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5일 / 비 ・ 26도
법주사
조용한 속리산의 하루, 법주사로 산책을 간다. 오후 늦게 태풍 바비가 상륙한다는 기상예보가 요란스럽다.


이동거리
6Km
누적거리
27,731Km
이동시간
1시간 58분
누적시간
2,120시간

 
법주사
 
태풍
 
 
 
 
 
 
 
1Km / 20분
 
5Km / 1시간 38분
 
공원
 
법주사
 
모텔
 
 
1,363Km
 

 

새벽 6시, 밤을 꼴딱 지새우고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기운 속에서 기절하듯 잠이 든다.

아침 9시, 풍성한 단풍나무의 그늘은 매우 시원하다. 피곤하게 잠에서 깨어난 뒤 다시 침낭을 끌어당긴다.

아침 10시, 조각공원의 계곡으로 인솔자와 함께 몇몇의 아이들이 들어온다.

"날씨, 태풍 바비는 어디까지 왔지?"

제주 남쪽까지 북상한 태풍 바비, 구글의 기상예보와 네이버의 기상예보가 엇갈린다. 가끔씩 소나기 예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구름 낀 흐린 날을 예상한 구글과 다르게 네이버는 12시부터 비가 내린다고 예상한다.

"곧 알겠네. 근데 바로 비가 내릴 하늘은 아닌데."

태풍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내일은 숙소를 잡고 태풍을 피하려고 한다. 속리산의 둘레길을 돌아 상주로 가려던 계획을 태풍으로 인해 변경해야 한다.

"근처에 저렴한 숙소는 청주에 있는데."

속리면에도 많은 모텔과 펜션 그리고 민박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숙박비다. 30km 정도 떨어진 청주 외곽의 저렴한 숙소를 검색해 놓는다.

"청주로 내려가서 다시 속리산으로 올라오기도 그렇고."

상주, 충주, 여주를 거쳐 경기도로 돌아가려던 일정이 꼬였다. 청주, 안성, 용인으로 가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지만 수도권 외곽의 중소도시를 거쳐가는 경로가 탐탁지 않다.

"이렇게 여행이 끝나는가."

"뭐하지?"

"일단 굿모닝을 알리고."

텐트 옆으로 수다스러운 중년의 남녀가 자리를 잡는다. 넓은 공원의 다른 공간도 많은데 굳이 텐트 근처로 와서 자리를 잡는지 모를 일이다.

배터리들을 모두 들고 식당으로 간다.

속리산 방향의 하늘이 거뭇거뭇 어둡다.

"네이버가 이긴 건가?"

배터리를 충전하며.

밥을 먹고.

배터리를 맡겨놓고 법주사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말을 걸어도 시큰둥한 식당 어르신에게 배터리 충전을 부탁하기가 그렇다.

식당 옆 카페로 들어가 충전을 부탁하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고 법주사로 간다.

"구글이 이긴 건가?"

매표소에서 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태풍으로 등산로는 올라갈 수 없다는 안내를 받는다.

"법주사만 갈 거예요."

특별히 매력적이 않은 체험 숲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나무들이 풍성하게 숲을 이루는 법주사길은 가을에 오면 꽤 괜찮겠다 싶다.

법주사로 들어간다.

두 그루의 나무가 높게 자란 천왕문이 보이고.

그 뒤로 황금빛 청동 미륵대불의 모습이 웅장하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천왕상의 천왕문은 조금 실망스럽다 생각하며 지나치니.

은은한 옛스러움이 매력적인 팔상전 목조탑이 마을을 사로잡는다.

대웅전은 외관 공사 중이라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쉽다. 중앙계단의 석상이 꽤 독특하다.

팔상전 단청의 은은한 색과 모양 그리고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 소리가 너무나 좋다.

넓고 깨끗하게 정돈된 법주사, 법주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팔상전이 아닌가 싶다.

법주사 측면에 보이는 커다란 암석 바위들 사이로 약수터가 보이고.

암석에 새겨진 미륵불의 조각도 보인다.

"나도 돌 하나 올리고."

"역시 구글이 이겼군."

사찰 주변으로 여기저기 쌓여있는 조그만 소원의 돌탑들이 많다.

"허전하니까 마지막으로."

"어머니도 건강하게, 그녀도 행복하게.."

매표소 근처 찻집의 나무판자로 만든 담이 매력적이다.

텐트가 있는 조각공원까지 걸으며 한가로운 법주사 산책을 마친다.

"캠핑 의자?"

텐트로 돌아와 쉬려고 하니 뭔가가 어색하고 허전하다. 텐트 옆에 있어야 할 의자가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아침에 텐트 옆으로 자리를 잡았던 중년의 커플이 버너에 라면을 끓이며 내 의자를 바람막이로 사용하고 있다.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다. 라면을 끓여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던 사람들은 겸연쩍은 웃음으로 라면을 먹으라고 말한다.

