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1일 / 맑음 ・ 20도
네루-지르크
바람이 불지않는 따듯한 봄 날씨의 몽골이다. 60km 거리의 지르크로 향한다.
8시가 가까워지자 아침 햇살로 인해 텐트 안이 덥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기온보다 훨씬 덥게 느껴지는 몽골의 날씨다.
"햇볕이 굉장히 따갑네."
음식 준비를 하느라 바쁜 주방의 직원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이 우유차를 마시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의 양고기 볶음밥을 먹으려 했지만 준비가 되질 않아 양고기국을 선택한다. 중국식 만두와 함께 먹는 모양인데, 밥을 달라고 주문한다.
따듯한 우유차와 국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오늘의 목적지를 정한다.
알탄틸, 몽골 사람들이 지르크라고 부르는 곳까지 60km 그리고 터그럭까지 130km의 거리다.
사람들은 구글맵에 표기된 지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마을들을 부른다. 부르간으로 표기된 이곳은 네루라고 부르고, 부르간을 물어보면 잘 모른다.
"지르크까지 이동을 하고 오트사항의 호텔로 가 볼까 아니면 날씨가 좋은데 터그럭까지 달려 볼까?"
"일단, 지르크까지!"
식당을 나와 마을의 작은 슈퍼에 들어간다.
좋은 날씨와 짧은 이동거리라 비상식은 채우지 않고 음료와 물 그리고 맥주 한 캔만을 사 든다.
바람이 없는 날씨, 정확하게 바람이 적게 불어오는 날씨라고 해야겠다.
라디오 앱을 실행하고 천천히 페달링을 즐긴다.
"정말 오랜만이네. 이렇게 편한 라이딩은!"
시끄럽고 거센 바람 소리가 안 들려오니 적막할 정도로 어색하다.
길은 산을 향해 이어지지만 아무런 부담이 없다.
"체력이 떨어진 게 아니었어. 바람 탓이었어."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며 도로변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낸다.
시속 20km로 달리다 보니 지르크까지 15km 밖에 남질 않았다.
"그냥 터그럭까지 갈까?"
아이들이 낙타를 끌고 나왔던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다.
"궁금하면 못 참지."
흙벽돌집 사이의 우리 같은 곳에 많은 낙타들이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돌아다니고 있다.
검게 탄 얼굴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 낙타를 잡고 바쁘게 움직이고, 한편에서는 식사를 하려는지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다.
인사를 하며 다가가니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한다.
낙타들을 구경시켜 주던 남자는 내 손을 이끌며 사람들이 모여앉은 곳으로 데려가 우유차와 작은 빵을 먹으라고 한다.
'나랑 같이 한국으로 가자', '이 여자를 데리고 가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라' 등의 농담들을 하며 사람들과 웃는 남자는 유머스럽고 친절하다.
힘든 노동에 거칠어 보이는 모습들이지만 마치 우리네 농촌의 어르신들이나 마을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음식을 나눠주는 여자가 우유차를 챙겨주는 사이 마가렛을 잔뜩 바르고 설탕을 뿌려놓은 식빵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먹는 거야?"
우유차와 함께 어렵게 하나를 다 먹는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중 남자는 다시 내 손을 끌어 밥을 먹던 곳으로 데려간다.
"음메?"
양의 울음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웃고, 갓 삶은 양의 내장들을 칼로 잘라내어 먹는다.
사람들은 나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양의 부속물들을 잘라 나눠먹으며 밥그릇에 위, 내장, 간 등의 부위를 먹기 좋게 잘라준다.
간 부위는 지방이 있는 부위와 함께 먹으라며 먹는 방법도 알려주고, 신선한 고기를 바로 삶은 것이라 맛이 좋다.
"막걸리 한 잔과 총각김치와 함께하면 딱이겠어."
밥을 먹는 동안 머리 위로 독수리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빙빙 돌아다니고.
식사가 끝나고 숫돌에 가위를 갈며 사람들이 모여앉아 쉬는 시간,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이야기를 하고 어린 남자가 보드카 한 병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잔을 따라준다.
"몽골 소주!"
나에게도 한 잔을 건네주어 독하다는 표정을 하며 거절을 하니 재차 잔을 권한다. 작게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돌려주니 마저 다 마시라며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우, 써!"
잔을 비우고 손사래를 치니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다.
"몽골 소주 38, 한국 소주 17."
바닥에 술의 도수를 적으며 사람들은 웃고, 술잔을 받은 다른 남자는 새끼손가락을 술을 묻히고 하늘을 향해 뿌리더니 잔을 모두 비우고 달콤하다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지어 보인다.
"에이, 엄청 쓰잖아!"
일을 하며 막걸리를 마시는 것처럼 보드카 한 잔을 돌려 마시는 것인데, 고기를 먹을 때 같이 먹질 않고 술만 따로 마시는 것이다.
