 자치현이라 그런지 다른 도시들과는 분위가 약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선택한 빈관을 가려다 도시 자체가 작다는 것을 깨닫고 도심의 외곽에 있는 평점이 좋았던 주점으로 방향을 바꾼다.

외곽이라 해봐야 1.5km 거리밖에 안된다.

숙소에 도착하니 프런트에 있는 여자 직원이 영어가 된다. 가격을 물으니 벽면에 표시된 가격표를 가리키며 149위안이라 한다.

트립닷컴에 수수료 포함 14,770원에 올려진 것보다 한참 비싸다.

"고뤠, 그렇다면 트립닷컴으로 온라인 결제!"

영어가 되니 편하다. 농담도 하고 여행에 대해 짧게 얘기도 하고, 롱지의 용척제전을 보고 왔다 말하니 자신의 고향이 롱지라며 논밭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깨끗하고 따듯한 숙소, 프런트 옆에 자전거를 놓아두려니 뒷바퀴가 바람이 살짝 빠져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가면서 뒷바퀴에 바람을 채워 넣고 숙소의 옆에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벽면에 붙어있는 메뉴 사진을 가리키며 달라고 하니 식당의 여자는 사진을 나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

"..."

아마도 메뉴 사진이 아니고 인테리어 사진인가 보다.

그림을 확인하고 글자로만 쓰인 메뉴판에서 15위안 메뉴를 가리키며 알려준다. 친절하고 정이 많은 웃음을 갖은 사람처럼 보인다.

주문을 받은 뒤 뭔가를 물어보는데 번역기가 오번역을 계속한다. 여주인이 주방을 향해 뭔가를 달라는 제스처를 하는 사이 여주인의 발음을 따라 번역기에 말하니 '칠리'라는 단어가 뜬다.

"칠리? 쓰!"

맵게 해줄 것인지 묻는 질문으로 짐작하고 그렇게 해달라 말하니 주방에서 고추 하나를 들고 나와 보여준다.

"쓰, 쓰!"

흔쾌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니 주방에 있던 직원들과 함께 크게 웃으며 한국인이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고추를 넣어주나 싶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 피망 볶음과 계란국. 음식이 담긴 그릇과 모양이 예쁘고 정갈하다.

대나무 그릇에 담겨 나온 음식은 우리네 음식과 거의 흡사하고 맛이 좋고, 중국에서 가끔 밥과 함께 주던 국물들은 모두 고수나 향신료 맛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이곳은 맑은 계란국이다.

중국집의 계란국 보다 단맛이 덜했지만 편하고 순한 국물이다.

한 그릇 정도 더 먹을까 싶다가 내일 아침에 혹시 문을 열면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식당을 나온다.

"하오 츠, 시에 시에!"

역시나 정감 가는 웃음으로 인사를 해준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오다 보니 지역마다 사람들의 성향과 특색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용척제전을 보기 위해 장가계로 향하는 80km를 포기하고 맞바꾼 하루지만 놀라웠고, 즐거웠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다음에 채우면 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0일 / 비 ・ 10도
계림시-룽지전
흐린 날씨, 계림을 출발하여 650km 떨어진 장가계로 향한다. 계림의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오를까?


이동거리
79Km
누적거리
4,712Km
이동시간
6시간 05분
누적시간
322시간

 
G321도로
 
G321도로
 
 
 
 
 
 
 
70Km / 5시간 30분
 
9Km / 0시간 35분
 
계림시
 
산길정상
 
룽지전
 
 
1,92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회색빛 흐린 하늘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날씨다. 매일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자전거 여행자이지만 중국 남부의 축축한 겨울비는 너무나 힘들다.

90일 체류기간의 중국여행, 예상하지 못한 겨울 날씨에 속도가 느려져 계획했던 쿤밍시와 남서부의 여행을 포기하고 베이징을 향하여 중국 중부를 가로지를 생각이다.

"겨울비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음 목적지는 후난성의 장지아지에,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의 판도라 행성의 모티브가 된 장가계다. 아마도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들 지나가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는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계림의 용척제전이 있는 곳이다. 해발 1,000미터 까지 올라가야 하는 산악지대의 경로가 부담스럽지만 조금 고생하면 그만이다 싶다.

용척제전을 볼 수 있는 몇몇 지점 중 길을 이어가기 편한 롱지전의 포인트(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를 선택하고 길을 출발한다.

구이린을 벗어나기 위해 오토바이 행렬에 섞여 큰 어려움 없이 시내를 빠져나간다. 소리 없이 다가와 부담스럽던 중국의 오토바이와도 어느새 친숙해진 모양이다.

G321 도로를 따라 룽지전으로 향한다. 구이린을 둘러싸고 있는 오묘한 돌산들이 도로를 따라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봉오리들이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돌산에 가까이 다가가면 웅장한 돌산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냥 경이롭다."

마치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구이린의 가로수들은 울창하고 풍성하다.

겨울 시즌인데 여름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의자가 있는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챙기고 경로를 확인하며 잠시 쉬어간다.

길은 천천히 산을 향해 올라간다.

이곳의 특산물은 꿀과 커다랗고 노란 한라봉처럼 생긴 과일인가 보다.

"이름이 뭐지? 정말 크다!"

다시 한 시간을 달리고 작은 마을의 오래된 나무 밑에서 점심을 해결할 겸 쉬어간다.

"450살."

구이린에서 사놓은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다.

흐리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 하늘에서 안개비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그래 웬일인가 싶었다."

시골의 마을들을 지나치다 붉은 폭죽들의 잔해가 깔려있는 길 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장례식이네."

잠시 후 백의에 붉은 천을 어깨 위로 두른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가고, 붉은 예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지나간다.

땅이 넓고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다 보니 장례문화도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인구가 많긴 많은가 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식과 장례식을 보게 되네."

2시, 본격적인 오르막의 산길이 시작되며 페달링의 속도를 떨어뜨려 놓는다.

"비가 오는데 왜 갈증이 나냐?"

고개를 오르고 관광지의 안내석이 놓인 곳의 화장실에 잠시 들린다.

중국의 공공화장실, 산길의 중턱에 만들어놓은 휴게용 화장실인데 깨끗한 편이다.

"낯설게 왜 이래."

사람들의 사용이 빈번하지 않아서인지 화장실이 나름 깨끗하다.

산이 깊어질수록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대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대나무가 쌓여있는 곳에는 숲에서 대나무를 잘라 도로변으로 옮긴 흔적들이 나있다.

도로에서 대나무를 화물차에 싣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니 하오. 워 쓰 한궈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부부는 쳐다보던 부부는 한국인이라는 말에 호기심의 웃음을 보여준다.

대나무의 밑둥 부분이 아주 굵은 대나무들이다.

"이런 건 어디다 사용하는 거지? 공사장이나 집을 지을 때 사용하나?"

중국어를 할 수 있으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은데 많이 아쉽다. 톱으로 대나무를 자르지 않는지 잘린 대나무의 밑둥이 뭉툭하다.

산을 올라갈수록 안개비는 짙어지고, 산을 오르는 더운 호흡도 거칠어진다.

오르막을 알리는 안내판의 애꿎은 화살표에 의미 없는 푸념만을 하며 페달을 밟아갈 뿐, 간간이 지나치는 차량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다 올라왔나?"

롱지전까지 아직 거리가 남아있는데 하늘이 열린 고개에서 헛된 바람을 염원해보고.

최최에 논을 갈았던 사람은 첩첩산중 오지 산골에 무슨 꿈을 꾸며 들어왔으려나 싶다.

"피난? 도망? 밀월을 나누던 사랑꾼들이었다면 삶이 척박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짧은 내리막길은 반갑지가 않다.

쓸데없는 내리막은 다시 산을 올라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안겨준다. 오르막의 화살표도 모자라 지그재그의 번개표시가 된 산길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안개비는 더욱 짙어지고,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간다.

완전히 시야를 가려버리는 안개비다. 초행길인 산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단지 간간이 산을 내려오는 차들의 엔진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간다.

4시, 도로변에 버려진 낡은 건물과 넓은 공간 그리고 조금씩 경사도가 줄어들던 길의 변화에 롱지전으로 가는 고개의 끝에 도착했음을 짐작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소처럼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안개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풍경, 힘든 업힐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아쉬움보다 짙은 안개비를 뚫고 내려가야 할 상황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비에 젖어 삑삑거리는 브레이크 마찰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산을 내려간다. 조금씩 주변의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집과 논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꽃들만 봄이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중국의 나무집들이 보이고, 그동안 길 위에서 수없이 보았던 셔터가 달린 이상한 집들이 왜 그러한지를 짐작한다. 2층 구조의 전통집들과 비슷한 형태로 벽돌을 쌓아올려 짓다 보니 멋도 없는 웃긴 모양의 집이 되었나 보다.

