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든 탓인지 아침의 컨디션이 묵직하다. 하늘을 보니 오늘도 틀렸나 싶은 것이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9시 반, 짐들을 정리하고 오늘의 길을 출발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80km 정도 떨어진 도시 장수시다.
어제 봐두었던 G105 도로를 따라 장수시까지 이어가는 심플한 경로다.
G302 도로와 나누어지는 인터체인지를 지나고.
이곳의 겨울은 따듯한 기온 탓인지, 겨울에서 습기가 많은 날씨 탓인지 2월이라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짙푸르고 싱그럽다.
도로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간식거리를 골라 담고 잠시 쉬어간다.
"저리 가 녀석아."
"이제 없어. 다 떨어졌어."
슈퍼마켓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먹을 것을 강요하는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길을 이어간다.
"유채꽃일까?"
어제 재미있는 구조의 집에서 보았던 유채꽃 같은 노란 배추꽃의 색감이 좋다.
"이게 동물복지는 아닐 텐데."
넓은 웅덩이를 차지하고 있는 오리들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역한 냄새가 주변에 진동을 한다.
2시간의 라이딩으로 펑청시의 경계에 들어선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시(市), 현(县), 镇(전), 乡(향), 村(촌)으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워낙 인구가 많아서인지 수없이 많은 작은 시(市)의 규모도 우리의 도시에 비해 커 보인다.
길을 따라가다 오성홍기가 걸린 붉은 건물에서 요란한 폭죽이 터진다.
"춘절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야?"
마당 한편에 꽃장식이 달린 승용차를 발견하고 결혼식장임을 깨닫는다.
"구경가자."
"설마 중국의 결혼식장은 아닐 테고."
마을 회관처럼 보이는 건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
신혼부부가 타고 갈 꽃장식의 세단도 보이고.
빠질 수 없는 붉은 초.
그리고 체육관처럼 높고 넓은 공간의 안쪽에는 결혼 음식을 먹고 있는 하객들이 보인다.
"이번에도 신혼부부의 모습은 볼 수가 없네."
"실패!"
"인마! 거기서 오줌을 싸면 어떡해."
아쉬운 결혼식장을 나온 도로에는 차량들이 정체가 된다. 중국 도로의 차량 흐름을 보면 딱히 정체가 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도로가 막히는 것은 공사 구간이거나 교통사고 둘 중에 하나다.
"박았네!"
"렉서스가 폭스바겐을 추돌한 거야."
"렉카인가?"
사고 현장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뭔가 조용한 느낌이다.
"유치원도 비슷하고."
"이 빨간 풍선은 생일 풍선?"
어린아이의 생일잔치를 한 모양이다.
"햄버거, 케이크.. 가정집의 제단.. 뭔가 재미있고 이상한 조합들이야."
펑청시의 외곽의 분위기는 마치 우리의 한우촌과 같은 분위기다. 도로변의 양쪽으로 들어선 정육점에는 크고 작은 소고기의 부위들이 걸려있다. 소가 특산물인 지역인가 보다.
도로를 따라가며 소고기를 파는 식당들을 살펴보고 저렴해 보이는 식당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아니 먹어보고 갈 수는 없다."
주방에서는 남자 요리사들의 움직임이 바쁘고,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워 커이 취판 마?"
1층의 테이블은 비어있는 자리가 몇몇 있지만 서빙을 하는 여자의 움직임은 너무나 바쁘다. 다시 한번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도 쟁반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쁜 여자는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밥 먹는 제스처를 하며 바쁜 여자의 눈을 마주치며 물어보니 점심시간이라 너무 바빠서 불가능하다는 답변과 제스처를 한다.
"에쉬, 똥!"
소고기를 먹지 못한 허탈함에 조용했던 출출함이 급속하게 느껴진다. 펑청시를 가로지르며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보지만 넓은 도로변에는 마땅한 음식점들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어렵게 구식 난방기 주변에 걸쳐놓은 옷가지들은 다시 입기에 문제없이 말라있다. 문제의 신발 역시 조금 눅눅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나이스한 것이다.
"매일처럼 이게 뭐니?"
9시, 비가 멈춘 아침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출발한다. 1시간의 첫 번째 라이딩을 마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로변에서 잠시 쉬어간다.
"어딜 가나 길거리 음식이 제일 맛이 있지."
작은 슈퍼마켓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란스럽다. 무엇을 하는지 다가가 보니 역시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고 주변의 구경꾼들이 훈수와 잡답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슈퍼에 들어가 간식거리들을 집어 들고, 젊은 슈퍼의 여자는 낯선 한국인 손님에게 친절하게 웃음을 보인다.
계산을 마치니 작은 귤 세 개를 먹어보라며 선물한다. 간간이 도로변의 노점에서 팔고 있는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던 작고 주황빛이 선명한 귤이다.
"씨에 씨에."
"넌 왜 울고 있어?"
카드놀이를 하는 주변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한 남자가 장난스럽게 타박을 한다. 중국 특유의 음률이 있는 말이 재미있다.
도로변에서 돼지고기를 팔고 있는 아저씨에게 커다란 덩어리의 돼지고기가 얼마인지 물어보니 웃으며 200위안이라고 한다.
"200위안. 돼지고기가 싸구나."
옆 골목의 집에서도 사람들이 카드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얘네는 이걸 참 좋아하네."
우리 명절의 화투판도 그렇지만 별거 아닌 놀이에 즐겁고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결혼식이 치뤄진듯한 집도 지나고, 이번에도 시간이 맞지 않아 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
한국의 농촌 풍경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을 지나치고.
늦은 오르막이 이어지는 마을의 정자에서 잠시 쉬어간다.
"중국의 빵들이 맛이 좋네."
슈퍼에서 골라 담는 작은 빵들인데 제법 맛이 좋고 종류가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랜만에 하늘이 열리려나?"
뭔가 찌뿌둥한 하늘이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니 라이딩도 수월하고 무엇보다 옷이 젖지 않아서 좋다.
포양호를 지나 대도시인 난창시와 난창시의 외곽에 있는 난창현의 경로를 보며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는 사이 두 명의 어르신이 자전거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할아버지들에게 잡히기 전에 서둘러 길을 출발한다. 이곳 도로변에는 처음 보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가정집의 마당에도 심어져 있는 나무인데 주먹보다 큰 노란색 열매가 열려있다.