시끄럽고 한심하고 무례한 사람들이다.

"됐고, 의자나 다 쓰셨으면 주세요."

카페로 가서 배터리들을 찾아오며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죠스바를 발견한다.

냉동고의 문을 열는 내 표정이 꽤나 즐거웠는지 가게의 할머니는 자신의 손주들도 죠스바를 좋아한다며 웃으신다.

"우리 아이들도 꼭 그것만 먹어! 맛있나 봐."

돌아와 뒷바퀴가 주저앉아 있는 자전거를 정비한다.

계곡물에 튜브를 넣어 펑크가 난 곳을 찾고, 타이어를 쓰다듬어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을 찾아낸다.

"요놈이!"

소나기가 오락가락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술에 취한 4명의 남녀는 시끄럽게 떠들더니 드러누워 잠을 잔다.

"쌤통이네. 소나기야, 더 내려라!"

소나기를 맞으며 잠을 자던 남녀들은 황급히 잠에서 깨어 계곡을 떠나고 주변은 다시 조용함이 찾아든다.

"아무래도 수명을 다 했나 봐."

반복되는 소나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드는 계곡물의 풍경이 유혹적이다.

시원한 계곡물속으로 들어간다.

두어 시간 아무도 없는 계곡물에서 조용하게 물놀이를 하는 젊은 커플의 모습이 아름답다 느껴진다.

"무례하고 한심했던 중년의 남녀들도 한 때는 그러했을까? 아니야,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건 타고난 정서의 문제야!"

잠시 후 계곡으로 찾아와 신나게 놀던 어린 브로맨스들은 계곡의 안전요원 아저씨에게 꾸중을 듣고 사라진다.

비와 바람이 조금씩 강하게 불어온다. 텐트를 정비하고 태풍의 경로와 날씨를 살펴보니 태풍의 북상 속도가 오전에 비해 빨라졌다.

내일 오전에 중부지방을 지나간다던 태풍이 이른 새벽시간으로 앞당겨져 있다.

"오늘이야, 내일이야?"

역대급 태풍이라 호들갑을 떠는 매스컴의 예보를 믿지는 않지만 어쨌든 오늘 밤 태풍을 피하는 것이 맞다.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검색해둔 청주 외곽의 모텔로 가기 전 속리면의 모텔을 둘러본다.

코로나로 인해 한산하던 거리는 태풍으로 더욱 적막하게 변해있다.

"어머니, 하루에 얼마예요?"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는 오래된 모텔의 여주인과 눈이 마주쳐 숙박료를 물어본다.

"4만원요."

"깎아주시면 안 돼요?"

모텔 앞을 빙글 돌며 대답을 기다리고, 안된다는 부정적 손사래를 하려는 순간 안쪽에서 인상이 좋은 어르신이 웃으신다.

"한 명?"

"네."

"들어와요. 3만원에 해줄게."

고급스럽지도 않고, 최신식 모텔도 아니지만 가끔씩 이런 오래된 여관들이 정겹고 좋다. 청주 외곽의 모텔도 25,000원의 숙박료이니 30km 떨어진 곳까지 서둘러 가는 것보다 낫고, 속리산의 둘레길을 따라 여행하려던 계획도 변경할 필요가 없으니 괜찮은 선택이다.

"태풍이 오긴 오는가 봐."

소나기가 멈춘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진다.

현금을 찾아 숙박비를 내고, 2층의 방은 예전 여관의 모습이지만 나름 깨끗하고 에어컨도 잘 작동이 된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 음식점들을 둘러봐도 모두 산채비빔밥이다.

"비 오는 날에는."

주인아저씨에게 근처에서 어느 집 해물파전이 제일 맛있는지 물으니 빙긋 웃으며 말한다.

"맛?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다 똑같아."

"그렇죠? 그럼 아무 식당이나."

"그럼 길 건너 한성식당에 가서 여기 모텔에서 왔다고 많이 달라고 해!"

아저씨가 알려준 식당은 문이 닫혀있다. 음식점 중 제법 큰 식당에 들어가 해물파전을 주문한다.

이틀 동안 먹었던 식당의 무뚝뚝한 어르신에 비해 조용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인상이 좋다.

"배고파요. 많이 주세요!"

"대박!"

슈퍼에서 알밤막걸리 한 통을 사들고 모텔로 돌아온다.

뉴스속보를 보며 막걸리와 파전으로 저녁을 한다.

"아, 맛 좋다. 고맙다, 태풍아!"

새벽녘 정도에 중부 지방을 지나간다는 태풍은 저녁 늦게까지 잠잠하다.

"구라청이 구라청 했나?"

배터리들을 모두 꺼내 충전을 하고, 막걸리 한 통에 알딸딸하니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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