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항을 떠난 배는 아침 7시 맞춰 제주도항에 도착하였다. 비가내린 후의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제주.
이동거리
261.84Km
누적거리
1,916.97Km
이동시간
11시간 12분
누적시간
110시간 25분
여수항-제주항
차귀도
183Km/5시간 12분
79Km/6시간 00분
여수항
제주항
모슬포
1,917Km
1시 40분에 출항하는 제주도행 골드스텔라호를 승선하기 위해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대기하였다. 추적 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제법 겨울비처럼 내리기 시작하였다.
패니어와 짐들을 다시 정리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콘센트가 있는 대기실의 좌석에서 전자기기의 충전과 함께 여행의 기록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11시가 다가오자 조금씩 여객선 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였다. 매표가 시작되어 제주행 골드스텔라호의 3등 객실 승선권을 구매하였다.
12시 40분. 승객들의 승선 전 화물차량의 선적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자전거를 끌고 차량들이 여객선 후미쪽 화물칸의 입구로 이동하였다.
화물칸의 입구쪽에 자전거를 기대어 움직이지 않도록 세워두었다. 제주도 여행을 가는 어르신들의 자전거가 함께 실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화물칸에 넣어두고 다시 여객터미널의 대기실로 들어왔다. 20여 분이 지나자 승선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선권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여객선의 승선이 시작되었다.
2층의 화물칸을 지나 객실로 오르는 계단 통로로 사람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3층 일반객실들과 4층의 우등객실이 나왔다.
울릉도의 고속 여객선과 달리 일반 객실은 넓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 객실이나 편한 곳에 자리하면 된다. 콘세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를 보는 순간 "이건 뭐지?" 하였다. 3구짜리 콘센트였다.
자리잡은 곳에 무릎 담요와 여행 안내 책자를 놓아두고 여객선의 내부 구경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3층은 매점과 식당이 들어서 있다. 메뉴들을 보니 가격들이 만만치 않다.
객실 중앙의 원형 계단으로 우등 객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티비가 설치되어 있는 휴게실은 어르신들의 개인 침대로 변하였다.
오락실과 안마의자가 놓인 휴게실. 역시나 안마의자들을 어르신들의 차지가 되었다.
노래방과 보드 게임장 같은 곳도 있었다. "별개 다 있네."
3층으로 내려와 매점에서 맥주와 오징어구이를 사서 심심한 입을 달래었다. 시원한 맥주맛이 좋았지만 조금씩 피곤이 밀려 들었다.
객실 자리로 돌아가 잠깐 잠이 들었다. 커다란 골드스텔라호의 규모에 비하면 승객의 수가 많은 편이 아니여서 편안하게 쉴 수가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어 여객선은 제주항에 도착하였다. 3시간 남짓 잠들었던 탓인지 몸이 무거웠고 피곤하였다.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는 여객선의 운행시간은 제주 여행을 하는 시간에 있어서 좋을 것 같지만 바로 잠들지 못한다면 피곤하여 오히려 제주도 여행을 하는데 장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선 전, 미리 자전거를 놓아둔 화물칸으로 이동하여 화물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나를 비롯하여 자전거를 먼저 안전하게 내리게 한 후 차량들이 움직였다.
제주도 배편의 결항으로 생긴 여수에서의 하루. 여러 고민끝에 돌산도를 일주하기로 결정했다. 낭만거리에서 만났던 어르신께서는 화양면쪽을 일주하라 추천해주었는 조금 짧은 거리를 라이딩 하고 제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해양도시 여수가 아닌 섬의 여수를 만나러 간다.
이동거리
68.26Km
누적거리
1,655.13Km
이동시간
6시간 35분
누적시간
99시간 13분
거북선대교
돌산대교
42Km/4시간 24분
26Km/2시간 11분
여수신항
돌산항
엑스포항
1,655Km
6시 30분, 7시의 알람을 미루고 여분의 잠을 청하였다. 뭔가 꿈을 꾸듯 피곤하게 깨인 아침 8시 10분. 텐트안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고, 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이는 것이 보였다. 밤이슬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텐트, 안과 밖의 온도차에 의해 방울져있는 물방울들.
침낭의 외피가 눅눅하게 느껴졌다. "언제 딱지.." 생각하며 따듯한 침낭안을 벗어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패니어에 물건들을 정리하고, 갈수록 부피가 줄어들고 있는 침낭을 돌돌말아 정리한다. 하루일정의 여유가 있어 물기를 잔뜩 먹은 텐트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떠오르는 태양빛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말리며 한가로운 아침을 시작하였다.
거북선대교를 넘어 돌산도를 일주할까, 여수시청을 지나 화양면을 일주할까 고민하다 제주도 일주를 위해 조금 편안한 라이딩을 하고싶었다. 이순신대로로 이동하여 어제 넘지못한 거북선대교를 넘었다.
거북선대교 옆, 돌산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카. 내가 케이블카를 타본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딱히 흥미는 없다.
거북선 대교를 넘어, 어제의 건너편 모습이 궁금하여 77번 국도를 벗어나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키조개 양식업을 하는 듯 버려진 패각들.
대형화물선을 정비하는 곳인지 건조하는 곳인지 알수없는 여수해양. 가까이서 보니 위압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크기였다. 조금더 지나니 이번에 어선을 정비하는 허름한 작업장이 나왔다. 길건너 아주 오래된 목선같은 배들이 판자촌처럼 올려져있었다.
뭔가를 두들기는 망치소리가 쿵쿵 울려나왔다. 순간 원피스의 메리호를 고치기 위해 쿵쿵거리며 망치질을 하던 메리호의 영혼 장면이 생각났다.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풍광이였고, 해안길이라는 좋은 자산을 방치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는 짧은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방파제가 나오고 길이 끊겨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섰나" 생각하며 방파제에 올라 잠시 쉬며 길을 찾았다. 동네의 작은 마을길을 따라 이동하면 다시 77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마을길을 업힐을 하기에 엄두가 안나는 경사로였다. 자전거를 끌며 여러번 멈추어 숨을 쉬었다. "섬에서 길을 잘못들면 혹독한 시련이 찾아와" 생각하였다.
오동도 팬션 앞, 힘들게 끌바를 이어가는 나를향해 길을 지나던 어머님이 "머를 그리 많이 실으셨오?" 하며 웃으셨다.
길가 주변 피어오른 소국, 나는 이 꽃을 가장 좋아한다. 각양각색의 색깔들과 소박한 향기 그리고 풀냄새 진한 가을의 꽃을 참으로 좋아한다. 끌바의 와중 한손에 카메라를 들고 휘청이는 자전거를 지탱하고서 "너만은 놓칠수 없지"
포장조차 제대로 되지않은 길을 오르고 마주한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 오래된 소나무보다 시골 작은 마을의 사거리까지 신호없는 로터리길로 만들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소나무 사이 작은 평상이 2개 넣여있어 잠시 쉬려고 하다 소나무 밑둥에 소주와 막걸리가 뚜껑만 따진체로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주라도 올린 것일까.
어렵사리 다시 들어선 77번 국도를 조금 달리다 다시 해안으로 빠지는 길. 다시 길을 헤매일 것 같은 마음에 조금 망설이다 "고니"라는 단어에 혹하여 굴전리로 향하였다. 물론 고니는 볼 수 없었다.
마침 굴을 수확하는 어선을 만났다. 통영에서 보았던 가리비를 엮은 무더기가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였는데, 가리비 패각에 굴들이 붙어있다.
역시나 안굴전방파제를 끝으로 길을 없었다. 피로가 급하게 밀려들었다. 길을 돌아 몇몇개의 펜션을 끼고 이어지는 업힐길 그리고 긴 끌바의 길 끝에 핀란드의 아침 펜션앞 멀리 무슬목해변이 펼쳐졌다.