"자몽인가?"
길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살펴봐도 어떤 과일인지 알 수가 없다.
12시, 답답했던 시야가 열리고 넓은 포양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변의 바로 옆에 오래된 고택이 있어 잠시 둘러보기 위해 내려갔지만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살펴볼 수가 없다.
아쉬운 대로 고택의 앞에 있는 오래된 나루터를 구경한다. TV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보았을법한 오래된 나무배들이 정박해 있다.
멀리 포양호의 주변 모습들이 펼쳐진다. 동그란 모양의 타이호와 달리 불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포양호의 물줄기 때문인지 넓은 퇴적층의 습지대가 대부분이다.
포양호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소도로를 따라 멀리 돌아가면 되겠지만 바다가 아닌 호수에는 큰 관심이 없거니와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중국의 환경도 아니기에 그냥 도로를 따라가며 바라보는 풍경만으로 만족한다.
호수와 호수를 잇는 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 도로를 달려간다.
도로의 주변에는 가끔씩 민물게를 판매하거나 민물게 요리를 하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넓긴 넓다."
포양호의 작은 일부분이지만 워낙 커다란 호수라 각각의 이름들이 따로 있다. 포양호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준산호, 포양호의 1/10도 안되는 호수인데 호수의 수평선이 보이질 않는다.
짧았지만 포양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의 풍경을 바라본 것으로 만족하고 평탄한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간만에 만난 의자가 놓인 버스 정류장인데 계단의 턱이 있다.
자전거를 잘 세워놓고.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먹어볼까."
슈퍼의 여자가 선물한 작은 귤은 제법 맛이 좋다. 우리의 밀감보다는 당도가 떨어지지만 탱탱한 식감과 과즙이 풍부해서 시원하다.
"나중에 많이 사 먹어 봐야지."
"그나저나 비가 안 오니까 좋네."
가끔씩 중국의 집들을 보면 기괴한 느낌이 든다. 텅 빈 1층을 거실로 사용하는 것도 생경하지만 대부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음침한 분위기가 낯설고, 빨래나 장작, 건조하고 음식들 등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활 흔적들은 보면 의아스럽기도 하다.
쌍둥이 집처럼 지어진 요상한 집의 마당으로 들어가 잠시 쉬어간다. 마치 다른 그림 찾기를 하라는 것처럼 조금씩 대비되는 재미있는 집이다.
풀이 난 집의 마당 한편에 노란색 배추꽃이 피어있다.
"유채꽃인가? 근데 벌써 꽃이 피나?"
두 집을 가로지르는 낮은 담벼락에 앉아 중국의 미니 소시지를 먹어본다.
혹시나 중국의 이상한 향신료 맛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무난하게 맛이 좋다.
흐린 날씨의 축축한 느낌 없이 한가롭게 페달을 밟다 보니 난창시의 경계에 들어선다.
"일단 난창시에 왔는데. 결정을 해야지."
난창시로 들어가 중국의 지방 도시를 구경할지 아니면 조금은 조용한 난창현으로 가서 편하게 쉴지를 결정해야 한다.
"편하게 조용하게 난창현으로 가자."
번잡스러울 것 같은 도시보다는 외곽에 있는 난창현으로 가서 조금 쉬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난창시의 외곽을 돌아가는 길을 따라가다 주택의 바로 옆에 쌓아올린 이상한 흙무덤을 지나친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여러 개의 흙무덤들이 보이고 고깔 모양의 흙무덤에는 하나같이 종이꽃 같은 것들이 알록달록 세워져있다.
"무덤인데!"
도로의 우측으로 난창시의 흉물스러운 실루엣이 펼쳐지고.
새로 만든 넓은 도로의 더 넓은 자전거 길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난창현으로 향한다.
"자전거 도로야? 차도인가?"
차량이 다니지 않는 새도로를 경쾌하게 달리던 중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길을 바꿔 작은 마을길로 들어선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불교사원이 자전거를 세운다.
그리고 낡은 삼륜 오토바이를 정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자전거를 세운다.
내비게이션을 계속 확인하며 낡은 마을길을 구불구불 돌아 도착한 곳은 '공사 중'이라던 도로의 끝부분이다.
"에쉬, 그냥 왔으면 편했는데."
마을길을 따라 난창현으로 달려간다.
도로변의 가까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무덤이 끝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전거를 끌고 가까이 다가가 무덤을 살펴본다.
"확실히 무덤이네. 근데 무덤을 집 주변에 쌓아놓지?"
알록달록한 조화들을 꽂아놓은 것도, 고깔 모양의 봉분도 신기하지만 주택가의 바로 옆에 무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천천히 난창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내일 길을 따라가야 할 G105 도로의 모습도 보인다.
"다 왔다. 오늘은 좀 편하게 푹 쉬자!"
난창시의 외곽 난창현의 모습도 새로운 빌딩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느라 바쁘다.
예약을 해두었던 첫 번째 주점으로 찾아가 여권과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며 체크인을 하려니 숙소의 여직원은 한참 후에 '방이 없다'는 대답만을 하며 응대를 끝낸다.
"어이가 없네."
다시 예약 승인이 난 바우처를 보여주며 확인을 해도 똑같은 답변과 제스처만 보여준다.
"방이 없으면 너네가 방을 만들어서라도 줘야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을 가로젓는 주점의 직원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만 나온다. 예약 승인이 난 호텔에 방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지만 혹여 예약 업무를 착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방을 이미 제공했다면 다른 방이라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인 것이고 하다못해 죄송하다는 표현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 여기는 중국이다."
피곤하고 더러워진 기분으로 다른 주점을 검색하고 밖으로 나온다.
두 번째 도착한 숙소는 중국의 프랜차이즈 주점이다. 첫 번째 들렸던 숙소와 달리 깨끗하고 밝은 조명 그리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직원들이 웃으며 안내를 한다.
"한국인인데 잠을 잘 수 있지요?"
"커이!"
한국인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행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직원들은 무엇이 재미있는지 싱글벙글 안내를 한다. 중년의 남자 매니저까지 리셉션으로 나와 자전거를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도와주고 방까지 정성스레 안내를 한다.
"더러워진 기분이 싹 가셨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저녁을 먹을 식당을 검색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리셉션에 있던 여자의 목소리인데 무엇을 안내하는지 중국어로 계속 말을 한다.
