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일 / 비 ・ 14도
롱지전-용척제전-룽성 각족 자치현
늦어진 아침, 9km에 위치한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보러갈 것인지를 수없이 망설인다. 짙은 안개비가 자욱한 룽지전. "가자!"


이동거리
38Km
누적거리
4,750Km
이동시간
4시간 56분
누적시간
327시간

 
산길
 
G321도로
 
 
 
 
 
 
 
12Km / 2시간 40분
 
26Km / 2시간 16분
 
롱지전
 
롱지촌
 
룽성
 
 
1,965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한 시간 늦잠으로 9시에 겨우 일어난다.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가 또 있을까 싶다.

비가 내리고 다음 목적지까지 90km의 거리, 지도에 보이는 경로가 구불구불 거린다.

"산길들인가?"

늦은 출발시간, 비와 안개, 숙소가 없는 산길 그리고 보고 싶은 용척제전의 풍경이 일정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안개 때문에 용척제전에 가더라도 그 풍경들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일정대로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갈 생각이다.

짐들을 정리하고 체크인을 한 후, 다시 한번 망설임이 이어진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잖아!"

고덕지도를 롱지에 위치한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龙脊古壮寨梯田观景区)로 목적지 설정을 하고 출발한다.

롱지전의 용척제전으로 가는 길은 2개가 있다. 9km 거리의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와 17km 거리의 평안장족제전관경구(平安壮族梯田观景区).

10시 40분, 숙소에서 가까운 용척고장채으로 가기 위해 땡땡이 우위와 고무장갑을 착용한다.

"9km 산길, 딱 속초에서 넘어가는 미시령 사이즈네."

초입을 지나자 나지막이 시작된 오르막은 구비져 이어지며 조금씩 경사도를 더해간다.

천천히 밀려 내려오던 안개비가 짙어지더니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비밀스럽게 감춰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거친 숨을 몰아쉴 때쯤 좁은 산길로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버스가 있었어!"

숙소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대중교통 노선이었는데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미니버스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 곁을 지나간다.

지나쳐간 버스는 안개가 감싸인 조용한 산길 어디선가 크락션을 울려댄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이라 그 소리가 어디서 울리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계속되는 산길 너머로 인가들이 조금씩 보이고 작은 산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안개가 걷힌다.

덥혀진 온몸의 열기에 우의의 단추들과 자켓의 지퍼가 내려지고 고무장갑은 벗어버린 채 핸들을 잡은 맨손은 전혀 춥지가 않다.

첫 번째 마주한 몇몇의 집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4km가 더 남아있다.

어느새 안개구름들이 시선 아래 위치하고 산을 타고 넘는 안개구름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깝다. 사진으로 대신할게."

2km를 남기고 이전보다는 조금 편안한 길이 이어지나 싶더니 이내 급격한 오르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다시 짙어진 안개와 안개비가 축축하게 몸을 적시고 있다.

"그냥, 희뿌연 안갯속에서 사진으로 봤던 풍경을 마음속에 그리다 오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렇게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용척고장채 입구, 자전거로 오르는 나를 보더니 모두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다.

"빠쓰?"

100위안을 주니 잔돈과 입장권을 내주고 영어 팜플렛이라며 관광 안내서를 밝게 웃으며 건네준다.

"근데 얼마나 올라온 거야?"

산들샘을 켜고 고도를 확인하니 입구까지 670m 정도 높이다.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 잠시 쉬며 용척고장채의 관광 지도를 보고 있으니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밥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마침 허기가 밀려와 가게 이름을 번역기에 메모하고 지도를 가리키며 가게의 위치를 물어보니 입구 가까운 곳을 가리킨다.

"응 알았어. 구경하고 밥 먹으러 갈게."

잠시 쉬고 싶은데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 여자는 계속 무언가를 말한다.

"중국어 사투린가?"

말을 해도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고 할 수 없이 내가 쉬는 것을 포기한다.

"그래, 갑시다! 취! 취!"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숙소들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음식점이 나온다.

여기가 식당인지 묻자 여자는 안개에 감싸인 산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판티엔 나리? 멀어? 머냐고?"

알아들었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너는 누구냐?"

헛웃음을 크게 지으니 저기를 보라며 손가락으로 전망대 같은 곳을 알려준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계단식 논밭들이다.

"와우~!"

감탄을 자아내니 아주머니가 따라하며 예쁘냐고 물어본다.

"쩌리 쓰 피아오량! 피아오량!"

순식간에 나타난 풍경을 놓칠까 서둘러 핸드폰과 카메라를 꺼내어 바쁘게 셔터들을 눌러댄다.

경이로운 삶의 노력들이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 속에 어우러져 눈에 담기에도 아까울 지경이다.

사진을 찍는 사이 다 보았으면 가라는 듯 다시 안개가 빠르게 밀려든다.

다시 식당을 가기 위해 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여자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용척고장채의 관광로는 나무테크로 예쁘게 이어지고 곳곳에 전망대처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빠르게 안개에 둘러싸이고 안개비가 시작된다.

산책을 하던 남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타이완에서 왔다며 소개하고 한국인이지 묻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가며 무엇이 즐거운지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근데 니 더 밍즈?"

윈웬밍이라고 말하는데 사용하는 중국어가 사투리인지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그만이다.

가다 보니 논밭의 논두렁을 따라 가지런히 무언가가 세워져있다. 아마도 밤에 불을 밝히는 조명 같다.

용척제전의 야경을 보면 논두렁을 따라 조명을 켜둔 사진들이 있었다.

논밭 사이사이 흙계단이나 돌계단들이 정성스레 만들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했을까?"

시골의 볼품없는 가랑이 논자락들, 삐뚤한 논두렁에 반듯반듯하게 돌들을 쌓아올리려 무던히도 애를 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무엇이든 당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집스러웠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할 무렵, 반듯한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밤을 새는 고집스러움에서 그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고작 1픽셀짜리 그레이 선 하나 때문에 말야."

20여 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르고서 윈웬밍의 식당에 도착한다.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누구인지를 묻는 것 같다.

"다 왔어? 여기야? 쩌리 니더 판띠엔?"

질문에 맞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옆에 건물을 가리키며 잠자는데 42위안이라고 알려준다.

"알았어. 쭈띠엔 42카이. 일단 밥줘! 츠판, 워 헌어!"

식당은 예상외로 깔끔하고 우리의 일반 음식점처럼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괜찮다.

하지만 원재료를 보면서 주문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돼지고기를 골라 얼마냐고 물으니 아들처럼 보이는 주방장과 뭔가를 얘기하더니 50위안이라고 한다.

"뭐가 이렇게 비싸! 나 조금만 먹으면 돼."

소통불가, 밖에 나와 조리대에 붙어있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사진을 가리키며 얼마인지 물으니 30위안이라며 삶아 놓은 면을 보여주며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래, 면 줘! 쓰, 쓰, 미엔"

어렵게 주문을 마치고 윈웬밍이 낑깡 같은 것을 따듯한 물과 함께 내어준다.

그리고 젊은 주방장은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보여주며 넣을 건지 묻는다.

오는 동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든 옷들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퓨전 음식처럼 심플하고 맛과 향이 너무 좋다.

"와, 맛있는데 양이 부족하겠다."

순간 사라져 버린 맛있는 면요리. 맛있다 말하자 젊은 주방장이 좋아하고 잠시 후 들어온 윈웬밍도 맛이 어떤지 물어본다.

"하오, 하오 츠!"

점심을 먹고 윈웬밍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마을의 위쪽 가장 높은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출발한다.

조금 오르자 길은 급경사로 이어져 자전거를 끌 수밖에 없다.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있으니 조금 전 인사한 윈웬밍이 뒤에서 따라온다.

자전거를 끌며 헉헉거리면 따라서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핸들바를 끌어준다.

"근데 너 왜 나를 따라와?"

계속 길을 따라다니는 윈웬밍에게 물어본다.

"너는 길을 모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안내해 주려고 나를 따라온 것 같은데, 하나밖에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고 길은 한층 더 경사가 지고 노면은 나빠진다. 계속되는 안개비에 정상을 100미터쯤 남기고 포기한다.

"저기 가면 다시 이리로 내려와야 해?"

온갖 몸짓으로 물어보니 길이 없다고 한다.

"부쓰, 부쓰! 안되겠다. 아래로 가자. 취! 취!"

마을을 가리키며 내려가자고 하니 윈웬밍이 박장대소를 한다.

빗물에 젖은 급경사를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들다. 무거운 무게에 밀리는 브레이크를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온다.

조심스레 천천히 경사면들을 내려와 다시 윈웬밍의 가게 앞에서 캘리퍼의 유격을 조정하여 브레이크를 정비하고 마지막으로 윈웬밍과 인사를 한다.

함께 사진을 찍고 가볍게 포옹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짜이 지엔. 윈웬밍! 시에 시에."

출발을 하려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잠을 자라고 하는 윈웬밍을 뒤로하고 용척고장채를 떠나기 위해 출발한다.

잠시 안개가 걷히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용척제전의 풍경들이다.

용척고장채의 첫 번째 전망대로 돌아오니 그동안 계속해서 마을 내에 울려 퍼지던 폭죽과 악기 소리는 장례식을 하는 것인가 보다.

전망대 바로 밑, 논밭의 최상단에 다른 묘들이 있던 곳에 붉은 천의 관과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안개가 밀려들어 마을을 감싼다. 마지막 풍경이 못내 아쉬워 셀카와 동영상을 찍고 계속해서 변하는 용척제전의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가는 걸음이 잘 안 떨어지네."

내려오는 길, 이곳을 오르며 안개 속에 숨어있어 보지 못했던 반대편의 마을과 논밭들이 살포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든든해진 브레이크로 내리막을 내려오는 동안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들이 가는 길의 발목을 붙잡는다.

오전엔 보지 못하고 오르기만 했던 뾰족한 산봉우리들도 보이고, 구불구불한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숙소가 있는 롱지전으로 되돌아오니 3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오늘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있다.

"자, 이제 어디까지 가볼까."

우선 10km 거리의 룽성 각족 자치현으로 목적지를 잡고 바로 출발한다.

"어제 산길의 오르막으로 벌어 놓은 게 있으니 룽성현까지는 내리막길이겠지. 설마!"

룽성현까지는 생각대로 나지막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다른 현들에 비해 좁고 작게 느껴지는 룽성현에 도착하고,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으니 4시가 되어간다.

30km 정도는 라이딩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하여 근처 빈관을 선택한다.

"간만에 트립닷컴을 쓰네. 하지만 예약은 빈관에 가서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트립닷컴과 고덕지도를 써서 주점을 찾다 보니 요령이 붙었다. 어떤 곳은 온라인이 저렴하고, 어떤 곳은 직접 결제하는 것이 저렴하다.

그래서 일단 숙소를 검색해 찾아간 다음, 가격을 문의하고 1,700원 환율로 따져 저렴한 결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좁은 도로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소수족의 자치현이라 그런지 다른 도시들과는 분위가 약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선택한 빈관을 가려다 도시 자체가 작다는 것을 깨닫고 도심의 외곽에 있는 평점이 좋았던 주점으로 방향을 바꾼다.

외곽이라 해봐야 1.5km 거리밖에 안된다.

숙소에 도착하니 프런트에 있는 여자 직원이 영어가 된다. 가격을 물으니 벽면에 표시된 가격표를 가리키며 149위안이라 한다.

트립닷컴에 수수료 포함 14,770원에 올려진 것보다 한참 비싸다.

"고뤠, 그렇다면 트립닷컴으로 온라인 결제!"

영어가 되니 편하다. 농담도 하고 여행에 대해 짧게 얘기도 하고, 롱지의 용척제전을 보고 왔다 말하니 자신의 고향이 롱지라며 논밭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깨끗하고 따듯한 숙소, 프런트 옆에 자전거를 놓아두려니 뒷바퀴가 바람이 살짝 빠져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가면서 뒷바퀴에 바람을 채워 넣고 숙소의 옆에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벽면에 붙어있는 메뉴 사진을 가리키며 달라고 하니 식당의 여자는 사진을 나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

"..."

아마도 메뉴 사진이 아니고 인테리어 사진인가 보다.

그림을 확인하고 글자로만 쓰인 메뉴판에서 15위안 메뉴를 가리키며 알려준다. 친절하고 정이 많은 웃음을 갖은 사람처럼 보인다.

주문을 받은 뒤 뭔가를 물어보는데 번역기가 오번역을 계속한다. 여주인이 주방을 향해 뭔가를 달라는 제스처를 하는 사이 여주인의 발음을 따라 번역기에 말하니 '칠리'라는 단어가 뜬다.

"칠리? 쓰!"

맵게 해줄 것인지 묻는 질문으로 짐작하고 그렇게 해달라 말하니 주방에서 고추 하나를 들고 나와 보여준다.

"쓰, 쓰!"

흔쾌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니 주방에 있던 직원들과 함께 크게 웃으며 한국인이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고추를 넣어주나 싶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 피망 볶음과 계란국. 음식이 담긴 그릇과 모양이 예쁘고 정갈하다.

대나무 그릇에 담겨 나온 음식은 우리네 음식과 거의 흡사하고 맛이 좋고, 중국에서 가끔 밥과 함께 주던 국물들은 모두 고수나 향신료 맛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이곳은 맑은 계란국이다.

중국집의 계란국 보다 단맛이 덜했지만 편하고 순한 국물이다.

한 그릇 정도 더 먹을까 싶다가 내일 아침에 혹시 문을 열면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식당을 나온다.

"하오 츠, 시에 시에!"

역시나 정감 가는 웃음으로 인사를 해준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오다 보니 지역마다 사람들의 성향과 특색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용척제전을 보기 위해 장가계로 향하는 80km를 포기하고 맞바꾼 하루지만 놀라웠고, 즐거웠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다음에 채우면 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0일 / 비 ・ 10도
계림시-룽지전
흐린 날씨, 계림을 출발하여 650km 떨어진 장가계로 향한다. 계림의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오를까?


이동거리
79Km
누적거리
4,712Km
이동시간
6시간 05분
누적시간
322시간

 
G321도로
 
G321도로
 
 
 
 
 
 
 
70Km / 5시간 30분
 
9Km / 0시간 35분
 
계림시
 
산길정상
 
룽지전
 
 
1,92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회색빛 흐린 하늘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날씨다. 매일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자전거 여행자이지만 중국 남부의 축축한 겨울비는 너무나 힘들다.

90일 체류기간의 중국여행, 예상하지 못한 겨울 날씨에 속도가 느려져 계획했던 쿤밍시와 남서부의 여행을 포기하고 베이징을 향하여 중국 중부를 가로지를 생각이다.

"겨울비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음 목적지는 후난성의 장지아지에,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의 판도라 행성의 모티브가 된 장가계다. 아마도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들 지나가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는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계림의 용척제전이 있는 곳이다. 해발 1,000미터 까지 올라가야 하는 산악지대의 경로가 부담스럽지만 조금 고생하면 그만이다 싶다.

용척제전을 볼 수 있는 몇몇 지점 중 길을 이어가기 편한 롱지전의 포인트(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를 선택하고 길을 출발한다.

구이린을 벗어나기 위해 오토바이 행렬에 섞여 큰 어려움 없이 시내를 빠져나간다. 소리 없이 다가와 부담스럽던 중국의 오토바이와도 어느새 친숙해진 모양이다.

G321 도로를 따라 룽지전으로 향한다. 구이린을 둘러싸고 있는 오묘한 돌산들이 도로를 따라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봉오리들이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돌산에 가까이 다가가면 웅장한 돌산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냥 경이롭다."

마치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구이린의 가로수들은 울창하고 풍성하다.

겨울 시즌인데 여름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의자가 있는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챙기고 경로를 확인하며 잠시 쉬어간다.

길은 천천히 산을 향해 올라간다.

이곳의 특산물은 꿀과 커다랗고 노란 한라봉처럼 생긴 과일인가 보다.

"이름이 뭐지? 정말 크다!"

다시 한 시간을 달리고 작은 마을의 오래된 나무 밑에서 점심을 해결할 겸 쉬어간다.

"450살."

구이린에서 사놓은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다.

흐리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 하늘에서 안개비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그래 웬일인가 싶었다."

시골의 마을들을 지나치다 붉은 폭죽들의 잔해가 깔려있는 길 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장례식이네."

잠시 후 백의에 붉은 천을 어깨 위로 두른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가고, 붉은 예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지나간다.

땅이 넓고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다 보니 장례문화도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인구가 많긴 많은가 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식과 장례식을 보게 되네."

2시, 본격적인 오르막의 산길이 시작되며 페달링의 속도를 떨어뜨려 놓는다.

"비가 오는데 왜 갈증이 나냐?"

고개를 오르고 관광지의 안내석이 놓인 곳의 화장실에 잠시 들린다.

중국의 공공화장실, 산길의 중턱에 만들어놓은 휴게용 화장실인데 깨끗한 편이다.

"낯설게 왜 이래."

사람들의 사용이 빈번하지 않아서인지 화장실이 나름 깨끗하다.

산이 깊어질수록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대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대나무가 쌓여있는 곳에는 숲에서 대나무를 잘라 도로변으로 옮긴 흔적들이 나있다.

도로에서 대나무를 화물차에 싣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니 하오. 워 쓰 한궈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부부는 쳐다보던 부부는 한국인이라는 말에 호기심의 웃음을 보여준다.

대나무의 밑둥 부분이 아주 굵은 대나무들이다.

"이런 건 어디다 사용하는 거지? 공사장이나 집을 지을 때 사용하나?"

중국어를 할 수 있으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은데 많이 아쉽다. 톱으로 대나무를 자르지 않는지 잘린 대나무의 밑둥이 뭉툭하다.

산을 올라갈수록 안개비는 짙어지고, 산을 오르는 더운 호흡도 거칠어진다.