"술맛의 70프로는 안주빨인데."
남자는 작업을 하는 우리로 나를 데려가더니 사진을 찍으라며 낙타를 타는 시늉을 한다.
"낙타를 타겠다고?"
그 관경에 사람들이 웃는 사이 남자는 얼마 못 가고 낙타에서 떨어진다.
"산에서 봤던 벌거숭이 낙타는 못 먹은 게 아니고 털이 깎인 거였군."
털을 다 깎으면 발을 묶었던 올가미를 풀어주는데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장 조심스럽다. 낙타가 일어서며 발을 휘둘러 찰 수 있으니 낙타의 행동을 살펴 가며 조심조심 올가미를 푼다.
"이놈들은 왜 고삐를 달고 있는 거지?"
낙타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분주하다.
아이들은 깎아놓은 털들을 모아 마대자루에 담는 일을 한다.
"한 포대에 얼마 정도예요?"
잠시 쉬고 있는 사람에게 낙타털의 가격을 물어보며 핸드폰을 주니 500을 적어 보여준다.
"500투그릭? 말도 안 돼!"
"어쨌든 500투그릭은 너무 하잖아.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작업인데."
올가미를 던지는 사람들을 피해 낙타들이 도망 다니기도 한다.
코뚜레를 한 잘 생긴 낙타는 낙타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인다.
우리의 한편에 몰려있는 곳으로 우두머리 낙타를 끌고 가면 우두머리를 따라 두세 마리의 다른 낙타가 따라오고, 우두머리 낙타를 울타리에 묶어놓은 후 따라온 낙타들에게 올가미를 던져 잡는 것이다.
"삶이 넉넉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몽골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어 하고, 몽골의 도시와 마을로 떠나 허기진 눈빛으로 술만을 마시는 사람들과 드넓은 초원에서 가축을 기르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며 가족과 친구, 사람을 좋아하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있다.
몽골의 사람들이 주어진 자연 속에서 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멋이 나고, 자연과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큰 바위와 돌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다.
"저기가 오트사항의 호텔인데."
따듯한 햇볕 아래서 할아버지와 몽골 전통 복장을 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4,000명이 산다는 지르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여행 경로와 자전거에 대해 설명하는 할아버지와 맥주를 나눠 마신 후 헤어진다.
오트사항의 호텔은 빌라처럼 생긴 새 건물의 측면을 사용하고 있다.
빌라에 사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얘들아, 아저씨 힘들다. 좀 쉬자!"
숙소로 들어가 오트사항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고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한다.
오트사항의 호텔은 제법 모양을 갖춘 숙소지만 손님은 전혀 없다. 욕실을 갖춘 깨끗한 방의 숙박료는 40,000투그릭.
체크인을 하고 숙소 앞에 있는 작은 공원을 둘러보려고 나섰지만 여전히 호텔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가장 귀찮게 한 11살의 에르덴, 뒷머리를 길러 한 가닥으로 땋은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꼬마다.
무엇을 물어보든 오케이라고 대답하는 개구진 표정을 갖은 녀석 때문에 편히 앉아 쉴 수가 없다.
"어이!"
몽골에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인데, 4살 정도의 아이가 날 향해 이렇게 부르면 조금 황당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상대를 불렀다가는 싸움이 나거나 싸다구를 맞을 확률이 클 것이다.
숙소 2층에는 레스토랑과 주방이 있었지만 손님이 없이 한가하다.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양고기 만두 5개를 준다.
낙타 마을에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출출함은 많지 않아 적당한 양이다.
잠시 소파에 누워 쉬다가 9시 정도에 슈퍼에 내려가 맥주 한 캔을 산다. 오트사항은 호텔과 슈퍼도 함께 운영을 하는 모양이다.
여전히 밖에서 놀고 있는 에르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니, 다시 아이들이 몰려든다.
"아, 이놈들이 내 사색의 시간을 방해하네."
동네 사람들이 천천히 해가 지는 시간까지 배구 게임을 하며 즐기는 동안 11살 남짓의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받는다.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지만 양옆으로 눈이 쌓인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의 저녁 풍경은 느리고 편안하며 소박하고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저녁이다. 그래서 좋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몽골(19.04.14~07.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3. 터그럭의 하루, 고기가 먹고 싶다! 2019.06.01 (0) | 2019.06.03 |
---|---|
#122. 터그럭, 피할 수 없는 몽골의 모래폭풍을 마주하다. 2019.05.31 (0) | 2019.06.01 |
#120. 헙드로 가는 길, 네루에 도착하다. 2019.05.29 (0) | 2019.05.29 |
#119. 거센 바람과 끝없는 사막, 몽골의 친절과 불편의 사이에서. 2019.05.28 (0) | 2019.05.29 |
#118. 알타이를 떠나 헙드를 향하여, 아무것도 없다! 2019.05.27 (0) | 2019.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