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엉망이 되어버린 손바닥. 깔끔하게 30분의 시간을 잡아먹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 도로변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자전거를 출발시키며 페달을 밟는 순간 체인이 철컹거리며 돌아가지 않는다. 펑크 수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눕혀놓으며 체인링에서 체인이 벗겨진 것을 모르고 페달을 밟은 것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무거운 자전거를 지탱하고 낑낑거리며 앞 체인링에 체인을 체결하려 하는데 잘 되질 않는다. 마땅히 자전거를 기대어 놓을 곳도 없고, 검은 흙먼지가 쌓인 도로변에 자전거를 눕힐 수도 없는 상황의 난감함이 밀려든다.
이리저리 힘들게 체인을 걸어보려 해도 스프라켓에 걸려있는 체인이 돌아가질 않는다.
"아, 진짜 왜 이래!"
순간 이상하게 굴절이 된 뒷드레일러가 눈에 들어온다.
"망했다!"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끌고 마을의 입구로 들어가는 공터에서 뒷드레일러를 살펴본다. 행어 체결 나사가 조금 느슨해져있고 드레일러 안쪽의 패널이 엉망으로 비틀어져 휘어있다.
"하다 하다 이젠 드레일러까지."
드레일러를 분해하고 뒤틀어져 있는 안쪽 패널을 이리저리 반듯하게 펴본다.
얼추 모양이 잡힌 패널을 드레일러에 부착하려는데 뒤틀린 각도가 안 맞는지 풀리를 결합하고 나사가 물리지를 않고, 여러 번 체결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체인링크를 풀어 드레일러를 떼어낸다.
걸리적거리는 체인이 없는데도 풀리 나사는 쉽게 들어가질 않는다. 드레일러의 안쪽 패널을 이리저리 펴가며 겨우 풀리를 체결하고 드레일러를 조립한다.
변속 와이어를 당겨가며 드레일러의 수평을 확인하고 페달을 돌려 트러블 없이 체인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데, 한 부분에서 체인이 뒤틀리며 튕긴다.
"뭐지?"
체인이 튕기는 부분을 살펴보니 체인의 한마디가 뒤틀려져 있다.
"정말 가지가지다."
일단 뒤틀린 체인의 한 마디를 잘라내고 패니어 어딘가에 깊숙이 들어있을 체인링크를 찾기가 귀찮아 그냥 그대로 체결을 한다.
"체인도 많이 늘어나 있을 텐데, 한마디 잘라내면 장력도 괜찮아지고 좋겠네."
뒤틀린 체인을 떼어내니 드레일러는 트러블 없이 잘 돌아간다. 변속 트러블이 조금씩 일어나지만 가까운 시내까지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타이어 정비할 때는 양반이었네."
생수 한 통으로 씻어냈지만 기름때는 빠지질 않는다.
11시 펑크를 시작으로 2시간이 지나버리고 만다.
"오늘 장베이현까지 가기는 틀렸네. 일단 장자커우시까지만 가보자."
"너는 왜 자꾸 떨어지니?"
이 바람이면 며칠 내에 힐링요는 한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변속 트러블로 1단과 9단을 사용할 수 없지만 자전거샵이 있을 도시까지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1시, 외곽의 도로를 따라 지나쳐 가려던 장자커우시로 가기 위해 고덕지도를 재설정하고 출발한다.
오전에 없던 강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흙먼지가 미친 듯이 불어온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엔 뭉실뭉실 거리는 비현실적인 구름들이 떠다니고, 마치 지옥에서 천국을 올려다보면 이런 풍경이겠지 싶다.
가로수에서는 노란색의 마른 열매들과 가지들이 우박이 내리듯 우수수 떨어지고.
따듯한 기온과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떼,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흙먼지와 드센 강풍 그리고 정신없이 뒤섞여 움직이는 차량들.
"정말 뭐야? 이건 지옥이야!"
절규 같은 짧은 탄식들이 절로 새어 나온다.
찢어질 것처럼 펄럭이는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어 다니듯 휘청이며 쉬안화현에 도착한다.
곧 전쟁터라도 나갈 것 같은 폭죽 차량들과 폭죽 대포들이 놓은 주점, 대형 주점들이 들어선 시내에 들어서며 여러 가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숙소, 자이언트 매장, 장자커우. 이 빌어먹을 바람!"
자전거에서 내려 인도로 자전거를 끌고 가며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강풍으로 몸이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기도 힘들다.
장자커우시로 향하는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주변 숙소들의 요금을 확인하고 자이언트 매장을 검색한다. 30Km 정도의 장자커우시까지 갈 수 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는 불편함을 안고 계속 라이딩을 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 징그러운 바람이 싫다."
멀지 않은 곳에 자이언트 매장 하나가 검색되고, 쉬안화현에는 주점들이 제법 많아 숙소를 잡느라 고생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미친 **************"
숙소와 자이언트 매장을 검색하는 사이 도로변에서 1분 넘게 울려대는 크락션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사거리 전체가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과 오토바이 차량들로 정신이 없다.
"아, 대륙아!"
오후 2시, 하교 시간도 아닌 것 같은데 색색의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메뚜기떼처럼 도로를 점령해 버린다.
"소학교 아이들도 아니고 다 큰 애들을 왜 저렇게 태우고 다니지."
자전거 도로까지 3차선의 도로가 오토바이, 자전거, 승용차와 버스로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중국의 도로는 각종 바퀴 달린 것들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는 난장판 그 자체다.