"기와가 올려진 나무집들은 예쁘구나."

수북하게 쌓인 대나무를 어떻게 산에서 옮겼는지가 궁금하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한 그루씩 끌어서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도로의 다운을 즐기며 1,000미터 정도에 위치한 용척제전의 높이가 떠오른다.

"야! 그만 내려가! 그만!"

1층의 외벽을 벽돌로 보강을 한 것인지 아니면 1층의 벽돌구조에 나무집을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셔터가 달린 우스꽝스러운 집들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

"춥지는 않은가?"

온돌의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의 2층 목조주택은 방한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남방부에 위치한 지역이라 겨울 한파의 추위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여름에는 무척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채씩 들어서 있는 산길을 내려오니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고, 오늘 밥값을 했네."

4시 반, 용척제전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온다. 우회전을 하여 작은 강을 따라 15km 정도를 이동하면 평안채제전(平安寨梯田)이 나오고 이곳에서 산을 오르면 용척제전이 나온다.

중국의 비슷비슷한 목재건물이지만 룽지전의 초입에서 본 목재건물은 조금 특이하고 이색적이다.

예약해 두었던 룽지전의 주점으로 찾아간다. 음식점과 숙박업을 함께 하고 있는 주점의 할머니는 꽤나 친절하고 살갑다.

"수이 지아."

할머니에게 바우처를 보여주며 잠자는 제스처를 하니 숙박을 하는 사람인 것을 눈치채고 주방에 있는 중년의 여자를 불러낸다. 할머니의 딸이나 며느리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늘상 대하는 외지의 관광객을 응대하듯 자연스럽게 안내를 한다.

어려움 없이 체크인이 끝나고 자전거는 넓은 1층의 비어있는 공간에 잠가둔다. 방으로 패니어들을 하나씩 옮기고 샤워를 한 후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온다.

중년의 여자는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카드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산골의 작은 슈퍼에서 보았던 카드게임과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심드렁하게 물건값을 받고 바로 카드게임에 빠져들던 그때의 여자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너네들은 돈놀이 게임을 좋아하는구나."

한 게임이 끝나고 숙소의 여자는 식당의 내부를 둘러보는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워 헌 어."

여자에게 그동안 먹었던 고기 메뉴의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한 메뉴를 달라고 주문하고 식당에 놓여있는 소품들을 구경한다.

"오늘 용척제전에 갈 수 있어?"

조금 이른 도착 시간으로 해가 지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택시나 버스를 타고 용척제전에 다녀올까 싶은 생각으로 숙소의 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지금은 못 가!"

"왜?"

"차가 없다. 내일 가!"

"어!"

겨우 7km 떨어진 거리인데 갈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어렵지만 현지의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내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올라가든지 하면 될 것 같다.

"미판!"

언제나 단일 메뉴에 쌀밥을 주문해서 머슴밥을 먹는다. 비슷하게 말린 돼지고기를 사용할 텐데 주점의 돼지고기는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산골 룽지전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지만 하루 종일 괴롭히며 내려앉던 안개비는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속의 분위기라 역시 다르네."

"내일 용척제전을 올라갈 수 있나? 그냥 내려갈까?"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 탓에 경로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장가계로 향하는 산길들과 베이징을 지나 몽골의 국경으로 가야 하는 일정들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쿤밍시를 지나 청두와 시안을 경유하는 경로를 포기했음에도 베이징으로 가는 일정이 빡빡하게 느껴진다.

"몰라. 일단 장가계의 산을 넘으면 막 달려. 막!"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9일 / 비 ・ 10도
구이린 : 형산공원-일월쌍탑-정강왕성
황산을 출발하여 1,200km의 거리를 달려온 여정의 끝에 구이린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며 비가 내리는구이린을 둘러본다.


이동거리
18Km
누적거리
4,663Km
이동시간
5시간 20분
누적시간
316시간

 
도로
 
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형상공원
 
일월쌍탑
 
정강왕성
 
 
1,84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오전 10시, 라이딩이 없어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운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일주일 동안 괴롭히던 감기 기운은 차츰 괜찮아지는 것 같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계림을 둘러보기에 무리는 없지만 비로 인해 계림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난다.

12시쯤 메시지를 준다는 컴퓨터 수리점의 연락을 받고 나갈까 하다 어찌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며 자전거의 타이어를 순서대로 눌러보니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이제는 일일 일빵이네. 귀찮다, 다녀와서 고치자."

프런트로 내려와 직원에게 계림의 관광지들이 즐겨찾기 되어있는 고덕지도를 보여주며 물어본다.

"나리 하오 마?"

직원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정강왕성과 형산공원을 가리키며 추천을 한다.

"쩌리 최고 하오?"

"하오!"

무슨 말인지 나오는 대로 뱉는 중국어인데 모두들 잘 알아 듣는다.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형산공원을 가기 위해 버스노선을 검색하고 버스 번호와 버스비 2위안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숙소를 나온다.

숙소 앞 음식점, 오리와 닭을 좁은 철창에 가둬두고 키우는 것인지 아니면 식재료인지는 모르겠다.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들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버스 노선을 재차 확인하고 있으니 16번 버스가 바로 도착한다.

2위안을 요금함에 넣고 빈자리에 앉는다. 좌석의 방향이 측면이나 거꾸로 되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버스는 이강을 넘는 다리를 건너 4정거장을 지난 후 형산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내리려고 보니 하차벨이 따로 없고 뒷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도로에서 첫 번째 보이는 매표소에 들어가 관광 안내 팜플렛을 서너 장 뽑아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직원에게 티켓을 달라 하니 공원의 안쪽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알고 보니 이강 유람선 티켓을 파는 곳이다.

조금씩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우산을 빌려올 것을 그랬나?"

평상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 웬만해서는 우산을 안 쓰고 다니는 편인데도 중국에서 매일 비를 맞다 보니 조금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매표소는 형산공원 입구의 바로 측면에 있다.

우리 동네가 아니니 관광지도는 한눈에 안 들어 오고.

요금표는 왜 이리도 복잡한지.

"일단 형산은 55위안이네. 비싸네!"

매표소에 100위안을 넣어주니 안내원이 무어라 자꾸 말한다. 우리창에 다른 곳과 합쳐진 입장료들이 안내되어 있는 것을 보니 1+1을 살 것인지 묻는 것 같다.

"상산, 우쓰우!"

알아들었는지 잔돈과 입장권을 내어준다.

"그럼 가볼까? 나 기대 많이 하고 있다!"

코끼리 산이라 그런지 코끼리 조각상들만 여기저기 놓인 입구를 지나 오른 편에 위치한 운봉사에 들어간다.

일층은 커다란 옥바위를 가운데 둔 옥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생뚱맞지만 꽤 비싸다.

이층에는 누군지 모르는 흉상과 각종 화포나 창 같은 오래된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국의 조각상들은 대체로 정교하고 멋지다.

"조각상은 이렇게 잘 만드는데 현대적 상징물들은 왜 그렇게도 기괴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휙 돌아 나온 운봉사의 측면 바위산 절벽 가운데 부처님께서 자리 잡고 계시고.

소원을 비는 붉은 리본들이 보인다. 종처럼 보이는 것에 도교적인 민간신들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부처가 자리 잡고 있다.

"리본은 돈을 내고 다는가? 왠지 여기저기서 돈 냄새가."

형산을 오르는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이강을 중심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계림의 풍경들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첫 계단을 오르고 좌측으로 동굴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이강의 반대편 전망이 나온다.

"설마, 이 돌산을 뚫어버린 거야?"

형산의 정산에서 계림을 한눈에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가파르지만 높지 않은 산이라 쉽게 오를 수 있다.

항아리처럼 생긴 보현탑.

보현탑 앞에서 계림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비가 그친 하늘과 구름, 자연스러운 이강의 흐름과 그 모든 것들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들이 아름답다.

형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 기념품 가게에서 눈에 띈 초코파이.

"유사 중국 제품 먹어봤는데 널 따라올 수는 없는 것 같더라. 전처럼 양 좀 늘려봐."

병풍처럼 둘러진 기이한 산들 때문인지 도시가 참 예쁘다 생각이 든다.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가려니 자꾸만 한 번 더 눈 속에 담아고 싶어 뒤돌아 보게 된다.

조심스레 물기가 묻은 좁은 돌계단을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절벽 가운데가 뻥 뚫린 곳이 나온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아치형 돔처럼 일부로 깎아놓은 듯 매끄러운 구멍이 나있다.

