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8일 / 맑음 ・ 11도
도르고비
어제의 서풍에 이어 오늘은 거센 북서풍의 맞바람이 불어온다. 가는길을 마저 멈추고 바트보르드의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다.
기차의 기적 소리와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새벽에 잠시 깨었다 이내 잠들었다.
"오늘도 틀렸네. 잠이나 푹 자자."
딱히 불편할 것 없는 잠자리다. 다시 잠이 깨어 바람을 확인하러 밖에 나가니 예보대로 강한 북서풍이 거칠게 불어온다.
"바트, 응가는 어디서 해?"
기찻길 옆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담들이 쌓여있는 곳을 가리킨다.
북쪽으로 쌓여있는 돌담을 골라 자리를 잡고 광활한 초원에 수줍은 엉덩이를 까 보인다.
"거름을 뿌렸으니 풀들이 잘 자라겠어."
방에 누워 핸드폰으로 자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바트는 바쁘게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바트, 빼곡하게 점검 일지 같은 것을 채워 넣는다.
"바트, 커피 한 잔 마실까? 한국 커피."
물을 끓이고 대접에 커피를 따라 놓으니 바트는 다시 나가봐야 한다며 집을 나간다.
햇볕이 따듯한 문 앞에 앉아 늙은 개와 대화를 시도한다.
"너, 그러면 안 돼. 성격 나빠진다."
간간이 느린 기차만이 더 느린 초원의 시간 속을 지나가고.
12시가 넘어 돌아와 그릇에 가득 물을 부어 커피를 마시는 바트에게 점심을 먹자며 빵과 잼을 내놓는다.
하나씩의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니 뭔가가 허전하다.
"역시, 난 고기를 먹어야 해."
바트에게 저녁을 사줄 겸 자민우드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일을 해야 해서 나는 못 간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더 확인하기 위해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자고 의사를 전달했지만 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루 종일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네."
택시를 부르면 온다고 해서 자민우드로 나가 고기를 사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내일은 남풍이 불어온대, 그러면 나는 가야 해."
"내일은 남풍, 다음날은 남동풍이 분다. 이틀 동안 사인샨드로 가기가 수월할 거야."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하나씩 준비하던 바트가 저녁을 먹으라며 부른다.
밀가루 면에 감자와 고기를 넣고 볶은 요리다.
"цуйван, 초이완"
맛있다고 하니 웃으며 이름을 알려준다.
"여행이 끝나면 책을 쓰고 싶다."
"너는 여행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라."
여행 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공허한 일상의 헛된 푸념이 아닌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고,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너의 이야기도 쓸 거야."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긴 장문의 글을 여전히 제멋대로 그린다.
"나는 결혼을 해서 부인과 아들을 위해 기찻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 큰 소년은 몸이 부러진 나쁜 사람이다."
"아들이 아프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몸을 가리킨다.
"아, 네가 여기저기 다치면서도 열심히 일했다고."
리즈후이와 장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스무 살의 옛 기억이 조용한 어둠 사이로 찾아들었는데.
이 드넓은 황무지의 외딴 집에 바트보르드와 앉아 있으니 무거운 삶은 무게가 침묵처럼 가라앉는다.
"바트, 세 번째 바람은 그저 그런 푸념일지도 몰라. 아직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방법을 모르겠다."
"더는 서툴고 어설프게 살고 싶지 않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고 싶어지면...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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