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85일 / 맑음 ・ 26도
양양 하조대-주문진-강릉 안목항
멀리까지 갈 필요도, 만나야 할 누군가도 없다. 그저 마음이 닿는 곳에 시간을 내려두면 되는 날들이다.


이동거리
41Km
누적거리
26,940Km
이동시간
4시간 0분
누적시간
2,042시간

 
동해안길
 
동해안길
 
 
 
 
 
 
 
25Km / 2시간 30분
 
16Km / 1시간 30분
 
하조대
 
주문진
 
안목항
 
 
571Km
 

 

꽤나 달콤하게 잠든 밤이다.

요란한 폭죽 소리도, 여행객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없는 조용한 밤이었다.

 

한적한 바닷가를 거닐고 시간을 보낸다. 요즘 들어 강우석이 진행하는 CBS의 클래식 방송이 좋다.

 

느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텐트를 말리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남애항에 들러 물회로 점심을 먹고 안목항으로 갈까?"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이 있는 안목항은 자전거 여행을 하며 첫 번째로 야영을 했던 곳이다.

 

천천히 강릉을 향해 출발한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다.

 

평탄한 지형에 각기 다른 느낌의 해변들이 이어져 바다를 바라보며 라이딩하는 즐거움이 있다.

 

작은 해변의 소나무 숲에 캠핑용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복분해변 솔밭 야영장, 소박한 해변이라 시즌이 끝나면 여행을 하며 캠핑을 하고 싶은 장소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캠핑을 해야겠다."

 

 

동해안의 해변에는 언제부터인지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파도가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해변이라 내가 보기엔 물놀이 수준이다. 파도가 없어서 인지, 초보자들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핑보드를 서서 타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두 배를 깔고 서핑보드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들이다.

 

 

작은 해변들을 지나 남애항에 들어선다.

 

적당한 출출함이 찾아드는 시간이다.

 

등대횟집에 자전거를 멈추고.

 

 

여전히 건강해 보이는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자 언제나 그렇듯 누구인지를 묻는다. 이번에도 윤기의 이름을 알려주고 인사를 드린다.

 

"물회 주세요."

 

회가 따로 나오는 물회에 면과 회를 넣고.

 

따듯한 밥 한 공기를 더 달라하여 마무리한다.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든든해진 배를 튕기며 강릉으로 향한다.

 

해안 철책선이 이어지는 솔밭길과 해안길을 달리고 시원한 풍경의 소돌해변을 마주한다.

 

 

 

해변의 끝자락 파도가 치는 넓은 갯바위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낸다.

 

 

언제나 혼잡한 주문진시장을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차량들로 가득하다. 앞뒤로 밀려오는 차량들을 피해 가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해안가 방파제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 거야? 뭔데?"

 

어딘가 친숙하고 낯이 익은 풍경의 방파제다.

 

"오, 도깨비!"

 

 

여행 중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가지고 다녔던 드라마 시리즈가 도깨비다. 수없이 반복해서 봐왔던 그 장소다.

 

리즈훼이에게 방파제의 사진을 보내주니 그녀도 장소를 알아본다.

 

드라마의 구도와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데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포기한다.

 

강릉으로 향한다.

 

주문진에서 강릉까지의 구간은 솔밭 해안들이 연이어지는 코스다.

 

솔밭 의자에 누워 낮잠을 잔다.

 

한 시간 넘게 잠들었다 깨어나고.

 

강릉해변을 지나 안목해변으로 바로 이동한다.

 

속초해변만큼 좋은 강릉해변이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강릉해변보다는 조용한 송정해변이나 안목해변이 좋다.

 

처음 캠핑을 했던 자리에 의자를 펴고 해안가의 늦은 오후의 풍경을 바라본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혼자다."

 

"뭐, 다음번에는 달라지겠지."

 

적당히 시원한 바람과 적당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이 좋다.

 

해가 지기 전 처음 캠핑을 했던 같은 자리에 텐트를 펼친다.

 

어제 남은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시간을 보낸다.

 

처음으로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그날의 설렘이 떠오른다.

 

일 년 반,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생활이 되었다.

 

"그때와 달리 나는, 아직은 아니면 여전히.."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584일 / 맑음 ・ 27도
속초-양양
뻐근하고 묵직해진 몸, 동해안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동거리
28Km
누적거리
26,899Km
이동시간
2시간 42분
누적시간
2,038시간

 
동해안길
 
동해안길
 
 
 
 
 
 
 
13Km / 1시간 30분
 
15Km / 1시간 12분
 
속초
 
낙산
 
하조대
 
 
530Km
 

 

뻐근한 근육통, 카톡 메시지의 알람음에 잠에서 깬다.

재희님은 해변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일출을 맞이한 후 춘천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고집불통이군."

 

다시 잠을 청하지만 무거워진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아직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속초해변은 한가롭다.

 

"잘 다녀왔어!"

 

 

리즈훼이는 난데없이 조약돌을 집으라 메시지를 보내더니.

 

하나만을 남기고 버리라고 한다.

 

"내가 나중에 찾으러 갈게."

 

12시가 다가오자 숙소의 주인이 찾아와 언제 체크아웃을 할지를 묻는다.

 

짐들을 챙기고 아바이 순댓국집으로 들어가 든든하게 점심을 해결한다. 지난번 여행 때는 너무 허기진 상태라 잘 몰랐는데 꽤 맛있는 집이다. 

 

조금 따가운 햇볕이 시작되는 오후다.

 

멀리 가기도 귀찮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속초해변의 끝자락인 외옹치해변의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속초해변보다 사람들도 적고 조용하니 좋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흔들의자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달콤한 꿈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너무 달콤한 유혹이네!"

 

 

2시간이 넘도록 잠이 들고 선선해진 바닷바람의 부드러움에 깨어난다.

 

야영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해변을 벗어나 적당한 곳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강릉 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해수욕장의 개장으로 해변가의 야영장들은 모두 유료로 바뀌었고, 적당한 장소들은 이미 차박을 하는 캠핑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 오늘은 왠지 치킨이 당긴다."

 

외옹치항과 대포항을 지나며 잠시 회를 포장해서 저녁으로 먹을까 싶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두툼한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

 

해수욕장들을 지나치며 캠핑장소와 치킨집을 찾으며 느긋한 페달링을 이어가고. 

 

석양빛이 붉게 물들었을 때 하조대에 들어선다.

 

공영주차장 차박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텐트를 펼친다.