형산을 돌아 건너편 공원으로 건너가며 왜 코끼리산일까 궁금증이 들었는데 건너편 공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누가 봐도 코끼리네."

공원에는 나무 뗏목과 대나무 뗏목이 서너 척 놓여있고 가마우지로 기념촬영을 해주고 요금을 받고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지도 못하고 빼앗기더니, 이제는 사진 모델로 투잡을 뛰는구나. 불쌍한 것."

공원은 깨끗하고 유독 키스를 하는 조각상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늑하고 좋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형산공원을 빠져나와 건너편으로 이어진 일월쌍탑공원으로 걸어간다. 마치 열대우림 같은 울창한 가로수들이 인상적이다.

호숫가에 세워진 일월쌍탑. 계림 사진들을 보면 야경이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일월쌍탑을 구경하는 사이 컴퓨터 수리점으로부터 위챗 메시지가 온다.

"메인보드가 인식이 안되어 수리할 수 없습니다. 유감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듯 실망스럽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다른 건 차치하고 사진자료들, 여행 기록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중국인데,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다.

때마침 찬숙이 여행 전 소개해 준 중국에 사는 친구 태경씨가 위챗으로 연결된다. 짧은 통화로 정확한 고장 내역을 알고 싶다고 전하고 수리점에 전화를 해달라 부탁을 한다.

컴퓨터 수리점과 통화한 태경씨의 대답은 같은 제품의 모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위해 장만한 트윙글 요가1 노트북의 사망선고다. 여행을 위해서는 값싼 노트북 보다는 수리가 가능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 일단은 즐겁게 구경이나 하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차선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정강왕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우리의 로데오 거리처럼 음식점들과 쇼핑샵들이 이어지는 거리가 나온다. 조금씩 출출함이 찾아든 시간인데 식당들의 차림표를 보니 가격이 비싼 편이다.

사람들이 꽤 붐비는 가게를 둘러보니 드디어 그분들이 등장하신다.

한쪽에 살아있는 전갈들이 꿈틀거리고.

굼벵이, 번데기, 귀뚜라미, 전갈, 지네, 매미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까지 꼬치에 곱게 꽂혀있다.

"기름에 운동화를 튀겨도 맛있다고는 하더라만."

좀 더 걸어가 열심히 맷돌에 갈고 있는 옥수수빵을 사 먹는다. 4개에 10위안.

약간 밋밋한 맛인데 자극적이지 않고 따듯하니 먹을수록 빠져든다.

정강왕성을 보며 걸어가니 어제 계림에 도착했을 때 오토바이 행렬들과 지나왔던 길이다. 계림 시내의 관광지들은 걸으며 구경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시내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돌기둥 같은 돌산을 보고 따라가면 정강왕성이 나온다.

오래된 고목들 사이로 노란색 정강왕성의 정문이 나온다.

티켓을 사려고 매표소를 보니 단체관람과 개인관람의 매표소가 따로 있다. 개인 매표소에서 입장료의 가격을 보고 놀란다.

"100위안? 아니 뭐 대단한 것이 있길래 이렇게 비싸?"

몸값 도도한 입장료에 그냥 돌아갈까 하다 우뚝 솟아오른 돌산에서 바라본 계림의 모습이 궁금하다.

"까짓것 저렴한 숙소에서 한 삼일 묵으면 되지 뭐."

정강왕성의 입구에서 안내원은 번호표와 이어폰 그리고 담뱃갑만 한 정체 모를 기기를 건네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기념품인가?"

일단 주니까 받아들고 가려니 뒤에서 나를 부른 뒤 중국말로 빠르게 떠들어 댄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래?"

영어를 하는지 묻더니 난데없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I don't have a phone number."

그리고 한 번 더 전화번호를 요구하기에 없다고 말하니 조용히 내게 주었던 이어폰과 검은 기기를 뺏어가며 번호표를 목에 걸라는 제스처를 한다.

"별 싱거운 놈이 다 있네."

깔끔하게 정리된 왕성 내부를 앞서가던 관광객 무리를 따라 걸어간다.

첫 번째 보이는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멈춰 서더니 빨간색 패딩을 입은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뭔가를 이해한 듯이 고개들을 끄덕인다.

사람들은 모두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 그때서야 정문에서 주었던 이어폰과 이상한 기기가 안내원의 해설을 듣기 위한 도구였음을 깨닫는다.

핸드폰 번호는 기기를 반납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에쉬, 아무 번호나 적어줄 걸."

첫 번째 건물의 문이 열리고 짧은 안내원의 설명 후 벽면에 돌산에 대한 영상물이 3D로 재현된다.

영화의 인트로 장면처럼 잘 만들어진 영상이다. 대충 느낌상으로 BC 몇 년 전 돌산이 우뚝 솟아나고 이곳에 정강왕부가 들어섰다는 내용인듯싶다.

"뻥은 역시 대륙의 뻥이 실감나지."

통로에는 박물관처럼 왕부의 유물들과 역사 그리고 독수봉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방에서는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화면에 입체영상으로 왕부의 건물들이 소개되고.

역대 정강왕부의 왕들의 세대표.

그리고 세 번째 방으로 이동한다. 특이한 것은 방마다 문이 닫혀있다가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면 챕터가 바뀌듯 문이 열리고 방으로 입장을 한다.

세 번째 방은 실내가 어둡고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 위로 복자 형상의 틀과 빗솔, 붉은 인주 같은 것이 묻어있는 주머니 그리고 볼펜 한 자루가 놓여있다.

"도장을 찍는 건가?"

의문의 사내가 옛 복장을 하고 나타나 벽면에 절을 하며 어떤 의식 같은 행위를 한다.

"기대되는데. 뭘 하려는 거지?"

절을 마친 의복의 남자는 돌아서서 종이를 복자의 틀 밑에 깔고 빗솔로 열심히 두드린다.

"하하하. 난 또 뭐라고."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와 크게 박장대소할뻔했다.

눈치껏 남들처럼 빗솔로 때린 후 인주를 묻힌 주머니로 툭툭툭. 그리고 마무리 서명.

복자를 종이에 찍은 후 기념으로 가져가려 하니 방에 있던 안내원들이 그냥 놓고 가라고 한다.

"뭐야. 어린이 체험학습도 아니고."

복자는 정강왕부의 문양인가 싶다.

첫 번째 건물의 관람이 끝나고 독수봉으로 이동한다.

관람 프로그램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는 것이 비싼 입장료의 이유인가 보다.

곳곳에 새겨진 글귀들과 문양에 대해 긴 설명들이 이어지고.

조그만 입구 앞에 서서 오랫동안 뭔가를 설명한다.

"설마 독수봉을 터널로 오르는 거야?"

쓸데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문이 열리자 콩닥콩닥 마음에 이는 흥분감이 느껴진다.

"뭐야? 뭔데?"

예상대로 터널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동시에 들고 터널 안쪽을 휙 둘러보는 순간, 그동안 나긋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안내원이 사진을 찍지 말라 제재를 한다.

"드라마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정전이 되는 날벼락."

사람들이 동굴 내부에 노란 리본을 잔뜩 매달아 놓고 벽을 향해 연신 절을 하고 있다. 안내원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설명을 하는 사이 기념으로 한 컷만 몰래 찍고.

제멋대로인 중국인들도 안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어 그냥 눈으로 구경을 한다.

동굴 내 첫 번째 공간에 모형의 제물이 올려져 있고 석상 하나가 놓여있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자 함께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석상을 향해 절들을 해댄다.

그리고 동굴 천장 곳곳의 글귀들을 안내원이 레이저 포인터로 하나씩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서도 절들을 해댄다.

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은 신기하고 흥미롭다.

"뭐야? 뭔데 절을 하는 거야?"  

동굴의 안쪽으로 더 이동하니 동굴의 벽면에 생년으로 보이는 숫자들이 적혀있고 정교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조각들이라 사진을 찍고 싶지만 겨우 참는다.

"너네 말 잘 안 듣잖아. 아무나 한 명이라도 찍어봐. 못 이긴 척 같이할 생각은 있는데."

짧은 설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하나씩 바구니에서 꺼내들고 벽면의 그림들을 찾아간다.

"자기 생년을 찾아가 리본을 걸고 기도를 하라는 말이겠지?"

눈치 빠르게 리본을 들고 1974 숫자를 찾으니 약간 무섭게 생긴 대장군의 그림이 조각돼 있고 2034의 숫자가 함께 적혀있다.

리본을 걸고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이마에 모으고 절을 하며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굴의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환한 조명과 함께 동굴 속 기념품 가게가 나오고, 동굴 벽에 새겨졌던 조강상들의 탁본들과 정강왕부의 문양들로 만든 족자나 액세사리로 만든 것들을 팔고 있다.

