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6일 / 맑음 ・ 16도
처이르-볼러
아침에 양고기 만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간져와 아침식사를 하고 12시가 되어 처이르를 떠난다.
8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깨어 감바를 기다렸지만 어젯밤 가져간 맥주를 다 마시고 잤는지 약속했던 8시까지 탁구장에 오지를 않는다.
바깥쪽에서 문이 잠겨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탁구장 문을 열며 감바가 들어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두르는 모습이 출근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다.
간져와 통화를 하던 감바는 서둘러 간져의 집으로 안내하고 짧은 인사만을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감바, 술 조금씩 마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해주는 간져, 웃는 얼굴이 꽤나 귀엽고 호감 가는 인상이다. 감바의 집과 형태가 똑같은 집이지만 젊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간져의 막내딸은 어린이집에 갔는지 보이질 않고, 키가 180Cm는 될 것 같은 14살의 큰 아들과 둘째가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이어지는 처이르의 아파트 구조.
"신발을 벗어야 하는 거야? 신어야 하는 거야?"
침대가 놓인 안방과 거실 그리고 부엌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안방에서 간져가 건네준 사진첩을 보고 있는 사이 간져는 만두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한다.
간져의 아내는 어릴 때 배구를 했고, 간져는 몽골 씨름을 하던 집안이다.
20살 시절의 간져와 그의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는 몽골 씨름 챔피언이었나 보다.
"간져, 너 역변한 거니?"
냉장고에서 양고기의 살코기와 기름 부위를 꺼내어.
두꺼운 손으로 제법 능숙하게 칼질을 한다.
180Cm에 가까운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필요한 재료들을 사 오게 하고.
살코기를 잘게 썬 후 적당량의 기름 부위를 썰어 놓는다.
우유를 냄비에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끓이고.
가스 시설이 없는 몽골에서는 전기 렌지를 사용한다.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몽골에서 쓰는 향신료와 후추를 뿌리고.
약간의 물을 넣어 잘 버무려 놓는다.
큰 물통을 들고나갔던 큰아들이 물을 가져오고, 몽골에서는 큰 물통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간져, 네 아들은 농구나 배구를 해야 할 것 같아."
"농구를 하고 있어."
또래들에 비해 키가 큰 간져의 아들은 농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두 피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붓고.
적당히 물을 부어가며 밀가루 반죽을 만든다.
우유가 끓어오르자 국자로 수차례 떠서 붓기를 반복한 후 불을 끈다.
보온병에 우유차를 담아놓고.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고.
납작한 만두피를 하나 만들어 놓더니.
반죽의 상태가 좋은지 본격적으로 만두피를 만들어 놓는다.
따듯한 우유차를 한 잔 내어주고.
만두피에 다진 양고기를 넣고 오물오물 만두를 빚는다.
"간져, 너 많이 해봤구나."
처음 떼어낸 밀가루 반죽으로 커다랗게 만두를 빚더니.
두 번째 반죽으로는 조금 작은 만두를 빚어놓는다.
찜통에 빚은 만두들을 올려놓고.
맛있는 냄새가 나도록 만두를 삶는다.
맛있는 냄새가 날 때쯤 찜통의 뚜껑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는.
하나씩 예쁘게 접시에 올려놓는다.
몽골에서 파는 김치와 오이 피클, 케찹과 마요네즈를 꺼내놓고.
한 시간 반 만에 맛있는 양고기만두 식탁이 차려진다.
추르릅, 양고기의 육즙이 흘러내리는 맛있는 양고기만두로 아침 식사를 한다.
양고기만두를 먹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찾던 간져가 반찬통을 꺼내어 만두를 넣고, 오이 피클을 담는다.
"가면서 먹으라고? 아, 이 센스 있는 남자를 어떻게 한다니."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준 간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울란바토르를 향해서 출발한다.
12시, 처이르의 입구까지 배웅을 해주는 간져와 포옹을 하고 동남풍이 불어 오늘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야! 바람. 맞바람이 불듯이 강풍으로 밀어야지."
몽골 남부의 바람은 북서풍이 불때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남동풍이 부는 날에는 살랑살랑거리듯 바람이 잠잠하게 느껴진다.
처이르에 이르며 갓길이 사라며 도로의 상태는 나빠지고, 밑도 끝도 없는 초원의 평지 길은 여전히 계속 이어진다.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왜 배가 고프지."
이틀 전 감바를 만나며 사두었던 빵을 꺼내어 먹었다. 별 기대 없이 상하기 전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맛이 좋다.
"도대체 이놈의 땅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빵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잠시 쉬기 위해 갓길로 들어서며 철심 같은 것이 박혔나 보다.
"아놔 몰라. 천천히 쉬어갈 테다."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했던 맞바람이 불지 않으니 왠지 모를 여유가 생겨난다.
펑크를 정비하고 천천히 길을 따라 이어간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길은 계속 이어지고.
평평했던 초원의 길은 이전과는 다른 산의 모양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도 맛이 괜찮으려나?"
