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햇볕이 드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아쉬움이 든다. 노트북을 꺼내 영화를 보려다 도깨비를 틀어놓고 노트북으로 핸드폰도 충전한다.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한 편, 한 편이 지나가고 은탁이 검을 잡을 수 있게 되면서 노트북의 전원이 꺼진다.
"핸드폰 완충!"
오후 늦게 주폴란드대사관의 페이스북에 공지사항이 올라온다.
국제선 운항이 중지됐던 LOT항공편으로 바르샤바-인천간 특별기가 3월 31일에 운행된다고 한다.
우리의 코로나 사태의 대책들이 외신에서 호평을 받고, 의료품과 대처법들에 대한 각국의 요청들이 늘어나더니 체코에서는 차단되었던 한국의 입출국이 풀렸다.
"오호, 좀 멋진데!"
26일 22시부터 예약이 가능하다는 공지에 '왜 미리 공지를 하냐'며 대사관의 조치에 사과를 요구하는 젊은 여자의 댓글이 보인다.
내용을 보니 폴란드 정부의 공문을 받고 대사관이 공지를 올리자 사람들이 서둘러 항공사에 항공권 문의를 했고, 정보공지가 부족했던 항공사의 직원들의 답변은 일괄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안내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안내를 받은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참 대단한 프로 불편러네."
폴란드 항공사의 업무 혼선에 대해 정부에게 사과를 하라니 어이가 없고, 공지를 22시 예약 가능으로 올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전에 항공권을 구매했다며 '왜 사전에 공지를 올렸냐'며 따지는 모습에 묵직한 욕지거리가 목에 걸린다.
아마도 그동안 취소되고 연기된 항공권의 소지자에게 우선권을 주다 보니 몇몇 사람들은 정확한 안내를 항공사로부터 받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공지사항을 미리 공지했다고 따지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니? 사전에 미리 올리는 것이 공지야!"
문제의 상황이나 결정의 순간이 오면 그 사람의 의식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해외여행자나 유학생들의 입국을 막자는 사람들도, 내가 먼저 입국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입장들은 있겠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국경 폐쇄된 상태에서 자국민들도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염 외국인들이 몰려든다며 해외입국을 막자는 생각은 너무나 엉뚱한 상상이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유학생이나 여행자들이 일시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 숫자가 무한정이지 않을 테니 곧 줄어들 것이다. 몇몇 해외 입국자들의 무지한 행동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부류들일뿐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질타하면 그만, 배타심만으로 전체를 낙인찍는 행위는 인종차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측 가능하고, 지속성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 관리를 할 것인지 해결책을 찾으면 최선인 것이고, 신천지나 몰지각한 사람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발생 변수들에 대해 법만으로 부족하다면 사회적 규범 내에서 강제나 질타를 하면 된다.
여행을 준비하며 고민이 되었던 부분 중에 하나가 핸드폰을 비롯하여 전자기기들의 배터리였다. 특히나 아프리카나 오지를 여행할 때 핸드폰만을 충전시키기 위해 준비했던 솔라 페이퍼를 처음으로 꺼내본다.
여행 전 제작업체에 후원문의를 했지만 의미가 없었고, 털보네 가게에서 2장을 구매했다.
"뭔가 숫자가 뜨는데 충전이 되려나?"
파박이 선물한 쏠라페이퍼 보조배터리까지 햇볕에 놓아두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뒹굴거린다.
주폴란드 대사관의 페이스북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온다.
10전 공항과 국경을 폐쇄하고, 공공시설들과 식당들의 영업을 중지한 조치를 4월 11일까지 연장하고, 집회와 모임의 금지를 포함해서 이동제한 명령과 함께 위반 시 5,000즈워티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내용이다.
"이동제한?"
알렉스에게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메세지를 보내니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맞아. 출퇴근이나 식료품 구매, 가족에 관한 사항 등이 있을 때만 움직일 수 있네."
"..."
"근데, 가벼운 산책이나 레크레이션은 개별적으로 가능하데. 너는 괜찮을 것 같은데?"
"고뤠?"
알렉스는 코로나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지침이 올려진 정부의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준다.
[폴란드 코로나19 관련 추가 제한조치] 기간 : 3.25(수)자정-4.11(토)
1. 3명이상 모든 종류의 모임 전면 금지 (모임, 회의, 동호회, 집회, 파티 등. 단, 가족 모임 예외) 2. 외출 전면 금지(출근, 약국과 상점 방문, 개 산책 제외)
외출 허용 경우는 3인 이상 도보, 차량 이동은 금지하며, 예외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근로자, 사업주, 농업 종사자의 출퇴근 및 영업용 물품 구매 목적. 2. 자원봉사자의 코로나 방역 관련 지원 활동 및 자가 격리자 대상 물품 전달 목적. 3. 생필품과 의약품 구입 및 병원 방문, 양육과 요양이 필요한 가족 방문, 개 동반 외출 목적으로 한정. 4. 대중교통은 운행하나, 좌석 갯수 초과 탑승금지. 5. 기존 백화점, 식당 영업 금지 조치는 지속 시행 6. 종교활동, 장례식은 최대 5명 참석 허용. 7. 고수부지, 공원, 놀이터 이용 금지. 8. 3명 이상 단체 도보, 차량 이동 금지(가족 제외). 9. 2인이하 산책 및 스포츠 활동 허용.
상기 사항 위반시 최대 5천즈워티 벌금 부과 가능.
뭔가 어설프지만 예외조항 맨 끝에 개별 스포츠 활동 가능이라는 조항이 있다.
"고마워, 알렉스. 머무를 장소를 못 찾으면 너한테 갈게."
"응."
이동을 할 수 있지만 상황이 불확실하니 당분간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할 것 같다.
웜샤워 어플을 켜고 주변을 검색하니 다음 목적지인 이와바에 한 명이 검색된다. 호스트 Ada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다인스크의 호스텔을 검색한다.
며칠 전 100여 명 정도의 확진자가 900여 명 가까이 늘어난 폴란드다.
"얘네가 코로나 전파가 느린 게 아니고, 검사가 안 되었던 거 아냐?"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호스텔의 생활이 안전하지 않을 것 같은데, 혼자 지낼 수 있는 룸이나 아파트들은 임대료가 비싸다. 이동제한, 숙소 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아이제나흐 코리나의 독일식 텃밭 가든이 있으면 좋겠는데."
시간을 보내는데 필요한 것은 텐트를 펼칠 장소만 있으면 되고, 가끔씩 식료품과 배터리들만 충전할 수 있으면 된다.
"어쨌든 그다인스크로 가자."
변화되는 상황에 대처하기 편한 그다인스크 가까이 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솔라 페이퍼들을 햇볕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따듯한 햇살도 조금씩 사그라든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저녁을 해결하고.
밤늦게 웜샤워로 보낸 메시지의 답장이 온다. Ada의 가족은 최근에 해외에서 입국을 하여 자가격리 중이라고 한다. 손님을 초대할 수 없다며 위반 시 벌금액수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는 호스트다.
"건강하게 자가격리를 마쳐라."
Quarantine, 우리는 Isol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월터나 외국인들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Quarant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충 Isolation은 환자를 격리할 때 느낌이고, Quarantine은 질병 예방의 느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