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1일 / 맑음 ・ 28도
파블로다르-에키바스투즈
파블로다르를 떠나 아스타나로 향한다. 450km의 여정,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궁금하다.
1시간의 시차가 생기며 딱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괜한 게으름이 시작된다.
"딱 한 시간 만큼의 게으름."
밖에 나가 날씨를 확인하고, 어젯밤 마른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더니 선선한 자람이 불며 날씨가 좋다.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데, 무심결에 틀어놓은 유시민 작가의 유튜브 강연에 빠져 한 시간을 시청했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어제 냉동실에 얼려놓은 물을 꺼내려고 하니 냉동실에 있어야 할 물병이 사라졌다.
"에잇, 방심했네."
숙소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신경을 덜 썼더니 누군가가 들고 간 모양이다. 기분이 조금 상한다.
500원 정도의 1.5리터 생수의 가격은 차치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한 회심의 아이템이었는데 말이다.
새로 바뀐 숙소의 여자에게 물어보기도 귀찮고 바로 숙소를 나온다.
얼음물 때문에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도 별 흥이 안 나고.
파블로다르를 벗어나기 전, 근처에 있는 정교회를 구경하기 위해 길을 돌아간다.
오늘의 목적지 에키바스투즈까지 는 145km 정도의 거리라 부담스럽지만 큰 상관은 없다.
얼음물 때문에 빈정이 상해 있는 터라 오늘 하루는 아무렇게나 삐뚤어질 것이다.
"삐뚤어질 테야!"
"뉘신지? 1,700년대 사람이라니."
파블로다르의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교회의 전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안을 들어갈까, 말까?"
조용하게 교회로 들어가 신부님이 보는 앞에서 과감하게 사진을 찍는다.
"삐뚤어질 거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정교회는 정숙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고.
벽에 걸려있는 많은 액자와 장식물 등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행동,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믿음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
정말 정성스럽고 바람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맹목적으로 아멘만을 외쳐대는 한국의 개신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대머리 큰목사, 빤스목사 따위에게 아멘이라니."
교회를 나와 아르티시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가고.
어제부터 궁금했던 아르티시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보기 위해 찾아간다.
"정말 구닥다리 철교네."
철교의 근처는 버스들의 종점처럼 보인다. 슈퍼에 들어가 물과 미니 피자처럼 생긴 빵만을 사 든다.
"밥은 가다가 식당에서 해결하지 뭐."
파블로다르를 빠져나오며 도로변에 있는 식당처럼 보리는 곳에 들어갔지만 SM그룹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도로변에 식당 하나쯤 더 있겠지."
인터체인지를 돌아 아스타나로 향하는 도로에는 아무것도 없다. 왕복 4차선으로 만들어진 도로에는 속도를 내어 달리는 승용차와 화물차만이 바쁘게 지나칠 뿐 아무것도 없다.
도로변에 마련된 공동묘지는 마치 모스크를 줄여놓은 미니어처들처럼 보인다.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의 공간도 함께 있는데, 무슬림의 화려한 무덤에 비해 작은 공간에 소박한 묘비만이 놓여있는 것이 다르다.
한 시간을 달려 도로변의 식당을 발견했지만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다.
매끈하던 아스팔트 도로는 시멘트 도로로 바뀌며 도로면이 좋지는 않고, 서서히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글렀어."
슈퍼에서 산 피자 모양의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어떠한 풍경의 변화도 없이 똑같은 도로를 소처럼 달려간다.
두 번째 휴식, 45km를 달렸다. 남은 거리는 100km, 날씨마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다.
화물차의 통행이 많고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여서 너무 시끄럽다.
끝없는 직선 도로가 사방을 둘러봐도 똑같은 초원 위로 길게 이어지고.
가도가도 똑같은 풍경이다.
"에쒸, 물도 떨어져 가네."
몸을 씻고 취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숙소에서 수돗물을 1.5리터 정도 받아왔지만, 식수용 생수는 슈퍼에서 딱 한 통만을 사 왔다.
지금까지 카자흐스탄의 도로에 드문드문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식당이나 슈퍼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20분 정도를 달려 도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이 보였지만 들어가기가 귀찮다.
"그냥 가자, 주유소라도 하나쯤 나오겠지."
하지만 주유소 같은 헛된 바람은 일찍 버렸어야 했다.
도로는 자꾸만 공사를 하는 느낌으로 변해가고.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멀리 인터체인지를 만드는 공사 구간에서 작업자들이 차량들을 흙길로 우회시키는 모습이 보인다.
"에잇, 정말! 어라, 식당?"
공사장 근처의 도로 건너편으로 작은 식당이 보인다.
작은 식당의 카운터에는 보란 듯이 닭고기 바베큐가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거, 이거!"