오르막을 알리는 안내판의 애꿎은 화살표에 의미 없는 푸념만을 하며 페달을 밟아갈 뿐, 간간이 지나치는 차량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다 올라왔나?"

롱지전까지 아직 거리가 남아있는데 하늘이 열린 고개에서 헛된 바람을 염원해보고.

최최에 논을 갈았던 사람은 첩첩산중 오지 산골에 무슨 꿈을 꾸며 들어왔으려나 싶다.

"피난? 도망? 밀월을 나누던 사랑꾼들이었다면 삶이 척박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짧은 내리막길은 반갑지가 않다.

쓸데없는 내리막은 다시 산을 올라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안겨준다. 오르막의 화살표도 모자라 지그재그의 번개표시가 된 산길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안개비는 더욱 짙어지고,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간다.

완전히 시야를 가려버리는 안개비다. 초행길인 산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단지 간간이 산을 내려오는 차들의 엔진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간다.

4시, 도로변에 버려진 낡은 건물과 넓은 공간 그리고 조금씩 경사도가 줄어들던 길의 변화에 롱지전으로 가는 고개의 끝에 도착했음을 짐작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소처럼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안개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풍경, 힘든 업힐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아쉬움보다 짙은 안개비를 뚫고 내려가야 할 상황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비에 젖어 삑삑거리는 브레이크 마찰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산을 내려간다. 조금씩 주변의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집과 논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꽃들만 봄이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중국의 나무집들이 보이고, 그동안 길 위에서 수없이 보았던 셔터가 달린 이상한 집들이 왜 그러한지를 짐작한다. 2층 구조의 전통집들과 비슷한 형태로 벽돌을 쌓아올려 짓다 보니 멋도 없는 웃긴 모양의 집이 되었나 보다.

"기와가 올려진 나무집들은 예쁘구나."

수북하게 쌓인 대나무를 어떻게 산에서 옮겼는지가 궁금하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한 그루씩 끌어서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도로의 다운을 즐기며 1,000미터 정도에 위치한 용척제전의 높이가 떠오른다.

"야! 그만 내려가! 그만!"

1층의 외벽을 벽돌로 보강을 한 것인지 아니면 1층의 벽돌구조에 나무집을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셔터가 달린 우스꽝스러운 집들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

"춥지는 않은가?"

온돌의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의 2층 목조주택은 방한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남방부에 위치한 지역이라 겨울 한파의 추위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여름에는 무척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채씩 들어서 있는 산길을 내려오니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고, 오늘 밥값을 했네."

4시 반, 용척제전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온다. 우회전을 하여 작은 강을 따라 15km 정도를 이동하면 평안채제전(平安寨梯田)이 나오고 이곳에서 산을 오르면 용척제전이 나온다.

중국의 비슷비슷한 목재건물이지만 룽지전의 초입에서 본 목재건물은 조금 특이하고 이색적이다.

예약해 두었던 룽지전의 주점으로 찾아간다. 음식점과 숙박업을 함께 하고 있는 주점의 할머니는 꽤나 친절하고 살갑다.

"수이 지아."

할머니에게 바우처를 보여주며 잠자는 제스처를 하니 숙박을 하는 사람인 것을 눈치채고 주방에 있는 중년의 여자를 불러낸다. 할머니의 딸이나 며느리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늘상 대하는 외지의 관광객을 응대하듯 자연스럽게 안내를 한다.

어려움 없이 체크인이 끝나고 자전거는 넓은 1층의 비어있는 공간에 잠가둔다. 방으로 패니어들을 하나씩 옮기고 샤워를 한 후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온다.

중년의 여자는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카드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산골의 작은 슈퍼에서 보았던 카드게임과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심드렁하게 물건값을 받고 바로 카드게임에 빠져들던 그때의 여자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너네들은 돈놀이 게임을 좋아하는구나."

한 게임이 끝나고 숙소의 여자는 식당의 내부를 둘러보는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워 헌 어."

여자에게 그동안 먹었던 고기 메뉴의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한 메뉴를 달라고 주문하고 식당에 놓여있는 소품들을 구경한다.

"오늘 용척제전에 갈 수 있어?"

조금 이른 도착 시간으로 해가 지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택시나 버스를 타고 용척제전에 다녀올까 싶은 생각으로 숙소의 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지금은 못 가!"

"왜?"

"차가 없다. 내일 가!"

"어!"

겨우 7km 떨어진 거리인데 갈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어렵지만 현지의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내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올라가든지 하면 될 것 같다.

"미판!"

언제나 단일 메뉴에 쌀밥을 주문해서 머슴밥을 먹는다. 비슷하게 말린 돼지고기를 사용할 텐데 주점의 돼지고기는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산골 룽지전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지만 하루 종일 괴롭히며 내려앉던 안개비는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속의 분위기라 역시 다르네."

"내일 용척제전을 올라갈 수 있나? 그냥 내려갈까?"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 탓에 경로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장가계로 향하는 산길들과 베이징을 지나 몽골의 국경으로 가야 하는 일정들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쿤밍시를 지나 청두와 시안을 경유하는 경로를 포기했음에도 베이징으로 가는 일정이 빡빡하게 느껴진다.

"몰라. 일단 장가계의 산을 넘으면 막 달려. 막!"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9일 / 비 ・ 10도
구이린 : 형산공원-일월쌍탑-정강왕성
황산을 출발하여 1,200km의 거리를 달려온 여정의 끝에 구이린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며 비가 내리는구이린을 둘러본다.


이동거리
18Km
누적거리
4,663Km
이동시간
5시간 20분
누적시간
316시간

 
도로
 
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형상공원
 
일월쌍탑
 
정강왕성
 
 
1,84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오전 10시, 라이딩이 없어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운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일주일 동안 괴롭히던 감기 기운은 차츰 괜찮아지는 것 같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계림을 둘러보기에 무리는 없지만 비로 인해 계림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난다.

12시쯤 메시지를 준다는 컴퓨터 수리점의 연락을 받고 나갈까 하다 어찌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며 자전거의 타이어를 순서대로 눌러보니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이제는 일일 일빵이네. 귀찮다, 다녀와서 고치자."

프런트로 내려와 직원에게 계림의 관광지들이 즐겨찾기 되어있는 고덕지도를 보여주며 물어본다.

"나리 하오 마?"

직원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정강왕성과 형산공원을 가리키며 추천을 한다.

"쩌리 최고 하오?"

"하오!"

무슨 말인지 나오는 대로 뱉는 중국어인데 모두들 잘 알아 듣는다.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형산공원을 가기 위해 버스노선을 검색하고 버스 번호와 버스비 2위안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숙소를 나온다.

숙소 앞 음식점, 오리와 닭을 좁은 철창에 가둬두고 키우는 것인지 아니면 식재료인지는 모르겠다.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들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버스 노선을 재차 확인하고 있으니 16번 버스가 바로 도착한다.

2위안을 요금함에 넣고 빈자리에 앉는다. 좌석의 방향이 측면이나 거꾸로 되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버스는 이강을 넘는 다리를 건너 4정거장을 지난 후 형산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내리려고 보니 하차벨이 따로 없고 뒷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도로에서 첫 번째 보이는 매표소에 들어가 관광 안내 팜플렛을 서너 장 뽑아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직원에게 티켓을 달라 하니 공원의 안쪽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알고 보니 이강 유람선 티켓을 파는 곳이다.

조금씩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우산을 빌려올 것을 그랬나?"

평상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 웬만해서는 우산을 안 쓰고 다니는 편인데도 중국에서 매일 비를 맞다 보니 조금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매표소는 형산공원 입구의 바로 측면에 있다.

우리 동네가 아니니 관광지도는 한눈에 안 들어 오고.

요금표는 왜 이리도 복잡한지.

"일단 형산은 55위안이네. 비싸네!"

매표소에 100위안을 넣어주니 안내원이 무어라 자꾸 말한다. 우리창에 다른 곳과 합쳐진 입장료들이 안내되어 있는 것을 보니 1+1을 살 것인지 묻는 것 같다.

"상산, 우쓰우!"

알아들었는지 잔돈과 입장권을 내어준다.

"그럼 가볼까? 나 기대 많이 하고 있다!"

코끼리 산이라 그런지 코끼리 조각상들만 여기저기 놓인 입구를 지나 오른 편에 위치한 운봉사에 들어간다.

일층은 커다란 옥바위를 가운데 둔 옥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생뚱맞지만 꽤 비싸다.

이층에는 누군지 모르는 흉상과 각종 화포나 창 같은 오래된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국의 조각상들은 대체로 정교하고 멋지다.

"조각상은 이렇게 잘 만드는데 현대적 상징물들은 왜 그렇게도 기괴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휙 돌아 나온 운봉사의 측면 바위산 절벽 가운데 부처님께서 자리 잡고 계시고.

소원을 비는 붉은 리본들이 보인다. 종처럼 보이는 것에 도교적인 민간신들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부처가 자리 잡고 있다.

"리본은 돈을 내고 다는가? 왠지 여기저기서 돈 냄새가."

형산을 오르는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이강을 중심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계림의 풍경들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첫 계단을 오르고 좌측으로 동굴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이강의 반대편 전망이 나온다.

"설마, 이 돌산을 뚫어버린 거야?"

형산의 정산에서 계림을 한눈에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가파르지만 높지 않은 산이라 쉽게 오를 수 있다.

항아리처럼 생긴 보현탑.

보현탑 앞에서 계림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비가 그친 하늘과 구름, 자연스러운 이강의 흐름과 그 모든 것들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들이 아름답다.

형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 기념품 가게에서 눈에 띈 초코파이.

"유사 중국 제품 먹어봤는데 널 따라올 수는 없는 것 같더라. 전처럼 양 좀 늘려봐."

병풍처럼 둘러진 기이한 산들 때문인지 도시가 참 예쁘다 생각이 든다.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가려니 자꾸만 한 번 더 눈 속에 담아고 싶어 뒤돌아 보게 된다.

조심스레 물기가 묻은 좁은 돌계단을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절벽 가운데가 뻥 뚫린 곳이 나온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아치형 돔처럼 일부로 깎아놓은 듯 매끄러운 구멍이 나있다.

형산을 돌아 건너편 공원으로 건너가며 왜 코끼리산일까 궁금증이 들었는데 건너편 공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누가 봐도 코끼리네."

공원에는 나무 뗏목과 대나무 뗏목이 서너 척 놓여있고 가마우지로 기념촬영을 해주고 요금을 받고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지도 못하고 빼앗기더니, 이제는 사진 모델로 투잡을 뛰는구나. 불쌍한 것."

공원은 깨끗하고 유독 키스를 하는 조각상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늑하고 좋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형산공원을 빠져나와 건너편으로 이어진 일월쌍탑공원으로 걸어간다. 마치 열대우림 같은 울창한 가로수들이 인상적이다.

호숫가에 세워진 일월쌍탑. 계림 사진들을 보면 야경이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일월쌍탑을 구경하는 사이 컴퓨터 수리점으로부터 위챗 메시지가 온다.

"메인보드가 인식이 안되어 수리할 수 없습니다. 유감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듯 실망스럽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다른 건 차치하고 사진자료들, 여행 기록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중국인데,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다.

때마침 찬숙이 여행 전 소개해 준 중국에 사는 친구 태경씨가 위챗으로 연결된다. 짧은 통화로 정확한 고장 내역을 알고 싶다고 전하고 수리점에 전화를 해달라 부탁을 한다.

컴퓨터 수리점과 통화한 태경씨의 대답은 같은 제품의 모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위해 장만한 트윙글 요가1 노트북의 사망선고다. 여행을 위해서는 값싼 노트북 보다는 수리가 가능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 일단은 즐겁게 구경이나 하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차선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정강왕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우리의 로데오 거리처럼 음식점들과 쇼핑샵들이 이어지는 거리가 나온다. 조금씩 출출함이 찾아든 시간인데 식당들의 차림표를 보니 가격이 비싼 편이다.

사람들이 꽤 붐비는 가게를 둘러보니 드디어 그분들이 등장하신다.

한쪽에 살아있는 전갈들이 꿈틀거리고.

굼벵이, 번데기, 귀뚜라미, 전갈, 지네, 매미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까지 꼬치에 곱게 꽂혀있다.

"기름에 운동화를 튀겨도 맛있다고는 하더라만."

좀 더 걸어가 열심히 맷돌에 갈고 있는 옥수수빵을 사 먹는다. 4개에 10위안.

약간 밋밋한 맛인데 자극적이지 않고 따듯하니 먹을수록 빠져든다.

정강왕성을 보며 걸어가니 어제 계림에 도착했을 때 오토바이 행렬들과 지나왔던 길이다. 계림 시내의 관광지들은 걸으며 구경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시내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돌기둥 같은 돌산을 보고 따라가면 정강왕성이 나온다.

오래된 고목들 사이로 노란색 정강왕성의 정문이 나온다.

티켓을 사려고 매표소를 보니 단체관람과 개인관람의 매표소가 따로 있다. 개인 매표소에서 입장료의 가격을 보고 놀란다.

"100위안? 아니 뭐 대단한 것이 있길래 이렇게 비싸?"

몸값 도도한 입장료에 그냥 돌아갈까 하다 우뚝 솟아오른 돌산에서 바라본 계림의 모습이 궁금하다.

"까짓것 저렴한 숙소에서 한 삼일 묵으면 되지 뭐."

정강왕성의 입구에서 안내원은 번호표와 이어폰 그리고 담뱃갑만 한 정체 모를 기기를 건네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기념품인가?"

일단 주니까 받아들고 가려니 뒤에서 나를 부른 뒤 중국말로 빠르게 떠들어 댄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래?"

영어를 하는지 묻더니 난데없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I don't have a phone number."

그리고 한 번 더 전화번호를 요구하기에 없다고 말하니 조용히 내게 주었던 이어폰과 검은 기기를 뺏어가며 번호표를 목에 걸라는 제스처를 한다.

"별 싱거운 놈이 다 있네."

깔끔하게 정리된 왕성 내부를 앞서가던 관광객 무리를 따라 걸어간다.

첫 번째 보이는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멈춰 서더니 빨간색 패딩을 입은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뭔가를 이해한 듯이 고개들을 끄덕인다.

사람들은 모두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 그때서야 정문에서 주었던 이어폰과 이상한 기기가 안내원의 해설을 듣기 위한 도구였음을 깨닫는다.

핸드폰 번호는 기기를 반납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에쉬, 아무 번호나 적어줄 걸."

첫 번째 건물의 문이 열리고 짧은 안내원의 설명 후 벽면에 돌산에 대한 영상물이 3D로 재현된다.

영화의 인트로 장면처럼 잘 만들어진 영상이다. 대충 느낌상으로 BC 몇 년 전 돌산이 우뚝 솟아나고 이곳에 정강왕부가 들어섰다는 내용인듯싶다.

"뻥은 역시 대륙의 뻥이 실감나지."

통로에는 박물관처럼 왕부의 유물들과 역사 그리고 독수봉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방에서는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화면에 입체영상으로 왕부의 건물들이 소개되고.

역대 정강왕부의 왕들의 세대표.

그리고 세 번째 방으로 이동한다. 특이한 것은 방마다 문이 닫혀있다가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면 챕터가 바뀌듯 문이 열리고 방으로 입장을 한다.

세 번째 방은 실내가 어둡고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 위로 복자 형상의 틀과 빗솔, 붉은 인주 같은 것이 묻어있는 주머니 그리고 볼펜 한 자루가 놓여있다.

"도장을 찍는 건가?"

의문의 사내가 옛 복장을 하고 나타나 벽면에 절을 하며 어떤 의식 같은 행위를 한다.

"기대되는데. 뭘 하려는 거지?"

절을 마친 의복의 남자는 돌아서서 종이를 복자의 틀 밑에 깔고 빗솔로 열심히 두드린다.

"하하하. 난 또 뭐라고."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와 크게 박장대소할뻔했다.

눈치껏 남들처럼 빗솔로 때린 후 인주를 묻힌 주머니로 툭툭툭. 그리고 마무리 서명.

복자를 종이에 찍은 후 기념으로 가져가려 하니 방에 있던 안내원들이 그냥 놓고 가라고 한다.

"뭐야. 어린이 체험학습도 아니고."

복자는 정강왕부의 문양인가 싶다.

첫 번째 건물의 관람이 끝나고 독수봉으로 이동한다.

관람 프로그램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는 것이 비싼 입장료의 이유인가 보다.

곳곳에 새겨진 글귀들과 문양에 대해 긴 설명들이 이어지고.

조그만 입구 앞에 서서 오랫동안 뭔가를 설명한다.

"설마 독수봉을 터널로 오르는 거야?"

쓸데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문이 열리자 콩닥콩닥 마음에 이는 흥분감이 느껴진다.

"뭐야? 뭔데?"

예상대로 터널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동시에 들고 터널 안쪽을 휙 둘러보는 순간, 그동안 나긋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안내원이 사진을 찍지 말라 제재를 한다.

"드라마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정전이 되는 날벼락."

사람들이 동굴 내부에 노란 리본을 잔뜩 매달아 놓고 벽을 향해 연신 절을 하고 있다. 안내원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설명을 하는 사이 기념으로 한 컷만 몰래 찍고.

제멋대로인 중국인들도 안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어 그냥 눈으로 구경을 한다.

동굴 내 첫 번째 공간에 모형의 제물이 올려져 있고 석상 하나가 놓여있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자 함께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석상을 향해 절들을 해댄다.

그리고 동굴 천장 곳곳의 글귀들을 안내원이 레이저 포인터로 하나씩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서도 절들을 해댄다.

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은 신기하고 흥미롭다.

"뭐야? 뭔데 절을 하는 거야?"  