"나 중국말 못 해. 내가 내려갈게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벨이 울리고, 방을 안내했던 남자 매니저가 난감한 얼굴로 무언가를 안내한다.
"중국말 못 한다니까!"
번역기를 남자에게 건네주니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서 보여준다.
"숙박 등록을 할 수가 없어서 다른 주점으로 가야 한다."
"헐.. 주수 등록 가능하다며!"
남자는 연신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며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다. 리셉션의 여직원들과 남자 매니저의 친절한 웃음을 잘 알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생각한다.
"괜찮아요. 짐을 챙겨서 내려갈게요."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비싸지는 않지만 중국의 프랜차이즈 주점인데 주수 등록이 안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중국의 이상한 숙박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뭐. 내국인만 받는 호텔도 따로 있는 중국인데."
자전거를 끌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거리로 나온다. 편하게 쉬고 싶어 일부러 난창시를 거르고 조용한 난창현으로 들어온 것인데 숙박문제로 하루가 꼬이고 있다.
조숙 등록이 가능한 숙소를 찾아 이리저리 알록달록 조명들이 반짝이는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주수 등록이 안된다는 답변만을 들으며 1시간이 지나간다.
거의 포기 상태로 들어간 다섯 번째 주점, 주수 등록이 되는지를 묻자 중년의 여자는 당연하다는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워 쓰 한궈렌. 워 커이 수이지아오 마?"
한 번 더 확인은 하니 인상 좋은 얼굴을 하며 웃는다.
"커이!"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근처에 불이 켜진 식당으로 들어간다.
"글자 메뉴판 싫은데. 물고기 빼고, 두부 빼고.."
한자를 보며 메뉴를 고르다 포기하고 번역기를 들고 스캔을 한 후 돼지고기 메뉴를 선택한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불 밖이 위험하여 나가기 싫은 그런 날씨다.
"비도 오고 하니 하루 더 머물러야겠다."
호텔 입구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는 어제의 그대로 자물쇠가 걸린 채 놓여있고 다행히 처마 밑이라 비에 젖지는 않았다.
"It's raining. I'll stay one more day."
어제의 친절한 직원이 알아듣고 방을 청소해줘야 하는지 묻는다.
"부쓰"
숙박비를 결제하고 방으로 돌아와 정리해 둔 패니어들을 모두 들고 나오자 직원이 의아한 듯 쳐다본다. 1일의 숙박을 더 연장하고 갑자기 짐들을 챙겨 나오니 그럴 수밖에.
"Test! Not check out."
우선 공항에서 정신없이 조립했던 자전거들을 정비한다. 헤드셋을 풀어 핸들의 각도를 조절하고 브레이크 캘리퍼의 유격을 맞추고, 안장과 짐받이들의 볼트들을 다시 한 번 조인다. 휠셋의 큐알 레버들을 풀어 다시 조이고 뒷변속기에 무리가 가지 않았는지 변속을 해본다.
패니어를 걸지 않고 테스트 주행을 해보니 다행히 변속기는 이상이 없다. 짐을 분배하여 무게를 나눈 패니어들을 걸고 다시 호텔의 주차장과 호텔 앞 도로를 주행한다. 자전거의 흔들거림은 많이 줄어들었고 전체적으로 묵직함이 느껴지지만 주행을 하기에 문제없어 보인다.
"됐다. 짐을 조금 더 넣어도 되겠는데."
"진작 알았으면 어제 그렇게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시험 주행을 마치고 주차장에 놓여있는 픽업용 콜밴을 바라보며 애꿎은 차량의 타이어를 발로 툭 찬다.
12시 무렵, 비는 멈췄지만 차가운 바람은 여전히 불어오고 있다. 옷가지들을 챙겨 입고 주변의 근거리를 돌아보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동네의 길마다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고 그 앞으로 사람 모양의 얼굴들이 그려진 돌들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근처에 지질공원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인데 별 관심이 없다.
차가운 바람에 못 이겨 20여 분의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다. 평균 기온이 서울보다 8~10도 정도 높다지만 꽤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다.
호텔에 돌아와 휴대용 버너의 연료인 휘발유를 사기 위해 직원에게 요청을 한다. 빨간색 MSR 연료통을 보여주며 휘발류가 필요하다고 하니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汽油?"
"가솔린, 화이트 가솔린을 사고 싶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의 직원, 중국의 포털인 바이두에 접속하여 MSR 버너의 페이지를 보여주며 白汽油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92호, 95호 등의 숫자들을 보여주며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묻는다.
"화이트 가솔린, 白汽油!"
답답해하던 직원은 중국에는 기름의 종류가 많다며 콜밴의 기사가 오면 물어보겠다고 한다.
"중국은 기름에 숫자를 붙여서 부르는구나."
오후 3시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나를 직원이 부른다.
"중국은 휘발유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알았다고 답한다.
프런트 앞 의자에 앉아 휘발유를 살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하는 동안 한 노년의 남자가 나와 영어로 발 마사지를 하고 싶다며 택시를 불러달라 요청을 한다. 짧은 영어 이외에 대화가 되지 않는 직원과 한참을 실랑이를 하던 남자에게서는 취객의 모습들이 보인다.
중국인 특유의 몸짓으로 영어를 사용하던 남자는 답답했던지 경상도 억양이 들어간 한국말을 중간에 내뱉고, 직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음을 보인다.
"한국인이세요?"
남자는 깜짝 놀란듯 반가워하며 자기 방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해서 좋다. 내 방에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자신의 방으로 가자는 남자에게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식사를 하러 가야 하니 밥을 먹고 놀러 가겠다하며 일단 자리를 피한다.
"워 커이 츠마?"
외진 동네라 변변한 식당은 없다. 어제의 슈퍼 옆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벽에 붙은 메뉴 사진 중 돼지고기가 들어간 것을 골라 달라고 한다.
어두운 가게, 여전히 물같은 것은 주지 않는다. 10분 정도 지나자 접시에 돼지고기와 고추를 볶은 메뉴가 나오고 대접에 주걱만한 숟가락과 함께 밥이 담겨 나온다.
"젓가락도 없이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테이블 위에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술잔, 밥그릇, 숟가락 그리고 젓가락을 가리키자 사용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포장을 했을까 궁금해하며 포장지를 뜯어 밥그릇과 숫가락을 꺼내어 사용한다. 비닐 포장만 되어있을 뿐 깨끗해 보이지도 새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요리는 제법 입맛에 맞았고 고추의 식감도 꽤 좋다. 단지 고추와 고기의 비율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싶은 얇은 마음.
