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2일 / 맑음 ・ 16도
지르크-터그럭
헙드까지 130km 정도가 남았다. 좋은 날씨의 아침, 터그럭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잠시 떠날지를 고민하다 패니어들을 정리했다. 터그럭까지 60km 남짓의 짧은 이동 거리가 게으른 여유를 준다.
"날씨도 좋은데 천천히 가 보자."
1층에서 오트사항을 만나 인사를 하고, 숙박비를 결제했다. 어제 먹었던 양고기 만두 5개는 4,000투그릭을 추가로 받는다.
사막과 같은 황량한 지르크에서 오트사항은 이른바 동네의 유지처럼 보인다. 흙벽 집들의 마을, 오래된 단층 건물들의 마을 거리에 세워진 한 동의 현대식 빌라를 개조해 운영하는 호텔 그리고 호텔 앞에 조성된 공원은 어색하고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막 한가운데 멋진 궁전을 세웠지만 찾아올 사람이 없는 공허한 공간처럼 보이고, 오트사항의 모습도 그저 무료하게 느껴진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유일한 식당에 들어간다.
하나의 긴 테이블만이 덩그러니 놓인 식당은 김밥과 함께 튀긴 양고기 만두를 팔고 있다.
1,000투그릭의 김밥 두 줄과 500투그릭의 삶은 계란을 달하고 한다.
"한국에서 꼬마 김밥을 먹고 왔나. 가늘다 가늘어!"
김밥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의 다른 맛이다. 얇게 썬 당근과 소시지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단무지가 들어있는 것 같다.
찰기가 없는 몽골의 밥을 말기 위해 양고기 기름을 이용하는지 양고기의 냄새와 맛도 약간 난다.
중국의 한국 음식을 먹으면 황당한 느낌이지만 몽골의 한국 음식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무나 가축의 똥이 연료인 화로를 사용하는 몽골에서 삶는 음식이 아닌 기름에 튀기는 모습은 처음 본다.
손바닥만 한 양고기 만두를 튀기는 것인데, 손님이 주문하여 한 입 베어 문 뒤 양고기가 익지 않아 다시 튀기는 중이다.
"화로의 화력으로 기름 온도가 올라가나?"
중국이라면 한두 개 정도 사 먹었을 것 같은데, 왠지 눅눅한 기름맛일 것 같아 포기한다.
"60km 정도니, 하나씩 까먹으면서 가면 충분하겠지."
"정말 난데없다!"
바람을 피하며 빠르게 구름이 이동하기를 기다리며 쉬고, 다시 출발을 하려는 순간 뒷바퀴가 푸석거린다.
"오, 오랜만인데."
편하게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펑크 수리를 한다. 오래전에 펑크 패치를 붙여 논 곳에서 바람이 새고 있다.
새 튜브를 꺼내려다 귀찮아져서 펑크 패치로 정비를 하고, 바람이 빠지는지 기다리며 확인을 하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펑크가 나서 힘들었었나?"
뒤편의 초원에서는 두꺼운 검은 구름위에서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다.
멀리 정면의 방향에서 지면을 휩쓸며 검은 무언가가 다가온다.
"가축의 이동 통로도 없는데."
작은 돌들과 모래가 정신없이 날아들며, 신비롭던 하늘은 황색과 회색빛으로 뒤덮인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모래들이 어깨와 등을 따갑게 때리고, 버프와 옷 속으로 모래먼지들이 파고든다.
폭풍과 함께 네트워크도 끊기고, 핸드폰의 녹음된 라디오를 반복 재생하며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걸." -이상은 "삶은 여행"중에서
모래 먼지로 자전거는 엉망이 돼버렸지만 손상이 된 부분은 없어 보인다.
온몸에서 흙먼지의 비린 냄새가 느껴진다.
김밥과 계란만을 먹은 식사의 허기짐과 흙먼지를 잔뜩 먹은 입안의 텁텁함이 맥주 한 캔의 시원함으로 가라앉는다.
음식점으로 보이는 집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다.
"밥 먹을 수 있어?"
가게의 여자에게 밥 먹는 제스처를 하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나오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식당 앞에서 주저앉아 쉬고 있으니 아저씨가 나와서 자전거를 끌고 오라며 제스처를 하고, 식당 옆에 있는 방문을 연다.
간의 침대들이 놓인 공간에 자전거를 넣고, 자물쇠를 나에게 건네준다.
"오, 좋은데!"
화초를 기르는 몽골 집은 처음이다. 가게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다.
"이건 안장에 달아볼까?"
커다란 화물차에 올라간 사람들의 기념 사진을 찍어주고.
4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았던 터그럭까지의 여정이 무려 11시간 동안의 어드벤처 한 경험을 선사했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돼. 몽골아!"
하루 종일 난리를 피우던 바람이 사라지고 하늘에 별들이 빼곡하게 빛나는 밤이다. 몽골의 여행을 뭐라 표현을 해야 할지.
"힘들고 어렵다 아니면 아름답고 경이롭다."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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