동굴의 안쪽으로 더 이동하니 동굴의 벽면에 생년으로 보이는 숫자들이 적혀있고 정교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조각들이라 사진을 찍고 싶지만 겨우 참는다.

"너네 말 잘 안 듣잖아. 아무나 한 명이라도 찍어봐. 못 이긴 척 같이할 생각은 있는데."

짧은 설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하나씩 바구니에서 꺼내들고 벽면의 그림들을 찾아간다.

"자기 생년을 찾아가 리본을 걸고 기도를 하라는 말이겠지?"

눈치 빠르게 리본을 들고 1974 숫자를 찾으니 약간 무섭게 생긴 대장군의 그림이 조각돼 있고 2034의 숫자가 함께 적혀있다.

리본을 걸고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이마에 모으고 절을 하며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굴의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환한 조명과 함께 동굴 속 기념품 가게가 나오고, 동굴 벽에 새겨졌던 조강상들의 탁본들과 정강왕부의 문양들로 만든 족자나 액세사리로 만든 것들을 팔고 있다.

안내원의 신호가 떨어지자 준비되었다는 듯 여러 명의 판매원들이 일제히 관광객들에게 달려든다.

"잘나가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기념품들의 가격은 족자의 완성도에 비해 꽤 비싸 보인다. 1미터 남짓의 탁본 족자가 대충 3,000위안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안내원은 아주 오랫동안 다음 진행을 하지 않고 20여 분이 지나고서야 동굴 밖으로 이동한다.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이 나왔지만 그냥 지나쳐 다른 건물로 들어간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의 재현극을 잠깐 보여주더니 재현극이 끝나자 관광객들이 노란 종이를 받아 한 평 남짓 되는 방으로 들어간다.

"옛날 감옥인가?"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안내자들이 출구를 가리키며 뭐라 쌀쌀맞게 말한다.

"구박한다고 갈 사람이 아니다. 신경 꺼!"

작은방 안에서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붓으로 뭔가를 적다. 젊은 여자가 노란 종이에 이름을 적고 자신을 지켜보던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건넨다.

사진을 찍어주니 아리가또 하며 인사를 한다.

"are you Japanese?"

어디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인이라 하니 함께 온 사람들에게 한궈렌이라며 알려준다.

작은방에서 나온 사람들과 옆 건물로 이동하니 김광규처럼 생긴 남자가 뭔가를 낭독하고 호명된 두 관광객에게 붉은 복장을 입혀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방들은 감옥이 아니고 시험을 치르던 공간이다. 며칠씩 좁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김광규에게 불려나와 의복을 입은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등용된 사람들인 것이다.

모두가 웃으며 정강왕성의 관람 에피소드들을 만들며 즐거워 한다.

다시 팬시 제품들이 놓인 기념품 샵으로 강제 이동되고.

건물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이어폰과 기기를 안내원에게 반납하고, 길게 이어진 외부의 기념품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보니 복자의 노란 종이들 떡하고 걸려있다.

"이런 거야? 그래서 못 가져가게 한 거야?"

내 이름이 서명된 것을 가리키자 10위안을 달라고 하며 액자 같은 것들을 소개하며 가격들을 알려준다.

"액자는 됐고요."

독수봉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풍경이 궁금하여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으로 걸어간다.

가파르게 꺾여 올라가는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비가 그치며 더 선명하게 주변의 산들과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독수봉을 내려오는 계단은 빗물에 젖어있어 아슬아슬했다. 한 계단씩 난간의 사슬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독수봉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갈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구로 나온다.

동서남북 모두에 출입구가 있는 것 같다.

버스비를 내기 위해 3위안 콜라를 사서 잔돈을 마련하고 잠시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100번 이층 버스가 도착한다.

"오호, 이층 버스는 처음이야."

맨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 뒤쪽에 있는 좌석에 앉는다. 이층 버스는 처음이라 안에서 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작게 보일 정도로 시야가 높은 것 같다.

2위안, 350원 정도니 대중교통이 참 저렴하다.

숙소 근처 정류장에 내려 컴퓨터 수리점으로 걸어간다. 소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며 반 전체가 줄을 서 모여있더니 뭔가 구호를 외치고 일제히 교문을 나선다.

컴퓨터 수리점에 들러 접수증을 주고 노트북을 되돌려 받는다.

"중국의 다른 곳에서도 고칠 수 없을까요?"

손사래를 치며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망가진 노트북을 들고 나오며 신제품을 파는 레노바 매장의 전시 제품을 보고 있으니 어린 여직원이 말을 건넨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빨개진 얼굴로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중국의 어린 친구들, 특히 여성들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지 모두들 수줍어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의 노트북 자판에는 영자만 적혀있다.

"영자로 어떻게 중국어를 쓰지?"

쇼핑몰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하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간다. 여자 주인은 어리둥절 조금 당황한 기색이고 주방에 들어가 남편을 불러낸다.

글자로 된 메뉴판을 들고 난감해 하고 있으니 어린 여자애가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말을 건넨다.

탄링팡(谭玲芳), 15살 여자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네, 아니요, 맞아요' 등의 한국어를 한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야?"

탄링팡은 주저 없이 50위안짜리 메뉴를 가리킨다.

"효녀네. 장사를 할 줄 알아!"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던 탄링팡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중국어의 단어 입력 방법을 알아보려고 그녀를 불러 물어본다.

"탄링팡,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봐."

생뚱맞은 요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에게 글자를 써보라고 재촉한다.

"니 하오 마, 니 하오 마를 써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폰의 자판을 열더니 영문으로 ni hao ma를 치니 중국어로 자동 변환 된다.

"오호, 이렇게 쓰는구나. 영문으로 치면 그 발음의 한자들이 뜨고 그중에 맞는 글자를 선택하는구나."

부수의 조합과 많은 획의 한자를 어떻게 입력하는지, 영자 자판만 있는 노트북에 어떻게 한자를 쓰는지 궁금했었는데 궁금증이 해결된다. 간간이 한자를 핸드폰 화면에 필기하여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은 보았지만 자판으로 입력하는 것은 처음 본다.

탄링팡과 대화하는 사이 음식이 나온다. 진한 중국식 향신료에 머리부터 발까지 알차게 들어간 오리고기다.

강한맛의 소스와 총각무를 썰어 넣은 것 같은 크기의 생강의 맛이 조금 먹기에 불편하지만 그동안 중국음식에 적응이 된 것인지 그럭저럭 밥과 함께 잘 먹는다.

아마도 이전 같았으면 한 젓가락하고 그만 먹었을 것 같다.

"오리잖아, 뺏어서라도 먹으라던 오리!"

먹을게 전혀 없는 아니면 먹는 법을 알 수 없는 물갈퀴 발만을 남기고, 밥 두 접시를 해치운다.

든든해진 배를 튕기며 숙소에 돌아와 바람이 빠진 뒷바퀴의 튜브와 여분의 튜브를 돼지표 펑크패치로 붙여 정비한다.

23C 얇은 튜브에 무거운 무게까지 더해지니 붙여두었던 곳의 고무패치가 제대로 붙지 않는 모양이다.

노트북 없이 여행 자료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 급한 대로 티스토리 앱을 사용해 사진과 텍스트를 정리하기로 한다.

"번거롭고 시간이 좀 들겠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놔야지."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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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8일 / 비 ・ 10도
싱안현-링촨현-계림시
계속 이어지는 흐린 날씨, 비가 다시 내릴 것 같다. 얼마 남지않은 계림으로 향한다. "드디어 계림이다."

이동거리
68Km
누적거리
4,615Km
이동시간
4시간 44분
누적시간
311시간

G322
G322
47Km / 2시간 23분
21Km / 2시간 21분
싱안현
링촨현
계림시
 
 
1,866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낡고 허름한 빈관에서의 하룻밤, 피곤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어젯밤부터 부팅이 되질 않는 노트북은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이 난 것인지 수상하다. 멍하게 잠이 덜 깬 정신으로 재부팅을 해보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계림에 도착하면 데이비스가 알려준 갑천하전뇌성(甲天下电脑城)에 들러 컴퓨터 수리부터 해야겠다.

"없는 것이 없는 중국인데 고칠 수 있겠지."

10시가 되기 전, 조금 늦게 출발을 한다. 다시 흐리고 어두워진 하늘이다.

작은 시내를 벗어나 계림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한 시간쯤 지나 수상하던 바람은 툭툭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도로변 한적한 식당으로 아침도 해결할 겸 들어간다.

메뉴가 한 가지뿐이니 주문도 편하다.

"이거 야요!"

주문과 함께 이내 음식을 내어주며 앞쪽에 놓인 양념들을 넣으라고 알려준다.

"뭘 알아야 넣지."

이것저것 조금씩 넣고 뚝딱 한 그릇을 비워낸다. 시원한 국물과 간간이 씹히는 땅콩의 고소함이 좋다.

잘 먹었다 인사를 하고 가격을 물으니 6위안, 저렴하다는 말도 아깝고 착해도 너무 착한 가격이다.

우의를 챙겨 입고 천천히 빗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무리를 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해 놓아 조금은 편안하다 싶다.

중국의 기름값은 휘발유가 대충 리터당 5위안 정도 하나보다.

계림에 인접한 링촨현부터 시작된 시내길은 계림시까지 계속 이어진다.

울창한 계화수에 작은 홍등을 달아놓으니 길이 너무나 예쁘다. 가던 길의 걸음을 바로 멈춰 세운다.

링촨현을 벗어날 때쯤 길가의 자전거 샵을 발견하고 유턴을 해 가게 앞으로 다가간다.

"자전거 가게를 찾기가 정말 힘드네."

대부분 아동용 자전거들을 파는 것 같은 가게에 풀리를 가리키며 부품이 있는지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어두운 가게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부품이 없다는 듯 큰소리를 내며 정색을 한다.

"없으면 빙긋 웃으며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중국 사람들은 약간 이상한 성향이 있는데, 마치 어르신들이나 식당의 아주머니들처럼 없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듯 정색을 한다.

마주하기 싶지 않은 경계심의 눈빛들은 언제 봐도 너무나 싫다.

"자전거 가게에서 생선구이를 찾은 것도 아닌데."

계림시에 들어서며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씩 늘어난다.


계림 초입의 유산 공원에서 비를 피하며 갑천하전뇌성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확인한다.

"어렵게 계림에 왔는데 컴퓨터 수리가 우선이라니."

전자상가가 있는 곳까지 경로를 정하고 리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성벽을 따라가며 리강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유명 관광지의 명성처럼 계림의 풍경들은 남다르다.

푸보산 공원(伏波山公园)의 오묘한 모습이 나타나고 조금 욕심을 내어 산책로를 따라 리강의 풍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책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더니.

"망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산책로에서 험난한 계단을 마주한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한 칸씩 오르고 있으니 산책을 하던 아저씨가 자전거를 들어주며 도와준다.

"씨에 씨에."

묘한 동굴을 지나.

다행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계림이다.

중국 여행을 생각하며 왜 계림에 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계림의 풍경을 보니 이유 같은 것은 몰라도 될 것 같다.

더욱 풍성해진 것 같은 계화수의 가로수 길을 지나고.

리강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한다.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예약한다.

"그나저나 다리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거야?"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대로를 따라 멀리 있는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 후 돌아와야 한다.

정교한 목조건물의 회전 교차로를 돌아.

"고성이야? 호텔이야?"

메뚜기 떼처럼 뭔가 징그러운 면도 있는 오토바이의 행렬이지만 커다란 대로를 유턴하기 위해 우회전을 하는 오토바이 행렬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직진 신호에 좌회전을 함께하는 위험한 중국에서 대로에서 오토바이 행렬을 따라 좌회전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무리 양보를 안 하는 중국의 운전자들도 오토바이 행렬이 시작되면 차량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도심의 오토바이 행렬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한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대로를 따라 리강을 건너는 다리로 돌아오는 동안 오토바이 행렬의 흐림에 뒤를 따라가며 수월하게 도착하고, 계림시를 둘러싸고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다.

"저기는 유명한 공원인가?"

관광객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공원의 매표소를 지나치며 내일 들러보기로 한다.

작은 골목에 있는 깨끗한 주점에 도착한다. 젊은 여직원들이 근무를 하는 주점이라 여권과 바우처만으로 쉽게 체크인이 끝난다.

모던한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주점이지만 자전거를 방에 두어도 괜찮은지 물으니 흔쾌하게 허락을 한다.

샤워를 하며 빨래를 하고, 자전거와 패니에 묻은 흙들을 씻어낸다. 샤워를 하는 것보다 빨래를 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씻어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흙으로 엉망이 된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은 더더욱 오래 걸린다.

신발과 방풍 자켓만을 세탁하여 난방기 주변에 걸어두고 고장 난 컴퓨터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거대한 건물의 외관을 보고 막막한 생각이 먼저 앞선다.

각종 음식점들과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은 넓은 광장처럼 느껴진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음식점들을 살펴보고.

KFC로 들어가 헤매고 넓은 쇼핑몰에서 길 읽은 아이처럼 방황을 한다. 계속해서 지도앱을 확인해도 현재 위치는 이미 전자상가 위를 거닐고 있는데 도무지 전자상가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디냐고?"

방황의 끝에 쇼핑몰 밖으로 나오니 전자상가로 올라가는 외부의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커다란 쇼핑몰에 함께 있는 전자상가인데 출입구의 구조가 이상하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중국 건물의 구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자상가가 있는 층에서 내리니 분위기는 우리의 전자상가와 비슷하다. 온갖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들의 판매와 수리 그리고 바가지를 씌울 것 같은 친절한 미소들이 난무한다.

미로처럼 들어서 있는 각종 전자 매장과 수리점들 사이에서 데이비스가 알려준 컴퓨터 수리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컴퓨터 수리점의 이름을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 도움을 청한다.

전자상가에서 일을 하는 젊은 여자의 도움으로 찾고 있던 컴퓨터 수리점까지 안내를 받고, 노트북의 수리 접수를 한다.

"노트북 부팅이 안된다."

젊은 담당 직원은 차분하게 접수를 하고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가 없는지 묻는다. 전원코드의 굵기가 조금 얇은 중국의 전기 콘센트지만 전자상가에서 기본적인 전원 어댑터가 없을지는 생각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를 들고 수리점으로 돌아가니 수리점에 있는 어댑터로 이미 점검을 했는지 접수증을 건네주며 내일 오후에 다시 오라고 안내한다.

"피니쉬? 수리가 가능할 것 같아?"

"글쎄, 분해를 해서 살펴봐야 알 것 같다. 내일 전화를 줄게."

전자상가의 컴퓨터 매장에서 노트북들을 구경한다. 최악의 상황이면 새 노트북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 여직원과 눈이 마주치고 발걸음이 붙잡힌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끝내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일단 중국 노트북 가격을 알았으니 됐다."

쇼핑몰을 방황하며 잘못 들어갔던 KFC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선 코너를 지나다 재미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13위안 자조....찬? 자조찬이 뭐야?"

한자를 검색해보니 쯔주찬(自助餐)이 뷔페다.

"빙고! 18가지 반찬 13위안 뷔페!

생각할 것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여행을 하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이롭고 좋다.

"이 정도면 천국이지!"

일단 입맛을 확인하는 수줍은 맛보기로 한 판을 비우고.

음식들의 재료와 맛이 확인되면.

입맛에 맞는 것들을 푸짐하게 담아 한 판을 더 비우고.

"한 판 더 할까?"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면 잃어버렸던 이성을 수습하고 맛있는 디저트 하나를 사서 끝을 낸다.

숙소로 돌아와 물에 담가놓았던 옷들을 세탁한다. 광시성의 흙먼지 가득했던 회색빛의 마을들을 지나오며 더러워진 옷들에서는 끝도 없이 누런 흙탕물이 빠져나온다.

8시가 넘어가고 출출함이 찾아든다. KFC에서 사 온 햄버거를 해치웠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변에 한국 식품점이 없나?"

믹스커피가 먹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이 검색을 하고, 고장 난 노트북으로 널널해진 저녁 시간의 공백은 하릴없이 밖으로 나가게 만든다.

컴컴하고 어두운 저녁거리를 걸어 한국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에 도착한다.

"커피 딱! 하지만 100개 짜리.."

"믹스 커피 작은 거 없어요?"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처럼 느껴지는 여자는 100개 수량의 큰 박스만 있다며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준다.

빈 손이 심심하여 돼지바 하나를 집어 들고, 쓸데없이 김치가 생각나 총각김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돌아온다.

겨우 10여 분을 걷는 동안 흐물흐물 녹아버린 돼지바를 먹고.

총각김치에 소주를 마신다. 피곤에 쌓인 노곤함을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소주도, 김치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비 오는 날에 이 정도면 고급진데. 이상하게 맛이 없네!"

"내가 정말 이 조합의 맛을 좋아했었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쩌면 게으른 자기 착각의 일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맛이 변했나 보지 뭐."

내일은 계림의 풍경을 산책하며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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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7일 / 구름 ・ 12도

링링구-취안저우현-싱안현

비가 오지 않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이틀 연속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런 벼락 같은 축복이 있나. 서두르자!"

이동거리

134Km

누적거리

4,547Km

이동시간

7시간 56분

누적시간

306시간


G322도로
G322도로
75Km / 4시간 30분
59Km / 3시간 26분
링링구
취안저우
싱안현
 
 
1,79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아침까지 오늘의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다. 100km 거리의 취안저우현은 국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130km가 넘는 싱안현은 거리의 부담이 있다.


그리고 취안저우현에서 싱안현까지 마땅한 숙소가 있는 없다. 고덕지도를 최대로 확대하여 몇몇의 주점이 있는 도로면의 작은 마을들을 몇 군데 파악해 놓고 출발을 준비한다.


