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84일 / 맑음 ・ 34도
보로둘리하-세메이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들어오는 국경을 무사히 넘고, 보로둘리하에서 자넬을 만나 유심카드도 쉽게 구매했다.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도시 세메이를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새벽 늦게 잠들었지만 7시가 넘으며 텐트 안이 더워지며 강제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8시가 되기도 전에 강렬한 햇볕이 따갑고, 숨이 턱 막히게 하는 날씨다.
공원에서는 아침부터 꽃과 나무에 물을 주느라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물 호스를 빌려 세수와 함께 온몸을 닦아내고 싶었지만 왠지 한가로운 짓 같다.
어제 공원의 관리인과 자넬에게서 느꼈지만 공원은 이곳 사람들에게 중요한 공간인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손길들이 느껴진다.
"아이고."
짐들을 정리하고 텐트를 말리며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동안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무뚝뚝한 러시아, 관심이 부담스러운 몽골인에 비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편안하고 다정다감하다.
세메이까지 70km의 거리, 천천히 이동을 해도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카우치서핑이나 해 볼까?"
물을 사기 위해 카드 카드 결제가 되는 슈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이 켜져있다. 슈퍼를 둘러보는데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웃는 얼굴로 무어라 계속 말을 한다.
생수를 들고 흔들어 보고 있으니 재미있다는 듯 계속 말을 한다. 모르면 괜찮지만 알고 있으면 써먹어야 한다. 어젯밤 위너님이 알려준 대로 '녯가즈'라고 말하니 탄산수들 가운데 생수를 골라 준다.
"스바시바!"
요거트와 콜라를 사들고 계산을 할 때까지 무엇이 그렇게 반갑고 좋은지 살가운 웃음으로 말들을 이어간다.
"어디로 가니?"
슈퍼를 나와 시원한 콜라를 마시고 있으니 조금 전의 아주머니와 그녀의 남편으로 보리는 남자가 질문을 한다.
명함을 건네주고 여행에 대해 설명을 하니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슈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동네의 꼬마들이 자신들의 핸드폰을 들고 망설이더니, 물과 요거트를 패니어에 집어넣자 수줍게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래, 이리 와."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니 인사를 하며 돌아간다.
마을 초입에 있는 식당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종업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좋은 얼굴로 응대를 한다.
"카드로 결제가 돼요?"
약간 뚱뚱한 카운터의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젖고, 친절한 종업원이 '방크'라며 은행이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
"방크에 갔다 올게."
자넬을 만났던 곳까지 이동을 했지만 은행은 없다. 길 건너편에서 중년의 여자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은행이 어디에 있어요?"
손짓으로 은행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공원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다시 길을 돌아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우체국 앞에 있던 아저씨가 인사를 한다.
"아저씨, 은행이 어디 있어요?"
아저씨가 다가와 구글맵을 보며 은행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 맵을 확인하는 동안 계속해서 몸짓으로 길을 안내한다.
공원 뒤쪽의 길을 따라 이동하여 마을의 외진 곳에 있는 은행을 찾았다.
"아니, 은행이 왜 여기에 있어?"
그의 옆에 앉아 은행의 이름을 검색하니 카자흐스탄의 최대 은행 Halyk Bank다.
아침부터 은행을 찾기 위해 보로둘리하의 온 동네를 휘졌고 다녔지만 피곤하고 힘들기 보다 사람들의 반가운 환대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간편해서 좋았는데, 딱 그것만이군."
메뉴판에서 600텡게 볶음밥과 350텡게의 고기 메뉴 같은 것을 주문하고 10,000텡게를 주자 뚱뚱한 카운터의 여자가 잔돈이 없다는 제스처를 하며 안 된다고 한다.
"없어? 안 돼?"
"돈이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없다니."
한국돈 30,000원 정도의 금액인데 바꿔줄 잔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다니.
손님들에게 받은 음식값들을 더하고, 자신들의 지갑을 털어 카자흐스탄의 모든 지폐와 동전들을 하나씩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다.
"뭔 종류가 이렇게 많아."
무표정했던 뚱뚱한 카운터의 여자도 끝내 웃음을 터트린다.
그림과는 많이 다른 메뉴가 나왔지만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은행을 찾느라 거리를 헤매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느라 늦은 아침의 식사가 점심 식사가 돼버렸지만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넉넉해진다.
