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6일 / 눈 ・ 5도
이흐울-토승쳉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조금은 지쳐있다. 울란곰까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울란곰까지 60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작은 식당의 넓은 간의 침대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 어제의 피로가 많이 사라진듯하다.
정말 얄궂은 몽골의 날씨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지독했던 어제의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밝다.
"이곳에서 하루 정도 머무를까?"
술을 팔지 않는 작은 식당은 깔끔하고 음식 맛도 괜찮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구글맵을 확인하니 토승쳉겔(Tosontsengel,Тосонцэнгэл)을 거쳐 넘루그(Numrug, Нөмрөг)까지 150km 정도의 거리다.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 100km 정도의 거리에 작은 마을조차 지도상에 보이질 않는다. 날씨와 바람을 생각하면 하루에 가기에는 어려운 거리다.
"토승쳉겔까지 가서 거리를 줄여놔야겠네."
침낭과 패니어를 정리하고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던 앞브레이크를 정비하며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만둣국을 주문한다. 몽골의 작은 식당들은 화로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20분이 조금 넘어 만둣국이 나오고 따듯한 우유차와 함께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만둣국을 먹고 있으니 여자 주인은 육수를 한 그릇 가득 담아내어준다. 제법 음식 솜씨가 좋은 가게이다.
몽골 여행의 어려운 일들 중 하나는 음식인 것 같다. 식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몽골에서 변변하게 먹을 음식을 찾기가 힘들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니 10시 30분이 되어 출발을 한다.
작은 바람만이 느껴지는 화창한 날씨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가볍게 달려간다. 등쪽으로 떨어지는 따듯한 햇볕이 이내 몸을 덥히고, 라이딩의 가벼움은 140km 거리의 넘루그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을 만들어 낸다.
"무리겠지? 날씨가 너무 아까운데, 이런 날 많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제 타르바가태(Tarvagatai, Тарвагатай)를 넘은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초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악지대의 모습에 가깝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들과 바위, 돌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이흐울을 6~7km 정도 벗어나니 다시 통신은 완전히 끊겨버리고 화창했던 하늘을 두꺼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다시 조금씩 바람이 일며 이흐울의 따듯함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풍부한 강줄기는 멋들어진 곡선을 그리며 계속 이어지고,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토승쳉겔 방향의 하늘이 어둡게 변해있고 눈을 흩뿌리는 듯한 풍경이다.
강물을 따라 휘어지고 작은 언덕들이 연이어지는 길에서 쉽게 지쳐간다. 아무래도 어제의 피로가 쌓여있는 것 같다. 멋들어진 바위들이 솟아오른 산 밑에서 잠시 쉬어간다.
"40km 정도조차 쉽게 보내주질 않는구나."
좌우로 불어오며 진눈깨비를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느릿느릿 도로를 따라가다 내 앞에서 멈춰 선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를 만난다. 울란바토르에 간다는 남자와 인사를 하고 뭔가 대화를 이어가려 해도 네트워크가 끊겨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헬멧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헬멧을 벗으니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여 멋은 낸 청년이다.
멋쟁이 남자와 짧은 만남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연이어지는 오르막과 거세지는 바람이 자전거를 다시 멈춰 세운다.
"얼마큼 온 거지? 15km, 20km 정도 남았나?"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에도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있어 산들이 표범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한기가 밀려든다.
"가자. 3시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지 뭐."
해발 2,500미터의 타르바가태 산을 넘고 1,500미터의 이흐울까지 갑작스레 고도가 떨어지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듯 페달링을 힘들게 한다.
언덕과 언덕으로 이러지던 길의 큰 고개를 오르니 바람이 잦아들며 하늘빛이 밝게 변하고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15km 이상은 더 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토승쳉겔의 모습이 직전 도로의 끝에 보이기 시작한다.
"오호, 다 왔다!"
고갯길의 내리막을 달려 길은 눈앞에 보이는 토승쳉겔의 방향으로 이어지질 않고 우회전을 하며 높은 언덕길 위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왜?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빙 돌아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야?"
"정말 올라가기가 싫어진다."
2시가 조금 넘어 토승쳉겔에 도착한다. 언덕 밑으로 제법 많은 집들이 넓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호텔! 씻을 수 있을까?"
체체를렉의 페어필드에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10일 가까이 양치만을 하며 살았다. 두건을 쓰고 다니는 머리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참이다.
마을 초입의 언덕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사이 토승쳉겔의 하늘이 변하며 눈을 휘날리고 있다.
마을 초입에 여러 개의 주유소들이 연이어지고, 주유소의 마당에서부터 짖어대며 쫓아오던 개를 향해 계란만한 돌멩이를 주워 던진다.
"가! 이 개******!"
추워진 날씨, 구글 지도를 확인하며 마을 초입에 보았던 스카이라인 호텔을 찾아 마을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여러 개의 슈퍼마켓이 보이고 몇몇의 식당들도 보이는 도로변에 옷과 신발들을 파는 노점상들의 모습도 보인다.
흙바닥의 골목길을 빙빙 돌아 스카이라인 호텔에 도착하자 때마침 승용차에서 내리던 중년의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호텔의 문을 열어준다.