"전주현, 샤오쑤이진, 지에쑈진, 씽안현.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어둡지만 비가 올 것 같지 않다. 날씨를 확인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디든 좋아! 일단 비가 내리기 전에 가자."

 

 

아침 시간의 복잡한 시내길을 빠져나와 G322 국도로 이어지는 G207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181km.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어쨌든 계림에 도착하겠구나."


 

황티엔푸전에 도착하여 G322 국도로 갈아타지 못하고 잠시 길을 헤매고.


 

비와 산길 그리고 감기 기운으로 험난했던 후난성을 벗어나 광시성으로 들어선다.


 

비만 내리지 않을 뿐 도로의 상태는 엉망이고 광시성에 들어서며 회색의 흙먼지들이 마을을 뒤덮고 있다.


"이건 더 지옥인데. 차리리 비가 오는 게 낫겠어."


비가 내려서 몰랐을 뿐, 그동안 지나왔던 길들이 모두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끔찍한 회색 먼지 구덩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광시성에 들어서 허기가 밀려든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마을을 지나치며 마땅한 식당들을 찾지만 도저히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뿌연 회색 먼지로 뒤덮인 마을과 어두운 실내에서 음식을 먹으며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들이 전혀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을씨년스럽다."


무섭거나 공포심이 들기보다 이질적인 거부감이 찾아든다. 배는 고프지만 경계심 가득 담긴 희번덕한 눈빛들을 대하며 견딜 자신이 없다.


 

단지 마을을 가득 두껍게 내려앉은 흙먼지 탓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쳐 가는 식당들과 도로변에 나와 밥을 먹는 사람들의 눈빛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파고드는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싫다. 볼품없는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늙은 개들의 눈빛 같아."


 

회색빛의 흙먼지 마을을 지나 도로변의 작은 슈퍼에서 잠시 쉬어간다.


"뭐든 먹어야지. 갈 길이 먼데."


 

빵과 콜라를 사들고 중국에 들어와 먹고 싶었던 사과의 아삭한 맛이 생각나 사과를 집어 든다. 사과를 하나만 달라고 하니 '싱거운 놈을 다 본다'는 눈빛으로 사과 하나를 저울에 올려놓더니 감귤이 맛있다며 제법 알맹이가 굵은 감귤을 권하는 아주머니다.


도로변 노점과 과일 가게에서 많이 파는 귤인데, 보통 우리의 귤감 크기만 한 것이 지금까지 봐왔던 중국의 귤보다는 크기가 조금 크다. 사과 하나와 귤 6개를 8위안에 사들고 슈퍼의 작은 대나무 의자에 앉아 점심을 대신한다.


당도가 떨어지고 아삭한 식감만이 좋은 사과 그리고 껍질이 두껍고 굵은 씨가 들어있는 귤은 그다지 맛이 없다.


"중국 과일들은 신선한데 다 맛이 없네."


중국에서 탁구공만 한 귤들을 많이 먹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 사이즈가 가장 맛있는 크기가 아닐까 싶다.


 

 

취안저우현 외곽의 시내에는 도로면은 여전히 비에 젖어있었다.


"비가 왔었나? 근데 왜 도로면만 젖어있는 거지."


 

취안저우현을 빠져나올 때쯤 뒤바퀴의 느낌이 이상하여 확인하니 또 펑크가 나있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자전거를 눕히고 타이어를 탈착한 후 타이어 내부를 여러 번 훑어보아도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은 없다. 튜브를 꺼내어 튜브 패치로 정비를 하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는데 집에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와 쳐다본다.


마당 한편에 자전거를 널브러뜨리고 있는데 별다른 말없이 인사를 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타이어를 장착하며 얼핏 보인 뒷드레일러의 풀리 모양이 이상하다. 흙모래들이 달라붙어 달그닥거리는 체인과 스프라켓만을 신경 쓰다 보니 풀리가 완전히 마모되어 닌자들의 표창처럼 날카롭다.


풀리가 이렇게 빨리 마모되어 버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별일이 다 있네. 자전거샵을 구경하기도 힘든데 어디서 풀리를 구하나."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지 않는지 기다린다.


"제발 한 번에 붙어라!"


 

"이것은 경운기일까, 자동차일까, 트럭일까?"


경운기의 엔진을 달고 있는 트럭의 크락션 나팔이 유독 눈에 띈다.


 

"풀리, 풀리를 어디서 구하지. 본드도 아직 못 구했는데."


풀리에 대해 고민을 하다 문득 도로변 곳곳에 버려진 공공 자전거가 떠오른다.


"길가에 버려진 자전거들에서 풀리를 빼내면 되겠구나. 오케이!"


 

생각해 보니 셔터로 되어있는 중국의 문 앞에 대책 없이 자전거를 세워 놓은 것 같다. 언제 어디에서 셔터가 올라갈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중국의 멋진 현관문이나 대문이 있는데, 왜 이런 볼품없는 셔터를 달아 놓는 거지?"


 

다행히 바람이 빠지지 않아 가던 길을 이어간다. 작은 오르막을 오르고 시내를 완전히 빠져나와 크락션을 빵빵거리는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자전거의 속도감이 이상하다.


펑크 정비를 하고 5km도 가지 못했는데, 하필이면 울퉁불퉁 도로가 파여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변에서 펑크가 난다.


"아, *************************"



 

 

펑크가 난 튜브를 정비하려다 시간이 늦어지고 위험한 도로변이라 어제 펑크 패치로 정비를 해두었던 튜브로 교체한다.


"부처, 예수, 알라여! 제발 제대로 펑크 패치가 붙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5년이 넘게 MTB샵을 운영하면서 수 천 번이 넘도록 펑크 정비를 했을 터인데도 무거운 여행용 자전거의 펑크 정비는 쉽지 않다. 두 번의 펑크 정비를 하는 사이 시간은 4시가 가까워진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정비를 해두었던 튜브는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이다. 오늘의 1차 목적지로 생각했던 지에소우전까지 30km 정도가 남아있다. 비가 내리는 날의 12km 정도 평속에 비해 조금 빠르게 달려온 하루라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취안저우현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도로변의 풍경은 흙먼지의 회색빛 세상에서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짙푸른 색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달려!"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따라 작은 노지의 귤 밭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짙푸른 귤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감귤의 주황빛 색의 조합이 너무나 좋다.



"이번엔 노란색과 녹색의 조합."



마치 봄과 가을을 계절을 넘나들며 제주도의 어느 마을을 달려나가는 것처럼 페달링의 가벼움이 느껴진다.



도로변으로 이어지는 감귤밭과 감귤을 처리하는 집하장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특산물이 감귤이 아닌가 생각된다.



5시 20분, 주황빛 감귤과 노란빛 배추꽃의 싱그러운 풍경을 달리다 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지에소우전에 들어선다. 마을이 가까워지며 다시 회색빛 흙먼지의 세상이 되어 버린다.


대형 차량들이 마을을 거칠게 지나치며 흙먼지를 날리고, 생기가 없어 보이는 마을의 곳곳에는 버려진 감귤들이 쌓여있다.


"이거 생각과 너무 다른데."


도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슈퍼마켓의 입구에서 음식점과 빈관의 위치를 검색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빈관을 찾는다. 황량해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다. 싱안현까지의 거리를 확인한다.


"6시. 15km 정도라."


콜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시고 싱안현으로 달려간다.



봉인해 두었던 비장의 능력을 개방한 사람처럼 자유롭고 거칠게 페달을 밟아 싱안현으로 향한다.


"울트라 캡숑 콜라 파워!"



지에소우전을 출한하여 1시간 후 16km의 싱안현에 도착한다. 흥건하게 젖어든 져지와 탱글하게 느껴지는 허벅지의 느낌이 좋은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도착한 싱안현 역시 다른 이전의 현(县)들에 비해 조금 낙후되어 있는 듯한 풍경이다. 일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주변의 빈관들을 검색하고 작은 빈관들이 모여있는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몇 개의 빈관들을 지나치며 내외부의 모습을 살펴봐도 아주 오래된 빈관들의 모습은 시골 역전 주변의 오래된 여인숙 같은 느낌이 난다.


"쑤이 지아오, 뚸 샤오 치엔?"


첫 번째 눈이 마주친 빈관의 여자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50위안을 달라고 한다.


"싸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빈관으로 들어가 주숙등록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빈관으로 가 보라고 한다. 역시 중국에서는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숙등록이 가능할지가 더 중요하다.


"워 쓰 한궈렌. 커이 쑤이 지아오 마?"


두 번째 오래된 재봉틀이 놓여있는 빈관으로 들어가 잠을 잘 수 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가능하다는 제스처를 한다.


"커이?"


큰 기대 없이 그냥 물어본 것인데 숙방이 가능하다고 하니 나도 놀랍다.


"뚸 샤오 치엔?"


"40."


"40?"


"40!"


아주 오래된 빈관이고 잠깐 내부를 살펴봐도 허름해 보이지만 씻을 수 있고,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여행자에게 빈관의 40위안이라는 가격은 너무나 마음에 든다.


"하오! 하오!"


여권을 보여주고 체크인을 마친 후 자전거는 재봉틀 옆에 묶어두고 낡은 계단으로 패니어를 들고 올라간다.



"정말 딱 40위안 빈관이야."


난방기조차 없는 작고 허름한 방이지만 작은 화장실과 침대는 놓여있으니 만족한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오니 빈관은 여자는 주숙등록을 못했는지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다.


"왜 그래? 컴맹인 거야 아니면 주숙등록을 못하는 거야?"


컴퓨터로 주숙등록을 할 수 있다며 웃는 여자는 계속해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안 해 봤어? 그런 거야!"


빈관의 컴퓨터에 주숙등록을 하는 프로그램 창이 열러있는 것으로 보아 주숙등록이 가능한 빈관인 것은 확실하다. 경찰들이 빈관으로 찾아와서 주숙등록을 처리해 줬던 티먼현의 빈관처럼 프로그램의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중국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외국인에 대한 주숙등록을 입력할 일이 있었겠나 싶다. 다른 빈관에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으며 주숙등록을 입력하던 여자는 한참 후 뿌듯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인다.



빈관 주변 저녁 장사를 하느라 분주한 길거리 식당으로 들어간다.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식당은 저렴하고.



고기 메뉴를 골라 밥을 먹었지만 130km를 넘게 달려온 하루의 허기짐에 뭔가 허전하다.



"나쓰 썬머?"


다른 사람들이 먹는 메뉴를 가리키며 같은 것을 추가로 주문을 한다.



허름한 길거리의 식당이지만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두 개의 메뉴를 시키고 밥까지 배불리 먹었는데 20위안이다.


"하, 너무 좋아!"



만족스러운 저녁을 하고 빈관으로 돌아오니 빈관의 할머니가 재봉틀 앞에 앉아있다. 눈이 침침하여 실을 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재봉틀의 실을 꿰어준다.


"아니 눈도 침침하신데 불을 켜야죠."


재봉틀로 뭔가를 수선하는 할머니에게 공항에서 뜯겨진 커다란 가방을 수선해 달라 부탁을 할까 생각하다 귀찮아진다.



난방기가 없어 쌀쌀한 방, 패니어에서 침낭을 꺼내어 덮고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하던 중 블루 스크린이 뜨면서 컴퓨터가 꺼져버린다.


"왜 이래?


다시 전원을 켜보지만 정상적으로 부팅을 하지 못하는 노트북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작은 사이즈의 노트북을 털보네에게 구매한 것인데 말썽을 일으킨다.


여러 차례 재부팅을 반복해보지만 전원마저 들어오질 않는다. 마더보드가 망가졌나 생각했는데 파워 쪽의 문제인가 보다.


"망했다."


 

차링현에서 만난 데이비스에게 노트북을 수리할 수 있는 장소를 물어본다.


"메이커가 어디야? 삼성? 엘지?"


"없어. 그냥 중국 제조 제품이야!"


"..."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 난 것 같아. 어디서 고칠 수 있을까?"


데이비스는 한참 후에 계림시에 있는 전자상가의 위치를 보내준다.


"중국에는 큰 전자 상가들이 있는데 웬만한 것들을 모두 고칠 수 있어. 걱정 마!"


일단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계림에 있는 전자상가의 위치를 알아뒀고,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이지만 중국에서 제조된 것이라 쉽게 수리를 할 수 있거나 부품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장 난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중국 여행에 적응을 하면서 밀려있던 자료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든다.


"몰라. 자자!"


침낭 속으로 들어가 이불킥을 몇 차례 날리고 잠이 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6일 / 구름 ・ 7도

창닝시-링링구

8시에 깨어나는 아침, 한 시간만 더 일찍 생활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처럼 잘 되질않는다. "오늘도 가 보자!"

이동거리

92Km

누적거리

1,664Km

이동시간

7시간 05분

누적시간

130시간 09분


S320소도
X006길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창닝시
바수이전
링링구
 
 
1,664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불쾌한 꿈에서 깨어 습관적으로 커튼부터 열어본다. 여전히 낡은 창문 너머로 뿌옇게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시원스쿨 강좌를 틀어놓고 패니어들을 정리한다.


여행을 위해 시원스쿨 강좌로 영어 공부를 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20분이 조금 넘는 한 강의를 듣는 것이 좀이 쑤셔 그렇게 힘들더니 여행 중 한국말로 대화할 일이 없으니 강의 내 들리는 설명마저 귀를 쫑긋 집중하게 된다.


어제 자전거를 씻지 못하여 엉겨 붙은 흙들로 엉망인 자전거는 오늘은 또 얼마나 크게 달구지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달릴른지 모르겠다.

 

 

 

숙소 앞에 노점상들이 야채와 채소를 팔고 있다. 중국인들이 등짐을 질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도구인데 무거운 짐에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채소나 야채도 저울에 달아 파는구나."


 

 

10여 분 만에 창링시를 쉽게 벗어나 계속되는 S320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이전과는 달리 이곳의 길은 새로 정비되었는지 검은 아스팔트가 윤기나게 잘 깔려있어 라이딩 하기에 편안했다.


 

10시 30분쯤 작은 촌마을 시장길을 지나간다. 사람들로 붐비지만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잠시 쉬며 어제 사놓은 빵을 먹을까 하다 시장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이 있어 시장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들어간다. 자전거를 세워두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한국인임을 알아챈 사람들의 대화들이 들린다.


"나 왜 자꾸 중국말이 들리지?"


 

할머니가 투명한 면발을 가리키며 그것을 먹을 건지 제스처로 물어봐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 가지 메뉴만 판매하는 모양이다.


 

 

면을 준비하던 할머니가 어떤 소스를 보여주며 넣을 거냐고 물어본다. 중국에 와서 소스를 첨가할 것인지의 물음에는 언제나 "쓰!". 그들이 먹는 그대로 먹고 싶고 지금까지 딱히 거북하거나 입에 맞지 않는 소스는 없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기름에 튀기듯 후라이한 계란과 국수 가득.


 

열심히 맛있게 먹으니 할머니가 맛있냐고 물어본다.


"하오 츠! 하오 츠!"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식사를 마치니 가게 안에 있던 남자들이 재미난 것을 보는 사람처럼 서로 웃고들 있다. 할머니가 면이 더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기본적인 양이 많아 배가 넉넉하게 부르다.


"부 요!"


가격을 물으니 가게 안에 있던 남자들이 다섯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웃는다.


"우! 우! 파이브!"


먹으면서 10위안 정도 하겠지 생각했는데 5위안(850원) 이라니 정말 싸다.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S320 도로. 오늘 가야 할 링링구까지 거리는 90Km가 조금 넘는다. 오전 라이딩으로 40Km를 달리고 50Km 정도가 남아있다.


 

 

링링구까지 이동하는 길에는 성도나 소도, 국도가 없이 X00*으로 넘버링 되는 시골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지금까지 도로와 도로를 잇기 위해 잠깐씩 지나쳤던 시멘트 포장길이나 비포장의 도로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도 험난한 길을 이어가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던 S320 도로를 벗어나 초입부터 의미심장한 느낌의 시골들을 접어든다. 산길들과 탄광촌을 지나며 언제나 산의 정상에 올려놓았던 S320 도로를 며칠 만에 벗어난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중국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구불구불한 시골의 마을길들을 이어간다. 큰 도로변들의 수많은 촌부락들을 지나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시골 마을들의 내부를 자세히 구경할 수는 없었다. 정말 흥미로웠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오토바이나 차량의 통행이 없어 지겹도록 들었던 크락션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좋다.


 

 

큰 도로변의 마을들은 시장이나 상점들이 이어져있는 길이 아니면 대부분 집들의 셔터가 내려져있어 텅 빈 것처럼 휑한 분위기가 많은데 한적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골 동네들은 길가 주변으로 사람들과 아이들이 많다.


 

 

마을의 슈퍼에 모여 마작이나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 마을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무언가를 의논하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어린아이들이 무리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모두 노인들뿐인데,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지?"


 

 

 

중국의 시골에는 광고판이나 현수막보다는 집의 벽면에 대부분 광고가 그려져 있다. 시골길에 접어들어 계속되는 서양인 의사의 사진이 걸린 병원 광고. 나중에 알아보니 유라시아 남자 의사가 보는 치질 치료 광고다.


 

 

 

 

오래되고 이상한 골목길을 지나 면소재지처럼 보이는 곳이 나온다. 작지만 상점들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중학생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한꿔렌하며 의아해 한다.


 

 

가끔씩 보이는 탑인데 논 한가운데 세워져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시골의 소학교 앞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학교 앞 문방구를 겸하고 있는 상점에 들어가 빵을 사든다. 패니어에 빵들과 콜라가 있었지만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가려고 가게에서 추가로 빵을 산다.


좁은 가게 안에서 기다란 종이에 뭔가가 적혀있는 카드를 들고 게임을 하느라 나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별 관심이 없다.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하여 색다른 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을 찍지 못하겠다.


