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2일 / 맑음
런던
화창한 날씨의 런던, 자전거를 타고 런던을 둘러볼 생각이다. "그냥 산책을 할까?"
뚱뚱한 아저씨의 대단한 코골음에 몇 차례 잠에서 깨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대단하다."
며칠 동안 지독히 힘들게 만들던 안개비가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열린다.
"런던,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구글맵을 열고 런던 시내의 관광지들을 검색하고, 오늘은 산책을 하며 템즈강변을 돌아 타워브릿지를 다녀올 생각이다.
어제부터 삐걱거리던 자전거의 허브와 체인을 점검한다. 허브의 라쳇이 망가진 것인지 회전의 느낌이 이상한데, 체인의 오일이 건조해지며 일어나는 일시적 트러블이었으면 좋겠다.
체인에 오일링 작업을 하고 다시 자전거를 묶어둔다.
"그냥 오늘은 걸어서 산책을 하자."
방을 옮기느라 아침부터 진이 빠진다. 6개의 문을 지나 숙소의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이동을 하고, 한숨을 돌린 후 밖으로 나간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큰 돔과 첨탑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인데, 성당의 크기가 대단하다.
"20파운드? 와 너무 비싸다."
성당의 외부를 구경하는 것도 목이 아플만큼 높고 크다.
"일단, 오늘은 패쓰."
밀레니엄교를 건너 템즈강으로 간다. 흙탕물빛의 템즈강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한강은 그래도 괜찮은 도시의 강이야."
강변을 따라 타워브리지 방향으로 걸어간다.
오래된 성당의 모습도 보이고, 강변을 따라 작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지만 매력적이지는 않고 평범하다.
"누가 롯데타워를 여기다 옮겨놨냐?"
샤드빌딩의 주변을 돌자 템즈강의 타워브릿지가 보인다.
"조금 실망스러운데."
계절의 문제인지, 평범한 템즈강의 풍경때문인지 타워브릿지의 모습은 생각했던 모습에 비해 아쉬움이 느껴진다.
다리를 지나쳐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보고.
골목 사이로 공중다리가 설치된 건물들의 이색적인 모습이 더 흥미롭다.
"그래도 참 독특해."
"왜 굳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템즈강의 풍경은 바라볼수록 너무나 아쉽다.
"사진 찍기용?"
왠지 모르겠지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템즈강을 걷는 동안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의 도시적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친숙함이 더 이상하게 생각된다.
"뭐지? 이 낯설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는."
런던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뭔가 답답하고, 시끄럽고, 복잡할 것 같았던 런던은 매료될 만큼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시내 중심의 관광자들의 코스라 그런가?"
불편한 대도시에 살아야 한다면 런던의 삶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궁금하네."
런던타워는 러시아의 성들에 비해 크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비싼 입장료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근데 여기에 왜 성을 쌓은 거야?"
가벼운 산책의 걸음이 좋다.
고팍한 공간의 KFC 매장도 재미있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들과 과거의 건물들의 어울림도 좋고.
복잡하면서도 시끄럽지 않은 거리의 풍경도 마음에 든다.
"재미있는 도시네. 불편하지 않은 느낌이 뭘까?"
도시의 안정감, 북유럽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도시의 풍경도 아니지만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밥값은 불편하군. 정말 쎄다."
"그나저나 빌딩들 이쁘네."
빼곡하게 들어선 서울의 중심과는 달리 공간의 여유가 느껴지는 건물들의 조화가 참 모던하고 좋다.
검색을 해두었던 한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닫혀있다.
"햄버거 그만 먹고 싶은데."
숙소가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걸어간다.
"자꾸 눈에 들어오네."
"내일 구경해 볼까."
비싼 입장료가 부담스럽지만 여행카드나 할인권을 사면 조금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것이다.
"정말 너무 비싸다."
구글맵으로 KFC를 찾아 걸어간다. 햄버거보다 치킨세트를 포장해서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
KFC에서 치킨세트를 포장하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좁은 레스토랑 거리를 지나 숙소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숙소의 입구 바로 옆에 묶어둔 자전거가 보이질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자전거를 묶어놨던 자리에 가서 확인하니 땅바닥에 잘린 자물쇠들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 #_#₩&&##&4&++&&_&+-__-+-&'"
런던의 한복판, 사람들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훔쳐갈 것이 그렇게 없나?"