안내원의 신호가 떨어지자 준비되었다는 듯 여러 명의 판매원들이 일제히 관광객들에게 달려든다.

"잘나가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기념품들의 가격은 족자의 완성도에 비해 꽤 비싸 보인다. 1미터 남짓의 탁본 족자가 대충 3,000위안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안내원은 아주 오랫동안 다음 진행을 하지 않고 20여 분이 지나고서야 동굴 밖으로 이동한다.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이 나왔지만 그냥 지나쳐 다른 건물로 들어간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의 재현극을 잠깐 보여주더니 재현극이 끝나자 관광객들이 노란 종이를 받아 한 평 남짓 되는 방으로 들어간다.

"옛날 감옥인가?"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안내자들이 출구를 가리키며 뭐라 쌀쌀맞게 말한다.

"구박한다고 갈 사람이 아니다. 신경 꺼!"

작은방 안에서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붓으로 뭔가를 적다. 젊은 여자가 노란 종이에 이름을 적고 자신을 지켜보던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건넨다.

사진을 찍어주니 아리가또 하며 인사를 한다.

"are you Japanese?"

어디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인이라 하니 함께 온 사람들에게 한궈렌이라며 알려준다.

작은방에서 나온 사람들과 옆 건물로 이동하니 김광규처럼 생긴 남자가 뭔가를 낭독하고 호명된 두 관광객에게 붉은 복장을 입혀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방들은 감옥이 아니고 시험을 치르던 공간이다. 며칠씩 좁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김광규에게 불려나와 의복을 입은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등용된 사람들인 것이다.

모두가 웃으며 정강왕성의 관람 에피소드들을 만들며 즐거워 한다.

다시 팬시 제품들이 놓인 기념품 샵으로 강제 이동되고.

건물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이어폰과 기기를 안내원에게 반납하고, 길게 이어진 외부의 기념품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보니 복자의 노란 종이들 떡하고 걸려있다.

"이런 거야? 그래서 못 가져가게 한 거야?"

내 이름이 서명된 것을 가리키자 10위안을 달라고 하며 액자 같은 것들을 소개하며 가격들을 알려준다.

"액자는 됐고요."

독수봉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풍경이 궁금하여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으로 걸어간다.

가파르게 꺾여 올라가는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비가 그치며 더 선명하게 주변의 산들과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독수봉을 내려오는 계단은 빗물에 젖어있어 아슬아슬했다. 한 계단씩 난간의 사슬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독수봉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갈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구로 나온다.

동서남북 모두에 출입구가 있는 것 같다.

버스비를 내기 위해 3위안 콜라를 사서 잔돈을 마련하고 잠시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100번 이층 버스가 도착한다.

"오호, 이층 버스는 처음이야."

맨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 뒤쪽에 있는 좌석에 앉는다. 이층 버스는 처음이라 안에서 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작게 보일 정도로 시야가 높은 것 같다.

2위안, 350원 정도니 대중교통이 참 저렴하다.

숙소 근처 정류장에 내려 컴퓨터 수리점으로 걸어간다. 소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며 반 전체가 줄을 서 모여있더니 뭔가 구호를 외치고 일제히 교문을 나선다.

컴퓨터 수리점에 들러 접수증을 주고 노트북을 되돌려 받는다.

"중국의 다른 곳에서도 고칠 수 없을까요?"

손사래를 치며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망가진 노트북을 들고 나오며 신제품을 파는 레노바 매장의 전시 제품을 보고 있으니 어린 여직원이 말을 건넨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빨개진 얼굴로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중국의 어린 친구들, 특히 여성들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지 모두들 수줍어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의 노트북 자판에는 영자만 적혀있다.

"영자로 어떻게 중국어를 쓰지?"

쇼핑몰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하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간다. 여자 주인은 어리둥절 조금 당황한 기색이고 주방에 들어가 남편을 불러낸다.

글자로 된 메뉴판을 들고 난감해 하고 있으니 어린 여자애가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말을 건넨다.

탄링팡(谭玲芳), 15살 여자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네, 아니요, 맞아요' 등의 한국어를 한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야?"

탄링팡은 주저 없이 50위안짜리 메뉴를 가리킨다.

"효녀네. 장사를 할 줄 알아!"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던 탄링팡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중국어의 단어 입력 방법을 알아보려고 그녀를 불러 물어본다.

"탄링팡,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봐."

생뚱맞은 요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에게 글자를 써보라고 재촉한다.

"니 하오 마, 니 하오 마를 써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폰의 자판을 열더니 영문으로 ni hao ma를 치니 중국어로 자동 변환 된다.

"오호, 이렇게 쓰는구나. 영문으로 치면 그 발음의 한자들이 뜨고 그중에 맞는 글자를 선택하는구나."

부수의 조합과 많은 획의 한자를 어떻게 입력하는지, 영자 자판만 있는 노트북에 어떻게 한자를 쓰는지 궁금했었는데 궁금증이 해결된다. 간간이 한자를 핸드폰 화면에 필기하여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은 보았지만 자판으로 입력하는 것은 처음 본다.

탄링팡과 대화하는 사이 음식이 나온다. 진한 중국식 향신료에 머리부터 발까지 알차게 들어간 오리고기다.

강한맛의 소스와 총각무를 썰어 넣은 것 같은 크기의 생강의 맛이 조금 먹기에 불편하지만 그동안 중국음식에 적응이 된 것인지 그럭저럭 밥과 함께 잘 먹는다.

아마도 이전 같았으면 한 젓가락하고 그만 먹었을 것 같다.

"오리잖아, 뺏어서라도 먹으라던 오리!"

먹을게 전혀 없는 아니면 먹는 법을 알 수 없는 물갈퀴 발만을 남기고, 밥 두 접시를 해치운다.

든든해진 배를 튕기며 숙소에 돌아와 바람이 빠진 뒷바퀴의 튜브와 여분의 튜브를 돼지표 펑크패치로 붙여 정비한다.

23C 얇은 튜브에 무거운 무게까지 더해지니 붙여두었던 곳의 고무패치가 제대로 붙지 않는 모양이다.

노트북 없이 여행 자료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 급한 대로 티스토리 앱을 사용해 사진과 텍스트를 정리하기로 한다.

"번거롭고 시간이 좀 들겠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놔야지."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8일 / 비 ・ 10도
싱안현-링촨현-계림시
계속 이어지는 흐린 날씨, 비가 다시 내릴 것 같다. 얼마 남지않은 계림으로 향한다. "드디어 계림이다."

이동거리
68Km
누적거리
4,615Km
이동시간
4시간 44분
누적시간
311시간

G322
G322
47Km / 2시간 23분
21Km / 2시간 21분
싱안현
링촨현
계림시
 
 
1,866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낡고 허름한 빈관에서의 하룻밤, 피곤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어젯밤부터 부팅이 되질 않는 노트북은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이 난 것인지 수상하다. 멍하게 잠이 덜 깬 정신으로 재부팅을 해보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계림에 도착하면 데이비스가 알려준 갑천하전뇌성(甲天下电脑城)에 들러 컴퓨터 수리부터 해야겠다.

"없는 것이 없는 중국인데 고칠 수 있겠지."

10시가 되기 전, 조금 늦게 출발을 한다. 다시 흐리고 어두워진 하늘이다.

작은 시내를 벗어나 계림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한 시간쯤 지나 수상하던 바람은 툭툭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도로변 한적한 식당으로 아침도 해결할 겸 들어간다.

메뉴가 한 가지뿐이니 주문도 편하다.

"이거 야요!"

주문과 함께 이내 음식을 내어주며 앞쪽에 놓인 양념들을 넣으라고 알려준다.

"뭘 알아야 넣지."

이것저것 조금씩 넣고 뚝딱 한 그릇을 비워낸다. 시원한 국물과 간간이 씹히는 땅콩의 고소함이 좋다.

잘 먹었다 인사를 하고 가격을 물으니 6위안, 저렴하다는 말도 아깝고 착해도 너무 착한 가격이다.

우의를 챙겨 입고 천천히 빗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무리를 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해 놓아 조금은 편안하다 싶다.

중국의 기름값은 휘발유가 대충 리터당 5위안 정도 하나보다.

계림에 인접한 링촨현부터 시작된 시내길은 계림시까지 계속 이어진다.

울창한 계화수에 작은 홍등을 달아놓으니 길이 너무나 예쁘다. 가던 길의 걸음을 바로 멈춰 세운다.

링촨현을 벗어날 때쯤 길가의 자전거 샵을 발견하고 유턴을 해 가게 앞으로 다가간다.

"자전거 가게를 찾기가 정말 힘드네."