식당의 주차장에서 7~8명의 남자들이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하고 이것저것들을 묻는다.
즐거운 농담과 웃음들이 오가고 보로둘리하를 떠난다.
여행을 하며 많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을 전체에서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친절한 웃음과 환대를 해주는 곳은 처음이다.
어제 보로둘리하에 도착하며 규모가 작은 올드 타운의 모습에 약간 경계의 마음을 가졌었다.
자연,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보로둘리하의 사람들에게서는 은은한 솔향기가 느껴진다. 그들과의 만남은 카자흐스탄 여행의 첫 번째 선물처럼 생각된다.
"고마워. 보로둘리하!"
오르막길이 돼버린 도로를 올라오느라 갈증이 난다. 사거리의 작은 슈퍼에 들어간다.
"물, 시원한 물!"
슈퍼를 들어가기 전부터 말을 건네던 아저씨가 사진을 찍자고 하고.
도로변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화물차의 그늘에서 첫 번째 휴식을 취한다.
식당에서 채운 물로 목덜미와 팔뚝에 물을 부으니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깜짝 놀란다. 잠시 후 불어오는 바람에 물에 젖은 부분이 시원해진다.
여러 차례 온몸에 물을 부어가며 더위를 식히고, 미지근한 물을 마셔보지만 숨이 막히는 무더위다.
화물차가 만든 그늘에서 쪼그려앉아 카우치서핑으로 호스트를 찾는데, 식사를 마친 화물차가 출발을 해버린다.
"으, 더워.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출발을 하고, 길은 소나무 숲을 향해 길게 이어진다.
세메이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페달링이 느려지고.
겨우 도로변의 그늘을 찾아 햇볕을 피하고.
"돔브라를 어디에 달아 볼까?"
아침에 보로둘리하의 슈퍼에서 선물 받은 열쇠고리는 핸들 패니어에 달아둔다.
세메이 중심으로 들어가는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숙소로 알아보았던 호텔의 방향이고, 왼쪽은 시내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시내를 보고 숙소로 가기 위해 왼쪽의 도로로 진입한다.
하지만 운전 매너가 좋은 카자흐스탄의 운전자들이라 어렵지는 않고, 여기저기에서 손인사들을 전한다.
차량을 세우고 기다리며 사진을 찍자며 정중히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들 즐거워한다.
카자흐스탄으로 들어와 이틀 동안 정말 많은 사진을 찍는다.
가로수와 수풀이 무성한 시내길을 지나 빌딩과 상가가 들어선 시내 중심에 도착한다.
"슈퍼는 어디에 있는 거야?"
"왠지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효율적이네."
작은 아이스크림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날씨가 덥다 보니 아이스크림은 겨우 아이스한 정도이다.
"에쒸, 왜 이렇게 더워. 몇 도야?"
32도, 몽골에 비해 기온이 높지만 따가운 햇볕의 몽골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오면서 바람마저 후덥지근한 바람으로 변하여 숨이 막혀온다. 물론 덥기는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이나 마찬가지다.
부킹닷컴으로 저렴한 숙소를 예약한다. 침대가 있는 호텔은 몽골의 울기가 마지막이었으니 한 달 만인가 보다.
"그래, 오랜만에 편하게 에어컨 바람도 쐬어보고 자료도 정리하자."
고급진 6,000텡게(18,000원)짜리 호텔은 시내 외곽에 위치해 있다.
"물, 코크!"
냉장고에 있는 물과 콜라를 집어 드는데 미지근하다. '왜?'라는 표정으로 여직원을 쳐다보니 웃으면서 냉장고의 코드를 찾아 콘센트에 꽂는다.
졸졸거리며 새어 나오는 샤워기로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누운 채 천국을 만끽한다.
"아, 저 에어컨 떼어가고 싶다."
"주변에 식당 없어?"
"2km 정도 걸어가면 돼."
"안 갈래. 슈퍼는?"
"큰 슈퍼는 없어."
"왓?"
"길 건너편에 손톱만 한 가게는 있어."
"무슨 맛일까?"
"아, 모르겠다. 천국에선 일기 같은 것은 안 쓸 거야. 매일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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