무슬목해변 앞, 해양수산과학관이 보였다. "시간도 많은데 구경해볼까"
자동티켓 발매기 앞에서 숨을 돌리던 중 한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다. "자전거를 타는 멋진분이 누군가했더니, 선생님이셨네요" 하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과학관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까지 이어진 커다란 수족관이 세워져있었다.
새벽 4시 30분, 간밤에 울린 카톡알림으로 잠이 깨고 말았다. 여수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은 새벽 1시 40분에 출발한다. 광양에서 여수까지 광양만을 돌아 70Km의 거리를 이동하여 여수 일주를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거리. 그렇다고 여수를 그냥 지나쳐 가기엔 여수가 무척 궁금하였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출과 함께 출발하여 광양에서 여수로의 다이렉트 이동경로 이순신대교를 넘어 묘도를 넘기로 결정하였다.
이동거리
48.01Km
누적거리
1,586.87Km
이동시간
5시간 45분
누적시간
92시간 38분
이순신대교
오동도
27Km/2시간 15분
21Km/3시간 30분
광양
신덕해변
여수
1,587Km
서리가 내려앉은 아침, 텐트의 주변에 커다란 가족용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제밤 잔디밭을 뛰어놀던 아이 가족의 캠핑용 텐트 같았다.
여수로 넘어가는 이순신대교를 넘기위해 멀리 보이는 대교의 교통량을 확인해보고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였다. 제주로 넘어가기전 여수에서의 시간을 조금더 보내기 위해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를 다이렉트로 넘을 생각이다.
광양만을 돌아 내륙으로 이동하는 경로보다 40Km 정도의 거리가 줄어들어 여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광양제철소의 뒷편으로 떠오르는 태양빛이 여느 해안 일출의 붉은 빛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공단의 하얀 증기들 사이로 붉게 피어오르는 도시의 아침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차량의 통행이 많아지기 전 이순신대교를 넘기위해 서둘어 이동하였다. 바다위 80미터 높이로 광양에서 묘도까지 이어진 2.3Km의 이순신대교는 위압감이 느껴질만큼 웅장하였다.
"이순신대교 주탑은 높이가 270m로 서울 남산(262m)과 여의도 63빌딩(240m)보다 높고, 세계 최고인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254m)’보다도 16m 높다. 또 2개의 주탑 사이인 주경간장의 길이는 1,545m로 국내 최장이자 세계에서 일본의 아카시대교(1,990m), 중국의 시호우먼교(1,650m),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1,624m)에 이어 네 번째다. 1,545m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을 뜻한다."
이른 아침 많지않은 차량의 통행과 넉넉한 갓길로 인해 큰 무리없이 이순신대교를 넘어설 수 있있다. 사진을 찍기위해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니 오싹한 상하의 출렁거림이 느껴졌다.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이순신대교는 경찰고시에 의해 이륜차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 자전거를 이용해 넘지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순신대교를 넘어 묘도에 들어서자 여수의 경계를 알리는 안내와 묘도휴게소가 눈에 들어왔다.
휴게소에 들려 잠시 아침을 해결하려다 바로 이동하였다.
묘도와 여수를 잇는 묘도대교를 넘어서자 동그란 이글루들처럼 모여있는 여수의 석유화학단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풍경스러운 석유화학단지를 지나 선덕해수욕장에서 잠시 쉬었다. 해수욕장이라기 보다는 검은 갯바위들이 들어차 있는 해변에 가까웠다. 캠핑과 낚시를 하는 사람들 사이로 갯바위에 올라 남해에서의 남은 치킨 몇조각을 마저 해치웠다.
내가 본 해수욕장 중 가장 작은 모레해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앙증맞기까지한 해수욕장의 갯바위에 앉아 바다건너 남해의 해안면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여수항으로 향하는 잿몰랑고개와 두여개의 고갯길을 넘어 만성리 검은모레 해수욕장을 지났다. 통영일주에서 섬해안의 고갯길들에 익숙해진터라 웬만한 고갯길들은 그저 무심하게 넘어간다.
검은모레 해수욕장을 지나 오르던 고갯길의 나무테크 밑으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들이 들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소리가 들리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레일바이크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무테크가 끝나는 지점, 울릉도에서 보았던 신호등이 달린 미래터널이 나타났다.
꽤 길어보이는 터널에는 잠시 정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마주오는 차량을 피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갱도를 뚫은 그대로의 투박한 암석면을 드러낸 터널은 밝은 조명과 간접조명을 이용하여 멋을 내었다.
미래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자 좌측으로 여수 엑스포 광장이 바로 보였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엑스포역은 밝고 경쾌하여 약간의 흥분감을 주었다.
엑스포역의 관광안내소에서 여수관광지도를 집어들고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이순신대교를 넘어 이른 시간 여수에 도착할 수 있어 여수를 여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새벽 1:40분 제주도로 향하는 한일고속 골드스텔라호. 예상했던대로 터미널은 텅텅 비어있었다. 출항시간과 배편의 요금등을 확인하는 사이 안내데스크에 놓인 정기휴무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그러니까 내일이 휴무면 오늘 배가 없다는 거야?"
제주행 여객선이 출항하는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여수를 둘러보고 제주로 향하려던 일정이 틀어지고 말았다. 우선 터미널의 2층에 위치한 한일고속의 사무실에 들려 다음날 출항하는 배편의 잔여표와 일정 등을 문의하였다.
"모레 새벽에 출항하는 배편을 예약하고 싶은데요?"
3등객실을 예약하고 싶다하니 2, 3등 객실이면 여유가 많아 당일에 현장구매 하셔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2등과 3등 객실의 차이를 물으니 수용인원수와 객실의 카펫같은 것이 조금 다르다고 웃으면서 안내해주었다.
조금 생뚱맞은 새벽시간의 출항은 이른 아침 제주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야간운행을 하는 것 같았다. 저가항공과의 경쟁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할터 자기차량으로 제주도를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장점이 되겠지만 저렴하고 편리한 렌트카 등의 서비스가 있어 그것이 경쟁요소가 될지는 의문이였다.
"새벽에 떠나 무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좋기는 하겠는데, 배를 타고 왕복 12시간이 넘는 시간이 비효율적이네."
넉넉한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생각에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의 판단도, 무엇을 할 것인지 행동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따듯한 날씨, 밝은 도시의 분위기와 유쾌한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오늘은 여수 시내를 둘러보고, 내일 느긋하게 여수를 일주해보자."
오동도의 관광 안내판을 바라보며 "오동도, 오동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동도에나 가볼까?"
오동도를 가르키는 안내판을 따라 도로를 이동하던 중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거리 낙원식당에 들어갔다. 갈치조림정식을 시키니 2인 상차림이라 게장정식만 된다고 하였다.
"네. 게장정식으로 주세요."
풍성한 밑반찬과 함께 꽃게장과 간장게장 그리고 된장국물의 꽃게탕이 이내 테이블로 내어졌다. 무언가 잘못 주문한 것인지 한번더 메뉴판을 확인하고서 "뭐 가격을 떠나 전라도에 들어왔구나!" 하였다.
점심을 먹으며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건지 고민할 정도의 넉넉하고 맛깔나는 상차림이었다.
한 공기, 두 공기, 세 공기째를 비우고서야 식사를 마쳤다. 싱싱한 꽃게의 맛도 즐거웠지만 손이가는 모든 반찬들이 하나같이 입맛에 맞아 좋았다.
"통영에서 나는 무엇을 먹은 것인가?"