대부분 아동용 자전거들을 파는 것 같은 가게에 풀리를 가리키며 부품이 있는지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어두운 가게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부품이 없다는 듯 큰소리를 내며 정색을 한다.

"없으면 빙긋 웃으며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중국 사람들은 약간 이상한 성향이 있는데, 마치 어르신들이나 식당의 아주머니들처럼 없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듯 정색을 한다.

마주하기 싶지 않은 경계심의 눈빛들은 언제 봐도 너무나 싫다.

"자전거 가게에서 생선구이를 찾은 것도 아닌데."

계림시에 들어서며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씩 늘어난다.


계림 초입의 유산 공원에서 비를 피하며 갑천하전뇌성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확인한다.

"어렵게 계림에 왔는데 컴퓨터 수리가 우선이라니."

전자상가가 있는 곳까지 경로를 정하고 리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성벽을 따라가며 리강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유명 관광지의 명성처럼 계림의 풍경들은 남다르다.

푸보산 공원(伏波山公园)의 오묘한 모습이 나타나고 조금 욕심을 내어 산책로를 따라 리강의 풍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책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더니.

"망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산책로에서 험난한 계단을 마주한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한 칸씩 오르고 있으니 산책을 하던 아저씨가 자전거를 들어주며 도와준다.

"씨에 씨에."

묘한 동굴을 지나.

다행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계림이다.

중국 여행을 생각하며 왜 계림에 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계림의 풍경을 보니 이유 같은 것은 몰라도 될 것 같다.

더욱 풍성해진 것 같은 계화수의 가로수 길을 지나고.

리강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한다.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예약한다.

"그나저나 다리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거야?"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대로를 따라 멀리 있는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 후 돌아와야 한다.

정교한 목조건물의 회전 교차로를 돌아.

"고성이야? 호텔이야?"

메뚜기 떼처럼 뭔가 징그러운 면도 있는 오토바이의 행렬이지만 커다란 대로를 유턴하기 위해 우회전을 하는 오토바이 행렬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직진 신호에 좌회전을 함께하는 위험한 중국에서 대로에서 오토바이 행렬을 따라 좌회전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무리 양보를 안 하는 중국의 운전자들도 오토바이 행렬이 시작되면 차량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도심의 오토바이 행렬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한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대로를 따라 리강을 건너는 다리로 돌아오는 동안 오토바이 행렬의 흐림에 뒤를 따라가며 수월하게 도착하고, 계림시를 둘러싸고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다.

"저기는 유명한 공원인가?"

관광객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공원의 매표소를 지나치며 내일 들러보기로 한다.

작은 골목에 있는 깨끗한 주점에 도착한다. 젊은 여직원들이 근무를 하는 주점이라 여권과 바우처만으로 쉽게 체크인이 끝난다.

모던한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주점이지만 자전거를 방에 두어도 괜찮은지 물으니 흔쾌하게 허락을 한다.

샤워를 하며 빨래를 하고, 자전거와 패니에 묻은 흙들을 씻어낸다. 샤워를 하는 것보다 빨래를 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씻어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흙으로 엉망이 된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은 더더욱 오래 걸린다.

신발과 방풍 자켓만을 세탁하여 난방기 주변에 걸어두고 고장 난 컴퓨터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거대한 건물의 외관을 보고 막막한 생각이 먼저 앞선다.

각종 음식점들과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은 넓은 광장처럼 느껴진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음식점들을 살펴보고.

KFC로 들어가 헤매고 넓은 쇼핑몰에서 길 읽은 아이처럼 방황을 한다. 계속해서 지도앱을 확인해도 현재 위치는 이미 전자상가 위를 거닐고 있는데 도무지 전자상가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디냐고?"

방황의 끝에 쇼핑몰 밖으로 나오니 전자상가로 올라가는 외부의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커다란 쇼핑몰에 함께 있는 전자상가인데 출입구의 구조가 이상하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중국 건물의 구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자상가가 있는 층에서 내리니 분위기는 우리의 전자상가와 비슷하다. 온갖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들의 판매와 수리 그리고 바가지를 씌울 것 같은 친절한 미소들이 난무한다.

미로처럼 들어서 있는 각종 전자 매장과 수리점들 사이에서 데이비스가 알려준 컴퓨터 수리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컴퓨터 수리점의 이름을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 도움을 청한다.

전자상가에서 일을 하는 젊은 여자의 도움으로 찾고 있던 컴퓨터 수리점까지 안내를 받고, 노트북의 수리 접수를 한다.

"노트북 부팅이 안된다."

젊은 담당 직원은 차분하게 접수를 하고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가 없는지 묻는다. 전원코드의 굵기가 조금 얇은 중국의 전기 콘센트지만 전자상가에서 기본적인 전원 어댑터가 없을지는 생각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를 들고 수리점으로 돌아가니 수리점에 있는 어댑터로 이미 점검을 했는지 접수증을 건네주며 내일 오후에 다시 오라고 안내한다.

"피니쉬? 수리가 가능할 것 같아?"

"글쎄, 분해를 해서 살펴봐야 알 것 같다. 내일 전화를 줄게."

전자상가의 컴퓨터 매장에서 노트북들을 구경한다. 최악의 상황이면 새 노트북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 여직원과 눈이 마주치고 발걸음이 붙잡힌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끝내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일단 중국 노트북 가격을 알았으니 됐다."

쇼핑몰을 방황하며 잘못 들어갔던 KFC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선 코너를 지나다 재미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13위안 자조....찬? 자조찬이 뭐야?"

한자를 검색해보니 쯔주찬(自助餐)이 뷔페다.

"빙고! 18가지 반찬 13위안 뷔페!

생각할 것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여행을 하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이롭고 좋다.

"이 정도면 천국이지!"

일단 입맛을 확인하는 수줍은 맛보기로 한 판을 비우고.

음식들의 재료와 맛이 확인되면.

입맛에 맞는 것들을 푸짐하게 담아 한 판을 더 비우고.

"한 판 더 할까?"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면 잃어버렸던 이성을 수습하고 맛있는 디저트 하나를 사서 끝을 낸다.

숙소로 돌아와 물에 담가놓았던 옷들을 세탁한다. 광시성의 흙먼지 가득했던 회색빛의 마을들을 지나오며 더러워진 옷들에서는 끝도 없이 누런 흙탕물이 빠져나온다.

8시가 넘어가고 출출함이 찾아든다. KFC에서 사 온 햄버거를 해치웠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변에 한국 식품점이 없나?"

믹스커피가 먹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이 검색을 하고, 고장 난 노트북으로 널널해진 저녁 시간의 공백은 하릴없이 밖으로 나가게 만든다.

컴컴하고 어두운 저녁거리를 걸어 한국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에 도착한다.

"커피 딱! 하지만 100개 짜리.."

"믹스 커피 작은 거 없어요?"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처럼 느껴지는 여자는 100개 수량의 큰 박스만 있다며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준다.

빈 손이 심심하여 돼지바 하나를 집어 들고, 쓸데없이 김치가 생각나 총각김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돌아온다.

겨우 10여 분을 걷는 동안 흐물흐물 녹아버린 돼지바를 먹고.

총각김치에 소주를 마신다. 피곤에 쌓인 노곤함을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소주도, 김치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비 오는 날에 이 정도면 고급진데. 이상하게 맛이 없네!"

"내가 정말 이 조합의 맛을 좋아했었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쩌면 게으른 자기 착각의 일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맛이 변했나 보지 뭐."

내일은 계림의 풍경을 산책하며 둘러봐야겠다.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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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7일 / 구름 ・ 12도

링링구-취안저우현-싱안현

비가 오지 않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이틀 연속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런 벼락 같은 축복이 있나. 서두르자!"

이동거리

134Km

누적거리

4,547Km

이동시간

7시간 56분

누적시간

306시간


G322도로
G322도로
75Km / 4시간 30분
59Km / 3시간 26분
링링구
취안저우
싱안현
 
 
1,79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아침까지 오늘의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다. 100km 거리의 취안저우현은 국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130km가 넘는 싱안현은 거리의 부담이 있다.


그리고 취안저우현에서 싱안현까지 마땅한 숙소가 있는 없다. 고덕지도를 최대로 확대하여 몇몇의 주점이 있는 도로면의 작은 마을들을 몇 군데 파악해 놓고 출발을 준비한다.


"전주현, 샤오쑤이진, 지에쑈진, 씽안현.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어둡지만 비가 올 것 같지 않다. 날씨를 확인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디든 좋아! 일단 비가 내리기 전에 가자."

 

 

아침 시간의 복잡한 시내길을 빠져나와 G322 국도로 이어지는 G207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181km.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어쨌든 계림에 도착하겠구나."