오토바이를 탄 체육복의 학생들은 어른들과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다. 약간 소극적이고 융통성 없이 자기 갈 길만 가는 성인들과는 달리 거침이 없고 센스 있게 흐름을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차량들 사이를 오토바이를 타고 떼를 지어 움직이는 체육복의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괜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대륙아! 너도 여러모로 참 고생이겠다."
자이언트 매장을 가기 위해 체육복 학생들에 섞여 도로를 따라가던 중 싸이클을 타고 있는 젊은 남자애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하는 중국어 질문들은 이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 복잡한 도로를 따라가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왔어. 장자커우로 가고 있어. 그리고 지금은 자이언트 매장에 가고 있어."
어린 남자의 질문에 차례대로 대답을 하고 신호등에 걸려 자이언트 매장을 확인하고 있으니 사진을 찍자며 핸드폰을 들이민다.
어린 남자의 길 안내로 자이언트 매장을 쉽게 찾아 들어간다.
친절하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 자전거 거치대를 들고 나오는 남자에게 손사래를 치고, 매장 안에서 쳐다보는 여자를 향해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도 되는지 제스처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제대로 갖춰진 자이언트 매장이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자전거 거치대를 가져와 자전거를 세워주는 어린 남자.
"자전거 매장에서는 내가 전문이지!"
거침없이 매장으로 들어가 패니어들을 다 떼어내고 큰 숨을 내쉬니 매장 안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들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된다. 프런트에 앉아있는 중년의 여자, 매장 안에 서있던 여직원, 정비를 하는 직원, 손님 2명 그리고 정비실 앞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차를 마시던 뚱뚱한 할아버지까지 모두 말없이 나만을 응시한다.
나를 안내해 준 어린 남자만이 나의 행동들을 핸드폰으로 찍어대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시커먼 손을 보여주며 물을 찾자 정비실 안쪽의 세면대를 안내해 준다. 비누로 손을 씻어냈지만 기름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고.
매장으로 나와 길 안내를 해준 남자에게 명함을 주며 여행에 대해 설명해 주니 핸드폰으로 모든 것들을 찍는 남자아이다.
이름을 물어보며 번역기에 이름을 써달라 부탁하려니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끊겨있다. 4월 10일까지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모두 소진된 모양이다.
"꼭 필요할 때 데이터가 나가더라."
"와이파이 요?"
네트워크가 끊겨 당황하기커녕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와이파이 비번을 달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VIP 손님의 요청을 받는 듯이 어린 남자가 핸드폰을 건네받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설정해 준다.
"여기 직원인가?"
리위안. 자이언트 매장의 아들이다.
리위안은 나에게 따듯한 녹차와 생수를 가져다주더니 자꾸만 세수를 하라며 세면대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얼굴을 씻을 정도로 땀을 흘린 것도 아니고 손은 씻었는데."
두세 번 더 세수를 하라는 리위안의 말에 마지못해 손을 한 번 더 씻고 간단하게 세수를 한다.
매장에 들어와 패니어들을 떼어내고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하며 돌아다니는데도 아무도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지 않는다. 정비실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만이 중국 담배를 연신 건네주며 피우라고 권할 뿐이다.
정비실 뒤편에 걸려있는 알리비오와 아세라 드레일러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어떤 것으로 교체할지 고민한다. 188위안 아세라, 228원 알리비오 드레일러.
"하루 조식 포함 숙박비가 날아가는구나. 알리비오로 하자."
바닥에 쪼그려 앉아 펑크를 수리하는 정비 직원이 힘들어 보여 자전거 정비 스탠드의 사진을 보여주며 없냐고 물어보니 지하에 있다고 말한다.
"스탠드를 놓고 쓰면 편할 텐데. 왜 쪼그려 앉아서."
펑크 수리를 마치고 주변 정리를 한 정비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 드레일러를 들어 교체해달라는 제스처를 하니 그제서야 자전거를 살피더니 변속선을 푼다.
"아저씨 변속기 교체하고 변속 세팅하려면 거치대를 뒤쪽에 걸어야지."
변속선을 풀어 놓더니 펑크가 난 자전거가 한 대 들어오니 드레일러 교체는 안 하고 펑크 수리를 하느라 내 자전거는 뒷전이다. 조금 기다리려니 아마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프런트로 가서 튜브 사진을 보여주고 핸드폰 메모장에 700*27C를 적어 보여주며 튜브가 있는지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
"리위안, 장갑 있어?"
리위안에게 작업용 장갑이 있는지 물으니 라이딩용 장갑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아니, 내가 자전거 고칠게. 장갑을 줘."
작업용 면장갑을 가져다주는 리위안에게 한 번 더 직접 고쳐도 되는지 물어보니 흔쾌하게 그렇게 하라고 한다.
고장 난 드레일러를 제거하고 새 드레일러를 장착하고 있는데 리위안은 타이어를 들고 와서 뭔가를 말하고, 여직원이 튜브를 들고 와서 뭔가를 말하고. 세명이 번갈아가며 와서 묻고 또 묻는다.
28C, 32C 타이어를 가져오는 리위안에게는 펑크가 난 튜브를 보여주며 타이어가 아니라 튜브가 필요하다 알려주고, 23C, 25C, 28C 튜브를 가져오는 여직원에게는 27C가 없으면 25C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지하에 있는 창고에서 계속 튜브를 가져오는 여직원에게 웃으며 내려가자고 하니 지하의 창고로 안내를 한다. 매장 전체가 별 볼일 없는 나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지하 창고에서는 다른 여직원이 커다란 박스를 뒤적이며 27C 튜브를 찾고 있다.