한 공기의 값은 빼주는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건너편 공원에 드러누워 봄날의 따듯함처럼 느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늘어지게 한 숨 자고 싶어지는 날이네."
푸짐한 게장백반 여수 남원식당
원초적인 배부름의 만족과 시간의 여유 그리고 너무나 좋은 날씨, 모든 것이 좋았다. 길게 이어지는 관광버스의 줄을 따라 오동도로 향하였다. 오동도를 잇는 오동도 방파제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차량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마주한 거북선. 통영, 남해, 여수까지 이어지는 거북선의 모형들이다. "제법 그럴듯 하네."
그리고 음악분수대. 편안한 선율에 맞춰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1Km 정도의 오동도 방파제 길을 오가는 동백열차.
특별한 무엇가가 있거나 자극적인 아이템들이 즐비한 관광지처럼 느껴지기보다 동네 주변의 큰 광장이나 공원처럼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돌산대교를 구경하기 위해 자산공원을 돌아 해안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통영과 남해에서 보았던 케이블카가 자산공원과 돌산공원을 이어 거북선대교의 옆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거북선대교의 아래 하멜전시관과 빨간색 하멜등대를 확인하고 이동하였다.
14년 동안 억류되어 노역 등으로 갖은 고초를 겪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하멜의 자취를 기념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했다. 동인도 회사에 대해 14년간의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기록했다는 하멜 표류기는 읽어보지 못하였으나 서양에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료적 중요성보다 그가 느꼈을 인간적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돌산대교를 가기위해 여수해양공원과 종포해양공원으로 이어지는 낭만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낭만거리에는 공원내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시간들이 느껴졌다.
공원의 산책로를 걷고 사진을 찍고 밝은 표정으로 시간을 즐기는 이들에게서 알 수 없는 행복감이 전해지는듯 하였다.
여수 연안여객선 터미널과 수산시장을 지나 작은 언덕을 올라 도착한 돌산대교의 팔각정은 장군도와 돌산도 그리고 여수의 앞바다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다.
돌산공원에 올라 주변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돌산대교를 넘어 돌산공원으로 향하였다. 자전거 도로가 있어 편안하게 돌산대교를 넘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들로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잠시 교통흐림의 꼬여버린 삼거리의 교차로에서 주저하며 주춤하는 사이 신호등을 건너라며 손짓을 해주는 운전자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서야 겨우 건널 수 있었다. "아니, 왜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는거야?"
돌산공원길을 따라 이어진 나무테크, 전망이 좋은 곳이란 안내처럼 넓게트인 여수의 풍광이 살랑이는 바람처럼 너무나 좋았다. 멀리 이글루처럼 바다위에 떠있는 것을 가르키며 양식장이라 알려주는 다른 여객들의 대화에 "양식장이 참 독특하게 생겼다" 생각하였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해상낚시터였다.
여수 돌산공원내 전망이 좋은 곳
공원내 높이 세워진 기념탑이 있어 궁금하여 다가서니 돌산대교 준공기념탑이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보면 대단한 기념탑인줄 알겠다."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 낭만거리 도착하였다. 이순신광장에서는 문화공연 같은 행사가 진행중이였고, 낭만거리의 측면으로 빨간지붕의 포장마차들이 분주하게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로변의 카페에 들려 노트북 자료들을 정리하는 사이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들과는 달리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사람들로 채워져 북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의 우중 라이딩으로 인해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의 나른한 게으름을 뒤로하고 남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여수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강한 바닷바람이 나를 밀어내었어지만 계획된 여정이 없는 여행자에게 그것또한 땀을 식히는 시원한 여유로 다가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조금더 천천히 갈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동거리
86.73Km
누적거리
1,538.86Km
이동시간
7시간 27분
누적시간
86시간 53분
죽방해안길
하동
55Km/4시간 51분
31Km/2시간 36분
남해
남해대교
광양
1,539Km
편안하고 좋은 아침이였다. 비가 지나간뒤 바람결에 남은 풋풋한 비냄새와 혼자만의 시간, 되돌아가 처리해야할 정해진 일들이 없다면 며칠쯤 머물고 싶은 편하고 느긋한 시간의 유혹이였다.
"꿈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
따듯한 속소의 온기에 비에 젖었던 옷가지와 신발이 뽀송하게 말라있었다.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다 몸을 일으켜 여수를 향해 출발하였다.
남해대교를 넘어 남해의 남동방향을 돌아 사천으로 이동했던 지난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북동방향을 돌아 남해대교로 이동할 것이다. 목적지는 여수로 넘어가는 광양시.
나폴리 모텔을 나와 얼마지나지 않은 곳에 멸치쌈밥 남해밥상이 보였다. 통영에서부터 변변한 식사를 못한터이라 아침부터 출출함이 밀려와 자전거를 멈추고 가게안을 살피었다.
이내 여자 주인이 나를 보고 "아직 식사준비가 안되었어요." 하였다. 숙소 주인이 건낸 컵라면과 지난 저녁은 먹다남은 치킨을 패니어에 넣어두었다는 심리적 든든함이 있어서인지 괜찮다 싶었다.
오히려 24시간 다를것 없는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습관이 불편하다 생각되었다.
길가의 왕후박나무, 지나온 길들에서 마주했던 고목들과는 다르게 짙푸르게 풍성한 나뭇잎을 넓게 펼쳐놓았다. 받침목이 없다면 지면까지 닿을 것 같은 가지의 풍성함이 마치 동굴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남해 대벽리 단항왕후박나무
남해의 안쪽 바다를 품은 창선도의 1024번 지방도로는 큰 오르막 없이 잔잔하게 이어졌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의 풍경이 낯설다 생각되었다. 해안면에 인접되어 있는 논과 밭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이 다른 섬들의 해안들과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딱히 개울이나 수로시설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농업용수를 마련하는지 궁금하였다. "자연 강수만으로 농사를 지으시는가?"
사포항의 방파제에 앉아 잠시 쉬었다. 발을 내리면 바다물에 담길 것 같은 낮은 방파제에 부딪치며 찰랑거리는 파도소리가 좋았다.
남해 본섬으로 넘어가는 창선교 부근에 이르자 대나무와 말뚝을 부채꼴 모양으로 박아 만들어 놓은 죽방렴들이 보였다.
창선도 주변에서 볼 수 없었던 빠른 유속의 바다 가운데 놓인 죽방렴들. 창선교를 넘어 가장 먼저 멸치쌈밥집을 찾았다.
남해 해안도로로 들어선 코너의 첫번째 식당 손도죽방장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식사되죠?"
비가 내리는 날씨, 하루종일 비예보가 있어 통영에서 스테이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각하다 오전내 강수량이 미미하여 그냥 달려보기로 했다. 예상에 없던 통영에서의 시간으로 인해 제주도로 넘어가는 일정과 여수에서 보낼 시간들이 빡빡하게 느껴졌다. 일단, 사천(삼천포)까지만 가보자.
이동거리
62.35Km
누적거리
1,452.13Km
이동시간
4시간 59분
누적시간
79시간 26분
고성
삼천포대교
45Km/3시간 30분
17Km/1시간 29분
통영
사천
남해
1,452Km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는 비예보는 저녁 9시가 조금넘어 투두둑 투두둑 텐트의 지붕을 때려댔다. 급히 짐들을 정리하고 숙소를 잡기위해 통영항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큼 더 어두워지는 통영의 거리, 여전히 마음에 들지않는 도시의 침울함이다. 서호시장 건너편 통영여객선 터미널의 주차장을 살펴보고 비를막고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5mm가 안되는 빗줄기에 숙소를 찾는다면 더 긴여행에서 수많은 날씨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까 생각하였다. 주차장의 쉼터와 터미널 입구의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터미널 입구의 공간은 턱이 있어 비가 흘러내리지 않고 주위가 막혀있어 비바람도 막을 줄 수 있어 좋았지만 새벽녘 주변 섬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다면 사람들의 간섭을 받을 것 같았다.