 

황티엔푸전에 도착하여 G322 국도로 갈아타지 못하고 잠시 길을 헤매고.


 

비와 산길 그리고 감기 기운으로 험난했던 후난성을 벗어나 광시성으로 들어선다.


 

비만 내리지 않을 뿐 도로의 상태는 엉망이고 광시성에 들어서며 회색의 흙먼지들이 마을을 뒤덮고 있다.


"이건 더 지옥인데. 차리리 비가 오는 게 낫겠어."


비가 내려서 몰랐을 뿐, 그동안 지나왔던 길들이 모두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끔찍한 회색 먼지 구덩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광시성에 들어서 허기가 밀려든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마을을 지나치며 마땅한 식당들을 찾지만 도저히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뿌연 회색 먼지로 뒤덮인 마을과 어두운 실내에서 음식을 먹으며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들이 전혀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을씨년스럽다."


무섭거나 공포심이 들기보다 이질적인 거부감이 찾아든다. 배는 고프지만 경계심 가득 담긴 희번덕한 눈빛들을 대하며 견딜 자신이 없다.


 

단지 마을을 가득 두껍게 내려앉은 흙먼지 탓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쳐 가는 식당들과 도로변에 나와 밥을 먹는 사람들의 눈빛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파고드는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싫다. 볼품없는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늙은 개들의 눈빛 같아."


 

회색빛의 흙먼지 마을을 지나 도로변의 작은 슈퍼에서 잠시 쉬어간다.


"뭐든 먹어야지. 갈 길이 먼데."


 

빵과 콜라를 사들고 중국에 들어와 먹고 싶었던 사과의 아삭한 맛이 생각나 사과를 집어 든다. 사과를 하나만 달라고 하니 '싱거운 놈을 다 본다'는 눈빛으로 사과 하나를 저울에 올려놓더니 감귤이 맛있다며 제법 알맹이가 굵은 감귤을 권하는 아주머니다.


도로변 노점과 과일 가게에서 많이 파는 귤인데, 보통 우리의 귤감 크기만 한 것이 지금까지 봐왔던 중국의 귤보다는 크기가 조금 크다. 사과 하나와 귤 6개를 8위안에 사들고 슈퍼의 작은 대나무 의자에 앉아 점심을 대신한다.


당도가 떨어지고 아삭한 식감만이 좋은 사과 그리고 껍질이 두껍고 굵은 씨가 들어있는 귤은 그다지 맛이 없다.


"중국 과일들은 신선한데 다 맛이 없네."


중국에서 탁구공만 한 귤들을 많이 먹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 사이즈가 가장 맛있는 크기가 아닐까 싶다.


 

 

취안저우현 외곽의 시내에는 도로면은 여전히 비에 젖어있었다.


"비가 왔었나? 근데 왜 도로면만 젖어있는 거지."


 

취안저우현을 빠져나올 때쯤 뒤바퀴의 느낌이 이상하여 확인하니 또 펑크가 나있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자전거를 눕히고 타이어를 탈착한 후 타이어 내부를 여러 번 훑어보아도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은 없다. 튜브를 꺼내어 튜브 패치로 정비를 하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는데 집에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와 쳐다본다.


마당 한편에 자전거를 널브러뜨리고 있는데 별다른 말없이 인사를 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타이어를 장착하며 얼핏 보인 뒷드레일러의 풀리 모양이 이상하다. 흙모래들이 달라붙어 달그닥거리는 체인과 스프라켓만을 신경 쓰다 보니 풀리가 완전히 마모되어 닌자들의 표창처럼 날카롭다.


풀리가 이렇게 빨리 마모되어 버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별일이 다 있네. 자전거샵을 구경하기도 힘든데 어디서 풀리를 구하나."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지 않는지 기다린다.


"제발 한 번에 붙어라!"


 

"이것은 경운기일까, 자동차일까, 트럭일까?"


경운기의 엔진을 달고 있는 트럭의 크락션 나팔이 유독 눈에 띈다.


 

"풀리, 풀리를 어디서 구하지. 본드도 아직 못 구했는데."


풀리에 대해 고민을 하다 문득 도로변 곳곳에 버려진 공공 자전거가 떠오른다.


"길가에 버려진 자전거들에서 풀리를 빼내면 되겠구나. 오케이!"


 

생각해 보니 셔터로 되어있는 중국의 문 앞에 대책 없이 자전거를 세워 놓은 것 같다. 언제 어디에서 셔터가 올라갈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중국의 멋진 현관문이나 대문이 있는데, 왜 이런 볼품없는 셔터를 달아 놓는 거지?"


 

다행히 바람이 빠지지 않아 가던 길을 이어간다. 작은 오르막을 오르고 시내를 완전히 빠져나와 크락션을 빵빵거리는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자전거의 속도감이 이상하다.


펑크 정비를 하고 5km도 가지 못했는데, 하필이면 울퉁불퉁 도로가 파여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변에서 펑크가 난다.


"아, *************************"



 

 

펑크가 난 튜브를 정비하려다 시간이 늦어지고 위험한 도로변이라 어제 펑크 패치로 정비를 해두었던 튜브로 교체한다.


"부처, 예수, 알라여! 제발 제대로 펑크 패치가 붙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5년이 넘게 MTB샵을 운영하면서 수 천 번이 넘도록 펑크 정비를 했을 터인데도 무거운 여행용 자전거의 펑크 정비는 쉽지 않다. 두 번의 펑크 정비를 하는 사이 시간은 4시가 가까워진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정비를 해두었던 튜브는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이다. 오늘의 1차 목적지로 생각했던 지에소우전까지 30km 정도가 남아있다. 비가 내리는 날의 12km 정도 평속에 비해 조금 빠르게 달려온 하루라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취안저우현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도로변의 풍경은 흙먼지의 회색빛 세상에서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짙푸른 색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달려!"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따라 작은 노지의 귤 밭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짙푸른 귤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감귤의 주황빛 색의 조합이 너무나 좋다.



"이번엔 노란색과 녹색의 조합."



마치 봄과 가을을 계절을 넘나들며 제주도의 어느 마을을 달려나가는 것처럼 페달링의 가벼움이 느껴진다.



도로변으로 이어지는 감귤밭과 감귤을 처리하는 집하장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특산물이 감귤이 아닌가 생각된다.



5시 20분, 주황빛 감귤과 노란빛 배추꽃의 싱그러운 풍경을 달리다 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지에소우전에 들어선다. 마을이 가까워지며 다시 회색빛 흙먼지의 세상이 되어 버린다.


대형 차량들이 마을을 거칠게 지나치며 흙먼지를 날리고, 생기가 없어 보이는 마을의 곳곳에는 버려진 감귤들이 쌓여있다.


"이거 생각과 너무 다른데."


도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슈퍼마켓의 입구에서 음식점과 빈관의 위치를 검색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빈관을 찾는다. 황량해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다. 싱안현까지의 거리를 확인한다.


"6시. 15km 정도라."


콜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시고 싱안현으로 달려간다.



봉인해 두었던 비장의 능력을 개방한 사람처럼 자유롭고 거칠게 페달을 밟아 싱안현으로 향한다.


"울트라 캡숑 콜라 파워!"



지에소우전을 출한하여 1시간 후 16km의 싱안현에 도착한다. 흥건하게 젖어든 져지와 탱글하게 느껴지는 허벅지의 느낌이 좋은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도착한 싱안현 역시 다른 이전의 현(县)들에 비해 조금 낙후되어 있는 듯한 풍경이다. 일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주변의 빈관들을 검색하고 작은 빈관들이 모여있는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몇 개의 빈관들을 지나치며 내외부의 모습을 살펴봐도 아주 오래된 빈관들의 모습은 시골 역전 주변의 오래된 여인숙 같은 느낌이 난다.


"쑤이 지아오, 뚸 샤오 치엔?"


첫 번째 눈이 마주친 빈관의 여자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50위안을 달라고 한다.


"싸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빈관으로 들어가 주숙등록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빈관으로 가 보라고 한다. 역시 중국에서는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숙등록이 가능할지가 더 중요하다.


"워 쓰 한궈렌. 커이 쑤이 지아오 마?"


두 번째 오래된 재봉틀이 놓여있는 빈관으로 들어가 잠을 잘 수 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가능하다는 제스처를 한다.


"커이?"


큰 기대 없이 그냥 물어본 것인데 숙방이 가능하다고 하니 나도 놀랍다.


"뚸 샤오 치엔?"


"40."


"40?"


"40!"


아주 오래된 빈관이고 잠깐 내부를 살펴봐도 허름해 보이지만 씻을 수 있고,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여행자에게 빈관의 40위안이라는 가격은 너무나 마음에 든다.