"메이콴시. 아무거나 줘요."
리위안은 지하로 내려와 자전거 정비 스탠드를 가지고 올라가자며 스탠드를 들고 올라간다.
4년 만에 만져보는 자전거 정비 스탠드를 능숙하게 다루어 드레일러를 장착을 하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변속기 세팅과 브레이크 유격조절을 한다.
"육각렌치 3개와 십자드라이버 그리고 정비 스탠드만 있으면 이렇게 편한데."
매장 내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자전거를 정비하는 나를 구경하고, 리위안은 여전히 사진을 찍어대느라 바쁘다.
자전거 세팅이 끝날 때쯤 정비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가 정비실에 있던 물 호스와 커다란 욕조를 가리키며 뭔가를 말한다. 리위안이 중간에서 말을 전달하는 것은 세차도 하라는 말이었다.
"보스!"
뭔가를 말하고 가게를 나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리위안은 보스라며 소개한다. 아마도 매장의 주인인 리위안의 할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정비를 마치고 난 후, 심박스의 고객센터를 통해 소진된 데이터의 1G가를 5,000원으로 충전하고 주변의 숙소를 검색해 숙소예약을 한다.
"오늘은 이것으로 됐다. 일찍 쉬고 내일 열심히 달리자."
매장의 벽에 결려있는 동호회의 사진을 보며 여직원에게 동호회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소통이 되질 않아 굉장히 어렵다.
한동안 이것저것 애를 쓰다 보니 조금씩 눈치가 생겨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소통이 되고.
여직원 오른쪽 끝에 서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를 보스라고 불렀다. 아마도 리위안의 아빠가 아닐까 싶다.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클럽이 아니고 매장의 동호회 같은 것인가 보다. 보스에게 허락을 받으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 클럽의 소식을 볼 수가 있어."
자타고의 카페를 보여주며 그들의 라이딩 기념사진과 비슷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비슷하다고 알려준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중국에 와서 함께 라이딩을 하면 좋고,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함께 라이딩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연결을 해보려 해도 중국의 동호회는 온라인 홈페이지가 없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고, 중국에서는 네이버를 볼 수가 없으니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다.
"아쉽네. 서로 교류라도 하면 재미있는 이벤트가 될 것 같은데."
여직원의 매장에 진열된 우수 동호회 트로피들을 보여준다.
"선화? 선화네! 쉬안화 자이언트지점"
정비실 직원에게 공구를 빌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드레일러와 튜브 263위안을 결제한 후 여직원들과 사진을 찍고 숙소로 이동한다. 리위안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질 않아 여직원에게 위챗 아이디를 알려주고 리위안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숙소로 가는 길의 중앙에 세워진 커다란 성문이 보인다.
"멋있네."
좀 더 도로를 따라가니 오래된 성벽의 흔적들도 보이고.
오른쪽은 예전의 토성이, 왼쪽은 현대식으로 표현한 벽돌의 성모양이 묘한 느낌을 준다.
넓은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를 물으니 숙소에서 근무하는 중년의 남자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쾌활한 중년의 남자의 도움으로 숙소 주차장에 자전거를 묶어둔다.
"안전해?"
"걱정 마. 안전하다!"
남자의 도움으로 패니어들을 쉽게 옮기고, 샤워를 하기 위해 들어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콧볼 주위의 얼굴에 기름때가 잔뜩 묻어있어 시커멓게 얼룩덜룩하다. 드레일러를 고치며 때가 묻은 손으로 심하게 불어오는 강풍 속에서 버프와 고글을 올리다 보니 얼굴에 기름때가 묻은 것이다.
고덕지도가 안내하는 팔달령의 만리장성을 넘는 S216 소도의 길을 포기하고 팔달령장성과 십삼릉의 사이로 이어지는 G110 도로를 타고 옌칭현으로 향한다.
아침 10, 다섯 개의 알람을 모두 건너뛰는 게으른 아침의 연속이다. 어제 사놓은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패니어의 짐들을 다시 분배하여 정리한다.
"특별히 추가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무겁지?"
프론트 패니어의 무게를 조금 줄여 핸들의 조향을 편하게 만들고, 리어 패니어의 짐들을 빼곡히 수납하여 패니어의 모양을 잡는다. 아침이면 바람이 살짝 빠져있는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체크아웃을 한다.
"몽골로 넘어가기 전에는 튜브를 정비하겠지. 정말 게을러터졌다!"
창핑구를 벗어나는 회전 교차로. 직진을 하면 S216 도로를 따라 팔당령장성으로 오르게 되고, 2시 방향은 G110 도로를 따라 북경 십이릉 풍경구를 넘어 옌칭현으로 이어진다.
"아, 만리장성을 넘어버려야 하는데 아쉽다."
시내를 벗어나 G110 도로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회전 교차로에 있는 할배네 치킨에서 세트 1번으로 부족한 아침과 비상식을 해결할 생각이다. 베이징 시내에서 쇠고기 오방을 햄버거 세트로 잘못 산 기억 때문에 메뉴를 정확히 확인하려고 매장을 둘러보아도 세트메뉴 1번이 보이질 않는다.
직원과 커뮤니케이션이 안되고 그동안 먹은 세트 1번을 보여주려고 핸드폰의 사진을 검색하고 있으니 매장의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핸드폰으로 주문하는 딜리버리 페이지를 보여주며 선택하라고 한다.
"역시, 짬밥이 틀리구나. 무조건 없다고 한 직원, 너 손들고 서있어! 눈치가 없으면 센스라도 장착해야지."