 

이 넓적한 빵이 재미있다. 내용물 없이 달랑 두 쪽이 들어있는데 위에 뿌려져 있는 각설탕의 맛이 맛의 전부다. 그런데 먹다 보면 심각한 중독성이 있다.


 

"여기도 업어져 있네."


 

 

조용한 산길로 이어지던 길은 급기야 공사 중인지 시멘트가 벗겨진 난장판의 흙길이 나타난다. 20여 분을 진흙밭과 물웅덩이를 지나느라 고생을 하고 길은 하늘로 올라간다.


 

힘들게 하늘길을 올라오니 갑자기 윤기나는 검은 아스팔트가 펼쳐진다.


"아, 드디어 살았다!"


 

검은 아스팔트 길은 바람과 달리 딱 5분 정도 마을을 관통하고 끝이 난다. 그리고 길은 중앙선만 그어졌을 뿐 이전의 시골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시멘트 포장길의 S236 도로로 이어진다.


 

 

자전거와 패니어에 붙은 흙들이 말라가며 엉망이 돼버리고, 드드득거리며 돌아가는 체인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정신이 혼미해지면 길이 이렇게 보이는 걸까?"


짧은 거리를 두고 모굴처럼 위아래로 이어진 도로를 보면 마치 엿가락처럼 휘고 굽은 길처럼 착시현상이 보인다.


 

4Km 정도를 남기고 목적지인 링링구의 높은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들의 통행이 많아지는 길 위에서 한 차량이 달리는 나에게 속도를 맞추며 조수석의 문을 열고 한국인지를 묻고 자꾸만 중국어로 질문을 한다.


너무 위험하여 손가락으로 저 앞에서 서서 말하자고 가리켰더니 잘못 이해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


"한국 사람 쌀쌀맞다고 오해하지 마. 네가 잘못 알고 그냥 가버린 거야."


 

 

예전 홍콩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아파트들이 보이고.


 

 

넓은 링링시의 시내로 들어선다. 큰 사거리의 건너편 넓은 광장에 사람들과 음악이 가득하다. 궁금하여 길을 건너보니 음악에 맞춰 사교댄스를 추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춤을 추는 사람들, 장기나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 중국의 도시마다 있는 커다란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제각기 즐기는 그들의 광장문화는 재미있다.



광장에 앉아 고덕지도로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고 주점으로 이동했지만 2층에 프런트가 위치해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던 중 작은 빈관이 눈에 들어온다.


빈관의 계단 아래에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숙박비를 물으니 60, 80위안이라 말한다. 피곤함이 조금 밀려들어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지 묻자 숙소 뒤편에 창고가 있다며 따라오라고 안내를 하다. 긴 건물을 빙 돌아 숙소 뒤편의 창고에 가보니 넓은 창고 건물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 심지어 십여 마리의 닭들이 창고 안을 시끄럽게 헤집고 돌아다닌다.


"헐, 창고에서 닭을 키우는 거야?"


자전거를 숙소의 벽에 기대어 놓고 자전거를 씻어내기 위해 자전거에 물을 뿌리는 제스처를 크게 하며 수도가 없는지 찾는다.


"메이요!"


"쑤이, 워 요 쑤이."


주인 여자는 알았다며 숙소의 뒷문으로 따라오라 한다.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의 공간을 활용해 만든 부엌으로 들어간다.


너저분한 부엌에는 낡은 조리 시설과 설거지들이 쌓여있고 바로 옆에는 구식 좌변기가 놓여있다. 좌변기에는 붉은 이물질들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어서 주인 여자는 황급하게 좌변기에 물들을 뿌려대며 중얼거린다.


환경이 좋지 않아 보이는 빈관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열악한 내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이건 뭐야! 화장실에 부엌이 있는 거야, 부엌에 화장실이 있는 거야?"


주인 여자는 설거지들이 쌓여있는 곳의 옆에 놓인 큰 물통을 가리키며 받아놓은 물을 양동이로 사용하라고 알려준다. 첫인상이 수다스럽고 재미있는 동네 아줌마 같은 여자는 능글맞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 자전거를 씻어내고 주인 여자가 황급하게 물을 부으며 없애려던 것이 음식을 만들 때 쓰던 양념이거나 남은 음식을 변기에 버린 찌꺼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또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가 있나했다. 그래도 식기들 옆에 변기는 좀."


패니어들을 모아두고 체크인을 하며 여권을 알아서 건네주어도 어찌 주숙등기를 못하는 눈치의 여자지만 언제나 유쾌하고 수다스럽다. 보증금을 포함해 100위안을 내니 신형 난방기 리모컨을 주며 새것이라며 수다스럽게 생색을 낸다.


"리모컨이 새 것이면 뭐해. 난방기가 신형이어야지! 방 키를 줘. 팡카!"


한참을 프런트 서랍을 뒤적이며 열쇠 뭉치들을 뒤적이더니 없다고 하며 올라가면 있다고 한다.


"뭐야. 카드도 아니고 열쇠야?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빈관의 상태를 보아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2층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 방은 긴 복도를 따라 나무로 된 방문들에 자물쇠들이 하나씩 매달려 있다.


허름하고 낡은 빈관. 중국의 건물들은 겉모습을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최근에 지어진 빌딩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샤워를 하고 숙소의 건물 끝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손님이 와도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중국의 식당, 볶음밥 같은 메뉴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음식을 하던 젊은 여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날카로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언성을 높여 떠들어 댄다.


밥을 먹는 내내 신경질적으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여자,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고 귀에 거슬려 왜 그런지 여자를 살펴본다.


등치가 제법 크고 골격이 굵은 여자는 양꼬치 같은 것을 굽고 있는 남자를 향해 지속적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남자는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얇은 양꼬치를 들고 왔다 갔다 식당을 드나든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식당에서 적당히 맛있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불쌍한 그대, 그대의 죄라면 단지 중년의 남자인 거야!"

 


숙소에 돌아오니 프런트에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앉아 있다. 아무리 봐도 주인 여자를 닮지 않은 귀여운 얼굴이다.


"자전거를 고쳐야 해. 창고 문을 열어줘."


잠시 어리둥절하던 여자애는 부엌에 있는 주인 여자를 부르더니 숙소 뒤편의 창고 문을 열어준다. 링링시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빠진 것을 확인한 자전거, 좋지 않은 산길을 다니다 보니 쉴 새 없이 펑크가 난다.

 


숙소의 프런트 앞에서 3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동안 자전거 꺼내어 튜브 정비를 한다.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우리나라였으면 등짝 스매싱을 열두 대는 더 맞았을 거야."


 

 

예비 튜브까지 펑크패치로 잘 정비를 해두고.


 

살짝 김유정을 닮은 것 같은 20대 초반의 여자애는 BTS를 안다며 케이팝이 좋다며 방긋 웃는다.


"아무리 봐도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네. 정말 딸이 맞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방으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다 고기가 없는 저녁 식사를 한 탓인지 배가 출출해진다. 빵과 콜라를 사기 위해 슈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연신 잔소리를 듣던 남자는 부지런히 꼬치들을 굽고 있다.


메뉴판에 적힌 꼬치들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실없이 웃고만 있는 아주머니에게 무엇이 맛있는지 물어본다.


어떤 것이 맛있냐고 물어보는데 자꾸만 꼬치의 가격만 알려주는 아주머니다.


"알았어. 계속 드라마 봐."


 

식당으로 되돌아가 1개에 2위안 하는 양꼬치를 10개 주문한다. 식당 안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다양한 꼬치들을 가득 쌓아놓고 먹고 있는데 무엇을 먹는지 알 수도 없고,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지글지글 양꼬치들을 숯불에 굽고 양념들을 조금씩 가미한 후.


 

건네받은 양꼬치, 한 개를 꺼내어 먹으니 맛과 향이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야, 이거 한국 양꼬치 집에서 먹는 맛과 다른데. 술 친구라도 있으면 배불리 가득 먹고 싶다."


 

양꼬치를 먹으며 숙소로 돌아오니 여전히 핸드폰 드라마를 보며 실없이 웃고 있는 아주머니. 양꼬치 다섯 개를 꺼내어 주었더니 괜찮다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양꼬치의 아쉬움.


"아, 쓰고 달달한 소주가 당기는 밤이네."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지만, 계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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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5일 / 비 ・ 7도

레이양시-창닝시

다시 시작된 비, 계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긋한 겨울비를 맞으며 오늘도 달려본다.


이동거리

54Km

누적거리

4,321Km

이동시간

4시간 20분

누적시간

291시간


S320소도
S320소도
25Km / 1시간 55분
29Km / 2시간 25분
레이양시
이티안전
창닝시
 
 
1,572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다시 시작된 빗줄기, 아침부터 생각보다 굵은 빗줄기가 내린다. 계림까지는 340Km 정도가 남아있다.


"오늘 창닝시까지 갈까 아니면 바수이전까지 100Km를 갈까."


일정을 조금 줄이기 위해 바수이전까지 진행할 생각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1층 프런트로 내려간다. 프런트 사무실 창고에 넣어둔 자전거를 꺼내고 뒤바퀴를 확인해 보니 공기가 없이 주저앉아있다.


"아, 정말!"

 



타이어에 이물질이 박혀있지는 않고 튜브를 꺼내 공기를 넣은 후 펑크가 난 곳을 찾지만 실펑크각 난 것인지 구멍 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화장실 어디에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프런트 직원에게 '쑤이'라고 두어 차례 말하니 눈치를 채고 알아듣는다. 직원 화장실에 들어가 튜브를 물속에 담그니 한 곳에서 '뽀그르르' 공기 방울들이 올라온다.



펑크를 수리하고 제어가 되지 않던 뒤캘리퍼의 유격을 조정하고 나니 10시가 되어버린다.


"아무래도 50Km 정도에 있는 창닝시까지 가야겠네."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프런트의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뒤바퀴 모양이 이상하다. 확인해 보니 방금 채워놓은 공기가 패니어를 장착함과 동시에 빠르게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OMG!"


다시 패니어들을 떼어내고 펑크 수리 작업을 다시 한다. 물속에 담가보니 23C 얇은 튜브 탓에 펑크 패치를 정확한 위치에 붙이지 못하여 공기가 새고 있다.


사포질을 하고 구멍이 난 위치에 패치를 붙여 정비를 한 후, 패니어들을 장착해 놓고 숙소 앞 중국 건설은행에 가서 현금을 조금 인출한다.


"되돌아가서 다시 바람이 빠져있으면 오늘 출발하지 않을 거야!"


다행히 이번에는 펑크 수리가 잘 된 모양이다. 11시, 친절하고 잘 웃던 숙소의 직원들과 인사를 다시 하고 창닝시를 향해 출발한다.



펑크수리를 하는 두 시간 동안 어떠한 변화도 없이 빗줄기는 계속된다.



20분 정도, 비가 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중국 도심의 도로를 벗어나 조금은 한적한 S320 도로로 진입한다. 계림을 알리는 이정표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예전 방식의 짐지게를 사용하는 중국의 시골 사람들이다.



중국의 도심에는 하늘 높이 올라가는 빌딩과 넓은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 중이라 바쁘고, 시골에서는 집을 새로 짓기 위해 마당 가득 붉은 벽돌들을 쌓아놓은 집들이 많다.



오늘도 산을 타고 오르고 넘어가더니 급기야 터널을 지나간다. 황산을 가기 위해 지나가던 길들에서 여러 터널을 지나친 후 오랜만에 만난 터널이다.



S320 도로의 길은 쉽게 내리막을 내어주지 않는다.



잠시 비기 멈춘 시골 마을의 풍경은 그지없이 좋기만 하고.



끝내는 다시 산의 정산에 올려놓는다.




11시, 출발 후 쉼 없이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춰 서서 하늘 위로 뜨거운 소변 줄기를 날려준다. 시내까지는 20Km 정도 남아있다.



몇몇 가구들만이 사는 마을조차 드문드문하고 시골의 마을들은 셔터로 만든 문들을 모두 내려놓아 인적감이 전혀 없다.



독특하게 이곳의 여러 집들은 새 집을 짓기 위해 평지가 아닌 언덕을 파낸 후 그곳에 지반을 다진다. 집을 짓는 모양이 약간 이상한데, 한 번에 짓기보다 조금씩 조금씩 벽돌을 올리는 것 같다.


지나다 보면 집을 짓는 건물인지 해체를 하는 건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짓다만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요즘에 짓는 집들은 현관을 셔터로 만드는 게 유행인가 보다.


셔터가 달린 1층은 어떤 집은 차고, 어떤 집은 거실로, 어떤 집은 창고 그리고 어떤 집은 가게로 사용하고 가지각색이다. 내가 보기엔 나무 현관이나 스테인레스 현관이 그나마 집 같아 보이는데.



내려갈 것 같지 않던 길은 시내를 10Km 정도를 남기고서야 나지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간만에 달려볼까!"


언더 핸들을 잡고 내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에 보이는 길들이 차들로 정체되어 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중국의 도로에서 정체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는 시장의 초입이거나 사고가 난 것이다.


길게 늘어선 차량들의 옆으로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동안 성급하고 제멋대로인 중국의 운전자들은 역주행을 하거나 자전거 도로마저 막고 서있다.


"그렇게 하면 갈 수 있다니?"



정체된 길을 따라 이동하니 화물차량 한 대가 역방향으로 도로를 막고 있다. 도로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정차를 해놓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차량은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운전자가 없네. 오줌이라도 싸러 갔나 보지?"


그런데 화물 차량의 사진을 찍고 왼쪽을 보니 앞범퍼와 본네트가 찌그러져 있는 승용차가 보인다. 사고가 난 모양인데 승용차가 화물차를 들이받아 화물차가 밀려났을 리는 없고 도로로 진입하려던 승용차를 화물차가 피하며 들이받았나 보다.


중국의 운전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탄 사람에게는 위협적으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단지 시끄러운 크락션을 자주, 길게, 크게 울리면서 조금은 비껴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운전자들 간에는 무모할 정도로 운전을 하거나 지나치게 양보를 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추월을 하는 차량들, 무조건 차량의 머리부터 들이밀어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저 크락션만 울려대면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각자의 진행들을 한다.


어떻게 이런 저급한 교통문화가 생겨났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런 것들로 크게 다투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칭 호방하다는 중국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허세, 자기중심적인 제멋대로의 행동을 그들은 호방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싶다.


길게 막혀있는 반대편 차량들을 곁을 지나쳐 창닝시를 향해 내달린다. 갑자기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시야를 흐리게 만들어 놓는다.



사람들과 오토바이, 삼륜차와 승용차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시내의 시장 주변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가 들어가니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는 나를 향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면 안 된다는 표현만 할 뿐 숙박이 되는지 묻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오면 먼저 인사를 좀!"


더 묻지도 않고 나와 주변 숙소를 검색하고 저렴한 빈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주숙등록을 해야 하고, 말이 안 통하고 때로는 정말로 불친절한 중국의 숙소들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주점이나 빈관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빈관인데 무려 4층의 방을 내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



샤워 후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 주변 음식점에 들어가 고기가 든 메뉴들을 시키니 재료가 없는지 '메이요'하며 투덜거리듯 메뉴판을 가져가 버린다.


"할매, 요거는 있어?"


가게의 벽에 붙어있는 고기 메뉴를 가리키며 말하자 없는 것만 시킨다는 듯이 더 시끄럽게 성을 낸다.


"할매, 아무것도 없는 거야! 재료가 없으면 사진을 붙여놓지 말아야지 시킨다고 성을 내면 어떻게 해!"


활짝 웃으며 한국말로 할머니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나온다. 준비가 되지 않은 메뉴에 미안해하며 다른 메뉴를 권해주는 한국의 식당 아주머니들을 정말 친절한 거다.


다른 음식점에 들려 14위안짜리 밥을 먹고 슈퍼에 들러 비상식들을 조금 사둔다. 식당에서도, 슈퍼에서도 나의 쪼리를 가리키며 서로들 웃는다.


"한국이었으면 반바지에 쪼리 신고 편의점에 갔을 텐데. 이게 그렇게도 이상한가?"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3~4일 후면 계림에 도착한다. 아마도 계림에서 방향을 틀어 베이징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빡빡한가? 조금 열심히 달려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4일 / 구름 ・ 11도

차링현-레이양시

오랜만에 일기예보가 맞아 떨어졌다. 잠시 비가 멈춘 아침, 이틀간 머물렀던 차링현을 서둘러 떠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무한 반복했던 S320 도로를 타고 레이양시로 향한다. "오늘은 비도 없으니 제발 무난하게 갈 수 있기를" 

이동거리

95Km

누적거리

4,267Km

이동시간

7시간 29분

누적시간

287시간


S320소도
S320소도
43Km / 2시간 54분
52Km / 4시간 35분
차링현
링관전
레이양시
 
 
1,51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일어나 제일 먼저 숙소의 커튼을 열어젖힌다. 일기 예보처럼 비가 내리지 않고 잔뜩 흐린 날씨다.


"오늘 비가 안 오는데 출발 안 하는 거야?"


리우 씬웬의 위챗이 울리고 작은 빵 하나와 초코파이 2개를 먹으며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간다. 리우 씬웬은 짐을 들고 내려오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어디론가 가버린다.


"할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리우 씬웬이 오기를 잠시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아 위챗으로 간단히 메시지를 전하고 차링현을 출발한다.

 

 

20여 분 만에 복잡한 차링현의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고 두꺼운 회색 구름 사이로 수줍은 햇볕이 5분 정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님 보기가 참 힘들군요."


 

조금 내달리니 금방 몸에 열기가 올라온다. 비가 오지 않으면 이곳의 기온이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하다.


 

다시 S320 도로를 타고 레이양시까지 95Km 정도를 달려야 한다. 중간에 위치한 도시들은 없고 작은 마을들이 간간이 이어진다. 이틀 전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엔 오르락내리락 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무난하게 가자."