"하오! 하오!"


여권을 보여주고 체크인을 마친 후 자전거는 재봉틀 옆에 묶어두고 낡은 계단으로 패니어를 들고 올라간다.



"정말 딱 40위안 빈관이야."


난방기조차 없는 작고 허름한 방이지만 작은 화장실과 침대는 놓여있으니 만족한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오니 빈관은 여자는 주숙등록을 못했는지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다.


"왜 그래? 컴맹인 거야 아니면 주숙등록을 못하는 거야?"


컴퓨터로 주숙등록을 할 수 있다며 웃는 여자는 계속해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안 해 봤어? 그런 거야!"


빈관의 컴퓨터에 주숙등록을 하는 프로그램 창이 열러있는 것으로 보아 주숙등록이 가능한 빈관인 것은 확실하다. 경찰들이 빈관으로 찾아와서 주숙등록을 처리해 줬던 티먼현의 빈관처럼 프로그램의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중국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외국인에 대한 주숙등록을 입력할 일이 있었겠나 싶다. 다른 빈관에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으며 주숙등록을 입력하던 여자는 한참 후 뿌듯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인다.



빈관 주변 저녁 장사를 하느라 분주한 길거리 식당으로 들어간다.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식당은 저렴하고.



고기 메뉴를 골라 밥을 먹었지만 130km를 넘게 달려온 하루의 허기짐에 뭔가 허전하다.



"나쓰 썬머?"


다른 사람들이 먹는 메뉴를 가리키며 같은 것을 추가로 주문을 한다.



허름한 길거리의 식당이지만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두 개의 메뉴를 시키고 밥까지 배불리 먹었는데 20위안이다.


"하, 너무 좋아!"



만족스러운 저녁을 하고 빈관으로 돌아오니 빈관의 할머니가 재봉틀 앞에 앉아있다. 눈이 침침하여 실을 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재봉틀의 실을 꿰어준다.


"아니 눈도 침침하신데 불을 켜야죠."


재봉틀로 뭔가를 수선하는 할머니에게 공항에서 뜯겨진 커다란 가방을 수선해 달라 부탁을 할까 생각하다 귀찮아진다.



난방기가 없어 쌀쌀한 방, 패니어에서 침낭을 꺼내어 덮고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하던 중 블루 스크린이 뜨면서 컴퓨터가 꺼져버린다.


"왜 이래?


다시 전원을 켜보지만 정상적으로 부팅을 하지 못하는 노트북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작은 사이즈의 노트북을 털보네에게 구매한 것인데 말썽을 일으킨다.


여러 차례 재부팅을 반복해보지만 전원마저 들어오질 않는다. 마더보드가 망가졌나 생각했는데 파워 쪽의 문제인가 보다.


"망했다."


 

차링현에서 만난 데이비스에게 노트북을 수리할 수 있는 장소를 물어본다.


"메이커가 어디야? 삼성? 엘지?"


"없어. 그냥 중국 제조 제품이야!"


"..."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 난 것 같아. 어디서 고칠 수 있을까?"


데이비스는 한참 후에 계림시에 있는 전자상가의 위치를 보내준다.


"중국에는 큰 전자 상가들이 있는데 웬만한 것들을 모두 고칠 수 있어. 걱정 마!"


일단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계림에 있는 전자상가의 위치를 알아뒀고,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이지만 중국에서 제조된 것이라 쉽게 수리를 할 수 있거나 부품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장 난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중국 여행에 적응을 하면서 밀려있던 자료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든다.


"몰라. 자자!"


침낭 속으로 들어가 이불킥을 몇 차례 날리고 잠이 든다.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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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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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6일 / 구름 ・ 7도

창닝시-링링구

8시에 깨어나는 아침, 한 시간만 더 일찍 생활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처럼 잘 되질않는다. "오늘도 가 보자!"

이동거리

92Km

누적거리

1,664Km

이동시간

7시간 05분

누적시간

130시간 09분


S320소도
X006길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창닝시
바수이전
링링구
 
 
1,664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불쾌한 꿈에서 깨어 습관적으로 커튼부터 열어본다. 여전히 낡은 창문 너머로 뿌옇게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시원스쿨 강좌를 틀어놓고 패니어들을 정리한다.


여행을 위해 시원스쿨 강좌로 영어 공부를 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20분이 조금 넘는 한 강의를 듣는 것이 좀이 쑤셔 그렇게 힘들더니 여행 중 한국말로 대화할 일이 없으니 강의 내 들리는 설명마저 귀를 쫑긋 집중하게 된다.


어제 자전거를 씻지 못하여 엉겨 붙은 흙들로 엉망인 자전거는 오늘은 또 얼마나 크게 달구지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달릴른지 모르겠다.

 

 

 

숙소 앞에 노점상들이 야채와 채소를 팔고 있다. 중국인들이 등짐을 질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도구인데 무거운 짐에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채소나 야채도 저울에 달아 파는구나."


 

 

10여 분 만에 창링시를 쉽게 벗어나 계속되는 S320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이전과는 달리 이곳의 길은 새로 정비되었는지 검은 아스팔트가 윤기나게 잘 깔려있어 라이딩 하기에 편안했다.


 

10시 30분쯤 작은 촌마을 시장길을 지나간다. 사람들로 붐비지만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잠시 쉬며 어제 사놓은 빵을 먹을까 하다 시장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이 있어 시장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들어간다. 자전거를 세워두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한국인임을 알아챈 사람들의 대화들이 들린다.


"나 왜 자꾸 중국말이 들리지?"


 

할머니가 투명한 면발을 가리키며 그것을 먹을 건지 제스처로 물어봐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 가지 메뉴만 판매하는 모양이다.


 

 

면을 준비하던 할머니가 어떤 소스를 보여주며 넣을 거냐고 물어본다. 중국에 와서 소스를 첨가할 것인지의 물음에는 언제나 "쓰!". 그들이 먹는 그대로 먹고 싶고 지금까지 딱히 거북하거나 입에 맞지 않는 소스는 없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기름에 튀기듯 후라이한 계란과 국수 가득.


 

열심히 맛있게 먹으니 할머니가 맛있냐고 물어본다.


"하오 츠! 하오 츠!"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식사를 마치니 가게 안에 있던 남자들이 재미난 것을 보는 사람처럼 서로 웃고들 있다. 할머니가 면이 더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기본적인 양이 많아 배가 넉넉하게 부르다.


"부 요!"


가격을 물으니 가게 안에 있던 남자들이 다섯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웃는다.


"우! 우! 파이브!"


먹으면서 10위안 정도 하겠지 생각했는데 5위안(850원) 이라니 정말 싸다.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S320 도로. 오늘 가야 할 링링구까지 거리는 90Km가 조금 넘는다. 오전 라이딩으로 40Km를 달리고 50Km 정도가 남아있다.


 

 

링링구까지 이동하는 길에는 성도나 소도, 국도가 없이 X00*으로 넘버링 되는 시골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지금까지 도로와 도로를 잇기 위해 잠깐씩 지나쳤던 시멘트 포장길이나 비포장의 도로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도 험난한 길을 이어가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던 S320 도로를 벗어나 초입부터 의미심장한 느낌의 시골들을 접어든다. 산길들과 탄광촌을 지나며 언제나 산의 정상에 올려놓았던 S320 도로를 며칠 만에 벗어난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중국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구불구불한 시골의 마을길들을 이어간다. 큰 도로변들의 수많은 촌부락들을 지나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시골 마을들의 내부를 자세히 구경할 수는 없었다. 정말 흥미로웠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오토바이나 차량의 통행이 없어 지겹도록 들었던 크락션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좋다.


 

 

큰 도로변의 마을들은 시장이나 상점들이 이어져있는 길이 아니면 대부분 집들의 셔터가 내려져있어 텅 빈 것처럼 휑한 분위기가 많은데 한적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골 동네들은 길가 주변으로 사람들과 아이들이 많다.


 

 

마을의 슈퍼에 모여 마작이나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 마을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무언가를 의논하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어린아이들이 무리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모두 노인들뿐인데,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지?"


 

 

 

중국의 시골에는 광고판이나 현수막보다는 집의 벽면에 대부분 광고가 그려져 있다. 시골길에 접어들어 계속되는 서양인 의사의 사진이 걸린 병원 광고. 나중에 알아보니 유라시아 남자 의사가 보는 치질 치료 광고다.


 

 

 

 

오래되고 이상한 골목길을 지나 면소재지처럼 보이는 곳이 나온다. 작지만 상점들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중학생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한꿔렌하며 의아해 한다.