터미널 건너편 소문난 3대 할매김밥집의 불빛이 켜져있는 것을 확인하고 충무김밥 2개를 주문하였다. 점심에 먹은 부실한 충무김밥이 아무래도 이상하여 한번더 먹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몇시쯤 여객선이 다녀요?"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첫배는 4시 30분에 출발하였다. 터미널 입구의 공간에 텐트를 치기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터미널 주차장의 지붕이 있는 쉼터에 텐트를 치고 내리는 비는 막았지만, 지면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아침까지 시간당1mm 내외의 강수량을 확인하고 그정도면 지면에 젖어들어 흘러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안심하였다.
다시 먹어본 충무김밥에는 오징어무침이 들어있었지만 꼴뚜기 같은 것이 함께들어 있어 쓴맛이 느껴졌다. "이것도 아닌데.. 아니야"
이른 아침,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주차장 지면을 적셔놓았을 뿐 다행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여객터미널에 들려 간단히 세면을 하는사이 내리던 빗줄기는 잠시 멈추었다.
안개에 싸인듯 뿌옇게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고 일기예보를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12시까지 비는 내리지 않고 1~3시부터 5~10mm의 강수예보였다. 어찌됐든 몇시간동안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았다.
통영에 머물며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였지만 이틀간 통영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여수로 향하는 길, 비가 내리기전 사천까지 이동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비가오면 고성읍까지 가서 일찍 쉬자"
흐린날의 출근시간, 고성으로 가기위해 원문고개로 향하는 복잡한 도로길. 한두개의 언덕길을 지나야했고, 신경질적인 크락션 소리를 들으며 어수선한 도로를 달려야했다. "여유가 없는 동네인가? 불편한 동네네!"
원문고개를 넘어 고성으로 향하는 14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였다. 고성에 들어서며 차츰 줄어들던 차량던 통행량들과 충분한 국도의 갓길은 통영도로의 스트레스를 잊게해주었다.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않던 날씨는 고성읍의 경계면을 들어서자 가는 빗방울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비구름이 고성에서 통영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조금씩 거세지는 빗속을 20여분 달리고 고성읍내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자전거를 세웠다.
신월IC의 고가도로 밑에서 비를 피하며 이내 멈출 것 같지않은 날씨, 길건너편으로 보이던 국밥집에 들려 점심을 해결하며 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신호등을 건너 들어선 황소국밥집은 불이 껴진 채 임대문의의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빗속 라이딩에 젖어있던 몸은 자연스레 긴 탄식을 뱉어내었다. "아.."
다행히 옆건물에 간단한 식료품을 함께 파는 낚시마트가 있었다. 따듯한 난로가 놓인 마트안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손을 부벼대었다. "아.. 춥다!"
흐린날씨에 뜻하지 않은 방문객, 비에 젖은 라이딩복장의 낯선 손님에 대한 약간의 놀람과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낚시 용품들이 어수선하게 놓인 매장의 안으로 라면같은 간단한 식료품을 팔고있었다.
컵라면과 구은계란 1줄을 손에들고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찾았다. 생뚱맞은 표정의 여자는 먹고갈 것인지를 묻더니 "물은 따로 안주는데, 저기서 받으세요" 하였다.
난로위에 놓인 커다란 주전자를 가르키자 벽쪽에 놓인 정수기에서 받으라 안내하였다. "뭐가 저리도 불만일까?" 생각하였다.
통영에 도착하여 곰장어를 굽던 사내와 한적한 식당안에서 무신경하게 티비와 핸드폰을 하던 성게비빔밥집 종업원 그리고 울쌍을 짓는듯한 표정의 여자까지. "뭔가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이며 불쾌한 느낌이야."
웃음기없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있는 감정을 누르며 타인을 불편하게 했던 지난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한조각, 꼭 한조각만큼의 여유가 왜그리도 없었을까?" 생각하였다.
"웃는 사람이 되고싶다."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고성읍까지의 거리, 주변의 숙소 등을 검색하였다. 이동을 할 수 없이 비가 계속된다면 폐업을 한 황소국밥집의 계단위나 신월IC의 고가밑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낼 생각이였다.
다행히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빗줄기는 가는 이슬비처럼 주춤하여 가까이 고성읍내까지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고성읍에 도착하여 길을 헤매는 사이 굵은 빗줄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따듯한 커피 한잔으로 젖은 몸을 녹이며 고성에서 머무를 것인지 빗속 라이딩으로 사천까지 갈 것인지 고민하였다. 30여분이 지나도 빗줄기는 잦아들 것 같지 않았다. "몸에 냉기가 오를정도 추위는 없으니 사천까지 가보자."
패니어에 들어있던 우비를 꺼내입고 사천까지 가장 짧은 거리의 33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였다. 여행전 천냥마켓에서 구매해둔 고급 땡땡이 우비.
비를 맞으며 달리는 라이딩이였지만 춥지는 않았다. 오르막과 간간히 이어지는 맞바람속에서 땀을 배출해내지 못하는 비닐 우비탓에 등과 가슴으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헬멧을 때리는 빗줄기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더운 땀방울 그리고 천천히 젖어드는 신발의 축축함을 동시에 느끼며 페달링을 이어갔다.
빗속에 침낭과 텐트가 젖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짐받이의 하단에 비닐봉지를 깔고, 위쪽을 바람막이로 덮어두었다. 여행전 주문해 놓은 렉용 패니어 가방이 늦게 도착하여 사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상리면 삼거리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1016번 지방도로 빠져나왔다. 33번국도의 이동은 차량이 통행이 많지않고 넓은 갓길이 이어져 나름 편안한 이동이였지만 간간히 지나치는 화물차량이나 대형차량으로 자전거가 빨려들어가는 듯 휘청거림의 불편함이 있던터였다.
한적한 도로변에 연꽃공원이 있어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마을앞 논들의 한가운데 펼쳐진 너른 연꽃밭 상리연꽃공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계절이면 그 향과 색깔이 얼마나 고울까 생각하며 연꽃공원의 사이사이 산책로와 연꽃밭 한가운데 올려놓은 정자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그려보았다.
"어둠이 찾아든 초여름의 밤, 그윽하게 퍼져오는 연꽃의 향과 짙어져가는 여름의 정취속에서 한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성 상리연꽃공원
상리면을 지나 1016번 지방도는 비구름이 산을 타고 넘어가는 깊은 산속으로 길을 안내하였다. 비가 멈추고 차량의 통행이 사라진 산길의 고요함과 한껏 깊어진 늦가을의 파스텔빛 얼룩들을 타고넘는 하얀 비구름의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놓았다.
얼음골공원에서 잠시 휴식하였다. 커다란 저수지와 계곡을 두고 캠핑을 할 수 있는 팬션처럼 보였다.
"이렇게 넓은 저수지가 사유지라니. 어쨌든 운치있네."
시간의 멈춤, 적막하고 고요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산길에서 뜻하지않은 여행의 작은 행복감을 느꼈다.
사천으로 향하는 낮게 이어지는 1016번 지방도를 따라 사천시에 들어섰다.
농촌마을의 작은 읍내처럼 낡은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사천시 변두리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사천시로 향하는 길이 경쾌하였다.
도착의 기쁨과 함께 허기가 밀려와 삼천포항 주변의 음식특화거리로 이동하였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어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를 잡기에 편하겠다 생각하였다.
먼저 주변 노산공원에 들려 시간의 여유를 부리며 비가 그친 삼천포의 해안을 구경하였다.