"역시, 고기가 진리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 하자 28원을 달라고 한다다. 왜?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식사 때 사용한 포장이 된 젓가락과 수저의 비용으로 4원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 어째 뜯을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어."
나름 입맛에 맞는 괜찮은 요리였으니 됐다 싶어 계산을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발 마사지를 가겠다던 남자는 아직도 직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던 직원이 'Crazy'를 외치며 난감하다는 듯 구원의 손길을 바라며 웃는다.
"저랑 선생님 방에 놀러 가시지요."
남자를 데리고 가니 직원은 고맙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방에 들어가자 테이블 밑에 고량주로 보이는 술 한 병이 이미 비워진 상태고, 남자는 한국식으로 방바닥에 앉아 이야기하자며 캐리어에서 중국술 한 병을 더 꺼낸다. 컵에 한 모금 정도 술을 따라 마시고 중국에서 25년을 살았다는 남자와 20분 정도 대화를 한다.
"내일 자전거를 타야 해서 이제는 가봐야 할 것 같다요."
남자는 건강하게 여행하라며 300위안을 꺼내어 준다.
숙소의 매점에서 여행 중 사용할 라이터를 4개 구매해서 패니어 마다 하나씩 넣어둔다. 그리고 어제 버리려고 빼놓았던 책과 핫팩 등 조금 더 담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리어 패니어에 채워 넣으니 버리는 짐들은 소소한 몇 가지뿐이다.
조금 출출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중국쌀은 배가 금방 꺼지나 보다. 어제 보아두었던 숙소 앞 노점상에서 무엇을 파는지 궁금하다.
부침개 같은 것과 소시지를 파는 노점상이다.
노란색 계란 부침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묻자 뒤쪽의 꼬치 같은 것을 가리키며 뭐라 중국어로 빠르게 말한다. 도저히 느낌으로도 알 수 없는 난해함이다.
어쩔 수 없이 만만한 소시지를 하나 달라고 하여 먹는 동안 중국 청년이 노점상으로 와서 주문을 한다.
"모르면 따라 하면 되지."
유심히 노점상 아주머니와 중국 청년의 행동을 관찰하니, 부침개처럼 생긴 것을 고르고 소시지와 뒤쪽의 부속 내용물을 선택한다. 그리고 선택된 소시지를 잘게 자르고 부속물들에 3가지 정도의 소스를 첨가하여 볶은 뒤 부침개에 말아서 준다.
"오호, 부침개 케밥!"
중국 청년이 가고 난 뒤, 그와 똑같이 손가락으로 주문을 한다. 부속물들과 소스를 넣을 것인지의 질문에 모두 OK!
부침개 케밥을 받고 얼마인지를 묻자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됐다는 듯 웃으며 두 검지로 열 십자를 그린다.
"10위안!"
부침개를 하나 받아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어제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들던 숙소의 방문이다.
"신고 들어가라는 걸까 아니면 벗고 들어가라는 걸까."
오후에 남자의 방에 놀러갔을 때 남자는 거침없이 방안으로 신발을 신고 들어갔었다.
"뭐, 진짜 어색하지만 벗고 들어가자."
부침개 케밥은 딱 우리의 부침개처럼 밀가루와 기름냄새가 난다. 문제는 부속물에 함께 첨가했던 소스들인데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감자와 야채 그리고 소시지가 잘게 썰어 들어간 부침개 맛이다. 속에 넣었던 소스는 뒤끝을 약간 매콤하게 만들어 입맛에 딱 좋다.
"어호, 이거 맛있네!"
부침개를 먹으며 구글과 네이버 그리고 티스토리를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VPN을 알아본다. 중국은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 그리고 우리나라의 커뮤니티 서비스들을 접속 차단하고 있다. 또 우리 역시 중국으로부터의 해킹 등을 막기 위해 중국 아이피의 접속을 일부 서비스에서 차단하고 있다.
네이버의 메인 서비스는 접속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 하였지만 블로그, 카페, 티스토리는 아예 접속이 돼질 않는다. 단기 여행이라면 며칠쯤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어쩌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속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제목들만 볼 수 있는 네이버를 검색하여 차단된 접속 아이피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본다. 가장 편한 것은 VPN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쉽게 한국 서버에 접속하여 한국 아이피를 부여받은 뒤 해당 서비스에 접속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무료 VPN 앱들이 있지만 대부분 일정 기간(1~7일)에 한해 사용할 수 있고 무료 서버들은 접속량이 많은 것인지 속도가 느리거나 접속이 돼질 않는다.
중국 여행 전 VPN 앱들을 여러 개 다운받아 왔지만 결국은 돈을 내고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라는 말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무선인터넷의 DNA 서버 주소를 바꾸어 1.1.1.1로 고정시키는 방법이 있다. 쉽게 TCP/IPv4의 설정을 기본 설정 DNS 서버(P): 1.1.1.1 / 보조 DNS 서버(A): 1.0.0.1으로 고정하는 것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지만 접속이 안정적이지 않아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기에 알맞은 것 같다.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80일 동안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VPN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겠다 싶다.
"중국, 여러 가지로 어려운 나라다."
여러 업체 중 판다VPN(pandavpn.co.kr)을 선택하고 1일 무료체험 서비스를 신청한다.
위챗으로 아이디와 비번을 부여받고 어렵지 않게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VPN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세팅들을 하고 테스트. 접속도 원활하고 막혀있던 구글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우리나라의 커뮤니티들로 오픈된다.
"됐어. 그냥 마음 편하게 이걸로 쓰자."
1개월 핸드폰과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14,000원, 무료체험이 끝나는 내일 정식 서비스를 결제해야겠다.
온라인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소식을 전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니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저 의미 없는 온라인 서핑에서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는 20대 중반 여자아이의 홈페이지로 흘러들어 갔다. 검색했던 키워드가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멍한 손길로 링크와 링크를 타고 이어지던 무미한 일상의 킬링타임이었다.
여자아이의 바람들과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보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고대하다 : 몹시 기다리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 바라보았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그 산들을 오르며 어른이 되었음을 자랑삼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산들을 오르거나 넘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에 대한 싱거움 또는 소멸될 상상의 부재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산들을 오르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유지되는 막연함은 때론 상상의 즐거움이었다.
