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9일 / 맑음 ・ 10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보바와 함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둘러보기로 했다.
좋은 아침이다. 보바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숙소를 연장한다. 사용하던 룸은 스케줄이 예약되어 8인실 2층 침대로 이동해야 한다.
31일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날 것이다. 조금 쉬고 싶다.
"응."
자동화 기기에서 표를 예매한다. 첨탑의 전망대와 성당의 내부를 둘러보는 입장료가 별도다.
"550루블, 되게 비싸네."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 첨탑 전망대로 올라간다.
첨탑으로 오르는 철계단을 다시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첨탑의 계단은 성당의 출구로 연결된다.
"성당 안쪽은 어떻게 들어가?"
"그래, 넌 좀 앉아있어."
천장을 촬영하느라 서너 바퀴 회전을 하니 머리가 빙빙 돈다.
"보바, 이글은 자꾸만 번역기를 달라며 말을 해서 구경을 못 하게 했는데, 너는 발이 아프다고 하면서 구경을 못 하게 하니?"
"오, 좋은데. 나도 해볼까."
"뭐야? 이거."
꽤나 깊게 들어가는 지하철이다 대략 서울의 가장 깊은 지하철과 비슷한 느낌이다.
"싫어, 서울에도 지하철은 많아."
보바는 5개 정도 노선이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에서 여러 차례 노선을 확인한다.
"넌 서울에 가면 복잡해서 못 살겠다."
보바가 찾고 있는 운동화를 파는 상점이 있는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보바는 쉽게 건물을 찾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가게의 위치를 묻는 동안 구글맵을 확인하니 바로 옆의 건물이다.
"보바, 이리 와."
아무래도 이글처럼 보바도 아날로그형 인간인 듯싶다. 이글처럼 도시의 삶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림들에게 길을 물어 4층의 매장을 찾고, 보바가 사고 싶어 하던 운동화를 산다.
생각해보니 조선일보의 구독 거절을 시작했던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농심, 남양, 삼성, 조중동, 종편 등등의 안티 브랜드들이 늘어나는 동안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를 꼭 사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도 함께 사라졌나 보다.
"운동화 하나, 바르간 하나를 사기 위해 이렇게 정성이라니. 귀여운 녀석들!"
"보바, 한식당에서 밤을 먹고 옆에 빅토르 초이 벽화를 보러 가자."
첼니를 떠나 니즈니노브도로드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보바나 이글, 안드레에게 한 번쯤 한국 음식을 사주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조금 빈약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멍청이들!"
"그러게, 러시아 젊은이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을 뮤지션인데."
"사비, 데니스에게 사진을 보내서 보정을 하자. 데니스는 사진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
"어, 그런 것은 나도 할 수 있어."
러시아에 대해, 초이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된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카잔 성당이 있다. 보바의 신발을 샀던 곳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앙구 지역인데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처람 느껴진다.
"보, 버스 타고 가자."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두 번의 환승을 하던 지하철보다 버스가 편할 것 같은데, 보바는 지하철이 좋다고 한다.
"버스, 타!"
버스 요금을 받는 승무원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들에게 돈을 보내줘야 해."
"그래."
다시 버스를 타고 중앙구로 되돌아간다. 구글맵으로 은행을 찾아 보바를 안내하고, 타타르스탄의 지방은행에서 보바는 필요한 일을 본다.
"핸드폰 앱으로 몇 초면 가능한 은행 업무인데."
은행에서 송금을 끝내고 보바는 아이폰의 부품들을 사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어디에 있는데?"
보바가 보여준 지도는 카잔성당 근처다.
"야!"
부품 가게가 7시에 영업을 끝내는지 서둘러 가야 한다며 미안해하는 보바, 두 개의 버스 정류장 거리를 걸어 가게를 찾아가고 핸드폰과 잡화들을 파는 커다란 상가 골목에서 보바는 서둘러 뛰어간다.
"그래, 먼저 가."
조금씩 피곤함이 물려와 천천히 걷다 보니 상가들이 이어지는 곳에서 보바는 보이질 않는다.
한참 후 전화를 한 보바는 어디에 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어디인지 내가 알겠니? 너의 현재 위치 지도를 보내줘."
내가 보바를 찾는 것이 쉬울 것 같아 현재 위치를 보내달라고 하니,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좌표를 보내준다.
"고맙다. 모스부호가 아닌 게 어디냐!"
복잡한 시장 골목을 따라 좌표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없다. 보바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 보바는 어디인지를 계속 묻는다. 네트워크가 좋지 않아 끊기는 통화음에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다.
"끊어줘. 내가 찾아갈게."
골목들을 되돌아와 상가의 도로변에 도착하자 보바는 그제서야 지도의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준다.
"아, 이 올드맨들!"
저녁이 되고, 8시가 가까워지니 피로와 졸음이 밀려온다.
"보바, 지도로 위치를 알려줘야지."
연신 미안하다는 보바, 보바에게 짜증이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단지 피곤함 때문에 지쳐간다.
저렴한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자는 보바는 중앙구에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20분 정도를 더 걸을 수는 없다.
"거기는 너무 멀어."
주변의 카페를 몇 군데 찾아보다 숙소 근처로 돌아가자고 보바에게 말한다.
"보바, 버스 타고 가자."
이상하게 러시아 친구를 데리고, 러시아 시내를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그래, 난 맥주가 먹고 싶네. 자전거를 100km 타는 것보다 더 힘든 하루야."
카페에서 나는 맥주를 마시고, 보바는 새로 사온 부품으로 핸드폰을 수리한다.
"보바, 러시아에는 맥주도 있고, 신발도 있고, 아이폰도 있는데 예쁜 여자는 어디에 있니?"
내일 알렉산드르가 푸시킨의 공원들을 안내해 준다며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한다. 내일 근무를 해야 하는 보바는 아침 8시에 만나자고 하고, 너무 피곤하여 나는 10시쯤 보자고 하니 알렉산드르가 오후에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 8시에 봐."
"보바, 넌 참 복도 없다. 나와 같은 친구를 만났으니 말이다."
피곤함과 함께 텅 빈 공허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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