 

 

가끔씩 보이는 탑인데 논 한가운데 세워져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시골의 소학교 앞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학교 앞 문방구를 겸하고 있는 상점에 들어가 빵을 사든다. 패니어에 빵들과 콜라가 있었지만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가려고 가게에서 추가로 빵을 산다.


좁은 가게 안에서 기다란 종이에 뭔가가 적혀있는 카드를 들고 게임을 하느라 나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별 관심이 없다.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하여 색다른 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을 찍지 못하겠다.


 

이 넓적한 빵이 재미있다. 내용물 없이 달랑 두 쪽이 들어있는데 위에 뿌려져 있는 각설탕의 맛이 맛의 전부다. 그런데 먹다 보면 심각한 중독성이 있다.


 

"여기도 업어져 있네."


 

 

조용한 산길로 이어지던 길은 급기야 공사 중인지 시멘트가 벗겨진 난장판의 흙길이 나타난다. 20여 분을 진흙밭과 물웅덩이를 지나느라 고생을 하고 길은 하늘로 올라간다.


 

힘들게 하늘길을 올라오니 갑자기 윤기나는 검은 아스팔트가 펼쳐진다.


"아, 드디어 살았다!"


 

검은 아스팔트 길은 바람과 달리 딱 5분 정도 마을을 관통하고 끝이 난다. 그리고 길은 중앙선만 그어졌을 뿐 이전의 시골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시멘트 포장길의 S236 도로로 이어진다.


 

 

자전거와 패니어에 붙은 흙들이 말라가며 엉망이 돼버리고, 드드득거리며 돌아가는 체인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정신이 혼미해지면 길이 이렇게 보이는 걸까?"


짧은 거리를 두고 모굴처럼 위아래로 이어진 도로를 보면 마치 엿가락처럼 휘고 굽은 길처럼 착시현상이 보인다.


 

4Km 정도를 남기고 목적지인 링링구의 높은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들의 통행이 많아지는 길 위에서 한 차량이 달리는 나에게 속도를 맞추며 조수석의 문을 열고 한국인지를 묻고 자꾸만 중국어로 질문을 한다.


너무 위험하여 손가락으로 저 앞에서 서서 말하자고 가리켰더니 잘못 이해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


"한국 사람 쌀쌀맞다고 오해하지 마. 네가 잘못 알고 그냥 가버린 거야."


 

 

예전 홍콩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아파트들이 보이고.


 

 

넓은 링링시의 시내로 들어선다. 큰 사거리의 건너편 넓은 광장에 사람들과 음악이 가득하다. 궁금하여 길을 건너보니 음악에 맞춰 사교댄스를 추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춤을 추는 사람들, 장기나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 중국의 도시마다 있는 커다란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제각기 즐기는 그들의 광장문화는 재미있다.



광장에 앉아 고덕지도로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고 주점으로 이동했지만 2층에 프런트가 위치해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던 중 작은 빈관이 눈에 들어온다.


빈관의 계단 아래에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숙박비를 물으니 60, 80위안이라 말한다. 피곤함이 조금 밀려들어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지 묻자 숙소 뒤편에 창고가 있다며 따라오라고 안내를 하다. 긴 건물을 빙 돌아 숙소 뒤편의 창고에 가보니 넓은 창고 건물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 심지어 십여 마리의 닭들이 창고 안을 시끄럽게 헤집고 돌아다닌다.


"헐, 창고에서 닭을 키우는 거야?"


자전거를 숙소의 벽에 기대어 놓고 자전거를 씻어내기 위해 자전거에 물을 뿌리는 제스처를 크게 하며 수도가 없는지 찾는다.


"메이요!"


"쑤이, 워 요 쑤이."


주인 여자는 알았다며 숙소의 뒷문으로 따라오라 한다.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의 공간을 활용해 만든 부엌으로 들어간다.


너저분한 부엌에는 낡은 조리 시설과 설거지들이 쌓여있고 바로 옆에는 구식 좌변기가 놓여있다. 좌변기에는 붉은 이물질들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어서 주인 여자는 황급하게 좌변기에 물들을 뿌려대며 중얼거린다.


환경이 좋지 않아 보이는 빈관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열악한 내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이건 뭐야! 화장실에 부엌이 있는 거야, 부엌에 화장실이 있는 거야?"


주인 여자는 설거지들이 쌓여있는 곳의 옆에 놓인 큰 물통을 가리키며 받아놓은 물을 양동이로 사용하라고 알려준다. 첫인상이 수다스럽고 재미있는 동네 아줌마 같은 여자는 능글맞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 자전거를 씻어내고 주인 여자가 황급하게 물을 부으며 없애려던 것이 음식을 만들 때 쓰던 양념이거나 남은 음식을 변기에 버린 찌꺼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또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가 있나했다. 그래도 식기들 옆에 변기는 좀."


패니어들을 모아두고 체크인을 하며 여권을 알아서 건네주어도 어찌 주숙등기를 못하는 눈치의 여자지만 언제나 유쾌하고 수다스럽다. 보증금을 포함해 100위안을 내니 신형 난방기 리모컨을 주며 새것이라며 수다스럽게 생색을 낸다.


"리모컨이 새 것이면 뭐해. 난방기가 신형이어야지! 방 키를 줘. 팡카!"


한참을 프런트 서랍을 뒤적이며 열쇠 뭉치들을 뒤적이더니 없다고 하며 올라가면 있다고 한다.


"뭐야. 카드도 아니고 열쇠야?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빈관의 상태를 보아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2층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 방은 긴 복도를 따라 나무로 된 방문들에 자물쇠들이 하나씩 매달려 있다.


허름하고 낡은 빈관. 중국의 건물들은 겉모습을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최근에 지어진 빌딩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샤워를 하고 숙소의 건물 끝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손님이 와도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중국의 식당, 볶음밥 같은 메뉴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음식을 하던 젊은 여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날카로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언성을 높여 떠들어 댄다.


밥을 먹는 내내 신경질적으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여자,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고 귀에 거슬려 왜 그런지 여자를 살펴본다.


등치가 제법 크고 골격이 굵은 여자는 양꼬치 같은 것을 굽고 있는 남자를 향해 지속적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남자는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얇은 양꼬치를 들고 왔다 갔다 식당을 드나든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식당에서 적당히 맛있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불쌍한 그대, 그대의 죄라면 단지 중년의 남자인 거야!"

 


숙소에 돌아오니 프런트에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앉아 있다. 아무리 봐도 주인 여자를 닮지 않은 귀여운 얼굴이다.


"자전거를 고쳐야 해. 창고 문을 열어줘."


잠시 어리둥절하던 여자애는 부엌에 있는 주인 여자를 부르더니 숙소 뒤편의 창고 문을 열어준다. 링링시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빠진 것을 확인한 자전거, 좋지 않은 산길을 다니다 보니 쉴 새 없이 펑크가 난다.

 


숙소의 프런트 앞에서 3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동안 자전거 꺼내어 튜브 정비를 한다.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우리나라였으면 등짝 스매싱을 열두 대는 더 맞았을 거야."


 

 

예비 튜브까지 펑크패치로 잘 정비를 해두고.


 

살짝 김유정을 닮은 것 같은 20대 초반의 여자애는 BTS를 안다며 케이팝이 좋다며 방긋 웃는다.


"아무리 봐도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네. 정말 딸이 맞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방으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다 고기가 없는 저녁 식사를 한 탓인지 배가 출출해진다. 빵과 콜라를 사기 위해 슈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연신 잔소리를 듣던 남자는 부지런히 꼬치들을 굽고 있다.


메뉴판에 적힌 꼬치들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실없이 웃고만 있는 아주머니에게 무엇이 맛있는지 물어본다.


어떤 것이 맛있냐고 물어보는데 자꾸만 꼬치의 가격만 알려주는 아주머니다.


"알았어. 계속 드라마 봐."


 

식당으로 되돌아가 1개에 2위안 하는 양꼬치를 10개 주문한다. 식당 안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다양한 꼬치들을 가득 쌓아놓고 먹고 있는데 무엇을 먹는지 알 수도 없고,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지글지글 양꼬치들을 숯불에 굽고 양념들을 조금씩 가미한 후.


 

건네받은 양꼬치, 한 개를 꺼내어 먹으니 맛과 향이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야, 이거 한국 양꼬치 집에서 먹는 맛과 다른데. 술 친구라도 있으면 배불리 가득 먹고 싶다."


 

양꼬치를 먹으며 숙소로 돌아오니 여전히 핸드폰 드라마를 보며 실없이 웃고 있는 아주머니. 양꼬치 다섯 개를 꺼내어 주었더니 괜찮다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양꼬치의 아쉬움.


"아, 쓰고 달달한 소주가 당기는 밤이네."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지만, 계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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