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3일 / 흐림
코쉬아가츠-아크타쉬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코쉬아가츠를 떠나 러시아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다. 숙소의 창밖에 설치된 온도계의 눈금은 10도를 가리키고 있다.
몽골의 국경에서 70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오늘은 가야 해."
짐들을 정리하고 아쿠아 슈즈와 레인 팬츠를 꺼내고.
중국에서 차려입었던 우중 라이딩 복장을 갖춘다.
"오랜만이네. 고무장갑이 빠졌군."
필립과 마리사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는 두 명의 자전거 여행자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온다. 러시아 구경을 넘어 코쉬아가츠 근처에서 도착한 것 같지만 그들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인연이 있으면 길 위에서 만나겠지."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강한 비바람은 없지만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다.
오늘 가야 할 목적지는 100km 거리의 Aktash.
국경과 가깝다 보니 짐을 싣고 가는 바쁘게 달리는 차량들이 많다. 좁은 이차선 도로에 조심스럽게 진입을 하고, 다행히 차량들의 매너가 좋은 편이다.
작은 다리를 건네 크게 좌회전을 하고.
서쪽 방향을 향해 조금 달려가니 코쉬아가츠의 경계가 바로 나온다. 알타이 공화국의 수도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454km, 도착까지 5일~6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작은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지만 대체적으로 라이딩하기에 편안한 길이 이어지고, 핸드폰으로 실행해둔 라디오는 연결이 불안정하더니 완전히 끊겨버린다.
위너님의 여행기에 러시아의 산길에서 데이터가 안된다는 내용이 생각난다. 이제 통신이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한 시간의 라이딩을 하고, 첫 번째 나타난 마을의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려고 하니 뒷바퀴의 느낌이 이상하다.
"빵구! 오랜만이네."
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어 도로에 이물질조차 없을 것 같은 몽골에서는 펑크에 대한 걱정이 없었는데, 러시아에서의 신고식을 일찍도 한다.
작은 철심을 제거하고, 전부터 조금씩 바람이 새던 튜브를 정비해둔 예비 튜브로 교체한다.
맥주 안주로 사두었던 작은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하며 타이어의 바람이 새는지 기다린다.
튜브는 잘 교체된 것 같다.
도로를 건너 자전거에 오르려는 순간 차량 한 대가 정차하더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몽골의 국경에서 만났던 삐꾸가 창문을 열고 밝게 웃고 있다.
"삐꾸!"
서둘러 자전거를 가로등에 기대어 놓고, 이스카, 아카, 삐꾸와 반가움의 포옹을 한다.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는 그들은 도로변에 서있던 나를 보고 차량을 유턴해서 돌아온 모양이다.
우연히도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 세 사람이다. 승용차 안에는 처음 보는 여자들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스카, 러시아 가서 여자친구들 만들고 왔어?"
반가움의 인사들을 하는 사이 세워두었던 자전거가 기우뚱 움직이더니 푸시식 소리를 내며 뒷바퀴가 주저앉는다.
"오 마이 갓!"
이스카와 삐꾸는 무슨 일인가 신기하게 뒷바퀴를 만져보며 대화를 하고, 아카는 자전거를 버스 정류장까지 옮겨준다.
국경을 넘기 위해 서둘러야 하는 세 사람과 아쉬움의 인사를 차례대로 하고 헤어진다. 정말 아쉽다.
"그런데 넌 뭐냐?"
튜브를 꺼내보니 튜브를 장착할 때 림과 타이어 사이에 튜브의 일부가 씹혔나 보다. 다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찢어져 있다.
중국 쉬안화에서 사두었던 새 튜브를 꺼내어 교체한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가 보자. 부탁해!"
길은 작은 강을 따라 이어지고 수변의 나무들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작은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차가운 바람이 손등을 시리게 만든다. 중국의 고무장갑이 아쉽다.
계속되는 비바람으로 조금씩 한기가 밀려들고 배고픔도 함께 찾아든다.
바람을 등지고 작은 카스테라 빵을 꺼내어 허기를 달랜다. 낱개로 포장이 되어 먹기가 편하고 달콤한 잼이 들어있어 꽤 맛이 좋다.
다시 빗속을 달려 작은 오르막이 끝나고 언덕 위에 몽골의 어붜처럼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빗줄기는 다시 강해지고 평탄해진 도로를 한참 동안 달린다.
잠시 비가 멈추고 바람도 사그라든다.
60km의 거리를 달려 작은 마을이 나오고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오늘 여기까지만 탈까."
가야 할 길의 오르막길을 보니 게으름이 생긴다. 아크타쉬까지 35km의 거리가 남았고 시간은 3:40분을 가리키고 있다.
"갈까 말까?"
긴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경사가 높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타난 내리막길.
"그래, 이제 달려 볼까?"
비와 바람, 천천히 스며든 한기 속에서 지속되던 오르막을 끝내고 내리막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순간 뒷바퀴가 물컹거린다.
