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1일 / 비, 맑음
메이드스톤-런던
영국의 날씨는 정말 괴팍하고 축축하다. 캔터베리를 출발하여 단 하루만에 모든 것들이 엉망으로 젖어있다. "런던으로 가자!"
싸늘한 기운에 잠이 깬 아침,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축축하고 춥고. 참 싫다."
눅눅한 침낭이지만 벗어나기가 싫고, 비를 맞으며 달려온 피곤함은 가시지 않고 남아있다.
카카오톡의 답변은 계속해서 통화연결이 안 된다는 답변이다. 통화가능 시간을 적어 다시 상담문의 글을 남기고 짐들을 정리한다.
"통화가 필요하면 왜 서류는 받은 거야. 끝까지 가 보자!"
스위스 은행 계좌를 열어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대단한 카카오톡이다.
런던까지 60km의 거리, 영국의 라이딩 환경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냥 도버로 돌아갈까 보다!"
질척거리며 내리는 비, 바람, 갓길도 없는 좁은 도로, 거친 운전자 그리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좌측의 진행방향, 모두 어제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다.
영국의 지형은 평탄하지 않고 오르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작은 타운이나 소도시에 들어서면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져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끊기고 사라지는 도로들이다.
"정말 최악이야!"
신발도, 장갑도 축축하게 젖어들고 냉냉하게 찾아드는 한기는 정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불편한 느낌이다.
"밥이나 먹자. 힘들다."
어젯밤 메이드스톤에서 사놓은 햄버거를 꺼내 먹는다.
"현실적인 햄버거의 모양이네."
"32마일이나 남았네. 젠장 10km 달리기가 이렇게 힘들다."
도로가 위험하여 도로변의 인도를 따라가 보지만 비바람에 부러진 굵은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있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로쓰햄을 지나며 산을 넘어가는 긴 오르막이 이어지고, 차량들을 신경 쓰며 페달을 밟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기만 하다.
다행히 오후들어 하늘이 맑아진다. 내리막의 도로가 이어지지만 위험한 도로에서 시원하게 달릴 수도 없다.
작은 타운 스완리에 도착하여 잠시 쉬며 런던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결정한다.
"그리니치 천문대, 런던타워, 런던교로 해서 숙소로 가자."
세인트 폴 대성당 근처에 있는 숙소로 가기 전 근처의 관광지들을 구경하고 갈 생각이다.
"에쉬, 오늘도 엉망이네."
출출함이 느껴져 도로변의 맥도널드에서 허기를 달래고 그리니치 천문대로 향한다.
런던의 외곽이지만 시내로 들어갈수록 밀려있는 차량들이 길을 막고.
"그래, 내가 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이상한 거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진 국가들을 여행하다 영국으로 들어오니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지치고 힘들다. 자전거 도로가 가장 좋지 않았던 독일도 영국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왜 계속 올라가는 거야? 런던이 산동네인가?"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그리니치 공원에 도착하고, 넓고 깨끗한 공원에서 길을 헤맨다.
공원의 언덕 위에 들어선 그리니치 천문대에 도착하자 템즈강변을 따라 들어선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런던이냐?"
작은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 전망대가 더 인상적이다.
"당신은 뉘신지?"
"근데 어떤게 천문대야?"
"별 것 없네!"
복잡하고 혼잡한 런던의 시내를 가로질러 런던타워로 향한다. 서울 시내에서의 라이딩이 익숙하여 차라리 차량들로 혼잡한 시내의 도로가 갓길이 없는 일반 도로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다.
"유럽에 살면 자전거 딜리버리 정도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며 능숙하게 도심의 도로를 지나치고 타워브리지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되게 못생겼네."
브릿지타워는 생각했던 모습보다 육중하고 거대한 건축물로 보인다.
"대단하긴 하네."
"롯데타워를 누가 옮겨놨어?"
런던탑의 모습을 잠시 구경하고.
런던교로 향한다.
런던교의 사고이후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리의 인도에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도록 커다란 경계봉과 경계석들이 세워져 있다.
숙소가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간다. 모던한 빌딩 숲과 조화롭게 들어선 석조건물들 그리고 붉은색의 2층 버스를 지나치며 달리니 런던에 도착했음이 실감이 난다.
내가 생각했던 런던은 타워브릿지나 런던탑과 같은 관광의 상징물이 아닌 도시의 색과 분위기 같은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 도시라는 공간의 이미지는 뉴욕의 맨하튼보다 런던이라는 도시,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회색빛 거대하고 반듯한 세인트 폴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건너편 호스텔을 찾고 체크인을 한다.
"호스텔 입구에 자전거를 놓아도 괜찮아요?"
호스텔의 여직원은 그렇다는 듯 긍정의 답변을 하며 내일 다른 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안내를 한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도시의 미소는 친절하지만 상냥함이나 정감은 없다.
"안전하지?"
여직원은 이번에도 상관없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호스텔 창문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패니어와 짐들을 2층의 방으로 옮기고 서둘러 비에 젖은 몸을 씻어낸다.
주변의 저렴한 음식점들과 한국 음식점들을 검색하여 찾았지만 멀리 걸어가기엔 피곤한 몸이 귀찮다.
"맛있는 것은 내일 먹자!"
여행자 식당에서 간단하게 햄버거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런던의 중심에 위치한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은 쾌적하고 조용하다.
"런던도 생각보다 나름 괜찮네."
지도를 확인하며 런던의 관광지들을 검색하며 내일의 경로를 생각하다 일찍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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