오래된 옛노래가 레코드판의 잡음과 함께 나즈막히 울려퍼지는 노산공원의 해안 테크길.
8년전 전국일주를 하며 하룻밤 머물렀던 숙소를 찾았지만 조금 변해버린 거리탓에 그때의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남해를 힘들게 돌아 해가 떨어진 삼천포대교를 넘어왔을 때 친절하게 맞아주던 좋은 기억이 있던 곳이였는데 아쉬웠다.
몇몇의 회집들이 도로면에 있을 뿐, 음식특화거리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한시간정도 주변을 헤매며 숙소와 음식점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천천히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숙소를 잡기위해 어플을 켜고 저렴한 모텔과 후기등을 살펴보고 두곳에 전화를 걸었다.
체크인 가능시간까지 한시간이 넘게 남아있는 곳은 패쓰. 바로 체크인이 가능한지 묻고 위치를 물으니 삼천포대교 근처라고 안내하며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예약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지도앱을 켜고 숙소의 위치를 확인였다. 삼천포대교 근처의 숙소라 생각했던 숙소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남해에 위치한 곳이였다. "헉.. 사천이 아니구 남해잖아."
예약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다시 걸어 위치를 묻다 어차피 내일 넘어갈 곳이니 그냥 가자싶어졌다. "근데, 식사를 못해서요. 주변에 음식점이나 식당은 있지요?"
"네, 바로 가까이 회집이며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습니다." 너무나 경쾌하게 답하시는 여사장님의 목소리에 싱거운 질문을 한 것처럼 머쓱해졌다. 언제 올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거리가 멀어져 1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다 답해주었다.
남해와 사천을 잇는 다리는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4개이다. 지난 전국일주때 해가 떨어진 어두운 초행길에 계속 이어지는 대교들을 넘으며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자전거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자전거길. 패니어에 다리의 난간들이 걸리지 않을까 조심조심 조향을 하며 대교들을 넘었다. "조금만 더 인심을 쓰지."
일관성있게 좁은 자전거길. 날이 좋고 무거운 패니어가 없다면 차도로 이동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창선대교를 마지막으로 남해군으로 들어섰다.
창선대교의 주변 바다를 향해 들어선 숙소에 도착하였다. 패니어와 짐들을 숙소의 입구에 내려놓고 안내데스크에서 호출을 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조금전 전화를 받았던 여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잠이 일이있어 외부에 나왔다 하였다.
안내데스크에 놓아둔 열쇠를 집어들고 정해준 룸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는 방과 바다를 향해 넓게 트인 전망을 갖춘 아주 좋은 룸이였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비에 젖은 옷들과 신발, 모레와 흙이 묻은 패니어들을 순서대로 세척하고 온기가 들어온 방안에 말려두었다.
눅눅해진 침낭과 텐트를 펼쳐놓고 전자기기들을 모두 꺼내어 콘센트에 꽂아두고나니 "꼬르륵" 간절한 배고픔의 울림이 느껴졌다. 아무리 보아도 바다를 향해 서있는 외진 언덕의 숙소 주변에 음식점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멈추었던 비는 기상예보대로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여사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제가 배가 고파서요. 주변에 식당이 어디에 있어요?"
주변에 식당과 당항 주변의 횟집거리 숙소에서 차로 5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히 차로 올것이라 생각한 주인의 경쾌한 안내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였다.
"대략 난감이네. 비가내리는 멋진 풍경의 바다와 따듯하고 좋은 잠자리, 더할나위없이 모든것이 좋은데 굶게 생겼구나."
바다로 향한 전망이 아름다운 남해 창선도 나폴리모텔
여사장이 오면 횟집까지 태워달라거나 콜택시를 부를 생각으로 룸으로 돌아왔지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배고픔은 몇분이 지나지 않아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
"사장님, 들어오실 때 치킨같은 거라도 사도 주시면 안될까요?"
치킨 배달이 된며 비비큐 치킨을 주문하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비비큐 치킨이 맛있어요!" 알려준 번호를 전화를 하여 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였다.
"거긴 7Km 거리가 있어서 추가로 배달료가 3,000원입니다." 어디서 배달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여사장이 도착하였다며 전화를 주었다. 몇차례의 인간적인(?) 통화로 친숙해진 여사장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숙박비를 결제하자 어떻게 하냐며 "컵라면이 있는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하였다.
"아니요. 알려주신 치킨을 시켰어요." 말하고 이내 "네, 컵라면 하나 주시면 좋겠어요." 하였다.
언덕을 오르자 좁은 골목길 사이로 시멘트 계단길이 나와 더는 자전거를 끌고 오를 수 없어 자전거를 묶어두고 동피랑 마을을 올랐다.
좁은 골목길을 돌면 무엇이 나올지에 대한 궁금한 호기심과 아기자기한 옛골목을 걷는 재미가 느껴졌다.
동피랑 마을의 정상에 있는 동포루에서 통영항과 강구항 주변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지만 조금 실망하였다. "나폴리에 꼭 가봐야지"
동포루 바로 밑에 동피랑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기념품샵과 카페가 있어 따듯한 커피 한잔을 주문하였다.
도시재생에 관심을 두고 길과 사람, 자연, 공간, 건축, 스토리, 컨텐츠 그리고 공동체 등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 앞으로 무언가를 해야한다면 숨겨진 가치를 살릴 수 있고, 유지할 수 있으며 생산해 낼 수 있는 일이였으면 한다.
동포루를 중심으로 작인 일부분만 남아있는 동포랑마을의 둘레길에는 형형색색의 벽화들과 함께 작은 샵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서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마을의 모습에서 공간을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의 정성이 묻어나 있었다.
통영시내와 미륵도를 잇는 다리는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있다. 미륵도를 넘어 시계방향으로 미륵도를 일주하고 통영대교를 넘어 돌아오는 40Km정도의 경로를 선택하였다. 충무교를 넘어 미륵도에 들어가 전 아침 영업중인 음식점에 들려 충무김밥 1인분을 비상식으로 넣어두고 충무교로 향하였다.
지난 밤 침침한 어둠속에 묻혀있던 충무교와 통영대교 사이의 바닷길이 도시의 뒷골목정도로 활용되는 것 같아 아쉽다 생각하였다. 충무교를 넘어 도남광관단지에서 시작되는 해안길을 찾았다.
작은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마리나리조트의 측면으로 시작되는 통영의 해안누리길에 들어서며 지난 국도이동의 피로를 잊게해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통영미륵도 관광특구에 위치한 해안누리길
4Km가 조금 넘는 해안누리길은 한산도 등의 주변 도서에 가로막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의 해안과 같은 시원함은 없었지만 잔잔한 물결과 바다 위에 떠있는 하얀 부표들 그리고 바다위를 지나치는 어선들과 여객선의 모습들에서 한가로운 시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온 20여명의 사람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표정들 속에서 삶의 공허함에 갇혀있던 나의 시간들이 부끄럽다 생각하였다.
해안누리길의 끝에 위치한 마리나리조트는 갈대같은 것을 지붕으로 올려놓은 단층의 객실들이 주변의 환경과 이질감없이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마리나리조트 건너편 고갯길이 시작되는 이운항에서 잠시 쉬며 아침나절 시내에서 포장해온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충무김밥을 감싸고 있는 하얀 종이포장을 벗기는 기대감과 달리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닐봉지 속을 두어번 더 확인하여도 나오지 않는 오징어무침과 빈약한 내용물에 실망하였다. "충무김밥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건 아니지!" 아무래도 충무깁밥의 원조는 명동인가보다.
이원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미륵도의 업다운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고개를 넘으면 작은 항구의 마을이 나오고 다시 고갯길이 연이어 이어진다.