 

삼겹살을 굽고 있는 가족의 장비들이 부럽다. 휴대용 가스통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라이팬 하나 정도 들고 다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 해변 주차장인데요. 전지현 치킨 한 마리 배달해주세요."

 

적어도 한국에서 여행을 하며 굶어 죽기는 불가능하거니와 먹고 싶은 음식을 상상하며 배를 움켜쥔 채 잠을 청할 필요조차도 없다.

 

해수욕장의 세면대에서 몸을 씻고, 40여 분 후 따끈한 치킨은 접선 장소인 편의점 앞으로 배달이 된다. 

 

따끈한 치킨에 맥주, 이내 쓰러져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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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583일 / 맑음 ・ 26도
화천-양구-원통-속초
재희님과 함께 속초로 간다. 광치령과 미시령을 넘어야 하는 100km의 라이딩,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이동거리
113Km
누적거리
26,871Km
이동시간
8시간 20분
누적시간
2,035시간

 
31번국도
 
미시령옛길
 
 
 
 
 
 
 
65Km / 4시간 35분
 
48Km / 3시간 45분
 
화천
 
원통
 
속초
 
 
502Km
 

 

시골의 조용한 밤,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없이 잠에 빠져들고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무화과밭이네."

 

10시 출발에 맞춰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편의점의 수돗가에서 세안을 한다.

 

아침내 주변을 둘러보던 동네 어르신이 편의점 여주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편의점 여주인은 웃으면서 할아버지의 말을 전해준다.

 

"밭에 누가 텐트를 치고 잔다고 말하시길래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천지에 널린 것이 빈 방인데 왜 밭에서 자느냐고 말하시네요."

 

10시가 조금 넘어 재희님이 도착하고, 아침으로 춘천의 맛집이라며 커다란 만두를 내어놓는다.

 

"기념샷 찍고요."

 

속초로 가는 라이딩이 두 번째라는 재희님, 춘천 자전거의 정기 라이딩인 일명 속초껌 라이딩에 함께 했던 모양이다.

 

"자타고하고 똑같네요. 껌 사러 속초 가기."

 

라이딩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지만 로드바이크의 재희님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맞춰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출발과 함께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던 길은 추곡터널을 앞두고 시작부터 오르막이 나타난다. 

 

"아놔, 강원도!"

 

짧은 추곡터널을 지나는 중 재희님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간다. 아마도 클릿슈즈를 신고 있는 재희님은 거칠게 터널을 지나가는 차량들의 통행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 중 되도록 터널을 지나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 엄청난 경적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며 지나치는 중국의 운전자들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경우가 터널을 통과할 때였다.

 

이상하게 터널을 통과할 때는 중국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지도 않았고, 천천히 자전거를 피해서 서행하며 지나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아니 여행한 국가들 중 한국의 운전자들처럼 형편없는 운전 매너는 영국을 제외하고 만나볼 수 없었다.

 

당일치기로 속초를 가는 재희님을 위해 라이딩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구까지 가는 도로의 여러 터널을 지나쳐야 해가 지기 전 속초에 도착할 수 있다.

 

추곡터널을 빠져나오고 내리막을 내려온 후 소양호의 옛길로 들어서는 추곡리를 지나친다. 멀리 돌아가는 옛길을 포기하고 수인터널을 통과하기로 계획했지만 터널을 앞두고 재희님은 다시 자전거를 세운다.

 

"힘들어요? 터널이 힘들면 옛길로 돌아가요."

 

"아니 신발을 바꿔 신고 가면.."

 

"안 돼요.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요. 옛길로 갑시다."

 

일반적인 터널보다 훨씬 긴 수인터널을 통과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시 추곡리로 돌아가 소양호의 주변을 돌아가는 옛길을 따라 양구까지 가기로 한다.

 

 

소양호의 외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옛길에는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어 편안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소양호 옛길, 한적한 소양호의 풍경이 한가롭고 편안하다.

 

 

오르막이 이어질 때마다 먼저 앞장을 서던 재희님은 페달의 속도를 맞춰가며 천천히 기다려 준다.

 

"이 길에 끝은 있는 거야?"

 

계속되는 오르내리막에 조금씩 느려지는 페달링, 자전거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자전거의 짐을 나눠 들어주겠다는 재희님에게 패니어가 장착된 자전거를 끌어보라고 하니 무거운 자전거를 세우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국내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짐들이 필요하지 않지만 딱히 일정의 계획이 없는 여행이라 세계일주를 할 때의 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패니어들이다. 대부분 옷가지들인데 여행을 출발할 때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 덜어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양구로 향하는 소양호 옛길은 계속해서 구불구불 이어진다.

 

양구를 지나 광치령을 넘은 후 늦은 점심을 먹으면 좋을 것 같지만 시원한 편의점표 얼음 커피가 간절해진다.

 

"님아, 날 버리고 가지 마오."

 

길었던 소양호 옛길이 끝이 나고 31번 국도는 생각과 달리 양구읍내를 지나치지 않고 외곽으로 돌아간다.

 

"얼음 커피~"

 

양구군청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는 경로를 무시하고 양구군의 서천 자전거 도로를 찾아 광치령 입구에 도착한다. 초입에 위치한 광치령 주유소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주유소 편의점이 있는지 둘러보지만 편의점은 없다.

 

하천에서 잡은 다슬기 대야에 물을 채우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도 되는지를 물어본다.

 

주유소 남자는 커피를 주겠다며 사무실로 안내하고, 어지러운 사무실 한편에는 하드테일 엠티비 자전거가 놓여있다.

 

"저도 자전거를 타서 관심이 조금 있네요."

 

약간은 후덥지근한 정오의 날씨 남자는 뜨거운 믹스 커스를 내어준다. 남자의 센스가 아쉽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전거를 타고 양구의 파라호 주변을 자주 라이딩한다는 남자는 광치령에 대해 물어보자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없다며 미시령보다 광치령이 더 힘들다고 한다.

 

지도 앱으로 600미터가 안 되는 해발의 높이, 4km 정도의 거리인데 미시령보다 힘들다는 말이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어디쯤이 정상이에요?"

 

"당연히 터널이 나오면 정상이지."

 

"그렇죠. 터널이 나오면 정상이죠."

 

몽골을 비롯하여 산을 넘는 도로에 터널이 없는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니 한국의 수많은 터널에 대해 무감각해졌나 보다. 

 

지하수를 끌어 쓴다는 주유소의 수돗물을 온몸에 끼얹으니 상의 위로 하얗게 내려앉은 소금기가 씻겨 내려간다.