차량들이 정체되고 복잡하고 어수선해지더니 작은 시골마을이 나온다. 오늘이 장날인지 시장 안에 사람들이 가득 넘쳐난다.


 

중국은 대부분 밖에 옷들을 말리는데 비가 와도 걷지를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오랜만에 비가 그쳐서인지 지나는 마을마다 옷과 이불들을 잔뜩 내놓고 말린다.


 

12시가 되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에 자전거를 세운다. 비가 오지 않는 날, 90Km의 거리가 약간의 여유로움을 준다.


 

자전거를 세워놓기 좋은 첫 번째 집의 외부 테이블에 자전거를 기대어 놓으니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워 꺼이 츠판마?"


식사가 된다 하여 남자의 뒤를 따라가니 식당 내부를 지나 주방으로 간다. 남자의 말을 잘 못 들었나 싶어 뒤돌아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니 젊은 남자가 다시 와서 말을 한다.


"저기 가서 메뉴를 골라야 해."


 

역시나 난감한 시추에이션. 메뉴판도 그림판도 없는 식당은 주방에서 원재료를 골라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다.


 

돼지고기 조각들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으니 15위안이라고 한다.


"쩌거, 츠!"


 

주방에서 조리를 하던 여자 주인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한다.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사이 돼지고기를 파와 고추를 넣어 매콤하게 볶은 음식이 나온다. 향과 음식의 모양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음식을 먹는 동안 뒤쪽에서 한국인이라며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여기서 돌아서 그들에게 말을 붙이면 사람떼가 몰려든다. 모르는 척 밥만 먹자."


맛있게 밥을 먹는데 식당의 남자가 다가와 여행 중이냐며 묻고는 말한다.


"니 요부요 빠이주?"


얼핏 뭐가 더 필요한지를 묻는 것인데 앞에 빠이주가 뭔지를 모르겠다. 번역기를 건네주니 흰죽(白粥)을 더 주겠다는 말이다.


"요! 요!"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정말 하얀 흰죽을 갖다 준다. 흰죽을 마시듯 먹으니 후식을 먹는 것처럼 속이 편하고 든든해진다.


 

"아, 오늘은 저녁까지 비가 안 올 것 같아!"


 

음식을 모두 비우고 남은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젊은 남자와 주방에 있던 여자가 함께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우리집 음식이 어땠어요?"


"하오, 헌 하오 츠!"


밝게 웃는 여자, 두 사람은 부부 같은데 모두 친절하고 편안하게 웃는 얼굴을 가졌다. 때때로 웃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미소는 너무나 부럽다.


 

50Km 정도가 남은 오후의 거리, 아니나 다를까 S320 도로는 이틀 전의 라이딩을 복습이라도 하듯이 비슷한 길들로 이어진다.


"대체 무슨 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서 다시 나타나냐고!"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더니 산들의 능선들이 눈 높이에 맞춰진다.


 

석탄 같은 검은 흙들이 쌓여있는 마을들이 이어진다. 마치 불에 타 검게 그을린 듯 낡고 검은 집들과 검은 흙물에 얼룩져있는 도로가 계속된다.


"오늘의 카테고리는 탄광촌인 거야?"


 

중국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질 않고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죽어있는 동네들처럼 보인다. 아주 오래된 폐가들과 새로 집을 지으려는지 벽돌들을 모아둔 집들이 자주 보인다.


검은 마을들이 이어지던 중 이번엔 색다른 모양과 색깔의 풍선 아치가 보인다. 축하를 하는 일에는 붉은색과 황금색을 주로 쓰는 중국인데 검은색의 풍선 아치에 적힌 한자들이 너무 어렵다.


"분위기가 상갓집인데."


초상을 치르는 상갓집으로 생각하며 조심스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멀리서 경극의 얇은 고음이 들리며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린다.


"상갓집이 아닌가?"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이번에도 같은 풍선 아치가 있고 경쾌한 음악이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무엇을 하는 거지?"


 

 

 

계속되는 오래된 폐가들과 폐가와 같은 검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끔씩 오래된 집의 벽면에 도시 아파트의 분양 광고 같은 것이 걸려있다.


"평당 2,488위안이면 얼마지? 40만원~50만원 정도 되는가."


 

 

달리다 보니 수로 교각에 부딪쳐 완전히 타버린 차량이 버려져있다. 형태로 보아 최근에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중국은 왜 저런 것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금씩 내리막이 시작되고 또다시 등장한 풍선 아치. 이번엔 길을 따라 풍선 기둥들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다. 역시나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리고 폭죽 소리까지 우렁차게 들린다.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러 미칠 것 같고 지적 허기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조금 더 지나 똑같은 풍선 아치를 하나 더 보았으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친다. 지적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식적인 회피다.


"너무 궁금한데."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한 마을들이 계속 이어지고 검은 마을들의 정적을 깨뜨려 놓는 폭죽과 경쾌한 음악소리들. 다섯 번째 집을 발견하고 더는 허기진 지적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


마침 클래식 밴드의 경쾌한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집이 도로에서 그리 머지않아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는다.


 

길가에 길게 놓은 막대풍선들에는 풍선마다 자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큰 글씨로 메시지들이 적혀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용들이 축하의 문구들은 아니다.


 

"초상집이 맞는데, 저 날아갈 듯 경쾌한 밴드 연주는 대체 뭐냐고?"


 

"가 보자! 까짓것 얻어맞기밖에 더 하겠어."


 

초입에서 엄청나게 많은 폭죽 상자를 정리하는 사람에게 무엇인지를 물었지만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허허 웃기만 한다.


 

 

 

마침 행사를 하고 있는 언덕 집의 아랫집에 한 청년이 나와 있어 자전거를 끌고 가며 눈을 마주치고, 손을 들어 용건이 있음을 알리니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누구에게 손짓을 하는지를 살피며 어리둥절해한다.


"한국사람인데요. 저기서 무엇을 하는 거죠?"


"사람이 죽었어요."


"아, 노인이 죽어서 상을 치르는 거예요?"


"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얼굴인데 씹는 담배 같은 것을 질겅거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대답한다.



생경한 중국의 장례문화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청년이 말을 건다.


"보고 싶으세요?"


"가도 되나요?"


"네. 따라오세요"


남의 초상집에 그것도 타국의 외지객이 불쑥 찾아들어 간다는 것이 어렵지만 장례식 모습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앞서가던 청년이 흰 면포를 머리에 둘러쓴 사람에게 한국사람이 구경하러 왔다며 알려주고, 면포를 둘러쓴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집으로 올라간다.


 

화환들이 보이고 문제의 밴드가 경쾌한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다.


"..."


 

청년은 상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나를 소개한다. 환하게 웃으며 한국인인지 물으며 거실로 데려가 의자에 앉으라 권하더니 따듯한 차를 건네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순식간에 좁은 거실이 흰 면포를 쓴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서로 몇 마디씩을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밥을 먹었는지 묻는 상주의 질문에 밥은 먹었다 대답하고 나니 이번에는 여자들이 다가와 밥과 음식을 줄 테니 먹으라고 권한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밝고 즐겁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니 남자들이 하나둘 다가와 담배를 계속 건넨다. 담뱃갑 통째로 그리고 한 개비씩 계속 건네주어 양손을 모아 담배를 받아들고 있는 모양이 되어버린다.


위패를 모셔둔 곳이 보이지 않아 밖으로 나오려 하자 조금 전 나에게 음식을 권하던 여자가 밥은 한가득 담은 그릇을 들고 먹으라고 한다. 다행히 상주가 밥은 먹었다고 알려준다.


상갓집의 식사는 어떤 것이 나오는지 알고 싶었지만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거실 옆 공간에 우리의 상여꽃 같은 종이꽃들로 장식이 되고 안쪽에 위패 같은 것이 모셔져 있는데, 제의 의식을 치르면서도 두 형제가 담배를 물고 있다.


중국의 담배 문화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밴드의 연주가 잠깐 쉬는 사이 경극의 노래 같은 중국의 노래가 중국 악기들의 운율을 타고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징징징징! 야~~ 오~~~ 이~~~"


 

 

간간이 한두 명 정도의 조문객이 왔다 갈 뿐, 집에는 대부분은 흰 면포를 쓴 고인의 가족과 자식들이다.



상갓집을 떠나려고 상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와 주셔서 감사하는 말을 건네며 인사를 한다.


집의 옆, 천막을 두른 임시 공간이 음식을 준비하는 곳인가 보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초입과 도로로 나가는 길에서 계속해서 폭죽을 터트린다. 엄청나게 쌓인 폭죽 상자들이 보인다.

 

 

"누군가는 축제라 했던가."


형식이나 모습들이 조금 다를 뿐, 가족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찌 다르겠는가 싶다.


 

검은 집과 검은 도로, 낡고 허름한 것들 너머로 도시의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온다. 중국은 언제나 여기서부터 도시라는 듯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큰 도시가 나타난다.


 

 

도시의 초입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한 남자가 바쁘게 도로를 가로질러 나에게도 다가와 말을 건넨다.


"한국 사람이냐?"


그렇다고 답변을 하고 크게 웃으며 대하였으나 느닷없이 나타난 남자를 약간 경계한다. 씹는 담배를 많이 하는지 누런 이와 거친 손 그리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특이한 몸짓들이 예사롭지 않다 생각이 든다.


"나는 한국사람을 싫어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중국을 여행하는 너는 존경스럽다."


밑도 끝도 없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의 곁으로 다시 한 중년의 남자가 붙어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가까이 붙어있는 이웃 나라이니 공통된 언어를 써야 한다."


중년의 남자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해가며 쉽사리 떠나가지 않을 눈치다. 그들의 말에 크게 호응을 해주며 위챗으로 친구 등록을 하고 메시지를 보내라 인사하고 자리를 떠난다.


"성질 같아선 자리에 앉혀놓고 한 6시간쯤 잘근잘근 씹어서 철 지난 중화사상 따위 지하 깊숙이 내려놓게 해주고 싶다만 참는 거야!"


 

"웃어 짜샤! 허황된 쿵후 영화만 보지 말고 UFC도 좀 보고!"


 

 

 

오는 동안 다른 곳과는 달리 호남인(湖南人)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자는 취지의 벽화들을 자주 본다. 레이양시에 들어서며 다른 도시와는 조금 다른 보수적인 도시인가 싶은 느낌을 받는다.


유별나게 반짝이고 시끄러운 다른 도시들과 달리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건물들과 분위기다.



레이양시의 정부청사 앞에서 한 컷. 그리고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고 가까이에 위치한 주점으로 이동한다.


 

여권을 건네고 몇 가지 짧은 영어 질문에 쑥스러운 듯 밝게 웃으며 응대하는 숙소의 직원들. 모두가 친절하고 웃음들이 많아 즐겁다.


위챗 친구 등록을 해달라는 어린 여직원과 편안한 웃음을 보이며 이것저것을 챙겨주는 매니저 그리고 자전거와 나를 보고 좋은 웃음을 보여주는 매점의 아주머니까지 함께 깔깔거리며 농담을 하고 웃으며 체크인을 마친다.


프런트를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국인이라며 웃으며 소개를 한다.


자전거는 직원들의 사무실 옆에 위치한 창고에 넣어두고 방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위챗 친구 등록을 했던 어린 여직원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알려준다.


"침대 테이블 옆에 커다랗게 붙어있던데.."


 

샤워를 끝내고 주변의 식당을 물어보니 한참을 여기저기 설명하더니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여직원이다.


루이 씬웬과 먹었던 매콤한 고기덮밥 사진을 보여 주자 그 메뉴를 알고 있다는 듯 크게 말하더니.


"하지만 호남의 음식도 맛이 좋다!"


"그래, 그래서 어딘데?"


어린 여직원은 숙소 밖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길 건너편 식당과 몇몇 식당을 가리키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을 가라고 한다.


여직원이 알려준 식당으로 들어가니 그동안의 식당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친절하게 응대를 한다. 중국에 와서 여러 식당을 들어갔지만 어서 오라며 인사하는 곳은 처음이다.


"얘가 어딜 알려준 거야? 비싼데 아닌가?"


환한 조명과 따듯한 실내, 넓고 조용하며 케니지의 색소폰 음악이 흘러나오는 제법 모양이 나는 유리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받는다. 15위안부터 시작되는 메뉴들은 그리 비싸지 않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32위안 메뉴를 시키고 있으니 제복의 점원이 다시 다가와 차를 마실 거냐고 물어본다.


"세상에 따듯한 차까지 내어주는 집은 처음이야."


밝게 웃는 직원들은 응대 교육을 받은 듯 조용하고 친절하게 주문을 받고 안내를 해준다.


 

그리고 나온 5,000원짜리 돼지고기 요리. 삼겹살을 튀겨서 조리한 매콤한 맛이 나는 음식이다.


"5,000원짜리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거니. 쓸데없이 고급 지게 양이 너무 적잖아!"


딱 우리의 삼겹살 크기만큼 한 돼지고기 요리는 맛이 좋다. 그런데 밥을 먹다 보니 이 양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직원을 불러 메뉴판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서브 메뉴를 고르는데 17위안 하는 몇몇 요리들 중 두부가 들어간 메뉴를 가리키며 무엇인지를 묻자.


"도우푸(豆腐, 두부)!"


두부로 간장조림을 했거나 야채 같은 것과 함께 나오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후에 조용히 나온 음식은 깍두기만 한 사이즈로 튀겨진 두부가 한 접시 가득 나왔다.


"뜨헉, 진짜 두부만 나왔네."


 

예쁜 빛으로 튀겨진 두부는 은은한 간장맛이 나면서 매콤하니 부드러웠고 한 입 베어 물면 기름맛이 돌면서 아주 맛있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은 두부튀김은 밥통에 있던 5~6공기 정도의 밥을 다 먹고서야 그 바닥을 드러낸다.


'허니, 허니.' 애칭을 부르며 저녁을 먹는 어린 남녀 커플이 둘만의 대화를 하며 가끔씩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허니들,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대들 하던 거 해. 한국 사람들 이렇게 많이 안 먹는다. 그냥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약 먹는 거야. 약!"


배부름과 함께 귀가 닳도록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케니지의 Going Home 색소폰 연주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밥 먹었으면 집에 가라는 건가."


숙소로 돌아오니 매점의 아주머니께서 저녁을 잘 먹었는지 웃으며 물어본다. 맛있게 먹었다 대답하고 콜라를 하나 사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밥을 잔뜩 먹었으니 감기가 떨어지겠지!"


식곤증인지 피곤함인지 잠이 쏟아진다. 피식 웃고 사라져버린 루이 씬웬, 웃는 얼굴을 갖은 식당의 젊은 부부,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주의 뜻밖의 웃는 얼굴 그리고 숙소의 경쾌하고 밝은 웃음들과 식당의 가지런한 응대의 미소까지 많은 웃는 얼굴을 바라본 날이다.


"좋았어!"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4일 / 구름 ・ 8도

상하이 예원-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쿤산시

여전히 피곤함이 있는 아침이다. 조금씩 여행의 일정에 맞춰 몸이 적응할 것이라 걱정은 없다. 예원의 관람은 포기하기로 했다. 어제 본 그 많은 사람들이 예원에 들어가 있다면 그저 사람들의 기차놀이에 불과할 것 같았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리고 쑤저우시로 향하는 경로를 선택하였다. "이제부터 대륙을 달린다!" 

이동거리

83Km

누적거리

2,905Km

이동시간

6시간 06분

누적시간

182시간


상하이시
자딩구
2.7Km / 20분
79.8Km / 5시간 46분
예원
임시정부
쿤산시
 
 
120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비가 내릴 듯 흐릿한 날씨, 한국 10월의 날씨처럼 조금 쌀쌀한 정도의 기온이지만 차가운 바람과 흐린 날씨의 습한 기운이 체감온도를 떨어뜨려 기온에 비해 춥게 느껴지는 상하이의 날씨다. 


아침나절 예원 근처의 모습은 축제가 끝난 뒤의 황량함처럼 텅 빈 느낌이 든다. 


어제의 보증금 110위안을 돌려받은 후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는 어제의 모습으로 그대로 놓여있다. 일단은 안심이다 싶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중국인들은 자전거에 별 관심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하이 시내를 달리면서 인도에 방치되어 있는 공공 자전거들은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가끔씩 짐을 실은 오래된 자전거나 공공 자전거가 한두 대씩 지나갈 뿐이다.   

 

 

"어찌 됐든 잘 있어줘서 고맙다!"


다음 목적지인 쑤저우시를 가기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들리기 위해 맵스미를 켜고 출발한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온다. 


 

예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는 예원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길은 맵스미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작은 2차선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바로 앞에 두고서 여러 차례 두리번 거려야만 할 정도로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글로 된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건물 입구의 오른 편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가 입장료가 얼마인지 묻자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기가 아닌가 싶어 미안하다 말하고 나와 서너 명의 한국인으로 보이는 관람객이 나오는 입구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다. 임시정부 건물의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중국인 남자 안내원에게 티켓이 필요한지 물으니 조금 전의 그 사무실을 가리킨다.


"뭐야. 그 사무실이 맞잖아! 중국에 있어도 우리나라 기념관인데 한국말 정도는 하는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전거를 자물쇠로 잠그고 소지품들을 챙기는 사이, 한 중국 남자가 다가와 한국 사람인지를 묻는다. 


"한국 사람이냐! 대단하다. 멋지다. 이쁘다" 


남자는쉴 새 없이 중국어를 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운다. 


임시정부 안내자와 친숙하게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 것 같다.



"뚸 샤오 치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조금 전의 여성에게 이번에는 임시정부 방향을 가리키며 입장료의 가격을 물어본다.


"한 분이세요? 20위안입니다!"


