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3일 / 맑음 ・ 25도
토르트쿠두크-투르가이
연일 이어지는 바람이다. 아스타나를 향해서 달려간다.
환해진 텐트, 시계를 12시가 넘었는데 피곤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뭐지? 이 피곤함은?"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를 쉴 생각으로 다시 잠이 든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했는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계속되고, 말이나 소가 화물차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다.
2시가 넘어가는데 텐트 안은 생각보다 환하지 않고, 여전히 몸이 무겁다.
"그늘이 졌나? 날이 안 좋은가? 근데 왜 이렇게 힘들지?"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까맣다.
"뭐야? 새벽이잖아!"
잠결에 시계를 확인하며 정오가 넘은 시간으로 착각을 했다. 정류장에는 몇 대의 차량이 정차를 하고 잠을 자거나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몸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다행이네."
다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조금 뒤척이다 잠이 든다.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니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으로 쌀쌀한 느낌이다. 며칠 전 세메이에서 39도를 넘나들던 날씨가 어느새 10도 가까이 떨어지고 아침 기온은 12도밖에 되질 않는다.
"올해 여름은 이것으로 끝인가 보다."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펑크가 났던 뒷바퀴의 튜브를 예비 튜브로 교체한다.
"타이어를 교체할 때까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9시, 패니어를 정리하고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주저앉아 있다. 정비해 두었던 예비튜브의 펑크패치가 제대로 붙지 않은 모양이다.
펑크가 난 튜브를 다시 꺼내어 펑크패치를 붙이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도로를 따라 무거운 페달링을 해간다.
평속 8km 정도의 속도, 오늘도 꽤나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에쉬, 오늘도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오늘의 목적지는 100km 정도 떨어진 투르가이, 어제 타지 못한 20km 정도의 거리 때문에 투르가이까지 가더라도 아스타나까지 의 거리가 120km아 남는다.
"오늘은 100km를 갈 수 있으려나?"
한 시간이 넘도록 달렸지만 고작 10km만을 이동하고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아무래도 저 산을 넘어가는 모양이네."
"초원에 구름이 많은 날은 이제 무섭다."
어렵사리 첫 번째 산을 넘으며 바람의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 없고, 오히려 더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온다.
"답이 없다. 없어!"
세 시간이 지나 어제의 목적지였던 아크몰라의 주경계에 도착한다.
출출함과 함께 몸이 무거워지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주경계에 작은 식당이 하나 들어서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식당에서 난감한 메뉴 결정의 토론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을 먹어야 하나요? 추천을."
번역기로 해결을 해보려 해도 네트워크가 좋질 않아 사용할 수도 없고, 전에 먹었던 닭고기 바베큐 사진을 보여주니 그런 메뉴는 없다고 하고, 어제 식당에서 먹었던 고기국수 사진을 보여주니 메뉴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주세요! 국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붙잡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닭다리 구이 사진을 보여주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그럼 이것도 하나 줘요."
어제의 식당보다 정결하게 담긴 국수는 넓고 얇은 면의 색깔이 뽀얗게 이쁘고 국물도 시원하니 딱 좋다.
주유소 옆의 음식점보다 100텡게가 비싼 500텡게의 닭다리는 주유소 식당보다는 못하다.
개운한 국물의 고기국수를 먹는 동안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
"잠깐, 저건 밥인데!"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는 쟁반 위에 볶음밥 같은 것이 있다.
"투르가이까지 아무것도 없은데 든든하게 먹고 가자."
밥을 먹고 있는 손님을 가리키며 메뉴를 묻고 추가 주문을 하니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다.
몽골에서 먹었던 양고기 볶음밥과 비슷한 맛인데 잡내가 거의 없다. 깨끗하게 음식들을 비우고 사람들의 질문에 야간의 대화를 나눈 후 오후 라이딩을 시작한다.
1시가 넘은 시각, 투르가이까지 76km가 남았고 바람은 여전히 끔찍한 맞바람이다.
어제 만난 새 도로에서부터 세워져있던 이정표의 거리는 아스타나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것 같다.
"오늘 대충 130 정도까지 가면 끝인가."
"아고, 언제 다 가냐."
구름의 높이가 조금 다를 뿐 몽골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몰라. 놀면서 갈 거야."
"에잇, 신발!"
"넌 뭐, 무임승차냐?"