치즈파이와 치킨 3조각은 아침식사로 먹고 햄버거는 비상식으로 남겨둔다. 게으른 출발로 12시가 다 되어간다.
"700미터 정도는 오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자, 가보자."
회전 교차로를 벗어나자 바로 시작되는 G110 국도.
오토바이조차 보이질 않는 넓고 깨끗한 자전거 도로를 혼자서 독차지하고,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산들을 향해 달려간다.
거대한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겹겹이 치솟은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코너를 회전할 때마다 특색 있는 모양과 풍경으로 제각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흙산, 기암 바위의 산, 벚꽃과 복사꽃으로 울긋불긋 흩뿌려진 산들이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산길은 낮은 경사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풍경을 감상하며 한가로운 페달링을 이어간다.
산골의 마을 입구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
"심심한데 기념사진이나 찍을까."
"해발 700미터의 산쯤이야 껌딱지지!"
오른쪽 북경 십삼릉 풍경구가 있는 산들은 흙과 바위산, 왼쪽 팔달령장성이 있는 산은 울긋불긋 복사꽃과 벚꽃들이 흩뿌려놓은 듯 예쁘다.
조명도 없는 두 개의 짧은 터널을 지나는 사이, 산들이 낮아진 것인지 아니면 높이 올라온 것인지 산들의 능선이 눈높이 맞춰진다.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오르막이 이어지고.
화물차 운전자들이 식사를 하는 휴게소 같은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얼마나 올라온 거지?"
산들샘을 확인하니 해발 560미터가 조금 넘었다. 중국의 남부를 여행하며 매일처럼 600미터가 넘는 산길을 넘어온 탓인지 동네 뒷동산에 오르는 듯이 별 느낌이 없다.
십여 분 정도 더 오르자 드디어 도로 위로 하늘이 열린다. 연화산 분수령.
"시원하게 내려가자!"
열어놨던 바람막이의 지퍼를 올리며 내리막 다운을 즐기기 위한 준비들을 하고 출발.
2Km 정도 내려오니 톨게이트 같은 곳이 갑자기 나타난다. 아주 오래된 식당차도 보이고.
중국에서 국도 톨게이트는 처음 본다.
고덕지도가 안내하는 톨게이트의 옆길로 살짝 돌아가니 교통 공안 두 명이 차를 세워두고 서있고 길은 경계석으로 막혀있다.
"커이 취?"
지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공안에게 길이 맞는지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석 사잇길을 손으로 가리킨다.
"오토바이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차량으로 통행하는 얌체족을 단속하는 것인가?"
높은 산길마저 쓸데없이 예쁜 중국의 도로길을 달리고, 도로변에서는 나무들을 심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오늘의 목적지인 옌칭현이 10km도 안 남았는데 길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는다.
"뭐지? 설마 산 중턱쯤에 위치한 도시인 거야."
너무나 좋은 평지의 가로수길이 아까울 정도로 오가는 사람이 없다.
포도나무 넝쿨처럼 꼬불꼬불 이상하게 자라는 가로수.
옌칭현의 초입 사거리에 북경 기독교 교회가 들어서 있다. 가끔 이슬람 사원 같은 곳은 볼 수 있었지만 교회가 있는 것은 처음 본다. 뾰족한 첨탑 위로 십자가가 걸려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가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개신교 특히, 대형 교회들의 폐단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중국 여행 중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풍경이 어색한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자전거 수리 아저씨 옆에 앉아 숙소를 검색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주점으로 이동한다. 작은 도시라 그런지 한적하고 지금까지의 중국 도시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상하이에서 후난성을 지나 광시성으로, 후베이를 지나 허난성으로 중국의 남북의 느낌이 다르듯 중국의 동서를 가르는 산맥을 넘고 나니 도시와 사람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워쓰 한궈렌. 커이 시아지앙?"
도로변의 주점에 들어가 숙소에 들어가 숙박이 가능한지를 묻고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지를 문의한 후 체크인을 한다. 만리장성 관광권이라 주점의 숙박비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저렴한 주점이나 빈관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숙소의 관리 직원들까지 모두 나와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피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짐들을 정리하는 것과 프런트 건너편 보관창고에 자전거를 놓아두는 것을 도와준다.
베이징의 좋은 호텔에서 편하게 쉬었지만 이런 스킨십과 교감을 할 수 있는 곳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쫓겨날 일은 없으니 편하게 샤워를 하고 이른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시내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나간다. 퇴근 시간 전이라 넓은 광장에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한적하다.
식당에 들어가 18위안하는 덮밥을 시키니 바로 음식이 나온다.
"빨라서 좋네. 냄새도 좋고."
달콤한 간장소스에 감자와 고기 경단이 들어간 덮밥. 광장이나 성 같은 대단위 센터의 음식들은 한국에서 먹는 음식과 비슷한 맛이라 고민이 없다.
"식욕이 없는 것이 몸이나 마음에 큰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숙소에 돌아와 아침 조식이 있는지 물으니 가능하다고 한다. 20위안 조식을 어떻게 먹는지 다시 물어보니 핸드폰으로 결제를 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메이요."
현금밖에 없다고 하니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조식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주문 결제하는 시스템인가 싶다.
570Km가 남은 중국과 몽골의 국경, 중국의 얼렌하오터까지의 경로를 잡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피곤하게 쓰러졌던 이틀 전의 많은 수면 탓인지 새벽까지 잠 못 이룬 밤의 피곤함이 조금은 덜하다. 8시가 조금 넘어 식당으로 내려간다.
