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3일 / 맑음 ・ 4도
호르고
계속 이어지는 쌀쌀하고 차가운 날씨다. 돌아오지 않는 서동고의 가족으로 인해 하루를 더 호르고에 머문다.
12시에 돌아온다는 서동고의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국의 이방인에게 집을 맡기고 소식조차 없는 몽골인들의 정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열쇠를 맡기고 갔는데, 돌아올때까지 못 가잖아!"
화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고, 허리가 아파보이는 마뜨가를 위해 넉넉하게 장작을 마련해 놓는다. 가축의 똥들을 모아 연료로 사용하는 남부의 몽골과 달리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라 장작을 쓰는데, 산의 한 면에만 자라는 나무들로 집집마다의 연료 수요가 되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뭘 하지?"
이틀째 보이질 않는 뱀바에게 연락을 해달라 선교사님에게 부탁을 하였으나 뱀바는 출산을 한 아내에게 가 있어 화산에 데려가줄 수 없다고 한다.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고기가 먹고 싶어져, 호텔들과 마트가 있는 거리로 나간다.
슈퍼와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이 있는 건물의 슈퍼로 들어가니 제법 구색을 갖춘 슈퍼이다.
"믹스커피 빙고!"
슈퍼의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전에 먹었던 양고기볶음 요리가 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5,000투그릭이라 알려주는 직원에게 식사를 달라고 요청하고, 한참을 기다려 나온 음식은 그 비주얼이 사뭇 다르다.
"뭐야. 밥에 케찹 찍어놓은 것만 같잖아!"
어쨌든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한 접시를 더 주문하여 깨끗하게 비워낸다.
밥을 먹고 호텔 건물 옆에 있는 작은 가게가 무엇인지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니 가게 안에 있는 젊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손짓을 한다.
"얘네들은 눈만 마주치면 무조건 오라고 하네."
작은 가게는 의자나 액자 같은 생활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와 인사를 하고 번역기로 대화를 하려니 난감함이 밀려 든다. 구글 번역기에 몽골 자판을 설치하고 여자에게 건네준다.
"화산에 가고 싶다. 어떻게 가야 하니? 도와줘!"
이름을 물어보고 번역기로 화산에 가 보고 싶다 말하니 젊은 사람답게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잠시 기다리라고 제스처를 한 안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가이드가 올 거야!"
화산에 가겠다는 나를 데려다 줄 가이드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몰고 키가 큰 젊은 남자가 들어와 영어로 인사를 한다. 세기는 안냐의 남편이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사간느 호수에 자신의 리조트가 있다며 알려준다.
"그래! 사간느 호수에도 가 보고 싶은데. 내일 너의 리조트에 갈 수 있어?"
여름에 리조트를 운영하며 호숫가에서 생활한다는 세기와 함께 호르고 화산을 오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고글과 카메라를 가져가기 위해 서동고의 집에 잠시 들리고.
"사비, 오늘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가자! 30,000투그릭 어때?"
"좋아! 그렇게 하자!"
호르고 화산에서 5km 떨어져 있다는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안내하는데 가이드 비용으로 30,000투그릭을 주기로 한다. 선글라스를 가지고 가야한다며 세기의 집에 잠시 들리고, 세기와 안냐의 어린 아이를 만난다.
"너 정말 이쁘게 생겼구나!"
선글라스를 챙기고 집을 출발한 세기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자며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에 도착하여 아무리 크락션을 울려도 나오지 않던 직원은 도로 건너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타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몽골 사람들의 게으름이다.
10,000투그릭을 주유한 세기는 나에게 주유비를 내라고 말한다.
"야! 기름은 네가 넣어야지! 그래, 못 갈 것 같던 화산에 가는데 형이 넣어줄게."
울퉁불퉁한 흙길, 정확히 말하면 길이 아닌 산길과 초원의 길을 달려 호르고 화산을 지나친다. 호르고 마을에서 보이던 검고 둥글하게 생긴 산이 화산이다.
"사간느 호수에 먼저 가자!"
용암이 흐르며 만들어진 현무암 지대를 지나 큰 언덕을 오르니 얼음이 얼어있는 사간느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웰컴투 마이 게스트하우스!"