평평했던 도로는 작은 언덕들을 넘어가며 업다운을 반복하더니 오늘의 두 번째 산을 향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앞 기어를 떨어뜨리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바람만 없다면 힘들 것도 없는 높이와 거리이지만 2~3km 정도의 거리가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두 번째 산을 넘고 주변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지평선의 끝으로 산들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고 길게 이어지는 도로는 산들을 향해 업다운을 반복한다.
"하, 정말 지독하게 괴롭히는구나."
긴 오르막의 끝에서 차를 정차하고 기다리고 있는 커플을 만넌다. 쾌활한 성격의 여자와 무뚝뚝한 남자는 왠지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영어를 잘 하는 여자와 짧게 대화를 하는 동안 'Your Crazy'만을 반복하며 고개를 절로 흔들어대는 남자.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찍는 동안 아스타나에 도착하면 시내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여자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진다.
빵과 함께 작은 사과를 챙겨주며 길게 여행에 대한 응원을 해주고 떠난다.
30여 분 정도를 더 이동하고 도로변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하루 종일 괴롭히고 있는 바람이 저녁이 되어가며 조금 선선해지니 상쾌하게 느껴진다.
조금 전 남녀 커플이 챙겨준 빵과 사과로 출출함을 달래보고.
늘 그렇듯 사람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카자흐스탄으로 와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번갈아 가며 찍던 전과 달리 나는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대신 명함을 주고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으로 메시지가 오면 사진을 보내달라 부탁하고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오늘은 어디에서 마무리를 할까? 30km 정도 남았는데."
긴 오르막을 오르고 6시가 넘어가자 바람이 점차 사그라든다.
"달려!"
언더바를 잡고 분노의 질주를 시작한다.
적당히 사라진 더위와 평평해진 도로 그리고 땀을 식혀주는 미풍의 간지러움을 느끼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순식간에 20km가 사라지고.
토르가이로 들어가는 교차로에 도착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마을의 외곽을 돌아가는 도로의 갈림길.
이정표를 바라보면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친다.
"이젠,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해도 지나쳐버린 길을 되돌아갈 수도,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앞으로 가야 하고,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길이 더 많으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든 펼쳐진 길 위에서 진심을 다해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현재를 살아간다."
10km 정도를 달려 갈라졌던 도로는 다시 만난다.
도로변의 휴게소에 작은 음식점이 보이고.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한 시간 정도를 더 가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아스타나까지 123km 정도가 남았다.
카페 앞에서 숨을 돌리는 동안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밥이 있나요?"
전에 먹었던 볶음밥 사진을 보여줘도 없다는 응답을 한다.
"추천! 맛있는 것을 추천해 줘요!"
"마른!"
1,200텡게의 메뉴를 카자흐스탄 음식이라며 소개를 해준다.
"다른 것들보다 비싸네. 뭐지? 오케이! 주세요."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중년의 여자가 카운터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말고기인데 괜찮아?"
"말고기야? 말고기를 여기서 먹어볼 수 있네. 오케이!"
음식이 나오는 동안 식당의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묻고 허락을 받는다.
넓은 밀가루 면 위에 말고기의 수육이 올려져 있고, 말의 사골 국물이 한 그릇 담겨 나온다.
"말고기다!"
부드러운 면과 함께 수육을 함께 먹으니 아주 맛이 좋다.
"소와 비슷한데 뭔가가 다르네."
식사를 하은 동안 앞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계속해서 번역기를 들고 뭔가를 설명하며 웃는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야. 최고지."
옆을 보니 함께 온 사람은 밥으로 된 음식을 먹고 있다.
"밥 메뉴는 없다고 하더니."
아침에 먹으려고 남자의 메뉴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으니 번역기를 사용하던 남자가 손사래를 친다.
"이건 나쁜 음식이야. 이걸 먹으면 배 아파. 베쉬바르막을 먹어야지."
Бешбармак, 말고기를 베쉬바르막이라고 부르나 보다.
남자의 일행과 즐겁게 떠들고 그의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다.
알리나의 가족, 6명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갖은 남자는 텐트를 치는 동안 가스 버너를 가져와 커피를 끓여주겠다고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식당에서 타는 커피는 짜다는 이상한 설명을 들어 포기한 것이 마음에 쓰였나 보다.
알리나의 아빠는 떠나며 음식이 가득 담긴 상자를 놓고 웃으며 가버린다.
"아니, 이거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인사나 가격을 묻는 질문보다 정중하게 사양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깊이 잠이 든다.
"아스타나로 가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카자흐스탄(19.07.31~08.2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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