삼 일째 같은 메뉴지만 소시지와 베이컨 그리고 계란 후라이는 언제나 진리다.
5일 동안 라이딩을 하지 않은 탓인지, 헛헛한 마음탓인지 좋은 아침 메뉴임에도 입맛이 별로 없다. 한 접시를 먹는 둥 마는 둥 비워내고 방으로 돌아온다.
아직 결정을 하지 않은 오늘의 목적지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에 빠진다. 이화원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이화원과 원명원 그리고 베이징대학의 컴퍼스를 구경할지, 만리장성이 있는 창핑구까지 이동하여 팔달령장성을 관광할지, 처음의 일정대로 옌칭현까지 이동하여 몽골로 향하는 길을 이어갈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왕푸징에서 20km 거리에 있는 이화원 근처의 숙소들을 검색하다 비싼 숙박비에 비해 오래되고 낡은 시설들을 보고 이화원 관람을 포기한다. 숙소를 옮겨 베이징에서 하루 정도 더 머무를까 싶지만 여전히 관광지로써 베이징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자. 몸도 풀 겸 창핑구까지 40km 정도만 이동하지 뭐."
3일 동안 머물렀던 숙소의 짐들을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 무거워지고 빵빵해진 패니어들을 메고 낑낑대며 프런트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바람이 빠진 타이어에 열심히 펌프질을 한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자전거가 어색하다.
11시 늦어진 출발, 왕푸징을 출발하여 중국미술관, 징산공원, 북해공원을 지나 베이징시를 빠져나갈 것이다. 40km의 시내 라이딩이라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이동한다.
북해공원을 지나자 관광객들과 차량들로 복잡했던 도로는 조금은 한적하게 바뀐다. 쌀쌀한 바람 사이로 어느 가을날처럼 푸르고 뭉실거리며 떠다니는 구름의 하늘이 예쁘다.
"복잡한 전기레일을 따라 어떻게 버스가 움직이지? 안 꼬이나?"
"하늘을 봐. 널 닮은 하늘이 참 좋다."
창핑구로 향하는 시외길의 하늘에는 회색빛의 웅장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지면 가까이 이내 내려앉을 것 같은 구름에 짧은 감탄이 새어 나온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도로길의 라이딩, 힘이 없는 페달링을 달래주는 베이징의 하늘이다.
"너무하네. 바로 밑의 지방은 매일처럼 흙먼지가 날려 뿌연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데."
평속 10km의 느린 라이딩에도 짧은 거리 탓에 일찍 창핑구에 도착한다.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한가롭고 조용한 도시의 느낌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꼭 이만큼의 거리일까? 참 얄궂다."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문제없이 체크인을 한다. 자전거의 보관을 묻는 질문에 흔쾌하게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라며 안내해 준다.
호기심 가득 지켜보던 중년의 직원은 엄지를 세우며 인사를 건넨다.
기역자 모양의 4층 건물. 양쪽으로 길게 뻗은 숙소의 복도가 끝이 어딘지 궁금해진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그냥 침대에 널브러진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새로 받은 노트북도 세팅하고 필요한 프로그램도 설치해야 하고, 패니어의 짐들도 다시 분배를 해야 하고, 몽골까지의 경로도 잡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게으름병이 걸렸나 보다.
"수염을 잘라서 그런가? 밋밋하고 허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네."
내일 이동할 경로를 검색하는데 고덕지도가 팔달령에 있는 만리장성을 관통하는 경로를 안내한다.
"어? 이 길로 갈 수 있는 건가? 만리장성을 자전거로 넘을 수 있다고?"
팔달령장성을 관통하는 S216 도로가 늘어져있던 호기심의 말초신경을 톡톡 건드리며 정신 차리라며 밑밥을 던진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프런트로 내려오자 프런트의 직원들이 내 모습이 재미있는 듯 나를 보며 웃는다.
숙소 주변의 빵집에 들러 간단히 먹을 중국의 제과빵들을 사고, 슈퍼에 들러 환타와 초콜릿 비스켓을 사든다. 중국의 편의점은 대부분 넓은데 휑하니 물건들이 없다.
저녁으로 먹을 밥을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 들러 포장을 한다. 중국의 식당은 물도 없고 특별한 밑반찬도 없기 때문에 포장을 해서 먹나 식당에서 먹나 별반 차이가 없다.
19위안 물고기 향이 나는 돼지고기 덮밥인데 콜라 한 캔을 함께 준다.
"밥을 먹는데 콜라는 주는 신선한 조합은 뭐지. 마음에 드는데."
숙소로 돌아와 프런트 직원에게 S216 도로의 경로를 보여주며 자전거로 갈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모른다고 대답한다.
포장해온 덮밥은 맛이 좋다. 우리의 김밥천국 같은 곳의 웬만한 메뉴들보다 훨씬 괜찮은 맛이다.
"이 퀄리티로 편의점에서 팔면 완전 대박 나겠는데."
S216 도로의 경로를 구글지도와 고덕지도를 번갈아 가며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지를 계속 확인한다. 팔달령을 향하는 길은 기찻길과 고속도로 그리고 S216 도로가 있다.
S216도로는 두 갈래로 나누어져 하나는 터널을 통해 팔달령을 지나고, 하나는 팔달령 관광지를 관통하여 지상으로 지나간다.
"뭐 고도는 7~800미터쯤 될 것 같고, 이대로라면 만리장성을 지나 팔달령을 넘어갈 수 있겠는데."