"호텔 맞지?"
호텔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짧은 영어를 할 수 있어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다. 하루나 이틀쯤 머무를 것이라 대답하고 25,000투그릭의 숙박료를 확인한다.
1층에 있는 샤워실, 자전거를 놓아둘 장소 등을 안내해 주고 2층으로 올라가 방을 정해준다.
"이건 40,000투그릭!"
여러 개의 낡은 방문을 열어보며 빈 방을 찾더니 침대가 2개 놓인 방은 40,000투그릭이라고 중얼거린다.
낡은 침대가 놓인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2층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여주인은 그냥 내려간다.
복도의 끝에 있는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놓여있고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이 정도면 특급호텔이야!"
1층에 있는 샤워장에도 낡은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따듯한 온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찬물이면 어때.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복도 옆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넓은 주방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 굽고 있는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오늘은 레스토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을 나와 음식점과 슈퍼가 있던 거리로 나간다. 몽골의 마을에는 가라오케나 디스코텍 같은 것이 음식점보다 많은 것 같다.
"참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네."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먹을 빵과 음료수, 과자 같은 것을 조금 사 들고 나와 길 건너편의 음식점으로 걸어간다.
음식들의 메뉴 사진이 걸려있는 건물 앞에는 옷을 파는 노점상들이 내리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가만. 느낌상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 같은데!"
서롱고스라고 쓰인 익숙한 글자가 보이고 자세히 보니 한국의 음식들의 사진이다. 제육볶음의 사진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이런 운은 없는 것일까? 내일 다시 와봐야지."
진눈깨비의 눈바람이 더 거세지고, 대형 버스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운터에서 사람들의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나도 이것으로 먹어야지."
음식의 사진을 찍고 카운터로 가서 핸드폰을 보여주니 종이에 글씨를 쓴 오더지를 주방으로 건네준다.
양고기의 잡내가 조금 있었지만 아주 맛있게 허기를 달랜다.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해."
진눈깨비는 어느새 우박으로 변하여 정신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슈퍼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데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이 궁금하여 들어가 본다.
핸드폰 가게들과 주류가게, 꽃집 그리고 2층에는 옷가게들이 들어선 일명 몽골의 쇼핑몰 건물이다.
가게들을 둘러보면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꽃집의 여자가 나를 부른다.
"서롱고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본다. 몽골에서 꽃집을, 그리고 붉은 장미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콩알만한 우박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은행에 들러 약간의 현금을 찾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직원들은 여전히 빵을 굽느라 바쁘다.
넓게 밀가루 반죽을 펴서, 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뿌린 후 돌돌 말아 자르고 오븐에 넣으면 끝이다.
따듯한 물과 컵을 구하러 내려갔는데 구워낸 빵을 2개 건네준다. 그냥 밀가루 빵 맛이다.
슈퍼에서 사온 박카스를 마시고 누워있으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전구가 없던 방에 전구를 끼워 넣기 위해 남자 직원이 서있다.
전구를 끼워 넣고.
불을 켜는데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스위치가 있는 벽을 확인하니 스위치가 없고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니, 딱히 불은 없어도 되는데 저걸 어떻게 끄지?"
"간만에 씻어 볼까?"
감바의 집 현관을 여느라 20분 정도를 낑낑댔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문들은 자물쇠가 딸깍딸깍 두 번이 걸린다.
1층에 있는 샤워실에는 보기와 달리 따듯한 물이 잘 나온다. 오랜만에 머리를 감느라 중국 호텔에서 가져온 작은 샴푸통을 다 비운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울란바토르의 테를지의 리조트에 취직을 했다는 김병남 선교사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 한국 사업가가 운영하는 리조트에 관리인으로 취직을 했는데 새롭게 일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피곤한 모양이다.
리즈후이에게 위챗 메시지가 와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오랫동안 메시지를 주고받고, 휴가를 받아 아내에게 갔다는 오초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잠을 자는지 답장이 없다.
"이 침대 시트는 어디에 있는 첼시 호텔이냐?"
데이터 만수르가 되어 CBS 라디오를 들으며 별 기대 없이 카톡으로 사연을 쓰고 신청곡을 보내본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0분이 넘어간다.
"끝날 때가 됐네. 괜히 보냈네!"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방송이 끝나는 마지막 광고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를 하던 김현주가 나의 사연을 읽어준다.
"멀리 몽골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변차섭씨가... "
"헐!"
아쉽게 마지막으로 급하게 신청된 노래라 이상은의 노래는 중간에 끊겨버렸지만 뜻밖의 즐거움이다. 12시가 가까워지며 창밖으로 거칠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내일 길을 떠나긴 틀린 것 같다. CBS 음악 FM은 저작권의 문제 때문에 다시 듣기가 제공되지 않는 모양이다. 온갖 곳을 검색하고 유튜브, 팟캐스트 등등을 뒤적여봐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전거 세계 일주 106일째, 중국을 거쳐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몽골의 넓은 초원을 홀로 달리는 것이 가끔 외롭지만... 저의 눈을 통해 함께 세상을 보고 있을 그녀와 듣고 싶네요. 항상 그녀의 삶이 행복하기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몽골(19.04.14~07.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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