 

"아, 시원해."

 

"가 봅시다. 혹시나 내가 광치령을 원킬로 올라가면 다음에 속초 라이딩이 있을 때 주유소에 들러서 그 남자가 광치령을 한 번에 올라갔다고 전해주세요."

 

무거운 자전거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없다는 남자의 쓸데없는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주유소를 출발하자 나지막한 경사로 시작된 오르막은 경사도를 더해가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속도가 나지 않는 페달링에 재희님은 멀찌감치 앞서가며 도로의 코너를 돌아갈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뒤따라 오는 나를 확인하고는 잠시 기다리며 광치령을 올라간다.

 

40여 분의 오르막이 끝나고 멀리 광치령의 정상인 터널이 보인다.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 무거워진 허벅지와 허리 그리고 꼬리뼈까지 욱신거리는 엉덩이의 통증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주유소 남자는 미시령을 안 가본 것이 확실해."

 

왼쪽 차선을 막고 내부 공사 중인 터널의 교통통제를 하는 작업자들이 신호가 있을 때까지 잠시 대기를 하라며 안내를 한다. 작업자의 신호에 따라 정차해 있던 4~5대의 차량들을 보내고 뒤따라 터널을 통과한다. 생각보다 긴 터널, 오르막을 오르느라 지쳐있던 터라 앞선 차량들이 터널을 모두 빠져나간 후로도 한참을 혼자서 터널을 내달려야만 했다.

 

 

멀리 터널을 빠져나간 재희님이 뒤를 돌아보면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내 내리막을 내려간다.

 

"아니 좀 쉬었다..."

 

터널을 빠져나와 갓길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려 하자 건너편 작업자가 빨리 지나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3~4대의 차량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서둘러 통제구간을 빠져나간다.

 

"당신들 때문에 차들이 기다리잖아요!"

 

정차되어 있는 차량들을 지나칠 때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치는 작업자의 소리가 들려온다. 작업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네네. 수고하세요!"

 

정확히 말하자면 터널 공사로 인해 차량들이 정차를 하고 있는 것이고, 나로 인해 1~2분의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이다. 자전거가 터널에 진입했다는 것도, 자전거가 차량보다 느리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짜증이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로 공사 구간을 지나쳤지만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을 표하지 않았다. 수십 미터가 정체되어 있는 현장에서도 덜컹거리는 노면의 느린 자전거 속도에 맞춰 뒤따라 오고, 안전하게 자전거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자전거로 인해 잠시 지체된 차량들의 운전자들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1~2분의 시간이 그렇게도 불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쓸데없이 여기까지 올라왔네' 생각하며 웃어주면 그만인 일일 텐데 말이다.

 

신경질적인 작업자에게 짜증 섞인 말대꾸 대신 성의 없는 인사로 싱긋 웃어주며 시원한 내리막을 달려 내려간다. 주유소 남자의 말처럼 12km 정도의 긴 내리막과 평지길은 원통까지 이어진다.

 

시원한 풍경의 북천을 따라 원통을 지나치고 미시령과 한계령이 갈라지는 한계 교차로를 향해서 간다.

 

"조금 쉬어요. 배고프다."

 

잠시 그늘에 앉아 미시령을 오르기 전 허기를 채울 식당을 찾는다.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

 

원통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은 라이딩 시간이 느려지면서 식사 타임을 놓치고, 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주변에는 식당이 없다.

 

"왜 식당들은 죄다 반대편에만 있는 거야."

 

한계 교차로의 내설악 휴게소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출발을 한다. 하지만 이내 설악휴게소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휴게소로 들어간다.

 

너무나 한산한 휴게소의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살펴보던 중 도토리묵사발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많이 주세요. 시원하게요!"

 

밥을 먹으며 재희님이 돌아갈 속초-춘천 간 고속버스의 시간을 알아보니 마지막 고속버스의 출발 시간이 8시 반이다.

 

"지금이 4시 반, 미시령 입구까지 20km 정도고 미시령에서 속초까지 20km. 빨리 가도 4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가도 8시 반의 막차는 탈 수 없을 것 같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가자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다.

 

"얼마나 여행을 하셨어요?"

 

"집 나온 지 한 500일 됐어요." 

 

"그럼, 미시령으로 가 볼까요."

 

용대리로 가는 미시령 옛길은 속초구간 중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다.

 

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고원통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조용하고 아늑한 옛길의 정취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당일치기로 속초 라이딩을 함께 한 재희님을 위해서는 몇 분이라도 빨리 속초에 도착해야 하지만 예상되는 시간은 자꾸만 뒤로 멀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옛길이 끝나고 미시령 초입까지 이어지는 용대리의 46번 국도는 최악으로 끔찍한 코스다.

 

대부분 맞바람이 불어오는 지루한 국도변의 라이딩은 무거워진 페달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느린 속도에 맞춰 뒤따라 오던 재희님은 졸리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가고 있는데 졸리다뇨?"

 

최대한 로드바이크의 속도를 줄이지 않게 하려 페달을 밟아가는 나에게도, 하루 종일 느린 자전거에 맞춰 라이딩을 하는 재희님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동행이다. 

 

"세상 일이 다 그래.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함께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너와 나도 그랬겠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의 크기보다 속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6시 40분. 지루한 용대리의 도로가 끝나고 미시령 옛길의 초입에 도착한다.

 

"아,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야."

 

수돗물을 온몸에 끼얹고 잠시 쉬어간다.

 

"출발하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정상까지 쭉 올라가세요. 천천히 따라 갈게요."

 

여행용 자전거를 끌고 미시령을 넘었던 재작년의 일기를 찾아보니 미시령 정상까지 40여 분이 걸린 것 같다. 

 

20여 분의 휴식을 끝내고 미시령을 오른다. 재희님은 출발과 함께 댄싱을 치며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부럽다." 

 

지난 일기에는 정상 1Km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자전거를 내렸다고 적혀있다.

 

"정상 1Km 지점까지만 소처럼 가 보자."

 

무거워진 느린 페달링으로 1km 이정표를 지나고 2~300미터쯤 더 지났을 때 자전거에서 내린다.

 

"왜 항상 미시령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만 넘는 거야."

 

10미터쯤 자전거를 끌고 가다 끄는 것이 더 힘들어 다시 안장에 오른다.

 

"아주 몇 번 더 오면 원킬하겠어. 그냥!"

