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메이-세미온노브카
하루 휴식을 마치고 파블로다르로 향해 간다. 한여름의 무더위, 힘든 라이딩이 될 것 같다.
9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편한 잠자리인데 마음이 뒤숭숭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데, 오늘의 기온도 34도를 예보하고 있고 벌써 29도를 찍고 있다.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어제 숙소에 들어왔던 바이크 여행자가 인사를 한다. 일본인 바이커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려는데 패니어가 방안에 있다.
나탈리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같이 찍자!"
나탈리나는 환하게 웃으며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친다.
"뭐, 여성성 강조 같은 거야?"
10시 45분, 늦은 출발이지만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의 식당으로 갔지만 영업 전이고, 슈퍼를 찾아 도로에서 벗어나 시내의 골목으로 들어간다.
슈퍼에서 물과 요거트, 빵을 사서 패니어에 넣고, 사람들에게 식당을 물으니 조금 멀리 있다.
"시내 외곽에 식당 하나쯤 있겠지. 출발!"
10분 정도 파블로다르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는 사이 세메이의 시내가 끝나버린다.
"힝, 이게 아닌데."
아침을 포기하고 길을 따라가는 동안 지나가는 차량들에서 반가운 인사들을 건넨다.
조금 전에 지나간 빨간 소형차가 멀리서 정차를 하고,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세운다.
가볍게 악수를 청하더니 무어라 말하며 1,000텡게를 건네준다.
"스바시바!"
현수막에 그려진 메뉴를 주문하고 빵과 차를 묻는 질문에 차가운 것을 달라고 하니 러시아의 카바스 같은 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따라준다.
호텔을 출발하여 40분 정도밖에 안 움직였지만 시원한 음료 한 잔에 밀려든 갈증이 내려앉는다.
잠시 후 면에 소고기가 올라간 음식이 나오고, 800텡게 요리인데 카자흐스탄은 음식값이 싸지만 대신 양이 조금 적은 편이다.
"오, 츤데레!"
파블로다르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 숲을 가로지르고.
앞서가던 자동차가 서더니 밝게 웃는 아저씨가 손을 흔든다.
"코리안?"
차에서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내리며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젊은 여자는 한국의 아이돌이라도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
여자에게 명함을 주니 작은 환호성까지 지른다.
"이러다 오늘 내 목적지를 갈 수 있을까?"
여전히 도로의 상태가 아쉬운 세메이 외곽의 소나무 숲을 따라가고, 숙소에서 만났던 일본인 오토바이가 지나가며 손을 흔들며 지나친다.
잠시 후 주유소에서 기다리는 일본인 일행에게 인사를 하며 자전거를 세운다.
일본인 둘과 인도인, 일본 친구들은 유럽으로 그리고 인도 친구는 인도로 가기 위해 오늘 파블로다르로 이동한다고 한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행운을 빌며 인사를 한다.
"이틀 반나절이면 되려나."
구조물에 새겨진 조각상이 특이하다. 유목 농경민을 상징하듯 남과 여 그리고 밀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녯가즈가 아니고 다른 말로 부르는지, 어쨌든 말을 알아들은 아주머니가 물을 골라 준다.
요염한 사자상 옆에서 콜라와 물을 없애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차량 한 대가 정차한 후 인사를 하고 물을 가리키며 뭔가 제스처를 하더니 슈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슈퍼에서 나온 남자들은 큰 생수와 해바라기씨 봉지를 건네준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니 와츠앱으로 사진을 보내달라며 친구를 맺자고 한다.
"뭐가 이렇게 유쾌해."
"다름 마을이 25km 정도에 있으니 거기에서 요기를 해야겠다."
마을을 벗어날 때쯤 하늘이 흐려지며 따가운 햇볕이 구름 뒤로 숨는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 자전거의 속도를 줄여놓았지만 더위와 갈증이 사라진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네."
"거의 온 것 같은데, 당 떨어진다."
"어떻게 읽는 거야. 베스카라가이?"
이곳은 마을의 도로 건너편에 공동 묘지의 모습이 보인다.
5시, 오늘의 목적지 세미온노브카까지 30km 정도가 남았다. 늦게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뭐야? 불안하게."
강풍은 거세지고 모래가 날리며 종아리를 따갑게 때려댄다. 휘청거리는 자전거, 마주 오는 화물차의 역풍은 좌우로 자전거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지나치는 화물차는 자전거를 빨고 들어간다.
"뭔가 익숙한, 너무나 잘 아는 이 느낌."
이곳저곳에서 모래 먼지가 날리며 돌풍이 불어온다.
여전히 바람이 불어 8km 정도의 이동 속도를 만들어 놓지만 앞쪽의 하늘은 맑아지기 시작한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고.
"몽골이냐!"
비가 내리려고 요란스럽게 바람이 불었나 싶다.
하늘빛은 한두 방울 떨어지다 말 것 같고, 비가 내린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밝게 변하는 하늘을 보며 열심히 페달링을 하던 중 앞쪽에 SV 차량이 정차하고 세 명의 남자가 인사를 한다.
손 인사를 하며 지나치니 잠시 후 나를 지나치며 음료수 병을 들고 흔들어 댄다.
다시 앞쪽에 정차를 한 남자들과 인사를 하고 정중하게 음료수를 받아든다. 냉기가 완벽한 시원한 음료는 천국의 선물이다.
남자들과 사진을 찍고 악수를 나눈 후 헤어진다.
손을 흔들며 떠나는 멋진 남자들.
시원한 음료수를 정신없이 들이마시고 도로변의 해바라기와 잠시 대화를 나눈다.
도로변 좌측으로 높은 통신탑이 세워져있고 마을의 실루엣이 나무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7시 40분, 갑작스러운 바람으로 속도가 줄어 늦게 세미온노브카에 도착할 것 같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을 지나며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야, 이놈이 마음에 드는데. 카자흐스탄 음료는 너로 결정했다."
천천히 해가 떨어지고,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맵을 켜니 도로 멀리 들어가 있던 곳이 세미온노브카다.
"잉? 지나온 겨?"
마을의 초입에 적혀있는 지명이 달라 세미온노브카로 가는 중의 작은 마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길을 지나친 후다.
"네트워크도 약하지만 잡히고, 나무들 사이가 좋은데. 오늘은 그만 가자."
물을 끓여 라면에 붓고, 전투식량은 고체연료를 태워 데운다.
오랜 세월 러시아의 지배로 유목 농경을 하던 민족의 독특한 문화유산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어쩌면 카자흐스탄의 위대한 유산은 카자흐스탄의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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