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04일 / 맑음 ・ 28도
후포-울진-포항
조용했던 후포해변의 아침이 시끄럽다. 포항까지 가기 위해 여러 많은 고개들을 넘어가야 한다.
할머니들이 말다툼을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억양이 강하고 빠른 속도의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나 시끄럽다.
"그만, 제발요!"
피곤함에 다시 잠을 청하고 10시가 되어 일어난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며칠간의 피로가 뭉쳐 있는 기분이다.
"꽤나 후덥지근 하겠다."
짐들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길 건너편의 슈퍼마켓이 소란스럽다. 어르신 한 분이 중년의 남자에게 계속해서 소리를 치고 있고, 중년의 여자는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화가 많은 동네인가?"
10시 40분, 포항을 향해 출발한다. 영일대까지 90km 정도의 거리지만 해돋이 공원들이 있는 고개들을 넘어가는 코스가 쉽지만은 않다.
"저녁때쯤 도착하겠네."
지난 여행 때 들려 아침을 해결했던 칠보산 휴게소의 한식 뷔페까지 7번 국도를 타고 다이렉트로 도착한다.
발열체크, 방문 기록지, 테이블마다 설치된 투명 아크릴 칸막이 그리고 마스크가 없는 사람들에게 마스크까지 나눠주는 식당의 운영 마인드가 좋다.
비빔밥으로 크게 한 그릇을 담고, 불고기와 밑반찬들을 접시에 별도로 담아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부산까지도 가겠다."
식사 후 고래불 해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지난 여행 때의 지루하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남아있지만 오늘은 그런대로 수월한 느낌이다.
솔밭으로 넓은 캠핑장이 잘 조성된 고래불 해변의 남쪽 해안을 지나고.
작은 고개와 해안도로를 달리고, 피데기를 판매하는 마지막 고개에서 반건조 오징어를 사 든다.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다."
축산항에 도착한다.
편의점의 시원한 얼음 커피로 갈증을 달래고.
"작은 건물에 있을 건 다 있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축산항은 여행을 할 때마다 잠시 쉬어가게 되는 장소이다. 관광지 항구들의 번잡스러움이나 작은 항구들의 적막감과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는 곳, 항구의 다방에 들어가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
넓은 농기계 전용도로를 따라가다 경정항으로 들어가는 고개를 넘는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축산항에서 포항시의 경계까지 해안의 고개들을 넘으면서 가야 한다.
"BTS 뮤직비디오 촬영지도 관광지가 되는가?"
붉은빛이 감도는 넓은 갯바위의 풍경이 제법 괜찮은 장소다.
경정항을 지나 다시 고개들은 시작되고.
언제나 바다와 항구 그리고 언덕 위 마을의 풍경이 좋은 노물리 고개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저기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면 좋을까?"
노물리 고개의 휴식의 달콤함도 잠시 뿐. 영덕 해맞이공원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시작된다.
"너 오랜만이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해맞이공원의 풍력발전기는 언제 봐도 얄미운 느낌이다.
해맞이공원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강구항을 향해서 달려간다.
지난 여행, 갈매기들이 마을 사람들을 알아본다던 대부리의 해안가를 지나고.
어촌 마을들의 정겨운 민박집들과 작은 어촌 집들의 풍경은 조금씩 요란한 펜션들과 대게식당이 연이어지며 번잡함으로 변해간다.
요란스러운 강구항 대게거리,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배꼽인사를 하며 호객을 하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붙어있는 광고 현수막들은 언제나 볼썽사납다.
친절한 미소의 인사와 '잘해주겠다'는 흥정의 인사말은 어린 시절 불편하게 지나쳐 가야만 했던 홍등가 골목길, 욕망의 유혹보다 천박하다.
무례하고 불쾌한 시선이 투영된 후 들려오는 흥정의 가격은 어쩌면 그들이 매기는 나의 몸값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얼마야?"
정말 변화가 없는 동네다. 한정된 손님에 대한 쟁탈전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를 확장하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제발, 건강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라고!"
강구항을 지나 길은 해안도로와 7번 국도를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고개들을 넘느라 지친 여행자에게 꽤나 지루한 코스다.
국도변을 따라 이어지던 자전거 길은 작은 어촌 마을을 짧게 통과하고 다시 국도로 이어지기를 계속 반복한다.
"뭔가 놀림당하는 기분이야."
"포항이다."
포항의 경계를 지났지만 영일대가 있는 시내까지는 30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지난 여행, 마치 제주도의 어느 해변처럼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던 화진리 해안가는 폭우가 지나간 후 황량함만이 남아있다.
"아쉽다!"
헛헛한 실망감에 괜한 시골집들의 모습을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고.
"진짜 오래된 집이네."
이제는 헛간이나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옛집의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고갯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이미 지쳐있는 페달링은 무겁기만 하다.
갈증을 달래려 멈춰 선 월포 해변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30년 전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마을 번영회에 의해 운영되는 것 같은 해변의 음식점들과 해변의 노점들, 평상과 파라솔 자리를 대여하는 난잡한 해변의 모습에 짧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강릉의 감성 돋는 해변의 파라솔 공간, 여수 낭만 포차 거리 등 많은 투자나 특별한 기획 없이도 충분하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킨 곳들이 많다.
"다른 지역들의 성공 모델들을 조금만 벤치마킹해도 좋으련만."
강릉에서부터 많은 해변을 지나쳐왔지만 월포해변의 모습은 유난스럽게 난잡하다.
강구항과 월포해변. 치이로의 행방불명, 돼지로 변해가는 게걸스러운 부모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현대식 펜션들이 들어서는 해안가를 달리고.
주차된 차량 사이로 유아들이 마구 뛰쳐나오는 정신 사나운 해변을 지난다.
"유독 이 동네가 그런가 보다."
"정서적으로 안 맞는 동네야."
포항 시내로 들어서는 길, 석양이 저물어 간다.
라이딩을 하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포항 시내로 향하고.
영일만 산업단지의 지루한 도로변을 지나 영일대에 들어선다.
멀리 포스코 공단의 실루엣이 보이고.
"왔다."
"너덜너덜하다."
영선 형님에게 도착 전화를 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하루의 피곤함을 가라앉힌다.
포항의 요트 계류장을 찾아간다.
계류장 앞에서 영선 형님이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와 패니어들은 승용차에 넣어두고, 작은 요트 시그너스에 승선한다.
아담한 사이즈의 요트, 내부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저녁을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지만 영업이 끝난 상황, 다시 요트로 돌아와 스파게티로 저녁을 하고 울진에서 사 온 반건조 오징어를 구워 반주를 한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 작은 요트에 누워 잠이 든다. 피곤하고 힘든 하루다.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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