 

새로 정비가 된 미시령의 정상에 재희님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고, 지난번과 비슷하게 40여 분이 지나서 정상에 도착한다.

 

"이번에도 일몰이네."

 

잠시 석양을 바라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태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야! 기다려."

 

"에쒸!"

 

 

휴게소가 있던 자리는 전망대로 새롭게 정비가 되어있다.

 

반대편과 달리 속초 방향의 하늘에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석양이 내려앉아 있다.

 

"좋네."

 

 

바람막이를 챙겨 입고 속초를 향해 내려간다.

 

"무조건 안전하게 조심해서 내려가요."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된 여행용 자전거지만 여행용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나 슈가 빨리 마모되는 탓에 교체 시기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고, 내리막 도로에서 속도를 내다보면 무게 때문에 브레이킹이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있다.

 

또한 급회전 시 패니어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고, 피로 데미지가 누적된 렉이나 스포크는 언제든 부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브레이킹을 해가며 제어 가능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시원한 내리막을 달려 울산바위 휴게소에 도착하자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후미등과 라이트를 장착하고 속초해변을 향해서 이동한다.

 

8시 40분. 목적지였던 속초해변에 도착한다. 해변의 입구에는 코로나 방역을 위한 소독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담당자들이 출입통제를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도 돼요?"

 

"텐트 치시려고요?"

 

"아니요. 사진만 찍으려고요."

 

버프를 올려 쓰고 잠시 해변 입구로 들어간다.

 

"왔다!"

 

주변 편의점에 들러 커피와 맥주로 속초 입성을 자축한다.

 

"근데 재희님, 버스가 없어서 어떻게 해요?"

 

재희님은 근처의 카페나 해변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가겠다고 한다. 아무리 로드바이크를 타고 왔지만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온 지친 몸으로 밤을 새운다는 것이 좋지 않은 생각 같다.

 

"저는 너무 힘들어서 숙소를 잡고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재희님도 그렇게 하시죠?"

 

속초 해변에는 국민여가 캠핑장이 지정되어 있지만 방역관리를 하고 있는 해변의 야영장에서 캠핑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광치령과 미시령을 넘어 100km 넘게 달려온 터라 야영보다는 편하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여기 리조텔 같은 것이 있는데 저렴해요. 더블룸이나 큰 방을 잡아서 같이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방 두 개를 잡던지요."

 

재희님은 자신은 카페 같은 곳에서 보내면 된다며 숙소를 잡고 쉬라고 한다.

 

지난번 여행처럼 해변의 리조텔 입구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호객을 하고 있다.

 

"얼마예요?"

 

"두 명에 5만원요."

 

"혼자 잘 건데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중년의 여자와 35,000원에 숙박비를 협상하고 넓은 리조트 방에 자전거를 넣어둔다.

 

9시가 넘으면 음식점들의 영업이 끝나는 속초해변, 지난번에도 실패한 생선구이집은 이번에도 문이 닫혀있고 아바이 순댓국집도 영업이 끝났다고 한다. 재희님과 투다리, 옛날통닭집에서 반주와 함께 저녁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정말 괜찮겠어요?"

 

한두 차례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본 후 타인의 의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이지만 쌀쌀한 바닷가에서 밤을 새운다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어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럼 껌이라도 사요. 껌 사줄게요."

 

하루 종일 고된 동행길을 함께 해준 재희님에게 속초껌으로 감사함을 대신하고.

 

"혹시 너무 힘들면 들어오세요."

 

숙소에 들어가 바로 침대 위로 쓰러진다.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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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576~577일 / 맑음 ・ 29도
춘천-홍천
이틀간 춘천 여행, 크리티컬 매스가 진행되는 토요일에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카일라스 형님을 만나기 위해 홍천으로 간다.


이동거리
52Km
누적거리
26,643Km
이동시간
6시간 44분
누적시간
2,001시간

 
5번국도
 
444번도로
 
 
 
 
 
 
 
30Km / 2시간 35분
 
22Km / 4시간 11분
 
춘천
 
홍천
 
도광터
 
 
244Km
 

 

 

"아, 소주 칵테일!"

 

현기가 만든 소주 칵테일과 함께 끊이지 않는 대화의 시간은 즐거움이 충만하지만 다음날의 무거운 피로감과 숙취를 남겨놓는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카일라스 형님을 만나기 위해 홍천으로 떠난다. 현기가 추천했던 순대국집에서 해장과 함께 점심을 해결한다.

 

"5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거지. 든든하게 먹고!"

 

홍천으로 가기 위해 5번 국도를 따라 이동한다. 화창한 여름날의 무더위가 느껴지는 날씨다.

도로는 이내 350미터의 원창고개로 향하는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조금씩 무거워지는 페달링, 거칠어지는 호흡 그리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고무 신발은 자꾸만 미끈거리며 페달링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아쿠아 신발을 샀어야 했는데."

그리 높지 않은 원창 고개지만 경사도가 가파른 것인지 아니면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고개를 오르는 길이 꽤나 힘이 든다.

"신발이 아니고 체중이 문제인가?"

 

귀국 후 자가격리를 거치고 여행 중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다 보니 20Kg이나 증가한 체중이 부담스럽다.

 

원창고개를 넘고 다시 두 번째 고개인 모래재를 오른다. 원창고개를 넘으며 숨이 트이고 근육이 풀렸는지 조금은 수월한 기분이다.

"아, 진짜 강원도!"

세 번째 부사원 고개를 넘기 전 도로변 그늘에 의자를 펴고 다시 쉬어간다.

"지친다. 지쳐!"

350미터 3개의 고개를 넘고 홍천강을 건너 홍천의 경계에 들어선다.

"조용한 동네네."

도광터로 가는 444번 국도로 가기 위해 홍천강을 따라가는 동안 갈증이 밀려온다. 작은 슈퍼에서 얼음 커피를 마셔보지만 한낮의 뜨거운 더위는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도광터까지 아직도 고개가 2개나 남았는데."

홍천읍을 벗어나는 오룡산의 첫 번째 고개를 넘고 아래로 내려가는 달콤함도 잠시 뿐이다. 홍천읍 동면을 지나쳐 가는 길은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형님, 한 10km 정도 남았어요. 막걸리 한 통 받아 갈까요?"

"좋지요!"

도광터가 자리 잡은 공작산을 오르기 전 마을의 슈퍼에서 막걸리 두 통을 산다.

"갈수록 수납 능력이 다양해진다."