언젠가 그 산들을 넘을 것이다 바람 하였다.
여행 : 떠나다.
이제부터 나는 내 삶을 향해 홀로 걸어가야 한다.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돌아와야 할 이유 같은 것이 있을까. 두렵고 슬프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해야 하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난다. 두렵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삶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긴 밤을 보낸다. 더는 잠이 오질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던 불확실성의 불쾌함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머릿속이 멍한 상태에서 약속한 7시가 가까워진다. 부랴부랴 짐들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한다.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리고 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마저 버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남겨두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일까."
8시가 조금 넘어 공항에 도착한다. 쿵! 하고 마음속 깊이 박혀있던 무언가가 감정의 바닥을 내리친다. 8개월 전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끝내 말하지 못한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다.
"이렇게 힘이 없는 여행자가 또 있을까."
항공사의 티켓팅 장소에서 4개의 패니어들을 커다란 하나의 가방에 담아 수화물 가방을 만들고, 전자기기들의 배터리와 중요 소지품 그리고 노트북을 작은 패니어에 담아 기내 휴대용 가방을 만든다.
너무나 무거운 짐들, 추가 요금이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짐을 덜어내야 한다면 최악일 것이다.
자전거 박스의 무게를 재던 직원이 놀라며 말한다.
"박스에 자전거만 들어있는 것이 맞아요?" "아니요. 몇 가지 더 집어넣었어요."
23Kg 무게 제한을 채우고 추가요금이 부과될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자전거의 완충제 대용으로 은박 돗자리와 침낭 깔판 같은 것을 넣어 두었다.
여행용 자전거를 기본적으로 무겁게 만들어진다. 크로몰리 바디와 무거운 휠셋 그리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하고 일반적인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신형 트렉 5100 자전거는 기계식 브레이크 버전으로 생산되어 스펙상에는 15Kg 정도로 나와있지만 18Kg 정도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23Kg을 훌쩍 넘어 버린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 항공사는 아시아나 그러므로 우리에겐 만능 치트키 같은 '유도리'라는 융통성이 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이번에는 23Kg으로 처리해 드릴게요."
처음부터 이렇게 해 줄 것이라 능글맞게 예상했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넘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든다.
다음은 패니어 4개를 한 묶음으로 만든 수화물 가방을 올려놓으니 미안함마저 들게 만드는 민망한 무게 43Kg이 딱!
"어. 잠시만. 23+43에 기내용 가방이 노트북까지 8Kg은 족히 나갈 건데. 왜 이렇게 무거워졌지?"
80,000원의 추가 요금이 나온다. 아마도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면 짐을 덜어내야 했을 것이다.
자전거 박스의 별도의 대형 수화물로 맡겨야 한다. 대형 수화물 창구에 가서 검사를 맡기고 환전을 하기 위해 옆쪽에 위치한 신한은행 창구에 들린다.
환전을 위해 체크카드를 건네자 이체한도가 부족하다고 안내한다. 해외에서 카드 분실을 대비해 일일 사용한도를 책정해 놓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계좌이체로 환전을 마치고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환전을 하는 동안 수화물 창구의 직원이 수화물 중 본드가 있어 빼내야 한다고 안내한다. 펑크패치의 절대 강자 돼지표 오공본드를 버려야 한다니 난감한다. 휴대용 펑크패치에 들어있는 튜브식 작은 본드가 2개 정도 더 있지만 그것으로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행 중 본드를 구매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
일단 본드만을 빼내는 작은 출혈만으로 무사히 수화물은 통과한다. 수화물과 환전을 마치고 중국에서 사용할 유심칩을 찾기 위해 미리 구매해둔 심박스의 공항 배포처를 찾아야 한다.
중국 현지에서 유심을 바로 구매하여 사용하려 했지만 한 가지라도 번거로운 일을 줄이고 싶어, 여러 유심 중 30일 4G 제공 후 기간과 사용량을 충전할 수 있는 차이나 유니콤 유심칩을 공항수령의 방식으로 미리 주문해 두었다.
심박스에서 주문한 유심칩은 공항에서 수령하면 되고, 수령처는 공항 지하 1층에 위치한 KTX 일반열차 게이트 옆 트레블스토어다.
"지하 1층이면 한 칸만 내려가면 되네?"
"여기 3층이야!"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탄 기억이 없는데 3층이라니 당황스럽다.
1층에 내려가 공항 밖으로 나간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트레블스토어 박스,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었으나 지하 1층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을 계속한다.
"공항을 등지고 KTX 게이트가 어디에 있는데요?"
여전히 지하 1층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만을 한다. KTX 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묻는데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이 정상적인 것인지 약간 짜증이 난다.
어렵게 KTX 출구를 찾아 지하 1층의 게이트 옆 트레블 스토어에서 유심침을 받아들고 공항으로 서둘러 되돌아간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급하고 정신이 없다.
11시 출발 여정에 왜 8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다.
"그렇구나!"
공항 3층으로 돌아오니 9시 40여 분이 된다. 탑승시간이 10시 20분이니 조금 쉬었으면 했지만 해외여행을 해보지 못한 여행 초보자의 헛된 바람이다. 출국심사를 하는 시간 같은 것이 머릿속에 있을 리 없다.
"이제 탑승해야 해."
머릿속이 컴컴해진다. 시간이 정지된 듯 무언가를 생각해 내야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말도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이건 아닌데. 아니잖아.'만을 반복적으로 되뇔 뿐이다.
아프다. 어떤 것인지 모르겠고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아리고 아프다.
공항에서 분주했던 정신에 주머니 속 두 개의 라이터를 버리는 것을 깜박한 것 외에 기내 휴대품으로 가져간 가방은 아무런 문제 없이 출국심사를 통과한다. 라이터 한 개는 휴대 가방에 들어있으니 두 개는 버려야 한다.
출국심사 바로 직전 휴대전화가 울린다.
"신한은행인데요. 고객님 환전 시 계좌이체하셨는데 제가 카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출국 게이트 알려주시면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깊은 한숨과 탄식이 절로 새어 나온다.
10시가 되어 출국심사를 끝내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고 게이트 앞에서 체크카드를 건네받는다. 입맛이 없었지만 김밥 한 줄을 욱여넣고 길게 담배 한 모금을 태운다.
