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3일 / 맑음 ・ 12도
딩저우시-왕두현-바오딩시
베이징까지 남은거리 200km, 3일에 나누어 천천히 라이딩할 생각이다.
"아침엔 사과!"
언젠가부터 사과를 먹게 되면 주문처럼 이 말을 중얼거린다.
어제 호텔에서 담아온 사과로 아침을 대신하고, 어디까지 갈지 결정하지 못한 채 출발한다.
"일단 바오딩시까지 가보고 결정하자."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의 차가운 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든다.
"어휴, 추워!"
사거리의 신호등을 건너고 서둘러 겨울 자켓을 꺼내어 입는다.
계절을 거슬러 달려온 것처럼, 지금껏 따듯한 남쪽 지방에 있었다는 것이 실감 난다.
우리의 최북단 위도보다 높은 곳에 와있으니, 태어나서 가장 위쪽의 위도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앞으로 가게 될 러시아나 핀란드, 알래스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쉽게 몸의 열기가 올라오지 않고 얇은 겨울용 장갑을 낀 손등으로 차가운 냉기가 스며든다.
4월 초에는 도착할 수 있을까 싶던 베이징이 200km 밖에 남질 않았다.
"시안(西安) 정도는 돌아왔어도 충분했었는데, 아쉽다."
기대는 없었지만 들어선 순간 '허걱'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편의점까지 갖춘 멀쩡한 주유소의 화장실이 일명 푸세식이다. 소변을 보는 곳이 이렇다면 대변을 장소는 보나 마나.
"예비군 훈련 때 보고 처음인가? 정겹기는 하네."
중국은 항상 겉모습은 멀쩡한데 한 발짝만 들어가 보면 황당한 곳이 여전히 많다.
"어디까지 갈까. 바오딩시에서 일찍 쉴까. 몸도 무겁고."
빵을 먹고 출발한지 몇 분이 안돼 속이 불편해진다.
아침의 모닝 의식이 시원치 않았는데, 뱃속이 부글부글 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큰일을 치러야 할 것 같다.
"중국의 평야에서 시원하게 엉덩이를 까야 하나."
아무것도 없는 국도의 도로변, 괄약근을 조이며 마땅한 장소를 찾아서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조심스레 페달링을 이어가던 중 1km 주유소 이정표가 보인다.
패니어의 안쪽에 넣어둔 휴지를 급하게 꺼내들고 들어간 화장실은 다행히 푸세식은 아니고, 칸막이가 없는 쪼그려 쏴.
한방으로 시원하게 해결을 하고 보니 양쪽 변기 앞에 물이 담긴 양동이가 놓여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물을 내리는 버튼이나 장치는 없고.
"이 정도는 익숙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 아침부터 무거웠던 컨디션이 그 님 탓인가 싶기도 하고.
"가만, 나 지금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그래, 흙먼지가 날리는 것보다 밀이라도 심어서 방지하는 것이 좋겠네."
어제 저녁 딩저우 야경을 구경하느라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지 않고.
"이럴 땐 일찍 발 닦고 자는 것이 최고지."
천천히 바오딩시가 나타나고.
허베이의 성도 스자좡시와 베이징시의 사이에 있는 제법 큰 도시인데 타 도시에 비해 세련되거나 화려하지가 않다.
낮 시간이라 조금은 한적한 사거리에서 숙소를 검색하고 외국인 투숙이 되는지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조식포함'의 검색 옵션을 넣어 숙소를 검색한다.
"조식 중독자가 돼버렸어!"
"입맛도 없고, 여기 나와서 아무거나 먹어야겠다."
숙소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보관을 물으니 직원들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는 건물 외부를 알려준다.
"노, 노!"
"귀중품을 갖고 있나요?"
"자전거 세계여행 중, 자전거를 잃어버리면 안 돼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을 불러 지하 1층에 보관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체크인을 할 때부터 센스 있게 응대를 하던 프런트 직원은 바로 관리 직원을 데려와 지하 1층 비품실에 자전거를 보관해 준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특히나 좋다. 업무의 경중과 권한의 유무를 떠나 부지런히 일만 하는 사람보다 센스가 있고 사고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다.
여행사 사무실 같은 프런트에 3명의 직원이 앉아있고 숙소의 프런트가 맞는지 의아해하며 다가서 호텔인지를 묻자 두 명의 직원은 당황해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Is this here? right?"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며 재차 숙소를 확인하니 한 여직원만이 오케이 하며 핸드폰 번역기를 사용해 여권과 보증금을 요구하고 체크인을 도왔다.
"Can i get.."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도 되는지 물으려 하자 자전거를 보며 어떻게 할지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살피고 안내를 한 것이다.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하나 없는 일처리였다.
자신의 업무 범위와 권한의 매뉴얼이 확실한 사람만이 갖은 자연스러움, 이런 사람들은 대개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업무의 확장성이 다양하다.
"프로페셔널, 그들은 섹시하다."
'우리 만년 과장님은 능력은 떨어지지만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직원들의 일에 관심이 많고 특히 누구보다 부지런해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해.'라는 말을 듣고 있을 김과장은 여전히 그러한지 궁금해진다.
한 개에 1, 2, 3위안 정도 하는 해산물 꼬치. 문어 꼬치는 15위안으로 꽤 비싸다.
유독 해물 꼬치집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내륙이라 돼지고기보다 오징어가 더 비싼가 보다.
내 것이라며 알려주며 라지오(매운고추, 辣椒)를 추가로 넣어주는 센스.
체크인을 하며 조식권을 받지 않아 조식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물어보려 했는데 말똥말똥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동시에 쳐다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만 나온다.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웃기만 하다
"How to have.. 아니다. 짜오찬?"
이번에도 센스 있는 여직원이 핸드폰으로 조식 시간과 위치를 알려주며 조식권을 건네준다.
노점에서 팔던 핫도그처럼 생겨 칼집이 나있는 것을 가리키며 뭐냐고 묻자 세 명이 동시에 까르르 웃는다.
烤面筋(카오미엔진), 밀가루를 구워서 먹는 것 같은데 직원의 중국 핸드폰 번역기에는 고무줄로 나온다.
"고무줄? 하하하."
숙소로 걸어오는 동안 조금 식었지만 음식은 나름 괜찮다.
특별하게 맛있는 것은 아닌데 중국 젊은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나 보다.
며칠째 맞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것이 피곤하고, 기온이 낮아지며 컨디션이 떨어졌나 보다.
5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니 피곤함도, 약간의 감기 기운도 조금은 사라진 기분이다.
"역시, 피곤할 땐 발 닦고 자는 게 최고야."
경비내역
식비:33위안 / 식료품:10위안 / 숙박:30,795원 / 합계:43위안, 30,795원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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