커다란 두 통의 막걸리 때문에 무거운 자전거가 더 무거워진다. 700미터가 넘는 공작산을 오르기 전 초입에서 큰 숨을 쉬어보고.

오늘의 마지막 고개를 오른다.

"오늘 몇 미터를 오른 거야?"

500미터가 조금 넘는 공작산 도로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도로 구불구불 휘어진다. 흘러내리는 땀과 미끌거리는 신발 작은 날벌레들이 정신없이 달라붙는다.

손뼉을 치며 시야를 가리는 날벌레들을 잡아보지만 수없이 잡아도 그 수는 줄지 않는 느낌이다. 채 열 걸음을 떼기도 힘든 경사도의 도로다.

"아놔, 이 길은 대체 뭐야!"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고 공작산의 정상에 이른다. 소나기와 같은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진다.

다시 급경사로 떨어지는 고개를 잠시 내려오자 도광터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가 나타난다.

"얼추 여기인 것 같은데."

"형님, 저 왔어요?"

"갈가에 있는 우편함, 그 길로 올라와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제멋대로의 자갈들로 더욱 가팔라진다. 오는 길에 5개의 고개를 넘는 동안 이미 근육들이 풀려버린 다리는 땀으로 미끌리는 신발을 이겨내지 못한다.

"형님, 도와주세요!"

인가의 실루엣이 나뭇잎 사이로 보일 때쯤 뒤로 밀려가는 자전거를 부여잡고 소리를 친다.

 

"형님!"

카일라스 형님은 친근한 목소리와 함께 반갑게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자전거를 밀어준 덕에 겨우 도광터의 집으로 들어온다.

자전거는 콩을 쑤는 가마솥이 놓인 곳에 넣어두고.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물을 온몸에 끼얹는다.

"아, 살 것 같다."

10년 전 자전거 샵을 처음 오픈했을 무렵 기어 속선을 사러 온 낯선 자전거 여행자의 모습으로 처음 마주한 형님은 홍천의 도광터에 자리를 잡고 일산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다 정년 퇴임과 함께 교편을 내려놓은 후 이곳에 정착을 한 모양이다.

전국을 여행하던 중 시골의 노인에게 막장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도광터에서 막장을 담그며 자전거를 타고 글을 쓰며 생활을 한다.

"여기가 화장실."

쇠똥구리 같은 작은 딱정벌레들이 꼼지락거리며 돌아다니는 화장실이 이상하게 친숙하다.

직접 담근 막장으로 만든 된장국과 물김치 하나가 전부인 밥상이지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풍족한 저녁이다.

막걸리 한 잔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어둠이 일찍 내려앉는 산속의 밤이 깊어간다.

따듯하게 불을 넣어둔 작은 방에서 피로가 쌓인 몸을 뉘인다.

"산골 냄새, 좋다!"



11시, 정오 가까이 늦잠을 자고 일어난다. 맑고 더운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지만 산속의 바람은 시원하다.

"마음에 들면 신고 가요."

정말 오랜만에 신어보는 검정 고무신의 매끈함이 좋다.

막장이 익어가는 장독대와 굵은 자갈과 돌들을 고르고 정성스레 일궈놓은 텃밭,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연못들을 둘러보는 사이 형님은 예초기를 들고 집 주변의 풀들을 제거하고, 새로 지을 가마터에 사용할 커다란 기둥들을 끌고 내려온다.

느릿한 산골의 삶이지만 부지런해야 즐길 수 있는 모양이다.

"이곳의 산속의 삶이 좋아."

"형님, 저는 바다가 있어야 해요."

"숲 속의 적막함 보다는 바다의 쓸쓸함이 좋아요."

공간의 숲과 시간의 바다,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품고 간직한 공간의 숲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스쳐가는 시간의 바다다.

"간직해야 할 것들은 기억하며 내 안을 들여다보는 평온함보다 지나치고, 버려지고, 완전하지 못할 시간들에 아파하는 것이 어울리나 봐요."

"이제는 모두 버려버려서 간직해야 할, 지켜야 할 무언가가 더는 없어요. 텅 비어버린 껍데기 같아요."

조용한, 아주 조용한 산골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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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5일 / 맑음 ・ 28도
춘천
춘천에서의 하루, 자전거 춘천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이동거리
31Km
누적거리
26,591Km
이동시간
2시간 25분
누적시간
1,994시간

 
중도길
 
뒷풀이
 
 
 
 
 
 
 
9Km / 35분
 
22Km / 1시간 50분
 
거두리
 
중도
 
거두리
 
 
192Km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숙취가 무겁다. 점심 냉면으로 속을 달래고 다시 침대에서 누워 낮잠을 잔다.

 

"재희 누나가 막국수를 사 준다고 하는데요. 자전거 타러 가실래요?"

 

바람이 시원한 늦은 오후의 춘천, 공지천을 따라 춘천 시내를 가로지르고 의암호를 넘어 중도로 간다. 

 

도착한 중도의 공원에는 5명 정도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유쾌함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네."

사람들과 함께 시원한 풍경과 바람의 중도를 달린다.

"자전거면 충분하다."

생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는 자전거 춘천의 회원들은 편안한 복장과 마인드로 자전거를 즐긴다.

먹기로 한 막국수는 없다. 현기를 따라 카페 소락재에서 열리는 회의 미팅에 얼떨결에 참석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으나 자전거를 주제로 지역 사회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는 모양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나눔의 모습을 구경하고, 회의가 끝난 후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 한다. 정말 다양한 직업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토요일에 열리는 춘천 크리티컬 매스에 함께해요?"

"제가요?"

"크리티컬 매스에 참여하고, 떠나실 때 저희가 배웅해 줄게요."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뒤풀이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현기가 준 새 태극기를 달고, 헌 태극기는 기념으로 챙겨놓는다.

"그동안 수고했다."

다시 춘천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니 현기와 사진을 찍고.

현기를 만나러 온 춘천에서 생각지 못했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땡큐, 현기."

이제 홍천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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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4일 / 맑음 ・ 28도
춘천
같은 시기 자전거 세계여행을 했던 현기님을 만난다. 생각해 보니 춘천을 처음 여행하는 것 같다.


이동거리
24Km
누적거리
26,560Km
이동시간
2시간 47분
누적시간
1,992시간

 
의암물레길
 
춘천순환로
 
 
 
 
 
 
 
16Km / 1시간 45분
 
8Km / 1시간 02분
 
의암호
 
고릴라
 
거두리
 
 
161Km
 

 

평온한 의암호의 아침, 잔잔한 의암호에 나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잠을 떨쳐낸다.

