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30일 / 맑음 ・ 28도
용인-성남-안양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용인에 들러 유림을 만나고 아버지에게 간다.
편하게 잠든 밤이다. 흐리지만 비가 그친 하늘은 풍부한 감정을 품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여행은 어떻게 끝이 날까?"
지난 630일 동안 계속되던 마음속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인지 여전히 알 수는 없다.
수없이 많은 길들을 달렸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던 시간.
무엇을 버리고.
어떤 것을 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것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지만.
이제는 이 여행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이번에도 10년 만인가?"
여전히 유림의 목소리는 친근하고 활기차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와 감정의 톤, 그녀의 경쾌한 웃음과 '선배'라 부르는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호칭은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 중에 하나인 것 같다.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 단지 사이로 작은 모퉁이 꽃집을 찾아간다.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있는 유림의 모습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아왔던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하다.
작은 가게 안으로 퍼지는 꽃의 향기, 생각해 보면 유림은 꽃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왜 꽃이야? 너무 잘 어울리잖아!"
10년 만의 만남, 그 어느 때 그 무엇으로 만나든 상관없는 사람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시원한 커피와 점심을 함께하고, 스무 살의 어느 날처럼 긴 수다가 이어진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꽃, 나에게도 언제나 그대로인 꽃이 한 송이 있나 보다.
언제나 씩씩한.
여전히 게으른 나를 스무 살의 어느날처럼 수다스럽게 만드는 그녀에게 호박꽃처럼 밝은 감사를 드린다.
"얌, 또 한 시절이 지나더라도 너는 그대로 일 테니 그것으로 나는 좋을 거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유림과 대화를 하느라 4시가 훌쩍 넘어간다. 유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그렇다.
"이제 가야겠다."
여행의 마지막 여정, 아버지가 계시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로 향한다.
시간이 늦어 메모리얼 파크의 출입시간에 늦을지도 모르겠다. 기흥역에서 야탑까지 20km 정도의 거리, 탄천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경쾌하게 페달을 밟아간다.
흥건하게 젖어드는 땀, 좁은 야탑천을 따라 메모리얼 파크로 향하고.
5시 반,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도착한다. 출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20km를 내달리고, 언덕을 오르느라 다리에 힘이 풀린다.
5시까지 안내되어 있는 출입시간이지만 몇몇 사람들과 대형 장례차량이 보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 다녀왔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집으로 가자."
뭔지 모를 평온함과 함께 피곤함이 밀려온다.
평촌으로 향하는 경로를 결정하고, 청계산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마지막 오르막 길이 싫다.
"어디 한강변에서 캠핑이나 할까."
"그래도 시원한 맥주가 그립다. 가자, 안양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깨끗한 물이지만 한강 천변의 다리 밑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짠하기도 하다.
낙생대 공원을 지나.
판교의 시내를 인도를 따라 천천히 가로지른다. 퇴근 시간대의 서울 시내 도로는 역시 끔찍하다.
청계산을 넘어가는 초입, 차량들로 꽉 찬 도로를 벗어나 하오개 옛길을 넘어간다.
로드바이크를 타고 지나쳐가는 라이더들을 따라 꾸역꾸역 페달을 밟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청계산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다.
"끝이다!"
라이트와 후미등을 장착하고, 인도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안전하게 안양으로 들어서고.
안양천을 따라 평촌으로 향한다. 저녁 무렵의 안양천에는 산책과 운동을 나온 사람들로 혼잡하다.
"좀비들 같네."
핸드폰만 쳐다보는, 강아지를 모셔가는, 떠드느라 바쁜, 제 갈길만 가는 그리고 힘없는 발걸음의 영혼 없는 사람들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에 뒤섞여 정신이 없다.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 하지만 누구나처럼, 저들처럼 살아가지 말아야지."
평촌역에 도착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먹자골목은 여전히 화려한 조명들로 밝지만 오히려 한산한 풍경이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소주를 사 들고, 누나의 집에 도착한다.
"다 왔네."
시원한 얼음 커피로 갈증을 달래고.
"역시, 집이 좋아!"
센스있게 안주를 사 온 조카 덕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
"너희들만 마무리하면 끝이구나."
630일, 긴 여행이 끝났다.
"괜찮다."
아직 못다 한 여행이 남았고, 하고 싶은 또 다른 바람이 있다.
"언젠가 다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그때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
이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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