"멘탈을 정리해야 해. 정신 차리자."
탑승 시간까지 10여 분이 남아있어 해외 로밍을 신청한다. 한중일 패스 상품 5일/2G/25,000원. 유심칩이 불량일 경우를 대비해야 했고 5일 정도의 시간이면 그 기간에 발생할 돌발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해외 로밍을 신청하고 SKT를 해지하기 위해 114에 전화를 건다.
"해외에 장기여행을 가게 돼서 전화를 해지 하고 싶어요. 해외 로밍이 끝나는 4일 후에 해지를 해주세요."
대리점을 직접 방문하여야 해지를 해준다는 답변과 함께 불가피한 경우이니 필요서류를 보내주면 해지를 시켜주겠다 한다. 그런데 설 연휴에 업무를 하지 않아 7일이나 1일에 해지를 한다고 한다.
"아.. 아까운 이틀의 로밍 비용."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다. 출입국 신고서를 받아 작성하다 보니 출국 신고서에 내용들을 적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피곤하다."
입국 신고서는 이름과 여권번호, 비자번호, 비자발급지, 입국항공기편, 숙소주소, 여행목적 등을 간단히 영문으로 적어내면 되는 간단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고기 덮밥과 빵이 기내식이 나온다.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하는 옆 좌석의 여자를 보며 조금 우습다 생각한다. 입맛이 없어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채워 넣고 빵은 비상식으로 패니어에 담아 놓는다.
한국과 상하이는 1시간의 시차가 있어 10시 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2시 정도에 상하이 푸동공항에 착륙한다. 흐리고 비가 내리는 상하이 공항, 우중충한 날씨만큼 기분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을 따라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외국인과 중국인을 분리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입국 심사대로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현금인출기 같은 곳에 손가락들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지문 채취가 있다는 기내방송이 생각난다. 먼저 여권을 스캔하면 안내 언어가 한국어로 바뀌고 검지를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을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그리고 양쪽의 엄지를 모아 한 번 이렇게 스캐너에 찍으면 된다.
지문 채취가 끝나면 OK 표시된 종이가 프린트된다.
"끝인가? 되게 싱겁네."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따라 이동하니 검사대 같은 곳에 정체되어 대기하고 있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는 척, 심드렁한 표정으로 줄을 따라간다.
"잡지도 부르지도 말아라. 제발 부르지 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는데 검사관이 나를 사이드로 불러낸다.
"젠장, 부르지 말라니까"
여권을 요구하고 항공권을 달라 요구하더니 갑자기 꼬챙이를 들고 혓바닥 밑으로 넣으라고 한다. 그제서야 체온을 재는 검사대라는 것을 깨닫는다. 수하물의 무게를 줄이려고 동계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검사대까지 오는 긴 거리를 무거운 패니어를 들고 걸어온 터라 땀이 나고 더웠다.
온도계를 확인한 검사원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하며 조성모의 노래 다짐 안무처럼 방풍 자켓의 앞섬을 시니컬하게 펄럭였더니 'OK!'를 한다. 상하이 날씨는 서울보다 8~10도 정도 높으니 비행기로 상하이에 갈 일이 있으면 옷차림을 조금 가볍게 하고 가는 것이 좋았겠다 싶다.
입국 검사대에 대기하고 심사를 받는다. 여권을 제출하고 조금 기다리니 다시 왼손의 4개 손가락을 스캔하라고 한다.
"왼손, 참 좋아하네. 난 좌파니까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검지를 제외한 4개 손가락을 바들바들 거리며 스캔을 한다. 어쨌든 무사통과!
대형 화물로 보내진 자전거 박스는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가 카트에 미리 실어 놓았고, 다음으로 수하물로 보낸 패니어 묶음들을 찾는다. 한쪽 측면이 이미 너덜하게 찢어져 버린 패니어 묶음 대형 백. 튼튼하다고 대답했던 남대문 시장의 아저씨가 야속하다.
"중국에 세탁소 같은 곳이 있으면 꿰매야겠다."
중국 공항의 카트는 일반 슈퍼의 카트만큼 정도로 작다. 자전거 박스를 놓고 패니어 묶음 백을 올려놓으니 카트가 기우뚱거리며 굴러간다.
"명색이 대륙인데, 쫌!"
카트를 밀고 수하물을 검사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줄지어 서있으니 커다란 자전거 박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걸리적거리며 여간 민폐가 아니다. 기다리며 수한물들을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검사원에 의해 거의 투척과 다름없이 수하물 검색기에 집어 던져지고 있다.
"아, 이거 정말 곤란하게 생겼네."
짐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순간, 느리게 종종걸음으로 순서를 대기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검사라인이 생겼나 생각하며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검사대를 무시하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직원이 통로를 열어버린 것 같다.
"빙고!"
혹시나 사람들이 몰려 나가는 것을 직원들이 다시 통제할지도 모르니 서둘러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빠르게 검사대를 지나친다.
"역시, 중국이야!"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나도 모르는 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고 어서 빨리 공항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전거를 조립할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도로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간다.
현재의 위치는 2층,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넓은 공항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다 소형 엘리베이터들뿐이다.
"중국은 무엇이든 다 크고 넓다고 하던데 아닌가 보다."
자전거 박스를 세로로 다시 세우고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에 너비를 대보니 겨우 몇 센티 차이로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다.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을 벗어나 조금 한가한 곳의 엘리베이터를 찾아 1터미널 가까이에서 1층으로 내려간다.
요리조리 낑낑거리며 겨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1층은 여전히 도로 지면의 위층이다.
"지하 1층이 도로면인가?"
어렵사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이번엔 지면이 머리 높이 위로 있다.
"도대체 무엇이냐? 이 이상한 구조물의 정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2터미널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독차지하기 위해 꽤 오래 기다리고.
"1층도, 지하 1층도 아니면 지하 2층이겠지."
지하 2층에 내리니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자전거를 조립하라는 듯 쓰레기통 옆에 넓은 공간이 있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도로로 내려오느라 조금 시간을 소비했지만 30여 분 정도 자전거를 조립하면 35Km 거리의 상하이 숙소까지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괜찮겠다 싶다.