3Km 정도의 긴 새받이고개를 넘어 낚시배들이 정박해있는 달아마을을 지나치기도전에 무섭게 꺾여 올라가는 달아고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힘겹게 오른 달아고개의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달아공원내 달아전망대
달아전망대의 쉼도 잠시, 다시 이어진 연명마을의 고갯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고갯길. 이운마을에서 시작된 다섯개의 고개를 넘으며 무거워진 페달링의 속도는 더뎌져 갔다. 도로변의 멋진 카페명에 반하여 페달링을 멈추었다.
당포항의 언덕길에 위치한 "달이 떴다고 전화을 주시다니요".
카페앞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두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되뇌였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김용택 선생님의 시구나." 대학시절의 한때가 생각이 났다. "콩이, 콩이.."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잡아라
콩잡으러 가는데
어,어,저 콩 좀 봐라
쥐 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1997년 10월. 그녀는 두꺼운 전공책의 한가운데 까만 소금을 뿌려놓고 장난기 가득한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심심하면 소금드세요!"
지나는 길, 길가의 카페에서 가슴속 깊히 박힌 채 잊고있던 가시 하나를 꺼내어 시간의 아픔을 건드렸다.
좋은 전망에 잠시 자리를 내어준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카페
미륵도의 서쪽으로 코끼리 코처럼 길쭉하게 풍화리가 이어진다. 풍화리로 통하는 풍화일주로의 입출입로는 500여미터 거리를 두고있어 풍화리로 들어가지 않고 지나치면 500미터뿐이지만 풍화리를 일주하면 15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500미터 거리의 풍화리 입출입로
풍화리를 들어가는 첫번째 삼거리를 지나쳤다. 잠시 지도를 확인하며 풍화리를 일주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500여미터를 되돌아가 풍화일주도로를 이어갔다. "설마 계속 고갯길이 이어지겠어?"
생각을 비웃듯 풍화일주로는 고갯길과 작은 어촌마을 다시 고갯길이 반복되었다. 굴양식을 하는 어촌마을의 풍경 또한 비슷하여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였다.
깨끗한 것으로 하나 먹어보라며 굴하나를 따서 건내주셨다. 바로 딴 굴은, 짠맛이 느껴지다 굴 특유의 향과 맛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맛이 입안에 남는 싱싱함 그 자체였다.
맛있다 하였더니 많이 먹으라 권하셨다. "어머니, 이거 따서 뭐하시게요?" 물으니 업자들이 와서 수거를 해간다고 하였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얼마씩에 파시는데요?" 물으니 1Kg에 8,000원씩 갖어간다고 하였다.
"고생하시는데 많이 좀 쳐주지. 우리가 사먹을때는 되게 비싼데요"
패니어에서 찬통 하나를 꺼내어 담아달라 하였다. "어머니, 제가 굴 좀 살게요. 혼자라 많이는 못먹구 여기에 담아주세요."
만원 한장을 어르신의 몸빼 주머니에 집어 넣어주며 다시 한번 조금만 달라고 청하였다.
"이래도 돼나?" 여러번 반복하시며 바닷물에 씻어내고 찬통 가득 담아주셨다. "어머니, 그만요. 그만 담으세요!"
깨끗히 씻어내지 못한 굴을 조금 담아주려니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어머니, 잘 먹으께요. 오늘 굴로 포식하겠네요. 여기 마을이름이 뭐에요?"
"따신몰! 따신몰!" 두어번을 더 묻고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이 따듯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여러번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투리라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따신몰을 출발하여 다시 5개정도의 고갯길을 넘어서야 풍화리로 들어갔던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고갯길 라이딩에 피곤하다 생각하면서 싱싱한 굴 한찬통을 얻은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통영대교를 넘기위해서는 풍화리의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점심이고개를 다시 넘어야 했다.
차량 통행이 많이 지던 점심이고개를 넘어 겨우 통영대교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건넜던 충무교가 보인다. 통영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의 도로가 또한번 아쉽게 느껴졌다.
도로의 폭을 줄이고 사람들이 거닐 수 있는 곳으로 만들면 통영항, 서호시장, 중앙시장, 동피랑마을까지 이어지는 멋진 거리가 될 것 같았다.
통영대교를 넘어 통영시의 서쪽을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지도상에 보이는 고갯길들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충분하다. 여기까지가 통영인 것으로"
해양과학대 앞,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축구장의 주변 공터에 텐트를 설치하였다.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하여 하루종일 비가 올것이라 예보되었다. 비가 내리면 숙소를 잡고 하루 더 머물며 영화 한편과 시장이나 충열사 같은 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구경할 생각이다.
통영에 대한 기대감때문인지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통영아, 너의 청량함을 보여줘.."
무심하게 툭툭 텐트를 몇번 쳐보고 텐트를 정리하지 않은 채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봉화마을은 마을의 입구에서 대통령님의 묘역까지는 300미터가 안되는 정말 작은 동네였다. 마을의 초입에 주차장과 안내소가 있고, 중간쯤 둥지휴게소와 봉화장터 그리고 마을의 우측에 생가터와 뒷편의 사저, 묘역으로 이어졌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큰 기지개를 펴보았다. 시골의 아침은 언제나 하루에 대한 설레임을 불러일으킨다.
새벽 잠결에 뭔가 뽀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텐트를 나오니 이쁜 냥이 두녀석이 앉아있었다. 마치 싱거운 다툼을 벌일 후의 연인처럼 보였다. "너희들이였구나!"
대통령님 나오세요! 생가터 옆 돌담위 공간. 퇴임 후 이 곳에 나와 방문객들과 짧은 대화들을 나누는던 장소이다. 지금은 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사저를 감싸고 있었다. 가끔 유튜브로 보았던 장면들이 머리속에 생각이 났다.
돌담 앞으로 여러개의 의자와 대통령님의 영상이 돌아가는 스크린이 놓여져있었다. 길건너 추모의 집이 보수중이라 이곳에 임시로 마련해 놓았다.
사저가 공개되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아무도 없는 봉화마을에서 현장접수 1번은 할 수 있는데 월, 화요일은 휴관이였다. "어, 오늘이 몇요일이지?"
울산에서도 그렇듯 여행을 하는동안 날짜나 요일개념이 없어졌다. 할 일 없이 핸드폰을 만지는 일도 없고, 뉴스나 최신 정보들을 서핑하지도 않고, 저녁시간의 헛헛함을 채울 누군가를 찾을일도 없어졌다. 그저 오늘은 어디를 갈지, 날씨는 어떤지, 무엇을 먹을건지 하는 단순함밖에 없다.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하고 오늘이 정기휴일인 화요일임에 아쉬워했다. "아쉽다. 쉽게 할 수 없는 1번인데."
대통령님의 묘역. 방명록을 남기는 곳에 따듯한 아침햇살을 즐기는 잘생긴 냥이 한녀석이 앉아있었다.
몇걸음 옮기면 모두 볼 수 있는 작은 마을.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세면을 한 후 물기가 남아있는 텐트를 닦아내고 정리하였다.
국화 두송이를 집어들고 헌화를 하기위해 다시 묘역으로 향하였다. 방명록에 짧은 감사의 글을 적고 국화 두송이를 헌화하며 긴 감사의 묵념을 하였다.
여전히 잘생김을 뽑내며 앉아있던 녀석, 결국엔 근무를 시작하던 경호원에게 쫓겨났다.
추모의 집앞 익숙한 대통령님의 모습으로 포토존이 있었다. "대통령님, 제 자전거랑 한장 찍으세요!"