 

"여기에 곧 헬리콥터가 옵니다. 바람이 강하니까 텐트가 날아가지 않게 해 주세요."

 

"헬리콥터요? 언제 오는데요?"

 

공사장의 관리자가 다가와 9시에 헬리콥터가 공터에 착륙한다고 안내를 한다. 많은 작업자들이 공터에 물을 뿌리며 헬리콥터 창륙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아니, 이른 시간에 누가 오는 거야?"

 

9시까지 30여 분이 남은 시간, 한가롭던 아침의 여유는 난데없는 헬리콥터의 착륙으로 어수선하니 바빠진다. 서둘러 텐트를 정리하고 춘천 시내 방향으로 이동한다.

 

강변의 나무테크 자전거길에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 동안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현기님은 왜 답이 없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집의 주소를 물어보는 메시지에 답이 없다.

춘천시의 초입에 들어서자 강변에 시원한 공원이 있다. 아마도 어제저녁 만났던 아저씨가 말한 좋은 캠핑자리가 있다는 공원이 아닐까 싶다.

공원의 편의점으로 가서 얼음 커피를 사 마시고, 낡아서 찢어진 은박매트를 버린다.

"고무 밧줄을 샀으면 좋겠는데."

주변의 삼천리 매장을 검색하다 양평 해장국집이 있어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간다.

수변에 그늘이 없는 공지천의 자전거 도로가 뜨겁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는데 현기님은 아직 메시지가 없다.

"캠핑 의자나 사러 가자."

점심을 먹는 동안 캠핑 매장을 검색하니 춘천시 외곽에 고릴라 캠핑 용품점이 있다.

의암호 주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소양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소양강 처녀?"

자전거를 타고 춘천은 처음 방문하는 곳인데 이상하게 의암호 가운데 세워진 소양강 처녀상이 눈에 익는다.

"버스를 타고 지나쳤나? 예전 전국일주 중에 지나쳤나?"

카시아에게 사진을 보내니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뭔가 답변이 난감하다.

"그냥 노래에 나오는 소녀야. 별 의미는 없어."

카시아에게 답장을 하고 나니 별 의미 없는 처녀상을 저리도 크게 세워놓았는지 의문이다.

시의 외곽에 있는 골릴라 캠핑 용품점에 도착한다. 시원한 매장으로 들어가니 땀을 식혀주는 에어컨의 냉기보다 각종 캠핑 장비들을 보는 행복감이 더 하다.

이것저것 욕심나는 아이템들이 많지만 모두를 자전거에 싣고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외부에 전시된 캠핑 의자 중 가장 가볍고 저렴한 의자를 선택한다. 보랏빛 밋밋한 색상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벼운 무게와 저렴한 가격이 꽤 마음에 든다.

의자를 사서 조립을 하며 테스트를 하고 있으니 현기님에게 메시지가 온다. 현기님의 집은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가까운 거두리, 춘천의 정반대 편이다.

춘천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빙돌아가는 길을 벗어나 시내를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내 가운데 언덕들이 페달링을 괴롭힌다.

"쪼매한 시내에 뭔 고개들이 이렇게 높아?"

더운 날씨 때문인지 쉽게 지쳐가는 기분이다. 현기님이 알려준 주소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고 마중 나온 현기님을 만난다.

곱게 기른 머리를 묶은 모습이 낯설지 않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여행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월터와 알렉스라는 여행자 친구들을 각기 만나고 함께 공유한 인연이 친숙한 느낌을 갖게 한다.

시원한 샤워를 하고, 현기님의 사진을 카시아에게 보내준다. 10년 전 유럽을 자전거 여행하며 카시아의 집에서 웜샤워를 했던 현기의 모습을 몰라본다.

"친구의 집에 갔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야?"

"..."

현기님은 컴퓨터에서 아주 오래된 사진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주고, 카시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니 카시아 그제야 현기님의 모습을 알아본다.

"역변한 것도 아닌데, 몰라보네."

"아 춘천에 춘자가 있지!"

함께 자전거 이야기를 하던 중 현기님의 지인들 중 춘자에서 활동하는 화원이 있다고 하여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다.

집 근처의 닭갈비 집으로 간다. 이제는 워낙 유명한 전국구 음식이라 특별히 서울의 닭갈비와 다르지 않지만 현지의 맛이니 그냥 기분이다.

춘자에서 활동한다는 두 명의 지인들이 차례로 도착하고 인사를 한다.

"춘자가 아니고 자전거 춘천이야."

닭갈비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온 재희님과 선우는 생활자전거 타기 캠페인 같은 것을 하는 자전거 춘천의 회원이다.

현기의 착각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지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사람들이다.

닭갈비로 저녁을 먹고, 맥주집에서 자전거 이야기를 나눈 후 현기의 집에서 맥주와 소주 칵테일과 함께 대화를 이어간다.

크리티컬 매스, 사회적 협동조합 등등의 춘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전거 관련 일들에 대해 긴 대화가 이어진다.

즐거운 술자리가 끝나고, 카시아는 알렉스의 집에 찾아온 게스트의 소식을 전해준다.

"아, 어지러워."

즐거운 만남과 대화의 술자리에 취기가 몰려온다.

뭔가 즐거운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춘천이다.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573일 / 맑음 ・ 28도
청평-강촌-춘천
어쨌든 여행을 떠나오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이동거리
42Km
누적거리
26,537Km
이동시간
4시간 0분
누적시간
1,989시간

 
북한강자전거길
 
의암물레길
 
 
 
 
 
 
 
18Km / 1시간 30분
 
24Km / 2시간 30분
 
청평
 
강촌
 
춘천
 
 
137Km
 

 

햇볕과 바람, 날이 밝아오는 아침의 느낌이 좋다. 춘천까지 멀지 않은 거리, 청평에서 하루를 더 있어도 괜찮고 춘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디까지 가 볼까?"

 

강으로 나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물이 참 맑다. 여행을 출발하며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다.

빠르게 올라가는 기온의 텁텁함이 느껴진다. 이내 뙤약볕으로 변할 캠핑 자리를 정리하고 청평 시장을 아침을 먹으러 간다.

5일 장의 청평 시장은 장날리 아니라 아쉽다. 썰렁한 시장 골목에 아침 식사가 되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시골 재래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특별함은 없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것으로 만족한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던 자전거 도로는 가평에 이르기까지 꽤나 지루한 느낌이다.