처음 한국어로 했을 때 못 알아듣는 듯하여 이번엔 중국어로 물어봤더니 한국어로 대답한다.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다. 


"허허허, 한국말 하시네요. 잘.." 


 

입장권을 들고 임시정부의 현관으로 들어서니 사진을 촬영하지 말라는 듯 제스처를 취하고 비닐로 된 덧신을 신으라고 안내한다. 

 

 

 

임시 정부의 건물은 3층으로 이루어진 작은 가정집과 같다. 1층은 부엌과 거실, 2층은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회의실, 3층은 침대가 놓인 숙소가 있다. 좁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며 좌우로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건물 내부를 관람하며 안내 화살표를 따라 나오니 이번에는 덧신을 벗으라는 안내를 한다.


 

 

그곳은 임시정부와 관련된 사진들과 문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명록에 감사의 글을 남기고 20위안을 후원하고 나온다. 


"가난한 여행자라 죄송합니다!"


 

 

20여 분 정도 임시정부 기념관을 관람, 저 시대를 지나쳐왔다면 나는 어떤 삶의 선택을 했을지, 그들과 같은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올해가 임시정부 수립,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다. 수많은 좌절과 역경을 감내하며 투쟁했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아직까지 하나의 조국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올해는 더 좋은 일들이 남과 북 사이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북한을 내달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5년 후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내 다음의 여행자들은 언제든 북한을 통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단절. 섬나라가 아닌 섬나라로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는 단절과 왜곡이다.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단절의 역사는 그 모든 복잡한 것들을 차치하고, 무엇보다 시대의 상상이나 바람 같은 생각의 넓이를 가로막고 있고, 왜곡되고 변질된 가치관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임시정부의 관람을 마치고 호수의 도시 쑤저우로 향한다. 상하이 시내의 자전거길은 아주 잘 되어 있어 라이딩을 하기에 편하지만 신호등을 만나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좌회전 신호가 별도로 없는 곳이 않아 직진 차량과 좌우회전 차량, 신호를 건너는 사람들과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가 요란하게 올려댄다.


길을 잠시 잃고 전기 레일로 움직이는 버스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없는 길을 이동하여 신호등 앞에 멈춘다. 복잡한 사거리를 통제하던 경찰이 나를 보더니 다가와 다그치듯 중국어를 내뱉는다. 자전거가 다닐 수 없는 도로인가 보다. 


손가락으로 큰 길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시내 한 바퀴를 크게 빙 돌아 겨우 쑤저우 방향의 길에 들어선다.


"아, 중국 도로 어렵다."


 

 

큰 기암괴석이 붙어있는 아파트, 암석에 아파트를 올린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에 암석을 붙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괴하다. 


도로를 달리다 자전거 통행금지 안내판과 자전거도로 안내판이 동시에 보인다. 


"어쩌라는 거야?" 


속도를 늦추고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하니 다행히 출퇴근 시간만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는가 보다. 


 

 

 

중국의 도로는 자전거길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거나 간이 펜스나 분리선 같은 것으로 구분되어 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이고 일단 차량이 없어 라이딩 하기가 편하지만 주로 오토바이가 함께 주행하기 때문에 전방 주의를 잘 해야 한다.


중국의 오토바이는 대부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옆을 지나치는 오토바이에 몇 차례 놀란 후 오토바이를 자세히 보니 배기통이 없고 소리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것 같다.



대부분 아이나 사람 그리고 짐 같은 것을 싣고 달리다 보니 빠른 속도로 다니지는 않지만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느껴지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도로가 넓다 보니 역주행해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들이 많아 절대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중국의 신호등은 큰 사거리가 아니면 녹색등과 적색등 두 개만 있고 가운데 숫자가 카운트되며 신호이 시간을 알려준다.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다 보니 신호의 길이가 제법 길고, 길게는 한 신호가 70~90초까지 이어진다. 


3초가 남으면 카운트는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이때부터 자동차를 제외한 사람들과 자전거, 오토바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국인들도 몹시 급하다.


 

큰 사거리에는 좌회전 신호가 별도로 있는데 각각의 신호 시간이 길다 보니 사람들이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사람이든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기 때문에 내 눈에는 무질서해 보인다.


 

시내를 벗어나 잠시 폐촌 같은 곳으로 맵스미는 길을 안내한다. 큰 도로와 도로를 잇기 위해 가끔씩 외진 도로나 마을길로 맴스미는 길을 안내한다.


 

길을 건너 전 만난 딸기 아저씨, 그냥 지나치려다 계속 이어지는 외진 길에 식당이 있을까 싶어 딸기로 우선 허기를 채운다. 얼마인지를 묻자 처음에는 18위안이라며 노트에 적어 보여준다.


딸기 바구니를 가리키며 달라고 하고 패니어에서 돈을 꺼내어 주려고 하자 52위안을 달라고 한다.


"응? 52위안? 18위안이라며!"


나는 한국말, 아저씨는 중국 말로 서로 손사래를 치며 알아듣지 못하는 흥정을 하다 20위안을 주고 딸기를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서로의 의견이 통한다.


"타이~~ 헌 타이! 워 헌 어!" 


바구니에서 딸기를 덜어내어 저울에 올려놓고 무언가 계속 말하는 아저씨에게 배고프다고 하니 크게 웃으며 몇 개를 더 담아 준다.


 

딸기는 무르지 않고 단단하니 신선하지만 우리나라의 것보다 당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딸기 아저씨의 의자를 차지하고 딸기를 먹는다. 


"중국은 딸기가 비싼 과일인가?"


 

 

겨울철이라 모두들 오토바이 앞에 형형색색의 저런 가림막을 하고 다닌다. 겨울철 핫 아이템인가 보다. 가끔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 없이 역주행을 해오는 오토바이를 보면 불쑥불쑥 다가오는 것이 꼭 예전 홍콩 영화의 강시처럼 느껴진다.


 

중국 거리의 건물들은 연이어 붙어있고 2층에 상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저 긴 건조대에 갖가지 것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중국 도시의 도로길은 참 예쁘다. 도로와 자전거길의 경계면과 자전거길과 인도의 경계면에 가로수가 우거져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들고 잘 정비된 포장도로는 언제나 깨끗하다. 가로수의 은은한 향기가 바람 사이로 전해지고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지럽힌다.


도로마다 차량의 통행이 많음에도 차량들이 길게 정체되어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렵고, 갓길은 자전거 도로로 주정차된 차량이 없어 혼잡하지 않고, 우거진 가로수들로 인해 도로의 전체가 쾌적한 느낌을 준다.  


 

사원 같은 곳의 입구에 버젓이 자전거와 차량의 통행금지 안내판이 있음에도 사람들을 자전거를 타고 거리낌 없이 지나쳐 간다. 초입에 관리 사무소처럼 보이는 곳에 관리자가 있음에도 어떤 제재도 하지 않는다.


"중국은 참 할 수 없는 것도, 못 할 것도 없는 나라구나."


 

 

길을 이어가던 중 시장으로 보이는 상가가 즐비하던 도로에서 파란색 자켓의 아주머니와 노란색 가림막의 여자가 접촉 사고가 났는지 어수선하다. 라면머리 뽀글 파마를 한 아주머니가 넘어져서 엄청나게 빠른 말로 떠들고 있었고 노란색 가림막 여자는 내 잘 못 아니라는 듯이 대응하는 것 같다.


노란색 가림막 여자의 오토바이를 보면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깐 중국 도로를 달려본 바로는 중국인들은 양보를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보면 상호 간의 수신호도 없고 감사나 미안함을 전하는 신호들도 없이 그저 크락션만 울려댄다.


 

 

자전거 도로가 이차선으로 만들어져 끝없이 직선으로 뻗어있다. 


"아, 이 직선 성애자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며 셀카 놀이에 빠진다. 여행 전 사놓은 샤오미 삼각대 블루투스 셀카봉의 사용법도 알아볼 겸 요리조리 위치를 바꿔가며 연습 삼아 가지고 논다. 동행자가 있으면 좋은 여행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쑤저우에 가까워질수록 작은 수로길을 넘는 횟수가 많아진다. 우리와 달리 천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충돌했나 보다. 절대로 양보 같은 건 하지 않는 사람들이니 작은 접촉 사고들이 얼마나 흔하게 발생할지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고 난 위치를 보면 어떻게 저기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추돌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오후가 넘어가며 약간의 허기짐으로 지쳐가던 중 콜라의 단맛이 당기어 길가의 슈퍼에 들어간다.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집어 들었으나 손에 잡힌 콜라의 온도가 시원하지 않다.


이상하여 냉장고를 확인하니 냉장고는 코드가 뽑혀있는지 꺼져있다. 칼칼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콜라의 단맛을 원했는데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게 된 것이다. 중국은 참으로 이상한 동네이다.


 

자리에 앉아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는 동안 작은 새들의 울림이 들려온다. 혹시 주변에 새를 키우는 곳이 있나 둘러보았으나 그런 곳은 없다. 가로수가 울창한 중국의 도로에서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느낌이다.


 

중국에 와 처음으로 햇볕이 든다. 일몰을 앞두고 잠깐 얼굴을 보인 태양빛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쑤저우로 가는 길에 깨끗하게 조성돼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 썬린공원(森林公园)을 지나친다. 녹푸른 공원과 청아한 새들의 지저귐이 눈과 귀를 간지럽다. 한국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즐길 텐데 좋은 공원에 인적감은 그리 많지 않다.


 

일몰이 시작되기 전, 썬린공원(森林公园)을 지나 잠시 쉬며 트립닷컴으로 주점을 검색한다. 


"근처에 저렴한 데가 어딘가?"


검색을 하다 보니 숙소의 위차가 지나왔던 길로 6Km 정도를 되돌아가는 길이다. 어쩔 수 없이 썬린공원을 다시 지나쳐 쿤탄시에 위치한 주점으로 이동한다. 

 

 

중국의 도시들은 온통 공사장과 다름없다. 높고 웅장한 건물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느라 바쁘다. 


 

 

주점에 가기 위해 조금은 외져 보이는 길을 따라가던 중 차오후아 씨티 프라자 앞에서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토바이들을 본다. 


지상의 넓은 주차장은 오로지 오토바이뿐이고 차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조금은 오래된 중국의 주점에 도착한다. 체크인을 한 후 자전거를 주점의 입구에 묶어 두어도 되는지 묻자 쿨하게 안으로 가져와 넣으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주점의 규모가 크다 보니 장소에 대해 연연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많은 수의 오토바이들이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오후아 씨티 프라자에 들어간다. 고덕지도의 맛집을 검색하니 프라자 내부에 여러 가게가 있다.


  

 

1층 정면 에스컬레이터의 사이에 놓인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보며 있을 법 하다 생각하는 사이 내 뒤편으로 느닷없이 기차 같은 것이 지나가 깜짝 놀란다.   


 

먼저 식당들을 찾아본다. 검색을 통해 알아보았던 식당 한 곳은 면 종류를 파는 곳이라 패쓰, 그리고 가고 싶었던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려는 순간 식당은 뷔페식처럼 여러 가지 메뉴들이 길게 놓여 있다. 여러 가지 메뉴들을 선택하고 주문하는 그런 곳 같다.


"저것들을 어떻게 주문하고 먹는지 하나씩 물어보다가는 하룻밤이 걸려도 모자를 거야."



다행히 입구 초입에 KFC가 있어 그곳으로 갔다.


"아, 다 중국어다!" 


 

KFC 매장에 들어가 잠시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보고, 그림판을 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잠시 걱정이 앞선다. 한국에서도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에 가면 이것저것 추가 메뉴들을 알려주는 점원의 말이 안 들리고 귀찮아서 힘들었는데 여기라고 다를까 싶다.


주문대 앞에서 잠시 주춤하며 메뉴를 고른다. 버거와 치킨 조각, 파이, 콜라가 든 세트 3번을 선택하고 젊은 중국인 남자가 주문 하는 것을 지켜본다.


중국 남자도 처음엔 3번 세트를 주문하였으나 역시나 점원이 무언가 추가 메뉴들을 설명하자 55위안 세트로 변경하여 주문을 한다. 그리고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를 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어 계산대 앞에 놓은 바코드에 핸드폰을 갖다 댄다.


중국에서의 첫날, 호텔 앞 부침개 케밥을 팔던 허름한 노점상에서도 중국 남자는 핸드폰으로 바코드에 갖다 댄 후 그냥 가버렸다. 아마도 중국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결제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세트 넘버 3!"


약간 놀란 점원은 습관적으로 추가 메뉴들을 설명하려다 포기하고 39위안이라고 알려주며 웃는다. 잠시 후 나온 버거세트는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단지 콜라가 약간 작은 사이즈다.


 

약간 중국 향신료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허기진 탓에 지금껏 먹어본 햄버거 중 가장 맛있는 것처럼 만족스러움을 준다. 


가끔씩 스타벅스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 시내에서 맥도날드와 KFC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식사를 하고 공항에서 빼앗긴 본드와 필요한 것들 몇 가지를 사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다. 대형마트 같은 곳으로 들어간 순간 넓고 끝없는 마트 내부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이곳은 뭐지?" 


엄청나게 넓은 규모의 매장은 가전, 의류, 생활용품, 식료품 등으로 쭉 이어지고, 모든 카테고리가 한 층에 있으니 어마하게 넓을 수밖에 없다.  


 

 

 

한구석의 자이언트 자전거 코너. 매장 내 유일하게 사람이 없는 코너에는 펑크 패치용 본드는 아쉽게도 없다.


 

 

50위안 운동화, 9,000원이 안되는 운동화를 들어보니 값비싼 런닝화에 비해 조금 무거웠지만 괜찮은 품질로 보인다.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깔려있다 아니 쌓여있다.


 

 

사람들 틈 사이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매장. 그만 돌아갈까 하다 내친김에 다 둘러보기로 한다.


 

매장의 끝부분에 위치한 생선 코너까지 돌아보려니 다리가 아프다.


 

 

 

 

"뜨악!"


생선코너의 끝자락 부분에 놓인 황소개구리를 보고 놀란다. 


 

 

"허걱!"


그리고 자라. 그런데 가격이 두 배쯤 차이가 난다.


 

미꾸라지 같은데 크기가 장어만큼 큰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갖가지 밑반찬 중 우리의 김치도 한 접시 놓여있다.



 

 

 

우리는 치킨, 중국은 오리. 


"한 팩 사가서 소주 한잔했으면 좋겠네."


 

 

우리 대형 마트처럼 셀프 계산대도 있다.



프라자를 나오며 중국의 건물들이 비현실적으로 거대하고 모양 없이 지어놓는지 알 것 같다. 수없이 많은 가게들과 시설들이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은 그런 사이즈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로비에 있는 커피 자판기, 믹스커피 한 잔이 먹고 싶어 가보니 메뉴가 중국어다. 모르면 눈치껏 찍으면 된다. 아마도 첫 번째 咖啡라고 적힌 것이 커피가 아닐까 싶다. 


"맞다에 500원!"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나오지 않는다.


"됐다. 방에 가서 김태희 커피 먹을 거다."


 

숙소에 돌아와 내일의 경로 등을 확인하고 잠이 든다. 커다란 타이호와 주변의 크고 작은 많은 호수들이 궁금하다.




Tip1. 중국 시내에는 자전거가 다닐 수 없는 길이 있다.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을 따라가라.)

Tip2. 중국에는 좌회전 신호가 별도로 없는 곳이 많다. 차들을 조심하라.  

Tip3. 중국인은 길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멈출 것이라 생각지 말고 피해 가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일 / 맑음 ・ 8도

상하이 푸동-상하이 예원

본격적으로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다. 푸동 공항에서 좌절된 중국의 도로 라이딩의 난감함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 번의 경험이면 충분하겠지. 달려보자!"

이동거리

37Km

누적거리

2,822Km

이동시간

3시간 40분

누적시간

176시간


세기공원
황푸강페리
31Km / 3시간 10분
6Km / 30분
푸동
황푸강
예원
 
 
37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두 개의 알람을 흘려보내고 SKT의 핸드폰 해지 전화에 잠이 깬다. 피곤하고 잠이 덜 깨어 상담원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메일로 해지 서류를 보낼 테니 출력하여 서명을 한 후 주민등록증 사본과 함께 첨부하여 리턴을 해달라는 것이다.


출력이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린다.


"출력해서 서명한 후에 스캔을 해서 메일로 첨부하라는 건가요?"


서류에 자필 서명이 들어가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언제나 가입은 쉽게 해지는 어렵게라고 했던가. 시대가 변하는데 굳이 대리점에 직접 가야 하는지, 자필 서명을 한 종이 쪼가리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것을 대체할 수단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말이다.


문서를 작성한 후 서명란은 그림판을 열어 PNG 파일로 붙여넣기 하고 주민등록증과 함께 첨부하여 리턴한다. 잠시 후 문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는 메일을 다시 받고, 이번에는 JPG 파일로 첨부하고 5시 이후에 해지 해달라 메시지를 남긴다.


20년간 사용하던 핸드폰의 번호가 사라지는 순간이고 더는 금융기관이나 온라인 서비스를 받기 위한 핸드폰 인증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를 상징했던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이 묘한 느낌을 준다.

마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상하이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자전거에 패니어를 걸고 이틀간 친절하게 응대해 준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생수 하나를 달라고 했더니 2개를 가져와 건네준다.


상하이의 예원으로 가야 한다. 상하이를 가고 싶은 것은 와이탄이나 예원, 디즈니랜드 같은 곳을 보기 위한 것보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아가고 싶어서고, 예원은 와이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가운데 위치한 곳으로 모든 것을 다 찾아보기 쉬운 장소다.


예원으로 가기 위해 맵스미를 켜고 출발한다. 푸동공항에서 고덕지도에 크게 당한 후 맵스미를 믿고 라이딩을 할 것이다.


