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일 / 비 ・ 13도
룽성 각족 자치현-퉁다오 둥족 자치현
퉁다오현까지 80km, 하지만 지도에 나오는 길들이 구불구불 수상하다. 험난한 하루가 예상되는 하루다.
"하필이면 가야 할 방향의 역풍이야."
심상치 않은 바람에 일기예보를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번개 아이콘이 가득이다.
"하다 하다 이제 번개 세트냐."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보니 설마 했던 펑크가 나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펑크가 나니 여행 전 여행용 슈발베 타이어로 교체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타이어 내부를 여러 차례 훑어보아도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은 없는데 어찌도 이리 부지런히 펑크가 나는지 모르겠다.
펑크패치를 붙이고 정비를 한 후 잠시 기다려 패니어를 올리니 그때서야 다시 바람이 빠져버린다.
"아, 정말!"
계림에서 정비해 놓은 예비 튜브를 꺼내어 교체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람을 넣고 기다린다.
"중국의 빵구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어."
다행히 바람이 빠지지 않는 타이어. 한 시간을 알뜰하게 날려버리고 10시가 가까워서야 출발을 한다.
어두운 하늘, 강한 바람과 함께 멀리 산으로부터 비구름이 내려앉는다.
오늘따라 가벼운 느낌의 페달링 하지만 불어오는 맞바람은 자전거를 그대로 멈춰 세워버린다.
앞서가는 우산을 단 오토바이는 날개가 달린 듯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다.
"비, 바람 그리고 산길. 번개까지 치면 완벽하겠네."
빈강(滨江)을 따라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길을 향한다.
고덕지도가 안내하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나 문제의 구불구불한 산길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아무리 봐도 시멘트 포장의 고된 산길이 될 것 같다. 잠시 망설임의 시간이 가고 페달을 밟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국도와 고됨이 예상되는 산길, 이런 불운한 선택의 딜레마가 다 있나. 못 먹어도 고다!"
하지만 산길의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고 채 5분을 가지 못하고 포기한다.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이 길만은 안되겠어. 좀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타고 가자."
초입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며 벽돌들을 쏟아낸 트럭이 아직도 뒤처리를 하고 있다.
중국의 작은 트럭들은 종종 화물들을 떨어뜨리고 다녀서 절대 뒤를 따라가면 안되는 것 같다.
청록빛의 빈강을 따라 이어지는 G321번 국도 역시 구불구불하지만 큰 오르막 없이 이어진다.
차가운 바람에 이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순간순간 변하는 날씨라서 우의를 챙겨 입지 않고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펑크로 인해 아침 식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뱃속에서 허기짐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식당은커녕 작은 슈퍼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저녁밥은 세 공기쯤은 먹어야 아침에도 든든한 건데."
새 집을 많이 지어 올리는 중국의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골재를 혼합하는 믹서기다.
마을조차 없는 길을 달리다 길가의 작은 슈퍼를 만난다.
간단하게 빵과 콜라를 6위안에 사서 출출함을 달래고.
재미있는 슈퍼의 추 저울. 간단한 것들은 가격 정찰제를 하면 편할 텐데 중국은 무엇이든 저울에 올려서 판다.
롱지에서부터 사람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어깨에 메고 짐바구니를 달고 다니는 방법이 아닌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다닌다.
중국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템들 중 하나인 의자들은 크기도, 만든 소재도, 모양도 다양하다. 조그마한 의자에 앉으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곳의 집들은 독특하게 옛 목조 건물들을 이층과 삼층에 올려 지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상한 창고처럼 보이는 최근의 벽돌집보다 멋있고 보기가 좋다.
빵을 먹고 얼마 안 가서 작은 시골 마을이 나온다. 어제 2시간 정도 라이딩 시간이 남았던 오후에 도착하려고 했던 피아오리전(瓢里镇)이다.
도로를 따라 돼지고기나 채소 등을 파는 노점들이 이어진다. 길가의 식당들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 조금 전 먹어둔 빵의 열량으로 충분하여 쉼 없이 지나친다.
"꼭 뭘 하고 나면 그 뒤에 필요했던 것이 나오더라. 뒤에 있을까 싶어 지나치면 아무것도 없고."
중국의 강들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찾아보기 꽤 어렵다. 생각보다 강을 건너는 다리들이 그렇게 많이 놓여있지 않아서 시골에는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운치는 있는데 말이지."
가끔씩 기와지붕이 올려진 중국의 독특한 다리들. 중국의 옛 건축물들, 다리나 집, 수로들을 보면 나름의 특색이 있고 자연과의 어울림이 좋아 감탄스럽다. 하지만 요즘 건축물은 그냥 우스꽝스럽다.