고비숨베르에서 토브로 넘어가는 경계가 높은 언덕 위로 나타난다.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식당이 초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고, 간져와의 아침식사로 출발이 늦어져 오늘의 목적지인 바가항가이까지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작은 다리의 난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쉬어간다.
"여기에 텐트를 쳐볼까? 장소도 넓고 괜찮은데."
다리 밑으로 나있는 가축들의 이동 통로에 텐트를 칠까 생각하다 포기하고 바가항가이에 이르기 전 도로변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길을 이어간다.
"20km만 더 가볼까. 100km는 채워야지."
일몰이 시작되고 조금씩 체력이 지쳐갈 때쯤 철도변의 작은 마을과 구글맵으로 검색이 되었던 식당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저기가 식당인데."
몇몇의 화물 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도로변의 식당이 맞는 것 같다.
건초더미와 소를 싣고 있는 한국에서 사용되던 중고 포터 트럭이 식당 앞에 정차되어 있다. 몽골의 승용차는 일본의 도요타를 많이 타는 것 같은데 트럭과 미니 승합차 같은 것은 한국의 중고차량들이 많은 것 같다.
식당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동안 화물차 기사들과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몽골 사람들이 회화에 소질이 있나?"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 안은 조금씩 사람들로 붐비고, 군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이 메뉴를 고르기를 기다린다.
메뉴 사진들이 있으니 음식을 주문하기가 너무 편하다.
"고기, 고기가 필요해."
면과 밥, 고기, 만두 등의 메뉴들 중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계속 먹어왔던 양고기볶음을 주문한다. 무언가를 추가로 할 것인지 물어보려던 여직원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더니 포기한다.
"이 근처에 호텔이 있나요?"
단체 손님들의 주문이 끝나고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쪽의 계단을 가리킨다.
"아, 여기도 식당과 숙박을 같이 하는구나."
일단 배고픔을 달랜 후 체크인을 할 생각으로 숙박비와 방을 정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온다.
언제나 밥보다 고기의 양이 많은 몽골의 메뉴.
"밥은 왜 이렇게 주는 거야? 최신 트렌드인 거야!"
밥을 모두 먹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다가가 숙박비를 물어보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산기에 30,000~40,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방이 여러 개 있는 건가? 요금이 다르네."
객실마다 요금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로 물어보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X를 그린다.
"방을 보고 결정을 해야지? 방을 보여줘!"
어렵게 번역기를 돌려 방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주니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계속 설명을 한다.
"나 몽골어 못 해!"
여직원의 말이 끝나고 번역기를 보여주는 순간 나와 여직원은 한참 동안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하니? 하하하하하."
여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한참을 웃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한다.
"툴가야, 여기 작은 식당의 호텔인데 방을 보자고 하니까 안 보여줘."
여직원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 툴가가 여직원의 말을 전해준다.
"형, 거기는 호텔이 아니고 울란바토르 방향으로 30km 정도 가면 호텔이 있다고 해요."
"헐!"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직원은 식당에서 난데없이 방을 보자고 하니 재미있어 웃었고, 나는 몽골어를 못 알아듣는데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 귀여워서 웃었던 것이다.
어쨌든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툴가에게 식당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부탁을 해달라 말한다.
"근처에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치라고 하네요."
"아무데나? 아무데나는 어느 정도의 범위야?"
식당의 앞마당에 짐을 풀고 있으니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들을 건넨다. 명함을 주며 여행 경로들을 설명도 해주니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기도 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공용 화장실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편하게 정리한 후.
텐트로 돌아오니,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관심을 보이던 인상 좋은 아저씨가 그의 와이프와 함께 텐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다. 살짝 텐트의 내부를 보여주니 텐트와 안쪽 바닥 등을 만져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는다.
제법 쌀쌀하고 추운 저녁의 날씨, 텐트에 들어가 자료들을 정리하는데 조금 전의 아저씨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텐트를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니 자기네 집으로 가서 자자는 제스처를 한다.
"여기 따듯해요."
그의 와이프까지 와서 뭐라고 몽골어를 말하며 텐트가 춥다는 뜻의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손을 가로저으며 텐트가 따듯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계속하고 있으니 아저씨는 나의 손을 만져보고 안 된다는 듯이 집으로 가자는 제스처를 계속한다.
핸드폰으로 자료를 정리하느라 손이 조금 차가워졌을 뿐인데.
"바엘샤, 감사합니다."
마음을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면서 괜찮다는 제스처로 웃고 있으니 아저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저씨를 따라 몽골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짐들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오랜만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오늘은 편하게 텐트에서 자고 싶어."
"하루 종일 네가 그리워서 꾹꾹 참았다."
추운 날씨에 자동 냉장이 된 레츠비를 마시니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
"힝, 몇 개 더 사둘 걸 그랬나."
간져와의 아침 식사, 거친 바람이 없던 한가한 라이딩, 시원하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여직원과의 대화 그리고 푸근한 인심을 느끼게 해준 아저씨까지 오늘도 제법 근사한 날이다.
"몽골에서 근처는 도대체 몇 Km의 거리일까?"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몽골(19.04.14~07.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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