팔달령의 고도를 알아보기 위해 구글지도로 경로탐색을 하는데 구글지도는 팔달령을 넘는 도로가 아닌 터널을 통과하는 경로만을 안내한다. 700미터가 약간 넘는 팔달령의 높이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위성지도로 전환하여 도로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만리장성을 도로가 어떻게 통과하는 거야?"
만리장성 부근을 확대하니 일반 중국의 성들처럼 장성의 문을 통과하여 도로가 지나간다.
"일단 도로는 이어지는데, 중국의 5A급 관광지인데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들어갈 수 있나?"
구글지도를 끝까지 확대를 하고 S216 도로를 따라 길들을 살펴본다. 주차장을 가득 매운 버스들과 도로를 따라 점선으로 길게 이어진 버스의 행렬 그리고 주차장에서 만리장성까지 이어진 도로 위에 찍혀있는 수많은 검은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 이거 사람이잖아."
만리장성의 위와 주변의 지역에 빼곡하고 불규칙하게 찍혀있는 점들은 만리장성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마도 주차장 이후로 차량통행은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 그렇지. 이러면 나가린데!"
4시간 넘도록 고민하고 검색했던 노력이 헛되이 사라져 버린다.
"국내라면 미친 척 가보고 싶다만 중국이라 그럴 수도 없네."
새 노트북의 기본적인 세팅을 하고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놓은 후 3시 되어 겨우 잠이 든다.
숙소를 연장하려 트립닷컴에 접속하니 숙소에 방이 없다. 하루를 보내고 만족스러우면 이틀을 연장하려고 했는데 단체 손님이 들어왔는지 7만원이 넘는 방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검색되질 않는다.
"아, 몰라. 프런트에서 해결하자."
아침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자전거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볼수록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정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빨리 뒤돌아서 식당으로 향한다.
"햇볕이 좋은 아침이다."
아침을 하는 곳의 메뉴판을 한 번 째려보고 번역기로 메뉴들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사람들이 식판에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찬을 놓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 반찬 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하여 주문을 하는 것 같다.
两荤一素, 一荤两素.
"고기요리 둘 그리고 뭐지? 오케이, 이해했어. 고기반찬 두 개, 풀반찬 하나"
계산대로 가니 어제 봤던 어린 여자 직원이 나를 보고 또 왔냐는 듯 빙긋이 웃는다.
两荤一素를 주문하고 배식을 하는 주방에 주문표를 준다.
식판에 큼지막하게 밥을 퍼주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러 반찬 중 육해공을 하나씩 선택한다.
언제나 푸짐한 중국의 밥 인심.
중국의 생선은 잔가시가 많아 먹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잔가시를 뱉어내며 먹고 있으니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앞자리에 앉더니 물고기 이름을 알려준다.
크게 관심이 없어 예의상 한 번 더 물어보고 흘려듣는다.
"역시 생선은 구워야 맛있는데."
밥을 먹는 사이 식당에 사람들이 붐빈다. 11시가 넘으니 다들 점심을 먹으러 오는가 싶다.
아침을 먹고 나니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오늘은 그냥 침대에서 뒹굴뒹굴해야겠다."
프런트에 숙박연장을 하고 싶다 얘기를 하니 방이 없다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지금은 방이 없어요. 방이 나면 옮길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숙박하고 있는 방은 다른 예약이 있어 방을 옮겨야 한다고 안내를 해준다. 체크아웃 시간이라 매우 바쁜 직원에게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해달라 부탁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숙박비를 내기 위해 현금을 찾으러 고덕지도를 검색해 주변에 있는 공상은행으로 걸어간다.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하는 신형 ATM 기기에서 1,000위안을 찾아 돌아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노점에서 파는 한라봉처럼 보이는 큰 귤 세 개를 담아 10위안에 사든다.
숙소 프런트의 여직원은 여전히 바쁘다. 잠시 프런트 앞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방으로 들어온다.
30분쯤 후, 전화벨이 울리고 여직원은 몇 마디 중국어를 하고 말을 이어가질 못하겠다.
"I will get down. 아니, 워 시아."
'我下' 했더니 알아들은 듯 OK 하며 대답한다.
여직원은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려 방들을 안내한다. 표준 방, 큰 방, 창문이 없는 방이 있고 지금 묵고 있는 방은 없다고 한다.
"뭐 일단 방이 있으면 됐다. 얼마?"
238, 438, 238위안. 방들을 보고 결정을 하라 안내를 한다. 1층과 2층에 있는 방을 보니 지금 묵고 있는 방에 비해 작고 급이 낮다.
"2박 3일로 예약을 하지 않은 내 탓이니 어쩔 수 없지 뭐."
1층의 표준 방으로 결정을 하고 숙박비를 결제한다.
"I'll stay two more days. How much is it?"
계속 난감해하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여직원이다.
"아냐. 내가 잘못했어. 뚸 샤오 치엔?"
웃으면서 계산기로 238를 적어 보여준다. 그냥 암산으로 더하면 될 것을, 그것도 귀찮아서 다시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얼티엔."
못 알아듣는 여직원.
"이틀이 중국어로 뭐야?"
그제서야 번역기로 两天을 보여주니 '아' 하며 방긋 웃는다.
처음부터 번역기를 사용하면 편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몸짓으로 표현하고, 이것저것 아는 말들을 내뱉고, 그리고 소통이 안되면 번역기를 사용하게 된다.
타인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것, 또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애틋한 행위인지를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어줬더라면, 한 번 더 바라봐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고작 밥 한 끼, 하룻밤 잠자리에 이렇게 정성인데 말이야."