산골이라 그런지 옛 목조 가옥들이 많다. 이층 또는 삼층으로 지어진 목조 가옥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독특한 멋이 느껴진다.
"이게 유채꽃이지!"
석물(石物)이라는 비석이나 기념석으로 사용하는 멋들어진 돌들이 많이 놓여있고, 수석 같은 공예점이 많다. 돌이 유명한 동네인가 보다.
중국은 마을마다 대나무 마을, 돌 마을, 나무공예 마을 등등 컨셉이 확실하다.
돌 마을을 지나 계림 여행을 안내했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난다.
"고맙다. 멋진 광시성, 매력적인 계림이었다."
"중국의 집들은 한 일이 년에 걸쳐 짓는 것일까?"
온돌을 까는 것도 아니고 난방 시설도 없고, 상하수도나 전기배선이 복잡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짓다 만 집들이 많이 보인다. 주로 대나무와 향나무 같은 것을 짓는 집의 받침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좋은 풍경으로 길을 이어준 빈강도 한 컷.
할머니가 그녀보다 더 늙은 할머니와 길을 걷는다.
"부녀지간 아니면 고부지간일까."
G321번 국도를 벗어나 장가계까지 길을 이어줄 G209 국도의 산길이 시작된다.
조금씩 경사를 더하며 오르고 광시성을 벗어나 다시 후난성의 경계에 들어선다.
마을의 멋진 초입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고 반대편의 코너를 돌아 사이클을 탄 남자가 내려온다.
"짜요!"
잠깐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응원의 말을 던지고 지나간다. 넓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만난 라이더다.
남자가 내려온 코너를 돌자 검은 개가 자전거의 길을 막고 사납게 짖어댄다.
길을 막고 따라 올라오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대더니 서둘러 속도를 내는 더욱 거세게 따라붙으며 리어 패니어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저리 안 가. 광견병 접종은 안 했단 말야!"
개의 눈을 계속 바라보며 오르막에서 속도를 내어 있는 힘껏 페달을 밟으니 20미터쯤 쫓아오다 돌아간다.
"빌어먹을 개새끼!"
오르막에서 힘을 쓰다 보니 순식간에 기진맥진이다.
중국의 개들은 못 먹어인지 삐쩍 마른 것들이 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다. 도로를 가로막고 차들이 크락션을 울려도 쉬 피하지도 않고 중국 사람들처럼 제멋대로다.
별일 없었음을 안도하며 길을 오르는데 이번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길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집에서 누런개가 무서운 기세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썅! 오지 마!"
측면에서 달려드는 개의 기세가 대단하고 위험하다. 다시 개의 눈을 보며 속도를 내며 겨우 뿌리친다.
무섭게 달려드는 사나운 개들을 피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아, 된장을 발라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들!"
개들을 피해 산길을 오르고, 달려드는 개보다 더 살벌한 중국의 안내판이 보인다.
가끔 산을 통째로 깎아내는 중국의 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많은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자원의 소모가 필요할지 가늠도 안된다.
오르막 안내판 4종 세트가 길을 안내한다.
돌고 오르고 돌고를 반복하다 내리막이 시작되고, 벗어놓은 장갑을 끼고 자켓의 지퍼를 올린 후 내리막의 보상을 받기 위해 출발했지만 그것이 무색하리만큼 짧은 내리막은 바로 끝나버린다.
"..."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을 투덜거리며 오랫동안 오르고.
다시 만난 내리막 810미터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야! 뭔가 계산이 틀리잖아. 올라온 거리가 얼만데 겨우 810이야."
고개의 정상에서 쓸데없이 내려가면 더 한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산골에도 목재 가옥이 사라지고 그 형태만을 그대로 본뜬듯한 모양 없는 벽돌 가옥들이 들어선다.
언젠가 사라져버릴 그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긴 오르막이 끝나고 꼴랑 1,200미터 정도를 내려간다. 내려간 거리에 알파를 더해 다시 오르라는 안내와 다를 바 없다.
소수민족 자치구에 들어선 롱지에서부터 이 모양의 건물이 자주 보인다. 확실히 롱지전을 지나면서 부터는 풍경도, 사람도, 건물들도 모두 이색적인 모습이다.
오르막에서 만난 중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경운기는 미니멀한 사이즈다. 척박한 산자락의 꼭대기에서도 삶의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보이는 고개의 끝을 마주한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인가? 분위기가 마지막 고개 같은데!"