잔잔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사간느 호수에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검은 현무암의 돌탑들이 가득하고.
몽골에서 처음 보는 넓은 호수의 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기분이다.
"정말 오랜만에 물을 본다. 바다가 보고 싶다!"
여름 시즌에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사간느 호수에는 음식점과 슈퍼 그리고 작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여름에 이곳에서 선텐도 하고,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한다."
아주 작은 모래사장을 가리키며 세기는 유쾌하고 즐겁게 대화를 이어간다.
"물을 마셔도 돼! 아주 깨끗한 물이야."
세기의 게스트하우스는 나무집과 게르가 한 채씩 들어서 있고, 주변의 다른 펜션들은 게르 모양의 숙소들과 나무집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세기는 이제막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양호 정도의 호수지만 몽골의 내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큰 호수라 세기에게는 애착이 가는 장소인듯 싶다. 몽골 사람들이 홉스굴 호수를 보며 왜 바다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세기, 이리 와!"
세기의 오토바이를 타고 길이 아닌 초원의 산길을 따라 다시 호르고 화산이 있는 입구에 도착한다. 몇몇의 관광객들도 차를 가지고 화산의 입구까지 도착해 있다.
화산의 입구에는 여름에 운영된다는 음식점들의 간의 테이블들이 허름하게 설치되어 있고.
현무암의 자갈들이 펼쳐져있는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간다.
세기와 지나쳐 왔던 넓은 용암지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산을 오르는 자갈길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큰 숨을 몰아쉬던 세기가 잠시 쉬며 사진을 찍어주고.
조금 더 산을 오르니 뭔가 시야가 왜곡되어 착시현상처럼 느껴지는 화산의 분화구가 나타난다. 화산의 입구에서 채 10여 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분화구의 규모가 크거나 넓지는 않지만 쉽게 걸어서 올라올 수 있는 호르고의 휴화산.
몇몇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즐겁게 기념촬영을 하고있고.
처음 보는 화산의 풍경은 생경하고 이색적이다.
"넓은 백두산의 천지나 활화산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슬란드나 솔로몬제도 부근에 활화산이 있다는데 가보고 싶네."
몽골의 관광지라는 곳을 가 보면 조금 실망스런 부분이 없지않다. 불현듯 펼쳐져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중국의 자연과는 달리 주변에 펼쳐져 있는 초원과 아름다운 산들의 곡선 그리고 하늘과 구름의 어우러짐 등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갖은 몽골이라 그런 것 같다.
초도트쏨의 협곡, 사간느 호수 그리고 호르고의 화산까지도 그저 초원의 일부분으로 느껴질 뿐, 감탄을 자아낼만큼의 절경은 아닌 것 같다.
"역시 몽골은 초원이네!"
화산을 내려가자고 하니 신이나서 휘파람을 부는 세기를 보며 그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몽골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갖고 있는지를 세기는 알까?"
선교사님의 말처럼 대자연을 품고 있고, 수많은 광물 자원을 갖은 인구수 300만명의 몽골이 이처럼 못 사는 것도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화산을 내려오는 초입에서 캠핑카를 세워두고 뭔가를 하는 외국인 부부를 만난다. 4개월 동안 터키와 이란,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몽골에 왔다는 프랑스의 노부부다.
작은 캠핑카를 타고 짧게 각 대륙들을 여행하는 프랑스 부부는 몽골에서 러시아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명함을 건네주고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는 지도를 꺼내들고 펼쳐보이며 우수아이아에서 멕시코로 이어지는 길들을 추천해준다.
"이 길은 정말 환상적이야! 너의 루트는 잊어버리고 이 길로 가라. 정말이야! 판타스틱!"
남미 대륙의 끝자락 우수아이아에서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과 파라과이로 이어지는 코스는 재미가 없다며 칠레의 고산지대를 따라 칠로에섬과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해 준다.
"나는 자전거라고!"
"너의 루트는 잊어버려!"
여러 번 칠레의 길을 따라 여행을 하라고 알려주는 프랑스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작은 캠핑카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세기! You can do it. With your wipe."