"나 뒤끝 있다. 고덕양!"


맵스미 어플은 오프라인 지도다. 필요한 곳의 지도를 다운로드해 쓰기 때문에 온라인이 끊기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지도앱이다. 여행 전 가야 할 나라들의 지도를 모두 다운로드해 두었다. 구글 오프라인 지도에 비하면 용량이 작고 나라별로 맵을 다운로드하기가 쉬운 것이 장점이지만 가끔 없는 길을 안내한다고 한다.


예원까지 대략 35Km 정도의 거리, 3시간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바라보게 될 세상은 그 모든 것들이 처음이다.


"그럼 출발이다!"


조금은 긴장되고 설레는 여행의 첫 번째 라이딩이 시작된다. 아직은 흔들거리는 핸들바의 조향이 어색하지만 하루 이틀이면 이 또한 적응을 할 것이다. 지난 10월 24일간의 전국 일주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산악자전거를 탔을 때 가벼워진 핸들바의 조향이 어색하고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눈에 들어온 한국 식당.


"저녁이었다면 숯불갈비에 소주 한잔했으면 좋겠다."


차도와 완전히 분리된 중국의 자전거 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좋은 환경이 있을까 싶다. 의외로 잘 정비되고 깨끗한 중국의 길이다.


우리 전혀 다른 색다른 풍경들 속에서 페달링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장대만 한 길이의 빨래 건조대, 기다란 건조대에 어떻게 빨래를 널고 거두는지 궁금하고 그다지 날씨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굳이 저렇게 건조를 시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상하이 시내에 가까워지면서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거대하다는 표현밖에는 어찌 설명할 수 없는 건물들이다. 묘한 감각의 소유자들이다.


시내에 접어들며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무게 추가 달리 저울로 무게를 재고 물건을 옮겨주는 자전거, 자전거만큼이나 오래됐을법한 이 서비스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 이유가 알고 싶어진다.


상하이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자전거들. 우리의 공공 자전거처럼 보이는데 도로 곳곳의 인도에 세워져있는 자전거보다 버려지듯 쓰러져있는 자전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와 달리 인도에 자전거 거치대가 없고 자전거 모양의 주차공간이 프린트되어 있다. 비교적 좁게 느껴지는 인도에 쓰러져 있는 자전거들을 치울 법도 한데라고 생각하던 찰나 대형 트럭에 자전거들을 집어던지 듯 싣고 있는 작업자들을 발견한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변화하고, 급속하게 발전하고 거대해지는 환경과 달리 문화 지체 현상 같은 의식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우리나라의 생활 자전거 문화도 만만치 않으니 이것을 흠잡을 것은 없지만 명동 한복판에 이런 흉물스러운 풍경이 널브러져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이해하기가 힘들고 상하이라는 제법 알려진 세계적인 도시의 모습이 조금은 아쉽다.


흉물스러운 자전거 더미 건너편에 위치한 대형 백화점과 수많은 사람들의 거리. 거대한 현대 건물과 시스템 그리고 낡은 주택과 정체된 의식이 뒤섞여 존재하는 중국이 흥미롭다.


백화점을 지나며 잠시 자전거 도로가 사라진다.


"누나가 거기서 왜 나와? 결혼했을 때부터 미워했던 거 미안해. 여기서 보니 좋네."


백화점을 지나 조금 이동하니 문제의 그곳 황푸강 페리 선착장이 나온다. 황푸강을 건너는 지도앱들은 하나같이 배를 타고 건너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아니 넓지도 않은 강에 멀쩡한 다리들이 있는데 왜 배를 타라는 거야?"


모든 지도앱을 뒤적이며 여러 경로를 검색해 봐도 곳곳에 있는 선착장을 통해 배로 이동하는 경로만을 안내한다.


"유람선에 자전거를 싣고 간다는 거야?" 정말 그 시스템이 궁금하고 한편 걱정이다.


황푸강을 건너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차량을 통해 다리나 해저터널을 지나는 방법, 황푸강 페리를 타고 건너는 방법 그리고 중국인답게 해저터널을 마주잡이로 걸어가는 방법.


"안 되는 것이 없는 중국인데, 또 다른 방법으로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아. 가령 세숫대야 같은 것으로 넘는다든지."


하여튼 황푸강 페리 선착장 중 양찌아두(杨家渡渡口) 페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예원 방향의 푸씽동루(复兴东路渡口)로 넘어가면 된다.


매표소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입구, 왼쪽이 출구이다. 마침 배가 도착하여 출구가 열리고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줄을 이어 몰려나온다.



매표소에 들려 지도앱을 보여주며 푸씽동루를 가리키자 그렇다고 한다. 가격을 물으니 안내판의 2위안을 가리키고 2위안을 내자 주황색 동전을 주며 입구를 알려준다.


오토바이를 탄 중국 사람들을 지하철을 타듯이 개찰구에 스마트폰을 대고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그들을 따라 입구로 가니 개찰구 옆으로 동전을 넣는 통이 보여 여기에 넣는지를 묻는 제스처를 하자 개찰구를 지키는 관리자가 맞다고 한다. 주황색 동전을 통에 집어넣고 개찰구를 통과하자 관리자가 무어라 중국말을 빠르게 해대며 손에 들고 있던 금속 탐지기 같은 것으로 자전거의 패니어들을 쭉 훑어내린다.


"뭐야. 왜 나만 특별 관리하는 거야. 그거 작동은 하는 거야?"


선착장으로 나가니 조그마한 배 한 척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페리라? 그냥 조그마한 낚싯배네."


앞서 승선을 했던 오토바이들이 반대편 방향을 보고 대기하고 있다.


"저쪽으로 내리나 보다."


적당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중국 사람들인데 출퇴근 시간에는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진다.


출항을 하고 10분이 안되어 반대편에 있는 푸씽동루에 도착. 많은 기대, 걱정과 달리 굉장히 싱겁게 끝나버린 황푸강 페리 넘기 미션이다.


반대편의 푸씽동루의 선착장을 양찌아두 선착장보다 크고 세련돼 보인다.


푸씽동루 선착장 앞의 사거리. 보행 건널목이 없고 동그랗게 육교로 이어져 있는 참신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가끔 저 넓은 사거리의 대로를 아무렇지 않게 도보로 건너가는 중국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보통 서울 시내나 지방의 중소 도시를 가더라도 도변의 풍경은 큰 대형 건물 뒤편에 옛 골목이나 허름한 건물들이 숨어있는데 중국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3시가 되어서야 예원에 도착한다. 맵스미가 알려주는 많은 길을 따라 많은 수로들과 작은 마을들을 지나오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짧은 거리지만 여행의 첫 번째 라이딩으로 만족스럽다.


예원의 입구에서 길을 따라 이동하여 만난 막다른 삼거리, 관광지만의 특별한 흥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우선 도착 인증샷을 찍고, 주변을 돌아보기 전 숙소를 예약하려고 핸드폰을 검색을 하는 순간 전화번호가 해지되어 로밍이 끊겨있다.


"5시 이후에 해지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핸드폰의 유심칩 박스를 열어 미리 구매해 둔 차이나 유니콤의 유심칩으로 교체한다.


"안되면 절대 안 된다."


여행을 오기 전 샤오미 홍미노트5를 구매했다. 3년 넘게 사용하던 갤럭시 S6의 성능과 배터리가 약정 기간이 지난 이후 귀신처럼 그때에 맞춰 나빠졌다. 홍미노트5는 주로 내비게이션이나 어플 같은 온라인용으로 사용하고, 갤럭시 S5는 나들이(산들샘)의 GPS 저장과 MP3 그리고 이동 중 카메라 용도로 사용한다.


샤오미 홍미노트5를 선택한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배터리 성능이 좋다. 그리고 듀얼 유심칩을 사용할 수 있고 나처럼 메모리 카드+유심칩을 사용할 수 있다. 오프라인 지도들과 구글 번역기에 사용되는 언어들을 다운로드해 놓기 위해 64G 메모리칩을 넣어 사용하고 있다.


여행 중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이 전자기기들의 배터리 충전이다. 핸드폰, 카메라, 노트북, 라이트, 보조배터리 그리고 블루투스 기기들까지. 지금 중국에서는 캠핑을 할 수 없고 가급적이면 저렴한 숙소를 찾아 숙박을 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충전에 큰 문제는 없지만 3~4일 정도 연이어 캠핑을 한다면 배터리들의 충전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여행 전 비상용으로 털보네에서 YOLK의 솔라페이퍼 2장을 구매하여 준비했지만 핸드폰 정도 충전할 수 있는 정도이다. YOLK에 협찬을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후원 문화는 참 아쉬운 것이 많다.


유심칩을 교체하고 별다른 작업 없이 재부팅이 이루어진 후 데이터 연결이 된다. 별도의 네트워크 설정이 있었다면 조금은 번거로웠을 텐데 말이다.


예약과 취소를 두 번이나 했던 Ibis 상하이점으로 이동하여 입구에 앉아 트립닷컴으로 예약을 한다. 예약을 하는 동안 체크인 시간이 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온라인 예약 확정이 이루어져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을 한다. 호텔 바우처와 여권을 제시하고 결제를 하는데 110위안을 더 달라고 한다.


"뭐? 190위안이잖아!"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는 곳이라 영어로 안내를 해주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의 말이 빠르고 발음이 이상하다.


'결코 내가 잉글리시 막귀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니 발음이 겁나 이상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Why is it 300?"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라고 말하며 다시 300위안이라고 답변하길래 이번에는 '나 바보 아니다!'라는 듯 째려보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번역기를 돌려 보여준다.


"너는 보증금으로 100위안이 필요해."


"오호. 알았어. 지도 중국말을 한국어로 번역했네."


체크아웃을 할 때 보증금을 반환하는지 한 번 더 확인을 하니 그렇다고 한다.


"꼭 갚어. 짜샤!"


한국 숙박업체를 다니면서 보증금이라는 것을 내본 적이 없어서 보증금이라는 것이 생소하다.


체크인을 끝내고 호텔 앞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어 둔다. 여행을 하며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자전거와 분리되어 생활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어져도 상관없지만 자전거 자체가 도난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끝을 알리는 것이다.


U자형 락까지 4개를 묶어 놓고도 왜 이리 안심이 안되는지.


"여기 중국인데. 이거 불안해서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자물쇠를 잠그는데 자꾸만 한 녀석이 자전거와 나를 번갈아 보며 관심을 갖는다.


"훠이~ 저리 가라. 쫌!"


한참을 구경하던 녀석은 바로 옆에 놓여있던 화려하게 튜닝된 하이브리드 자전거의 사슬 자물쇠를 풀고 떠날 준비를 한다. 이 때다 싶어 그에게 말을 건넨다.


"Your bike? Wow! Your bike is very good! It's fantastic!"


너의 자전거가 훨씬 좋으니까 내 것에는 관심을 꺼달라는 칭찬에 별것 아니라는 듯 크게 웃으며 으쓱해하던 녀석은 기분 좋게 자리를 떠난다.


"Good. So Goooooooooooooooood!!"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은 예원 근처의 주차단속을 하거나 주차비를 받는 업무를 하는 사람 같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네 자전거가 멋져!"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예원을 둘러보기 위해 나선다. 예원 입구에 가기 전 첫 번째로 시선을 사로잡은 도교사원 성황묘(城隍廟).


그냥 지나치려다 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입장료 10위안.


입구에서 표를 확인하고 긴 향초 3개를 건네준다.


입구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자 정중앙과 좌우로 신들을 모시는 공간들이 보인다. 불교와 달리 민간 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이색적인 느낌이다. 위압적이거나 절대적인 느낌보다는 친근한 느낌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향을 들고 세 방향을 향해 허리를 숙여 세 번씩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이곳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언제든 찾아와 자신들의 소박한 바람들을 진심으로 담고 소원하는 곳이라 여겨진다.


각 사당에는 무릎 아래 높이의 의자 같은 것이 있는데 그곳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한 후 허리를 숙여 절을 세 번 하는 것이다. 아마도 각각의 신마다 관장하는 분야가 따로 있는 듯하다.


향을 들고 중앙의 사당으로 들어가려다 관리자에게 제재당한다. 향을 들고 사당에 못 들어 간다는 제스처다.


"그럼, 소원을 빌어볼까?"


향불을 붙이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모기향처럼 생긴 항아리에 향초를 갖다 대는 사람들을 보고 따라한다. 그리고 마당의 가운데에 서서 세 방향을 향해 세 번씩 절을 한다.


"여행을 건강하게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들어간 중앙 사당, 가운데에 있는 분이 옥황상제이고 그 옆이 관우라고 한다.


"도교라.. 노자, 장자, 옥황상제, 염라대왕, 무위자연, 불로장생 이런 건가? 불로장생은 아닌가!"



중앙 사당을 지나면 신들 앞에 붉은 리본을 달아 자신들의 소원을 비는 곳이 있다.

각각의 신들마다 모양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고 흥미로워 한자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당,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 모셔져 있다.


"노자?"


사람들을 따라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리고 2위안을 기도함에 넣고 나온다.


그냥 지나쳤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성황묘는 관광지라기보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그리고 예원은 원래 성황묘의 정원 중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성황묘를 나와 예원의 입구를 찾기 위해 예원의 담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만다.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담길을 돌아 나오자 2019년의 새해를 화려하게 장식한 건물의 입구가 보인다.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도 아니고. 2월인데 아직도 해피 뉴 이어야."


무심코 생각하던 찰나 곧 음력 설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춘절이구나!"


사람들이 몰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멋모르고 따라 들어간 곳은 예원의 예원상청(豫园商城)이다. 열빈루(悅賓樓), 백령루(百靈樓), 화풍루(和豊樓), 천유루(天裕樓), 화보루(華寶樓), 경용루(景容樓) 그리고 경유루(景裕樓) 등 7개의 옛 형태를 갖춘 상점들의 거대한 집합체.


길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안에 모두 들어와 있는 듯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북적인다.


역시나 사람들의 기차놀이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간 곳은 구곡교와 호심정.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느라 무엇이 좋은지 알 수가 없다.


구곡교와 호심정을 돌아 나오면 보이는 예원의 입구.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다. 동절기에는 폐관 시간이 16:00시라는 말도 안 되는 관람시간이다.


"예원의 야경이 그렇게 좋다며.."


내일 오전에 다시 와야겠다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공간감이 떨어지는 것인지 수많은 인파 속에 멍해진 것인지 길을 찾기가 힘들다.


어찌하다 보니 나온 붉은 홍등들이 길게 이어진 상하이의 옛 거리로 나온다.


"밤이 되면 참 예쁠 것 같네. 잠시 쉬었다 나와봐야겠어."



저녁을 먹기 위해 화보루(华宝楼) 앞 상가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메뉴 그림판이 없으니 난감하여 눈에 들어오는 우육면을 골라 주문을 하니 이상한 번호판을 건네준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


"주문을 위해 무언가 액션이 더 필요한가?"


정말 이상하고 쓸데없는 고민하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설마 자동으로 주문이 들어갔겠지!"


조금 있으니 주방에서 우육면이 나온다. 처음 대만에 갔을 때 우육면조차 먹기가 힘들었는데 왜 이리 국물이 시원하고 고수 향이 좋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기로 한다. 호텔 엘리베이터, 처음 체크인을 하고 패니어들을 온몸에 들쳐매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5층의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불이 안 켜지는 것이다.


누군가 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눌렀는지 6층까지 강제 소환된 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으로 알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그곳에서도 버튼은 눌러지지 않고 다시 1층까지 내려왔야 했다.


1층에서 5층 버튼을 째려보고 있는데 마침 호텔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온몸과 양손에 패니어를 든 나를 보더니 "엇!" 하며 서비스 정신을 발휘, 늦게 봐서 미안하다는 듯 룸의 층수를 묻는 것이다.


단지 양손에 짐이 있어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층수를 말하니 층들의 버튼 위 단말기에 룸키를 갖다 댄 후 층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크게 좀 써놓지! 대륙아!"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게으름이 찾아든다.


"뻔한 도시의 야경 같은 거 볼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사진으로 보아왔던 못생긴 동방 타워의 야경 그리고 상하이의 밤거리가 궁금하여 게으른 몸을 일으킨다.


예원상청과 상하이 옛 거리는 붉은등의 조명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예원상청을 지나 와이탄과 동방 타워의 야경을 보기 위해 도보로 이동한다. 날이 흐리고 쌀쌀해서인지 와이탄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도로를 따라 어두운 길을 조금 걷자 황푸강 건너편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불빛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방 타워와 함께 황푸강 건너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조명과 광고들 그리고 뒤편 와이탄 지역의 석조 건물들에 반사되는 빛들이 화려하고 인상적이다.


"못생긴 동방 타워를 보러 왔다. 실제로 봐도 못생겼다!"


상하이의 밤거리는 예상외로 어둡고 날씨 탓인지 길들은 음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어둠 때문에 더 화려하게 빛나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와이탄의 야경은 화려하고 매우 유혹적이었지만 마음을 사로잡거나 감명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상하이의 야경을 봤다는 소회 정도다.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불빛들이 쏟아지는 어두운 상하이의 거리를 걷는다.


"누구나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며 걷는 여수의 밤바다가 훨씬 매력적이야. 그곳엔 사람이 있고, 길과 공간이 있고, 삶의 이야기가 있었어."


숙소 근처로 돌아와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볶음밥을 주문한다. 넓은 접시에 성의 없이 담긴 듯한 모양과 젓가락 한 벌에 당황스럽다. 짜장이 없는 볶음밥은 아직은 정말 어색하다.


"그래도 숟가락 정도는 줘야지!"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식당들의 서비스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우선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젓가락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숙소로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들을 계획한다. 그런데 중국의 주점(호텔)들은 방이 참 좁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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