번역기를 사용할 정신도 없고, 손가락질을 하며 고기와 계산기를 번갈아 가며 가리킨다.
"1,000."
300, 500 단위의 도로변 식당의 음식을 먹어온 터라 닭꼬치의 가격에 살짝 당황했지만 비장한 합리화로 정신승리를 한다.
"좋은 고기니까 조금 더 비싼 거겠지."
빵이 얼마나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두 팔을 들어 엑스자를 만드니 여직원이 이상한 듯 빤히 쳐다본다.
"왜? 난 고기 먹을 때 빵 같은 건 안 먹어."
잠시 후, 아주 성의 있게 접시에 담은 고기를 성의 없이 던져주듯 테이블에 올려놓은 여직원에게 포크를 달라며 귀찮게 하고.
3,000원짜리 닭고기 4조각을 해치운다. 당연히 아쉽고 부족하다.
식당을 나서며 물과 함께 닭고기를 포장한다. 자세히 보니 빵 두 조각을 함께 놓어준다.
아무래도 닭고기 바베큐에 빵이 세트로 나오는가 싶다.
"진작에 빵은 공짜라고 말을 했어야지."
인터체인지 공사를 하는 짧은 우회로를 돌아 도로는 다시 이어진다.
지금까지와 달리 이번에는 가는 방향의 차로를 막고 건너편 차로를 임시 도로로 열어놓아 혼자서 도로를 독차지하고 편안하게 달린다.
마치 중국의 넓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다시 생각해도 중국의 자전거 도로는 정말 환상적이다.
"심심할 때는 쓸데없는 셀카짓."
도로의 시멘트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내어 틈을 만드는 작업과 도로의 주변에 철조망을 쳐서 초원과 분리를 하는 작업으로 사람들이 바쁘지만.
공사 구간으로 막아놓은 도로를 라이딩 한다고 제재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손을 흔들거나 작업을 멈추고 달려와 사진을 찍자며 반가워한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 사람인지를 묻는다.
한국보다 일본에 대한 인식이 더 높은 것 같다. 일본말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인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것이 우리에 대한 인식도 그리 나쁘지는 않는 것 같다.
아주 멀리에서부터 보이던 공장의 굴뚝과 연기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무래도 저기가 에키바스투즈 근처인가 본데."
에키바스투즈로 들어가는 교차로는 15km 정도의 거리가 남아있고, 에키바스투즈는 교차로에서 10km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중국의 모든 도로는 도시와 연결되지만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도로는 도시들과 5~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평평한 초원에서 도로를 도시와 연결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교통의 흐름 때문이라면 도시의 외곽으로 이어놓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다.
에키바스투즈로 들어가는 교차로 근처에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목적지를 잡는다.
저녁을 해결하고 식료품들을 보충한 후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봐야겠다.
페달링의 속도가 많이 떨어지면서 도착 시간이 많이 늦어진다.
8시가 넘어가며 붉은 태양은 초원의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앉는다.
"멋지네."
여행 전 초원의 라이딩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라이딩의 모습, 지평선으로 붉게 떨어지는 석양의 풍경 속을 달린다.
중국의 내몽골, 몽골의 초원에서 쉽게 할 수 없었던 늦은 시간의 라이딩이다.
"하루 종일 볼거리가 전혀 없더니, 이거면 충분하네."
8시 40분, 도로변의 식당에 도착했지만 야영지를 찾아 갓길이 없는 도로를 더 달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식당 주변에 텐트를 쳐야겠다."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의 내부.
여전히 난감한 메뉴판.
젊은 여자의 추천으로 카자흐스탄 음식이라는 메뉴를 주문하고,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물으니 흔쾌하게 수락을 한다.
잠시 후 식당의 뒤편에 있는 숙소에서 자라며 1,500 텡게라고 알려준다.
"1,500? 4,500원? 왠지 끌린다."
밥을 먹고 식당의 숙소에 짐을 푼다. 그리고 식당의 아주머니에게 물을 얼려줄 수 있는지 물으니 이미 얼어있는 생수병을 보여준다.
"오, 대박!"
자료를 정리하다 출출해져 포장해온 닭고기를 야식으로 먹는다.
오늘 먹기는 아깝지만 날씨가 더우니 빨리 해치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제부터 생양파가 나왔지? 비스크?"
바베큐나 고기에 함께 나오는 양파의 식감과 매운맛이 좋다. 보통 소스를 뿌려 먹는 것 같은데, 생양파를 그대로 주는 식당도 많다.
"그래도 양파는 쌈장이지."
아스타나까지 300km 정도가 남았고, 길은 오늘과 같은 초원이 계속될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카자흐스탄 여행에서 알마티 지역으로 경로를 잡는지 알 것 같다.
"난 러시아로 가야 해."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카자흐스탄(19.07.31~08.2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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