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01일 / 맑음 ・ 28도
삼척-울진
새벽까지 이어진 폭우로 인해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편히 휴식할 곳을 찾아 죽변항으로 간다.


이동거리
21Km
누적거리
27,084Km
이동시간
2시간 35분
누적시간
2,057시간

 
동해안길
 
동해안길
 
 
 
 
 
 
 
7Km / 50분
 
14Km / 1시간 45분
 
고포항
 
북면
 
죽변항
 
 
685Km
 

 

밤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일기예보와 달리 그 기세를 더해간다.

"무슨 일기예보가 실시간을 바뀌냐!"

10시에 비가 멈춘다는 날씨 예보는 아침까지 비 모양으로 바뀌어 가고, 최대 10미리의 시간당 강수량은 40으로 증가한다.

"너희를 믿은 내가 바보다."

새벽 3시,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끝내 텐트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저녁에 봐 두었던 도로변 정자로 가기 위해 패니어와 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도로변으로 옮기고, 자전거를 끌고 정자로 가니 정자에는 이미 작은 텐트 하나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늦었네. 살짝만 가장자리에 쳤으면 두 개도 들어가겠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자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비에 젖은 텐트를 거의 끌다시피 들고 와 정류장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투둑."

부실한 폴대 두 개가 부러져 나간다.

새벽 4시 반, 텐트의 내부는 이미 빗물이 가득 차있다. 손으로 빗물을 쓸어내고 망연스레 앉아 시간을 보낸다.

"괜히 옮겼나? 처음부터 정자에 텐트를 쳤어야 했나? 정자에서 비박을 하는 게 좋을까?"

5시가 넘어가고 날이 밝아온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고, 비에 젖은 옷들을 벗고 부드러운 속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 아늑함은 뭐지?"

정류장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들고,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든다.

10시 반, 조금씩 더워지는 텐트의 온도에 잠에서 깬다. 느낌상 날밤을 뜬 눈으로 샌 기분이다.

엉망으로 젖은 텐트를 꺼내어 햇볕에 말려두고.

출출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을을 둘러보지만 작은 슈퍼마켓은 없고, 마을 내부에 넓은 정자가 두 개가 더 있다는 것만 확인한다.

어제 해변에 텐트를 치기 전 마을을 조금이라도 둘러봤어야 했는데, 게으름에 캠핑의 기본을 잠시 잊어버렸다.

"어서 말라라."

피곤함에 이동을 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음식을 구할 곳이 없어 움직여야 한다.

하룻밤 사이 녹이 슨 체인에 윤활을 하고 마을을 빠져나간다.

"너 참 얄궂다."

마을의 초입에 울진군의 경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길은 긴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시작부터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오른다.

몇 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는 동안 작은 슈퍼마켓도 찾기가 힘들고.

쉽게 지쳐버린 페달링으로 겨우 죽변항에 도착한다.

"힘든 20km다."

10년 만에 다시 온 죽변항, 배 고프다.

죽변항 입구의 식당가로 들어가.

생선구이 집으로 들어간다.

심각하게 제육볶음 같은 고기가 당기지만 오는 동안 두 군데의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왜 제육볶음은 2인분부터야!"

인상이 좋고 여자가 상냥하게 응대를 해준다. 공깃밥 두 그릇을 해치우고.

죽변항을 잠시 구경한다.

항구 주변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대게를 파는 가게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야영지로 생각한 봉평 해변으로 간다.

도착한 봉평 해변의 캠핑장은 텐트들로 가득하고, 캠핑장도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피곤함에 유료 캠핑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다닥다닥 텐트들이 붙어있는 캠핑장은 끔찍하다.

편의점에 앉아 잠시 주변을 검색하고, 해안가 끝에 있는 방파제 주변의 해변에 캠핑 공간이 있을 것 같다.

봉평 해변의 끝자락, 방파제를 가운데에 두고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언덕 위에 작은 민박집과 펜션이 있고.

해변에는 몇 개의 그늘막과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케이. 빙고!"

다른 텐트들과 멀리 떨어진 방파제 가까이에 텐트를 펼친다.

"자전거 여행을 하시나 봐요."

낚싯대를 든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자신도 전국일주를 여러 차례 했다는 남자는 여행작가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60세라는 남자는 어릴 때부터 세계 5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남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들고 있는 낚싯대에 대해 물어본다.

여행을 하며 낚시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 낚시에 대해 관심이 많다.

루어 낚싯대에 대한 궁금증들에 대해 묻고, 남자의 여행담을 듣는다.

꽤나 유쾌하고 즐거운 남자다.

방파제에 올라 바다를 구경하고.

텐트로 돌아와.

바닷물에 들어가 발을 담근다.

"아, 정말 긴 하루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실루엣 좋네. 부럽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텐트에 들어가 누우니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지 마라!"

날씨를 확인하니 비예보가 전혀 없다.

"믿어본다. 피곤하고 귀찮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폭죽들이 계속 터진다.

멀리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 다행이다 싶다.

"대체 저녁에는 뭘 하다가 이 시간에 나와서 볼품도 없는 폭죽을 쏴 대냐!"

 
피곤할수록 잠들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불행히도 오늘이 그렇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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