"뭐지?"
순식간에 빠져버린 바람, 마땅히 자전거를 눕힐 곳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작은 못 하나가 야무지게 타이어에 박혀있다.
오전의 펑크로 예비 튜브를 버리고 장착한 새 튜브, 여분의 튜브도 없고 비가 내리는 도로변에서 너무나 난감하다.
"중국의 펑크 귀신이 러시아에서 다시 붙었나."
"펑크 패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빗속에서 어렵게 물기들을 제거하고 펑크가 난 곳을 정비했지만 이내 바람이 빠지고 만다.
"아앙. 제발!"
튜브를 다시 제거하니 못이 튜브를 관통했는지 펑크패치를 붙인 반대편에도 구멍이 나있다.
다시 펑크패치를 덧붙여 마무리를 했지만 다시 바람이 빠진다.
"새 튜브인데, 이건 안되겠네."
오전에 펑크가 난 튜브를 꺼내어 펑크가 난 곳을 찾는다. 비와 바람이 불어오는 도로변에서 작은 바람 구멍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고, 한참 동안 튜브에 귀를 가까이하고 앉아있으니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하더니 괜찮은지를 묻는다.
다시 어렵게 펑크패치를 붙이고 세 번째 펌프질을 한다.
"30km만 가자. 그나저나 튜브도 없고, 펑크패치도 떨어져가고 문제네."
길은 내리막으로 길게 이어지고 아크타쉬의 경계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도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주변의 자연환경은 몽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짙푸른 녹음의 산속, 나무와 풀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싱그럽다.
나무로 지어진 펜션과 가옥들의 모양들이 침엽수의 숲과 어우러져 너무나 예쁘다.
아크타쉬에 도착한다. 높은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아늑한 느낌의 산골마을이다.
마을 초입의 식당에서 숙소를 검색하고, 바이커들이 많이 이용하는 숙소를 선택한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마트와 학교를 지나.
검색했던 숙소에 도착하고.
나무로 지어진 이층 구조의 건물의 내부는 좁고 허름하다.
뚱뚱한 아주머니가 거친 쉼호흡을 하며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고, 핸드폰으로 영어 번역을 하여 몇 명인지를 묻는다.
"져스 원! 하우 머치?"
"400루블."
아주머니는 자전거를 창고로 사용하는 방 안으로 넣어두라고 말한다. 바이커들과 가난한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응대가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아주머니는 누군가를 부르자 어린 여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2층의 방을 안내한다.
열쇠를 건네주고 내려간 그녀는 타올과 슬리퍼를 들고 다시 올라와 잠시 후 여권을 가지고 내려와 달라고 한다.
1층으로 내려가니 아주머니는 숙박계 같은 것을 낡은 노트에 빼곡하게 적는다.
아주머니의 딸이나 손녀로 보이는 어린 여자는 자신을 안나라고 소개하고 1층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주방을 안내해 주고, 나가고 들어올 때 현관문을 잠그라며 열쇠로 문을 잠그는 것을 알려준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마트가 있는 곳으로 나간다. 제법 큰 규모의 마트를 중심으로 작은 노점 카페들이 있었지만 모두 문이 닫혀있다.
마트 건너편의 건물에 음식 메뉴 현수막이 걸려있어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식당에는 눈웃음이 예쁜 어린 남자와 아주머니가 동양인의 등장에 잠시 의아해하더니 친절한 웃음을 보여준다.
주방 앞 테이블에 놓여있는 갈비찜 같은 고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거, 이거 줘!"
가격을 물어보니 200루블, 커피와 고기를 주문하니 이미 조리가 된 고기를 접시에 담아 전자렌지에 데워준다.
"오. 빨라서 좋다!"
큰 소갈비 3대와 감자 그리고 상추와 풋풋한 향이 나는 채소를 접시에 담아준다.
"그냥 먹어?"
어떻게 먹는지 제스처를 하니 손으로 들고 뜯으라고 알려준다.
갈비는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좋다. 15cm 정도의 두툼한 갈비살과 함께 준 채소들을 곁들인다.
식사를 하며 아주머니에게 맛이 좋다는 표현을 하니 아주머니는 빵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아니, 그 옆에 생선을 줘."
"피쉬?"
"응."
생선을 먹은지가 너무 오래됐다. 두툼한 생선찜, 명태처럼 느껴진다.
갈비찜을 한 접시 더 달라고 주문하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매콤한 토마토 소스 같은 것을 조금 덜어 접시에 담아준다.
"냅킨도 이쁘네."
정신없이 고기를 먹는 동안 작은 식당에는 러시아 사람들로 가득 찬다.
"아고, 잘 먹었다. 내일 또 먹어야지."
숙소로 돌아와 소파를 개조해서 만든 넓은 간의 침대에 쓰러진다.
낡고 허름한 숙소지만 세상 편안하고 좋다.
빗속에 100km 정도의 산길을 달려오니 졸음이 밀려온다.
아직은 러시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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