결제를 하고 고생스럽게 응대를 한 여직원에게 한라봉 하나를 건네주니 다이아 반지라도 받은 것처럼 좋은 웃음을 지어준다.
"방을 청소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20분 후, 여직원의 연락을 받고 짐들을 정리해 4층 방을 나선다. 건너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한라봉 하나를 건네다.
청소 직원도 너무나 좋아하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이거 한라봉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귀티 나서 그런 거 아냐?"
패니어 두 개를 덥석 들어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주며 인사를 하고, 안내를 위해 4층까지 올라와 기다리던 다른 프런트 직원에게 패니어를 인계한다.
"你是韩国人吗?"
눈을 마주치며 호감 있게 웃는 여직원은 방문까지 패니어를 옮겨주고 환영의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欢迎来到中国."
"아놔, 왜 중국어가 자꾸 들리지."
방을 옮기고 베이징 시내의 관광지들을 검색하다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고덕지도에 천안문과 함께 아이콘으로 표시된 탑모양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천단공원(天坛公园), 한 번 가볼까?"
숙소에서 버스로 4정거장 거리에 있어 부담도 없고 산책 겸 천단공원으로 간다.
베이징 시내의 버스 정류장에는 바닥에 버스가 정차하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2위안짜리 기다란 버스를 타고.
천단공원 동문으로 가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중국 기준으로)
일단 공원의 대략적인 모양과 입장료를 확인하고.
비수기와 성수기 요금이 다른 것 같은데 11~3월까지는 비수기에 해당되나 보다. 공원입장료가 10위안, 기년전과 회음벽, 원구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입장료가 28위안이다.
잠시 입장료를 살피는 사이 한가하던 매표소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방심했네. 여기는 중국."
중국 사람들이 표를 사며 신분증을 제시하길래 나도 여권을 꺼내어 보여주고 28위안 표를 구매한다.
"천국의 사원이라, 그럼 들어가 볼까."
향나무가 들어선 긴 산책로가 이어지고.
탑으로 향하는 길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원 입구의 우측으로 체육시설 같은 것이 놓여있고 중국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기년전으로 가는 통로에 사람들이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공짜인가?"
길게 이어진 통로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남녀노소 섞인 채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너무나 많이 봐왔던 모습이라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고 기년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통과한다.
넓은 광장 위로 뾰족 솟은 원뿔 모양의 천단의 기년전.
진청색의 기와와 처마들, 붉은 문과 기둥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천단(天坛) 천단은 제천의식, 즉 오곡풍양(五穀豊穰)을 위한 기우제와 풍년제 등을 올리기 위해 1420년 명대의 영락제가 건설한 제단이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천단(天坛), 북쪽에는 지단(地坛), 동쪽에는 일단(日坛), 서쪽에는 월단(月坛)이 있어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천단은 황실 최대의 제단이었다. 이후 낙뢰로 소실되었다가 1896년에 재건되었으며 황제의 상징인 용보다 황후의 상징인 봉황이 더 크게 조각된 것은 당시 서태후의 권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지식백과)
붉고 화려한 기둥, 은은하지만 강렬한 색의 처마들과 황금빛 용 문양들이 검은 제단과 함께 웅장하게 느껴진다.
기년전(祈年殿) 명대에서 청대까지(1368~1911)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축전(祝殿)으로 베이징(北京) 천단(天坛)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축물이며 1420년 착공되었다.(지식백과)
"화려하다. 그런데 무언가 재미가 없다."
뒷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감동은 없었지만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옛 중국 관료들의 모자 같기도 하고."
천단의 뒤편으로 황첸덴(皇乾殿, 황건전)이 들어서 있다. 왠지 모르게 작게 느껴진다.
안쪽에 검은 제단이 놓여있고 천장의 무늬들이 독특하고 화려하다.
기년전으로 들어가는 기년문을 지나 단비차오(丹陛桥, 단폐교)를 걸어 원구가 있는 성정문으로 향한다.
단폐교 위로 관광객들이 붐볐지만 400미터 가까운 길이의 넓은 공간이 여유 있게 보인다.
단폐교(丹陛桥) 길이가 360m이며, 지면에서 4m 높이에 있고, 폭은 30m이다. 가운데에 돌이 깔린 길을 '선루[神路]'라고 하여, 천제(天帝)만이 다니는 길로 정하였다. 동쪽의 벽돌이 깔린 길은 '위루[御路]'라고 하며, 황제(皇帝) 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왕공대신(王公大臣)은 서쪽에 있는 '왕루[王路]'로만 다닐 수 있었다. (두산백과)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들이 용꼬리 같은 깃발들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용꼬리야? 붕어꼬리야? 귀엽네."
공원입장 시 한 번, 천단 입장 시 한 번.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구멍이 하나씩 뚫린다.
"길긴 길다. 걷다가 지치네."
성정문을 지나니 오래된 향나무 사이로 원형의 돌담이 나온다.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공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원구를 가기 위해 마지막 게이트를 통과하고.
"대체 뭐가 있길래?"
원형의 돌담, 회음벽 안으로 중앙에 원형의 사당과 좌우 양편에 직사각형의 사당이 놓여있다.
회음벽(回音壁) 황충위[皇穹宇]의 담장으로, 돌을 간 다음 쌓아 만들었으며, 담장 위에는 남색 유리기와를 얹었다. 두 사람이 둥[东], 시페이뎬[西配殿] 뒤편에 나누어 선 다음, 벽에 기대어 서서 벽 가까이에 대고 북쪽을 향해 말하면, 소리가 담벼락을 타고 전해져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두산백과)
좌측이 서배전(西配殿), 우측이 동배전(东配殿)인데, 그곳에 서서 천단 방향으로 말을 하면 벽을 타고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여 회음벽이란다.