생가터 옆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작은 내부에 아기자기한 여러가지 기념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여행중 사용할 간편한 티셔츠, 캡모자, 작은 수건, 손노트 그리고 카메라에 달아줄 노무현재단의 로고줄을 구매했다. "여행중이신데 무게가 더 늘었네요. 택배로 보내줄 수 있어요. 그럴까요?" 기념샵을 관리하던 여성분이 방긋 웃으며 말하였다.
"그럴까요!" 하며 바로 사용할 물건을 빼보니 티셔츠 한장이 남았다. "하하, 보낼게 없네요."
패니어에 기념품들을 집어넣는 사이 조금전의 관리인분이 말을 걸어왔다. "일산 어디에서 오셨어요?" 고양에서 왔다 대답하니 "그러니까 고양 어디에서.. 일산도 고양이잖아요?" 하였다.
"아, 행신동에서 왔어요." 자신은 가라뫼에서 살다 남편을 따라 내렸왔다며 반가워했다. 믹스커피 밖에 없다며 따듯한 커피 한잔을 내어주었다.
"믹스커피가 정말 먹고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여행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고 봉화마을을 떠나 통영으로 향하였다. 아침을 먹고싶었지만 모두가 영업을 하기전이였다.
이번 여행중에 꼭 들려보고 싶은 곳은 울릉도, 경주, 통영, 여수, 목포, 군산이였다. 울릉도에서 시간을 아껴 일찍 빠져나온 이유중에 하나는 통영을 일주하는데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봉화마을에서 통영으로 가기위해서는 내륙의 국도를 타고 이동하여야 했다. 꽤 지루한 라이딩이 될 것 같았다.
읍단위의 도시라기에는 제법 크고 복잡한 진영읍에서 첫번째 길헤매임으로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봉화마을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낸터이라 통영까지의 이동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단감을 파는 직판장들이 줄이어있던 진영읍을 벗어나 창원으로 향하는 14번 국도를 타고 라이딩 하였다. 창원과 마산지역은 처음와본 도시이다. 차량 통행이 많아 복잡한 도로는 버스와 택시, 신호등과 교차로 등을 신경쓰느라 힘들었다.
도로변의 인도는 좁게 느껴지고 변변한 자전거길조차 없었다. 큰 도시들의 시내를 관통하는 라이딩은 정말 피곤하고 피하고싶다 생각하였다.
창원역과 멀지않은 마산역을 지나 도로변의 다이소를 보고 자전거를 세웠다. 여행중 에어매트를 대신할 저렴한 매트가 필요했다. 좀더 날씨가 추워지면 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질 것 같았다.
일반적인 매트는 부피가 너무컸고, 등산용 매트는 겨우 엉덩이만 깔고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셀카봉과 카메라 삼각다리를 사들고 쵸코바를 먹으며 30여분을 쉬었다.
생각해보니 언양시장에서 점심이후 변변한 식사를 못한 것이다. "이래저래 지칠만 하네.."
혼잡한 마산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밤밭고갯길과 동전고갯길이 연이어 힘들게 하였다. 동전고개의 큰커브를 돌자 멀리 터널같은 것이 보였다. 설마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자전거를 세우고 말았다.
세워둔 자전거의 기울기가 이상하였다. "어, 원래 이렇게 기울어져 있었나." 킥스탠드를 안쪽으로 밀어넣고 자전거을 다시 세우자 툭하고 킥스탠드가 부러져 버렸다.
"튼튼하다고 했는데.. 이게뭐야." 그 자리에 앉아 공구로 킥스탠드를 제거하고 공구를 꺼낸김에 안장의 높이도 조금더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난번 안장조절 후 계속 삐걱소리를 내던 안장의 볼트들도 마저 조여놓았다.
"참 게으르다. 공구 하나 꺼내기가 그렇게 싫어서.."
동전터널을 지나 2번국도와 합쳐진 도로는 진북터널을 앞두고 자동차전용도로로 변하였다. 10여미터를 거꾸러 끌고와 국도옆으로 난 구도로로 이동하였다. 진영읍의 길헤매임부터 시작되어 뭔가가 자꾸 꼬이는 날이였다.
잔잔한 내리막길이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임곡삼거리를 지나 한적한 도로변의 해물칼국수 간판의 식당에서 멈추었다. 오후 2시가 넘은시간 허기졌고 조금 지쳐있었다.
작은 식당안에서 된장찌개로 보이는 식사를 맛있는 하는 사람을 보고 "저도, 저걸루 주세요." 하였다. 괜찮은 식사였다.
점심을 해결한 후 통영으로 이동하기위해 지도앱을 켜고 지도를 확인했을 때 77번 국도의 교차로를 2Km정도 지나쳐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후의 든든함탓에 덜하였지만 조금 기운이 빠졌다.
"오늘은 정말 운이 없는 날이네. 어쨌든 밥은 먹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암아교차로로 되돌아와 77번 국도를 조금 이동하자 진해만의 바다가 펼쳐졌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이정표를 보며 내심 포항에서부터 시작된 내륙의 이동과 오늘하루 계속되었던 국도라이딩의 지루함음 달래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포항을 출발하여 울산의 바이크하우스로 향하는 길, 호미곶과 구룡포를 이어타는 해안길은 8년전 전국일주에서 지나왔기에 이번에는 경주를 경유하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이동거리
91.57Km
누적거리
1,134.29Km
이동시간
7시간 20분
누적시간
55시간 57분
형산강자전거길
동천강자전거길
44Km/3시간 32분
48Km/3시간 48분
포항
경주
울산
1,134Km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폭죽소리가 사라지고 귀을 간지럽히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너무나 좋았다. 너무나 가깝게 들리는 파도소리에 두어번 잠이깨어 혹여 밀물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울산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호미곶의 해안도로가 아닌 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 경주를 경유하기로 결정하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경주가 궁금하였다.
나는 타자의 삶에 무관심하며 게으르다. 나에게 그들은 그저 보이는대로 관찰되어질 뿐, 나에게 어떤 특별함이나 어떤 의미같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개입되지 않은 채 놓여있는 존재에 대해 타자로서의 의미없는 시선조차 두질않는다. 게으름이다.
2002년 여름, 동네 꽃집에서 사온 3개의 허브화분은 반년이 지나기도전에 미친듯 부풀어올라 작은 방안 가득 향기로운 허브향을 채워놓았다. 정성스레 화분을 가꾸는 동안 가지를 잘라 여러곳에 놓아두고, 몇잎을 떼내어 우러낸 은은한 향의 차를 마시고, 가끔씩 간지럽히듯 쓰다듬는 손길로 단순하게 반복되던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였다. 졸업후 3년 가까이 이어지던 시험 공부중이였다.
준비중이던 시험의 2차를 앞두고 화분을 햇볕이 잘드는 야외에 옮겨두고 장흥으로 내려갔다. 2년 또는 3년만의 귀향길, 2차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1차가 면제되는 후년까지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2~3일정도 머무를 생각이였다.
도착한 집에는 작은 화단처럼 못보던 꽃과 나무들이 현관옆 좁은 공간에 빼곡히 심어져있었고, 집안 곳곳에 화분들이 놓여져 계절에 맞는 꽃망울들을 터트리고 있었다. 생경스럽고 의외의 모습이 놀랍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한평생 지겹도록 농사를 지어온 분이 이유없이 풀같은 것들을 정성스레 가꾸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파며 고추며 감자 같은 것을 심고 키웠는데 지겹지도 않으신가?"
2~3일 머무르려던 계획은 그해 월드컵이 끝나도록 늦춰졌다. 리플레이로 반복되는 골장면에 "워매. 또 넣었네"를 반복하시는 그들과 함께 축구를 보았고, 도움이 되지않은 일손을 거들며 논두렁에 피어오른 커다란 네잎클로버를 찾았고, 어릴적 뛰어놀던 산속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올라 어린시절 겹겹히 가로막힌 산너머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상상하며 즐거웠던 무언가을 확인하고 싶었다. 산정상의 바위에 앉아 멀리 바라보이는 장흥의 바다를 처음으로 보았다.