"I have a big Problem, my bike is gone."
숙소의 여직원에게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말하니 직원들도 당황을 한다.
숙소의 외부 카메라는 쓸데없는 곳을 향해 고정되어 도둑의 모습을 볼 수가 없고, 중년의 여직원은 숙소의 옆가게에 가서 CVTV를 확인하라 안내한다.
영어 전달이 어렵다고 말하니 여직원은 외투를 챙겨 함께 밖으로 나가자 한다. 식당에는 숙소의 주변을 가리키는 외부 카메라가 없다.
외부 카메라가 있는 숙소 건너편 호텔에 함께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고, 여직원은 경찰서에 신고를 하겠다고 한다.
잠시후 여직원은 경찰서에 가서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하며 경찰서의 주소를 적어준다.
예테보리에서 핸드폰을 분실했을 때도 그랬지만 자전거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신원 정보가 있는 핸드폰 도둑도 잡질 못하는데, CCTV에 도둑의 모습이 촬영되었다한들 백주대낮에 자전거를 훔쳐가는 과감한 도둑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월터, 자전거를 잃어버렸어. 여행을 그만 할가봐. 너무 지친다."
놀라기는 월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구할 수 있다고 위로를 하지만 자전거를 구하는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지겹고 지친다. 유럽을 여행하며 무엇을 도난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사람들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지겹고, 감정이 소진되어 사람들을 보며 웃을 수조차 없다. 유럽의 도시가 너무 싫고 염증이 난다.
경찰서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힘이 없다.
"뭐가 불만이냐? 거지처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조차 못봐주겠어!"
경찰서의 사건신고는 온라인으로 작성을 한다. 굳이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인 것 같다. 많은 질문 항목들을 작성하느라 힘이들고, 도움을 주던 할머니 경찰관도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도둑을 잘도 잡아주겠다!"
신고에 대한 사항은 내일 전화로 주겠다고 한다. 전화가 안될 수 있으니 숙소로 전화해달라 부탁해도 듣는둥 마는둥이다.
"스웨덴 경찰은 친절하기라도 하던데. 썅!"
"어떻게 할까. 되돌아갈 곳도 없는데, 그만 돌아갈까."
망연자실 숙소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니 젊은 한국 남자가 있다.
"영어 잘 해요?"
일산에서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왔다는 친구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지만 위로는 되질않는다.
"내가 지금 웃고 있으면 미친 놈인데, 웃음밖에 안 나오네."
독한 술이 생각난다. 점심에 갔었던 한국식당으로 걸어간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식당에 들어가 무제한 고기부페 메뉴를 주문하니, 한 사람은 안된다고 한다. 한국처럼 밑반찬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2인 이상이어야 주문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곱창과 함께 비싼 소주를 주문한다.
"씨&₩&, 졸&_₩& 비싸네."
일 년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욕설이 내볕어진다.
안주가 나오기 전 쓴 소주 한 잔을 들이킨다.
"졸라, 쓰다!"
몇 달만에 마셔보는 소주 한 잔이 어지럽게 느껴진다.
"마시자. 오늘은 나도 모르겠다."
한국 손님이 왔다는 말에 쿨한 웃음의 남자 사장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자전거 타고 왔는데 오늘 자전거를 도난당했네요. 그래서 비싼 소주 먹으러 왔습니다."
쿨한 성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잊어버리라며 고추와 마늘을 내어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며 명함을 건내준다.
월터는 런던의 도난 자전거와 관련된 정보들을 보내준다.
"월터, 나는 쿨해져야 해. 근데 지금은 조금 힘들다. 꿈이 깨지는 기분이야."
"알아. 나라도 그럴거야. 하지만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난 취했다. 역시 소주가 좋네. 오늘만 이럴거야! 오늘밤 영국놈들은 나를 조심해야 해."
"아마도 영국 여자들이 조심해야겠네."
"빌어먹을 놈들!"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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