듣는지 마는지 세기는 자전거는 느리다며 오토바이를 사라고 웃으며 떠들어 댄다. 짧은 가이드를 하며 용돈을 번 하루가 무척이나 신이난 모양이다.
안냐의 가게로 돌아와 세기에게 맥주를, 안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신다.
"보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이를 데려온 세기는 자신의 아이를 가리키며 남자애라고 알려준다.
"여자 아니였어?"
자세히 보니 안냐와 많이 닮은 남자 아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는 안냐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니 세기가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조르노크에서도 그랬지만 몽골의 젊은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내밀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젊은 여자가 가슴을 까고 젖을 물리는 모습이 낯부끄러운지라 피해주려고 했던 것인데.
세기네 가족과 헤어지고 서동고의 집으로 걸어가는 중 승용차가 멈춰서며 차량 안에서 오도덕이 밝게 인사를 한다. 언제나 가슴팍에 술병을 숨기고 있는 오도덕은 술병을 꺼내들고 능글맞게 웃으며 서동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서동고의 집에 도착하니 대문이 약간 열려있어 사람들이 돌아왔나 보다.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니 처음보는 중년의 남자가 술에 취해 햇볕이 드는 현관에 기대어 앉아 있다.
"누구신지?"
잠시 그 사람의 곁에 앉아 햇볕을 쬐는 동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에 취한 마뜨가의 아내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온다. 열쇠가 잠겨있어 다른 집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마뜨가의 아내를 침대에 눕혀논 여자들은 아침에 잘라놓은 장작들을 가져와 능숙한 손길로 잘게 잘라낸 뒤 쉽게 불을 피운다.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술이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말로 계속해서 말을 걸어와 불편하게 만든다.
"정말 너희들 대책이 없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호텔에 가서 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나 호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돌아올게."
잠시 후 들어와 침대에 쓰러진 마뜨가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화로에 장작들을 더 넣어주고 한 무더기의 장작을 화로 옆에 놓아둔다. 그리고 도끼질을 하여 장작들을 충분하게 쌓아두고 서동고의 집을 빠져나온다.
아침을 먹었던 호텔을 지나 건물의 모양이 조금 괜찮은 곳을 들어갔지만 호텔의 직원을 찾을 수가 없다. 1층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호텔에 대해 물으니 슈퍼의 여자가 전화를 걸어 호텔의 직원과 통화를 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다시 짐들을 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중국에서 물건들을 가져와 팔고있는 보따리 장수 같다.
내일 떠나며 서동고에게 선물할 예쁜 모자를 5,000투그릭에 사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의 종업원에게 가장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니 무언가 번역기에 적는데 철자가 틀렸는지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래, 이것으로 줘!"
한참 후에 나온 음식은 아침에 먹었던 메뉴와 같은 양고기볶음이다.
"아놔! 정말 센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하하하."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 접시를 더 시켜 배를 채우고, 호텔을 가리키며 숙박비를 물어보니 25,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20,000투그릭이라고 하던데. 아냐?"
식당의 여자가 호텔을 왔다갔다하며 가격을 조정하는 사이 퇴근을 하던 안냐가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너무 술을 많이 마신다. 오늘은 호텔에서 잘려고 해."
안냐는 자신이 아는 곳이 있다며 15,000을 적어 보여주고 따라오라고 한다. 안냐가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식당 옆에 있는 슈퍼다.
오늘 아침부터 묵뚝뚝하게 말을 건네는 아저씨와 몸짓으로 농담을 하던 슈퍼에서 호텔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아저씨, 히뜨웨?"
"20,000투그릭!"
"아니 이 동네는 무슨 숙박비가 고무줄이야?"
안냐는 2층에 있는 방을 안내해 주고 인사를 하며 돌아간다. 나무로 짠 작은 침대와 나무 테이블이 전부인 호르고의 호텔.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 거야?"
호텔의 화장실은 뒷마당에 재래식 화장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슈퍼의 아저씨에게 내일 아침 오픈 시간을 물어보니 8시라고 알려준다.
출발 전 사용기간이 끝나는 핸드폰의 데이터를 충전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면 될 것 같다.
"내일은 정말 이곳을 떠나야겠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몽골(19.04.14~07.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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