2km쯤 내려가던 길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마을을 오르던 중 한 아저씨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할로우'하며 인사를 한다. 중국에서 쉽게 받을 수 없는 환대의 인사에 즐거운 인사로 답을 한다.
차가운 바람과 안개비가 시작되는 마지막 고개에 도착한다. 퉁다오현까지 45km를 남기고 들어선 G209 국도는 아직도 26km가 남아있다.
"겨우 내려가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오네."
몇 분이 안돼 5km가 삭제되고, 자켓은 순식간에 젖어버린다. 롱청전(陇城镇)에 들어선다.
제법 규모가 되는 마을의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마침 먼저 있던 손님들의 메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달라고 요청한다. 얼마인지 물으니 15위안이라 한다.
"쓰우콰이!"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아내는 국을 끓인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볶음과 배춧국. 우선 선지가 들어간 배춧국은 부드럽고 향긋한 배추향이 좋고 국물이 시원하다.
"완전 해장용인데."
메인 메뉴로 나온 돼지고기볶음은 시래기 같은 건조한 채소를 잘게 썰어 돼지고기와 말린 고추 등을 넣어 볶은 것으로 먹는 순간 짧은 감탄이 나온다.
"와우, 최곤데!"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고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따듯하고 편안한 배춧국이 언 몸을 녹이고 시래기 돼지고기와 머슴밥으로 허기짐을 채운다.
식당의 테이블 아래 전기난로가 놓여 정말 따듯하다. 식사가 끝났음에도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한없이 나약하고 가벼운 마음이다.
거실이나 가게 같은 곳에 내부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에서는 이렇게 테이블 밑에 난로를 두고 자기들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손님의 테이블마다 난로를 둔 곳은 처음 본다.
"페이창 하오 츠!"
'내가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이다'했더니 '그렇냐'며 좋아한다.
밥을 먹고 나니 4시가 되고, 앞으로 내리막길일 테니 21km 거리의 퉁다오까지 5시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와 함께 맞바람이 불어오지만 내리막의 가속도가 붙은 무거운 자전거를 방해하지는 못하고, 30분 만에 10km가 사라진다.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소수민족의 독특한 옷차림과 복장을 한 사람들을 자주 지나친다.
조금씩 도로의 상태가 나빠지더니 퉁다오를 10km 정도를 남기고 지옥문이 열린다. 도로포장을 다시 하는지 길들이 파여있고 곳곳이 시멘트 흙탕물로 엉망이다.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털털거리며 좌우로 미끄러지는 바퀴들 그리고 대형 트럭들의 통행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고 불규칙하게 파여있는 흙탕물 웅덩이를 지나며 매너 없는 운전자가 지나가면 큰일이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그때 그분이 지나간다.
블랙코드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감사하게도 시멘트 흙탕물로 회색빛 무늬들을 흩뿌려 밋밋했던 복장을 화려하게 수놓아 준다.
"고맙다. *&^*#*#&$&$^*#&$^!"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 중국인을 뭐라 할 수는 없고, 인구의 1%만 저러해도 매너없는 사람이 1,5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문제겠지 싶다.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돼버린 자전거와 옷들이다.
중심을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오고 그 와중에 길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대체 얼마나 파헤쳐 놓은 거야?"
무려 6km에 이르는 지옥을 경험하고 심신이 너덜너덜거리며 6시가 되어서야 퉁다오의 시내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오묘한 산들이 우뚝 솟은 퉁다오현.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시멘트 흙이 마르기 전에 자전거를 세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첫 번째 주유소를 들렀지만 세차를 하는 차량들이 있어 되돌아 나오고, 두 번째 주유소에 들렀지만 세차 시설이 없다.
주유소 세차를 포기하고 신호등을 건너 좌회전하려는데 주유소에서 검은 요크셔 같은 작은 개가 나와 길을 막고 따라오며 짖는 바람에 좌회전 신호를 놓쳐버린다.
"아, 오늘 개새끼들이 왜 이래!"
가장 가까운 곳의 주점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세차하고, 시멘트로 엉망이 된 옷들을 씻어낸다.
"오늘 저녁은 건너뛰자. 먹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
저녁이 되니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는 퉁다오현이다.
"야경이 알록달록 이쁘네."
아침나절 펑크로 시작하여 비와 바람, 오르락내리락 산길과 사나운 개들 그리고 시멘트 흙탕물까지 뒤집어쓴 이상한 날이다.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예쁜 야경도 봤으니 그럭저럭 퉁치자."
아침에 예보되었던 번개 세트가 빠졌다고 생각했더니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비가 내리고 요란한 번개가 번쩍번쩍 거린다.
"참나, 이상하고 요상한 날이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중국(19.01.30~04.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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