하지만 머지않아 끔찍하고 눈물겨운 푸동 공항의 표류기가 펼쳐질 줄은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분해된 자전거를 펼쳐놓고 차분하게 재조립을 하는 동안 청소 직원이 다가와 박스를 가져가겠다 하여 'Yes!'라고 하니 이번에는 나의 고급진 레어템 슬리핑 매트리스도 가져가겠다며 자꾸 집어 드는 것이다.
"No!"
박스를 어딘가에 두고 돌아온 청소 직원이 다시 한번 매트리스를 향해 중국어로 뭐라 말하며 집어 든다. 자전거를 잡고 육각렌치를 들고 있던 중이라 그 얄미운 손을 어찌 가로막을 수가 없다.
다급한 상황이 오니 고등학교 때 배웠던 중국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머릿속 어딘가에 지워지다 만 잔여 파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젠장, 깔판. 깔판이라니..."
어쨌든 청소 직원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더니 다시는 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조립하고 패니어를 장착하니 2시가 된다. 흐뭇한 만족감의 미소를 보이며 시험 삼아 주행을 해본 순간 균형이 맞지 않는 패니어의 무게 때문에 핸들이 미친 듯이 좌우로 출렁거린다.
"큰일인데. 일단 이 빌어먹을 공항을 먼저 벗어나고 균형을 맞춰보자."
자전거를 끌고 주차장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4-5살쯤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장갑을 집어 들고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오~ 땡큐!"
아이는 장갑만을 건네고 무표정하게 휙 돌아서 엄마에게 뛰어가 버렸다.
"씨에, 씨에 할 걸 그랬나."
다시 휘청이는 자전거를 끌고 주차장의 출입구로 향하였으나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지나갈 수 없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도로의 상황을 보니 인도가 없고 차량들이 고속으로 주행을 하며 지나가고 있다.
고덕지도 어플을 실행시키고 안내하는 경로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런 길로 어떻게 가라는 거지? 헤이, 고덕양!"
여행을 위해 기본적인 지도 앱인 구글맵과 오프라인 지도 앱인 맵스미를 준비했다. 그리고 구글 서비스가 차단되어 있는 중국 여행을 위해 중국지도 어플인 고덕지도와 바이두지도를 추가로 준비해 두었다.
두어 차례 다른 길이 있는지 지하 2층 주차장을 방황하고 다시 차단기가 내려진 곳으로 돌아와 제복을 입은 안내자에게 길을 물어본다.
"하이웨이, 하이웨이!"
제복을 입은 직원은 고속도로라 자전거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인의 영어 발음은 우리의 된장 발음과는 또 다른 춘장 발음이다. 구글 번역기와 영어로 말을 해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있는 맥도날드 로고를 보더니 맥도날드가 맛있다고 엉뚱한 말을 한다.
"확, 그냥!"
깊은 빡침과 함께 처음 자전거를 조립했던 곳으로 돌아와 먼저 예원 근처의 숙소를 취소하고 트립닷컴(Trip.com)을 통해 공항 근처 5Km 정도에 있는 숙소를 다시 예약한다.
"자전거를 못 타면 끌고서라도 간다. 두 시간 정도면 되겠지."
아무것도 못하고 한 시간이 지나버린다. 고덕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하이웨이를 지나 일반 도로로 연결되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공항 터미널을 다시 올라간다. 자전거 전체를 다시 분해할 수는 없어 앞, 뒤 바퀴만을 제거하고 준비해 온 자전거 백에 구겨 넣는다. 자전거를 넣었다기보다는 자전거에 가방을 걸쳐놓은 모양이다.
"2/3는 가렸는데 뭐라 하지는 않겠지? 중국이잖아!"
카트 위에 패니어들을 깔고 그 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카트 핸드바와 자전거 핸들바를 동시에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가 제1터미널 방향으로 이동한다. 다행히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고덕지도를 따라 1공항의 끝 지점에 도착하여 공항 직원에게 도로가 보이는 아래층으로 어떻게 가는지 물었으나 기본적인 영어가 안되니 대화가 안된다. 자꾸만 다시 검사대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가라며 검사대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공항 근무자라면 기본적인 영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더 나쁜 건 눈치도 없네. 젠장"
1터미널의 반대 방향으로 다시 카트를 끌고 이동하여 엘리베이터를 찾고 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중국인들과 부대끼며 지하 2층과 1층 사이를 온다 간다 방황을 한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공항의 구조에 고덕지도와 바이두지도를 번갈아 가며 확인했지만 두 지도 모두 현재의 위치가 틀려 도움은커녕 멘붕의 가속도에 불을 붙일 뿐이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그리고 주저앉아 지도를 확인하는 사이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기 저 도로만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가 되어야 하나 생각하다 마지막으로 지하 1층을 확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자전거를 구겨 넣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여전히 머리 위쪽으로 도로가 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이놈들아!"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 카트를 끌고 톰 행크스가 되기 위해 직진을 하다 보니 머리 높이의 도로로 올라가는 좁은 경사로가 보인다.
"이런 거였어. 아... 이런 오렌지 십자군 새빨간 새우 젓깔!"
그제서야 푸동공항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2층 출입국, 1층 지상주차장, 지하 1층 도로와 이어진 반지하 주차장, 지하 2층 지하주차장 구조다.
방황의 끝이 왔음을 예감하고 도로에 오르기 전 담배 한 대를 문다. 하지만 자전거를 끌고 도로에 올라서자 마지막 카운터펀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고덕지도가 가리키는 역방향으로 차들이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고덕양, 너 지금 역주행으로 저기를 지나가라는 거야?"
5시 30분, 해는 떨어져 버리고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톰 아저씨가 되어야겠어."
터미널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신호등을 건너는 순간 주차되어 있는 픽업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돈을 줘서라도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호텔로 가고 싶은 요량에 픽업트럭 주변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넨다.
"Is this your car?"
위아래로 나를 훑어만 본다.
픽업트럭을 가리키며 '쩌거 쓰 니더마?' 물으니 손을 좌우로 흔들더니 자리를 떠나버린다.
터미널의 입구와 픽업트럭을 번갈아 바라보며 트럭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 전의 여성이 다가온다.
이제 회화따위는 필요 없다.
구글 번역기를 키고 중국어로 번역한 뒤, 중국어가 맞는지 다시 한글로 역번역하며 사정을 설명하고, 할 수 있는 최대의 과장된 몸짓으로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
"공항에 4시간이나 갇혀있다. 저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가리키며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뚜오, 뚜오, 타이 뚜~~~~오!"