지방 도로와 농로, 하천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평에 들어서고.

가평 대교를 넘으며 넓은 경기도의 경계를 벗어난다.

강촌을 향해서 간다. 여전히 지루한 풍경과 더 지루한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으로 이어지는 대학 MT의 장소들, 봄과 가을이면 이곳으로 MT를 왔지만 이제는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없다.

강변을 따라 스상 스키나 바나나보트 같은 레저 펜션만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요즘 대학생들도 MT를 가나?"

그 때에 비하면 교통수단이나 도로의 환경이 좋아져 속초나 강릉, 제주도 같은 바다로 갈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구석기시대의 문화처럼 사라졌을 것도 같기도 하고 그렇다.

생각해보면 청량리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낡은 새마을호와 버스를 갈아타며 사람, 시간, 교통체증에 녹초가 되도록 지쳐가며 이곳까지 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고작 밤새 술을 마시고, 널부러진 빈 병들과 담배꽁초 사이에 제멋대로 뒤엉켜 잠들고, 쓰린 속을 달래려 남은 음식들을 섞어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 전부인 하루였는데 말이다.

오래전 추억의 아련함보다 20대 시절의 알 수 없는 눅눅함이 먼저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스무 살, 그때인가 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강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B급 분위기의 거북한 이질감 같은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메뉴들을 고르다 즐비하게 들어선 막국수집 대신 짬뽕집을 선택한다. 꽤나 만족스러운 맛이지만 수북하게 쌓아 올린 홍합 껍데기를 고르는 것이 귀찮다.

현기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내일 춘천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춘천까지 멀지않은 거리, 더운 날씨에 강촌에서 캠핑을 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두었던 다리 밑 강변의 공터는 뙤약볕이 쏟아지는 장소다. 그늘막을 치고 쉬고있는 바이크족과 차박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는 조용할 것 같지가 않다.

다리를 건너 춘천으로 향하며 적당한 장소를 찾기로 하고, 두 번째로 검색해둔 장소는 시원하지만 너무 외지고 음산하다.

"몰라, 쉬었다 가자."

다리밑 그늘에 슬립핑 매트를 깔고 자리에 누워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의암댐을 건너고 춘천으로 간다.

청평이나 강촌의 강변을 생각하며 적당한 야영지가 많을 것으로 여겼는데, 의암댐으로 막혀있는 춘천은 강변이 아니고 커다란 호수다.

"망했어!"

생뚱맞게 세워진 인어공주 조각상을 지나 작은 언덕을 오른다.

언덕 정상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도로의 내리막길 반대편 호수 방향으로 묘한 나무테크길이 눈에 들어온다.

"뭐지?"

지도앱을 실행시켜 길의 경로를 검색하고 있으니 자전거를 탄 부녀가 나무테크 길로 들어간다.

"오, 호수 둘레길!"

의암호의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진 둘레길인 의암호의 물레길, '타닥타닥' 밟아가는 소리가 좋은 나무테크 길을 따라가니 대규모의 체육 시설들이 들어선 공원이 나온다.

깔끔하게 정비된 공원의 잔디밭과 정자들 그리고 깨끗한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공원에서 그늘막을 치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아, 오늘도 삼겹살 냄새. 그런데 공원에 캠핑이 가능한가?"

일단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다리와 팔을 씻고 넓은 정자에 누워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공원은 한적한 편이지만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 자동차들이 지나다닌다.

"캠핑이 가능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공원 시설 내에서 취사와 야영을 금한다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좋긴 한데 굳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네."

해는 떨어졌지만 공원에서 야영을 할 계획을 바꾸고 다시 야영 장소를 찾아 춘천 방향으로 들어간다.

다시 의암호의 물레길을 따라가고, 한 중년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며 다가와 말을 건넨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남자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는 조금만 더 가면 괜찮은 공원이 있다고 한다.

"캠핑해도 돼요?"

"아마도, 화장실도 있고 괜찮아요."

남자와 대화를 하던 중 캠핑카들과 대형텐트가 설치된 커다란 공터가 나타난다.

"여기 캠핑장인가요? 무료예요?"

"아니요. 케이블카 공사장인데 공터에 캠핑을 하는 거예요."

"여기서 캠핑할게요."

"조금만 더 가면 좋은 곳이 있는데. 화장실도 있고."

"괜찮아요."

남자가 말하는 공원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고, 어둠이 내려앉았고,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를 발견한 터라 그냥 공사장의 공터에서 캠핑을 하기로 한다.

주변의 캠핑카에서 통기타 소리와 함께 오래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가요와 올드 팝송을 연이어 부르는 중저음의 목소리, 남자의 연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공터의 풀밭에 텐트를 펼치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끈적해. 샤워가 하고싶다."

내일 일찍 현기님 집으로 찾아가야겠다.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572일 / 맑음 ・ 27도
양평-청평
춘천으로 향한다. 웜샤워의 호스트 현기님의 일정에 맞춰 천천히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간다.


이동거리
29Km
누적거리
26,494Km
이동시간
2시간 23분
누적시간
1,985시간

 
북한강자전거길
 
북한강자전거길
 
 
 
 
 
 
 
20Km / 1시간 33분
 
9Km / 50분
 
양평
 
대성리
 
청평
 
 
95Km
 

 

빠르게 올라가는 텐트의 온도, 여름을 알리는 화창한 날씨다.

 

월요일에 집이 비는 현기님의 일정, 아주 천천히 춘천으로 가야 한다.

"뭔가 흥도 안 나고, 청평까지만 가자."

그동안 비가 내리며 선선했던 날씨는 여름날의 무더위를 향해 가파르게 기온이 올라간다.

쉼터 이외에 딱히 그늘이 없는 자전거 도로의 라이딩이 뜨겁다.

"얼음 커피가 최고네."

뜨끈하게 달궈진 안장에 오르는 기분은 정말 최악이다. 그럼에도 햇볕을 피해 그늘에 자전거를 놓아두지 않는 게으름은 바뀌지가 않는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페달을 밟는 사이 대성리에 도착한다.

대성리 초입, 낚시꾼들이 만들어 놓은 강변의 야영지에서 캠핑을 할까 고민을 한다.

"물이 깊어서 마음에 안 든다. 가자!"

강변으로 힘들게 끌고 내려간 자전거를 다시 끌고 올라온다.

생각없이 다시 페달을 밟고 청평읍에 가까워지며 강은 작은 하천처럼 낮아진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는 라이딩은 편하지만 특별한 재미가 없다.