바다가 있다는 것보다 가까이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30년이 가깝도록 그것을 확인해보려 하지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곳에 올라 내가 확인한 것은 바다가 있었다는 것 뿐,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였는지 그때는 몰랐었다.
내려오는 길에 보랏빛 제비꽃을 꺾어 아끼는 책속에 꽂아두었고, 부모님께 하고자했던 말은 끝내 하지못하고 10여일이 지나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왔을 때 무성했던 허브들은 모두 말라 죽어있었다. 바람이 잘드는 그늘에 두었더라면, 시골에 가기전 누이에게 잘 관리해줄 것을 부탁하였더라면, 그전에 그들의 빠른 성장에 맞춰 조금더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었더라면, 아니 애초부터 죽어버릴지도 모를 꽃같은 것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들이 밀려왔다.
몹쓸 꽃이였다. 나의 관심밖을 벗어나면 한시도 살수없는 이내 죽어버릴지도 모를 안쓰럽고 딱하기 그지없는 그 몹쓸 꽃. 말라 비틀어진 허브들을 바라보며 집안 곳곳 꽃을 기르는 그녀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 몹쓸 꽃이 나였구나."
나는 그녀의 삶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지금껏 단지 부모로서의 존재외에, 여자 또는 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그녀는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았다.
산너머의 바다도, 나의 어머니인 그녀도 나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할 것 같은 것들을 당연하다 치부한 채 게으름을 피웠던 것이고, 관계로 규정지어 놓은 자신의 틀안에 이해라는 오해의 변명들, 감정의 자기 확신과 그것을 확인하려는 이기적인 편협함이 존재로서의 그녀를 부정하거나 가둬두려 했던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고싶다. 그리고 더는 누군가의 몹쓸 꽃이 되고싶지 않아."
그해가 가고 공부중이던 모든 책들을 버렸다. 다시는 시험을 보지않았으며, 화분같은 것도 키우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로서의 엄마가 아닌 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2018년 겨울. 이제는 평범한 대화조차 길게 이어가기 힘든 그녀를 바라보며 "엄마, 화단에 뭐할려고 꽃을 심었어?" 물으면 "내가 산에서 캐다 심었다. (어쨌든) 심어놓으면 이쁘다." 하신다.
깊은 뜻이 있는 말인지, 지난일의 평범함 소회인지 모르겠으나 그말의 뜻을 이해하려 하지않는다. 그저 그녀와 함께 그녀의 꽃에대해 얘기하고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 그 꽃이 이쁜게 아니구 엄마가 심어 놓으니까 이쁜거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고, 사랑하며 무엇보다 그녀의 삶을 존중한다.
불현듯 아주 오래전의 일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 갔다. 관계에 있어 나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써 인식되기를 바란다. 또한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도 지금도, 난 그저 나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며 너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송도해수욕장을 지나 시작되는 형산강 자전거길을 따라 포항시를 벗어난다. 지난밤 영일대의 수평선을 대신하던 포항제철의 공업단지는 강의 건너편 너머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익숙치않은 공업도시의 풍경이 낯설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큰 공장들은 어떻게 관리가 되는 것일까?" 궁금하였다.
형산강의 자전거길은 조금 투박스러웠지만 형산강을 따라 정비되어 길게 이어졌다.
유강대교를 지나 끊어진 것 같은 자전거도로는 철길과 도로를 건너 도로를 따라 경주와의 경계면까지 이어졌다. 경주에 들어서자 자전거길은 다시 형산강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로 이어졌다.
강동대교를 넘어 7번 국도를 이어타야 했지만 무심하게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니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제법되는 거리를 되돌아와 강동대교 넘고 충분히 넓게 확보되어 있는 7번 국도를 따라 경주 시내로 이동하였다.
잠시 쉬기위해 멈춘 호명리 근처의 주유소옆 작은 휴게소. 어제 저녁의 먹다만 치킨때문인지 약간의 허기가 일찍 찾아왔다. 휴게소 옆 손짜장이라 간판을 내건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밥을 주문하였다.
카다란 그릇 가득 담겨진 짬뽕과 넉넉히 눌러담은 밥그릇이 마음에 들었다. 갖은 야채들과 꽃게, 해산물 그리고 돼지고기 같은 것이 채워져 있는 자극적이지 않고 채수의 부드러움이 가득한 맛이였다.
불맛같은 맛의 특별함은 없었지만 한끼의 든든한 밥을 먹은 것 같은 따듯한 식사였다. "마치 오랜만에 먹는 집밥같네."
뜻하지 않은 곳에서 행운같은 좋은 식사를 하였다. 국물까지 싹싹 비웠을 때, 다른 손님의 주문받고 수타면을 뽑기위해 면을 쳐대기 시작하였다. 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떤 음식이 만들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다.
호명리 강동고속주유소에 위치한 휴게소 손짜장.
농기계들의 이동로로 겸용되어 사용되는 경주방향 7번국도의 넉넉한 갓길은 편안하고 한가롭기까지 하였다. 자전거로 이동하며 어쩔 수 없이 이동하게 되는 국도변들이 이렇게 정비되어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경주시내에 들어서자 지붕에 기와를 얻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기와지붕의 엔젤리너스를 보며 뭔가 이상한데 이 도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기와지붕은 인테리어 별도인가?"
경주역에 도착하여 역전 관광안내소에서 경주관광지도를 챙겨나왔다. 3시간정도의 여유로 경주를 구경할 수 있는 동선을 생각하는 사이 길 건너편 경주빵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경주는 빵이 유명한가보네."
서울로 전학을 온 후,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곳에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과 8년전 전국일주를 하며 지나쳤던 동해쪽의 해안길이 경주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역앞의 광장에 흉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볼쌍스런 사람의 흉상이 것이라 짐작하며 가까이 가보니 생각과 달리 이기태 경감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추모흉상이였다.
철로에 누워있는 장애인을 구하려다 열차와 충돌하여 순직하셨다 하였다. 생활하는 주변 가까이 이런 것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그것들을 통해 기억되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구조물과 설치물들 그리고 근본을 알 수 없는 인위적인 테마거리의 컨텐츠들 보다 얼마나 값지고 많은 영감을 주는지 비교할 수 조차 없다.
대릉원을 시작으로 첨성대와 안압지, 선덕여왕 신종의 경주국립박물관을 구경하고 울산방향의 불국사에 들리는 경로를 선택하였다. "우선 맛있다는 빵부터 사보자."
경주역 가까이 좌측으로 늘어선 팔우정 해장국거리 뒷편으로 높은 능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측으로 황남빵, 경주빵을 파는 대형 가게들이 연이어 들어서 있었다.
어렵지 않게 찾은 황남빵의 본점에 들어서자 주차장 가득히 엉켜있는 차량들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번잡스러움이 느껴졌다. 넓은 황남빵의 매장에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가득하였고, 주문 대기 1시간을 알리는 안내소리가 들려왔다.
"와.. 1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대단하네." 온라인 주문을 걸어놓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늦은 봄날처럼 따듯한 날씨, 대릉원 일대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혼잡하였다. 대원릉을 들어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건너편 노동리 고분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황남동과 대릉원의 사이 좁은 담길은 주차된 차량사이로 통행차량들과 사람들로 가득차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차량들로 인해 짜증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옛도시의 한가로운 한때를 생각했던 바람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경주에 가봤다 것외에 아무런 특별함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수학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