여자는 짐들을 확인하더니 혼잣말을 한 후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잠시 후 유니폼을 입은 남자를 데리고 온다.
"I have to go, g~~~~~~~~~~o! this, this!!!"
고덕지도로 예약한 호텔을 가리키며 목적지를 말하니 여자와 남자는 한참 동안 서로 상의를 한다. 고맙게도 처음에 만난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 강한 어투로 도와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돌아와 '택시!'라고 답을 한다.
"택시를 타라고?"
조금 어리둥절해서 다시 짐들을 가리키며 '뚜오!'라고 말하자 남자를 따라가라며 가리킨다. 남자 직원을 따라 신호등을 건너간 곳은 콜밴 택시를 부르는 안내소다.
"콜밴이라는 것이 있었어?"
콜밴 택시를 타본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그런 방법이 생각날 일이 없다. 친절한 여자 직원이 방긋 웃으며 호텔 주소와 짐들을 확인하더니 240위안을 달라고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택시비를 내니 기다렸다는 듯이 콜밴 한 대가 안내소 옆으로 멋지게 들어온다.
"뭐, 이렇게 될 것이라고 각본이라도 짜놨어?"
짐들을 실기 위해 여자 직원이 자전거를 든다.
"No, No! It's Heavy!"
"With together!"
자전거가 무겁다고 알려주고 자전거의 한쪽을 들어올리니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이며 씩씩하게 자전거를 들어 올려 콜밴의 뒤쪽에 실어주고 나머지 패니어들도 하나둘씩 나누어 실어 준다.
"씨에 씨에, 쌩유 쌩유 쌩유"
넓은 콜밴에 호사스럽게 혼자 탑승하여 크고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필 이리도 여행하기가 어려운 중국을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했나. 어쨌든 액땜 한번 제대로 했어. 앞으로 잘 되겠지."
10여 분이 조금 넘어 콜밴은 목적지인 상위안 호텔이 도착한다. 공항 근처의 조금은 외진 지역에 위치한 호텔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가득한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공항에서 있었던 일들을 구글 번역기로 설명을 하니 밝은 얼굴의 여직원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우리가 내일 너를 공항까지 픽업해 주어야 하니?"
"픽업?"
호텔 주차장에 콜밴 차량이 한 대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이 호텔의 공항 픽업 서비스를 하는 차량인가 보다. 넋을 놓고 할 말이 없다.
"No!"
주숙등록이 끝나고 룸키를 건네준다. 8101호, 이층 건물인데 8층 번호를 찍혀있어 8층 이냐며 묻자 일층에 있다며 방을 안내해 준다. 모든 방들에 8자가 앞에 붙어있어 8의 숫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독특한 표시 방법이다.
간단히 샤워만을 하고 주변에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으나 역시나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
"내 발음도 이상하고, 네 발음도 이상하니 서로 힘들다. 그만하자."
밖으로 나오자 호텔의 옆으로 몇몇 음식점들과 슈퍼처럼 보이는 조금은 허름한 가게들이 보인다. 슈퍼처럼 보이는 곳에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 밥을 먹는 시늉을 하니 빠른 중국어 속에 치킨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치킨인지 한 번 더 묻고 그것을 주문하고 얼마나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아마도 이 집에서 가장 빠르고 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메뉴인 듯하다.
닭다리, 계란, 청경채, 두부조림 같은 것 그리고 밥. 메뉴판에 나와있는 13위안짜리 음식과 젓가락 한 벌.
"그런데 물은 안 주는가?"
그다지 먹기에 불편하지 않았지만 또한 그다지 맛있지도 않다. 허기를 채운 것으로 만족하고 무엇보다 물이 마시고 싶다.
"초시, 이게 슈퍼라는 뜻인가 보다."
호텔로 돌아와 패니어에 담긴 짐들을 풀어헤친다. 짐들을 균형에 맞게 패니어에 옮겨 담고 불필요한 것들의 몇몇 가지들을 버릴 생각이다. 프런트에 가서 짐들을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리는지 묻자 왜 짐을 버리려고 하는지 묻는다.
"너무 무거워서 내가 죽을 거야"
방긋 웃더니 프런트로 가져오면 버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당장은 필요 없는 옷가지들과 무거운 핫팩, 양말 그리고 전혜린의 책등을 덜어내고 각각의 패니어에 무게를 맞춰 골고루 분산시킨다.
핸들바 패니어에는 중요한 물품들과 카메라, 프론트 패니어에는 자주 꺼내 쓰면서 무게가 가벼운 것들, 리어 패니어에는 옷가지들과 무거운 물품들 그리고 렉팩에는 텐트와 침구류, 라이딩 도중 환복할 수 있는 옷가지와 물품들을 넣는다. 라이딩 중 쉽게 오픈할 수 있는 것이 핸들바 패니어, 프론트 패니어, 렉팩 순서이고 리어 패니어는 물건을 꺼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현금들과 카드들을 나누어 넣고 비상금도 은밀한 곳에 나누어 숨겨둔다. 현금 인출용 카드, 구매용 카드, 예비 카드, 비상용 카드 그리고 사용할 현금과 예비 현금, 비상금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짐과 돈을 정리하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하기 위해 만코 어댑터를 꺼낸다. 중국의 콘센트는 주로 납작한 3구와 동그랗고 얇은 2구를 사용한다. 만코 어댑터의 3종류의 지원 콘센트 중 EU버전을 꺼내어 2구짜리 콘센트에 꼽으면 된다.
2구 콘센트에 EU버전 만코 어댑터를 꽂고 다시 멀리 어댑터를 꼽고 사용할 충전기의 어댑터를 꽂으면 충전 준비 끝.
노트북과 보조배터리, 카메라와 액션캠 그리고 두 개의 핸드폰에 충전을 걸고 침대에 누웠다. 정말 고단하고 정신없던 하루다.
밤새 비가 내렸다. 정말 알 수가 없는 날씨의 변화이다. 비가 내린 후 싸늘한 바람과 한기가 밀려든다. 어제의 우중 라이딩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 8시가 되기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황산을 트레킹할지 아니면 숙소에 하루를 머물며 지난 기록들을 정리하며 휴식을 취할지 고민하였다. "그래도 황산에 올라 콧바람이라도 쐬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