다리 밑 그늘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 중년의 여자들이 보인다.

"흠, 삼겹살 냄새."

사람들을 지나치고, 청평대교 밑에도 여러 개의 텐트와 함께 강변에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여기는 뭔가 복잡해서 싫다."

슈퍼에 들러 맥주와 쥐포, 음료수 등을 사서 사람들이 삼겹살을 굽고 있던 다리 밑으로 되돌아 온다.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아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여자들의 끝없는 수다가 이어진다.

식욕을 돋우는 삼겹살 냄새가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모임 자리가 끝나면 다리 밑의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으니 참아야 한다.

해의 기울어짐에 따라 그늘이 움직이는 시각, 자리를 옮겨가며 그늘에 슬립핑 매트만을 깔고 누워 해가 지기를 그리고 삼겹살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멀리 강가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다슬기를 잡나?"

슈퍼마켓에서 사 온 맥주와 음료수는 물속에 넣어둔다.

"아저씨 뭐하세요?"

줄낚시를 이용해 작은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남자는 오전에 잡아 말려둔 물고기를 고양이들이 모두 물고 갔다며 투덜거린다. 

"물이 참 맑다."

삼겹살 모임이 끝나고 이쁜이라 불리던 막내 아줌마를 비롯하여 모두가 다리 밑을 떠나고 평온한 평화가 찾아든다.

다리가 만든 그늘은 어느새 주변의 산들이 만드는 넓은 그늘로 바뀐다.

텐트를 펼치고 자리에 누워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오늘 저녁은 감자라면!"

라이딩 거리가 짧아 오는 동안 점심을 거른 탓인지 감자라면 두 개와 햇반 하나를 비우고서 저녁식사가 끝이 난다.

뜨락 누나가 챙겨준 오이소박이가 있어서 제법 맛있는 저녁이다.

"내일 여기서 하루 더 있을까, 강촌까지 갈까?"

춘천까지 가까운 거리라 라이딩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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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1일 / 맑음 ・ 28도
고양-서울-구리-양평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중단된 여행, 귀국과 자가격리 그리고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던 알 수 없는 힘겨움이었다. 다시 떠나야 한다.


이동거리
66Km
누적거리
26,465Km
이동시간
5시간 13분
누적시간
1,982시간

 
한강자전거길
 
한강자전거길
 
 
 
 
 
 
 
45Km / 3시간 30분
 
21Km / 1시간 43분
 
고양
 
구리
 
양평
 
 
66Km
 

 

게으른 아침이다. 어디론가 떠나야 하지만 마음의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국 후 조금씩 쌓여가던 무력감과 텅 비어있는 공허한 감정들을 덜어내고 싶다.

 

"가야 해! 무언가를 채워야 해!"

 

점심으로 능곡시장의 장터국밥을 먹고.

시장에 들러 에릭스형이 추천한 고무 신발을 산다.

버너의 휘발유를 사기 위해 능곡 SK 주유소에 찾아간다.

"휘발유 주세요."

"통이 작아서 못 넣어요."

"전에도 여기서 넣었는데, 저예요!"

1년 반 만에 만난 아저씨는 자세히 얼굴을 살핀 후에야 나를 알아본다.

"어, 잘 다녀오셨어요?"

"네, 그러니까 휘발유 주세요."

"대충 준비가 끝난 거지!"

늦은 출발이지만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편하기도 하고, 목적지가 없다는 것이 뭔가 기운 빠지는 느낌도 든다.

"가자, 어디든 가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넉넉하게 발이 편했던 고무신발은 페달링이 계속되자 땀이 차서 미끌거린다.

"아놔, 이거 하자네."

고무신발을 사고 그동안 신던 낡은 운동화를 버린 뒤라 다른 대안이 없다. 당분간 적응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여름용 아쿠아 신발을 사야겠다.

"근데 정말 덥다."

"멀리 가기도 귀찮고 양평까지만 가자."

경쾌함이 없는 페달링이 이어진다.

"어디로 가지?"

뭔가 답답하고 지루한 여행의 시작이다.

구리의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일단, 현기님을 만나러 춘천으로 가자."

함께 동행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같은 시기에 자전거 여행을 하며 메시지를 주고받던 현기님을 만나러 간다.

비슷한 경험을 한 여행자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들을 하다 보면 이유모를 답답함도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팔당에 들어서며 허기가 밀려온다.

현기님에게 메시를 보내며 춘천을 향하는 것을 알린다.

"저 서울에 있는데 내일 춘천으로 가요. 그런데 동생이 주말에 집으로 와서 다음 주 초에 오시면 집에서 쉬실 수 있어요."

"그럼 오늘은 양평까지만."

"벌써 출발하신 거예요?"

미리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 상관없다.

"알아서 잘 갈게요."

팔당면에 도착하고 첫 번째로 보이는 초계 국수집으로 들어간다. 여행하는 동안 현지에서 유명한 음식들을 많이 먹어볼 생각이다.

차가운 얼음 육수가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뭐, 소문대로 꽤 괜찮네!"

국수집의 주차관리를 하는 남자에게 자전거 도로변에 캠핑을 할만한 곳이 있는지 물으니 시골이라 딱히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한다.

"그냥 가게 옆에 텐트를 치세요."

국수집의 측면에 있는 휴식 공간에 텐트를 치라며 흥쾌한 제안을 한다.

"화장실도 있고, 아침 8시에 영업을 시작하니까 그때까지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가다가 야영장소를 못 찾으면 돌아올게요."

"네, 그러세요."

마땅한 야영지를 찾으며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고, 남한강길과 북한강길이 나뉘는 양평의 갈림길에 야영지가 있을까 싶었지만 별다른 장소를 찾지 못하고 북한강길로 들어선다.

계속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변에는 마음에 드는 장소가 없다.

"이대로 계속 도로만 이어지는 거냐?"

계속 길을 이어가는 것도 마땅치 않고, 자전거 도로변에는 특별하게 좋은 곳도 없을 것 같다.

천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시각, 자전거 도로변에 있는 넓은 쉼터의 공간에 자전거를 세운다.

"됐다. 여기까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정자 밑에 텐트를 펼치고.

"한국까지 와서 비를 맞기는 싫다."

지긋지긋하게 겨울비를 맞으며 여행한 탓에 비를 맞으며 라이딩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저녁 무렵 끝이 나고, 주말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야간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조용한 밤이다.

"나오니 좋기는 하네."

지금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떠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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