"싱겁기는, 누가 있어야 팩트체크를 해보지."
회음벽 중앙에 원형의 환충위(皇穹宇, 황궁우)가 위치해 있다. 기년전의 미니미처럼 모양과 색이 비슷하다.
동배전 내부에 제단이 놓여있고, 천장과 기둥 그리고 문살이 독특하고 예쁘다.
기년전을 축소해 놓은듯한 황궁우.
회음벽 건너편의 원구로 넘어간다.
원구의 문이 조이고.
넓은 광장에 놓인 3단의 석조단인데 사당이나 누각 같은 것이 없고 하늘이 열려있다.
원구(圜丘) 한백옥(汉白玉)으로 된 3층의 기단(基坛)으로 황제가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제사를 올릴 때 기단 북쪽의 황궁우에 선대 황제의 위패를 안치했다. 원구의 계단과 포석, 난간의 수는 9의 배수로 되어 있다.
용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원구에 오르니 사람들이 정중앙에 놓인 돌 위에 서서 기도를 하거나 기념촬영을 한다.
천심석(天心石), 원구 중앙에 놓인 돌로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넓고 넓은 천단공원을 구경했는데 버스가 있는 동문까지 다시 걸어갈 생각을 하니 다리가 무겁다.
원구의 게이트를 빠져나와 단폐교를 걷지 않고 향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진 산책로를 따라 동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곳 주민이라면 매일처럼 산책을 하고 싶은 길이다.
어깨 높이로 내려온 향나무 가지들을 천천히 걸으니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 비밀스럽고 좋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대각선으로 이어지던 길은 천단으로 들어섰던 곳으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인간의 헛된 욕망들을 지켜봤을 향나무.
동문을 빠져나오기 전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던 곳으로 걸어간다.
지난 과거의 유물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
체육 시설이 놓여있고 여기저기에서 제기를 차느라 바쁘고 즐겁다.
"아놔, 이 귀여운 중국인들."
열심히 제기를 차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제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제기를 차는 사람들의 흐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호기심만을 증폭시키며 기다렸지만 제기차기가 끝나질 않는다.
한참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뒤편 난간에 제기가 꽂혀있는 쇠줄이 눈에 들어온다.
배드민턴 공처럼 철사를 꼬아 제기 보관틀을 만들었다.
"아이디어, 완성도, 편리성 최고!"
네 갈래의 큰 깃털로 날개를 만들고.
밑 머리는 고무.
그리고 중간에 딱지 같은 양철 조각을 넣어 맛깔스러운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제기를 차는 소리가 묵직하여 적당히 무게감이 있을 줄 알았은데 생각보다 가볍다.
겹으로 분배해 놓은 고무와 양철 조각이 묵직한 타격음을 만들 뿐 제기를 차며 발등이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얀 깃털 사이로 작고 부드러운 갈색 깃털을 추가하여 모양을 낸 것도 있다.
제기를 구경하고 동문으로 걸어가다 소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알록달록한 제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인다.
할머니와 공원을 산책 후 돌아가는 길인듯.
"웨이, Show me this."
할머니가 웃으며 보여주라고 하니 의아해하며 제기를 전해준다.
"알록달록한 게 이쁘네."
예쁜 모양의 제기는 어른들이 차던 제기와 달리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제품 같다.
"시에 시에, 고마워, 땡큐!"
여전히 이 사람은 뭔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할로'를 하라며 웃는다.
동문에 도착하니 땅끝으로 석양이 시작된다. 가볍게 산책을 나와서 급 피곤해진 오후다.
버스를 타기 전 할배네 햄버거를 사 가려고 들린다. 베이징이라 외국인들이 가게 안에 많이 있다.
어제 베이징 시내의 초입에도 주문을 아주머니가 받아 소통이 어려웠는데 여기도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는다.
말없이 주문대 위에 놓인 그림을 가리키며 37위안을 꺼내어 준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고.
식당에 들러 메뉴판을 째려본 뒤.
토마토 계란 볶음 덮밥을 시켜 먹었다. 토마토와 케찹맛이 전부였다.
"자전거도 안 타는데, 너무 많이 먹는가."
식당과 숙소 사이에 작은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데 들어오라며 손짓을 한다.
"워쓰 한궈렌, 밍티엔."
손가락 가위 모양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제스처를 하니 맞다며 하며 웃는다.
심심한데 내일 이발이나 해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사진들을 업로드하는데 와이파이가 너무 느리고 접속이 자주 끊긴다.
"방이 조금 안 좋아졌다고 와이파이까지 차별할 필요는 없잖아."
몇 분이면 될 업로드를 하느라 프런트를 왔다 갔다 하며 신호를 잡는다.
밤늦게 출출해져서 포장해온 할배네 햄버거 세트를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순서대로 꺼내어 먹는다.
"치즈파이, 치킨 3조각 그리고 하이라이트 햄.. 버. 이건 뭐냐?"
두툼한 치킨버거는 없고 무슨 밀가루 전병 같은 것이 들어있다.
"소고기 오방? 넌 뭐니!"
멘붕이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문할 때 찍어놓은 메뉴판 사진을 핸드폰으로 다시 확인하니 이것을 주문한 것이 맞다.
세트 넘버 1을 말하는 게 귀찮아 언뜻 보이는 메뉴판을 가리켰는데 햄버거가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